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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소망 그리고 호랑이
박금산 지음 / 문학수첩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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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다.’


성경 구절이지만 너무나 유명해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의 제목은 믿음과 소망 사이에 반점(,)을 제거하여 나란히 놓았습니다. ‘사랑’은 없애버리고 그 자리에 ‘그리고 호랑이’를 넣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답을 찾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어디에서 태어났을까”(9쪽) 질문하는 ‘나’의 기원을 찾기 위해 ‘폴란드에서 태어난 고조할머니 헬렌,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증조할머니 라헬, 한국에서 태어난 할머니 데보라, 미국에서 태어난 엄마 카렌’의 역사를 거쳐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판타지의 옷을 입고 등장한 여성 호랑이는 햄버거를 좋아하는 맹견 릴리를 닮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난제는 하나 더 있습니다. “-것 같다”와 “-고 한다”의 반복입니다. 왜 이런 문체를 사용할까요? 해답보다는 질문이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는 미로 속을 헤매는 기분이 들게 합니다. 게다가 저는 길치랍니다.


나․릴리․여성 호랑이


처음으로 돌아가 ‘나’의 이야기로 방향키를 잡아봅니다. 나는 산책 가드로 맹견 릴리를 선택합니다. 그러나 햄버거를 좋아하는 릴리의 취향까지 아는 남성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면 목줄을 풀면 문다는 릴리의 목줄을 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격당한 남성’이라는 팩트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릴리를 동굴에 숨겨놓는다고 해도 소문은 퍼집니다. 


그러나 이상하죠? 개가 아닌 호랑이가 공격했다고들 하니까요. 호랑이라니. “그리고 호랑이”는 비교적 빨리 등장했습니다. 새벽 3시에 현관 앞에 갑자기 나타난 여성 호랑이는 릴리를 닮았습니다. 사람으로도 변신이 가능한 호랑이는 ‘나’와 옷도 나누어 입었습니다. 호랑이와 함께 릴리를 집으로 데려온 나는 이제 책임져야 합니다.


여성 4대의 역사 


“어쩌면 큰 돈이 될지 모르”(137쪽)는 호랑이는 라헬 할머니를 떠오르게 했습니다. 라헬 할머니의 비망록엔 ‘사진’이란 증거로 노근리 사건의 진실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습니다. 친구 할라의 파트너가 궁금해하는, 데보라 할머니의 삶은 제주 4.3 사건의 상처를 관통합니다.


‘나’가 할머니들을 생각하며 쓰는 글엔 “이리저리 폭력을 피해 다닌 헬렌과 라헬”(312쪽)도 포함됩니다. 폴란드 바르샤바 인근 유대인 게토에서 태어난 헬렌은 우크라이나 오데사에 이르러 기독교와 독립운동을 배우러 온 한국 유학생을 만나 라헬을 낳았습니다. 혼자가 된 헬렌은 라헬과 함께 상하이를 거쳐 오키나와의 도시 나하로 갔습니다. 라헬의 아버지를 찾고 싶어 한국으로 갔지만 만나지 못합니다. 대신 데보라를 입양하게 됩니다.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횡단해야 했던 할머니들의 여정은 살아남기 위해 탈주한 기록입니다. 20세기를 살았던 네 세대 여성들의 삶에는 제국주의의 폭력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습니다. 개인은 단지 ‘나’로 살 수 없습니다. ‘나’는 ‘우리’가 되고 ‘우리’가 살아내는 삶은 역사입니다.


호랑이의 다른 이름, 사랑․유희․폭력


제목에서 성경을 떠올리게 되는 건 우연이 아닙니다. 이야기 곳곳에 유대교와 기독교가 등장하며 종교의 역할을 질문합니다.


13장에 도착해 ‘나’는 제주의 서점에서 《고린도전서》를 읽다가 “믿음, 소망, 사랑. 이 중에 제일은 사랑”(381쪽)을 마주했습니다. “모든”과 함께하는 사랑에 거부감을 느끼며 다시 출생의 기원을 추측했습니다. 사랑, 유희, 폭력 중 무엇일까. 그리고 호랑이를 찾았습니다.


호랑이의 뱃속에서 나를 공격했던 그를 만나 이곳에서 “나가”(391쪽)라고 말했습니다. 반복하면 죽이겠다는 협박과 함께. 피해자이자 생존자이면서 가해자라는 사실을 인정한 나는 호랑이를 놓아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랑과 유희와 폭력은 함께 들어 있”(396쪽)는 것이라고. 


