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전제 : 나는 아이들 책, 어른들 책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다.

대학교 2학년 겨울, 『태백산맥』을 읽었다. 지리산 빨치산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다양한 인간 군상과 함께 내 눈앞에 거대하게 펼쳐질 때, 나는 지하철에서 당당히 책을 펼치지 못 했다. 그건 그 이야기가 ‘빨갱이’ 이야기여서가 아니라, 내용이 너무 ‘야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단언코 이전까지 내가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들어보지도 못했던, 감히 상상해보지도 못했던 ‘최고조의 야함’이 서울 한복판 대중교통 수단 안에서 펼쳐질 때, 나는 두 번, 세 번 책을 덮어야 했다. 대학교 2학년 때니까, 내 나이가 스물 하나. 스물 하나에 감당하기 어려운 ‘야함’이었다. 나는 조정래 선생님을 존경하지만, 많이 좋아하지는 않는다. 『태백산맥』을 끝까지 읽었고, 개정판도 구입해 놓았지만, 언제 다시 읽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더 ‘야한 걸’ 좋아하게 되는 어느 날에, 담담한 마음으로 야한 장면들을 지나쳐 갈 수 있을 때, 조선의 공산주의 운동에 대해, 밑바닥 삶을 살아야 했던 민중의 처참한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공부할 수 있을 때, 그 때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건, 『태백산맥』 이야기가 아니고.

어제 저녁부터 『포트노이의 불평』을 읽고 있다.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가 50여쪽 남았는데, 도서관에서 대출을 해 왔더니, 너무 궁금해서, 정말 너무 너무 궁금해서 일단 책을 집어 들었다.

<알라딘 책소개>

삼십대 중반의 필립 로스를 미국의 대표 작가로 수직 상승시킨 작품. 사춘기 소년의 자위행위에 대한 상당한 양의 상세하고 창조적인 묘사 때문에 1969년 출간 당시 미국 도서관들이 금서로 지정하고, 호주에서는 금수 조치되어 펭귄북스가 밀매까지 단행했던 문제작이다.

☆★ <타임> 선정 100대 소설

★☆ <뉴스위크> 선정 100대 명저

☆★ 모던 라이브러리 선정 100대 영문소설

★☆ <가디언> 선정 ‘모두가 꼭 읽어야 할 소설 100권’

 

언제쯤 나오려나, 두려움 반, 기대 반을 가지고 읽어나가던 차에, 나는 주인공의 어머니를 대하고서 활짝 터뜨린다. 웃음꽃을 말이다. 위생과 정리정돈에 ‘강박증’을 보이는 주인공의 어머니가, 어느 날 밤, 아무 것도 먹지 않겠다는 주인공에게 말한다.

인간이야 쥐야.

왜 이러니! 너처럼 잠재력 많은 아이가! 너의 소양! 너의 미래! 하느님이 너에게 아낌없이 주신 모든 선물. 아름다움, 두뇌라는 선물. 그런데도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그냥 굶어죽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게 어디 가당키나 해?

네 평생 사람들이 비썩 마른 아이로 멸시하며 내려다보기를 원하니, 아니면 당당한 어른으로 우러러보기를 원하니?

사람들이 너를 마구 밀치고 놀려대는 꼴을 당하고 싶은 거야? 다른 사람들이 재채기만 해도 자빠지는, 뼈하고 가죽만 남은 사람이 되고 싶어? 아니면 존경을 받고 싶니?

커서 어느 쪽이 되고 싶니? 약한 사람이야 강한 사람이야? 성공한 사람이야 실패한 사람이야? 인간이야 쥐야? (28쪽)

 

 

 

오늘 아침, 아롱이가 속으로는 아침메뉴가 마음에 안 들어서, 말로는 학교에 늦었다며 두어 숟가락을 뜨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식탁에서 일어서려 한다. 나는 책을 펼치고는, 이 부분, 정확히 이 부분을 읽어 내려간다. 아롱이가 웃고, 저기압 딸롱이도 웃는다.

인간이야 쥐야?

오늘의 전제 : 나는 아이들 책, 어른들 책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지금껏 그렇게 살았다. 읽던 책이 재미있으면 딸롱이에게 말한다. 무얼 어떻게 해보려고 딸롱이에게 이야기하는게 아니라, 제일 자주 얼굴을 대하는게 딸롱이라서 그렇다. 내가 읽는 책, 내가 감동 받은 책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좋아하는 구절은 읽어주고, 책도 보여준다. 물론! 딸롱이는 건성건성 보고 만다.

오늘 아침의 책은 가히 딸롱이, 아롱이 모두 좋아했던 거라, 혹 학교에서 돌아오면 자기들도 이 책을 읽어보겠다, 덤비지는 않을까. 나도 아직 ‘결정적으로 야한’ 부분은 만나지 못한 상태라 조금 걱정이 된다. 다행이다. 아침에 아이들한테 책 제목은 이야기하지 않은 것 같다. 책을 숨겨야겠다.

오늘의 전제는 잊어라. 사람의 생각은 의외로 쉽게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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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4-29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단발머리님 참 예쁜 엄마네요. 좋은 엄마다. 히히히히히. 포트노이의 불평은 저도 읽었는데 되게 읽기 힘들었던 기억만 남아있네요. 하핫;;

단발머리 2015-04-29 12:12   좋아요 0 | URL
큰애를 조금 일찍 낳아서 젊은 엄마기는 한데, 예쁜 엄마는 아니구요.
아이구, 좋은 엄마는 진짜 아니구요. 전 그냥..... 웃긴 엄마? ㅋ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전, 웃긴 엄마예요.

이제 겨우 50쪽 읽어서 잘 모르겠지만서도...
필립로스가 너무 좋아요. 완전 제 스타일이네요.
약간 차가운듯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심지어 대머리인데 마음에 든다는...

다락방 2015-04-29 16:19   좋아요 0 | URL
저도 대머리 남자한테 푹 빠져있잖아요. 제이슨 스태덤..

