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거 재탕입니다. 죄송합니다. 사정이 많이 어려워서요.

일시: 9월 15일(목)
누구와: 친구 두명과
마신 양: 맥주--> 소주

학생 때, 그리고 조교 생활을 할 때 난 크리스탈 호프라는 술집을 다녔다. 학교를 안간 적은 있어도 저녁 때면 꼭 크리스탈 호프를 갔으니, ‘다녔다’는 표현이 전혀 과장이 아니다. 시작은 알 수 없지만 그곳은 의대생들의 아지트 비슷한 곳이 되었고, 그래서 내가 들어서면 이런 풍경이 펼쳐지곤 했다.

A: 야, 너 왔구나. 오늘 학교는 왜 안왔어?

나: 그냥. 어, B형, 안녕하세요?

C: 나한테는 왜 인사 안해?


주인아주머니는 의대 애들한테 유난히 살갑게 대했고, 거기 오는 모든 학생들 이름을 다 외웠다. 의사국시를 볼 때마다 커피를 싸들고 시험장 앞에서 기다리기까지 했으니, 가히 의대생들의 대모라 할만했다. 물론 ‘장사속’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외상이 가능한데다 값도 싸고 서비스도 잘주는 곳이라 나쁠 이유는 없었다. 군대에 가느라 대학로를 떠난 뒤 크리스탈 호프가 문을 닫은 걸 알고나서, 얼마나 서운했는지 모른다.


몇 달 전, 대학로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다 쏟아지는 비를 피하느라 맞은편 호프집에 들어간 적이 있다.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며 달려왔을 때 난 잠깐 동안 어리둥절했다. 그 어리둥절은 곧 반가움으로 바뀌었고, 난 그분과 옛날 추억을 회상하느라 나랑 같이온 두 미녀의 존재를 잊을 정도였다.


“크리스탈 아줌마가 다시 술집을 열었다!”

난 이 얘기를 과거의 전우에게 했고, 지난 목요일 옛날 멤버 셋이서 그 술집을 찾았다. 반가운 시기를 지나자 아주머니의 넋두리가 시작되었다.

“옛날엔 정말 돈버는 게 땅짚고 헤엄치는 것만큼 쉬웠지‘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못했다.

“내가 왜 그만둬서 늘그막에 이 고생을 하고 있는지”

어두침침한 분위기, 허름한 식탁과 싸디 싼 가격은 그때와 다름없었지만,

“옛날 멤버들은 안와요?”

“길가다 명태(가명)를 만났어. S대 교수 됐다면서? 한번 오라고 했는데 알았다고 하더니 안오더라. 복어(가명)도 그렇구”


그 말을 하는 아주머니의 얼굴에는 서운함이 엿보였지만, 이제 어느덧 사회의 기득권에 자리잡은 사람들이 굳이 이곳을 찾을 이유는 없어 보였다. 미녀 종업원이 서빙을 하는 좋은 술집이 많은 터에 왜 거기를 가겠는가. 나만 해도 그곳의 음식이 그다지 입에 맞지 않았다. 그렇게 맛있던 해물떡볶이는 그저그런 맛이었고, 한조각만 있어도 500cc를 너끈히 마시게 해줬던 쥐포구이도 이제 물린다. 안주 맛은 똑같은데 내 입맛이 변한 거겠지?


아주머니가 왜 그만두었는지 난 물어보지 않았다. 아주머니가 그만두지 않고 계속 크리스탈 호프를 열었다면, 그곳은 지금도 의대생의 메카로 군림했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난 괜히 후자 쪽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크리스탈이 더 이상 맞지 않게 된 우리처럼, 화려함에 길들여진 지금 애들에게 크리스탈의 낡은 이미지가 어필하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지만, 어쩌면 그 당시 추억을 우리끼리만 독점하고픈 욕망도 후자 쪽을 선택하는 이유가 아닐까. 그렇게 추억에 집착하는 것 역시 내가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이리라. 57세, 어느덧 60을 바라보게 된 크리스탈 아주머니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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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10-02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재순위 28위..불안하십니까?.흐흐^^

하루(春) 2005-10-02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썬데이 매직이군요.

부리 2005-10-02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저희들 삶이 다 그렇죠 뭐...^^
하루님/하핫 다 아시면서..^^

부리 2005-10-02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사실 제가 오늘 아침 순위만 보고 40위로 생각했어요. 근데 28위입니까 마태가?