사랑이 ‘모든’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제일이 될 수도 없습니다. 대신 부분이 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호랑이가 나인 ‘것 같고’ 릴리인 것 ‘같은 것’처럼.


“–고 한다”와 “–것 같다”는 믿음 소망, 불확실성의 정직


이야기 속엔 ‘-고 한다’와 ‘-것 같다’가 반복됩니다. ‘-고 한다’는 타인의 말이나 글에 대한 전달이자 인용입니다. 전달하는 나는 그 말에 책임질 순 없습니다. ‘-것 같다’는 추측입니다. 추측엔 주관성이 개입될 수밖에 없습니다. 


‘-고 한다’와 ‘-것 같다’의 세계는 불확실합니다. 과거가 그렇듯 현재도, 느낌이 그렇듯 사실도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히브리서, 11:1)가 될 순 없습니다. 소망이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소망은 반점(,)이 없이 나란히 놓여야 합니다.


이야기는 여성들의 삶을 다룹니다. 남성(인 작가)에게 여성의 삶은 타자의 세계입니다. 다시 말해 -고 한다와 –것 같다의 세상일 테지요. 단언하지 않는 것은 정직함일 ‘것 같’습니다. 다른 한편으론, 겸손일 ‘것도 같’습니다. 


덧 - 이 소설은 제가 읽어낸 부분들보다 깊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전부 담기 어려워 제목을 중심에 두고 글을 풀어보았습니다. 쉽지 않은 소설이지만 많은 분들이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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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소망 그리고 호랑이
박금산 지음 / 문학수첩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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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소망, 사랑’에서 사랑이 대신 호랑이가 들어섰다. 4대를 걸친 여성들의 삶, 신에 대한 호명, 역사의 폭력이 얽힌 장대한 시간 속에서 태어남의 의미를 묻는 소설. 새로운 형식은 미로를 헤매는 기분이 들게 하지만 헤맴 끝에 도달하면 전지구적 삶을 고민하게 하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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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투스 - 인간의 품격을 결정하는 7가지 자본
도리스 메르틴 지음, 배명자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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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17년에 시라토리 하루히코의 <지성만이 무기다>를 읽으며 이 책이 자기계발서를 가장한 인문학서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알라딘의 책 분류를 대체로 받아들이는 편이지만 <지성만이 무기다>는 동의할 수 없었다.

 

이번엔 반대다. 알라딘 책 분류에 의하면 도리스 메르틴의 <아비투스>'인문학/교양인문학'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나는 이 책이 '자기계발서'라고 생각한다. 미국이나 한국식 자기계발서와의 차이점이라면 조금 더 전문가(학자)의 말을 인용하여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정도겠다.

 

책날개에 의하면 도리스 메르틴은 독일 사람이다. 그런데 예로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는 트럼프, 오바마, 빌 게이츠와 같은 미국인이 자주 등장한다. 이 책의 초판은 독일어로 쓰였을까, 영어로 쓰였을까 몇 번이나 의심했을 정도로 잦았다. 작가는 미국에서 출간되기를 희망해서 이런 식으로 자주 미국인들을 등장시킨 걸까, 아니면 자신이 영문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기 때문에 미국인들이 익숙한 걸까 오래 생각했다. 출판사에 물어보고 싶을 만큼 궁금했는데 결론은 독일어였을 것 같다는 쪽으로 기울고 끝났다. 가끔 한국어 옆에 병기된 언어가 독일어였기 때문이다.

 

이 책의 '1장 아비투스가 삶, 기회, 지위를 결정한다'에 의하면 '아비투스'(당연히) 부르디외의 용어이다. 작가는 부르디외의 구별짓기의 중심개념인 '아비투스'를 적극적으로 변용하여 7가지로 구분한다. 심리자본, 문화자본, 지식자본, 경제자본, 신체자본, 언어자본, 사회자본로 나누어 이 책의 2장부터 8장까지를 구성한다. 그리고 각각의 자본이 어떤 의미이며, 상류층, 중산층, 하류층은 어떻게 다른지, 어떻게 하면 최상류층(아마도 상위 1~3%)으로 올라갈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1장을 읽으며 가장 큰 의문은 부르디외가 '아비투스'를 연구하면서 '과연 아비투스를 바꿀 수 있다'고 말했는지였다. 그리고 사회학자 부르디외가 중산층들에게 아비투스를 열심히 공부하여 상류층으로 갈 것을 욕망해야 한다고 했는지였다. 전자의 답은 긍정일 수도 있겠지만, 후자의 답은 부정일 것 같다. 아직 구별짓기라는 두꺼운 책을 사두고 읽진 못했기에 단언할 수는 없지만 부르디외의 다른 글을 읽은 바에 의하면 부정에 가까울 것 같다.