단발머리 2015-04-30 09:58   좋아요 0 | URL
어흐..... 그러게요. 제이슨도 대머리~~
제이슨은 어깨가.... 참, 건실하대요.

icaru 2015-04-29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엄마보다 웃긴 엄마 되는 게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아 웃겨!!! ㅎㅎㅎ 멋지다,,

단발머리 2015-04-30 09:58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좋은 엄마는 어려울것 같구요. 특히 요즘에는요...
저는 그냥 웃긴 엄마할려구요.
웃기는 건 가끔씩 해줘도 되니까, 그걸로 할께요^^

에이바 2015-04-29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태백산맥>을 고등학교 1학년 때 읽었는데요, 단발머리님 말씀 전부 공감합니다. 엄청 야하지 않나요? 애들끼리 야하다니까 국사선생님은 소화가 나오는 부분만 찾아봤다고 하시고 국어선생님은 <채털리부인의 연인> 얘기 하시더라고요. 댓글이 산으로 가네요ㅋㅋㅋ 식탁에서 필립 로스의 책을 읽어주는 엄마도 그걸 듣고 웃는 자녀들도 멋집니다. 어째 상황에 딱 맞는 문단이었네요.

단발머리 2015-04-30 10:04   좋아요 0 | URL
엄청 야하지요. 에이바님은 진짜 빨리 읽으셨네요. 고등학교 1학년 때라면... 저는 대학교 2학년 때도 빠른것 같던데요. 저번달엔가 딸애가 묻더라구요. <태백산맥>이 무슨 내용이냐. 그래서 슬픈 한국사의 진면목이다, 하면서 천천히 읽어라~했거든요.

전 <채털리부인의 연인>을 아직 안 읽었거든요. 필립 로스 책 중에서 <유령퇴장>였던가, 여주가 그러더라구요. ˝친구들이 야한 잡지, 로맨스 소설 읽을 때, 나는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읽었다. 그게 더 야하다.˝

요 위의 인용은 애들 밥 안 먹을 때 한 번씩 써 먹으면 되겠어요. 사실 오늘 아침에도,
˝인간이야 쥐야?˝ 했어요^^

에이바 2015-04-30 10:28   좋아요 0 | URL
<채털리부인의 연인> 진짜 야해요. 도서관에 보다가 얼굴이 붉어지고 주위를 둘러보게 될 정도로요. 분명 저 혼자인 걸 아는데 말이죠?! 단발머리님 지난 글에 서랍에 넣어두고 싶은 글이라고 하셨는데, 서랍에 넣어두고 안 읽은 척 하고싶은 글이에요.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는데 음 야하다기 보다는... 엿보는 느낌? 금서 지정될 만합니다. 아무래도 영미 소설이다보니 저랑 글 사이에 어떤 벽이 있어 조금은 관망하는 듯한 기분으로 읽게 돼요. 공감하면서도 이건 우리 현실이랑 다르니까 하면서요. 반면 <태백산맥>은 확 와닿아요. 문장이 생선마냥 팔딱팔딱 살아서 저한테 물을 튀기는 것 같아요. 묘사도 상당히 직접적이고... 그러다가도 확 몰입이 되는데요, 7권 정도에선 좀 쉬었다 읽었어요. 빨리 읽은 이유는 서울대 필독도서라서요. ㅋㅋ 서울대 가고 싶어서 읽었답니다. 저도 ˝인간이야 쥐야?˝ 언젠가 써 먹고 싶어요.

단발머리 2015-04-30 10:37   좋아요 1 | URL
지금 읽는 모든 책을 중단하고 <채털리>를 읽고 싶군요. 진심.....

에이바님 의견에 공감합니다. 외국 소설은요. 번역을 통해서 읽게 되는 거니까요, 멀리서 엿보는 듯한 느낌이란게 정확한 표현인것 같아요. <태백산맥>은 틈이 없죠. 그냥 마구잡이로, 문꼬리를 열고...
저는 이 쪽으로 잘 모르지만서도 (흠흠...) 조정래 선생님 묘사가 특히, 팔딱팔딱 한것 같아요. 제가 애정하는 김중혁 작가같은 경우는, 그 쪽으로 묘사 안 하기로 또, 쪼금 유명하더라구요.

저는 나중에 초연해지면, <태백산맥> 다시 한 번 읽고 싶기는 해요.
˝인간이야 쥐야? 출처 꼭 밝혀주시어요, from 필립 로스 ㅋㅎㅎㅎㅎㅎㅎㅎㅎㅎ

해피북 2015-04-29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일 마지막 줄보기전에 `아니 아이들 책과 어른들책 따로있는게 아니라면서요 ㅋㅋ `했다가 마지막 줄 읽으며 빵~~터졌어요 ㅋ

저는 태백산맥 3권까지 읽다가 덮었던 기억이 납니다. 왜 우리나라 책엔 이런 부분이 많을까 남자작가님들 책은 언제나 빠지지 않는 부분일까라고 한때 생각해 본 적 있는데 단발머리님 글 읽으니 어쩌면 역사가 그러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ㅎ 그렇다면 그런 부분까지 받아들이는게 맞는거겠죠? 호흡 크게하고 다음번에 다시 도전해봐야겠어요^~^

단발머리 2015-04-30 10:11   좋아요 0 | URL
해피북님 한 번 웃게 해드렸다니, 완전 기쁩니다.

그러게요. 저도 해피북님같은 생각 많이 했거든요. 근데 <혼불> 보니까 남자작가라고 다 그런 건 아닌것 같더라구요. 그런 부분도 배제할 수 없기는 할 것 같은데, 제 생각에는요, 조정래 작가님의 묘사가 여자들에게, 더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일단 그렇게 느끼는 제가, 여자니까요^^

일테면, 하루키의 묘사는 좀, 약간 `이, 뭐야?˝ 이런 느낌이구요. 김영하의 <검은 꽃>에서 이런 부분의 묘사는 상대적으로 남녀 모두 강하게 원하는 쪽으로 그려지더라구요.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저, 왜 이렇게 이 부분에 할 말 많나요?) 이언 매큐언의 <속죄>에서 서재 장면이요. 저는 그 장면이 좋더라구요. 둘 다 약간 미숙한 듯 하면서도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러면서요. 크게 불편하지 않고, 좋았어요.

최근에 제가 제일 좋아하는 필립 로스는 ˝아... 참... 이 아저씨... 뭐, 이렇게까지˝ 이런 식으로 묘사합니다. ㅎㅎ
 

에 응모합니다!!!

 

이벤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응모는  http://blog.aladin.co.kr/tiel93/7450282 

 

요기, 그렇게혜윰님 방에서 해 주시면 됩니다~

 

 

 

박은정 시인의 시집 출간을 누구보다 기다린 독자로서 자그마하지만 개인이벤트를 진행해 보려고 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 시집을 가까이 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소박하나마 진행해 봅니다. 

