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 코어 로맨스와 에로티즘의 사회학’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의 저자는 에바 일루즈이다. 2009년 독일 유력 일간지 『디자이트』가 꼽은 “내일의 사유를 바꿀 12인의 사상가”들 중 한 명이며, 전미사회학회 2000년 감정사회학 분야 최우수도서로 선정되었던 『낭만적 유토피아 소비하기』Consuming the Romantic Utopia와 전미사회학회 2005년 문화사회학 분야 최우수도서 『오프라 윈프리, 위대한 인생』Oprah Winfrey and the Glamour of Misery의 저자이기도 하다. 

한글 번역서의 제목 ‘사랑은 왜 불안한가’만으로는 이 책이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 짐작하기 어려운데, 간단히 말하자면 이 책은 ‘그레이 시리즈’의 성공 요인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미국의 포켓북 출판사 ‘빈티지’Vintage가 2012년 4월 숨 가쁠 정도로 빠르게 ‘그레이 시리즈’를 시장에 내놓자, 이 3부작은 10년 남짓 먼저 출간된 ‘해리 포터’Harry Potter 시리즈와 비슷한 속도로 영어권 베스트셀러 리스트를 정복했다. ... 그 어떤 다른 포켓북 시리즈도 이처럼 짧은 기간에 기록적 매출을 달성한 적이 없다. 번역 저작권만 37개국에 팔려나갔다. ... 2012년 말에 이르자 시리즈 전체의 판매량은 총 570만 부에 달했다. “1부는 230만부, 2부와 3부는 각각 170만 부가 팔렸다.” 그동안 전 세계적으로 7,000만 부가 독자, 특히 여성 독자의 손에 쥐어졌다. (15쪽)

이 책이 베스트셀러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의 초대형 베스트셀러인줄은 모르고 있었는데, 출판 당시 이 책이 얼마나 큰 인기를 끌었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자주 나오는 단어 공부, BDSM

BDSM이란 Bondage and Discipline, Domination and Submission, Sadism and Masochism, 구속과 순종, 지배와 굴복, 사디즘과 마조히즘이 뒤섞인 성생활을 뜻하는 조어. (12쪽)

‘그레이 시리즈’는 이제 갓 학업을 마치고 출판계에 첫발을 내딛는 젊은 여성 아나스탸샤 스틸의 이야기다. 평범함 그 자체인 아나가 신비롭고 매력적이며 경제적으로도 윤택한 크리스천 그레이를 만나 가학적이고 피학적인 ‘사도마조히즘 섹스’라는 기묘한 형태로 관계를 맺고,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며, 그레이의 청혼으로 결혼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준다. 일반적인 여성소설, 로맨틱 소설 중 하나일 뿐인 이 책이 이렇게도 폭발적인 인기를 끈 이유를 작가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자세히 살펴본다. 작가는 자세히 살펴보고, 나는 이해하기 어려운 곳은 슬쩍슬쩍 넘어가며 대충 살펴본다.

나는 ‘그레이 시리즈’를 읽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이해한 줄거리는 책 속의 인용글과 저자의 언술을 토대로 이해한 것이다. 내 추정이 틀릴 수도 있겠다. 그레이와 아나는 ‘계약’에 의해 관계를 맺는데, 그레이는 무엇보다 향락과 기분 전환을 위한 섹스(레크레이션 섹스)를 선호한다.(55쪽) 그는 그녀에게 ‘사랑 없는 섹스’를 요구한다. 그에게는 ‘섹스’ 그 자체만이 중요할 뿐이고, 그레이는 아나에게도 낭만적 감정과 분리된 ‘사랑 없는 섹스’를 가르치고 싶어한다. 그럼에도 그레이는 아나에게 이렇게 요구한다.

“네가 자발적으로 널 내게 주길 바란다는 뜻이야. 모든 면에서.” (1부 1권 158쪽; 64쪽)

그레이는 아나가 자신에게 무조건적으로 복종하기를 요구하지만, 이와 동시에 아나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스스로 그에게 굴복하기를 원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영국 철학자 로저 스크루턴의 이런 주장이 눈길을 끈다.

“우리는 우리 욕구의 대상이 곧 우리 의지의 대상이 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러자면 대상은 곧 주체여야만 한다. 다시 말해 우리와 똑같은 자율적 의지와 욕구를 갖는 주체만이 욕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인간은 오로지 독립적 인격을 갖는 주체만을 욕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오로지 자율적 주체만이 욕구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로저 스크루턴, 『성적 욕구 - 철학 탐구』, 123쪽; 65쪽)

즉, 내가 욕망하는 그 대상은 자율적 주체여야만 한다. 그래야만 나에게 욕구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의 고백이 강압에 의한 것이라면, 그 고백은 나를 기쁘게 할 수 없다. 자유로운 사람의 고백,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의 진실한 고백만이 듣는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

아나 또한 마찬가지다. 1부 끝부분에서 아나는 그레이와 계약을 놓고 협상을 벌이는 과정에서 자신의 ‘욕구’를 의식하며, 이로써 자율성을 주장하기에 이른다.(66쪽) 즉, 그와의 관계에서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존재하고 싶은 그녀의 열망이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아나는 그로부터 지배당하기를 갈망한다.

그리고 점차 아나는 자신이 지배당하는 것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따라서 지배받으려는 갈망은 아나가 자율성을 열망하는 것과 나란히 가는 여성성의 또 다른 측면이다. (86쪽)

지배받으려는 아나의 갈망이 다른 모든 여성에게도 동일하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여성은 지배받기 보다는 자율성을 열망하는 쪽으로 발전해간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 모든 문화센터 수영수업과 꽃놀이와 단풍놀이와 그리고 일주일치 곰국이 이를 증명한다,고 나는 추측한다.

‘그레이 시리즈’가 독자의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요령은 결국 이야기에 페미니즘 코드를 담아내는 동시에 자신감과 힘을 자랑하는 남성성을 향한 전통적 갈망을 잘 버무려낸 것이라 할 수 있다. (82쪽)

이 소설이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3부작 모두 인터넷으로 유포되었다는 점, 효과가 검증된 연애소설의 전통을 지켰다는 사실, ‘BDSM’이 현대인의 애정생활이 품은 수많은 문제를 상징적으로 풀어주었다는 확인, 퍼포먼스 효과를 자랑하는 특징 덕분이다. (108쪽)

성에 집착하는 어두운 과거의 남자가 여자를 통해 진정한 사랑에 대해 배우게 되고, 마음대로 되지 않아 남자를 애태우던 자율성의 화신 여자는 바야흐로 자신 앞에 무릎 꿇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남자에게 지배당하는데에 합의한다. 진정한 사랑이 꽃피고, 책은 어마어마하게 팔리고, 책에서 언급된 ‘보조 기구들’ 역시 불티나게 팔린다. 두 사람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아라.

좋았던 구절.