 

두 번째 의문은 저자의 '예상독자'였다. 1장에 의하면 " 상위 3퍼센트를 위해 이 책을 쓴 게 아니다. 당신과 나 같은 보통 사람을 위해 썼다. 이런 계층 사다리의 중간에 있는 이들은 성과 지향 아비투스가 강할 것이"(34)라 한다. 당신과 나에 포함되는 계층 사다리 중간에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당신'은 짐작할 수 없으니 이 책의 "" 즉 저자를 토대로 짐작해 보려 한다. 저자는 대학에서 영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20년 넘게 기업과 개인에게 컨설팅과 강연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집필한 책은 전 세계 1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있다고도 한다. 그런 저자처럼 평범한 사람은 상위 10%부터 시작해서 (넉넉잡아도) 상위 30%일 듯하다. 그렇다면 나는 이 책에서의 '당신'이 아니니 이 책을 읽으며 허무맹랑하다거나 불편하다고 느끼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며 계속 불편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저자의 '구별짓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계속 상류층과 중산층을 구별지으며 상류층으로 가기 위한 방법을 알려 주려 한다. "중산층과 상류층의 차이는 비록 희미하지만 사라지지 않"(97)기에 "높이 오르고 싶다면 끊임없이 높은 곳의 코드를 이해하고 내면화해야 한다"(110)고 안내한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가능할까. 저자가 구분한 심리자본, 문화자본, 지식자본, 경제자본, 신체자본, 언어자본, 사회자본에 저자의 방식처럼 순위를 매기면 가장 높은 곳에 차지하는 자본은 역시 경제자본이 아닐까. 경제자본이 없으면 나머지 자본들은 쌓기 어려운 것은 아닐까.

 

혹자는 심리자본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심리자본은 "회복탄력성"이 중요하다. 회복탄력성이란 실패했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말한다. 실패했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은 성인이 된 후에는 어느 정도는 자본과 상관관계가 있다. 정말로 끈기 있고 열정 있는 사람이 몇 년을 열심히 아르바이트하여 모은 돈으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그 사업의 아이디어를 비슷하게 본뜬 대기업이 유통망을 중심으로 성장하는 바람에 사업이 완전히 망했다고 치자.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너무 잦으니.) 그가 다시 힘을 내어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다시 사업을 시작하기 쉬울까. 다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고 다시 돈을 모으고 다시 사업을 시작하느라 전보다 더 어려운 시간을 겪을 텐데 과연 회복탄력성을 갖기 쉬울까.

 

근래에 송영준의 <공부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를 읽었다. 2020년도 수능만점자 송영준은 고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사교육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수능만점자 15명 중에 그가 가장 주목을 받은 이유도 이런 이유 때문이겠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후에 누군가가 섣불리 송영준식 공부를 하겠다고 덤빈다면 말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는 중학교 수석 입학자(설사 저자의 평가처럼 그 학교가 대단한 학교는 아니었어도)였고 김해외국어고등학교에 사회적 배려 대상자로 입학했던 사람이다. 외고에 추천받아 합격했을 정도면 공부 재능이 없는 사람은 아니라는 말이다.

 

송영준의 공부법을 배우기에 앞서 떠올릴 점은 그를 제외한 수능만점자 14명이다. 회복탄력성을 생각하기에 앞서 떠올릴 점은 실패했을 때 다시 기회가 생길 수 있느냐의 여부다. 내가 자기계발서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전제부터 틀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아무도 사교육을 받지 않는 사회라면, 우리 사회가 실패해도 누구나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사회라면 그제서야 노력과 회복탄력성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일에는 재능이 뒷받침되니 자아 성찰과 자기 이해는 필수지만 말이다. (직업에 대한 서열화와 판타지가 없다면 자아 성찰도 지금보다는 더 가능해질 텐데.)

