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7월 31일(일)
왜: 영화 보고 허탈해서
마신 양: 맥주 6병, 그거 먹고 취했다니 피곤했나보다
영화를 보고 술을 마시는 거, 매우 보편화된 코스지만 요즘은 그래본 적이 없다. 영화를 혼자 봐왔던 탓인데, 어젠 간만에 미녀와 영화를 봤고, 허탈감에 사로잡혀 술을 마셨다.
그 미녀는 <아일랜드>를 봤고, 난 <금자씨> 선약이 있다. 그래서 남은 건 <로봇>과 <스텔스>, 치열한 고민 끝에 내린 선택은 후자였다.
영화 선택을 고민할 때 본 <스텔스>의 포스터에는 주연배우 이름이 없었다. 다만 감독이 <트리플 X>를 만든 사람이란 것만 쓰여 있다. 영화를 보면서 그 이유를 알았다. 전투기 씬을 찍느라 돈을 다 써서 우리가 알만한 사람은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 주연배우 이름을 썼다간 관객이 오히려 떨어질 상황.
-제이미 폭스: <레이>와 <에니 기븐 선데이>에 나온, 그 중 가장 유명한 배우. 하지만 그래서 그런지 중간에 죽어서 후반엔 안나온다.
-조쉬 루카스; 조지 루카스는 안다
-샘 셰퍼드; 세퍼드가 유명한 개라는 건 아는데, 샘 세퍼드는 누굴까?
-제시카 비엘: 미모의 여자가 하나쯤은 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기용된 듯. 안나와도 됐는데.
스텔스가 폭격을 마치고 도망가는 장면. 미국에 대한 공격을 모의한다는 이유로
빌딩을 날려버리는 과감성....
가장 무난하게 영화를 보는 방법 첫번째. 하루에 한번 하늘을 보는 것도 어려우니 이참에 하늘이나 마음껏 보자고 마음을 먹는 것. 줄거리 생각하고 미국인들이 생명을 존중하는 척하는 걸 불평하기 시작하면 급속도로 재미가 없어진다.
두 번째. 이성의 손을 꼭 붙잡고 본다. 그러니까 영화는 배경일 뿐이고 주인공은 우리 둘이라고 생각하는거다. 사랑을 속삭이는 데 있어서 63빌딩 스카이라운지보다야 영화 장면이 더 멋진 배경이 아닐까? 게다가 조명도 어두우니 말이다. 우리 앞의 커플도 영화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했다.
세 번째. 우린 반대로 했는데, 술을 먼저 먹고 영화를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적당히 고조된 기분은 우리로 하여금 영화에 대해 관대해지게 만든다. 잠이라도 자면 금상첨화다.
네 번째. 영화에 비행기가 총 몇 대 나오는지, 우리편 비행기는 그 중 몇 대를 격추시키는지 이딴 걸 세고 있으면 줄거리나 기타 말이 안되는 장면들에 관심을 쏟지 않게 된다.
다섯 번째. 아이들과 같이 간다. 12세 이상 관람가지만, 보호자가 있으면 그 이하도 입장할 수 있다. 12세가 넘어가면 좀 심심해할테지만 그 이하라면 아주 좋아라 할거다. 프로이드가인간의 발달사에서 구강기와 항문기, 남근기를 거쳐서 비행기(airplane period)로 나아간다고 했던 것도 다 그런 이유다. 나도 그 나이 때 종이비행기 엄청 접어서 날렸다.
정리하자면,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아주 좋은 영화였다. 비행기 조종사가 될 사람, 하늘만 봐도 좋다는 사람, 영화에 투자한 사람들의 적극적인 관람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