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읽을 만한 책'에도 올려놓았지만 이마무라 히토시의 <화폐 인문학>(자음과모음, 2010)은 지난주에 나온 가장 눈길을 끄는 책이다. 하지만 바로 독서에 들어가지 않은 것은 그가 분석하고 있는 앙드레 지드의 <위폐범들>을 아직 읽지 않아서인데(예전 번역인 <사전꾼들>이란 제목이 더 친숙하다), 이달 중에 사정이 나아질지는 모르겠다. 일단은 리뷰기사라도 챙겨놓는다.  

 

경향신문(11. 01. 01) 돈, 넌 대체 누구냐? 경제 밖의 돈 이야기 

‘김중개라는 남자와 박머니라는 여자가 만났다. 둘은 첫눈에 반해 결혼을 약속한다. 하지만 어느 날 서로의 이상형을 각자 만나게 된다. 그들은 새로운 사랑을 좇아가지만 결실을 맺지 못한 채 둘 다 비극적 결말을 맞고 만다.’

통속소설이나 드라마에서 흔하게 접하는 줄거리다. ‘눈물 없이도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러브스토리인 셈이다. 한데 일본의 현대 철학자이자 사상가인 이마무라 히토시(1942~2007)가 읽었다면 이 소설은 분명 ‘화폐 소설’로 자리매김됐을 것이다.

이마무라는 화폐를 향해 ‘넌 도대체 누구냐’라는 원초적 질문을 던진다. 원제 <화폐란 무엇인가>에서 알 수 있듯 저자는 화폐의 경제적 기능론에서 벗어나 “인간 존재의 조건에서 화폐를 조명”했다. 화폐의 기능은 교환, 시장 등 여러 각도에서 논의될 수 있지만 ‘화폐의 존재’는 다른 시각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그는 이 같은 접근을 “화폐의 사회철학”이라 했다. 인간에게 화폐가 갖는 의미를 곱씹어보자는 것이다.  

그는 화폐의 사회철학을 이해하기 위해 경제 전문서적을 찾지 않았다. 괴테의 <친화력>, 앙드레 지드의 <위폐범들>과 같은 문학작품에서 답을 구했다. 그는 이들 작품을 ‘화폐 소설’이라 명했다. “상식적 의미의 화폐가 등장하지 않는 곳에서야말로 화폐의 본질이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뛰어난 소설은 예외 없이 인간의 근원적 경험에 접근하는데, 이러한 근원적 경험이야말로 화폐적 경험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모든 문학작품은 우수한 것일수록 화폐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연애와 결혼 문제를 다룬 소설로 볼 수 있는 괴테의 <친화력>. 주인공 미틀러는 문자 그대로 ‘매개자’를 뜻한다. 전면에 등장하지 않으면서 소설의 무대를 움직이고 등장인물들의 파국을 암시한다. 화폐는 평범한 얼굴을 하지만 그것이 없으면 경제생활은 마비된다. 이에 저자는 미틀러를 “인간의 형상을 한 화폐”로 봤다.

청교도 부르주아의 위선과 악덕을 다룬 소설 <위폐범들>에 등장하는 프로피탕디외는 ‘신을 이용해 이윤을 얻는다’는 뜻으로 “이름에서부터 이미 화폐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앞서 소개된 ‘김중개’나 ‘박머니’처럼 저자에게는 소설 속 주인공들이 인간관계의 매개자이자 화폐의 또 다른 모습으로 비친다.

특히 지드가 위조화폐를 통해 경제현상의 이면에 펼쳐진 인간군상을 보여준 데 대해 저자는 이렇게 답한다. “경제학이 경제적 사실밖에 말하지 않는다면 인간적 현실을 진실로 설명했다고 할 수 없다. 경제학의 이러한 무능함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지드의 <위폐범들>은 하나의 경제학 비판서다.”  

이마무라의 말을 듣자니 아무 소설, 아무 쪽이나 봐도 돈 이야기가 나온다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이 떠오른다. 살인범이 여자를 죽이는 데 사용한 칼조차 그냥 칼이 아니라 ‘얼마짜리’ 칼이다. 생계를 위해 글을 팔아 ‘돈’을 벌어야 했던 도스토예프스키는 돈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돈을 이해하고 돈의 막강한 역할을 꿰뚫어본 작가로 평가받는다. 이마무라였다면 그의 소설을 과연 어떻게 해석했을지 궁금해진다.

이마무라에 따르면 <친화력>에 등장하는 ‘무덤 파괴’ 이야기나 <위폐범들>에 나오는 일부 죄 없는 자들의 죽음은 규칙이나 관습 같은 ‘제도화한 매개 형식’이 사라졌을 때 인간이 직면하게 되는 충돌의 결과다. 그는 화폐가 동물세계와 달리 인간들의 폭력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매개자임을 거듭 강조한다. “운명과 죄와 관련한… 신화적 자연의 힘을 덮어버리는, 누름돌 역할을 하는 매개자가 사라지면 인간관계는 혼란에 빠진다.”

그래서 그는 화폐 없는 인간사회를 부정한다. ‘화폐 폐기론’에 ‘재앙론’으로 맞선다. 인간은 상호 교류가 숙명적이므로 교환의 매개인 화폐를 폐기하면 인간 스스로 인간임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주장이다. 경제학적 차원에서는 이상적일지 모르지만 인간 존재의 근원과 연결지으면 화폐 폐기는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한다.

역자의 말처럼 이 책은 “문학작품 독해에 대한 새로운 시야를 열어”줄 수도 있다. 나아가 돈 때문에 울고 웃는 우리네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 자신이 ‘화폐 소설’의 주인공이니 말이다.(고영득 기자) 

11. 01. 02.  

P.S. 저자도 언급하고 있는 책이지만 절판된 게오르그 짐멜의 <돈의 철학>(<화폐의 철학>)도 재번역돼 나오면 좋겠다("부자 되세요!"라고 인사를 주고받는 나라에서 이런 책도 읽을 수 없다는 건 미스터리한 일이다). 한편, 2000년대 일본 사상의 지도를 그려주는 책이 출간됐다. 사사키 야쓰시의 <현대 일본사상>(을유문화사, 2010). '아사다 아키라에서 아즈마 히로키까지'가 부제다. 두 사람의 이름을 들어본 이라면 호기심이 발동할 만한 책이다. 바로 주문을 넣은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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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구 2011-01-03 00:12   좋아요 0 | URL
짐멜의 <돈의 철학>은 작년에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번역하신 김덕영 선생께서 번역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번역 작업에 들어 갔는 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만, 빨리 독일어 원전 번역이 나오기를 저도 고대하고 있습니다. 아니면 다른 실력있는 번역자께서 번역을 하셔도 좋겠지만, 김덕영 선생님이 베버와 짐멜 전공자이시고 신뢰할 만한 번역자이시니까 그 분이 하셨으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로쟈 2011-01-03 09:07   좋아요 0 | URL
네, 번역계획을 갖고 계신 걸로 압니다...
 