이 소설이 선보이는 상상 가운데 하나는 우리의 평범함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내적 가치가 사랑으로 확인받을 수 있다는 전제 아래서! ... 이 소설이 자랑하는 최고의 상상은 선택받고 사랑의 과정을 통해 자아가 변모하며 인정받아 치유된다는 것이다. (75쪽)

서울은 눈이 많이 내린다. 비가 많이 왔어야하는데, 눈이 많이 내린다. 그냥 내리는 정도가 아니고, 시야가 가릴 정도로 많이 내린다.

 

이 예쁜 선물은 서니데이님이 보내주신 파우치다.

서니데이님, 정성어린 좋은 선물, 정말 감사합니다(*^^+)

화장품을 넣어도 좋고, 필기구를 넣어도 좋다. 너무너무 예뻐서 다른 사람한테 선물할까 하다가, 너무너무 예쁘니까 내가 써야지, 하고 생각한다. 원단이 얇지 않고 도톰해서, 잡았을때 느낌이 너무 좋다. 전에도 서니데이님께 파우치 두 개를 구입해 하나는 선물하고, 하나는 딸롱이 줬는데, 딸롱이가 “아, 진짜 너무 예쁘다!”하며 아주 좋아했던 기억이 흐뭇하다.

 

눈이 내린다.

눈이 많이 내린다.

푹푹 눈이 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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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5-12-03 11: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눈이 정말 많이 내리지욤~?^^
눈에 푹푹, 취하는 것 같아요~ㅋㅋㅋ
서니데이님의 예쁜 선물과 함께~~오늘도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단발머리 2015-12-03 11:29   좋아요 1 | URL
네.... appletreeje님이 계신 곳에도 눈이 많이 내리나요?
아까는 천둥치는 소리까지 나고 하늘이 눈구름으로 뒤덮여 아주 어두웠는데, 지금은 조금 덜하네요.
눈이 폭폭 내립니다.
서니데이님 선물이 너무 좋아요^^ ㅎㅎ
applereeje님도 좋은 하루 보내시기 바래요~~~~~~~~~~~

서니데이 2015-12-03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도 눈이 많이 내려요. 지금은 바깥이 흐리게 보일 정도예요.
조금 전에 밖에 나갔다가 모자는 날아가고, 우산은 날아갔지만 부피가 큰 물체라서 겨우 잡았습니다.
이런 날은 가급적 실내에 있고 싶어요.^^

저는 그레이 시리즈 몇 권 읽었어요. 이 책이 우리나라에 출간되기 훨씬 전부터 이름이 나오던 책이어서 궁금했거든요.
이 책은 트와일라잇을 알고 읽으면 인물와 그 관계를 이해하기에 더 좋을거예요.

저희집 파우치가 단발머리님 댁에서 좋은 반응을 얻어 기쁘답니다.
아마 솜이 들어있어서 폭신하고 좋을 거예요.
마음에 든다고 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단발머리님, 오늘도 편안하고 좋은 하루 되세요.^^

단발머리 2015-12-03 12:21   좋아요 1 | URL
여기는 지금 눈이 그쳐서요. 밖에 나뭇가지위에는 눈이 담뿍히 담겨있어서 너무너무 예뻐요.
보기에는 예쁜데, 눈이 많이 내리면 경비아저씨들이 눈치우는 힘들일을 계속하셔야 하고,
미끄럽기도 해서, 저는 눈보다는 비가....

저는 그레이 시리즈를 읽지 않고 그 책이 많이 읽힌 이유에 대해서만 읽었네요.
엄마 포르노라고 해서 인기가 많던데 제가 엄마니까 읽어야 하는건지. ㅎㅎㅎ

다시 한 번 좋은 선물 감사드려요. 저도 좋아하지만, 딸애가 특히 좋아하더라구요.
서니데이님, 오늘 하루도 좋은 시간 보내세요.
외출하고 오셨으니, 따뜻한 차라도 한 잔.... ^^

다락방 2015-12-03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나 영화속에서의 아나는 평범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정말이지 너무나, 너무나 예쁘다고요 ㅠㅠ 초예쁨 ㅠㅠㅠ

저는 그레이를 1부만 읽고 안읽었는데, 그 뒤의 내용이 충분히 예측가능하기 때문이었거든요. 처음, 남자가 여자를 지배하려고 하지만, 여자는 그 말에 순종하면서 결국 `니가 원하는 게 이런거냐` 라고 말하며 울고 떠나거든요. 아마 그 때 남자도 아, 뭔가 잘못되고 있다..라는 걸 감지했을 거란 생각을 했어요. 그러니 결국은 남자도 고쳐나가서 여자한테 상처를 덜 주는 쪽으로 사랑을 완성시키려 하지 않을까, 자신의 기존 모습을 바꿔보려고 노력하고 맺어지게 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죠.

얼마전에 본 영화 [나를 미치게 하는 여자]에서도 여자가 나중에 그러거든요. `내가 노력할게` 라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분명 노력하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내가 내 고집을 지켜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게 혹시라도 상대를 아프게 하는 것이었다면, 그걸 고치도록 노력하면서 상대에게 가까이 있고자 하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결국은 그게 사랑의 모습이 아닐까.. 했어요.

단발머리 2015-12-03 12:31   좋아요 1 | URL
아하.... 그렇군요. 역시 시각적인 효과를 무시할 수는 없어요. 예쁘지 않은데, 그레이가 왜요?
아나가 예쁘다-그레이가 반한다-둘이 사귄다-사랑한다-결혼하다. 그죠?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다락방님 말씀이 맞아요. 사랑에는 노력이 필요하죠.
물론, 노력이라는게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예전에는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사람은 좀처럼 변하기 어렵다,로 가고 있거든요. 사람이 변하는 가능성이 보이는 유일한 출구가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어떡해요, 내가 그 사람이 좋은데, 내가 바꿔야죠. 고치려고 하고, 노력하고 해야죠. 그런데, 사랑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주는 거잖아요.
그래서, 마지막 적용이 중요한 것 같아요.

나는 그대로할테니, 너만 변해라, 하면 안 되겠구요.(ㅎㅎ 이렇게 하고 싶네요.)
나도 노력할테니, 너도 조금만 내 생각을 해 주라~ 하는 식으로요.

제 삶에는
`노력을 요함`이 많아요. ^^

서니데이 2015-12-04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제가 사는 곳도 눈이 참 많이 왔는데, 그래도 다행히 다 녹았어요.^^
단발머리님, 즐거운 금요일, 재미있는 주말 보내세요.