 

응모방법 : 시집을 구매한 후 본인 서재에 인증샷을 남겨주세요. (남기신 후 이 글에 댓글로 주소를 달아주세요....^;;)


응모상품 : 마노핀 아메리카노 기프티콘 (어른의 상징 커피 한잔? 맥주 한 캔을 드리고 싶었지만 맥주는 기프티콘을 안파네요^^;;;)

<혹시 근처에 마노핀이 없으신 분들과 커피 안드시는 분들께는 원하시면 편의점 빨대꽂아먹는커피나 바나나우유나 다른 차로 보내드릴게요^^ >


응모기한 : 4월 30일 자정까지 (기왕 사실 시집! 커피 한 잔을 기대해 보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당첨인원 : 10명


당첨방법 : 추첨


더 많은 분께 드리지 못해 송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디 치열한 경쟁률로 제가 미안함을 느낄 정도로 많은 분들이 구매해주시길 바라며 소박한 선물이지만 시인의 첫 시집이 불티나게 팔리길 바라는 독자의 마음, 알라디너들은 이해해 주실거죠? 당첨 안되었다고 삐지기 없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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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4-23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북플이 대세지만, 예전 알라딘 서재 시절에 볼 수 있었던 알라디너님의 이벤트를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단발머리 2015-04-23 21:48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알라딘 이벤트에 당첨될 때마다 무척 기뻤는데요. 이번에는 이벤트 때문에 시집을 구입하게 되었어요.
기다리던 시인의 시집을 응원하는 그렇게혜윰님 마음에 감동이 되어서요~~
앞으로도 알라디너님들의 이벤트 많이 기대됩니당*^^*

낭만인생 2015-04-23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이벤트네요..

단발머리 2015-04-23 21:49   좋아요 0 | URL
네~ 낭만인생님.
응모 방법도 간단하고, 선물로 주신다는 아메리카노 커피전문점도 집에서 가깝고... ㅋㅎ
재미있는 이벤트예요*^^*
 

 

 

 

 

 

 

 

나는 한 작가의 작품을 여러 권 읽지 못하는데 한 작가의 책을 모두 읽기에는 이 세상 천지 읽지 못한 책이 너무 많아서이고, 앞으로 읽을 책이 매우 많아서이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위대한 작가의 훌륭한 작품들을 모두 다 읽을 수 없으니, 위대한 작가, 그들 중 일부의 작품을 ‘하나씩’이라도 읽겠다는 거였다.

일테면, 카뮈의 『이방인]은 읽고, 『페스트]는 미뤄두었다. 이승우의 『지상의 노래』는 읽고 『생의 이면』은 제쳐두었다. 하루키는 『상실의 시대』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읽었고, 나머지는 남겨두었다.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농담』, 『정체성』을 읽고, 『불멸』, 『생은 다른 곳에』는 미뤄 두었다. 이응준은 『내 연애의 모든 것』을 읽고, 『밤의 첼로』는 다음을 기약했다. 박민규는 『삼미슈퍼스타즈』, 『지구영웅전설』을 읽고,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미뤄두었다. 줌파 라히리는 『저지대』는 읽었지만 아직 단편집은 시작하지 못 했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은 읽는 내내 쾌활한 느낌이 좋아 『오만과 편견』, 『설득』, 『엠마』를 읽었고, 이번에 『이성과 감성』을 읽게 됐다. 나빴다고는 할 수 없지만, 완전 좋았다고도 할 수 없다. 내게는 『오만과 편견』의 등장인물들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조합 말이다. 뭐, ‘굳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는 뭐, ‘굳이~~’ 이런 걸 좋아라한다.

오만과 편견 > 설득 > 엠마 > 이성과 감성   

컵 때문에 책을 산 것이 아니라고는 못 하겠으나, 생각보다 책의 겉장이 얇아 많이 실망한 것도 사실이다. 같이 구매한 『오만과 편견』이 얼마나 당당한 매력을 뽐내는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당신 가족 모두에 대한 저의 존경은 정말로 진심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제가 느끼던 이상의, 혹은 표현하고자 했던 것 이상으로 어떤 믿음을 불러일으켰다면, 그런 존경을 표현하는 데 좀 더 신중하지 못했던 저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228쪽) 

 

엘렌쇼에서 엠마 왓슨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영국 남자애들은 옷도 잘 입고 매너도 좋지만, 절제하는 편이라고. 연애 전 단계에서는 그 애가 나를 좋아하는지 어쩐지 알게 되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고. 하지만, 미국 남자애들은 그렇지 않다고. 그 애들은 몇 일만에 ‘너를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데이트를 신청한다고. (하지만 그들은 쪼리를 신는다, 그것까지 좋아하게 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엠마 왓슨은 그것이 ‘컬쳐쇼크‘였다고 말했다.

메리앤이 겪고 있는 상황이라는 건, 엠마왓슨의 컬쳐쇼크에 다름 아니다. 메리앤이 보낸 편지에 대한 연인 윌러비의 답신이다. 그는 말한다.

당신 가족 모두에 대한 저의 존경은 정말로 진심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제가 느끼던 이상의, 혹은 표현하고자 했던 것 이상으로 어떤 믿음을 불러일으켰다면, 그런 존경을 표현하는 데 좀 더 신중하지 못했던 저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228쪽) 

 

그러니까 이런 말이다.

“당신 가족에 대한 존경은 사실이나, 제가 느끼던 감정인 존경 이상의 감정 즉, 사랑에 대한 어떤 믿음, 즉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면 그것은 나의 불찰이다.”

다시 말해 이런 뜻이다.

“당신의 가족을 존경하나 당신에 대해서는 사랑의 감정이 없다. 오해가 있었다면 미안하다.”

정말 그랬을까? 윌러비의 행동에는 메리앤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전혀 없었을까. 이 모든 것이 메리앤의 오해였을까. 아니다. 윌러비는 남자가 연정을 품고 있는 여자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일을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 있었고, 아직 물려받지 않았지만 곧 자신의 것이 될 것이라 예견된 자신의 저택을 보여주려 했다. 그녀에게 머리카락을 달라고 애원했고, 잠시도 그녀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그녀를 모른 척 하는 거다. 연회장에서 만났을 때도 형식적인 인사를, 그것도 먼발치에서만 할 뿐, 그녀에게 다가오려고조차 하지 않는다. 메리앤은 병이 나고 말았다. 편지를 보냈고, 답을 받았다.

“당신에 대해서는 사랑의 감정이 없다.”