새해를 맞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보니 좀 무덤덤하다. 요며칠 TV를 켜보질 않아서 대신 '감동'해주는 사람들이(혹은 분위기가) 없어서이기도 하고, 아이가 며칠 폐렴으로 입원해 있어서 집안이 아주 조용한 탓이기도 하다. 그러니 '본격적인' 새해는 '설날' 이후로 미뤄두고, '지난해'도 아니고 '새해'도 아닌 한달을 보내기로 했다. '개와 늑대의 시간'처럼, 이런 시간을 표현해주는 그럴 듯한 말도 있었으면 싶다. 오전에 병원으로 나서기 전에 '1월의 읽을 만한 책'을 급하게 골라본다(간행물윤리위원회의 리스트는 진작 올라와 있다). 왠지 부지런하다는 인상을 줄 듯싶어서...   

1. 문학  

정과리 교수가 추천한 문학분야의 책은 로버트 피어시그의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문학과지성사, 2010)이다.  

"저 옛날 브왈로(Boileau)가 “마침내 말레르브가 왔도다!”라고 감격했듯이, “마침내 이 책이 왔도다!”라고 외치는 순간이 가끔은 있는 법이다.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도 그런 책 중의 하나이다. 출간 즉시(1973) 전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이 소설은, 한국의 식자들에게도 곧바로 알려져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을 날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도 이 책을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에 착수하지 않았다."

라고 소감을 적고 있는데, 다소 과장됐다. <선을 찾는 늑대>(고려원, 1991)라고 출간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419쪽이면 발췌본도 아니었을 듯싶다. 물론 절판된 지 오래된 만큼 이제라도 더 좋은 번역본이 나온 건 반가운 일이다. 순전히 '모터사이클'을 같이 탄다는 이유만으로 <모터사이클 필로소피>(이음, 2010)와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황매, 2004)도 같이 묶어 놓는다. 세 대가 짝을 지어 부르릉거리는 듯하다.      

2. 역사  

김기덕 교수가 추천한 역사분야의 책은 <외국인을 위한 한국사>(휴머니스트, 2010)이다. 책은 영어판과 한국어판 두 권이다. "전국역사교사모임이 장장 6년간의 작업 끝에 한국어판 영어판을 올컬러판으로 동시에 출간하였다. 그동안 전문역사학자들의 한국사 저서를 영역한 책은 있었으나, 본 책은 전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시각자료와 함께 대중적 서술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또다른 기념비적 저술이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되는 책이다.  

3. 철학 

김형철 교수가 고른 책은 서정욱의 <철학, 불평등을 말하다>(함께읽는책, 2010). 대중 철학서 집필에 아주 열심인 저자의 신작이다. 표지를 보면 짐작할 수 있지만, 불평등에 관해서 철학자들이 어떤 말들을 했는지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불평등한 세상에 살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 완전 평등을 꿈꾸는 유토피아 건설에 관심을 표명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사실 완전 평등만이 아니라 완전 자유도 현실에서는 불가능이다. 아니 모든 완전함이 다 현실에서는 불가능이다. 책은 고전 저자의 삶에 대한 간략한 소개에 이어서, 가상적 대화를 이어 나간다. 그리고는 고전의 핵심사상을 전달한다. 재미있는 이야기 전개 방식이다."

 

짐작엔 고등학생부터 읽을 수 있을 듯싶은데, 그보다 더 낮은 연령대라면 <만화 서양 철학사>(자음과모음)도 괜찮겠다. 적어도 '철학'이나 '철학사'란 말과 친숙해질 수는 있을 테니까.    

4. 정치/사회 

강정인 교수의 추천서는 정원오의 <복지국가>(책세상, 2010)다. 정치권에서도 '복지'가 화두로 등장하고 있고 내년 대선에서도 쟁점 가운데 하나가 될 듯싶은데, 무엇이 복지이고 복지국가인지 안내해주는 책이 될 듯싶다('복지국가 시리즈'도 나오고 있군). 간략한 분량의 책이지만, 간단한 소개는 이렇다.

한국사회에서도 IMF 금융위기 이후 사회적 양극화, 고용 불안정, 가족해체 등을 배경으로 ‘복지/복지국가’ 담론이 전면에 부상했다. 노숙인과 부랑인 등 우리 사회의 소외계층과 빈곤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해 온 저자는 이 책에서 복지국가의 정의와 기원, 발전단계, 제도와 유형, 위기와 전망까지의 총체적 역사를 특정 이념이나 정치적 입장에서 한발 물러난 객관적 입장에서, 평이한 문체로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의 기본적 전제는 ‘복지는 국가의 일방적 시혜가 아니라 국가에 대한 국민의 권리’이며, ‘정치적 민주주의는 민주국가에서 달성되지만,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는 복지국가에서 완성된다’는 것이다.



5. 경제/경영 

박원암 교수의 추천작은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부키, 2010). 이건 '뒷북'이라고 할 만한데(나도 작년에 이미 '이달의 읽을 만한 책'으로 올려놓은 바 있다), 추천자 스스로도 그런 소감을 적었다.  

평소 현 자본주의 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해 온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장하준 교수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현 자본주의 시스템의 문제점을 또다시 조목조목 지적하는 저서를 출간하였다. 이 저서는 올해 8월 영국에서 영문으로 출간되었으며, 우리말 번역본이 10월 말에 출간되었다. 이 책은 잘 알려진 그의 책 <나쁜 사마리아인들>처럼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으나 지금에야 좋은 책으로 추천하고 있으니 만시지탄의 마음을 누를 길 없다. 

아마도 다른 책을 추천하기 어려웠나 보다. 그래도 최근에 나온 책으론 하일브로너의 <자본주의>(미지북스, 2010)와 볼프강 작스 등의 <반자본 발전사전>(아카이브, 2010)은 같이 읽어볼 만하지 않을까. '자본주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로 삼아도 좋겠다.   



자본주의와 '돈'은 또 긴밀하게 연결된 주제인데, 화폐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을 담은 이마무라 히토시의 <화폐인문학>(자음과모음, 2010)도 나로선 이달에 읽고픈 책이다. 이마무라는 믿을 만한 저자이기도 하고. 교과서 성격의 책으론 <화폐의 종말>(이른아침, 2010)도 있다. <달러>(이른아침, 2009)은 갖고 있는 책이니(아, 나도 '달러'를 갖고 있구나!) 이 참에 좀 들여다볼 수도 있겠다. 적다보니 이른 아침부터 '돈 생각' '돈 타령'이군...    

6. 과학 

장경애 동아사이언스 기획실장이 추천한 책은 에드워드 윌슨의 <바이오필리아>(사이언스북스, 2010)이다. 이미 소개한 적이 있는 책인데, 추천의 변은 이렇다.  