단발머리 2015-12-05 13:28   좋아요 1 | URL
네... 오늘은 날씨가 화창하네요. 조금 춥지만요.
서니데이님도 즐거운 주말되시기를 바래요~~~
 

 

 

 

 

 

나는 시가 어렵다. 학교 다닐 때는 어려웠고, 직장 다닐때는 안 읽었고, 지금은 어렵다. 좋은 시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어떤 시가 좋은 시인지 잘 모르겠다. 솔직히 이성복 시인의 『남해 금산』도 읽어봤지만, 내가 좋아하는 시를 발견하지는 못 했다. 시는 그냥 느끼는 거라고 하던데 읽어도 느껴지지 않으니 난감할 뿐이다. 나는 기형도의 <엄마 걱정>, 김이듬의 <겨울 휴관>, 박준의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이런 시를 좋아한다. 이런 유사성 없음이란... 앞으로도 여기에서 더 진도가 나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알라딘 책소개>

시인들이 사랑하는 첫번째 이름, 이성복. 생의 날것 앞에 선 인간을 향한 응시, 깊고 오랜 공부에서 비롯한 사유와 감각의 깊이로 거듭나는 힘 있는 언어로 40년 가까이 우리를 매혹해온 이성복 시의 모든 것, 그 내밀히 자리한 말과 언어를 한데 모은 시론집.

 

위 설명은 세 권 시론집에 대한 설명이고, 이 중 『극지의 시』는 2014년 후반기와 2015년 초반의 강의, 대담, 수상 소감 등을 시간 순서대로 엮은 '산문집'이다.

사실 저는 문학잡지나 시집에서보다, 시와는 상관없는데서 시를 느끼는 경우가 더 많아요. 가령 시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제가 드는 예는 80년대 민해경이라는 가수가 부른 노래 가사예요. “인생의 반은 그대에게 있어요. 나머지도 나의 것은 아니죠.” 이게 딱 시예요. 보세요. 허를 찌르고, 칼끝이 정확히 자기를 향해 있잖아요. 다시 말해, 이 노래의 화자가 자기를 불리한 구석으로 몰아넣는 거지요. 살면서 우리는 늘 자기한테 유리하게 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그렇게 하려고 해야 계산이 맞아요. (39쪽)

 

나는, 특정 분야에서 일정수준 이상, 즉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을 판별하는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있는데, 그건 바로 ‘자연스러움’이다.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노유진의 정치까페 테라스에 신영복 선생님이 출연하신 적이 있다. 신간 『담론』이 출간된 직후였는데, 선생님이 감옥에 계실 때, 재소자 축구회 주전선수였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웃으면서 이런 저런 말이 오갔는데, 선생님이 조목조목 자신의 축구 실력을 자랑하시는거다. 전체 재소자가 몇 명이고, 그 중에 몇 명은 실력 아닌 실력(조폭?)덕에 선수로 뽑힌거라 실제로 선수자리는 5-6자리 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제 실력을 예상할 수 있으시겠지요?“

같이 출연했던 패널들도 빵터지고, 방송을 듣고 있던 나도 크흐흐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생각하는 훌륭한 사람은 이런 류다. 똑똑하고, 말 잘하고, 글 잘 쓰고, 인물도 좋고, 명예도 있고 그리고 어깨에 힘 들어간 사람들과 정반대의 사람들. 더 유식한 척, 더 많이 배운 척 하느라 애쓰는 사람들과 정반대에 있는 사람들. 다시 말해, 하는 말이 자연스러운 사람. 쉬운 말로 이야기하는 사람. 사실 그대로를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

이성복 시인을 실제로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에 실제로 이 분이 어떤 분이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대답을 통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시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우리는, 나는 얼마나 근사한 대답을 하고 싶어 하는가. 문학잡지, 문학 계간지의 해설에서는 한국어이기는 하되,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이 세대 시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시인 중의 시인 이성복 시인이 말한다.

“인생의 반은 그대에게 있어요. 나머지도 나의 것은 아니죠. 이게 딱 시예요." (39쪽)

이렇게 설명하면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를 불리하게 하는 게 시예요. 이것만큼 시 자체를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말이 어디 또 있을까.

가령 사진기를 받치는 다리도 세 개잖아요. 그처럼 이 세 가지는 늘 함께 가는 것 같아요. 이 셋 중에서 어떤 사람은 진지함은 넘치는데 자비심이 없다든지, 자비심은 있는데 장난기가 없다든지, 장난기는 있는데 측은지심이 없다면, 예술로서나 인생으로서나 만족스러울 수 없겠지요. 결국 인생과 예술에서 문제 되는 것은 이 세 가지 축이 아닐까 해요. (90쪽)

 

‘진지함-자비심-장난기’가 인생과 예술에서 문제가 되는 세 개의 축이라는 이 말씀처럼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가 어디 있을까. 예술가들이 걸어가는 길을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말이 어디 또 있을까.

가령 이 벽에 공을 던진다고 해보세요. 수평으로 던지면 수평으로 돌아와요. 또 가파르게 던지면 가파르게 돌아오지요. 어떤 사물이나 사건에는 반드시 반환하는 지점이 있는데, 그 지검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고, 이미 내재해 있는 거예요. 그 지점을 발견하지 않고도 발견한 것처럼 속임수를 쓰면 안 돼요. 글을 쓰기 위해서는 대상에 구멍이 뚫릴 때까지 들여다봐야 한다잖아요. 그래야 자기에게 이득이 있고 남에게도 이득이 있는 글을 쓰게 되는 거지요. (94쪽)

 

자기에게 이득이 있고 남에게도 이득이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대상에 구멍이 뚫릴 때까지 들여다봐야 한다,는 이해하기도 실천하기도 조금 어렵다. 어떤 식으로 어떻게 들여다봐야 하는지 알려 주시면 좋을텐데. 그래, 어려운 것도 있어야지. 이 말을, 대상에 구멍이 뚫릴 때까지 들여다봐야한다는 이 말을, 구멍이 뚫릴 때까지 들여다보고 있으리라.

밤늦게 과자먹으면서 유투브 돌아다니다가 이 노래를 알게 됐을 때는 원곡자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처음 가사를 들었을 때도 각별한 느낌이 전해졌는데, 이성복 시인의 “이게 딱 시예요.“ 이야기를 듣고 나니 더 근사하게 느껴진다.

윤민수가 부릅니다. <어느 소녀의 사랑이야기>

유투브 영상은 여기... https://www.youtube.com/watch?v=NMNBYw2m0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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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 2015-11-24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멋진 비유네요!! 이 노래 제가 정말 좋아하는 곡인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가사가 시를 설명한 거라니요!!

단발머리 2015-11-24 14:10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저도 이 노래 정말 좋아해요.
가사가.... 캬햐~~~~~~~~~~
유투브 버전으로 퍼오고 싶었는데, 소스제공을 차단해서 다른데서 퍼왔더니, 화면이 정지하고 있네요.