메리앤의 절망이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사랑을 잃었고, 명예를 잃었고, 미래를 잃었다. 사랑하는 남자의 변심만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그와 함께 이 모든 것을 잃었다. 남자가 떠나고, 모든 것이 변했다.

이 책을 읽어가던 중 알라딘에서는 이런 질문이 유행했는데, “무인도에 이상형의 남자와 살게 된다면 구조요청을 할 것인가”는 거였다. 거기에 대해선 각자 개인적이고, 구체적이며, 개별적인 답이 존재했을 텐데, 나는....

어떤 남자와 단둘이 있을 것이냐에 대해 정말 진지하게 생각을 해 보았더랜다. 많이 좋아하지만 김수현은 사실, 좀 부담스럽다. 현빈도 좋은데, 조금 있으면 금방 지루해 질테고. 노래도 불러주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해주는 성시경도 좋긴 하지만, 재미있는 걸로 하면 유희열이 딱 내 스타일이다. 남자를 바꿔가며 이런 저런 생각을 끝도 없이 이어가던 찰나, 이런 문장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메리앤, 한 사람에게 한결 같은 애정을 갖는다는 생각이 매력적이긴 해도, 그리고 자신의 행복이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 전적으로 달려 있다는 말이 일리가 있긴 해도, 꼭 그래야만 한다는 건 맞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아. (324쪽)

 

맞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단다.

남자에게만 방점을 찍던 나에게, ‘내’가 필요하며, ‘나’도 필요하다고 말해주었던 어떤 고운님이 떠올라 혼자 또 미소짓는다.

그 생각이 매력적이긴 해도, 일리가 있다고 해도 말이다. 그래야만 한다는 건 맞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이제 생각을 고쳐먹은 나로서도 ‘그렇단다’에 한 표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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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3-17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책도 무섭게 읽고 글도 무섭게 쓰시네요. 단발머리님의 글쓰기가 지금 절정의 시기에 도래했달까요? 훗 :)

단발머리 2015-03-17 19:21   좋아요 0 | URL
아직 갈 길이 멀었지요. 근래 2-3년이 제 인생에서 제일 책을 많이 읽는 시간인 것 같아요. 그 전에는 정말 얼마나 안 읽었던지요~~~ㅋㅎㅎㅎㅎ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알라딘 서재가 있어서, 격려해주신 분들이 있어서 신나게 달려가고 있네요 : )

icaru 2015-03-17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 님이 쓰시는 페이퍼 서체가 뭐예요? 어디서 이런 서체(굴림체??)만 봐도 아,,, 단발머리서체다(서체를 운운할 때는 `님`생략입니돠~) 하며 친근해합니다. ㅋㅋㅋㅋ

굉장히 많이 읽으시네요~~ 독서가의 아우라를 듬뿍이~~
생의이면,,, 아,,,`찐득하고 끈적한 생의 본질`이라고 말하면서 밀크캬라멜을 떠올리고 있는 것은,,,사진속 센스앤센서빌리티라는 큐트한 머그잔에 담긴 음료가 뭘까 상상하고 있었기 때문일까요?

단발머리 2015-03-17 19:28   좋아요 0 | URL
아하~~ 저는 `맑은고딕체`를 쓰고 있어요. 한글에서 쓸 때도 그걸로 쓰거든요.... 제꺼로 여겨주신다면 그냥 제꺼로 하겠습니당*^^* 위의 책은 4-5년치를 묶어놓은 거예요. 많이 부끄럽네요~~~저는 진짜 앞으로 읽을 책이 많은 사람입니다, 에헴~~~

<생의 이면>은 읽으려 벼르고는 있는데 언제 시작하게 될지는 저도 @@입니다. 참, 예쁜 잔속의 음료는 아실랑가 모르겠네요, 요구르트입니다. 사진으로는 잘 안 보이는데 완전 예쁩니다. 아침부터 제가 요구르트 한 잔 했습니다^^

cyrus 2015-03-17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한 작가의 책을 모두 읽으려는 전작 독서를 선호해요. 그런데 쉽지 않은 일이에요. 시도하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요. ^^;;

단발머리 2015-03-18 07:52   좋아요 0 | URL
맞아요, cyrus님~~ 저도 전작 독서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아서요.
저는 그래서 일단 작품수가 적은 작가를 공략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은 제인 오스틴(6개중 4개 읽었네요.)과 김승옥입니다. (집에 있는 문학동네 김승옥 전집은 5권짜리네요.)

그런데, `전집`이라고 나온 게 그 작가의 작품 전부는 아닐텐데, 그렇죠? 그게 조금 헷갈립니다^^

보슬비 2015-03-18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만과 편견`을 읽었는지, `엠마`를 읽었는지, 아니면 둘다 읽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거려요.^^
아니면 `엠마`는 영화로 봤나... ㅎㅎ

책양장도 호감이 가지만, 잔이 너무 귀여워요. 에스프레소 잔인가요?

단발머리 2015-03-18 07:53   좋아요 0 | URL
사실, 제인 오스틴 책은 서로 약간씩 비슷하지요. 저는 그래도 `오만과 편견`이 제일 좋네요^^

잔이 너무 귀엽지요? 다른 잔을 옆에 두면 더 귀엽습니다. 원래는 에스프레소 잔인것 같아요.
저는 보리차를 부어 마시거나, 요구르트를 담아서 먹습니다. 설거지할 때도 조심조심.... 헤헤

아무개 2015-03-18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의 이면>도 좋지만, 이승우의 단편집 <일식에 대하여> 강력 추천입니다.
저와 다락방님이 이승우에게 빠지게된 단편이 실려있어요.
전 그 단편을 읽으면서 질질 짰어요 ㅜ..ㅜ


단발머리 2015-03-23 09:40   좋아요 0 | URL
<일식에 대하여> 완전 읽고 싶어요.
다락방님과 아무개님의 이승우 물결에 저도 빠질래요.
질질은~~ 아, 진짜....
전 잘 우는 사람인데, 저한테, 진짜 이러지 마세요~~~~~~~ : )

yamoo 2015-03-18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단발머리님 처럼 읽다가 어느 순간 전작주의로 가더라구요...에코가 그랬고, 쿤데라가 그랬으며, 우엘벡이 그랬습니다. 키냐르도 마찬가지였지요. 하지만 이렇게 전작 주의로 꽂히는 작가가 그리 많지 않아서, 모르는 작가 찾기 위해 요즘 다시 단발머리님과 비슷한 방법을 다시 사용하고 있습니다.ㅎㅎ 요즘 모던 클래식 시리즈와 세계문학의 숲 시리즈에서 몇 작가를 발견해서 읽고 있는데, 도통 다른 작품이 번역된게 없더군요..OTL

저도 아무개님 의견에 동감합니다. 이승우의 장편은 <생의 이면>이 대표작이고(이승우 하면 생의 이면!) 재미면에서는 단편집들이 좋습니다. 저도 일식에 대하여...강추합니다!