하루(春) 2005-10-02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사람들의 취향을 빨리 간파해야 성공한다죠.

쪼코케익 2005-10-03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 님=부리 님 인가요? 여기 드나들기 시작한지 며칠 안 되어서요. 마태우스 님께서 사라지시고 부리 님이 나타나신데는 사연이 있는 건가요?

마태우스 2005-10-03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레네님/제가 좀 바쁜 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저랑 부리가 아주 친합니다
하루님/하루님의 취향을 빨리 간파해야 할텐데요^^

모1 2005-10-03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간 서글프기도 하네요. 세월의 흐름으로 인해 추억이 잊어져가는 가는 그런 느낌도 들어서요.(별상관없는 댓글들을 계속 다는 듯한 느낌도 드는데..마태우스님..이해해주세용~~~)

마태우스 2005-10-05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1님/상관없기는요. 서글프단 느낌, 저도 가졌어요
 

 

 

 

 

120번째: 9월 17일(토)

누구와: 다 쓰러져가는 모임 사람들과

마신 양: 기본은 했다


없어진 줄 알았던 모임이 기적적으로 부활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모임에 애정이 식은지 오래, 흔쾌히는 아니고 겨우 나갔다는 게 사실에 부합하는 말일게다. 모임 멤버 중 법무관으로 근무하는 사람이 있었다. 내년에 제대를 하는 그와 법무관 생활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김두식의 <헌법의 풍경>을 읽으면서 저자가 법무관 훈련 중 겪은 일들이 어쩌면 나와 그리도 비슷한지 감탄을 한 적이 있다. 법무관으로 복무한 김두식은 법무관 후보생 시절의 경험이 “특권의식이 어떻게 외부로 표출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면서, 몇 가지 예를 든다.

-구대장으로부터 팔굽혀펴기 10회를 지시받은 후보생이 할 수 없다고 개겼고, 결국 “앞으로 그런 건 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외박 횟수를 늘려달라고 요구하면서 집단행동을 불사하겠다고 함--> 늘려줄테니 훈련 열심히 받으라고 함--> 차라리 외박 안늘리고 무조건 개기자는 결의를 함

-술병을 숨겼다 걸린 후보생이 외박 금지 및 벌점의 징계를 당하자 집단 단식을 결행함. 물론 매점에서 쵸코파이 등을 먹어가면서. 결국 사흘만에 징계는 없었던 것이 됨.


나와 얘기를 나눈 법무관의 경우도 크게 다를 바 없었지만, 우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별 거 아닌 일로 단식을 했었고, 훈련을 심하게 시키는 구대장의 퇴진을 요구하면서 밤중에 뛰어나와 데모를 했다. 그 구대장만 없으면 훈련을 열심히 하겠다고 하더니, 그 요구를 중대장이 수용하자 그 다음부터 개판을 쳤다. 식사 때 짜장면과 탕수육을 불러먹고, 술을 먹고 오버이트를 하는 후보생도 꽤 있었다. 이런 것들, 보통 군대 같으면 난리가 났을 사연이 아닐까. 우리는 아니지만 우리 선배 중에는 가족들의 면회 시간 중 술에 만취해 사병을 폭행한 사람도 있었고, 봉고차나 으슥한 곳에서 아내와 그걸 하다 걸린 사람도 있었다.


여기에 대해 김두식은 이렇게 말한다. “(단식이) 보기에 따라서는 강자에 맞서는 법률가들의 결연한 의지로 비칠 수도 있는 사건이었지만, 제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지도하는 훈육대장이나 구대장들, 심지어 장군들조차 분명히 사회적 강자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117명 특권집단(후보생)의 눈치를 보는 데 급급한 나약한 사람들에 불과했습니다. 3년 후면 모두가 판검사, 변호사가 될 사람들인데다, 다수의 후보생들은 전.현직 국회의원, 장관, 법원장 등을 아버지 또는 장인으로 둔....”


이 구절을 읽으면서 옛 경험이 떠올라 부끄러워졌다. 우리들 역시 남들과 다르다는 특권의식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더 개판을 치나에 몰두했었지. 우리를 괴롭힌다고 생각했던 구대장들은 사실 나약한 사람들에 불과했다. 문제가 생기면 승진에 지장을 초래하니, 우리가 제발 아무 탈 없이 훈련을 마치기만을 바라는. 우리는 별것도 아닌 걸 빌미로 집단행동을 하고, 훈련을 안받으려 했고, 외박을 나올 때마다 우리가 얼마나 개겼는지를 무용담처럼 떠벌렸다. 십년이 지난 지금, 그 특권의식은 그때보다 훨씬 더 자라나 있지 않을까?