 

다시 아비투스로 돌아가, 이 책의 예상 독자가 아닌 내가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책에서 배울 점이 전혀 없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전세계가 얼마나 비슷해지고 있는지(우리나라 사람들이 갖고 있는 독일 교육 판타지(?)와는 달리 독일도 대학 졸업장이 계속 인기를 누리고 있고 대학교 역시 일반 대학과 명문 대학으로 나뉘고 여전히 졸업장과 학위를 대신할 대안은 없다(127-128)고 한다. 또 독일 역시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른 사람들을 배분해보니 노동자 계급 출신의 박사들 중에서는 10분의 1만이, 부유층 출신 중에는 5분의 1이 최고경영자가 되었다(130)고 한다) 배웠고, 판단력 있는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교양인이 되어야 한다는 내 믿음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상류층의 잘 관리된 아비투스는 역량을 깊고 넓게 확장한다. 경영학에서는 이런 사람을 T자형 인물이라고 부른다. T자의 세로 기둥은 탄탄한 전문 지식을, 가로 막대는 전문 분야와 맞닿아 있는 다른 분야에 대한 얕지만 넓은 지식을 상징한다.(138)")도 알게 되었다. (내가 제너럴리스트(generalist)가 되려는 이유는 상류층이 되고 싶어서는 아니지만 상류층도 원한다는데 상류층이 아닌 사람이라면 더더욱 원해야 하지 않겠나.)

 

2016년 독일연방은행의 가계순자산 보고서에 의하면 가계순자산이 상위 30퍼센트에 속하려면 모든 부채를 차감한 가계순자산이 약 26천만원이 있어야 하고 상위 10퍼센트에 속하려면 약 65천만원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검색해보니 비슷한 시기의 우리나라도 이와 비슷했다. 내가 부자의 기준을 어디에서 배우겠는가. 이외에도 상류층과 중산층에 대해 상세한 숫자들로 이야기하고 있어서 놀랍고도 놀라웠다. 나는 이렇게 부자의 기준을 숫자로 상세히 이야기하는 책을 처음 읽었으니 이 책을 읽고 쌓은 새로운 지식은 여러 모로 많았다고 하겠다.

 

이 책을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읽고 서평을 마무리했다는 점에서 오랜만에 스스로를 칭찬하고 싶다. 그러나 출판사에서 리뷰단을 모집한 후에 기대한 서평은 이런 것은 아닐 텐데 싶어 스스로를 혼내기도 해야겠다.

 

 

- 이 리뷰는 다산북스에서 모집한 <아비투스> 리뷰단에 당첨되어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고 쓴 리뷰입니다.

 

당신의 아비투스는 당신의 과거, 가족, 교육, 경력을 통해 형성된다.(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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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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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기야 울었다. 담론1부를 읽으며, 왜 내가 앞서 읽은 세 권의 책(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숲』: 실제로 책엔 위 세 권의 책들의 내용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내용들이 많긴 하다.)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실까, 선생님도 이제(이 강의를 하실 당시에) 늙으셨구나. 실망스럽다 했던 나는 이 책의 마지막장 희망의 언어 석과불식을 읽으며 울었다.

 

고등학교 때 읽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보다는 대학 새내기 때 읽은 나무야 나무야가 와닿았었다. 10년 가까이 매년 나무야 나무야를 읽으며 따라야 할 발자취를 확인했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선생님의 글을 품었었지만, 선생님이 살아계실 때 한 번도 뵌 적이 없다.

 

괜한 고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글보다 못한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을 알기에 혹여나 선생님께 실망하면 어쩌나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나는 선생님의 실천적이지 않은 모습에 이미 실망했었다. 왜 선생님은 출소 후 사회운동에 참여하지 않으실까. 나는 그 질문의 답을 비겁함이라 해석했었다.

 

이 책의 2부를 읽으면서야 진짜 답을 알았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지만, 나는 그 답을 사유의 연장선상으로 받아들였었다. 어리석었다.