가사를 음미하시는 걸로.....^^

내 인생의 반은 그대에게 있어요.
그 나머지도 나의 것은 아니죠.
그대를, 그대를, 그리워하며,
살아야 하니까...

icaru 2015-11-24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밤늦게 과자먹으면서 유투브 돌아다니다가, 라니 단발머리님 너무 친근하잖아욧!!! ㅋㅋ

단발머리 2015-11-24 16:19   좋아요 0 | URL
이 때, 가족은 모두 재워야 한다는 사실, icaru님도 실천하고 계신건가요? ㅎㅎ

icaru 2015-11-24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천하다뿐인가요, 엄청 즐깁니당 ^^

단발머리 2015-11-24 17:31   좋아요 0 | URL
ㅎㅎㅎ 깊은 밤, 모두가 잠든 이 때에...
나는 과자를 아삭거리며 유투브를 헤메인다.. 우하하...

2015-11-24 2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26 1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무개 2015-11-25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시가 너무 어렵다고 어느분 서재에 댓글을 남긴적이 있어요.

저는 김수영과 윤동주의 시중에서 제가 알아 먹을수 있는 한두편을 좋아합니다.
그냥 느끼라고 하는데, 뭘 느껴야 하는지 조차도 모르겠는 시들은 정말 난감해서.....

단발머리님의 글은 참 뭐랄까....단발머리님 같아요. *^^*

단발머리 2015-11-26 13:49   좋아요 1 | URL
저는 항상 시가 어렵고.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저는 사람들이 막.... 좋다고 하는 시를 좋아하는, 그런 어린이 취향입니다.
스스로 시인을 찾아내고, 시집을 찾아읽고 싶은데,
그런 안목이 언제쯤 생길지는....

제 글이, 참.... 저 같군요.
어떻게, 웃어요? 울어요? ㅎㅎㅎㅎ

에이바 2015-11-26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극지의 시 보고싶은데 너무 어려울 것 같아 미뤄뒀어요. 단발머리님 글을 보니 왠지 용기내도 될 것 같아요.^^

단발머리 2015-11-26 13:46   좋아요 1 | URL
저기 위에 시론집이 세 권이 세트잖아요. 그 중에 <극지의 시>가 강연을 엮은 거라 제일 쉬워 보여 저도 시작했구요. 인용하고 싶은 좋은 구절이 아주 많아요.
기독교, 불교, 도교에 대한 이야기가 골고루 나옵니다. ㅎㅎ

서니데이 2015-11-26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인천도 눈오고 날씨가 좋지는 않더라구요.
낮에 외출했는데, 많이 추웠습니다.
저는 예전에 남해금산을 보고 온 적이 있는데, 이 시집의 사진을 보다보니 그 생각이 나네요.
단발머리님, 오늘도 편안한 밤 되세요.^^

단발머리 2015-11-26 23:12   좋아요 1 | URL
내일은 더 춥다고 하더라고요. 진짜 겨울이 성큼 다가온 것 같아요.
서니데이님도 편안한 밤, 좋은 꿈 꾸는 밤 되시기를요^^

서니데이 2015-11-27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오늘 저녁에도 엄청 추워요.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하셔야 될 것 같아요.
11월도 오늘이 마지막 금요일이라 좀 아쉬운 마음이에요.
오늘도 편안하고 좋은 저녁 되세요.^^

단발머리 2015-11-28 12:30   좋아요 1 | URL
네, 서니데이님 안부 물어주셔 감사해요.
불금 지나 이제 토요일이네요.
날이 춥긴 하지만 오늘은 외출해보려구요.
서니데이님도 즐건 주말 되세요~

서니데이 2015-11-28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오늘도 날이 꽤 추웠지요. 바깥에 나가기가 싫은 날이예요.
잘 다녀오셨나요.
감기 조심하시고, 주말 잘 보내세요.^^

단발머리 2015-12-01 15:26   좋아요 1 | URL
다른 댓글에 밀려 이제야 봤네요.
오늘은 좀 따뜻한데, 재활용 하러 나가야 해서, 추워요..... ㅎㅎㅎ

프레이야freyja-고마워영화 2015-11-28 19: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 맞다싶은 비유네요. 글 쓰는 사람, 살아 가는 사람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일 거 같아요. ^^

단발머리 2015-12-01 15:25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시인들은 정말 다른 종의 사람들인가봐요.
그냥 말을 풀어 놓아도 다, 시 같아요. *^^+
 

 

 

 

 

 

책을 읽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좀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 알아야 할 것은 알지 못한 채 섣부른 지식으로 자신을 속이고 타인을 모욕하는 경우야말로 식자우환이라 할 수 있지요. (29쪽)

 

진심으로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으면 아무리 많이 읽고 아무리 오래 함께 읽어도 소용이 없더군요. 독서량이 많거나 스스로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독서 모임에서 큰 배움을 얻지 못하는 것도 그래서 그렇습니다. (67쪽)

 

한 개에 천 만원이 넘되 천 만원을 선납해도 금방 가질 수 없는 에르메스 버킨백을 사는 것보다는 김영하의 신간 산문집 『읽다』를 사는 편이 낫다. 재화의 소유가 제공하는 기쁨은 그 재화를 소유하기 직전이 최고점이고, 김영하의 산문이 주는 기쁨은 마지막 문장을 읽을 때까지 유지되기 때문이다.

     

 

 

 

 

 

가방, 반지, 귀걸이, 목걸이, 시계, 블라우스, 스커트, 코트. 이 밖에 다른 어떤 물건을 사는 것보다야 책을 사는 게 낫다. 더 긴 시간동안, 더 진한 감동을 간직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분야에 관한 것이든 지식의 소유에만 한정된다면 그건 진정한 앎과는 구별될 것이다. 많은 책을 사고 많은 책을 읽더라도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경우 보통 식자우환이라 하던데, 간단히 말하면 아는 게 병이 되는 형국이다. 나부터 그러지 않은지 자꾸 뒤돌아보게 된다. 아, 다행이다. 나는 아는 게 적어 이런 경우가 별로 없다. 신난다.

독서란 결국 다른 사람, 즉 책을 쓴 저자의 이야기를 듣는 지루한 과정을 활자-독자의 형태로 변형한 것인데, 만약 저자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비판적 독서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아예 듣지 않는다면, 저자의 논지를 파악하기도 전에, 저자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기 전에, 그/그녀의 주장과 이야기에 귀를 막아버린다면 어떨까. 다독하는 그 어떤 사람은 자신의 지식이나 화려한 독서이력을 자랑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책을 통해 새로운 변화를 이뤄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그녀는 언제나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가령 내가 책을 읽는 가장 큰 이유는 어디까지나 ‘즐거움’ 때문이다. ‘즐거움’을 위한 독서, ‘즐거움만을 위한 독서’을 지향한다고 할 때, 이것이 아주 자랑스럽고 뿌듯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사실 자체를 숨길 수는 없는 일이다. 나에게 독서는 ‘즐거움’을 위한 것이다. 다른 말로는 ‘재미’요, 또 다른 말로는 ‘놀이’이며, 그 밖에 또 다른 말로는 ‘도피’이다. 하지만, 김이경 작가의 이 말, 진지하고 차분하며, 잘난 척 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소탈하게 펼쳐 내놓는 그녀의 말을 무시할 수가 없다. 내가 이 책을 읽었으므로, 내가 그녀의 이 말을 들었으므로. 내 생각은 조금 변한다. 변하고 있다.