단발머리 2015-03-23 09:38   좋아요 0 | URL
네, yamoo님~~ 저도 물론 전작주의를 추구합니다. 추구는 하고 싶은데, 쉽지는 않더라구요.
에코나 쿤데라는 저도 한 두 권씩 읽어봤는데, 우와~~ 우엘백이나 키냐르는 정말 처음 듣는 이름이예요. 읽을 책도 많고, 정말 훌륭한 작가들도 많아요. 저는 완전 갈 길이 멀어서, 정말~~ 좋아요*^^*

<일식에 대하여>는 표지만 아는 책인데, 서둘러 찾아봐야겠어요.
완전 감사해요*^^*

초록장미 2015-08-17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왜 <이성과 감성>을 끝까지 읽지 못할까요. ㅠㅠ <오만과 편견>은 푹 빠져서 두 번이나 완독하고 영화도 봤는데 <이성과 감성>은 두 번 도전했건만 두 번 다 중간에 덮었어요. 기왕 산 책이니까 어떻게든 끝까지 읽으려고 했는데 말이죠. 주인공들이 별 매력이 없어서 그런 건지...... 제인 오스틴의 작품에는 연애와 결혼 이야기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는 걸 알지만 남자주인공이나 여자주인공이나 다들 무미건조해서 끝까지 읽지를 못하겠어요. 그런데 단발머리님의 리뷰를 읽어보니까 애초에 감상 포인트를 잘못 둔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언제 한번 다시 도전해봐야겠어요!

단발머리 2015-08-18 13:1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초록장미님.
저도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성과 감성>을 끝까지 읽기까지 몇 번의 고비가 있었습니다. 저 역시 <오만과 편견>은 아주 좋았는데요. 저도 주인공을 탓했습니다. 다아시와 엘리자베스의 매력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

위의 페이퍼, 제가 쓴 페이퍼를 다시 살펴보니, 제인 오스틴 작품 중에서는 <이성과 감성>이 꼴찌네요.
ㅎㅎ 초록장미님이 다시 도전하신다니, 제가 소박하나마 저의 화이팅을 전합니다. 화이팅!
 

 

 

 

 

 

 

1. 조선인의 멕시코 이민

책의 내용을 전혀 알지 못하고 읽기 시작한 이 책은 첫 장부터 놀랍고 신기한 세계다. 구한말, 더 이상 나빠질 것조차 없는 피폐한 삶을 살던 민생에게는 아무 희망이 없다. 나라는 망하기 직전이고, 흉흉한 소문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이 땅이 아닌 다른 곳에서 희망을 찾으려던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제물포로 모인다. 피리 부는 내시와 도망중인 신부, 옹니박이 박수무당, 노루피 냄새의 소녀, 가난한 황족과 굶주린 제대 군인, 혁명가의 이발사, 그리고 고아 소년 이정이 배에 오른다.(11쪽) 이들이 향하는 곳은 저 멀리 바다 저 편에 있다는 나라, 멕시코이다.

‘하와이 이민’은 들어본 적이 있지만, ‘멕시코 이민’은 처음이다. 구글을 검색해보니 이런 설명이 나온다.

한국인의 멕시코 이민

한국인의 멕시코 이민(스페인어: Inmigración coreana en México, 영어: Korean immigration to Mexico)은 1905년 시작되었다. 최초의 한국인 이민 노동자는 멕시코 시 유카탄 주에 정착했다. 2011년 기준으로 총 한국인 이민자는 11,800명으로 집계되었다.[1] 언어는 한국어와 스페인어를 쓰며[2] 종교는 주로 기독교와 대승불교로 분포되어 있다.[3]

 

승객용이 아닌 화물용 선박을 타고 태평양을 건너온 사람들. 열심히 일을 한 뒤 돈을 벌어 고국으로 당당히 돌아가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이역만리 멕시코 땅을 밟은 사람들은 불속에 서 태워지는 자신들의 옷가지와 짐을 보고서도 감히 짐작하지 못 했다. 가축을 선별하듯 건강한 노동자를 가려내는 농장주들을 만나고 나서, 말 위에서 내리치는 채찍에 맞은 이후에야, 그들은 자신들이 노동자보다도 못한 ‘노예’로 그 곳에 팔려왔음을 깨닫게 된다. 기한은 4년, 그들이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작성된 계약서에는 그들의 계약기간이 ‘4년’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에네켄 대농장 소유주에게 묶여있는 ‘노예’, 7등급 노예가 되고 말았다.

 

 

 

 

푸르른 황금밭에서 떼돈을 벌 수 있는 지상낙원, 어느 누가 가더라도 큰 돈을 벌어 4년 후에는 고향에 돌아올 수 있다,는 ‘대륙식민회사’의 광고는 모두 거짓말이었다. 그들의 말만 믿고 배에 올랐던 조선 사람 1032명은 그 곳에서 지옥 같은 삶을 경험하게 된다. 메리다에 거주했던 중국인 허훼이의 편지를 통해 그들이 겪었던 비극을 엿볼 수 있다.

“누더기 옷과 다 떨어진 신발을 신고 있는 한국인 노동자들은 멕시코인의 조소의 대상이 되었다. 눈물 없이 이들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떼를 지어 에네켄 농장에서 일했는데, 부인네들은 아기를 등에 업은 채 일을 하고 있었다. 마치 동물 이하의 생활 같았다. 여기 멕시코에서는 토착 원주민을 세계 제5위 또는 제6위 노예에 속한다고 부르는데, 한국인 노동자들은 제7등 노예로 불려졌었다. 이들이 작업 목표량을 다 달성치 못했을 때는 무릎을 꿇게 하여 피가 날 때까지 못살게 굴었다.”

