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가 어렵다. 학교 다닐 때는 어려웠고, 직장 다닐때는 안 읽었고, 지금은 어렵다. 좋은 시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어떤 시가 좋은 시인지 잘 모르겠다. 솔직히 이성복 시인의 『남해 금산』도 읽어봤지만, 내가 좋아하는 시를 발견하지는 못 했다. 시는 그냥 느끼는 거라고 하던데 읽어도 느껴지지 않으니 난감할 뿐이다. 나는 기형도의 <엄마 걱정>, 김이듬의 <겨울 휴관>, 박준의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이런 시를 좋아한다. 이런 유사성 없음이란... 앞으로도 여기에서 더 진도가 나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알라딘 책소개>
시인들이 사랑하는 첫번째 이름, 이성복. 생의 날것 앞에 선 인간을 향한 응시, 깊고 오랜 공부에서 비롯한 사유와 감각의 깊이로 거듭나는 힘 있는 언어로 40년 가까이 우리를 매혹해온 이성복 시의 모든 것, 그 내밀히 자리한 말과 언어를 한데 모은 시론집.
위 설명은 세 권 시론집에 대한 설명이고, 이 중 『극지의 시』는 2014년 후반기와 2015년 초반의 강의, 대담, 수상 소감 등을 시간 순서대로 엮은 '산문집'이다.
사실 저는 문학잡지나 시집에서보다, 시와는 상관없는데서 시를 느끼는 경우가 더 많아요. 가령 시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제가 드는 예는 80년대 민해경이라는 가수가 부른 노래 가사예요. “인생의 반은 그대에게 있어요. 나머지도 나의 것은 아니죠.” 이게 딱 시예요. 보세요. 허를 찌르고, 칼끝이 정확히 자기를 향해 있잖아요. 다시 말해, 이 노래의 화자가 자기를 불리한 구석으로 몰아넣는 거지요. 살면서 우리는 늘 자기한테 유리하게 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그렇게 하려고 해야 계산이 맞아요. (39쪽)
나는, 특정 분야에서 일정수준 이상, 즉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을 판별하는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있는데, 그건 바로 ‘자연스러움’이다.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노유진의 정치까페 테라스에 신영복 선생님이 출연하신 적이 있다. 신간 『담론』이 출간된 직후였는데, 선생님이 감옥에 계실 때, 재소자 축구회 주전선수였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웃으면서 이런 저런 말이 오갔는데, 선생님이 조목조목 자신의 축구 실력을 자랑하시는거다. 전체 재소자가 몇 명이고, 그 중에 몇 명은 실력 아닌 실력(조폭?)덕에 선수로 뽑힌거라 실제로 선수자리는 5-6자리 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제 실력을 예상할 수 있으시겠지요?“
같이 출연했던 패널들도 빵터지고, 방송을 듣고 있던 나도 크흐흐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생각하는 훌륭한 사람은 이런 류다. 똑똑하고, 말 잘하고, 글 잘 쓰고, 인물도 좋고, 명예도 있고 그리고 어깨에 힘 들어간 사람들과 정반대의 사람들. 더 유식한 척, 더 많이 배운 척 하느라 애쓰는 사람들과 정반대에 있는 사람들. 다시 말해, 하는 말이 자연스러운 사람. 쉬운 말로 이야기하는 사람. 사실 그대로를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
이성복 시인을 실제로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에 실제로 이 분이 어떤 분이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대답을 통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시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우리는, 나는 얼마나 근사한 대답을 하고 싶어 하는가. 문학잡지, 문학 계간지의 해설에서는 한국어이기는 하되,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이 세대 시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시인 중의 시인 이성복 시인이 말한다.
“인생의 반은 그대에게 있어요. 나머지도 나의 것은 아니죠. 이게 딱 시예요." (39쪽)
이렇게 설명하면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를 불리하게 하는 게 시예요. 이것만큼 시 자체를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말이 어디 또 있을까.
가령 사진기를 받치는 다리도 세 개잖아요. 그처럼 이 세 가지는 늘 함께 가는 것 같아요. 이 셋 중에서 어떤 사람은 진지함은 넘치는데 자비심이 없다든지, 자비심은 있는데 장난기가 없다든지, 장난기는 있는데 측은지심이 없다면, 예술로서나 인생으로서나 만족스러울 수 없겠지요. 결국 인생과 예술에서 문제 되는 것은 이 세 가지 축이 아닐까 해요. (90쪽)
‘진지함-자비심-장난기’가 인생과 예술에서 문제가 되는 세 개의 축이라는 이 말씀처럼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가 어디 있을까. 예술가들이 걸어가는 길을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말이 어디 또 있을까.
가령 이 벽에 공을 던진다고 해보세요. 수평으로 던지면 수평으로 돌아와요. 또 가파르게 던지면 가파르게 돌아오지요. 어떤 사물이나 사건에는 반드시 반환하는 지점이 있는데, 그 지검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고, 이미 내재해 있는 거예요. 그 지점을 발견하지 않고도 발견한 것처럼 속임수를 쓰면 안 돼요. 글을 쓰기 위해서는 대상에 구멍이 뚫릴 때까지 들여다봐야 한다잖아요. 그래야 자기에게 이득이 있고 남에게도 이득이 있는 글을 쓰게 되는 거지요. (94쪽)
자기에게 이득이 있고 남에게도 이득이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대상에 구멍이 뚫릴 때까지 들여다봐야 한다,는 이해하기도 실천하기도 조금 어렵다. 어떤 식으로 어떻게 들여다봐야 하는지 알려 주시면 좋을텐데. 그래, 어려운 것도 있어야지. 이 말을, 대상에 구멍이 뚫릴 때까지 들여다봐야한다는 이 말을, 구멍이 뚫릴 때까지 들여다보고 있으리라.
밤늦게 과자먹으면서 유투브 돌아다니다가 이 노래를 알게 됐을 때는 원곡자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처음 가사를 들었을 때도 각별한 느낌이 전해졌는데, 이성복 시인의 “이게 딱 시예요.“ 이야기를 듣고 나니 더 근사하게 느껴진다.
윤민수가 부릅니다. <어느 소녀의 사랑이야기>
유투브 영상은 여기... https://www.youtube.com/watch?v=NMNBYw2m0m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