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미국서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선생님을 환영하는 술자리가 있었습니다. 산뜻하게 1차로 끝내고 집에 가자고 생각했고, 거기까진 비교적 잘 되었습니다. 8시에 술자리를 파한 뒤 집으로 달려왔더니 10시가 조금 안되었더군요. 소주 1병밖에 안마셔서 정신도 말짱한데 글이나 흐드러지게 써야겠다고 생각하며 양치질을 하고 있었어요. 그때 휴대폰이 울립니다.
"야, 내 고민도 들을 겸, 한잔 하자. 다들 온단다."
전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그러고보니 그들을 본지도 석달이 훨씬 넘었네요. 단란한 곳만 간다고 제가 싫어한는 바로 그 친구들입니다. 책을 몇권 싸들고 택시를 탔습니다. 소주 한병 이하는 술로 안치는지라 어제의 술일기는 없을 뻔 했지만, 발달한 통신망 덕에 112번째 일기를 쓰게 되었네요.
역시나, 그들이 모인 집은 단란한 곳이었습니다. 고민을 꼭 그런 곳에서 말해야 하는건지요. 파트너가 나와서 앉았고-미모가 다들 뛰어나더군요-그런 분위기가 내키지 않았던 저는 친구들 말을 들으며 그림만 그렸습니다.
제 카메라폰의 화소가 지극히 낮아서 그렇지, 다들 잘그렸다고 감탄합디다. 그걸 감안하고 봐주시기 바랍니다. 이건 우롱차라는 건데요, 그런 곳에 가면 으레 한캔씩 줍니다. 맛은 뭐, 녹차 맛이라고 할까요. 색깔은 영락없이 맥주 색깔입니다^^
양주를 그냥 마시면 스트레이트, 이렇게 큰잔에 얼음을 섞어서 마시면 언더록(온더록인가요?)이 되는거죠. 전 그냥 스트레이트로 마십니다. 어제 역시, 남들이 딴짓할 때 열심히 술만 마셨습니다.
이건 얼음통입니다. 진짜로 보면 정말 잘그렸어요. 저희 어머님이 감탄하실 정도랍니다^^ 하여간 얼음통 안에 집게가 들어간 게 보이고, 그 옆에 있는 건 물수건입니다. 어제 웨이터가 30분마다 저런 얼음통 4개를 들고 들어오더군요.
이건 뭔지 이해가 안가실 겁니다. 휴지를 저렇게 예술적으로 꽂아놓은 건데요, 아주 예쁘더군요. 제 말을 듣고나서 보니 휴지 꽂아둔 거라는 게 보이시죠?
이거야 다 아시다시피 재떨이입니다. 저야 뭐 담배를 안피우니 하등 소용없는 물건이죠.
그런 곳에 가면 늘 과일안주가 나옵니다. 다른 안주도 있지만 다들 과일만 시키더군요. 그게 제겐 고역입니다. 바나나만 먹을 수 있고 딴건 못먹거든요. 이 그림은 과일안주를 접시에 덜어놓은 모습인데요, 끝까지 전 손도 안댔습니다. 그 뒤에 맥주잔이 보이죠?
새벽 한시가 지나고 두시가 지났습니다. 아무도 갈 생각을 안하더군요. 두시반 쯤 한 친구가 정신을 잃었고, 그러자 파장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제가 거길 나온 시각은 세시, 한 세시간쯤 잤을까요. 아침에 수업준비하느라고 조금 바빴는데, 점심을 먹고 난 지금은 약간의 여유가 생겨 어제 술일기를 써 봅니다.
전 그리 모진 놈은 아닌가 봅니다. 지난번에 단란한 곳 문제로 한바탕 했던 친구들인데, 그들이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고 앞으로 잘 지내자, 우리만한 친구가 또 어디 있냐고 하니까 마음이 풀어지대요. 그런데, 왜 그런 얘기를 단란한 곳에서 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푼 저는 뭔지.
저 높은 분께 빌어 봅니다. 그들이 대오각성해 단란한 곳을 더이상 안가기를, 그냥 맥주집에서 목이라도 축이면서 얘기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요. 그날이 오면 그들과 정말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