자신이 하는 일이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은 나쁜 게 아니다.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니 대우도 잘받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거기에는 전제가 따른다. 해야 할 일은 하는 책임감, 그게 우선되어야지 않을까. 군대에서 우리가 보여줬던 수많은 행동들은 거기에 걸맞지 않은 것들이었다. 특권을 가진 자들은 다 비슷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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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巖 2005-09-27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우리나라 군대 이야기입니까? 중공군 이야기 아니구요?(우리때는 엉터리 군대는 때국× 군대라고 불렀죠.)

마태우스 2005-09-27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암님, 안녕하셨어요? 우리나라 법무관, 군의관의 모습이어요. 저희 스스로 당나라 군대라고 불렀죠...

2005-09-28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려려니..하게 되는건 서글픈 현실이겠죠..

Tamino 2005-09-28 0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딜가나 특권 의식을 갖게 되는 자리가 있는 듯 합니다.

외국, 특히 미국에  살다보니 그런 특권 의식이 제일 강한 사람들은 다른사람들의 신분을 해결해 주는 직업에 관련된 사람들입니다.  그게 변호사든 고용주든..... 


하치 2005-09-28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주변의 법무관들은 그 정도는 아니던데요.^^;요즘은 점점 훈련도 강화되는 추세라고 하고...일부의 무용담 아닐런지요.사병들이나 일반 장교보다는 나은 대우를 받는 것이 사실인듯 하지만, 그렇게 안하무인으로 규율 무시하는 사람들은 일부가 아니겠습니까.

2005-09-28 0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marine 2005-09-28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단 군대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특권층은 유난히 자기 권리 지키는 것에 민감하고 사회에서도 인정해 주는 반면, 노동자 계층이나 하층민들이 권리 운운하면 이기적이라니, 불평분자라느니 (심지어 공산주의자로까지) 온갖 말로 매도를 하더라구요 저도 헌법의 풍경 읽으면서 참 생각 많이 했답니다

마태우스 2005-09-28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나님/오오 책을 매개로 한 공감... 그래도 노무현 시대 들어서 특권층이 해체되는 소리가 조금씩 들리지 않습니까? 노무현의 한일 중 유일하게 긍정적인 면 같아요.
속삭이신 분/님은 소가 아니며 치과도 도살장이 아닙니다. 따지고보면 거기도 다 사람 사는 곳입니다^^
라라하치님/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글쎄요, 96년에 제가 훈련을 받았는데요, 정말 개판이었습니다. 일부만 그런 게 아니라 극소수만 열심히 했고 나머지는 왜 우리가 훈련을 해야 하냐면서 불평불만만 터뜨렸었죠. 전 물론 법무관은 아닙니다만...
타미노님/안녕하세요 처음 뵙는 것 같아요. 특권의식이 강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신분을 해결해주는 사람이라는 말, 새로운 깨달음이네요....
참나님/이쁘구 큰 딸이 있으신 참나님, 그러게 말입니다. 씁쓸하죠...

paviana 2005-09-28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이 치과에 대해 저런 말씀을 하시니 넘 모라 그럴까? ㅎㅎ
님도 예전에는 더 가기 싫어하셨자나요..치료 끝나셨다고 저리 배신스런 멘트를 날리시다니...

마태우스 2005-09-28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 파비아나님/그, 그렇게 핵심을 찔러버리면.... 일단 부산아구에서 뵈요!

수퍼겜보이 2005-09-28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 법무관들은 바쁘다지만, 지방 근무하는 법무관들은 룸살롱과 골프를 업으로 삼으면서, 탈영해서 대학원 다니더군요.

도라 2005-10-01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대에 읽어야 할 한권의 책에 소개되어 진 책으로 살까말까 하던 중에 확실히 질러야 겠어요. 20대에 ...

이 책 사시면 파산 하게 될지도 . 어찌나 사고 싶어진 책이 많은지

 

 

 

 

 

 

일시: 9월 18일(일)

누구와: 사촌형과

마신 양: 대단한...