<개미>,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로 유명한 사회생물학자인 에드워드 윌슨이 20년도 훨씬 전에 쓴 이 책을 생물다양성의 해인 올해에 읽어보길 추천한다. 우리의 생명 사랑이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본능적인 성향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 가다보면 자연스럽게 주변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자연 그 자체에 애정어린 눈길이 머물기 때문이다.

올해는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 개정 번역판도 출간될 예정이어서 기대가 된다. <생명의 미래>(사이언스북스, 2005)나 <생명의 다양성>(까치, 1995)도 같이 읽어볼 만한 책인데, <생명의 다양성>은 아쉽게도 품절된 책이다. 다시 출간되면 좋겠다. 



7. 예술 

이주은 교수가 추천한 예술분야의 책은 시오노 나나미가 아들과 나눈 영화 얘기 <로마에서 말하다>(한길사, 2010)이다. 모자간의 대화록인데, 추천자는 이렇게 적었다.  

어머니인 시오노 나나미는 역사를 비롯하여 다방면에서 광범한 지식을 가진 글쟁이이고, 아들인 안토니오 시모네는 영화에 대한 애착과 예리한 관점, 그리고 실무경험까지 두루 갖춘 전문인이다. 두 사람의 시각이 합쳐져서 영화라는 주제는 배우, 감독, 국가적 특성, B급 영화 및 옛 영화 다시보기에 이르기까지 조목조목 아주 입체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나나미의 애독자라면 그녀의 개인적인 취향도 슬그머니 들여다 볼 수 있어 금상첨화이다.

영화책을 고른다면 고다르 인터뷰집 <고다르 X 고다르>(이모션북스, 2010)이 떠오른다. 아직 구하진 않았지만 탐을 내고 있는 책. 그러고 보면 이 영화사적 인물에 대한 변변한 책이 국내에 소개돼 있지 않다는 것도 미스터리한 일이다. 실상 국내 개봉된 그의 영화가 많지 않아서일까?..  

8. 교양

탁석산 철학자의 추천 교양서는 찰스 밴 도렌의 <지식의 역사>(갈라파고스, 2010). 지극히 당연한 추천으로 보인다. 사유는 이렇다. 

때때로 사람들에게 무식하다는 인상을 주는 경우가 있을 겁니다. 남들이 아는 만큼은 알고 있어야 하는 분위기인데 자신만 모르고 있다면 교양이 없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렇다고 교양이 하루 아침에 쌓이지도 않기에 뾰족한 해결책이 없어 보입니다. 이 책은 이런 고민을 어느 정도 해소해줄 수 있어 보입니다. 우선은 읽기 쉽고 편합니다. 고대부터 현대는 물론 미래에 대한 지식까지 다루고 있는데 애를 쓰고 읽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잘 읽힌다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꽤 깊은 내용도 나옵니다. 게다가 분야도 교양이라는 말에 어울리게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해 알려줍니다.

지난번에도 적었지만 같이 견줘볼 만한 책은 피터 왓슨의 <생각의 역사>(들녘, 2009)이다. <지식의 역사>가 헤비급이라면 <생각의 역사>는 무제한급. 읽다 보면 무슨 생각들이 그리 많았던 것인지 경탄하게 된다...  

9. 실용

손수호 논설위원이 꼽은 실용서는 이시형 박사의 <위로>(생각속의집, 2010)이다. 따로 소개가 필요없는 저자인데 부쩍 나오는 책이 많아졌다. '쏟아낸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추천자의 소개는 이렇다.  

이시형 박사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신간 서적을 쏟아낸다. 지난 7월 <세로토닌하라 : 뇌과학으로 풀어보는 인간>을 펴내더니 11월에 다시 <위로>를 출간했다. 4개월만에 두 권의 책을 내는 경이로운 에너지가 놀랍다. 최근 저자의 관심사인 세로토닌의 심리를 스스로 임상실험하고 있는 것일까. 신간 <위로> 역시 세로토닌 포엠(serotonin poem)과 세로토닌 마인드(serotonin mind)를 활용했다. 좋은 시가 전해주는 좋은 마음의 상태를 제시한다는 전제 하에 모두 49편의 시가 등장한다. 5개의 카테고리 가운데 ‘일상 속에서’가 13편으로 가장 많고, ‘연애와 결혼’ ‘가족의 울타리’ ‘직장 생활’ ‘대인 관계’ 등 나머지 주제에서 각 9편을 모았다. 그러니까 49개의 상황을 설정한 뒤 49편의 시를 들려주며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는 형식이다.

 

10. 라캉 

내 맘대로 고르는 주제는 '라캉'으로 정했다. 브루스 핑크의 <라캉의 주체>(도서출판b, 2010)이 출간된 김에 쌓여 있는 책 몇 권을 읽어보자는 계산에서인데, 준비용으로 <라깡 정신분석 테크닉>(하나의학사, 2010)의 원서를 최근에 구했다. 너무 어렵지 않느냐고? 사실 브루스 핑크의 책 같은 경우는 '대중을 위한 책'으로 분류된다. 역자도 이렇게 적었다.  

"이 책이 독자 대중을 위한 책이라고 할 때, 오늘날 독자 대중들의 독서 능력이 점점 더 저하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소문과 의혹이 있다. 그것이 사실이기를 바라지는 않는다는 조건을 달면서 나는 좀더 나은 독자가 되기 위한 독자 대중의 분발을 청한다."

그러니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분발심'을 좀 발휘해볼 필요가 있다. 그래도 버거운 분들은 '시늉'이라도 해보시길. 그래서 내가 지난해 '올해의 책' 중 하나로 꼽기도 한 다리언 리더의 <모나리자 훔치기>(새물결, 2010) 같은 책이 얼마나 흥미진진한지 공감할 수 있었으면 싶다...  

 

11. 01. 01.  

P.S. '1월의 읽을 만한 고전'은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으로 정했다. 이번주에 <주석 달린 허클베리 핀>(현대문학, 2010)이 출간된 게 계기인데, 그렇잖아도 트웨인의 작품들이 쏟아지고 있는 형편이다. <아서 왕 궁전의 코네티컷 양키>(시공사, 2010)나 <왕자와 거지>(민음사, 2010) 등도 '세계문학전집'에 새로 편입됐다.  