(멕시코 초기 한인이민 역사, 서성철, www.nfm.go.kr/_Upload/BALGANBOOK/393/02.pdf)

 

노예 같은 삶을 이어가던 한국인들은 4년 강제계약이 끝난 후에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머나먼 고국으로 돌아갈 경비도 없었고, 그들이 돌아갈 나라도 없어졌다. 현지 마야어는 물론 스페인어 한 마디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다시 농장과 재계약을 맺고, 에네켄 잎 자르는 일을 계속하게 된다. 1909년 메리다 국민회를 창설하기도 하고, 군사교육을 실시했던 숭무학교를 건립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고국의 독립을 위해 애썼지만, 288명의 한국인들이 쿠바로 이민 간 이후에는 그 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이민 1세나 2세분들이 어렵게 지켜왔던 한국문화나 전통도 이제는 별로 남은 것이 없다고 한다.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한국말을 하는 사람도 찾아보기 어려운 형편이다.

구글을 검색하다가는 이런 사진도 보게 됐다.

 

 

한국인이 분명하며, 또한 멕시코인이 분명한 이들은 멕시코이민 한인 3세, 4세들이다.

 

2. 지금의 멕시코는...

그러다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이들이 이런 노예같은 삶을 살도록 하는 사회 구조는 무엇이었을까? 멕시코 사람들은, 이런 사회 구조를 왜 그대로 두었을까?

1032명의 조선인들이 발을 디뎠을 당시 유카탄 인구의 대부분은 마야족이었다. 제국이 붕괴한 지 수백 년이 지났지만 이들은 여전히 마야어를 쓰고 마야 달력에 따라 생활하고 있었다. 거대한 피라미드만 남기고 사라진 제국을 대신하여 마야인들은 멕시코 연방정부, 대농장의 지주들과 싸움을 벌였다. 마야인들의 독립 투쟁은 1847년 절정에 이르렀다. 수만 명의 마야인들이 탄압을 피해 영국령 벨리즈로 달아났고, 체포된 이들은 쿠바와 도미니카에 노예로 팔려갔다. 1858년에서 1864년 사이에 무려 33회의 폭동이 있었으며 한때 이들의 주력이 유카탄의 중심도시인 메리다를 점령하기도 하였다. 벨리즈를 장악하고 있던 영국 해적들로부터 무기를 사들인 유카탄의 마야인들이 백인 점령지역을 게릴라식으로 공략하여 큰 전과를 올린 적도 드물게나마 있었다. 그러나 조직화되지 않은 이들 마야인들은 비만 내리면 각자의 옥수수밭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결정적 승리를 쟁취하는 데 실패하였다. 농민의 한계였다. 결국 쿠바의 용병과 미국이 파견한 군사고문단 100명이 상륙하면서 대학살이 시작되었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연방군이 유카탄의 마야족들을 완전히 제압한 것은 조선 이민자들이 도착하기 불과 사 년 전인 1901년에 이르러서였다. (118쪽)

 

소설에서도 멕시코 혁명과 혁명가들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해서 나오는데, 이해가 쉽지는 않았다. 궁금한 건, 지금이다. 그렇다면 멕시코 사회는 이러한 불평등을 해소했는가. 마야인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지위를 회복했는가. 아니면 하루를 꼬박 기차로 달려도 전체를 돌아보기 어렵다는 대농장 소유주의 후손들에게만 지상낙원의 나라인가.

만약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대한 정보를 찾으려한다면 이런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1950년 한국전쟁, 1953년 이후 정전 사태, 전통문화를 사랑하고 효를 중시한다. 전자전기 통신 산업이 발달했다, 라고 말이다. 하지만, 실제 우리의 삶은 검색해서 찾아지는 삶과는 많이 다르다. 100만원에 가까운 스마트폰을 4인 가족 중 4인이 가지고 있는 나라, 가족 모임에서는 외식을 자주하고, 금요일 밤에는 치킨을 배달시켜 먹고, 그리고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임금이 정규직의 70% 밖에 안 되는 비정규직의 나라인 것을 말이다. 실제 멕시코인들의 삶이 어떠한지 궁금하다. 더 이상은 대농장의 비인간적 대우 속에 갇혀 있지 않은지, 평생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의 옥쇄 속에 갇혀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3. 소설은 이야기

이미 ‘멕시코 초기 이민’에 대한 여러 소설이 존재했음에도 이 소설이 값진 이유는, 이 책이 보여주는 ‘이야기의 힘' 때문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눈앞에 있는 듯 그려진다. 사람의 겉과 속이 보이고, 숨길 수 없는 사악함과 추함이 보이고, 그런 상황에서도 꽃피는 사랑이야기에 가슴이 설렌다.

노루피 사향 냄새를 품기는 연수의 이야기가 그렇고.

연수의 경우가 그랬다. 열흘이 지나고 보름이 되자 그녀에게선 누구라도 분간할 수 있는 특이한 체취가 풍겼다. 그녀가 지나가면 잠든 사람들이 일이었고 아이들이 울음을 그쳤다. 수년 동안 발기하지 못했던 남자는 몽정을 했고 어린 사내들은 밤잠을 설쳤다. 여자들은 수군거렸고 남자들은 고통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 그녀만이 한동안 영문을 모르고 있었다. 냄새뿐이 아니었다. 얼굴에서도 빛이 나기 시작했다. (68쪽)

 

일하지 않되 먹기만 하는 황족 이종도의 이야기가 그렇고.

네 식구가 먹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굶다시피 하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럼에도 이종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밥은 가장 먼저, 많이 먹었다. 마치 그것이 자신의 숭고한 의무라도 되는 것처럼 그는 식사 때마다 흙바닥일지언정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아 가장 먼저 밥숟가락을 들었다. (135쪽)

 

지옥 이상을 살고 있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그렇다.

30도를 넘는 더운 날에도 여자들은 치마저고리를 벗지 못했다. 웃통을 벗어붙인 남자들은 술만 마시면 제 아내를 두들겨팼다. 벌써 노름을 시작한 이도 있었다. 노름과 술은 조선 남자들의 뿌리깊은 병폐였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악다구니와 울음소리, 비명과 고함이 밤마다 이어졌다. 유카탄은 남자들에게도 지옥이었지만 여자들에겐 언제나 그 이상이었다. (158쪽)

 

 

4. 지금 그리고 여기

연수가 1905년 멕시코로 향하는 배를 탔을 때 그녀는 16살이다. 지금은 2015년. 지금으로부터 110년 전, 이 땅에 살았던 한 소녀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삶을 살아낸다. 힘없는 나라의 백성으로서, 망해버린 제국의 공주로서, 무능한 가장의 딸로서 말이다. 그녀가 원했던 삶, 무거운 장옷을 벗고 학교에 가서 새로운 문물을 배우는 삶은 끝내 그녀의 삶에서 허락되지 않았다. 사랑하는 남자와 둘만 함께 할 수 있는 공간 속에서 사는 것, 그를 위해 밥을 짓고, 아이를 낳고, 그리고 아이의 재롱을 보며 그와 마주보며 웃는 일이 그녀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그녀는 나와 같은 장소에 살았다. 나와 같은 곳에서 태어났다. 많은 차이가 있겠지만, 생김새도 많이 비슷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 땅에 100년 전 태어났기에 지금으로서는 책을 통해서만 상상할 수 있는 지독한 삶을 살아냈다. 그녀가 지금 내 삶을 보게 된다면 어떨까.

