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4월 26일(월)
마신 양: 맥주 3캔, 소주 한병
1. 머리
근 3개월 이상 머리를 자르지 않았다. 처음엔 세상에 대한 반항심에서 시작한 거였는데, 나중에는 그걸 합리화하는 이유를 만들기 시작했다. 머리 기니까 어려 보인다느니, 술이 더 세졌다느니... 하지만 결국 머리를 자르기로 한 것은 불편이 극에 달해서였다. 머리가 눈을 가리니 답답했고, 잠깐만 방심하면 뻗쳐 버려 아주 가관이었다. 덥다는 것, 그리고 머리가 무거워 짜증이 난다는 것 등등을 감수하면서 계속 머리를 기를 마음은 점차 없어졌다.
그래서 머리를 잘랐다. 근데 너무 짧게 잘랐다. 어떤 이는 “웬 고딩이냐”고 하고, “군대 가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원래 그럴 마음은 없었는데. 단지 이발소 직원과 의사소통이 잘못된 것 뿐인데. 그 전에는 뻗치는 머리를 제어하느라 모자를 쓰고 다녔다면, 지금은 짧은 머리로 인해 깍두기처럼 보이는 게 싫어 모자를 쓴다. 쭉 머리를 길러서 그런지, 지금도 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2. 노숙
머리를 자른 날, 친구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전갈을 받았다. 일단 집에 가서 짐을 챙긴 후, 강남성모병원 영안실에 갔다. 이 친구 저 친구와 얘기를 하다가, 고스톱판이 벌어졌다. 맞고 승률이 17%에 달할 정도로 고스톱을 못치는 나는 그저 옆에서 관망만 했다. 하지만 선수 하나가 집에 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끼어들었다. 그리고 1만 5천원 가량을 땄다.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다르다.
마지막 판을 돌리고 나니 새벽 4시였다. 다음날 아침 9시에 수업이 있던 터라 7시 버스는 타야 했다. 어디 가서 눈이라도 붙이고 싶었지만, 한번 잠들면 죽어도 못일어날 것 같았다. 애들은 집에 가고, 난 병원 옆에 있는 고속터미널로 갔다. 플라스틱 의자 네 개에 몸을 누이고 잠을 청했다. 자려다 갑자기 불안해진 나는 지갑의 돈을 다 꺼내 양말 속에 넣었고, 신용카드도 따로 챙겼다. 어떤 상황에서도 잘 자는지라 1분도 안되어 잠이 들었다. 그런데. 경비가 날 깨웠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버스 기다리는데 왜 안된다는 걸까. 어차피 사람도 없는데. 그는 나를 노숙자로 본 것일까. 그래도 양복까지 입었는데 말이다. 할 수 없이 앉아서 잤다. 그리고 첫차를 타고 학교에 갔고, 비몽사몽간에 수업을 끝냈다. 정말 피곤했다.
3. 친구 아버지
남에게 폐를 안끼치는 갑작스러운 죽음은 누구나 원하는 바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죽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친구 아버님도 그랬다. 3년쯤 전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아버님은 전립선암까지 걸리는 등 갖은 고생을 하시다 돌아가셨다.
특기할 만한 것은 친구의 어머니였다. 3년간 아버님 곁에서 수발을 하신 우리 엄마와 달리, 친구 어머니는 남편을 광주에 있는 요양원에 보내놓고 당신의 삶을 사셨다. 친구도 만나고, 해외여행도 하고. 우리 어머니는 단 하루도 댁에서 주무신 적이 없는데. 편하지도 않은 보호자 의자에 등을 대고 주무셨었는데. 돌아가신 당일에도 새벽 1시 쯤 집에 가서 주무시겠다고 병원을 나서는 광경은 3일장 내내 빈소를 지킨 우리 어머니라면 상상도 못할 것이다.
우리 어머님이 더 훌륭하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난 우리 어머님도 친구 어머님처럼 하셨으면 어땠을까 싶다. 병원에서 가장 까다로운 환자로 소문난 아버님에게 어머님이 보여준 놀라운 헌신은 간호사들의 찬사를 받았지만, 그 과정에서 어머님이 잃으신 것도 있었으리라. 약해진 건강도 그렇지만, 간병의 와중에 그나마 남아있던 정까지 다 떨어진 건 아닐까.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어머님은 누구보다 섧게 우셨지만, 그건 고인에 대한 그리움에서 기인했다기보다 아름다운 추억 하나 남기지 않고 떠난 남편에 대한 서러움 탓이 아니었을까. 간병 중 어머님이 아버님께 물어본 적이 있다.
“내가 아프면 당신이 나 돌봐줄 거야?”
아버님의 대답은 이랬다. “간병인 붙여 줄게”
이건 좀 불공평하다.
4. 벽제
관을 들고 산을 올라가 본 기억도 벌써 4-5년 전의 것, 그만큼 화장이 대세인 것 같다. 친구 아버님 역시 벽제에 가서 뜨거운 불 속으로 밀어 넣어졌다. 벽제에 갈 때도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화장터의 유족 대기실을 보는 순간 갑자기 뜨거운 것이 몰려왔다. 우리 아버님도 저렇게 태워졌었지 하는 생각에. 눈물도 났고, 심장박동도 빨라졌다.
4년 전 그날, 하얀 가루를 유골함에 담기 전에 직원은 큰 못 하나를 보여줬다. 그 못은 아버님의 허리뼈에 박혔던 것, “저런 걸 몸에 박고 지내셨구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난다. 지금 아버님은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실까. 거기서도 여전히 화를 잘 내실까. 그러고보니 지척에 있는 아버님께 찾아간 지도 꽤 오래 된 것 같다. 이번 일요일, 아버님을 만나러 가봐야겠다. 잘 지내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