심심풀이 삼아서 재미로 있는 거라면 대충 읽어도 됩니다. 하지만 스스로를 깨우고 세상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려고 읽을 때는 정독을 해야 합니다. 즉 독서의 사회적 책임을 생각할 때 정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쓴 사람의 피땀 어린 공력, 만든 사람의 수고로움, 그걸 읽고 살아갈 내 삶의 소중함 그리고 내가 이 모든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갈 세상을 생각하면 정성껏 정밀히 읽는 게 당연하지요. (55쪽)

 

책은 내가 아는 세상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며 내가 당연시하는 일상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끊임없이 일깨웁니다. 그리하여 내가 누리는 안락에 감사하고 내가 겪는 아픔을 고집하지 않게 하며,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지 않는다는 것을 아무 원망 없이 받아들이게 하지요. (11쪽)

 

 

변함없이 나는 즐거움을 위해 읽는다. 그리고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도 읽는다. 내가 당연시하는 일상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깨닫기 위해 읽고, 내가 누리는 안락에 감사하고, 내가 겪는 아픔을 고집하지 않기 위해 읽는다. 

시립 도서관에서 20년 넘게 강사로 활동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제안한 <아이와 함께 책 읽는 법>에 많이 공감하게 된다. 평소 내 지론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 그런 것 같다.

아이들에게 독서를 권하고 싶다면 독서 교육을 시키는 대신 직접 책을 읽으십시오(126쪽), 아이들이 독서에 재미를 느끼려면 무엇보다 좋아하는 책을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읽도록 자유를 주어야 합니다(128쪽), 수십권씩 되는 전집으로 책장을 빽빽이 채우는 일은 부디 참아주세요, 중구난방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독후감 쓰라고 하지 마세요,가 그 세부적인 방침이다. 모두 다 맞는 말씀, 혼자서 고개 끄덕인다.  

마지막으로, <소리 내어 읽는 법> 꼭지에서도 마음에 드는 문장을 만났다.

책을 읽다가 졸릴 때 낭독을 하면 좋습니다. 독서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똑같은 문장에서 맴도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졸려서 그럴 수도 있고 딴생각을 하느라 그럴 수도 있는데, 아무튼 이럴 때는 책을 덮고 자거나 딴 생각에 몰입하는 게 제일이지만 사정상 그럴 수 없다면 소리를 내어 읽으세요. 나갔던 정신을 불러오는 데는 책 읽는 내 목소리만 한 게 없습니다. (121쪽)

 

나갔던 정신을 불러오는 데는 책 읽는 내 목소리만 한 게 없습니다,가 그것인데, 아, 어찌 알았나. 이 방법은 내가 원서를 읽다가 까무룩 잠이 들려 할 때마다 나간 정신을 불러오기 위해 써먹는 방법이다.

책 읽는 내 목소리는 나를 깨운다. 깨우고야 만다. 기어이. 꼭.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여도 좋았겠지만, 애정하는 아무개님으로부터 제공 받아 리뷰를 쓰는 것도 좋다.

아무개님, 땡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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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5-11-14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진짜 미인이시네요....라는 댓글을 쓰려는데,
아래 스타뉴스가 있어 다른 분 사진이라는 걸 알았어요;;;

비오는 주말이에요,
단발머리님, 감기 조심하시고 편안한 시간 되세요^^

단발머리 2015-11-24 18:53   좋아요 1 | URL
ㅎㅎㅎ 제가 이렇게 예쁘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꿈에서라도~~~~~~~

서니데이님, 바람도 많이 불고 하던데, 건강 조심하세요.
저는 저번주에 약 없이 감기를 이겨내서 스스로 장하다, 하고 있었는데,
오늘 컨디션이 별로예요.
화이팅해요, 우리......
 

 

1. 『사랑은 사치일까?』

 

 

 

 

 

진짜 이 책을 읽을 것일가, 말 것인가는 도서반납일이 3일 남았을 때 결정된다.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하면 2주간 ‘절대소유권’을 획득하게 된다. 뒤에 예약한 사람이 없다면 일주일을 더 볼 수 있는데, 사실 그 때까지 대출해 온 책을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면 그 책은 읽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서관과 도서관 직원분들, 그리고 책을 집까지 운반한 내 팔에 대한 예의상, 반납일이 3일 정도 남았을 때, 그러니까 마지막 반납기일 2-3일 전에는 책무더기 속 책들을 차례로 훑어본다. 제목만 보고 지나가는 경우도 있고(읽지도 않을거면서 무거운 이 책을 왜 빌렸을까, 『여성의 남성성』, 『여자들의 사상』), 자리에 앉아 목차를 살펴보는 경우가 있고(『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 겨우 29페이지 읽은거야?의 (『신곡: 지옥편』) 경우도 있다.    

나는 벨 훅스의 『행복한 페미니즘』과 『올 어바웃 러브』를 읽었기에 이 책은 그냥 간단히 지나가려, 아니, 목차만 대충 살펴보려 책을 들고 잠깐 앉았는데, 역시나, 그녀의 책은 패쓰가 안 되는 책이다.

그러나 소득이 높은 여성들만이 실질적으로 일을 통해 자율성을 획득한다. 요리와 가사, 육아 등을 도와줄 인력을 고용할 수 있는 그들은 가정으로 돌아와 ‘2교대’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저소득 여성은 자신들의 변화로 인해 가장 큰 이익을 보는 것이 상대 배우자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경제적 부담과 책임감을 덜 수 있다. 종종 밖에서 일하는 여자들은 죄책감을 느낀 나머지 ‘완벽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더욱 무리해서 일했다. .... 일터에서 여성을 위해 늘어난 여러 가지 기회의 수혜자는 많은 경우 독신의 여성 노동자였다. 남편이나 가족이 있는 여성들은 일을 시작한 후 삶이 더 어렵고 힘들어졌다. 따라서 일터가 자유를 향한 길인 것처럼 주장했던 페미니즘에 배신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들의 비판은 타당했다. (81쪽)

 