나는 아파트에 산다. 지하철역까지 5분 이내의 초역세권이고, R로 시작하며, 최고의 시세를 자랑하는 아파트는 아니지만, 넓고 깨끗하다.

부엌에는 밥솥이 있다. 최고 인기의 남자모델이 광고하는 최신상은 아니지만, 씻은 쌀을 넣고 ‘취사’ 버튼을 누르면 30분 동안 밥을 스스로 짓는다.

저 끝에는 로봇청소기가 있다. 스스로 충전이 가능한 최고 사양의 제품은 아니지만, 얇은 문턱은 스스로 넘나들며 청소 기능에 더해 물걸레질도 가능할만큼 나름 똑똑하다.

거실에는 책이 있다. 책장 사진을 찍을 수는 있겠으나, 올릴 수는 없다. 여기가 알라딘서재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 최고 작가들의 최고 작품들을 전집으로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읽고 싶은 책, 가지고 싶은 책은 책장에 꽂혀 있다. 몇 달간은 책을 구매하지 않아도 읽을 만하고, 읽고 싶은 책이 수두룩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내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들은, 100년 전 연수가 그렇게도 갈구하고 갈망했던 것들이다. 그녀는 갖지 못했고, 나는 가지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시간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나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 하더라도, 아시아의 많은 여자아이들은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한 채 결혼을 강요당한다. 아프리카의 많은 여자아이들은 ‘여성 할례’로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간다. 아니, 우리나라에도 경제적인, 사회적인 어떤 이유들로 처참한 삶을 살고 있는 많은 여자들, 여자 아이들이 있다.

출생의 우연이라는 수수께끼는 죽음만큼이나 신비롭다. 나는 왜 유럽에서 태어났는가? 어째서 잘 먹고, 가진 권리도 많고, 자유롭게 살 수 있으며, 고문으로부터도 비교적 자유로운 백인으로 태어났는가? 나는 이렇게 태어났는데, 어쨰서 뱃속에 기생충이 우글거리는 콜롬비아의 광부는 그런 행운을 누리지 못했을까? 페르남부쿠의 혼혈인 카보클루는? 염산에 의해서 얼굴이 일그러진 치타공의 벵갈 여인은? ([탐욕의 시대], 330쪽)

 

 

내가 가진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넘어, 내가 가진 것에 대한 감사를 넘어, 내가 가진 것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님에도 내가 얻은 이 혜택에 대해, 내가 노력하지 않았음에도 누리고 있는 이 커다란 행운과 편안함에 대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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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3-12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휴, 단발머리님. 글이 점점 더 좋아지네요. 멋져요 ♡
저 책은 저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그날 밤, 연수와 이정은 피로를 모르고 밤새 뒤척였다. 지난 석 달은 피가 뜨거운 청춘들에겐 너무 긴 이별이었다.


라는 문장을 저는 페이퍼에 적어 두었군요. 피가 뜨거운 청춘... 하아-

단발머리 2015-03-12 11:35   좋아요 0 | URL
어휴, 격려해주셔서 감사해요, 다락방님.
저도 85쪽 무척이나 인상깊었어요. 요시다가 좀 안 되기는 했지만, 저는 이정과 연수의 조합을 좋아하는지라.... 저는 이 문장이요.

그녀는 이 모든 일들이 왜 이렇게 익숙한 것인지, 이 모든 감각들이 왜 이렇게 생생한 것인지, 기이하게만 생각되었다. ... 고통이 밀려들었지만 한편 감미로웠다. (91쪽)

참, 날개뼈도 좋아요. ㅋㅎㅎ 어여 로또가 되셔야할텐데... 헤헤헤...
 

 

 

 

 

 

 

 

1. 글은 재능이 아닌 훈련에 달렸다!

장동건이 한 토크쇼에 출연했을 때의 일이다. 평생에 걸쳐 ‘잘 생겼다’라는 말을 들었을텐데, 이제 그런 말이 지겹지 않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장동건은 ‘잘 생겼다’라는 말은 아무리 많이 들어도 지겹지 않다고 말했다. 그 입장이 안 되어 봐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럴 것 같다는데 크게 동감한다.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 특별히 좋은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이 여러 번 들어도 지겹지 않은 말은 이 말이 아닐까 싶다.

수학자들이나 음악가들이 어렸을 때 또는 젊었을 때보다 더 뛰어난 이론을 만들었다거나 더 뛰어난 작품을 만들었다거나 하는 일은 굉장히 드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글 쓰는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글이 나아집니다. 특히 산문가들의 경우에 그렇습니다. 소설이나 에세이를 쓰는 사람들의 경우 말입니다. 그렇다는 건 글쓰기가 재능에 달린 게 아니라 많은 부분이, 압도적 부분이 훈련에 달려 있다는 걸 뜻하는 것입니다. 재능도 필요하지만, 노력이 훨씬 더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42쪽)

아이들을 키우면서 ‘타고난 재능’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가르쳐 주지 않아도 어떤 일을 한다는 것, 그것도 곧잘 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눈앞에서 보여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고난 재능’에만 방점을 찍었을 때, 나도 모르게 우울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글쓰기의 많은 부분, 압도적 부분이 훈련에 달려 있다고 말하는 저자의 이야기는 희망을 준다. 다시 두 손을 불끈 쥐게 되고, ‘다시 한 번 시작해보자’라는 김동률 노래를 내 노래로 착각하게 된다. 물론, 이 ‘훈련’이 어떤 훈련인지, 그것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 것인지 나로서는 짐작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드는 생각일 테다.   