 

달리기 경주 때문은 아니지만 실천이 부재한 감옥 속에서 독서만으로 자기의 생각을 키워나간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마 그 후부터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부지런히 듣게 됩니다. 아마 수형 생활 20년 동안 책 읽는 시간만큼이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살아온 이야기는 이를테면 그 사람이 실제로 겪은 과거의 실천입니다. 그것을 나의 목발로 삼아서 걸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26-227)

 

학교 사택에서 태어나 줄곧 학교에서, 책에서, 교실에서 생각을 키워 왔던 나에게는 엄청난 파괴력으로 다가왔습니다. 함한 세상을 힘겹게 살아온 그 참혹한 실패의 경험들은 육중한 무게로 나의 사유를 견인했습니다. 발밑의 땅을 잃고 공중으로 부양하던 생각들이 이제는 발목이 빠질 정도의 진흙 위에 서게 됩니다.”(227)

 

답답하기 짝이 없는 억지 주장을 펴는 사람도 있고, 사회의 최말단에 밀려나 있는 자기의 처지와는 반대로 지극히 보수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 사람도 많습니다. 심지어는 나를 두고도 사람은 좋은데 사상은 나쁘다 결론을 내리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 처할 경우 대부분의 먹물들은 연설하려고 합니다. 나는 그 점을 극히 경계했습니다. 우선 그 사람의 인생사를 알고 있는 경우에는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 사람의 생각은 그가 살아온 삶의 역사적(?) 결론이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다시 쓸 수 없듯이 그 사람의 생각에 관여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나 자신의 생각 역시 옳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수많은 삶 중의 하나에 불과합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승인하고 존중하는 정서를 키워 가게 됩니다.”(229-230쪽)

 

선생님의 (감옥에서의) 20년은 어땠을까. 나무야 나무야를 반복해서 읽었으면서도 짐작해보려 하지 않았다. 20대 후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무기징역수로 감옥에서 산다는 건 어떤 삶이었을까. 선생님의 삶은 이해하려 들지 않으면서 선생님의 글 속에 있는 공감 가는 사유를 내 멋대로 편집하려 든 것은 아니었을까.

 

그 사람의 생각은 그가 살아온 삶의 역사적 결론이라면 역사를 다시 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사람의 생각에 관여할 수 없. 어쩌면 서글프고 어쩌면 당연한 이 결론이 선생님을 운동과 멀어지게 했겠구나. 이제야 깨달았다. 그렇더라도, 선생님이 자본주의의 진짜 얼굴을 보여주기 위한 인문학 강의마저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면 선생님의 삶이 최선은 아니었을까. 뒤늦게서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 책의 ‘221장 상품과 자본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친절한 해설서 같았다. 이어지는 22장부터 25장까지 선생님은 현재 우리의 삶과 사회에 대한 자신의 목소리를 충분히 내고 계셨다. 자본주의가 망가뜨린 인간(적 삶)’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누구의 것도 충분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계속 질문하고 계속 사유하는 것뿐이다.

 

그것은 오늘날도 다름이 없습니다. 독립된 개혁의 물적 토대를 만들어 내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당면 과제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회적 공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생각나는 것이 공자입니다. “군자도 궁할 때가 있습니까?”라는 자로의 질문과 군자는 원래 궁한 법이라네라는 공자의 답변입니다. 궁하면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자세입니다. 독립된 공간과 집단적 지성 그리고 그러한 소통 구조를 사회화하는 일이 과제라 할 수 있습니다.”(394)

 

이 과제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지식인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품성양심”(405)이다. 선생님이 감옥에 있던 20년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보적인) 사상을 버렸지만 양심의 가책 때문에 함께한 사람들은 남았다. 양심은 사람의 얼굴”(410)을 볼 수 있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마지막 장에서야 선생님은 감옥에서의 20년을 어떻게 버텼는지 이야기한다.

 

옆방의 자살 때문이 아니더라도 나로서는 남한산성의 혹독한 임사 체험에서부터 20년 무기징역을 살아오는 동안 수시로 고민했습니다. 나는 왜 자살하지 않고 기약 없는 무기징역을 살고 있는가?

 

내가 자살하지 않은 이유는 햇볕때문이었습니다. 겨울 독방에서 만나는 햇볕은 비스듬히 벽을 타고 내려와 마룻바닥에서 최대의 크기가 되었다가 맞은편 벽을 타고 창밖으로 나갑니다. 길어야 두 시간이었고 가장 클 때가 신문지 크기였습니다. 신문지만 한 햇볕을 무릎 위에 받고 있을 때의 따스함은 살아 있음의 어떤 절정이었습니다. <중략>

 

내가 자살하지 않은 이유가 햇볕이라고 한다면,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하루하루의 깨달음과 공부였습니다. 햇볕이 죽지 않은이유였다면, 깨달음과 공부는 살아가는이유였습니다. 여러분의 여정에 햇볕과 함께 끊임없는 성찰이 함께하기를 빕니다.