 

<헉핀>의 경우엔 열린책들, 펭귄클래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 모두 포함돼 있어서 비교하며 읽을 수도 있다. 개인적으론 멜빌이나 호손의 작품을 강의할 일이 있어서 아주 오랫동안 읽지 않았던 트웨인의 작품에도 다시금 관심이 생겼다. 정확한 근거를 대긴 어렵지만, 트웨인은 러시아작가 고골과 비교해보고픈 생각이 들도록 하는데, 트웨인의 '뗏목'과 고골의 '트로이카'가 서로 대응하는 게 아닌가란 느낌 때문이다. 언젠가 이 주제에 대해서는 좀 그럴 듯한 글을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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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1-01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첫날이라고 별다를 게 없기는 저도 마찬가지인데, 따님이 입원했다니 새해 인사를 드리기가 더 머쓱해지는군요. 예전에 조카녁석이 폐렴으로 며칠 입원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른들의 걱정과 달리 무사히 퇴원해서 다시 건강하게 잘 지내더군요. 따님도 곧 씩씩한 모습으로 잘 지내리라 믿습니다... 다만 새해 첫날을 병원에서 맞았으니 따님에게 2011년은 두고두고 잊지 못하는 해가 되겠네요.

'지난해'도 아니고 '새해'도 아닌 한 달이라고 하시니 <모나리자>가 걸렸던 저 텅 빈 자리와 어울려 보이네요. '빈달' 동안 그럼 <모나리자 훔치기>를 읽으며 보내야겠군요. 아무튼 하루빨리 댁이 활기를 찾기를 바라며 새해 인사는 그때까지 잠깐 미루겠습니다...


로쟈 2011-01-01 15:49   좋아요 0 | URL
중간에 약간 고생했지만 오늘 퇴원했습니다. 덕분에 부랴부랴 집안 청소하고 있습니다.^^; 후와님도 새해 건강하시고, 건필하시길.^^

anathema 2011-01-01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의 역사 1의 번역에 문제가 있다고 하더군요.

로쟈 2011-01-02 11:01   좋아요 0 | URL
1000쪽이 넘는 책에 흠이 없다면 이상하겠죠. 결정적인 흠인지는 적시해주시면 읽어보겠습니다...

2011-01-01 1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02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twoshot 2011-01-01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올해도 건강하시고 새해 복많이 받으시길...
그러고보면 매번 새해 인사만 드리는 것 같네요.^^
지난해도 로쟈님 덕분에 풍요로운 한해였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로쟈 2011-01-02 11:0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일년에 한번 뵙네요.^^

카스피 2011-01-02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첫날부터 좋은 책을 소개해 주시네요.로쟈님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로쟈 2011-01-02 11:03   좋아요 0 | URL
네, 카스피님도 복 많이 받으시길...

poptrash 2011-01-03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엔 새책들을 보면 마음이 설레는 게 아니라 도리어 무거워지니 어쩐 일일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로쟈 2011-01-04 19:56   좋아요 0 | URL
요즘에 부쩍 새책이 나오는 건 아닌데요.^^

네모선장 2011-01-04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 한 해도 이곳에서 좋은 정보들 많이 받아갔습니다.
건강 유념하세요.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의 이곳에서 알고 배우고 갑니다.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근데 생각의 역사 번역에 오류가 많은가요? 소장하여 읽고 싶은데요...

로쟈 2011-01-04 19:56   좋아요 0 | URL
번역 오류에 대해선 누가 지적한 내용이 없어서 아직 모르겠습니다...
 

다들 그렇겠지만 마무리짓지 못한 일들 때문에(그러니까 마무리지으려는 일들 때문에) 연말이 정신없이 지나가고 있는데, 어느덧 마지막 날이다. 며칠 전에 받은 이번주 시사IN에는 별책부록이 딸려왔는데, 시사인IN과 알라딘이 공동으로 선정한 '올해의 책' 특집이다. 인문/역사쪽 추천위원을 맡고 있어서 추천한 책은 물론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 2010)다. 사회적 파장까지 불러온 화제작이라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수 없기에. 나로선 <시크릿>이 있던 자리에 <정의란 무엇인가>가 놓여 있다는 것과 시민의 역량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책이 갖는 '의의'라고 생각한다. 그런 걸 짧게 몇 마디 적었다. 생각해보니 마감에 맞추느라 신촌의 한 PC방에서 급하게 쓴 글이다.   

시사IN(172호) [2010 행복한 책꽂이]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

'하버드대 20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란 소개 문구를 내걸긴 했지만, 이만한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리라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2010년 최고의 베스트셀러이자 인문철학서로는 기록적으로 60만 부 이상이 판매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가 ‘올해의 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최근 몇 년간 교보문고의 종합베스트셀러 1위도서가 <마시멜로 이야기>(2006), <시크릿>(2007-2008), <엄마를 부탁해>(2009) 등이었던 걸 고려하면 결코 가볍지 않은 인문서에 대한 독자들의 호응은 이례적이다. 덕분에 ‘정의’는 올해의 화두가 되었다.  

가령 새해 예산안을 ‘날치기’로 강행처리하고서 여당 원내대표가 “대다수 국민들이 예산처리를 바랐고 이것이 국가를 위한 정의”라고 말한 것도 <정의란 무엇인가>가 유발한 ‘정의 담론’의 효과 아닌가. 비록 ‘국가를 위한 정의’와 ‘권력을 위한 불의’를 혼동한 감은 있지만 그의 발언에서 ‘정의’를 명분으로 내세워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은 읽을 수 있다. 아무리 정의와 무관한 일을 벌이더라도 명분은 ‘정의’여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형성된다면 절반은 성공이라 할 만하다. 그 나머지 절반은 이름과 실제가 부합하도록 정의에 이름값을 돌려주는 것일 터이다.  

일찍이 파스칼은 “사람들은 정당한 것을 강한 것으로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강한 것을 정당한 것으로 만들었다.”고 꼬집었다. 그가 보기에 ‘힘없는 정의’는 무기력하며 ‘정의 없는 힘’은 전제적이다. 따라서 정의와 힘을 결합해야만 한다. 정당한 것, 곧 정의가 강해지지 않으면 강한 것이 정당함을 참칭한다. 정의는 어떻게 강해질 수 있는가. 정의로운 사회를 희원하는 사람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일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정의를 다룬 뛰어난 철학서를 소개하고, 철학적 문제를 제기하는 오늘날의 법적․정치적 논쟁을 다루는 수업”으로 요긴하다. 정치철학과 도덕철학의 주요 문제를 어떻게 사고하고 또 논쟁할 수 있는지 시범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정의론의 전체 구도를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으로 이해한다. 각각은 행복 극대화, 자유 존중, 그리고 미덕 추구가 정의의 핵심이라고 본다.  

공리주의자들에게 옳은 행위란 공리를 극대화하는 행위이다. 도덕적 판단에 계산가능성을 도입함으로써 공리주의는 도덕철학보다는 도덕과학을 자임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 모든 가치를 비용․편익 분석으로 환원할 수 있는가란 의문과 함께 개인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제기된다. 한편 자유주의 정의론을 대표하는 칸트에게서 도덕은 정언명령에 따른 자유로운 행동만을 가리킨다. 이 경우엔 무엇이 선이고 좋은 삶인지 판단하려고 하지 않기에 ‘중립을 지키는 국가’와 ‘자유로운 선택권을 지닌 자아’를 지지한다. 