1. 조카

차례를 마치고 큰집에 갈 때, 남동생 아들이 따라왔다. 숫기가 없어서 그집 아이들과 어떻게 놀까 걱정했는데, 초반부의 적응기를 거치고 나자 곧잘 놀았다. 다른 애들과 우르르 놀이터에 나가서 잘 노나보다 했는데, 갑자기 조카 녀석만 뛰어들어온다. 화장실로 간 조카는 간발의 차이로 변기에 앉지 못했고, 그 바람에 바지에다 설사를 해버렸다.

“예기치 않은 일이 생겼다”

술을 마시던 남동생은 화장실로 가서 설사의 흔적을 다 치웠고, 옷가지는 형수님이 빨아 줬다. 형수님 아들이 입던 헐렁한 옷을 걸친 조카, 갑자기 울기 시작한다. 자신의 행동이 못내 부끄러웠던 걸까? 울음을 그친 조카는 이내 소파에서 잠이 들었고, 잠에서 깬 뒤엔 다시금 애들이랑 놀았다. 역시 잠자는 건 모든 걸 잊게 해주는 좋은 방어기제란 생각이 든다.


2. 훌라

“포커는 도박성이 강하고, 훌라는 도박이 아닌 게임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고스톱을 치는 거다”

고스톱을 치는 사람들은 도박과 게임의 속성을 모두 갖춘 고스톱을 제일로 친다. 하지만 난 포커가 좋은 것이, 중간에 죽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고스톱을 치다가 스리고를 당할 때, 그러면서도 먹을 게 없을 때 얼마나 난감한가!


난 훌라는 잘 못친다. 친구들과 어쩌다 훌라를 쳤을 때, 딴 기억이 한번도 없다. 그냥 2만원쯤 잃고 말자는 각오로 치곤 했었는데, 사촌형들이 훌라를 치잔다. 이게 웬일인가. 5만원 땄다! 비결은? 우리 사촌형 때문에. 훌라를 그날 처음 배워 게임판에 뛰어든 사촌형은 우리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혼자 10만원을 잃어 우리를 안타깝게 했는데, 나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 역시 수준이 고만고만해서 땅짚고 헤엄치기 수준이었다. 그 5만원 중 3만원을 본전치기에 성공한 남동생에게 개평으로 줬고, 어머니에게 딴 기념으로 5만원을 드렸으니 3만원이 적자다.


3. 작업

집안에서 계속 술을 마시다, 맥주를 마시러 밖에 나왔다. 난 뒤돌아 앉아있어서 몰랐는데 사촌형과 남동생이 서빙하는 아가씨가 이쁘다고 난리다. 몸을 돌려 봤다. 히익! 진짜로 예쁜 거다! 시원시원하게 생겼고, 성격도 좋아 보인다. 사촌형들과 동생은 신이 났다. 그녀가 올 때마다 수작을 건다. 그런 것에 익숙한지 아가씨는 막힘없이 대답을 해준다.

“학생이세요?”

“졸업 했구요, 스물아홉이어요”

“여기서 매일 일하세요?”

“네. 저 사장 딸이어요”

남동생은 급기야 이런 말까지 한다.

“시간 되시면 여기서 맥주 한잔 같이 해요”

사촌형이 그 말을 받는다.

“5분 기다릴께요”

그날 맥주집을 연 곳이 별로 없는지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바글바글했는데 무슨 시간이 나겠는가. 시커먼 남자 넷이 앉은 테이블에 그녀가 올 리도 없고, 맥주집 딸에게 맥주를 같이 하자는 것도 우습다. 그런 식의 접근으로 뭔가가 되겠는가, 하고 동생에게 따졌더니 동생이 이런다.

“내가 나 좋으려고 이러는 줄 알아? 형 소개해 주려고 그러지”

사촌형도 거든다.

“그래. 너 좀 잘해봐라. 아주 예쁘고 참해 보인다”

내가 짝이 없는 걸 빌미로 수작을 걸어놓곤 왜 갑자기 내 타령인가. 게다가 집도 바로 옆인데 수작을 부리다니. 하여간 남자들은 언제나 감시를 해야 하는 존재다.


4. 보름달

그날 역시 보름달이 환하게 떴다. 집에 간 나는 어머님과 할머니를 모시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우리 달 보고 소원 빌자!”