 

다음으로 자기의 이유에 관한 것입니다. 네덜란드의 의사이며 작가인 반 에덴의 동화 어린 요한의 버섯 이야기입니다.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산책을 갑니다. 산책로 길섶에 버섯 군락지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버섯 중의 하나를 지팡이로 가리키면서 얘야, 이건 독버섯이야!”하고 가르쳐 줍니다. 독버섯으로 지목된 버섯이 충격을 받고 쓰러집니다. 옆에 있던 친구가 그를 위로합니다. 그가 베푼 친절과 우정을 들어 절대로 독버섯이 아님을 역설합니다. 그러나 그에게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정확하게 자기를 지목하여 독버섯이라고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위로하다 위로하다 최후로 친구가 하는 말이 그건 사람들이 하는 말이야!”였습니다. 아마 이 말이 동화의 마지막 구절이라고 기억됩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이것입니다. ‘독버섯은 사람들의 식탁의 논리입니다. 버섯을 식용으로 하는 사람들의 논리입니다. 버섯은 모름지기 버섯의 이유로 판단해야 합니다. ‘자기의 이유’, 이것은 우리가 지켜야 할 자부심이기도 합니다. ‘자기의 이유를 가지고 있는 한 아무리 멀고 힘든 여정이라 하더라도 결코 좌절하지 않습니다. ‘자기(自己)의 이유(理由)’를 줄이면 자유(自由)’가 되기 때문입니다.”(424-426)

 

이 부분이 나를 울렸다. 선생님의 감옥에서의 20년이 가슴 아파서(가슴에 와닿아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셔서’, 감동받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하는 말이 아니라 자기의 이유로 살아야 자유가 된다는 말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와도 연관된다.

앞으로도 내 멋대로살 테고 내 가치관에 따라 살 수밖에 없겠다. 그러면서도 가끔 사람들이 하는 말에 흔들렸고 고민했다. “햇볕과 함께 끊임없는 성찰이 있다, 그렇게 살기 위해 지금까지 노력해왔다면 이제 그만 흔들려도 좋을 일이다. 선생님은 마지막까지 나를 감동시켰다.

 

이제 환상과 거품을 청산”(420)하고 환상과 거품으로 가려져 있던 우리의 삶과 우리 사회의 근본적 구조를 직시하는 일”(421)사람을 키우는 일”(422)을 통해서, “그 사회를 인간적인 사회로 만드는 일에 매진해야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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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에 관하여 - 비판적 성찰의 일상화
강남순 지음 / 동녘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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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부제는 "비판적 성찰의 일상화"다. 제목과 이어보자면, '배움은 비판적 성찰의 일상화다' 가 되겠다.

비판적 성찰은 무엇인가. 이 책의 서문에 친절하게 제시되어 있다. 우선 "무엇도 자명한 것은 없다"는 전제를 세워야 한다. 즉 "진정한 배움을 위해서는 우리가 자명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물음표를 붙여야 한다."(6쪽)

전제를 세운 후 세 가지 단계를 통해 가능하다고 말한다. "묘사적 단계, 분석적 단계, 비판적 단계"다. 스스로 묘사하고 분석한 후에야 비판이 가능하다. "비판적으로 '사유'하고 사유에 근거 해 '판단'하며 그 판단이 개혁과 변화를 모색하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배움이 가능하게 된다."(7쪽) 나 역시 그런 과정을 거쳐야만 진짜 내 것이 된다고 생각하기에 저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이 책은 저자의 위와 같은 생각이 담긴 91편의 에세이집이다. 1장은 "살아감, 그 배움의 여정"이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계속 배울 수밖에 없다. 무엇을 어떻게 배우는가.

"자신이 아닌 어떤 사람의 모조품이 되지 마라. (…) 눈 속에서 자신의 고유한 발자국을 만들어가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21쪽)

저자는 '토마스 크바스토프'의 말을 인용하여 우리가 배워야 할 대상(혹은 가꾸어가야 할 대상)은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대체 불가능한 유일성"을 가진 나라고 말한다. 이는 '나르시시즘'이 아니다. '내가 나로 살아간다'는 의미는 '나'라는 존재를 앎으로 인해 '타자'의 존재도 배운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자기 사랑'을 배우고 연습하지 않으면, '타자 사랑'을 하는 법도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자기 사랑'이란 자동으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배워야 하고 연습해야 하는 것이다."(89쪽)

"자신의 주변과 연계하고 반응하는 방식이 이렇게 사람마다 다른 것을 보면서, 사실상 각기 다른 모습들이 특정한 사람에게 고정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 속에 모두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하나의 나'가 아닌 것이다."(30쪽)

'나'에게는 '타인과는 너무나도 다르고 특별한 나'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수없이 많은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 '다양한 나'로 성장한다. 즉, 나만 사랑받을 존재라고 주장하는 나르시시즘과 다르게 '나를 배운다'는 의미는 '연대'를 가능케 한다. 

