『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고 있다.

 


1. 혹 스포일러를 싫어하시는 분들이 계실까 가능한 내용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글을 쓰고 싶은데 그게 잘 될지 모르겠다.

 


2. ‘어디 갔었어의 짧은 글 이전에, 내가 쓴 글이 강제적 이성애와 무성애의 섬 (feat. 수하님)’이었다는 걸 기억하면서 썼다. 그 글에서 내가 생각했던 지점, 즉 강제적 이성애와 레즈비어니즘 그리고 그 중간 어디쯤의 무성애 (청정) 지역에 대한 고민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이 소설을 읽었다는 뜻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실명한 사람들이 정신 병원에 격리되는 과정에서부터 그곳에서의 처참한 모습들은 아우슈비츠와 꼭 닮아있다. 그 순간, 그 모습들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한 사람은 눈이 멀지 않았다. 그 지옥 같은 아수라장에서 그녀가 말한다.

 


안과 의사의 부인인 이 여자는 지칠 줄 모르고 우리에게 이야기를 한다. 우리가 완전히 인간답게 살 수 없다면, 적어도 완전히 동물처럼 살지는 않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합시다. (168)

 



인간답다는 건 어떤 것일까. 우리는 인간도 동물이라는 걸 안다. 온 지구를 뜨겁게 만들고도 부족한 맹목적인 인간 중심주의. 오랫동안 아니라고 주장해 왔지만 이제 더는 부인할 수 없다. 인간도 동물이다. 그저 동물의 한 종류일 뿐이다. 그렇다면 동물인 우리 인간은 어느 때에, 인간 아닌 동물이 되는 걸까.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건 뭘까. 욕망 발현의 한계점을 어디에 두어야 인간인가. 어디에 두면 동물인가.

 

 


너무 옛날 모델이라 부끄럽기는 하지만, 지금 기억나는 게 이것밖에 없다.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에 의하면, 인간은 아래쪽에서부터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애정/소속의 욕구, 자기 존중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가 있다. ‘눈먼 자들이 격리된 정신 병원은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인 생리적 욕구마저 위협받는 곳이다. 생리적 욕구는 ‘breathing, food, water, sex, sleep, homeostasis(항상성), excretion(배설)’에 대한 욕구를 뜻한다.

 


나는 먹는 것보다 자는 걸 선택하는 사람이다. 배고픈 건 참을 수 있지만 수면시간이 부족하면 견디지 못한다. 잠을 4-5시간밖에 자지 못한 그다음 날에는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팔을 들어 올리는 것조차 힘들었던 때도 있었다. 하루에 한 끼만 먹어도 괜찮고, 내가 차려서 먹어야 한다면, 귀찮음과 배고픔 중에 항상 귀찮음의 손을 들어주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현재 상황에서다. 아무것도 할 일이 없고, 시간이 남아돌고, 미래의 내가 배고픔으로 고통당할 것을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내게 가장 큰 고통은 배고픔이 될 것이고, 나는 음식에 대한 욕구와 욕망으로 가득 찰 것이다. 내게 가장 강력한 욕망은 음식을 향할 것이다.

 


이 소설 속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눈먼 이들은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은 채,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 격리되었고, 언제 음식이 공급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인간으로서 존재하기에 충분한 양의 기초적인 재화가 공급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들에게는 ‘breathing, food, water, sex, sleep, homeostasis(항상성), excretion(배설)’에 대한 욕구가 가장 강렬했다. 그중에서도 그들을 가장 강력하게 사로잡은 건 음식에 대한 욕구였을 것이다. 그랬던 그들에게 외부의 압력이 작용한다. 음식을 얻는 것에만 몰두했던 그들이, 오로지 먹을 것만 생각했던 그들이……

 


각 병실에서는 서로 점차 익숙해지면서 관능적인 욕구가 시들해지고 있었는데, 피해갈 수 없는 임박한 수모의 위협이 자극제가 되면서 갑자기 그 욕구가 기승을 부렸다. 남자들은 여자들을 빼앗기기 전에 그 몸에 자신의 표식을 남기려고 필사적인 것 같았다. 여자들은 가능하면 거부하고 싶은 감각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자신의 기억 속에 자발적으로 경험하는 감각들을 가득 채워넣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243)

 

 

예전에 참여했던 온라인 독서 모임에서 지도 선생님은 밀란 쿤데라의 말을 인용하며 도덕적 잣대를 가지고 문학을 봐서는 안 된다고 내게 충고하셨다. 그때나 지금이나 선생님의 지적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내 의도를 정확히 전달하지 못했고, (어쩌면 그래서) 선생님이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기는 한다. 아무튼 선생님은 나의 이 생각을 영원히 모르실 테고. 그보다는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선생님의 그 말을 떠올렸다. 도덕적 잣대를 가지고 문학을 봐서는 안 된다.