설, 정월대보름, 그리고 추석, 내가 달을 보고 소원을 비는 날이다. 난 우리 가족의 건강과 내가 학교에서 잘리지 않도록 도와 줄 것, 그리고 경제가 좀 좋아질 것 등을 달님에게 빌었다. 엄마와 할머니도 환한 달빛 아래 무언가를 비셨고.


다음날 아침, 어머님이 내게 “고맙다”고 하신다. 내게 그다지 잘 못하는 형제자매들의 건강까지 빌어준 것이 고맙다는 거다.

“엄마도 참! 난 맨날 그렇게 빌었어요. 그래도 내 형젠데. 그리고 그네들 아프면 엄마가 제일 속상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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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9-21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착하신 마태님 소원 성취하세요^^

야클 2005-09-21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착한 남자들은 원래 장가를 늦게 가는가 봅니다. ^^

마태우스 2005-09-22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착한 척만 하는 거랍니다^^
물만두님/제 소원은 서재 평정인데...^^

니르바나 2005-09-22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이 옆에 계시면 뺨에 뽀뽀라도 한 번 해드리고 싶은데
오해하진 마세요. 그렇다는 뜻입니다.

마태우스 2005-09-27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해주세요!!! 빨리여^^
 

 

 

 

 

일시: 9월 12일(월)

누구와: 미녀 둘과


미녀 하나가 생일이어서 모였다. 겁나게 마셨다. 밥도 안먹고 생맥주로 시작해 소주로 2차를 했고, 3차는 무슨 술을 마셨는지 기억도 안난다. 미약하게나마 정신이 남아있던 10시 30분쯤, 도저히 버티기가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 “집에 가겠다”고 했다. 그네들은 “안된다”고 붙잡았다. 눈을 떠보니 내가 탁자 밑에 들어가 자고 있었고, 미녀 둘이서 날 끄집어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탁자와 의자 사이의 틈이 좁아 나오기가 무지 힘들었다는 것, 발달한 귀소본능 덕분인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집이었다는 것 등이 어렴풋이나마 남아있는 내 기억의 편린들이다.


그날 난 얼마나 마셨을까? 아무리 적게 잡아도 소주 두병 이상은 마신 것 같다. 올해 들어 지금까지 술을 마신 횟수는 117회, 평균 마신 소주의 양을 한병 반으로 잡는다고 하면 대략 160병 가량이 된다. 다른 이들은 과연 얼마나 마실까. 오늘자 메트로에 그 해답이 있다.

“우리나라 15세 이상 인구는 2003년 기준 1인당 68병의 소주와 248병의 맥주를 소비하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난 소주는 개인 할당량을 이미 채웠다. 맥주는? 잘 모르겠다. 맥주는 배가 나온다는 속설 때문에 맥주 쪽에 신경을 못썼는지라 200병까지 마시지는 못한 것 같다. 남은 기간 맥주에 전력해 할당량을 채울 생각이다. 역시 메트로의 기사다.

[1986년 20.6%이던 여성의 음주비율은 2003년 49/0%로 17년만에 2배 이상 늘었다... 20대와 30대 인구 중 술을 마시는 비율은 2003년 기준 75% 이상으로 92년에 비해 10% 이상 늘었다... 전체 음주자 중 소주 1병 이상 과음자는 2003년 40.5%로 9%, 맥주를 4병 이상 마시는 과음자도 37.5%로 늘었다...


지난 토요일, 그리고 어제 난 술을 마시지 않았다. 삼겹살을 구워가며 소주를 비우긴 했어도 마신 양이 각각 소주 한병에 불과, 기준주량인 ‘소주 한병 또는 맥주 5병 이상’에 미달했기 때문에 집계에서 빠진 거다. 그런데 이 통계는 소주 1병, 맥주 4병 이상을 ‘과음자’로 분류한다. 소주 1병과 맥주 4병을 같이 마시면 모를까, 맥주만 4병 마시는 게 왜 과음인지 난 이해가 안간다. 이렇게 노력하는 내게 다음 기사는 충격이었다.


