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좀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 알아야 할 것은 알지 못한 채 섣부른 지식으로 자신을 속이고 타인을 모욕하는 경우야말로 식자우환이라 할 수 있지요. (29쪽)
진심으로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으면 아무리 많이 읽고 아무리 오래 함께 읽어도 소용이 없더군요. 독서량이 많거나 스스로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독서 모임에서 큰 배움을 얻지 못하는 것도 그래서 그렇습니다. (67쪽)
한 개에 천 만원이 넘되 천 만원을 선납해도 금방 가질 수 없는 에르메스 버킨백을 사는 것보다는 김영하의 신간 산문집 『읽다』를 사는 편이 낫다. 재화의 소유가 제공하는 기쁨은 그 재화를 소유하기 직전이 최고점이고, 김영하의 산문이 주는 기쁨은 마지막 문장을 읽을 때까지 유지되기 때문이다.
가방, 반지, 귀걸이, 목걸이, 시계, 블라우스, 스커트, 코트. 이 밖에 다른 어떤 물건을 사는 것보다야 책을 사는 게 낫다. 더 긴 시간동안, 더 진한 감동을 간직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분야에 관한 것이든 지식의 소유에만 한정된다면 그건 진정한 앎과는 구별될 것이다. 많은 책을 사고 많은 책을 읽더라도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경우 보통 식자우환이라 하던데, 간단히 말하면 아는 게 병이 되는 형국이다. 나부터 그러지 않은지 자꾸 뒤돌아보게 된다. 아, 다행이다. 나는 아는 게 적어 이런 경우가 별로 없다. 신난다.
독서란 결국 다른 사람, 즉 책을 쓴 저자의 이야기를 듣는 지루한 과정을 활자-독자의 형태로 변형한 것인데, 만약 저자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비판적 독서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아예 듣지 않는다면, 저자의 논지를 파악하기도 전에, 저자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기 전에, 그/그녀의 주장과 이야기에 귀를 막아버린다면 어떨까. 다독하는 그 어떤 사람은 자신의 지식이나 화려한 독서이력을 자랑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책을 통해 새로운 변화를 이뤄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그녀는 언제나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가령 내가 책을 읽는 가장 큰 이유는 어디까지나 ‘즐거움’ 때문이다. ‘즐거움’을 위한 독서, ‘즐거움만을 위한 독서’을 지향한다고 할 때, 이것이 아주 자랑스럽고 뿌듯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사실 자체를 숨길 수는 없는 일이다. 나에게 독서는 ‘즐거움’을 위한 것이다. 다른 말로는 ‘재미’요, 또 다른 말로는 ‘놀이’이며, 그 밖에 또 다른 말로는 ‘도피’이다. 하지만, 김이경 작가의 이 말, 진지하고 차분하며, 잘난 척 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소탈하게 펼쳐 내놓는 그녀의 말을 무시할 수가 없다. 내가 이 책을 읽었으므로, 내가 그녀의 이 말을 들었으므로. 내 생각은 조금 변한다. 변하고 있다.
심심풀이 삼아서 재미로 있는 거라면 대충 읽어도 됩니다. 하지만 스스로를 깨우고 세상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려고 읽을 때는 정독을 해야 합니다. 즉 독서의 사회적 책임을 생각할 때 정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쓴 사람의 피땀 어린 공력, 만든 사람의 수고로움, 그걸 읽고 살아갈 내 삶의 소중함 그리고 내가 이 모든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갈 세상을 생각하면 정성껏 정밀히 읽는 게 당연하지요. (55쪽)
책은 내가 아는 세상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며 내가 당연시하는 일상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끊임없이 일깨웁니다. 그리하여 내가 누리는 안락에 감사하고 내가 겪는 아픔을 고집하지 않게 하며,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지 않는다는 것을 아무 원망 없이 받아들이게 하지요. (11쪽)
변함없이 나는 즐거움을 위해 읽는다. 그리고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도 읽는다. 내가 당연시하는 일상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깨닫기 위해 읽고, 내가 누리는 안락에 감사하고, 내가 겪는 아픔을 고집하지 않기 위해 읽는다.
시립 도서관에서 20년 넘게 강사로 활동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제안한 <아이와 함께 책 읽는 법>에 많이 공감하게 된다. 평소 내 지론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 그런 것 같다.
아이들에게 독서를 권하고 싶다면 독서 교육을 시키는 대신 직접 책을 읽으십시오(126쪽), 아이들이 독서에 재미를 느끼려면 무엇보다 좋아하는 책을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읽도록 자유를 주어야 합니다(128쪽), 수십권씩 되는 전집으로 책장을 빽빽이 채우는 일은 부디 참아주세요, 중구난방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독후감 쓰라고 하지 마세요,가 그 세부적인 방침이다. 모두 다 맞는 말씀, 혼자서 고개 끄덕인다.
마지막으로, <소리 내어 읽는 법> 꼭지에서도 마음에 드는 문장을 만났다.
책을 읽다가 졸릴 때 낭독을 하면 좋습니다. 독서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똑같은 문장에서 맴도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졸려서 그럴 수도 있고 딴생각을 하느라 그럴 수도 있는데, 아무튼 이럴 때는 책을 덮고 자거나 딴 생각에 몰입하는 게 제일이지만 사정상 그럴 수 없다면 소리를 내어 읽으세요. 나갔던 정신을 불러오는 데는 책 읽는 내 목소리만 한 게 없습니다. (121쪽)
나갔던 정신을 불러오는 데는 책 읽는 내 목소리만 한 게 없습니다,가 그것인데, 아, 어찌 알았나. 이 방법은 내가 원서를 읽다가 까무룩 잠이 들려 할 때마다 나간 정신을 불러오기 위해 써먹는 방법이다.
책 읽는 내 목소리는 나를 깨운다. 깨우고야 만다. 기어이. 꼭.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여도 좋았겠지만, 애정하는 아무개님으로부터 제공 받아 리뷰를 쓰는 것도 좋다.
아무개님, 땡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