 


정확히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246쪽에서 247쪽까지다. 이 소설은 포르투갈어로 쓰였지만, 이 책의 번역자는 믿고 읽는정영목 님이시고. 나는 한글로 이 소설을 읽고 있는데. 읽으면서도 믿을 수가 없어서,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어서, 이 두 쪽을 세 번 정도 읽은 것 같다. , 이게 정말. 말이 되나. 이게 정말 가능한가. 이게 정말

 


그리고 다시 생각한다. 인간이 동물로서 생존하기 위해 가장 절실한 욕구, 즉 생리적 욕구는 ‘breathing, food, water, sex, sleep, homeostasis(항상성), excretion(배설)’이다. 수면욕구 만큼이나 음식에 대한 욕구는 강력하고, 음식에 대한 욕구만큼이나 섹스에 대한 욕구는 강렬할 텐데. 그런데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가장 강력하고 가장 끈질긴 욕구는 역시 섹스에 대한 욕구란 말인가. 이때쯤 다시 찾아보는 필립 로스.

 
















오직 섹스를 할 때만 인생에서 싫어하는 모든 것과 인생에서 패배했던 모든 것에 순간적으로나마 순수하게 복수할 수 있기 때문이야. 오직 그때에만 가장 깨끗하게 살아 있고 가장 깨끗하게 자기 자신일 수 있기 때문이야. 부패한 건 섹스가 아니야 - 섹스 아닌 나머지가 부패한 거야. 섹스는 단순히 마찰과 얕은 재미가 아니야. 섹스는 죽음에 대한 복수이기도 해. 죽음을 잊지 마. 절대 그걸 잊지 마. 그래, 섹스도 그 힘에 한계가 있어. 나도 한계가 있다는 걸 아주 잘 알아. 하지만 말해봐, 섹스보다 큰 힘이 어디 있어? (<죽어가는 짐승>, 88)

 

 


소설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기에 소설을 읽는다. 나와 다른 사람이 되고, 다른 환경에 처하고, 다른 결정을 내리는 사람을 관찰하고, 그 영광과 파멸을 바라본다. 말 그대로 함께한다. 눈먼 사람들과 눈 뜬 한 명의 여자와 함께 그 복도를 거닐고, 그녀가 보는 것을 함께 보는 과정이 내내 괴로웠지만, 특히 저 부분은 읽기 힘들었다. 나의 분노는 무엇 때문인가. 사회적 인습과 모노아모리에 대한 강박 때문인가. 배신감에 치를 떨게 만드는 그 남자가 미웠다. 죽도록 미웠다. 그 여자도 미웠다. 그리고 남겨진 여자를,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제는 점심을 건너뛰고 오후 늦게 이른 저녁으로 메밀소바와 밀크티를 마셨다. 둘 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어서 맛있게 먹었는데, 소설을 따라 읽으면서 토할 것 같은 기분에 여러 번 책을 덮었다. 아직 다 읽지 못했고 곧 마저 읽을 테지만, 주제 사라마구의 책은 한동안 읽지 못할 것 같다.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가, 내게는 너무 어렵다.

 


쉬어야 한다, 잠시. 건조하고 담백한 문장을 만나 봐야겠다. 이를테면 아렌트. 한나 아렌트.   










댓글(7)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3-02-07 15: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도대체 섹스가 뭘까요? 눈 먼 상황에서 급박하게 찾는게 섹스인가요? 나를 나로 만드는게 섹스인가요? 전 ..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영화속에서도 말씀하신 그 장면이 보여집니다. 아내는 눈이 멀지 않았기 때문에 목격을 하는 그 장면요. 모두 눈이 멀었을 때 나 혼자 세상을 볼 수 있는 것도 정말 힘든 일인것 같아요. 섹스는 뭘까요?

좀 다른 얘긴데 좀비 영화 <28일 후>를 보면요, 살아 남은 인간들이 살고자 하고 다른 생존자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몇몇 생존자들과 맞닥뜨리거든요. 그들은 모두 남자였는데, 이 주인공과 함께 하는 사람들중엔 여자가 있었단 말이예요? 바깥은 좀비가 창궐하는 이 와중에 이 생존자남1 은 이 여성을 강간하려고 시도하더군요. 그 상황에서 강간을 할 생각을 어떻게 할까요? 가끔 인간은 너무 징그러워요.

