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권 바깥의 연구공간이나 지식공동체, 하면 떠올리기 쉬운 건 '수유+너머'이지만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곳이 조금 더 있는 걸로 안다. 세미나 네트워크 '새움'도 그런 경우인데, 자세하게 소개해주는 기사가 있어서 스크랩해놓는다. 특히 올해의 세미나 주제인  ‘자본·미국·한국 지식인’의 성과가 빨리 묶여서 나오길 기대해본다.

한겨레(11. 01. 07) ‘진보적 지식’ 나누는 제도 밖 연구 공간

“인도 웨스트벵골주에서는 인도 공산당이 20년째 장기 집권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개입한 공산당 대학살 이전, 전성기 때 인도네시아 공산당은 공산주의 국가들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습니다. 이런 사실들에 주목하고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지식인이 과연 우리나라엔 얼마나 될까요?”

많은 지식인들이 대학, 연구소, 국가기관 등 이른바 공식적인 ‘지식의 체계’ 속에서 살아간다. 그런 제도를 벗어나 ‘대안적인 지식 운동’을 펼치고자 하는 지식인들 역시 자본이나 미디어의 영향에서는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어떤 지식이 어떻게 생산되느냐는 항상 체제의 요구에 따라가기 마련이다. 체제는 또 전문 지식인에게 권력을 주는 방식으로 지식 생산의 위계적 질서를 끊임없이 재생산해낸다.

마르크스주의를 기반으로 삼아 독립적인 연구 공간을 표방하는 세미나 네트워크 ‘새움’(seumnet.com)은 이러한 지식 생산의 체제를 거부하는 곳이다. 인문학에 대한 대중의 욕구가 커짐에 따라 그동안 대중이 모여서 공부하고 연구하는 아카데미나 연구 공동체들이 많이 늘어났지만, 설립 취지와 운영 방식을 볼 때 새움만큼 급진적인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 4일 서울 합정동 새움 세미나실에서 만난 새움 회원 한형식(43), 유승민(34)씨는 인터뷰 내내 “우리는 각각 한 명의 회원일 뿐”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자신들의 말이 마치 새움 전체를 대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까 우려한 탓이다. 새움에는 대표나 상근자, 실무자 등이 따로 없다. 또 회원에 대한 자격조건도 따로 없다. “전문적 지식인에서부터 일반 대중까지 모두 참여할 수 있으며, 오직 참여와 공감만이 회원이 되는 최소한의 자격조건”이라고 한다. 강좌와 세미나 등 모든 활동은 무료로 이뤄지며, 오직 회원들의 자발적인 분담 노력만으로 재정을 충당한다. 세미나실 청소나 도서 정리, 문단속 등 모든 크고 작은 일들도 회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진다. 새움의 유일한 의사결정 기구는 한 달에 한 번, 회원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운영위원회뿐이다.

새움이 만들어진 초창기부터 회원으로 활동해 온 한형식씨는 “대안적인 지식을 만들어내려면, 대안적인 삶이 밑바탕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존 체제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권력과 자본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결코 대안적인 지식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주장이다. 새움의 시초는 8~9년 전 연세대에서 학생들이 만들었던 정치철학 세미나라고 한다. 그 뒤 유승민씨와 같은 정치경제학 전공자들이 합류하면서 공부의 영역이 확장됐고, 점차 지금과 같은 틀이 만들어졌다. 새움이라는 이름을 단 지는 올해로 5년째라고 한다.

자발적인 회비로 굴러가는 곳에서 안정된 생활의 근거를 찾기란 불가능할 터. 그동안 새움을 거쳐간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대학과 같은 제도 안으로 편입하기도 했다. 그래도 대학생들을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이 꾸준히 새움을 찾아온다고 한다. 유승민씨는 “고등학생 자녀를 둔 중년의 여성 회원이 꾸준히 ‘<자본론> 강독’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며 “(새움의 운영이) 비교적 안정적인 수준으로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현재 강좌·세미나에 참여하는 인원은 70~80여명. 지난해에는 ‘새움총서’ 시리즈의 첫 책으로 한형식씨의 <맑스주의 역사강의>를 출간하기도 했다. 



