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7월 29일(금)
누구와: 미녀 둘과
마신 양: 소주 한병 반...플러스 알파
사장이 직원들을 엄청나게 부려먹는다. 부려먹는 정도가 아니라 가혹행위 수준이다. 도대체 쉴 시간을 안준다. 하지만 다른 직장으로 옮기는 게 어렵고, 사장도 인간 자체는 나쁜 놈이 아니다. 늘 직원들에게 미안해하고, 이런 말로 직원들을 달랜다.
“내가 좋아서 이러는 건 아냐. 다른 업체에서 일을 자꾸 부탁하잖아. 요즘같은 불황에 일이 많은 건 좋은 거잖아? 안그래도 요즘 일을 줄이려고 노력 중이니, 조금만 기다려 봐”
줄인다는 그의 말이 의도된 거짓은 아니었지만, 일은 점점 늘어만 간다. 이틀 일하고 하루는 쉬게 해주겠다더니, 일주일 철야가 보통이다. 결국 직원이 과로로 쓰러졌다면 다들 사장을 욕할 것이다. 하지만 직원이 약간의 회복 기미를 보이자마자 사장은 다시금 그 직원에게 일을 시킨다. 그런 사장이 있냐고? 있다. 나.
나를 사장이라고 한다면 내 위와 장은 내 충실한 직원이다. 대학에 가기 전까지 우리는 정말 즐겁게 일했다. 가끔 지나친 일을 시키고-과식-직원들이 월급-밥-을 달라고 보챈 적은 있어도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고 아꼈던 것 같다. 대학에 가면서 일이 크게 늘었지만 그건 참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나이 서른이 되는 시점부터는 감당할 수 없을만큼 일이 쏟아졌다. 365일 중 303번을 마셨던 97년과 305번을 마신 98년, 내 위와 장이 버텨준 것은 거의 기적이다.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일거리는 여전히 많다. 주량은 그때보다 늘어난 반면 직원들은 노쇠해서 그만큼의 일감을 견디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흘 연짱, 나흘 연짱이 보통이다. 난 도대체 뭘 믿는 걸까.
전날 새벽 4시에 들어왔다. 8시 조금 못되서 일어났으니 네시간도 채 못잔 거다. 원래는 안그러는데 속이 너무 안좋아서, 점심을 먹으면서 해장을 겸한 소주를 한병 마셨다.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오늘 내가 쏜다. 한번 모여보자”
전화를 걸어서 완곡한 거절을 했다. 오늘 마시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친구는 말한다.
“넌 왜 나랑은 안마시고 다른 애들이랑만 마셔?”
미안하다고, 사정이 좋아지면 연락하겠다고 했다.
밤 8시 쯤 집에 와서 쉬는데, 메시지가 온다.
“뭐하니? 오늘 한잔 할까?”
집근처 사는 친구다. 전화를 걸어서 사정이 많이 어려워서 안되겠다고, 다음에 보자고 거절했다. 하지만 밤 10시 경에 걸려온 전화 때문에 난 옷을 챙겨입고 대학로로 나갔고, 소주를 마셨고, 어느 정도 취한 채 집에 왔다. 생각을 해본다. 앞의 두 건은 거절한 반면 마지막 전화는 허락한 까닭이 무엇인지.
1) 세 번 찍어 안넘어가는 사람은 없다.
2) 남자와의 술자리보다 여자와의 술자리를 선호한다.
3) 마지막 미녀 둘이 훨씬 편하다.
대학로로 가는 도중 헛구역질이 몇 번 났다. 내 직원들, 거의 그로기 상태인가보다. 달래가며 마셨다. 희한하게도 한잔을 마시고나니 속이 가라앉았다. 직원들의 체질이 알콜로 변한 걸까.
오늘 저녁, 강원도에서 또 큰 술자리가 있다. 새벽 4시까지 마셔야 한다. 부디 건강하게 서울행 버스를 탈 수 있기를. 위와 장에게 정말 미안하다. 그들은 내 마음을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