단발머리 2023-02-08 13:15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이 그 장면 아신다고 하니.... 참..... 나의 괴로움 아는 사람 1인 추가합니다. 영화보다는 전, 책의 그 장면이 정말 싫었어요. 아... 아직도 괴로운 나....

고고한 하늘의 문장으로 솟구치거나 어디 별사탕 세상으로 피해야지 싶습니다. 아..... 괴롭....

공쟝쟝 2023-02-08 08: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쟝쟝도 잠이 먼저 라고 합니다. 밥은.... 까먹지 않고 먹기 위해서 노력하는 중입니다 ㅋㅋ
필립 로스 섹스에 의미 부여하는 거 꼴비기 싫으네요 ㅋㅋㅋ 저도 어제 아렌트 새책 쓰다듬으면서(읽지는 않음) 즐거운 저녁(?)을 보냈어요.

엉성한 사회의 도덕적 잣대로 문학을 보는 것은 저 역시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신만의 윤리를 발명하기 위해서 문학을 읽는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영화보다, 유튜브보다 때로는 삶보다. 책 읽기가 (중간중간 멈추어 생각할 수 있으므로) 특히 문학 읽기가 자신을 심문해서 얻는 자기만의 윤리를 적립하는 데 좋은 재료라고 생각하고요. 알라딘에서 그런 사람들 만나서 넘 좋음요.

(문득 번뜩 하면서 드는 생각인데요, 제가 좋아하는 글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는 기준이 여기에 있는 것 같네요.)

단발머리 2023-02-08 14:06   좋아요 1 | URL
밥은 챙겨 먹자고요.... 아 힘들다 ㅋㅋ

자신만의 윤리를 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데.... 보통 그런 사람들은 말이 길고 ㅋㅋㅋㅋㅋ 그런 분들은 산에 가세요, 전 이런 편인데... 나도 말이 많고 말이 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책읽는 제가 좋지만 이제 대세는 영화쪽으로 간 거 같아요. 드라마, 영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조금 더 쉽게, 더 강력하게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요.

공쟝쟝 2023-02-08 14:04   좋아요 1 | URL
잘 챙겨먹어요. 제때에!!!
단발님이 말씀하시는 건 산에가셔야 하는 분들은…. 제가 생각한 자신만의 윤리라기 보다는 자기 합리화인 것 같아요! 전“윤리”요!! 푸코가 말하는 윤리. 에 더 가깝습니다. 나를 알고 세상을 알고 내 위치를 알고 거기에 합당하게 사는 거요, 자기배려. 자기이해에 입각한 좋은 삶으로 가기 위한 노력요.

그냥 좋은 게 다 좋은 거다로 믿어보마 살았더니 저는 인생 망하게 생겨서요… 분명히 도덕적으로 살았는 데 인생이 왤케됐지??? 이제 어떻게든 사회가 제시한다고 그대로 따르고 그러면 안될 거 같아요. 나중에 누굴 탓할 수가 없더라고요. 내가 선택한 것도 아닌데….

그러려면 생각을 해야하는데 영상매체는 아무래도 과몰입은 되는데 중간에 생각하기는 좀 힘들죠? 나중에 영화감상문을 꼭 써야겠네요!!

난티나무 2023-02-08 19: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필립 로스 꼴비기 싫다 22222222

단발머리님 글 보면서 하 이 소설 다시 읽어봐야 하나 싶어요. 오래전에 읽었어서 지금 읽으면 분명 다르게 읽힐 텐데 그런데 너무 괴로울 것같고...@@ 읽다 던진 <눈뜬 자들의 도시>도 지금은 읽히려나 싶고요?ㅎㅎㅎ

저도 메밀소바 좋아합니다!

단발머리 2023-02-09 07:45   좋아요 0 | URL
일단 괴롭고 힘든 시간을 간신히 마쳤습니다. 대단하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힘들더라구요. 헉헉. 전 당분간은 주제 사라마구 안 읽으려고요. 잠깐 쉬는 타임 ㅋㅋㅋㅋㅋㅋㅋㅋ

필립 로스 꼴비기 싫으시죠? 저도 그래요. 제 길티 플레저. 나의 사랑, 나의 죄책감.... 로스가 제겐 그런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