[우리나라 국민 1인당 고도. 증류주의 연간 음주량이 세계 4위인 것으로 조사됐다...2002년 기준 4.5리터에 육박해 러시아(6.5), 라트비아(5.6), 루마니아(4.7)에 이어 세계 4위라고 밝혔다]

몇 년 전, 우리나라의 음주비율이 슬로바키아에 이어 2위였을 때 난 무척이나 실망했다. 술집마다 그렇게 미어터지는데, 그리고 나도 무진장 노력하는데 2위였으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4위라니 힘이 쭉 빠진다. 그래서일까. 메트로 기사의 제목도 “부끄럽네요”다. 전에 1위였던 슬로바키아가 한국에 근소하게 뒤진 5위라는 걸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 우린 더 잘할 수 있다. 나도 물론 노력할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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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5-09-14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주 4병도 아니고 맥주 4병이 과음이라는 건 저도 놀라운데요? 소주 1병도 일곱 잔 밖에 안 나오던데... 술자리 길게 가면 이 정도는 다 비우지 않나요?

라주미힌 2005-09-14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1년에 소주 2병을 마시기 때문이에요. ㅎㅎㅎ

marine 2005-09-14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마태우스님, 술 때문에 다이어트 하기 힘들진 않으세요? 술자리, 회식자리가 바로 다이어트의 제일 큰 산 아닌가요?? ^^

마태우스 2005-09-14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나님/어제 삼겹살을 지나치게 먹었더니 오늘 아침 8킬로를 뛰었음에도 체중은 1킬로가 늘었더이다. 술이 방해꾼인 건 맞죠... 글구 주량에 대한 제 생각에 동의하시는군요. 요즘 소주는 21도에다 7잔밖에 안나오는데 너무하죠? 그게 과음이라니..

잉크냄새 2005-09-14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평균 주량이 그정도 선인가 보네요....
제 주변 사람들은 통계수치에서 누락되었나 봐요...ㅎ

클리오 2005-09-14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기사 제목이 '부끄럽네요' 였어요??

부리 2005-09-14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야 원래 제목은 '술 취한 한국...부끄럽네요"였잖아! 이 왜곡쟁이!

2005-09-14 1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리스 2005-09-14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엥, 소주가 한 병에 일곱잔 밖에 안나와요? 처음 알았어요. ^^

책읽는나무 2005-09-14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주위엔 술 잘 안먹는 사람들이 많은데...그래서 수치가 떨어졌나봐요..ㅋㅋ
수치가 떨어진건 기뻐해야하지 않을까요??...ㅡ.ㅡ;;
마태님 또 이말 듣고 더 마실라...ㅠ.ㅠ

sweetrain 2005-09-14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1년에 맥주 세 병 밖에 안 마셔서 그렇습니다. 분발해야죠. ㅡ.ㅡ

꼬마요정 2005-09-14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년 전부터 제가 술을 끊어서 그래요..ㅡ.ㅡ;;

moonnight 2005-09-14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또 술을 많이 마셔서 부끄럽다 그러시는 줄 알았어요. ^^;; 저도 뉴스에서 술취한 한국이란 말에 많이 찔렸어요. ㅠㅠ

마태우스 2005-09-14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나이트님/하핫,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술이야 일상 생활인데...^^
꼬마요정님./앗 저랑도 마시기로 해놓고선...
단비님/이상하네요 단비님 작년만 해도 맥주 세병 더마신 것 같은데..^^
책나무님/원래 안마시던 분이 안마시는 건 상관없구요, 마시던 분이 안마셔야 수치가 떨어지지 않을까요.. 하긴, 저도 올해 작년보다 덜마시는 것 같아요
낡은구두님/참이슬은 그렇더군요. 적당히 따르면 여덟잔도 나와요
클리오님/부리가 대신 대답했습니다^^
잉크냄새님/주위에 대단한 분들이 많으신가봐요???

클리오 2005-09-14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전형적인 J일보식 편집.. 그렇게 걔네랑 친하신 줄 몰랐어요... ^^ =3=3=3

니르바나 2005-09-14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죄송합니다.
마태우스님이 몸바쳐 쌓아올린 우리나라 성적을 대책없이 깎아내린
죄인 니르바나는 석고대죄합니다.
죄상: 일년 내내 소주 1병도 안 먹어 국가위상손상죄 ㅎㅎ
 

 

 

 

 

일시: 9월 9일(금)

누구와: 친구들과

마신 양: 맥주--> 소주--> 소주


난 비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렇다고 싫어하는 편은 아니다. 비가 오면 잘 접힌 우산을 펼쳐드는 게 아까워 우산이 없는 척을 하면서 맞고다니니까. 그러면 대머리가 된다는 설이 있지만, 희한하게도 내 머리숱은 점점 많아져 가는 것같다. 좌우지간 지금까지 살면서 “비가 왔으면” 하고 바란 적은 딱 한번밖에 없었다.***


그런 내가 이날은 비가 오기만을 바랐다. 간만에 만난 친구들이라 새벽에나 헤어질 예정이었고는데, 게다가 서울도 아닌 D 시티에서 술을 마시는데, 그 다음날 일정이 너무도 빡빡했기 때문. 어떤 일정이냐면.