2장이 "살아 있는 텍스트, 타자의 얼굴들"이 되는 이유다. 나를 들여다 보는 과정에서 "타자의 얼굴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법을 배운다면" 나와 너와 다르다고 단정내릴 수만은 없게 될 것이다.

타자의 얼굴을 배우는 행위는 "사랑이 치열한 생명 긍정의 희망"(3장)임을 알게 되고 "인식의 사각 지대를 넘어"(4장) "감히 스스로 생각"(5장)할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책 속에 길이 있"으니 계속 배우"려는 시도다.

"인간은 누구나 각가의 인식록적 한계는 물론 자신의 정황에 한계 지워진 존재라는 점에서 그 한계들을 넘어서기 위한 '부단한 배움'이 없을 때 독선과 아집에 빠지게 된다. 배움을 멈춘 인간은 '나'를 찾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그만 배워라"가 아니라 "어떤 종류의 배움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가'라는 근원적 물음이 먼저 제시되어야 하는 것이다."(276쪽)

"한 권의 '좋은' 책이 우리에게 가져오는 것은 맹목적 '정보'가 아닌 다층적 '세계들'이다. '나의 존재함'이란 개별적 존재로서의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개별적 나'는 타자와의 절대적 분리 속에서는 불가능하다. 좋은 책은 바로 나-타자-세계의 다양한 존재 방식을 담은 '다층적 세계들'과의 만남을 담고 있다. <중략> 이 점에서 인간은 '홀로'이면서 동시에 '함께 존재'라는 것, 그 '홀로-함께 존재'로서 이 세계에 개입해야 하는 책임성. '좋은' 책이 우리에게 인식하게 하는 중요한 통찰이다."(278-279쪽)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지식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다. 계속 배우는 과정 속에서 나라는 존재를 인식함과 동시에 나라는 존재의 한계를 깨닫기 위해서다. 한계가 있는 나는 타인과 함께 존재하는 과정 속에서 내가 이 세상에 책임이 있음을 배운다. 독서는 그런 과정에 이르도록 돕는 수단이다.

그러다 보면 대안"을 생각하게 된다. 나만 잘 살면 된다고 말하고, 끊임없이 타인을 배척하고 미워하게 만드는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함께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하게 된다.

"역사의 변화는 언제나 새로운 대안적 세계를 꿈꾸고 실천하고자 무수한 시도를 하는 '소수'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희망의 근거는 '성공과 승리의 보장'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렇게 보다 나은 대안 공동체를 위하여 씨름하고 새로운 시도들을 과감히 해내는 바로 그 '과정' 속에 있다. 대안을 꿈꾸는 이들은 확고한 성공의 보장 때문이 아니라, 그 성공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그 대안이 꿈꾸는 보다 나은 세계에 대한 열정과 신념으로 모험의 여정을 떠나는 것이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는 이렇게 모험을 감행하는 이들이 꿈꾸는 대안적 세계에 대한 열정으로 변화해왔다는 것을 우리는 끊임없이 기억해야 할 것이다."(367-368쪽)

그 가능성을 희망한다. 결과가 아닌 과정을 살아가는 삶은 불안하고 불확실하고 불투명하여 수없이 좌절하게 만든다. 좌절한다 해도 멈출 수 없다. 계속 배우며 살아갈 뿐이다. 그 끝에서도 끝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저항'은 그 자체로 '대안'이다.

덧- '5장 감히 스스로 생각하라' 중에서 "정황불감증, 그 정서적 폭력성에 대하여"는, 신영복 선생님이 돌아가셨을 때, K씨가 트위터에 올린 글에 관한 저자의 사색이 담겨 있다. 나와 생각이 비슷하여 공감했다.

실제로 (그가 신영복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바가 거의 없다"고 해도 신영복 선생님의 죽음이라는 '정황'에 이런 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저자의 말대로 "정황불감증"은 "정서적 폭력을 가하는 것"이 되는 동시에 "비인간화"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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