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가!”
“또보자”
작별인사를 하는 내 마음은 서운함으로 가득찼다. 걔들이 뭘 잘못했다는 게 아니라, 헤어지기는 게 너무도 아쉬워서다. 1박2일의 짧은 여행이지만, 작별의 순간에 이토록 짙은 아쉬움을 남겨줄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1. 친구들
우린 고2 때 같은 반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23년간 변함없는 우정을 쌓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니다. ‘변함없는’이란 말은 틀렸다. 다른 애들은 아니지만 난 많이 방황했다. 그들이 내 진정한 친구인가에 대해서 회의도 많이 했었고, 그들을 의도적으로 피하기도 했다. 그 기간은 대략 2년을 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날 기다려줬다. 지금은 그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생각해 본다. 내가 고2 때 다른 반이 되었더라면 그 반에서 또 이런 친구들을 찾았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고1 때나 고3 때 만난 친구들과는-심지어 같은 과를 간 애들조차-만남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걸 고려하면 내가 고2 때 14반이 된 것은 굉장한 행운이었다. 그걸 난 너무도 늦게 깨달았다.
난 왜 방황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써클 때문일 것이다. 대학 1학년 때, 난 우리 써클에 거의 미쳐 있었다. 그 수많은 집회에 다 참석하고, 써클 애들이랑 틈나는대로 건수를 만들어 놀았다. 같은 기 여자애들이 좋았고, 누나 선배들이 좋았다. 그렇게 화려하게 놀다보니 시커먼 남자들끼리 모여서 소주를 마시고, 가끔은 다른 사람이 남긴 안주를 가져다 먹는 그런 삶을 기피했던 거다. 얘네들이 나의 가장 좋은 친구임을 알게 된 건 오랜 방황이 끝나고 복귀한 뒤, 더 솔직하게 말하면 대략 5년쯤 전의 일이다.
아쉬운 건 있다. 내가 모임에 열성적이지 않은 것에 대해 쓴소리를 해주던 친구 하나는 지금 미국에 있다. 원래 여섯명이었던 ‘우리들’은 그래서 한명이 부족한 상태인데, 그 친구의 사정상-영주권이 없는 관계로 일단 미국을 떠나면 다시 못들어간단다-앞으로도 쭉 다섯이서 지내야 할 것 같다. 그게 너무도 아쉬운 것은 내가 우리들 모임에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 난 그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지금은 아닌데.
2. 여행
언제부터인가 여름마다 같이 여행을 했다. 가족 동반이지만 난 언제나 혼자 갔고, 그들은 그런 날 잘 챙겨 줬다. 그래도 올 여름에는 여자를 데리고 가야겠다고 느꼈는데, 그건 작년 여행 때 겪은 일 때문이었다. 작년에 쓴 글에서 언급했을텐데 다시금 얘기하자면 이렇다. 여행 코스 중 상록리조트의 아쿠아월드에서 노는 게 있었다. 국내 최대의 미끄럼틀이 있다는 그 수영장인데, 거기 갔더니 다들 자기 애들을 챙기느라 바쁜 거다. 수영장에서 익사사고가 빈발하는 걸 감안하면 그게 당연한 거지만, 전혀 서운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물이 회전하는 길다란 풀에서 난 세시간을 보냈다. 물의 흐름을 따라 걷거나 튜브를 타면서. “그냥 운동이나 하지 뭐”라는 심정이었는데, 그동안 몇십바퀴를 돌았는지 모른다. 날 찾다 포기한 친구들이 방송을 하는 바람에 다시금 만났는데, 착한 친구들은 점심을 먹고 난 이후엔 나랑 놀아주려 애를 썼다. 그래도 이번 여름엔 수소문을 해서 여자를 구했다. 원래 가기로 한 곳은 제주도였는데, 일이 잘못되어 가족동반 대신 남자들끼리로, 제주도 대신 부천의 상동이란 유흥가로 변경이 되었다. 난 처음에 그게 가족이 없는 날 위해서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그건 아니란다. 자기들도 처자식을 떼어놓고 가면 더 편하다나. 진짜 의도가 어떻든간에 우린 1박2일을 무척이나 재미있게 놀았고, 내게 과분한 친구들을 준 그분께 감사드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