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 코어 로맨스와 에로티즘의 사회학’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의 저자는 에바 일루즈이다. 2009년 독일 유력 일간지 『디자이트』가 꼽은 “내일의 사유를 바꿀 12인의 사상가”들 중 한 명이며, 전미사회학회 2000년 감정사회학 분야 최우수도서로 선정되었던 『낭만적 유토피아 소비하기』Consuming the Romantic Utopia와 전미사회학회 2005년 문화사회학 분야 최우수도서 『오프라 윈프리, 위대한 인생』Oprah Winfrey and the Glamour of Misery의 저자이기도 하다.
한글 번역서의 제목 ‘사랑은 왜 불안한가’만으로는 이 책이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 짐작하기 어려운데, 간단히 말하자면 이 책은 ‘그레이 시리즈’의 성공 요인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미국의 포켓북 출판사 ‘빈티지’Vintage가 2012년 4월 숨 가쁠 정도로 빠르게 ‘그레이 시리즈’를 시장에 내놓자, 이 3부작은 10년 남짓 먼저 출간된 ‘해리 포터’Harry Potter 시리즈와 비슷한 속도로 영어권 베스트셀러 리스트를 정복했다. ... 그 어떤 다른 포켓북 시리즈도 이처럼 짧은 기간에 기록적 매출을 달성한 적이 없다. 번역 저작권만 37개국에 팔려나갔다. ... 2012년 말에 이르자 시리즈 전체의 판매량은 총 570만 부에 달했다. “1부는 230만부, 2부와 3부는 각각 170만 부가 팔렸다.” 그동안 전 세계적으로 7,000만 부가 독자, 특히 여성 독자의 손에 쥐어졌다. (15쪽)
이 책이 베스트셀러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의 초대형 베스트셀러인줄은 모르고 있었는데, 출판 당시 이 책이 얼마나 큰 인기를 끌었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자주 나오는 단어 공부, BDSM
BDSM이란 Bondage and Discipline, Domination and Submission, Sadism and Masochism, 구속과 순종, 지배와 굴복, 사디즘과 마조히즘이 뒤섞인 성생활을 뜻하는 조어. (12쪽)
‘그레이 시리즈’는 이제 갓 학업을 마치고 출판계에 첫발을 내딛는 젊은 여성 아나스탸샤 스틸의 이야기다. 평범함 그 자체인 아나가 신비롭고 매력적이며 경제적으로도 윤택한 크리스천 그레이를 만나 가학적이고 피학적인 ‘사도마조히즘 섹스’라는 기묘한 형태로 관계를 맺고,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며, 그레이의 청혼으로 결혼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준다. 일반적인 여성소설, 로맨틱 소설 중 하나일 뿐인 이 책이 이렇게도 폭발적인 인기를 끈 이유를 작가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자세히 살펴본다. 작가는 자세히 살펴보고, 나는 이해하기 어려운 곳은 슬쩍슬쩍 넘어가며 대충 살펴본다.
나는 ‘그레이 시리즈’를 읽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이해한 줄거리는 책 속의 인용글과 저자의 언술을 토대로 이해한 것이다. 내 추정이 틀릴 수도 있겠다. 그레이와 아나는 ‘계약’에 의해 관계를 맺는데, 그레이는 무엇보다 향락과 기분 전환을 위한 섹스(레크레이션 섹스)를 선호한다.(55쪽) 그는 그녀에게 ‘사랑 없는 섹스’를 요구한다. 그에게는 ‘섹스’ 그 자체만이 중요할 뿐이고, 그레이는 아나에게도 낭만적 감정과 분리된 ‘사랑 없는 섹스’를 가르치고 싶어한다. 그럼에도 그레이는 아나에게 이렇게 요구한다.
“네가 자발적으로 널 내게 주길 바란다는 뜻이야. 모든 면에서.” (1부 1권 158쪽; 64쪽)
그레이는 아나가 자신에게 무조건적으로 복종하기를 요구하지만, 이와 동시에 아나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스스로 그에게 굴복하기를 원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영국 철학자 로저 스크루턴의 이런 주장이 눈길을 끈다.
