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3월 24일(토)
마신 양: 정신을 잃은 나머지 모자를 잃어버렸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내가 아는 이솝 우화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춥다고 천막에 같이 있어도 되냐고 머리를 들이민 낙타는 점차 몸의 다른 부분도 천막 속으로 집어넣었고, 선의로 낙타를 받아들인 아라비아 상인은 결국 쫓겨나야 했다.
기생충학을 하는 친구와 술을 마셨다. 이야기가 잘 통하는 친구인지라 그에게 속으로만 끙끙 앓던 문제를 꺼냈다. 그는 가차없이 말했다.
“넌 바보야.”
내가 학교에 부임을 했을 때, 내 실험실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교수를 뽑은 90년 이래 기생충학 교수가 줄곧 없었기 때문이다. 난 99년 이 학교에 왔고, 뒤늦게 온 나를 위해 학교에선, 돈 많은 모 학교처럼 1억원의 정착비를 주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간단한 실험은 할 수 있는 장비를 사줬다. 그때부터 열심히 연구를 했다면 뭔가 달라졌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난 그러지 못했다. “넌 학교 일을 하라고 뽑은 거야”라며 들어가자마자 각종 위원회에 나를 집어넣은 학교 탓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더 중요한 건 내 의지와 능력이 부족한 데 있었다. 그나마 산 기계조차 난 제대로 활용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내게 한 과의 장으로서 가져야 할 자질에 부족하다는 데 있었다. 내 실험실이 놀고 있다는 걸 안 사람들이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왔다. 예방의학의 교수가 부탁을 해왔다.
“우리 전공의들이 있을 공간이 없는데 어떻게 안되겠니?”
내가 당시 했던 대답은 이랬다.
“제 개인 재산도 아니고 잘 쓰지도 않는데, 필요한 사람이 쓰면 좋지요 뭐.”
난 내게 배정된 방 세 개 중 조그만 방을 내줬다. 나머지 방 두 개만 해도 내가 아무리 큰 실험을 한다해도 그리 부족한 건 아니었다. 우리 과에 교수가 하나 더 들어온다 해도 말이다.
하지만 내 선의는 지나친 착각이었음이 곧 드러났다. 예방의학 교실은 그 조그만 방에 그치지 않고, 방과 방 사이를 연결하는 문을 통해 다른 실험실까지 잠식해 들어왔다. 온갖 잡동사니들이 실험실에 쌓여 있는 걸 본 나는 더 이상 못참겠다 싶어 항의를 했다. 짐은 곧 치워졌지만 잠시 뿐이었고, 갈 때마다 실험실은 점점 좁아졌다. 연구라는 걸 본격적으로 시작한 올해부터 난 그 댓가를 치루기 시작했다. 예방의학교실과 그 형제 격인 산업의학과는 온갖 기계를 들여놨고, 그 기계들은 또다른 방 하나를 다 차지했다. 내가 사놓은 냉동고엔 그들의 샘플이 가득 차, 양말 한켤레조차 넣을 공간도 없었다. 그리고 원래 우리 재산이었던 기계들, 예컨대 저울과 pH 미터처럼 공통으로 쓰는 것들은 이미 누군가가 훔쳐간 뒤였다. 뒤늦게 방 하나라도 지키려고 열심히 뭔가 하고 있지만, 그들이 들여놓은 기계들이 어찌나 용량을 많이 차지하는지 뭘 하려고 전원만 켜면 용량초과로 정전이 돼 버린다. 이래서 다른 주임교수들이, 남이 보면 욕심을 부린다 싶도록 타인에게 인색한 것이리라. 난 좋게 말하면 순진했고, 냉정히 말하면 바보였다. 친구의 질타는 전적으로 옳다.
친구는 그래도 날 위로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그렇다. 앞으로 내가 잘 처신한다면, 이 사태는 잘 마무리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의지만 있다면. 그리고 모든 사람이 낙타의 기질을 가졌다는 걸 잊어버리지만 않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