더 자유로운 삶, 구속이 없는 삶을 위해 밖으로! 밖으로!를 외쳤던 여성들은 변한 건, 시대를 앞선 그녀들의 의식일 뿐, 세상은, 남편은, 가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노력이 인정되지 않고,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가정의 모든 잡다한 일을 떠맡아야 할 뿐만 아니라, 육아와 가사에서 완벽히 자유로운 남성들과 똑같은 강도, 똑같은 분량, 똑같은 시간동안 일할 것을 강요받는다. 가정에서 남성들이 육아와 가사의 ‘도우미’가 아니라, ‘당사자’로서 일하지 않는 한, 여성의 이러한 ‘2교대’ 상황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여성들은 내게 반복해서 경고했다. 내 남자 파트너는 내가 자신의 섹시하고 반항적인 후배인 한, 그리고 자기가 우월한 멘토가 될 수 있는 한 내 지성에 신경 쓰지 않지만, 내가 그를 능가하고 추월하면 달라질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그가 정말로 지지를 거둬들였고, 나는 내가 뭔가를 잘못했다고 느끼는 등 비이성적인 생각에 사로잡혔다. (187쪽)

 

임옥희는 말한다. “여성은 힘이 없었기 때문에 혐오의 대상이었던 것이 아니라 여성이 갖고 있었던 힘 때문에 혐오와 매혹의 대상이었다.”(『여성혐오가 어쨌다고?』, 88쪽) 즉, 여성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에 대해 인지하고 못하고, 자신의 능력에 대해 불신하고 있을 때, 남성은 여성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그녀를 사랑하고 인정해준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보호를 벗어나려 할 때, 자신보다 더 나은 직장을 얻었을 때, 자신보다 연봉이 높아졌을 때, 자신보다 더 좋은 대학에 임용되었을 때, 바로 그 때, 남자는 자신의 지지를 철회한다. 그녀의 성공을 축하하지 않는다. 그녀와 결별한다.

어허, 흥분하지 마시라. 나는 모든 남자가 그렇다고 말하지 않았다. 벨 훅스의 남자 말이다. 벨 훅스가 기나긴 박사과정을 밟는 내내 학문적 동료였으며, 그녀의 성공을 응원했고, 경제적으로도 그녀를 돕기 위해 노력했던 그 남자, 그녀와 사실혼 관계에 있었던 동거남, 그 남자가 그랬다는 거다. 당연하게도, 그 남자만 그러는 건 아니다.

 

2. 『성서와 만나다』

 

 

 

 

 

과학자인 저에게 좀 더 자연스러운 유비를 들자면 성서는 모든 커다란 질문에 정해진 답을 마련해놓은 궁극의 교과서가 아니라, 실험실의 노트와 같습니다. 곧 성서는 중대한 역사적 경험들을 기록한 책입니다. 오늘날까지 하느님의 뜻과 본성은 성서를 통해 가장 명확히 드러났습니다. 저는 하느님이 무오하며 질문조차 허용하시지 않는 기이한 방식으로 당신을 드러내시지는 않는다고 믿습니다. 그분은 특정한 사람과 특정한 사건에 관한 기록을 통해 당신의 뜻과 본성을 명백하게 드러내셨습니다.(16쪽)

그리스도교의 핵심은 놀랍고 신비로우며 흥미진진한 확신 위에 놓여 있으며, 저는 이 확신이 진리임을 믿습니다. 이 확신이란 무한하며 보이지 않는 하느님이 가장 분명하며 가장 이해될 수 있는 방식으로, 곧 말씀이 인간 예수 그리스도라는 육신을 취함으로써 당신의 본성을 알리셨다는 것입니다.(181쪽)

 

성서가 실험실의 노트와 같다는 저자의 표현이 눈길을 끈다. 요즘엔 성경을 너무 안 읽어서 정말 심하다,는 생각에 성경계의 아이돌 『메시지 시가서』를 구입했는데, 이것도 책탑 속에서 정말 잘 지내고 있다. 케임브리지 대학 물리학 교수를 지낸 존 폴킹혼이 저자인데, 과학자의 신앙 고백,이라는 측면에서 아주 흥미로우며 쉽게 잘 읽힌다.

 

3.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5분 사이에 한 명의 사람을 열 명의 다른 사람과 착각하는 사람, 어떤 일이든지 몇 초만 지나면 잊어버리는 사람, 거짓 혹은 가짜 이야기를 능숙하게 지어내면서 그 심연에 다리를 놓아 건너가려는 사람. 코르사코프 증후군 환자인 톰슨씨의 이야기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잃어버린 톰슨씨는 밑도 끝도 없이 이야기를 지껄이며 몽상을 말한다. 자기의 내적 세계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꾸며낸 이야기를 쉬지 않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 자신을 잃어버렸다.

그의 경우 가장 큰 ‘실존적인’ 비극은 기억에 있지 않았다. 그의 기억이 완전히 황폐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문제는 기억에만 있지 않았다. 그에게는 느낀다는 기본적인 능력이 사라진 것이다. ‘잃어버린 영혼’이란 이것을 말한다. (220쪽)

 

그가 유일하게 평정을 되찾는 장소는 사회적인 요구나 인간적인 요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 병원에 딸린 정원이다(223쪽). 사람이 없는 적막한 곳에서 그는 비로소 평온함과 충족감을 맛볼 수 있다.

뇌의 아주 작은 부분이 손상되어도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정상’의 범위를 훌쩍 벗어난다. 정상을 벗어난 사람들, 자신들이 어디에 있는지 잊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이야기들. 소설처럼 감동을 주는 이야기들이 관찰자의 따뜻한 시선을 통해 가감없이 전해진다.

이런 식으로 생각을 풀어가다 보면, 마지막 문제에 부딪힌다. 섬과 같은 존재인 인간, 기존 문화에 동화될 수 없는 인간, 본토의 일부가 될 수 없는 인간이 이 세상에서 발 붙일 곳이 있을까? 과연 ‘본토’가 그들을 특수한 존재로 받아들여줄까?

 

결국엔 그렇다.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 모두 다 말짱한 정신일 수 없을 테고, 그 때는,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나와 같은 경험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내 곁에 있어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혼자 생각하고, 혼자 느끼게 될 것이다. 나는 혼자가 될 것이다.

그 때에도 내 손을 잡아준다고 약속하신 그 어떤 분을 제외하고, 어느 누구도 나와 함께 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 모두 결국엔 그렇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 하나의 섬처럼, 떠돌고 또 그렇게 떠돌아 다닐 것이다. 하나의 섬, 또 다른 하나의 섬처럼 말이다.

 

뜨거운 8월의 여름, 이 책을 읽었을때만 해도 작가 올래드 색스가 암으로 투병중이라는 글을 읽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부고기사를 보게 되었다. 또 하나의 섬이 되어 이 아름다운 세계를 떠났으되, 사랑하고, 사랑받고 있음을 알고 떠났으니 올리버 색스, 덜 외롭기를.

