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 시리즈' 성공 비법 해부
콜린 후버Colleen Hoover의 책으로는 두 번째다. 첫 번째 책은 『Reminders of Him』. 교보문고 외서 판매대에 깔려 있는 책들을 훑어보고 있을 때, 친구가 책을 집어 들며 말했다. 요즘에 콜린 후버가 대세라며? 어, 그래? 콜린 후버의 책은 여러 권이 있었는데, 이 책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는 하나도 없고. 친구가 집어줘서 그래서 집으로 데리고 왔다. 친구손은 황금손. 나는 친구 손만 믿는다.
『Reminders of Him』은 지난달에 읽었는데, 읽고 나서 아무런 감상도 남기지 않았다는 걸, 오늘에야 알았다. 아, 역시 책은 ‘읽으면서’, ‘읽는 도중에’, ‘읽고 있을 때’ 리뷰나 페이퍼를 남겨야 한다. 책을 마치면 생각도 마쳐지고, 책이 끝나면 생각도 끝나버린다.
콜린 후버의 책을 이제 막 두 권 마치고 나서의 느낌이라면, 역시 페이지 터너답다,가 될 것 같다. 문장이 쉽고, 짧다. 어려운 단어도 자주는 안 보이고, 구문도 비교적 평이하다. 다만, 소재는 자극적인 걸 선호하는 것 같은데 (‘자극적이다’ 할 때, 당신이 예상하는 그것, 그것 맞습니다) 그래서 더 몰입할 수 있게 하는가, 그런 생각도 든다. 일단 시작하면 이어서 읽을 수밖에 없고, 외서인데도 짧은 시간 안에 몰입해서 읽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남자아이 셋을 키우며(남편까지 포함해 four boys라고 칭함), 텍사스에 사는 가정주부가 들려주는 사랑 이야기에 미국 서점가가 요동치고 있다고 한다.
줄거리 소개. 여객기 조종사인 오빠의 아파트로 이사 온 간호학과 대학생 테이트는 오빠의 절친 마일스에게 매력을 느낀다. 우연한 상황에서 두 사람은 미친 듯한 키스를 나누게 되고 (책 소개 그대로예요. 미친 듯한 키스), 테이트에게 매력을 느낀 마일스는 ‘애정 없는, 데이트 없는, 사랑 없는 관계’를 제안한다. 말 그대로 ‘섹스’만을 위한 만남.
"I'm attracted to you, Tate," he says, his voice low. "I want you, but I want you without any of that other stuff."
I have no thoughts left.
Brain = Liquid.
Heart = Butter.
I can still sigh, though, so I do.
I wait until I can think again. Then I think a lot.
He just admitted that he wants to have sex with me; he just doesn't want it to lead to anything. I don't know why this flatters me. It should make me want to punch him, but the fact that he chose to kiss me after not having kissed anyone for six straight years makes this new confession seem like I just won a Pulitzer. (83)
과거를 묻지 않고, 미래를 기대하지 않는 관계. 테이트는 마일스의 제안을 수용하고, 두 사람이 합의한 ‘목적’에만 충실해지려 하지만, 마일스에 대한 마음이 점차 커져가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마일스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은 테이트. 그럴 때마다 숨어버리는 마일스.
감정과 섹스의 분리는 의심의 여지 없이 사회 일반을 사로잡은 경향이다. 물론 이런 문화의 흐름이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 강하게 영향을 끼칠지라도 말이다. 여성이 예나 지금이나 감정과 섹스를 결합하고 있기는 하지만, 감정을 탈색해버린 섹스가 지배적이 된 상황에서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당사자 모두가 실제 감정과 의도를 해석하는 데 무척 애를 먹기 때문이다. (『사랑은 왜 아픈가』, 99쪽)
에바 일루즈는 감정과 섹스의 분리를 사회 일반의 경향으로 해석하고 있다. 결혼에서 섹스의 분리뿐 아니라, 결혼 시장의 형성과 섹시함의 상품성에 대해서는 에바의 책을 참고하시길.
마일스가 테이트와의 진지한 관계를 두려워하는 건, 그놈의 못난 과거 때문이다. 에바 일루즈의 이름도 몰랐던 2015년, <사랑은 왜 불안한가>를 읽고 나는 이렇게 썼다.
그레이와 아나는 ‘계약’에 의해 관계를 맺는데, 그레이는 무엇보다 향락과 기분 전환을 위한 섹스(레크레이션 섹스)를 선호한다.(55쪽) 그는 그녀에게 ‘사랑 없는 섹스’를 요구한다. 그에게는 ‘섹스’ 그 자체만이 중요할 뿐이고, 그레이는 아나에게도 낭만적 감정과 분리된 ‘사랑 없는’ 섹스를 가르치고 싶어한다. …. 성에 집착하는 어두운 과거의 남자가 여자를 통해 진정한 사랑에 대해 배우게 되고, 마음대로 되지 않아 남자를 애태우던 자율성의 화신 여자는 바야흐로 자신 앞에 무릎 꿇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남자에게 지배당하는 데에 합의한다.
『Ugly Love』는 <그레이 시리즈>와 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남자 주인공, 사랑 없는 섹스에의 초대. 그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 여자 주인공을 통해 진정한 사랑을 배워가던 야수는 드디어 벨의 사랑을 얻게 되고. 야수는 왕자님으로 변신. 청혼과 결혼. 그 후로 두 사람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행복하게 살았더란다.
미국과 유럽을 사로잡은 마약 작가라 불린다고 하며, 여성에 의한 여성 입장의 에로틱 로맨스라는 평을 듣고 있다. 비교적 쉬워서 빨리 읽을 수 있으니, 속도와 난이도 면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을만하다. 로맨스를 읽기 시작한 게 올해 초여서 몇 권 되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지나친 사랑과 활발한 섹스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권할 만하다. 다만, 요즘 날이 무척 더운데, 읽고 나면 더워진다는 점이, 읽기 전 유의 사항이라 하겠다. 콜린 후버 다음 책은 『All your Perfects』. 날이 참 덥다. 자꾸만 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