이런 정체성 때문이겠지만, 새움에서 이뤄지는 세미나 주제들은 대부분 제도권 학계에서 주목하지 않는 것들이다. ‘아시아 저항운동’, ‘라틴아메리카 사상’ 등의 주제가 눈에 띈다. 한씨는 “‘남이 하지 않는 것을 하자’는 것이 우리의 모토”라고 말한다. 마르크스주의를 기본으로 삼고 있는 것이 그 첫번째고, 학계의 주류라 할 수 있는 서구 담론이 아니라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등 다양한 지역에서 발전해나간 마르크스주의를 연구 주제로 삼는 것이 두번째다. 국가와 자본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제도권 학계가 주목하지 않는 지점이 되레 새로운 대안의 싹을 발견할 수 있는 지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씨는 “우리의 현실을 정확히 짚기 위해서는, 서구의 주류 담론을 붙들고 있지 말고 우리와 비슷한 역사적 맥락에 처했던 지역에서 일어났던 움직임들을 포착해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새움의 프로젝트 가운데 가장 관심이 가는 주제는 올해 처음 시작하는 ‘자본·미국·한국 지식인’ 세미나다. “해방 이후 한국에서 지식이 생산되고 유포되는 과정에서 어떤 계획과 제도들, 그리고 정치경제적 힘이 작용했는가”를 문제의식으로 삼고 있다. 곧 오늘날 한국 지식인 사회가 형성된 과정을 역사적으로 추적하는 작업이다. 한씨와 유씨는 “지식에 대한 권위를 물려받아온 제도권 학계에선 절대 손댈 수 없는 주제”라며 “시간은 꽤 걸리겠지만 연구의 결과들은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런 거대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기엔 새움의 역량이 아직 미비한 것이 아닐지? 독립적 연구 공간으로서 이제 미약하나마 자리를 다졌다고 보는 새움 회원들은, 앞으로 다른 단체 및 개별 연구자들과의 연계와 협력을 통해 콘텐츠를 더욱 확대해나갈 계획을 짜고 있다. 비록 새움에 직접 참여하진 않더라도, “지식은 조건 없이 나눠야 한다”는 명제를 부정할 연구자들은 없을 것이란 기대다.(최원형 기자) 

11. 01.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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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6 2011-01-07 19:57   좋아요 0 | URL
아니 이렇게 좋은 정보가...

감사합니다~ㅎㅎ

로쟈 2011-01-08 09:17   좋아요 0 | URL
흠, 새로운 정보는 아닌데요.^^;

롯데명품위즐 2011-01-07 21:05   좋아요 0 | URL
1. 10 (월) 19:00에 <맑스주의 역사> 강좌가 있습니다.
1. 13 (목) 19:00에 <맑스 경제학 입문> 강좌가 있습니다.
맑스 엥겔스 저작 읽기 세미나는 2. 7 (월)에 있고요
<경제는 왜 위기에 빠지는가> 세미나는 1. 11 (화) 19:00 입니다.
<자본, 미국, 한국 지식인> 세미나는 1. 13 (목) 19:00 시작입니다.
seumnet.com입니다.
그냥 참고하시라고요;;;

로쟈 2011-01-08 09:18   좋아요 0 | URL
네, 홈피에 일정이 나오더군요.^^

자꾸때리다 2011-01-07 23:52   좋아요 0 | URL
여기에 노홍철 형님 노성철 님도 활동하시던데...

로쟈 2011-01-08 09:18   좋아요 0 | URL
자꾸때리다님도?^^

자꾸때리다 2011-01-08 20:08   좋아요 0 | URL
아뇨 그냥 몇 번 가보기만 했어요.

starover 2011-01-13 09:00   좋아요 0 | URL
그린비 오픈캐스트를 통해 들어가셨는데...... 혹시 이 서재랑 그린비랑 무슨 관련이 있나요?

로쟈 2011-01-13 10:15   좋아요 0 | URL
관련은 없고, 그린비에서 링크를 해놓은가 보네요...
 

지난 12월 프랑스 비평가 모리스 블랑쇼 전집의 하나로 <문학의 공간>(그린비, 2010)이 다시 번역돼 나왔다. 그리고 이어서 철학자 장-뤽 낭시의 <무위의 공동체>(인간사랑, 2010)가 출간됐다. 낭시의 책은 12월 30일이 발행일자다. 2010년의 '마지막 책'이 아닐까. 책을 손에 든 건 엊그제이고 예전에 구해놓은 영역본도 어제 책장에서 찾았다. 다른 독서계획이 잔뜩 밀려 있어서 언제 차근차근 읽어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짝'은 맞춘 듯해서 흡족하다.  

  

'짝'이라고 한 건 블랑쇼와 낭시의 <밝힐 수 없는 공동체/마주한 공동체>(문학과지성사, 2005)를 보충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두 권 모두 역자는 박준상 교수다.  

