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예과 2학년 애들이 제주도로 수료여행을 갑니다. 제가 그래도 과장인지라 따라가야 해요. 2시까지 공항에 가야 하는데요, 떠나기 전에 글이나 몇편 써놓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오전 내내 두분이 교대로 전화를 주시는 바람에, 그리고 청탁받은 일을 해결한답시고 머리를 쓰는 바람에, 마음먹은만큼의 글은 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거 하나만 쓰겠습니다. 이걸 쓰면 다른 글을 못쓸 것 같아 마지막에 쓰려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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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5월 5일(목)
누구와: 그분과
마신 양: 소주--> 소주-->소주
벤지의 등에 상처가 생긴 것은 벌써 몇 년 전이다. 가축병원에 갔더니 상처가 워낙 커서 놔두는 수밖에 없다고 하기에, 약을 발라주고 붕대도 감아주는 등 내 딴에는 치료를 해준다고 했지만 상처는 낫지 않았다. 예전에는 밤에만 벤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는데, 상처가 커져서 다들 벤지를 불쌍한 눈으로, 혹은 징그럽게 보기에 집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게 된 건 1년쯤 된 것 같다. 상처가 벤지를 얼마나 아프게 하는지 모르지만 벤지는 이따금씩 그 상처를 핥는다. 어제 옥상에 데리고 올라왔을 때, 파리 한 마리가 그 상처에 붙기에 황급히 쫓았다. 파리야 별 생각없이 한 행동이지만, 내 마음은 참담했다.
벤지의 귀가 안좋아진 것은 일년쯤 되었다. 벤지의 왼쪽 귀는 전체가 딱지로 덮혔고, 상처가 썩어들어가는지 냄새가 장난이 아니다. 난 그 냄새에 익숙해져 옆에 끼고 살지만, 우리집에 오는 이들은 이게 무슨 냄새냐며 코를 막는다. 항생제를 바른다고 발라도 아무런 효과가 없다. 하기사, 그 전부터 녀석은 내가 자기 이름을 불러도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벤츠’와 ‘벤지’를 구별하던 영특한 녀석이었는데.
벤지 눈 안의 수정체가 뿌옇게 변한 걸 안 것은 5년쯤 되었다. 지금은 양쪽 눈이 다 하얀데, 그래도 날 알아보고 꼬리를 흔드는 걸 보면 눈물겹게 고맙다. 자기 몸만한 변을 보던 녀석은 이제 쥐똥만한 변을 보는 것조차 힘들어한다. 한발 한발 걸음을 내딛는 지금의 모습에서 나랑 같이 달리기 시합을 하고, 공원에 있는 토끼를, 혹은 까치를 쫓던 옛날을 떠올리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녀석은 내가 자리를 옮길 때마다 내 곁으로 오고, 녀석을 위해 깔아놓은 이불에 고단한 몸을 누인다.
집에서 벤지의 안락사 얘기가 나온 작년부터였다. 우리 엄마가 유난히 모진 사람이라 그런 건 아니다. 상처에서 나온 피로 이불과 베개를 더럽히고, 벤지에게서 나는 냄새에 구역질이 나서 못살겠다는 것. 몰래 병원에 데리고 갈 생각이 굴뚝같지만, 그 후 내가 보일 반응 때문에 그러지는 못하고 있다. 다만 내게 “제발 벤지 좀 어떻게 해”라고 간청할 뿐. 그때마다 난 이렇게 말했다. “안락사란 사는 게 너무 힘들 때 하는 것이다. 벤지는 지금 안락하다”
하지만 올들어 부쩍 나빠진 벤지의 상태는 더 이상 그런 말을 하지 못하게 한다. 입장을 바꾸어 내 등에 큰 상처가 있고, 귀가 썩어들어간다면, <밀리언달러>의 매기처럼 나 역시 안락사를 간청하지 않을까. 벤지에게 묻고 싶었다. 그렇게 해도 날 원망하지 않겠냐고. 아니다. 내가 안락사를 망설이는 건, 그가 날 원망할까봐가 아니라 그가 떠난 뒤의 공백을 나 스스로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음의 준비를 한 건 오래 전부터지만, 그게 준비를 한다고 되는 건 아니었다.
그 공허감이 어떠할지는 나중에 생각할 일이고, 벤지의 아빠로서 난 벤지가 그나마 아름다울 때 보내줄 의무가 있다. 그래서 난 하루에도 몇 번씩 벤지의 상태를 살핀다. 녀석이 너무나 힘들어하지 않는가. 오늘 아침에 보니 이제 녀석과 이별할 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낀다.
안락사를 위해 병원에 간다면, 난 엄마가 그 일을 맡기 바랐다. 내 손으로는 죽어도 녀석을 보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말을 했더니 나랑 같이 술을 마시던 그분은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는 안된다.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해줘야 한다”
그래, 그분의 말씀이 맞다. 아버님의 임종을 지켜드리는 게 자식의 의무이듯, 벤지가 떠나갈 때 옆에 있어주고, 발이라도 잡아 주는 게 나의 의무일 것이다. 가축병원만 오면 몸을 부르르 떨던 녀석이지만, 내 마음을 안다면 날 원망하지 않겠지. 아니, 원망한 듯 좀 어떠랴. 그런 곳에 데려간 날 째려보고, 죽기 싫다고 나를 물어뜯기라도 한다면 내 미안함이 조금은 덜해지지 않을까. 엄마는 최근 1년이 벤지로 인해 힘든 시기였겠지만, 난 벤지와 이별할 순간이 이렇게 빨리 올지 미처 몰랐었다.
오늘 아침 벤지 목욕을 시켜 줬다. 상처에 물이 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몇 달 전 산 샴푸인데 아직 절반이나 남았다. 전에 그 샴푸를 사면서 “이건 다 쓸 수 있을거야”라고 했지만, 아무리 펑펑 샴푸를 쓴다해도 그 샴푸를 다 쓰진 못할 것 같다. 내가 이런 무시무시한 글을 쓰는 것도 모른 채, 벤지는 옆으로 누워 잠을 잔다. 부풀었다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벤지의 배를 보면서, 생명을 임의적으로 끊어야 한다는 사실이 괴롭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