하지만 샌델이 보기에 선택의 자유만 확보하는 것으로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수 없다. 좋은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는 노력이 거기에 덧붙여져야 하며, 그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목적론적 정의론의 요체다. 그런 관점에서 저자는 도덕을 회피하는 정치보다 도덕에 개입하는 정치를 옹호하며 바람직하다고 본다. 물론 이런 결론보다 중요한 것은 정의란 무엇인가를 탐색하는 질문의 여정이며 <정의란 무엇인가>는 그 길잡이로서 제격이다.  

10. 12. 31.  

P.S. 개인적으로 ‘정의’ 못지않게 중요한, 2010년의 키워드는 ‘그들’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적대를 무화하는 ‘우리’라는 이데올로기적 수사에 견주어 자본주의적 적대를 분명하게 직시하도록 하는 ‘그들’이란 기표의 파괴력은 과소평가할 수 없다. 우리의 ‘주적’은 ‘북한’이 아니라 ‘그들’이라는 사실을 이보다 더 선명하게 드러내준 책이 있던가? 바로 그런 ‘계몽적인’ 이유에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부키, 2010) 또한 ‘올해의 책’에 값한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와 함께 <정의란 무엇인가>, 이 두 권의 인문사회과학서가 합심하여, 혹은 ‘하버드’와 ‘케임브리지’가 합작하여 우리에게 말해주는 진실은 무엇인가? ‘그들이 말하지 않는 정의!’ 그게 내겐 2010년을 정리해주는 문구로 보인다. 

한편 장하준이 ‘더 나은 자본주의’를 말한다면, 슬라보예 지젝은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창비, 2010)에서 그러한 자본주의가 결국엔 ‘사회주의’(혹은 자유주의적 공산주의)로 귀결된다고 보고, 그것을 공산주의와 대비시킨다.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는 아직 대중화되지 않은, 그래서 도래하지 않은 ‘올해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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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괴즐 2010-12-31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권의 책은 저도 의미심장하게 잘봤습니다. 지젝의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는 아직 못읽어봤는데 챙겨봐야겠네요. 장정일 씨가 <정의...>의 비판적 서평 '<정의란 무엇인가>에 반대한다.'를 프레시안에 썼는데 개인적으로는 꽤나 탄복했습니다. 김용철 변호사도 <굿바이 삼성>의 한 챕터에서 <정의...>를 다소 비판적인 맥락에서 지적했었지요. 안 읽어보셨으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로쟈 2011-01-01 09:31   좋아요 0 | URL
네, 서평은 읽어봤습니다. 한데 저에겐 대중이 <시크릿>에 목매달던 시절이 더 '처참'했어요...

헌내 2010-12-31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사인과 알라딘이 선정한 2010년 관심저자에 선정되셨더군요...^^
그리고 2010년 알라딘 서재의 달인까지...ㅋ
축하드릴 일이 많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로쟈 2011-01-01 09:32   좋아요 0 | URL
서재의 달인은 '꾸준'하면 누구라도 할 수 있습니다.^^

jade 2010-12-31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젝의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는 지젝의 명성에 비해 내용이 너무 실망스러워 번역의 문제인지 아니면 지젝의 술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인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로쟈 2011-01-01 09:35   좋아요 0 | URL
저는 실망해본 적이 없어서요.^^ 언제나 자극을 주고 분발하게 합니다...

펠릭스 2010-12-31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이켜 보면 아쉽고도 두려웠던 2010년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그들'이 있고 두려워 했던 '우리'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들'이 될까 두려워 할때 내속에 '적'은 그대로였습니다. '로쟈의 저공비행'은 혼미해진 저를 창공을 향해 날게 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로쟈 2011-01-01 09:37   좋아요 0 | URL
'최악'의 시절은 가는 듯싶은데, 아직 '발악'이 남은 것 같아 조심스럽긴 합니다...

자꾸때리다 2010-12-31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장하준 교수 싸인을 받아서 갖고 있는데
이제 <23가지>도 싸인받아서 한 권 갖게 됐습니다.ㅋㅋㅋ
근데 과연 장하준 교수 이론이 얼마나 영속성이 있을지는 의문...
케인즈가 과연 부활하는데 성공할지...

로쟈 2011-01-01 09:38   좋아요 0 | URL
그걸 염려할 필요는 없을 거 같은데요.^^

Daniel 2011-01-01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 작년 한 해 감사했습니다.
올 한해도 많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로쟈 2011-01-01 09:3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2011-01-01 05: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01 09: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park6 2011-01-04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사놓고 아직 보지 않았어요.

대신 오늘 ebs에서 샌델의 강의를 보았습니다.

제가 기대했던 강의는 아니더군요.

해서 시큰둥하게 보다가, 한 장면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샌델 교수가 학생에게 배중율(principle of middle)을 주장하더군요.

장면을 묘사하자면 다음과 같아요.

한 학생이 '나는 다수의 생명을 위해 소수의 생명을 희생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라는 식으로 말을 하면서 '하지만 벤담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샌델교수는 '당신의 주장은 벤담이 틀렸다는 주장이다'라는 식으로 말하더군요.

샌델은 형식논리의 3대공리를 전제하고 논증을 전개하는 걸까요?


로쟈 2011-01-04 19:55   좋아요 0 | URL
네, 동영상 강의를 보진 않았지만, 기본적으론 그런 것 같네요. 사실 학생의 말은 벤담의 주장과는 배치되고요...
 
세계문학전집 번역의 의의와 문제점

다수의 세계문학전집이 백가쟁명에 접어든 시점에 걸맞게 세계문학론을 전체적으로 조감한 책이 출간됐다. 창비담론총서의 네번째 책으로 나온 <세계문학론>(창비, 2010)이 그것이다. 부제는 '지구화시대 문학의 쟁점들'. 개인적으론 <창작과비평>(2007년 겨울호)에 실었던 글도 재수록돼 반갑다. 소개기사를 옮겨놓는다. 참고로, <안과 밖>(2010년 하반기)도 세계문학론을 특집으로 다루고 있다.  

경향신문(10. 12. 28) '민족문학 속 보편성’ 세계문학을 논하다 

1970~90년대 ‘민족문학론’ ‘리얼리즘론’ ‘분단체제론’ 등 한국 사회의 담론 지형에 큰 영향을 미친 이론들을 생산해온 창비가 창비담론총서의 새 단행본으로 <세계문학론:지구화시대 문학의 쟁점들>을 펴냈다. 지난해 출간된 <이중과제론> <87년 체제론> <신자유주의 대안론>에 이은 네 번째 총서다.  

세계문학전집 출간이 붐을 이루고 베스트셀러 목록에 무라카미 하루키, 파울로 코엘료, 베르나르 베르베르 같은 외국 작가의 작품들이 줄지어 이름을 올리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 창비의 ‘세계문학’에 대한 성찰은 시의적절해 보인다. 문학평론가 백낙청·유희석, 브라질의 문학이론가 호베르트 슈바르스의 글 등 모두 13편이 실렸다.