6시 반: 친구랑 테니스 클럽에서 만나기로 약속함

9시: 보건원에서 4명이 모여 테니스를 치기로 함

2시: 선보기로 약속

5시; 미녀와 배드민턴을 치기로 함


대충 이런 스케줄이었다. 집에 가면 새벽 4시는 될텐데 두시간만 자고 저런 일들을 해야 하다니. 하지만 비가 오면 선을 제외한 나머지 약속이 무효가 된다. 배드민턴을 못치는 건 아쉽지만, 어쨌든 난 8시쯤 느긋하게 일어나 서재응과 김병현의 투구를 관람하다, 선만 보고 다시 들어와 집구석에서 자면 된다. 그러니 내가 기우제를 지낼만도 하지 않는가.


내 기도를 들었는지 D 시티에는 비가 쏟아졌다. 맹렬한 기세로 한시간 이상을 퍼붓는 빗줄기, 술을 마신 곳은 대형포장마차였는데 지붕 위로 비가 떨어지는 소리가 술맛을 돋웠다.

“비 잘 온다!”

난 연거푸 술잔을 들이켰다. 그러다 9시에 테니스를 치기로 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대한 안타까운 목소리로.

“이거, 비가 와서 어쩌죠?”

그 사람의 답변은 내게 의외였다. “여긴 비 안오는데요?”

“...(잠시 침묵) 음하하. 전 또 비오는 줄 알고요. 그럼 예정대로 내일 뵈요”

혹시나 해서 난 6시 반에 만나기로 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혹시라도 비가 오면 무조건 내게 문자메시지를 보내달라고 했다. 문자메시지는 끝까지 오지 않았다. 새벽 3시 반, 역무원의 거듭된 호소에 잠을 깬 나는 택시를 타고 집에 왔고, 두시간 반의 짧은 잠을 잔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리였다. 테니스를 치러 갔다간 죽을 것같은 기분, 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못가겠다고 했고, 한시간여를 더 잤다. 찌뿌둥한 몸이지만 9시 전에 보건원에 도착했고, 테니스를 칠 때는 야생마처럼 날라다녔다. 선을 보는 두시간 동안 즐겁게 수다를 떨었고, 미녀를 만나서 배드민턴을 친 뒤 소주와 더불어 저녁을 먹었다. 슬슬 피곤이 몰려왔다.

“저 어쩌죠? 오늘 2차는 못가겠는데요”

미녀는 흔쾌히 이해를 해줬다.

“다음에 해요. 전 괜찮아요”

그날 내가 잠든 시각은 9시 40분, 아마도 최근들어 가장 빠른 기록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다음날, 난 5시에 잠에서 깨어나 테니스 치러 갈 준비를 차렸다. 난 뭐하는 인간일까. 테니스 선수?


*** 비가 오길 바랐던 나머지 한번은 채팅으로 만난 힘좋은 유부녀에게 테니스 강습을 하던 때였다. 그때 난 정말이지 비가 오기만을 오매불망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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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12 1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05-09-12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힘 좋은 유부녀'에 왜 자꾸 제 눈길이 가는걸까요? 흑...
이런 말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살 빼야해....ㅠㅠ

마태우스 2005-09-12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아닙니다. 님은 미모가 뛰어나니 괜찮구요, 그 여자분은 힘이 정말로 셌답니다. 님보다 몸이 두배는 될 듯...
속삭이신 분/흐음, 한번 4시까지 해보도록 하죠. 제가 강한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moonnight 2005-09-12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의 스케쥴은 살인적이에요. ㅠㅠ

manheng 2005-09-12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가장 중요한 선이 있는 날...은 무조건 다른 약속을 비워 두는 센스... 저는 소개팅 있는날 그런답니다 ㅎㅎ

꾸움 2005-09-12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
난 뭐하는 인간일까. 테니스 선수?
마지막 구절 끝내줍니다요~
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