 

2. 뜻하지 않게 등장해 버리고

한자어와 고유어가 결합해서 복합어를 만드는 예들 가운데는 동의중복 현상을 보이는 말들이 있습니다. ... 이런 잉여적 표현은 어휘 수준, 특히 명사에서 가장 흔합니다. 예컨대 외갓집, 처갓집, 산채나물, 돌비석, 손수건, 모래사장, 단발머리, 한옥집, 양옥집, 삼월달, 낙숫물, 새신랑 따위가 그 예입니다. (167쪽)

뜻하지 않게 등장해 혼자 웃고, 조용히 밑줄을 긋는다. 나는 잘 웃는 사람이다.

 

3. 실전편

1. ‘의’가 거듭 반복될 때는 대체로 하나나 둘을 빼는 것이 좋습니다. ... 예컨대 ‘한국의 문화’보다는 ‘한국 문화’가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한국의 문화’는 일본식 표현입니다. (123쪽)

2. 여격조사 ‘-에게’는 유정명사, 즉 사람을 포함한 동물 뒤에 쓰고, ‘-에’는 무정명사, 곧 식물과 무생물 뒤에 씁니다. (164쪽)

3. 어떤 조사든, 주격 조사든 목적격 조사든 보조사든, 빼도 의미를 흩뜨리지 않는다면 빼라! 간략함, 간결함, 그게 좋은 문장의 미덕입니다. (221쪽)

4. ‘~하는 이유는 ~ 때문이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것은 완전한 오문입니다. 그런데 저런 표현을 굉장히 많이 씁니다. ... 꼭 ‘이유는’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으면 ‘이유는 ~에 있다’거나 ‘이유는 ~ 것이다’거나 ‘이유는 ~ 한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쓰지 않으면 문법에 어긋나는 한국어가 됩니다. (257쪽)

 

4. 지금 그리고 여기

그러면 한국어는 어디에 속하는가?... 원시 한반도에서 쓰이던 정체불명의 언어에 알타이어가 포개져 이뤄진 것이 한국어라는 주장도 있고요. 아무튼 아직까지는 그 어느 설도 입증되지 않았으니, 한국어는 말하자면 고아 언어입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언어인 거지요. 세상에 아무런 친척도 없는 언어 말입니다. ... 한국어는 사실상 고아 언어입니다. 한국어와 친척관계에 있는 언어는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325쪽)

세계화의 거센 돌풍 아래 영어가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세계 공용어가 된지 이미 오래다. 인터넷 상에서도 영어로 작성된 문서의 개수는 기타 모든 언어로 작성된 문서의 개수보다도 더 많다(고 들었다). 영어를 공용화해야한다는 주장은 신문 사설에서도 쉽게 눈에 띄는데, 놀랍고 신비한 이런 칼럼을 쓰는 사람의 주장에 따르면, 외국어는 11세 이전에 마스터해야만 하고, 그 외국어는 영어이어야만 한다. 나를 포함한 평범한 사람들은 이미 외국어 학습의 적기를 놓쳐 버렸으니, 방법은 오직 하나다. 자녀들을 미친 사교육, 조기교육 시장으로 내모는 것이다.

영어,에 대한 이야기라면 나도 할 말이 좀 있는데, 그래서, 이렇게 영어를 잘하게 되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만은, 실상은 영어로 인한 고통과 수난, 그리고 말도 되지 않은 콩글리시로 인한 치욕의 역사가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게, 도대체 어떻게 해야 영어를 잘하게 되는가.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서가 아니고, 아니며, 아니라고 주장하는 바, 나는 위의 문단, 위의 문장이 참 좋았다.

한국어는 고아언어입니다.

고아라는 단어가 주는 처연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사용하는 한국어, 내가 말하는 한국어는 고아언어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언어다. 친척 관계에 있는 언어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말 그대로 고아언어, 하늘에서 온 말, 천상의 언어다.

북한주민, 해외동포를 합치더라도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1억명이 넘지 않을 것이다. 근래의 가파른 출산율 저하로 보아 한국인의 인구가 눈에 띄게 감소하는 건 이제 눈앞의 현실이다.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 천상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는 말이다. 내 위치에서, 내 자리에서, 한국어를 더 많이 사랑하고 아끼는 방법은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고, 더 많이 말하는 것이다. 더 아름답고 더 유려한 문장을 쓰면 좋겠지만, 만약 그게 어렵다면, 그 곳까지 도달할 실력과 체력, 훈련이 턱없이 부족하다면, 어쩔 수 없다. 양으로 승부를 지어야겠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고, 더 많이 말해야겠다.

 

5. 기쁨의 나팔

이번 설에는 어머님이 세뱃돈을 안 주셨다. 아들들은 안 주시더라도 손자들이랑 며느리들은 꼭 챙겨주셨는데, 올해는 며느리들도 패쓰!라고 하셨다. 다행히 엄마가 세뱃돈을 많이 주셔서 상쾌한 기분으로 교보문고로 향했다. (그렇다. 나는 아직 철이 안 들었다.) 시댁과 친정이 모두 서울에 있어 연휴 내내 서울에 있는 우리 같은 사람들인지, 아니면, 연휴를 맞아 책을 보러 나온 사람들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교보문고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계산대마다 책을 들고 줄을 서 있는 사람들로 지나갈 틈조차 보이지 않았다. 딸롱이는 교과서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아무 책도 사지 않았고, 아롱이는 『마법천자문 30 : 눈을 떠라, 전설의 수호자! 용 룡』을 샀다. 내가 사고 싶었던 필립로스의 책은 그렇게 많지는 않았는데, “자넨 날 수집했네.”라는 기막힌 문장을 앞세운 『EXIT GHOST』를 구입했다.

 

 

 

 

 

 

 

 

 

화면으로만 보고 원서를 구입했을 때 실망한 경우가 많아 알라딘에게는 메롱!이지만 원서는 직접 살펴보고 구입한다. 자간도 넓고 행간도 넓다. 책사이즈도, 표지도, 두께도 모두 적당하다. 마음에 든다. 이제 읽을 일만 남았는데, 고아언어 한국어도 사랑해줘야 하고, 필립 로스의 문체도 제대로 느껴야 해서 갑자기 마음이 급해진다. ‘개학’이라 이름붙여진 기쁨의 나팔은 3월 2일에나 울려 퍼질 예정이다. 아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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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3-02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학 이라 이름붙여진 기쁨의 나팔은 오늘 울려퍼졌겠네요, 단발머리님!! >.<

단발머리 2015-03-03 10:53   좋아요 0 | URL
아, 어제 다락방님 계신곳까지 나팔소리 들렸나 모르겠네요. 어제 제가 나팔 크게 불었구요.
오늘의 환희의 나팔, 크게 불어봅니다... 헤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