   

블랑쇼 연구서로 <바깥에서>(인간사랑, 2006)를 이미 펴냈고, 예술론이자 타자론으로 <빈 중심>(그린비, 2008), 그리고 블랑쇼 전집 번역으로 <기다림 망각>(그린비, 2009)을 펴냈다. 앞으론 블랑쇼란 이름과 함께 자동적으로 떠올리게 될 '전문가'이다.   

국내에는 <문학의 공간>(책세상, 1990), <미래의 책>(세계사, 1993) 등으로 처음 소개가 됐지만(그의 소설 일부가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돼 나온 건 있다), 블랑쇼란 이름을 접한 건 김현의 <프랑스 비평사>(현대편)에서였다. 그가 중요하게 다룬 20세기 후반의 비평가 네 사람이 사르트르와 바르트, 바슐라르, 그리고 블랑쇼였기 때문이다. 내게 각인된 블랑쇼의 키워드는 '죽음' '부재' '침묵' 등이다(푸코는 '바깥'이라고 했던가).  

그리고 또 조교시절 일로, 대학원에 진학하려다 그만둔 한 후배가 가장 좋아하는 비평가가 누구냐는 나의 질문에 '블랑쇼'라고 답해서 놀란 적이 있다(그는 다소 침울한 성격이었다). 그래서 그 후배 또한 블랑쇼란 이름이 연상시켜주는 이가 됐다. 그리고 세번째는 영화평론가 정성일이다. 한 주간지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책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제목을 들뢰즈 표현에서 따왔다고 하셨는데, 비평을 보면 이 외에도 철학자, 평론가들의 차용이 많이 나오거든요. 사유의 돌파구가 된 사람은 누구였나요?

"마음 속에 항상 들어있는 사람은 두 명이에요. 벤야민과 모리스 블랑쇼. 두 사람이 쓴 책은 20대 때 읽기 시작해서 많은 영향을 받았죠. 지금도 첫 구절을 어떻게 써야 할지 떠오르지 않을 때, 왼손에는 벤야민, 오른 손에는 블랑쇼를 들어요. 제목이 이렇게 되어 있긴 합니다만, 동세대 중에는 들뢰즈 보다 바르트에 더 손이 가고요."   

하지만 아직 나는 '나의 블랑쇼'를 갖고 있지 않다. <문학의 공간>을 예전에 숙독해보지 않아서이다. 나는 그가 좀 비의적이고, 너무 은둔적이라고 생각했었다. <정치평론 1953-1993>(그린비, 2009)은 그러한 인상을 재고하도록 요구한다. 해서 <정치평론>을 경유하여 <문학의 공간>으로 재진입하는 게 올 상반기 독서계획 가운데 하나다. 문학을 '다시' 읽는 계기나 영감 같은 걸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모리스 블랑쇼에 다가가기...  

11. 01.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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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7 09: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07 1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1-01-07 13:58   좋아요 0 | URL
사진 속 인물이 블랑쇼인가요? 워낙 은둔의 삶을 산데다 책에 자신의 사진을 싣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이제까지 얼굴을 확인하지 못했는데 미남형이네요. 생전에 유일하게 너나들이한 친구가 레비나스였다죠? 이래저래 독특한 사람이네요^^

로쟈 2011-01-08 09:16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그래도 국내에선 알게 모르게 매니아 독자들이 있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공통점

강준만의 <미국사 산책1>(인물과사상사, 2010)을 펼쳤더니 '왜 '통섭 미국사'가 필요한가?'란 문제제기가 머리말이다. 마침 이 머리말을 중심으로 '강준만식 미국사'의 의의를 짚어준 기사가 있기에 옮겨놓는다. 여하튼 다작의 생산성과 수집광적 면모, 사회적 문제의식과 글쓰기의 열정은 다시금 놀랍고도 놀랍다.  

한겨레(11. 01. 01) 종횡무진 경계초월…‘강준만식 미국사’ 

3월 중순에 나온 제1권 ‘신대륙 이주와 독립전쟁’으로 시작한 강준만 교수의 <미국사 산책>이 약 10개월 만인 12월 말에 제17권 ‘오바마의 미국’을 끝으로 마침내 완간됐다. 18권짜리 <한국 현대사 산책>과 10권짜리 <한국 근대사 산책>에 이은 이 17권짜리 미국사 ‘산책’ 또한 강 교수다운, 그리고 어쩌면 강 교수만이 해낼 수 있는 대중적 역사 쓰기의 새 경지를 보여준다. 그의 역사책은 우선 읽기 편하고 재미있다. 강준만의 ‘산책’에서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대개의 나라 안팎 역사 서술들이 일반인들에겐 지겹고 따분한 ‘그들(전문연구자들)만의 놀이’처럼 돼 있는 현실에선 더욱 그러하다.