 

4. 『희지의 세계』

 

 

 

 

 

 

희지의 세계

 

저녁에는 양들을 이끌고 돌아가야 한다

희지는 목양견 미주를 부르고

목양견 미주는 양들을 이끌고 목장으로 돌아간다

이러한 생활도 오래되었다

무사히 양들이 돌아온 것을 보면

희지는 만족스럽다

기도를 올리고

짧게 사랑을 나눈 뒤

희지는 저녁을 먹는다

초원의 고요가 초원의 어둠을 두드릴 때마다

양들은 아무 일 없어도 메메메 운다

풍경이 흔들리는 밤이 올 때

목양견 미주는 희지의 하얀 배 위에 머리를 누인다

식탁 위에는 먹다 남은

익힌 콩과 말린 고기가 조용히 잠들어 있다

이것이 희지의 세계다

희지는 혼자 산다                     (18-19쪽)

나는 언제나 시읽기가 어려워 시집은 사놓고도 못 읽는 경우가 많은데, 이 시집은 사실 외모에 먼저 반했다. 1988년생의 작가, 민트색의 표지 때문에 산뜻한 느낌으로 읽기 시작한다. 시를 더 많이 읽어야겠다, 시집을 더 많이 사야겠다, 그런 생각을 해 보면서...

오늘은 민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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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5-11-08 0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도 깔맞춤이 가능하군요?
이뻐요^^
민트는 하얀색이랑 분명 차이가 나는데도 저는 항상 민트색을 보면 목구멍이 시원해지는 박하사탕맛이 생각나네요
민트는 박하사탕맛!!^^

몇 권은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콕 찍어놓았습니다
남은 주말도 사랑받고,사랑 많이 하는 하루 되시길♡

단발머리 2015-11-09 13:47   좋아요 0 | URL
저도 민트가 너무 좋아요.
민트티, 민트레깅스, 민트가방의 딸애한테는 못 미치지만요.

저는 님 덕분에 많이 사랑받고 즐거운 주말되었어요.
책 읽는 나무님도 즐거운 주말되셨나요?

icaru 2015-11-11 17: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서정가제 시행전에 올리버 색스의 책을 재정 상황이 허락하는 한도 내(그러니까 다섯권은 넘지 않는다는 요지이죠 ㅋ)에서 갈퀴로 긁었어요. 그중에 아내를 모자로~ 도 있는데,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단발머리 님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오프 지인들이 몇 있다고 하셨지만, 저는 좀 전무한 편인데,,, 없는 와중에도 한분 발견했잖아요. 둘째친구엄마가 모자를 아내로, 저 책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
꼼꼼하게 읽고 싶은 페이퍼인데, 제게 허락된 시간이 2분이라,, 대략 발자취라도 남기려고 발악하는 저의 꼴 좀 봐요 ㅠㅠ))

단발머리 2015-11-12 10:59   좋아요 0 | URL
아... 그러시군요. 저도 언니가 있긴한데, 요즘엔 아이들 스케쥴이 바뀌어 자주 못 만나고 있어요.
요즘에 언니는 현대문학 단편선을 읽고 계시더만요. 오헨리, 기드 모파상 이런 분들을 만나신다는.
책 이야기 나눌 때 너무 좋지요. 잘난 척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냥 순수하게 책 이야기로...
그래서 알라딘이 좋아요. 잘난 척은 무슨. 간신히 따라갑니다.

icaru님 많이 바쁘시군요. 그 와중에 댓글 무한감사드려요.

from 사랑과 댓글을 먹고 사는 단발머리
 

 

 

 

 

 

 

 

* 사진 및 사전설명

1. 황홀한 비쥬얼의 계란말이

2. 멋대가리 없이 소주잔을 들고 있는 손이 바로 내 손

3. 오로지 오겹살 흑돼지 비계로만 이루어진 여왕고기의 위풍당당한 모습, 그 날 여왕고기는 D님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는 후문

4. 책 이야기 한 줄 없이 『책 먹는 법』에 대한 페이퍼가 된 이유는 알라딘 친구에게 이 책을 선물받았기 때문

 

제일 걱정되었던 건, 내 글을 읽는 사람들과 만난다는 거였다.

여자들은 결혼하고 나서는 친구 만나는게 쉽지 않다고들 하는데 나는 만나는 친구가 많다.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고, 대학 친구는 과친구, 기독동아리 친구, 총학 친구 따로따로 만난다. 만날 때마다 새로운 앱을 깔아주는 신세대 친구도 있고 심지어 동서도 친구라서 시댁에 가도 친구가 있다. 자주 만나는 친구도 있지만, 멀리 살아서 일년에 겨우 한두번 만나는 친구도 있다. 학교 다닐때는 하루 종일 같이 다녀서 서로의 생활과 생각을 잘 알 수 있지만 요즘처럼 자주 만나지 못하는 경우라면 근황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있지만 더 자세한 이야기는 나눌 시간이 없다.

그래서, 문제는 내 글을 읽는 사람들과 만난다는 거였다.

강신주는 함부로 서재를 보여주지 말라고, 그건 영혼을 보여주는 일이라 했다던데, 나는 알라딘서재에 리뷰를 올리며 영혼 뿐 아니라, 영혼의 느낌, 영혼의 생각, 영혼의 컨디션 내지 영혼의 방황까지를 모두 보여주고 있지 않던가. 내가 요즘에 읽는 책, 내가 밑줄 긋는 문장, 내 생각을 알고 있는, 내가 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과 만난다는 게 난, 두려웠다.

만남이 걱정스러웠던 두 번째 이유는 직접 만나면 나 자신을 포장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었다. 내 글 속에서, 나는 더 근사하다.

글 속의 나는 실제의 나보다 더 지적이다. 실제의 나보다 더 정직한 것처럼 보이며, 실제의 나보다 더 착하다. 실제의 나보다 ‘사회 정의’에 더 관심이 많으며, 실제의 나보다 더 ‘진보적’이다. 실제의 나보다 더 매력적이고, 더 활달하며, 더 긍정적이다.

하지만, 실제로 만나게 되면, 만나서 얼굴을 마주 대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먹고 마시다 보면 실제의 내가 어떤 사람인지 여실히 드러난다. 눈빛에서, 표정에서, 몸짓에서 숨길 수 없다. 그래서, 여러 번 ‘그냥 약속장소에 나가지 말까’를 고민했다. 그게 8월의 일이다. 그리고, 지난 주말, 두 번째로 알라딘 모임에 나갔다.