책에서 논하는 세계문학은 세계문학전집류가 취해온 서구 중심의 주요 고전을 모아 놓는 방식과도, ‘해리 포터’ 시리즈 같은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대중문학과도 거리를 둔다. <세계문학론>이 근거로 삼는 개념은 19세기 초 괴테가 주창한 ‘세계문학’(Weltliteratur)이다. 괴테는 민족문학의 편향성과 편협성을 경계하며 개별 국가의 민족문학 속에서 보편적인 인간성을 추구한 문학을 ‘세계문학’으로 일컬었다.

그렇다면 한국문학에 민족문학으로서의 특수성과 함께 보편성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백낙청은 과거 민족문학론운동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한반도의 분단체제 극복이라는 과제와 세계체제 재편을 연결지으며, 그런 의미에서 분단체제와 대결하는 민족문학이 세계문학의 진전에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유희석씨는 이 논의를 한걸음 더 발전시킨다. 그는 “세계체제의 반주변부와 주변부가 하나의 체제로 작동하는 한반도라는 모호하고도 중층적인 현실 자체가 획일화·기계화되는 삶에 저항할 의지가 있는 작가들에게 상상력을 발휘할 최적의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밖에도 문학평론가 정홍수는 우리 민족문학이 서구문학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상상력과 가치를 지닌 문학으로 자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씨는 그런 가능성을 가진 작품으로 황석영의 <바리데기>를 들어 논의를 전개하고, 한기욱은 코맥 매카시의 <로드>와 주노 디아스의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을 예로 들어 미국 내의 소수자 문학이 가져온 의미를 짚어본다. 또한 윤지관 전 한국문학번역원장, ‘로쟈’로 불리는 서평가 이현우씨 등이 현장에서 경험한 문제의식을 풀어낸다.(이영경 기자) 

10.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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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10-12-29 0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말연시 잘 보내세요. 한해를 마무리하기 전에 로쟈님 글이 실린 책이 또 나왔나 보네요. 제목도 그럴싸해 보이니 한번 사볼게요^^

로쟈 2010-12-30 07:54   좋아요 0 | URL
네, 감사.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백야

'라캉'으로 검색을 하니 제일 먼저 뜨는 기사가 이번주에 개봉하는 영화 <카페 느와르>에 대한 소개평이다. 안 그래도 뒤늦은 개봉 소식을 접하고 한번 보고 싶던 차였다(지난주에 언론시사회가 있었고, 오늘은 VIP시사회가 열렸다고 한다). 이 참에 스크랩해놓는다.      

무비스트(10. 12. 27) 영화를 통해 완성된 책의 리얼리즘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감독으로 데뷔를 했다? 아마도 많은 평론가들이 가장 하고 싶어 하는 일이 영화를 만드는 일일 테지만, 동시에 가장 부담스러운 일도 영화를 만드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과거 프랑소와 트뤼포 감독은 이런 얘기를 했다. 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방법은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며, 두 번째 방법은 영화를 평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아마도 평론가 정성일은 그런 이유로 감독이 되었고, <카페 느와르>를 만들었을 것이다.

중학교 음악교사인 영수(신하균)는 같은 학교 선생인 미연(김혜나)과 연인이다. 하지만 학부모인 또 다른 미연(문정희)과 첫눈에 반해 사랑을 시작한다. 둘의 불륜이 계속되던 어느 날, 영수는 학부모 미연으로부터 이별을 통보받는다.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는 영수는 학부모 미연의 남편을 죽이려고도 하지만 결국 미연을 놓아준다. 실의에 빠져 청계천을 걷던 영수는 우연힌 선화(정유미)를 구해주고 선화의 사랑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선화로부터 자신을 사랑하지 말라는 당부를 받는다. 선화와 선화의 옛 사랑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게 된 영수는 선물을 배달하는 퀵 서비스 여인 은하(요조-신수진)로부터 자신에게 배달된 선물을 전해 받는다.

<카페 느와르>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연인이 있는 남자가 불륜을 저지르고, 그로 인해 두 사람을 모두 잃고 외로워한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정리를 하면 영화는 TV 통속극처럼 간단해 진다. 하지만 <카페 느와르>는 3시간 18분에 이르는 긴 러닝타임을 지니고 있다. 짐작했겠지만 영화는 단순히 내용을 전달하는 데에만 급급하지 않는다. 자신의 소원을 들어줄 한 명의 여자를 찾아 헤매는 영수를 중심으로 익숙하지만 낯선, 서울이라는 공간을 끊임없이 돌아다닌다. 또한 대사는 구어체가 아닌 문어체로 이루어져 있고, 지나간 사랑 이야기는 엄청나게 긴 대사량으로 처리되기도 한다. 분명 <카페 느와르>는 지금까지 우리가 봐 온 영화들과는 스타일이나 의미 전달 방법에서 다른 길을 택했다. 굉장히 낯설지만 그렇기 때문에 흥미롭다.  



우선 이 영화가 선택한 가장 핵심적인 정체성은 책이다. 영화의 중심 이야기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백야’와 관련을 맺고 있는데,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사들이 모두 이 책들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게다가 대화법 역시 책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문어체로 이루어져 있다. 정성일 감독은 ‘책의 리얼리즘’이라는 말로 이들의 ‘사실성’에 대해 얘기했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가 완벽히 책의 모습을 하고 있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접근법에는 약간의 의문도 있다. 과연 책을 읽지 않은 이들에게 이들의 행위는 어떻게 ‘읽힐’ 것인가? 마치 영화를 볼 수 있는 자격 조건을 제시한 듯한 뉘앙스도 배제할 수 없다.

이 외에도 <카페 느와르>는 다양한 영화들의 인용으로도 관심이 간다. 아예 대놓고 장면과 대사를 따온 <극장전>부터 <괴물> <올드보이> <살인의 추억> <행복> 등의 우리 영화가 여러 방식으로 인용된다. 또한 브레히트, 체호프, 라캉 등은 물론 고다르, 오즈 야스지로 등의 고전 영화감독들의 스타일도 묻어난다. 저 장면은 어느 영화의 어떤 장면! 이라고 똑 부러지게 밝히지 못한다 하더라도 영화를 즐겨온 이들에게 <카페 느와르>의 장면 장면들은 남다른 재미를 준다. 게다가 그 장면들이 서울이라는 지독하게 낯익은 공간에서 느껴지는 특별함이라는 점에서 생각할 바를 준다.