강 교수는 이번 산책을 시작할 때 머리말 ‘왜 통섭 미국사가 필요한가?’에서 몇가지 중요하고도 인상적인 서술원칙을 밝혔다. 우선 세분화된 자신들의 영역만을 파고드는 전문연구자들의 ‘좁고 깊게 파기’를 지양하겠다고 했다. 그런 ‘학술적 글쓰기’가 연구실적 올리기에 좋고 또 학계 인정도 받는 길이지만 그렇게 해서는 통합적인 역사인식이라는 역사연구와 서술의 애초 목적 자체를 훼손하게 된다. 그것은 또한 역사란 고리타분하고 따분한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낳는 데 기여해왔다. 강 교수는 친미냐 반미냐, (한국사의 경우) 자학이냐 자위냐식 이분법적 역사이해의 편식이나 폐단도 그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본다.

“왜 모든 분야와 주제들을 ‘비빔밥’처럼 요리해 통합적으로 자세히 보여주는 시도가 이렇듯 외면받아야 한단 말인가? 정치, 경제, 군사, 외교, 사회, 문화, 언론, 영화, 방송, 학술, 과학, 기술, 문학, 언어 등 모든 분야가 상호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게 아닌가? …어느 한 분야에만 집착할 경우 포괄적이고 공정한 시각을 놓치게 되고 그로 인해 긍정과 부정의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치게 되는 건 아닌가?”  

이게 강 교수의 문제의식이고 ‘산책’ 기술 기본원칙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강 교수에게 중요한 또 하나의 역사기술 원칙은 파편적으로 파고만 들 게 아니라 전체를 아우르는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상을 그려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 미국이란 나라에 대한 지금 한국 사회의 이해가 어딘가 크게 잘못돼 있고, 그걸 바로잡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닿아 있다.

문제는 그게 한 사람의 힘으로 가능하냐는 것일 터. 그 능력이 바로 강준만 역사쓰기의 비결이요 요체다. 미국 조지아대, 위스콘신대에서 미국언론사·대중문화사·커뮤니케이션사를 공부한 강 교수는 굉장한 수집가다. 국내외 전문서적, 신문, 방송 보도, 잡지, 논문 등 그가 인용하는 방대한 자료들을 보면 사료를 찾는 그의 안테나와 채집망이 얼마나 강력하고 광범한지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이런 기성 연구나 보도자료들을 적절히 채집하고 활용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닥치는 대로 긁어모아 적당히 나열하는 차원을 넘어서려면 수집력 못지않게 그것을 선별해내고 재조립·재해석하는 선구안과 창의력이 필요하다. 그건 또 엄청난 독서력과 판단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시공을 넘나드는 서술방식이다. 예컨대 제1권의 경우, 아메리카 대륙에 인간이 살기 시작한 기원전 역사부터 시작에서 곧바로 15세기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갔다가 다시 ‘콜럼버스는 과연 영웅인가, 약탈자인가’에 관한 21세기의 논쟁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인쇄술의 발명과 종교개혁 등 콜럼버스와 그의 후예들을 아메리카로 밀어낸 유럽 사정을 파고들었다가 포카혼타스 신화 등 아메리카 원주민 사정, 그리고 노예무역과 인디언 사냥, 독립전쟁, 유럽의 죄수유배지가 된 호주 원주민의 비극 등으로 확장해간다. 오바마 정권의 등장과 향후 전망을 축으로 최근의 위키리크스 파장과 ‘구글-위키피디아-아이폰’ 정치학까지 다루는 마지막 제17권은 ‘왜 미국은 제2의 한국인가?’라는 짧지 않은 맺음말을 따로 붙였다.

애초 강 교수는 이 책을 ‘미국사를 중심으로 한 세계사’로 꾸밀 작정이었고, 한국인을 위한 미국사 산책이니만큼 특히 한-미 관계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한국 현대사의 주요장면들과 겹치는 이 책의 미국사 부분은 좀더 온전한 한국현대사 이해에도 유용하다. 강 교수는 한국과 미국이 닮은 점으로 압축성장, 평등주의, 물질주의, 각개약진, 승자독식 등을 꼽고, 한국의 반미주의와 사대주의의 정체에 대해서도 파고든다. 그는 여기서도 친미냐 반미냐, 사대주의냐 아니냐 식의 이분법적 시각을 거부한다. 하지만 그런 것을 섣불리 이론화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진 않는다. 그가 말하는 ‘통섭’은 친미-반미뿐만 아니라 좌-우, 진보-보수 등 어느 한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겠다는 게 대원칙이다. 편식하지 않도록 다양한 재료로 적절히 요리해서 내놓을 테니 최종판단은 독자가 하라는 것이다. 물론 사관이 없을 수 없다. 그 방대한 자료들을 가려내고 재배열할 때의 선구안 그 자체에 이미 강준만의 역사관·세계관이 작용하고 있다. 그게 이 책에 의미를 채워주는 또 하나의 기둥이다.(한승동 선임기자) 

11. 01. 07.  