M님은 예쁘다. 여자인 내가 봐도 참 예쁘장하다. 예쁜데에도 여러 가지 스펙트럼이 존재하는데 예를 들면 예뻐도 ‘새침한 예쁨’이 있고, 예쁜데 ‘백치미와 어울린 예쁨’도 있다. 내가 보기에 M님의 ‘예쁨’은 ‘사랑스러운 예쁨’이다. 큰 눈을 깜빡이면서 고개를 끄덕이면 너무나 사랑스러운 미소 때문에 M님을 보는 사람도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Y님은 멋지다. 여자에게 멋지다는 말을 쓴다는 건 참 조심스러운 일이지만, Y님은 멋지다. 약간 흥분해서 팔을 휘저으며 말을 할 때도,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길 때도 멋스러움이 가득하다. 나란히 길을 걷다보면 발걸음도 멋지다는 걸 단박에 알 수 있다. 존재 자체가 까탈스러운 고양이 5마리와 이렇게 멋진 Y님이 희희낙락 동거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농약 같은 가시나’의 매력을 내뿜는 D님은 말 그대로 매력덩어리다. 지난 8월, “아이 더워, 더워”를 연신 외치며 약속장소에 나타난 D님을 보고, 나도 모르게 순간 멍때리고 있었더니, Y님 왈, “이 사람, 글 쓴 거 하고 똑같죠. 똑같아요, 진짜.” 하는 거다. 나는 “네, 맞아요. 그렇네요.”하고는 다시 멍~~~.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많이 읽어서 익숙한 D님의 페이퍼를 누군가 읽어주는듯한 느낌이다. 그런데 읽어주는 사람이 D님. 참 신기했다. D님은 쌍커플이 예쁘고, 손이.... 손이 정말 말도 못하게 고은 손이라, 한 번 잡으니 다시는 놓고 싶지 않았더랜다. 함께 밥을 먹든, 술을 마시든, 안주를 먹든, 옆의 사람에게 전염되는 “으흠~~ 맛있다! 맛있어!” 추임새에 밥맛을 꿀맛으로 바꾸는 놀라운 초능력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D님의 제일 큰 매력은 목소리가 아닐까 싶다. 약간 낮은 듯 하지만, 귀에 쏙쏙 들어오는 목소리, 무슨 이야기든 귀기울이게 만드는 매력적인 목소리. 사람 목소리가 다 거기서 거기라고? D님 목소리 직접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말을 마시라.

그렇게 만나고, 먹고, 이야기하고, 마시고. 자리를 옮겨 마시고, 먹고, 이야기 하면서 정말 좋은 시간을 보냈다. 일상의 작은 이야기들, 진보를 표방하는 특이한 선생님 이야기, 조카 이야기, 회사 이야기, 직장동료 이야기, 성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 그러한 소소한 이야기들, 이야기 나누는 방식, 이야기할 때 서로의 반응, 느낌, 공기가 모두 좋았다.

제일 친한 친구 1번, 그 다음 친한 친구 2번, 3번, 4번, 5번, 이렇게 친구에게 번호를 매기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그 친구를 1번으로 번호 매겼던건 그녀가 나의 1번 친구이듯 나도 그녀의 1번 친구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했다고 해서, 특정한 시기를 함께했다고 해서, 평생을 함께 하는 건 아닌가 보다. 가끔은 아주 작은 일로 오해가 생겨 연락이 끊기기도 하고, 아무 일이 없었는데도 만나지 않게 되는 경우도 있다. 자연스레 멀어지기도 하고, 또 그렇게 잊혀지기도 한다. 친구와의 관계도 식물을 키우듯 물을 주고 햇볕을 쪼여주고 그렇게 ‘가꿔가는 것’이라던 말이 맞는 것 같다.

난 그렇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강력곱슬 여중생, 여드름박사 여고생, 천방지축 여대생의 시절을 지나, 나는 아이 둘의 아줌마가 되었다. 전업주부이고, 책을 산다. 읽고 생각하고 가끔 끄적거린다. 여중생, 여고생, 여대생이었던 내가, 변하고 또 어느 정도는 변하지 않은 채 이렇게 4땡의 아줌마가 되었다. 우정을 나누었던 친구들과의 지난 시간이 소중한 것처럼 새롭게 알게된 이 친구들과의 새로운 만남 역시 무척이나 소중하다. 그들과 만들어갈 시간, 우정, 사랑이 기대된다.

알라딘 친구, 나는 이 친구들을 알라딘 친구라 부르기로 했다.

알라딘 친구, 알라딘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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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4 2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25 07: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붉은돼지 2015-10-25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주잔 들고 있는 손과 여왕고기 사진이 없어요ㅜㅜ

단발머리 2015-10-25 08:51   좋아요 1 | URL
붉은돼지님, 안녕하세요~ 어제 저녁부터 지금까지 7,8번 시도해보았는데 글쓰기의 <이미지>가 클릭이 안 되네요. 하나의 사진만 올라가는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여왕고기, 참 우아한데...

단발머리 2015-10-25 09:00   좋아요 1 | URL
다른 컴으로 하니 되네요..... 붉은돼지님 덕분에 사진 업로드 완료~~ 했어요.

2015-10-25 1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5-10-25 13:10   좋아요 0 | URL
아핫!! 누군지 아시겠어요? 어떤분은 세 분을 모두 맞추시더라구요. 럴수럴수 이럴수가!!! ㅎㅎㅎㅎ

2015-10-25 1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25 2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26 2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26 2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26 2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26 2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26 2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27 08: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극곰 2015-10-27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그러면서 한편으로 왠지 님의 적은 이유 때문에 겁나기도 하고. 으악,.... 그래도 부럽네용~~!

단발머리 2015-10-28 09:18   좋아요 0 | URL
겁나면서도 즐거운, 그런 시간이었어요.

저는, 뭐랄까요.
온라인으로 알게 된 사람들을 만난 처음 경험이라 너무 너무 신기하고, 알라딘서재 이야기하면서 너무 재미있고, 그러면서도 편안하고, 그런 느낌이었어요. ㅎㅎㅎ

icaru 2015-10-28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대박!!! ㅋㅋ
부럽습니다,, 오프에서 얼굴 좀 보자는 제안을 들은 적은 없지만, 만약이라는 가정을 해 본적은 있는데,,,
역시나 저는 그런 엄청나게 엔돌핀 도는 일은 감당이 안 될 것 같아요... ㅋㅋ 그래도 단발머리 님은 실제로 한번 뵈었음 싶은 마음 간절이네요~ 누구를 지칭하는지 짐작이 될 것도 같은 d님도 뵙고 싶고,, 저 모임에 나오신 모든 분들 궁금해요^^ 이니셜만 갖고도 모르겠는데,,, 손만 보고 맞춘 분은 왓우!!! ㅎㅎ

2015-10-29 1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5-10-31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 명 다 맞힌 분, 누굽니까! ㅎㅎㅎ

보슬비 2015-11-01 23:58   좋아요 0 | URL
오호.. D님이시당!! ㅎㅎㅎㅎ

단발머리 2015-11-02 08:39   좋아요 0 | URL
일단 a로 시작하고 e로 끝나는 닉네임을 가지신 분이 세분을 단박에 맞추셨구요.
그 외에도 여러분들이 잘도 맞추셨어요.
요기 위에 ㅂ으로 시작하시는 분도 그러셨지만, 다들 D님은 누군지 알겠다고 하시더라는....
왜 그럴까요, 다락방님?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보슬비 2015-11-02 08:41   좋아요 0 | URL
a님도 누군지 알겠어요. ㅋㅋ

단발머리 2015-11-02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보슬비님.... 이런 놀라운 추리력.... 명탐정 보슬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