정성일 감독은 영화의 길이에 대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인용하며 “죽음을 늦추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백야’를 가져왔고, 덕분에 베르테르는 죽음을 조금 더 연기했다. 영화가 6시간, 8시간이었다면 그 죽음은 조금 더 연기됐을 거다. 하지만 사랑과 죽음이라는 근본적인 설정은, 설정 그 자체로는 한계가 보이기도 한다. 하여 정성일 감독은 이러한 태생적인 설정을 현실에 대입하기도 한다. 우리 시대가 우리에게 가져온 죽은 시간들, 변화된 모습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됐던 목숨을 연명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에서 현실은 또 다른 ‘극사실주의’를 드러낸다. 책의 리얼리즘은 영화를 관통하며 삶의 리얼리즘으로 변모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 감독으로서의 정성일이 얼마나 드러났을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영화에 드러나 많은 가치와 의도가 선배 영화인들, 고전 감독들이 만들어놓은 토대에서 그들을 인용하거나 거부하거나 비웃기도 한다. 영화를 향한 순수한 예술적 접근이 한 영화광으로 하여금 영화를 만들게 했고, 그것이 <카페 느와르>라는 결과물을 낳았다면, 정성일은 감독으로서 자신의 모습을 아직 드러내지 않은 셈이다. 그의 말대로 두 번째 영화가 만들어졌을 때, 감독 정성일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 싶다.(김도형기자)  

10. 12. 27.   

P.S. 지난주에 읽은 감독 인터뷰기사도 옮겨놓는다. '세계문학전집'을 차례로 영화화하고 싶으며 다음 영화로 <마담 보바리>를 지목한 것이 인상적이다(의외로 '소박한' 야심 아닌가?). 전집이라! 그는 몇 편까지 찍어볼 생각인지 궁금하다...

 

경향신문(10. 12. 23) “수많은 예술 도둑질한 영화, 이제 문학과 우정 나눠야죠”

한국에서 누구보다 많이 영화를 사랑하고 보고 글을 쓴 평론가 정성일. 그가 지천명에 접어들어 내놓은 장편 데뷔작 <카페 느와르>는 놀랍게도 책을 위한 헌사다. 이 영화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를 원작으로 한다. 영화 도입부엔 ‘세계소년소녀 교양문학전집’이라는 부제가 나오고, 등장 인물들은 해외문학 번역서에서 뽑아낸 듯한 문어체 대사를 읊는다.

정성일 감독은 “책의 문자들이 배우들의 육신을 통과해서 어떻게 피와 살을 얻고 말하여지는지, 어떤 방식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는지 보고 듣고 싶어졌다”고 했다. 그는 “책을 찍고 싶었다”며 이 영화가 ‘책의 리얼리즘’을 구현한다고 말했다.

“영화는 종합예술입니다. 그 이유는 영화가 오랫동안 수많은 예술들을 도둑질했기 때문이지요. 이제 도둑질한 재산을 두고 우정을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카페 느와르>는 문학에 대한 영화의 우정입니다.” 

 

<카페 느와르>는 초등학교 음악 교사인 영수(신하균)의 이야기다. 그는 같은 학교 교사 미연(김혜나)과 연인이지만, 같은 이름의 학부모 미연(문정희)과 불륜에 빠진다. 결국 학부모 미연은 이별을 선언하고, 괴로워하던 영수는 우연히 선화(정유미)를 만나 호감을 느낀다. 전반부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후반부는 <백야>에 기초했다. 상영시간은 3시간18분이다.

그가 오랫동안 영화를 보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부딪힌 가장 큰 문제는 “(영화의) 이야기를 믿을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는 올해 흥행한 몇 편의 영화를 예로 들며 “그 얘기가 말이 되느냐”고 되물었다. 결국 믿을 만한 얘기가 어디있는지 고민한 끝에 100년 이상 버티면서 읽히고 또 읽힌 이야기는 믿을 만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다면 왜 하필 괴테와 도스토예프스키인가. 그는 길게 설명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처음 읽은 건 12살 때였습니다. 아무도 제게 그 책이 권총 자살로 끝난다는 사실을 얘기해주지 않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너무 충격이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폭력영화를 본 독자에겐 놀랍지 않겠지만, 제가 그 책을 읽은 건 60년대였다는 사실을 환기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서 무수한 죽음을 보았습니다. 80~90년대를 거치면서 한국 사회에선 죽어도 너무 많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살아남았고요. 저는 어떤 사람을 ‘열사’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저항감이 있습니다. 죽음을 기려서는 안됩니다. ‘죽으면 안돼’라고 외치는 것이 우리가 해야할 일입니다.”

그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영화로 옮기기로 결심했지만 베르테르의 죽음만은 막고 싶었다. 괴테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도스토예프스키라면 막지는 못할망정 연기시킬 수는 있지 않을까. 영화가 늘어난 것은 그 때문이다. 베르테르의 자살을 최대한 미루고 싶었다.

 

<카페 느와르>에는 책만 나오는 건 아니다. <극장전>, <괴물>, <올드보이> 등 동시대 한국영화, <빨간 풍선>, <주말> 등 해외 고전영화가 인용된다. 정 감독은 최근 자신이 낸 책 제목이기도 한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라고 그 이유를 들었다.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요. <올드보이>의 최민식이 망치로 내려치다가 너무 힘들어 한강에 놀러나와요. 그러면 <괴물>의 송강호가 있는 매점에 오는 거예요. 아이 잃은 <밀양>의 전도연과 아이를 지키려는 <마더>의 김혜자가 나란히 앉는 거예요. 모든 영화들이 모여서 만드는 하나의 세상을 비유하고 싶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출구를 열고 나가면 다른 영화의 입구가 있는 식으로 신(scene)을 생각하면 어떻겠느냐는 말이죠.”

영화엔 동시대 한국 사회를 직접적으로 환기시키는 장치들이 많다. 영화의 프롤로그에서 한 소녀는 미국의 대표적인 햄버거 가게에 앉아 “하나님 아버지 부디 저를 보살펴 주세요”라고 말한 뒤 햄버거를 먹는다. 정 감독은 이를 두고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이라고 말했다. 햄버거 안에 든 미국산 쇠고기, 이를 통한 광우병을 은유한 것이다.

“이 장면을 보고 ‘햄버거를 먹고 죽는다는 게 말이 되어요?’라고 묻는 거예요. 전 당황했어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촛불시위에 나왔는데, 그때 나왔던 한국 사람들조차 다 잊은 것인가. 2년 지났는데 잊었다면 5년 뒤엔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쓸쓸하고 스산해졌어요.”

평론가로서 엄청난 영화를 보고 숱한 영화 촬영장을 누볐지만, 장편 연출자로서 나선 건 처음이다. 그는 영화를 찍으면서 “영화의 성질에 대해서, 영화가 어떤 방식으로 세계를 긍정하고 세계는 어떤 방식으로 영화를 부정하는가를 배웠다”고 말했다. 아울러 100% 동시녹음으로 영화를 찍으면서 서울이 이토록 소음과 공사가 많은 곳인지 처음 알았다고도 했다. 사전에 장소를 섭외한 뒤 막상 촬영하러 가면 10곳 중 4곳은 공사중이었다. 이것이 세계가 영화에 주는 부정성이다. 영화는 그 부정성을 도리없이 받아들여야 했다. 