“우리는 우리 욕구의 대상이 곧 우리 의지의 대상이 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러자면 대상은 곧 주체여야만 한다. 다시 말해 우리와 똑같은 자율적 의지와 욕구를 갖는 주체만이 욕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인간은 오로지 독립적 인격을 갖는 주체만을 욕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오로지 자율적 주체만이 욕구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로저 스크루턴, 『성적 욕구 - 철학 탐구』, 123쪽; 65쪽)
즉, 내가 욕망하는 그 대상은 자율적 주체여야만 한다. 그래야만 나에게 욕구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의 고백이 강압에 의한 것이라면, 그 고백은 나를 기쁘게 할 수 없다. 자유로운 사람의 고백,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의 진실한 고백만이 듣는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
아나 또한 마찬가지다. 1부 끝부분에서 아나는 그레이와 계약을 놓고 협상을 벌이는 과정에서 자신의 ‘욕구’를 의식하며, 이로써 자율성을 주장하기에 이른다.(66쪽) 즉, 그와의 관계에서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존재하고 싶은 그녀의 열망이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아나는 그로부터 지배당하기를 갈망한다.
그리고 점차 아나는 자신이 지배당하는 것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따라서 지배받으려는 갈망은 아나가 자율성을 열망하는 것과 나란히 가는 여성성의 또 다른 측면이다. (86쪽)
지배받으려는 아나의 갈망이 다른 모든 여성에게도 동일하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여성은 지배받기 보다는 자율성을 열망하는 쪽으로 발전해간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 모든 문화센터 수영수업과 꽃놀이와 단풍놀이와 그리고 일주일치 곰국이 이를 증명한다,고 나는 추측한다.
‘그레이 시리즈’가 독자의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요령은 결국 이야기에 페미니즘 코드를 담아내는 동시에 자신감과 힘을 자랑하는 남성성을 향한 전통적 갈망을 잘 버무려낸 것이라 할 수 있다. (82쪽)
이 소설이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3부작 모두 인터넷으로 유포되었다는 점, 효과가 검증된 연애소설의 전통을 지켰다는 사실, ‘BDSM’이 현대인의 애정생활이 품은 수많은 문제를 상징적으로 풀어주었다는 확인, 퍼포먼스 효과를 자랑하는 특징 덕분이다. (108쪽)
성에 집착하는 어두운 과거의 남자가 여자를 통해 진정한 사랑에 대해 배우게 되고, 마음대로 되지 않아 남자를 애태우던 자율성의 화신 여자는 바야흐로 자신 앞에 무릎 꿇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남자에게 지배당하는데에 합의한다. 진정한 사랑이 꽃피고, 책은 어마어마하게 팔리고, 책에서 언급된 ‘보조 기구들’ 역시 불티나게 팔린다. 두 사람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아라.
좋았던 구절.
이 소설이 선보이는 상상 가운데 하나는 우리의 평범함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내적 가치가 사랑으로 확인받을 수 있다는 전제 아래서! ... 이 소설이 자랑하는 최고의 상상은 선택받고 사랑의 과정을 통해 자아가 변모하며 인정받아 치유된다는 것이다. (75쪽)
서울은 눈이 많이 내린다. 비가 많이 왔어야하는데, 눈이 많이 내린다. 그냥 내리는 정도가 아니고, 시야가 가릴 정도로 많이 내린다.
이 예쁜 선물은 서니데이님이 보내주신 파우치다.
서니데이님, 정성어린 좋은 선물, 정말 감사합니다(*^^+)
화장품을 넣어도 좋고, 필기구를 넣어도 좋다. 너무너무 예뻐서 다른 사람한테 선물할까 하다가, 너무너무 예쁘니까 내가 써야지, 하고 생각한다. 원단이 얇지 않고 도톰해서, 잡았을때 느낌이 너무 좋다. 전에도 서니데이님께 파우치 두 개를 구입해 하나는 선물하고, 하나는 딸롱이 줬는데, 딸롱이가 “아, 진짜 너무 예쁘다!”하며 아주 좋아했던 기억이 흐뭇하다.
눈이 내린다.
눈이 많이 내린다.
푹푹 눈이 나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