그는 언론시사회 내내 극장 뒤편에 선 채 영화를 봤다. 그는 “느껴보고 싶었다. 객석에 앉은 사람들이 내가 만든 영화, 내가 생각한 이야기, 만들어낸 인물을 어떻게 느끼는지. 그 즉각적인 한숨소리와 웃음소리, 호의와 저항감, 휴대폰의 불빛까지. 그걸 객석에 앉아 느낄 수는 없었다. 극장 안의 풍향계가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카페 느와르>에 대해 스스로 평을 하면 어떨까. 그는 “별점을 매기면 다섯 개, 20자평을 쓴다면 ‘휘몰아치는 감동, 이토록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가 있을까’라고 쓸 것”이라며 “지구상 모든 감독들이 그렇듯 자기 영화에 대해선 눈이 먼다”고 말했다.

“자기 영화는 무조건 긍정해야죠. 그건 스태프와 배우에 대한 예의입니다. 자기가 의미있는 작업을 했다는 태도가 없으면 누가 그 영화를 사랑해주겠습니까.”

그는 기회가 된다면 세계문학전집을 차례로 영화화하고 싶다고 했다. 다음에 찍어보고 싶은 작품은 <보바리 부인>이다. <카페 느와르>는 30일 개봉한다.(백승찬기자)  

감독의 말  

영화와 인생 중에서 무엇이 더 중요합니까? 프랑소와 트뤼포가 대답했습니다. 당연히 영화가 더 중요하지요.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런 다음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나는 결국 사라질 것이고 영화는 여기 남을 것입니다.  

영화를 만들 결심을 하면서 작은 계획을 하나 세웠습니다. 그건 ‘세계소년소녀 교양문학전집’이라는 이름 아래 연작을 만드는 것입니다. 제일 먼저 꺼내든 책은 내가 14살 때 처음 읽은 요한 볼프강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었습니다. 이 책은 괴테가 25살이 되던 해 1774년에 썼습니다. 이 영화의 첫 번째 제목은 그 책에서 가져온 <슬픔(Die Leiden )>이었습니다. 그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아무도 내게 그 책이 그렇게 끝난다는 이야기를 해 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무 방어도 하지 못한 채 그 책의 마지막 대목에서 베르테르가 자기 머리에 권총 자살을 하는 대목을 읽었습니다. 구식 권총은 아마도 단번에 베르테르의 생명을 빼앗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대목은 이렇게 쓰여져 있습니다.  

“.....의사가 도착했을 때 불쌍한 베르테르는 이미 회복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방바닥에 쓰러진 채 맥은 아직도 뛰고 있었으나, 그의 손발은 모두 마비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오른쪽 눈 위에서 머리를 관통하여 쏘아서 뇌수가 밖으로 터져 나와 있었습니다. 별 효과가 없는 줄 알면서도 팔의 정맥을 째고 방혈을 시켰습니다. 피가 흘러 나왔습니다. 숨은 간신히나마 아직 쉬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아팠을까요, 젊은 베르테르는. 나는 이 책을 읽은 다음 나이를 먹으면서 많은 죽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의 운명이 다하는 것은 슬프기는 하지만 놀라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자기 스스로 자기의 숨을 거두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나는 1980년대를 살아남았고 그런 다음에도 한참을 더 살고 있습니다. 간절하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제발 그러면 안 됩니다. 그러니 그저 거기서 멈춰 주세요. 나의 힘으로 괴테의 소설 속의 죽음을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곁에 한 편의 소설을 더 가져다 놓기로 하였습니다. 오로지 그걸 미루기 위해서입니다. 그때 내가 서가에서 뽑아든 건 표드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예프스끼가 그의 나이 27살인 1848년에 쓴 <백야 혹은 감상적 소설, 어느 몽상가의 회상 중에서>입니다.  

그 해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고,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당 선언>을 썼습니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그 죽음을 미루고 싶었습니다. 그저 나흘 밤이라도 좋으니 그걸 미루고 싶었습니다. 거인 괴테가 베르테르의 관자놀이에 총을 쏘았을 때 그 죽음을 감히 내 힘으로는 미룰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도스또예프스끼라면, 네 그렇습니다, 도스또예프스끼라면 그렇게 잠시라도 미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그 죽음을 미루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영화의 상영시간이 긴 것도 오로지 내 마음 속의 간절한 호소의 일부입니다. 차라리 나는 그것을 영화가 내게 요구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영화가(*영화를?) 끝내지 않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1944년에 쓴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입니다.  

2010년 11월 오늘 첫 눈이 올지도 모른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정성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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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8 0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8 08: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꾸때리다 2010-12-28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제 눈엔 정유미 누나 밖에 안 보여요. 사랑해요 유미 눈화 ㅜㅜ ♥

로쟈 2010-12-30 07:56   좋아요 0 | URL
정유미론을 하나 쓰시죠.^^

푸른바다 2010-12-28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성일씨의 특성을 볼때 왠지 의식/지식 과잉의 헐리우드 키드 같은 영화가 아닐까 하는 선입견이 드네요.^^ 물론 선입견이길 바라고 저도 기회가 되면 영화를 보고 싶습니다.^^

로쟈 2010-12-30 07:55   좋아요 0 | URL
인터뷰들이 나오고 있는데, 역시나 열정적인 달변입니다.^^

귀족온달 2011-02-05 0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동안 정성일씨의 영화평을 읽어왔는데요, 찬찬히 읽다보면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다고 봅니다. 뛰어난 작곡가가 절창이 아니듯 뛰어난 영화평론가가 좋은 영화감독이 될 수는 없겠죠. 영화는 어떻게 이미지화 하는가가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성실의 덕목만으로는 안되는 감각과 재능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정성일씨 영화를 보면서 느낀건 힘을 빼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노래를 부를때도 목에 힘을 주지않는단계를 가야 제대로 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너무 많은 생각은 영화를 만들때 좋은 덕목은 아닌듯 합니다. 예전에 이문열씨가 그런말을 하더군요. 소설의 구조와 상징과 모든 이론적인 걸 생각하고 있으면 한편도 쓸수가 없다고요...영화창작도 역시 비슷하지 않을까요...

로쟈 2011-02-06 12:11   좋아요 0 | URL
네, 영화는 저도 실망스러웠습니다. 기대를 너무 많인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아는 게 병'일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들었어요. 혹은 그가 '현실'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모르는 게 아닌가도 싶었어요. '세계명작'이란 외피를 고집하는 것도 미심쩍은 부분입니다. 그는 자신의 시나리오를 쓸 자신이 없는 건가 싶어서요...

예브 2011-03-12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스키대로를 떠올리며 읽었던 백야를 청계천에서 다시 눈으로 보는 재미도 있던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