P.S. 하워드 진의 '미국사' 외에 어떤 책들이 더 나와 있나 찾아봤더니 앨런 브링쿨리의 3권짜리 <있는 그대로의 미국사>(휴머니스트)가 가장 두툼한 분량으로 보인다. 강준만식 '비빔밥' 미국사가 갖는 희소성을 한번 더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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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결심, 까지는 아니고 계획 중의 하나는 젊은 시인과 작가들을 '전작'으로 읽는 것이다. '젊은'이라고 한정한 것은 그래야 '전작'으로도 분량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더불어, 동시대, 동세대 작가들의 언어와 사유를 좀더 밀착해서 음미해보고 싶어서다(그와 함께 '대작'들도 읽어보기로 했는데 첫 타자가 강준만의 17권짜리 <미국사 산책>이다). 매달 가능한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여하튼 시인 조연호와 소설가 김사과를 첫 완독 대상으로 정했다. 조연호 시인은 지난해 시사IN이 꼽은 '올해의 책' 시집분야에 <천문>(창비, 2010)이 선정돼 관심을 갖게 됐다. 김경주에 이은 '서프라이즈'이다. 이번에 복간된 문예중앙시선에서도 그의 <농경시>(문예중앙, 2010)가 첫 '빳다'다(실제로 그의 시들을 읽다 보면 한 대 얻어맞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시인 평론가 권혁웅은 이렇게  평했다.   

그의 시에는 형이상(形而上)과 형이하(形而下)가, 문법과 비문법이, 고백과 발견과 예언과 권태와 찰나가, 그리고 우리가 알아왔던 모든 희로애락이 들어 있다. 이에 비견할 수 있는 문학적 형상물은 박상륭의 전 저작과 보르헤스의 알렙, 둘뿐이다. 우리 시의 진화를 이야기할 때 조연호를 빼놓을 수는 없게 되었다. 그것은 불가역적이다. 그의 출현 이후로 한국의 현대시는 조연호 이전과 조연호 이후로 나뉘었다. 다시는 그것을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의 시를 읽지 않는 것도 '모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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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wbudget 2011-01-06 11:51   좋아요 0 | URL
아! 저 역시 로쟈님과 정확히 같은 이유로 1월 1일부터 한국 현대시를 읽기 시작했어요. 고등학교 때 김수영과 백석 그리고 황지우를 읽은 이후로 시집을 읽지 않았는데 황병승부터 다시 시작해보려고요:) 아 반갑네요~ㅋ

로쟈 2011-01-06 18:40   좋아요 0 | URL
미래파부터 시작이시군요.^^

돈케빈 2011-01-06 12:05   좋아요 0 | URL
'형이하'는 써도 괜찮은 국어인가요?
랜덤하우스에서 나온 시집으로는 <해바라기 연대기>를 추천합니다.

로쟈 2011-01-06 18:42   좋아요 0 | URL
형이하에 문제가 있는 건가요? <해바라기 연대기>는 챙겨놓겠습니다.^^

2011-01-06 1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06 2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릴케 현상 2011-01-06 22:45   좋아요 0 | URL
조연호 시인이 로쟈님과 동세대긴 한데^^ 그러면 젊은 시인인가요=3=3=3

로쟈 2011-01-07 08:00   좋아요 0 | URL
요즘은 40대까지 '젊은' 축에 속합니다.^^;
 

이번주 한겨레21의 '2001~2010년의 출판 키워드 10+'에서 '블로그 글쓰기' 꼭지를 옮겨놓는다. 10가지 키워드의 목록은 ① 상업주의 ②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③ 소설 인터넷 연재 ④ 도서정가제 ⑤ 무비·스타 킬즈 북 ⑥ 청소년 도서 시장의 발견 ⑦ 1천만 부 어린이 책 ⑧ 위험한 인문학 시장 ⑨ 블로그적 글쓰기 ⑩ 사라지는 20대 등이며 전체 기사는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8766.html 참조. '블로그 글쓰기'만을 특별히 옮겨놓는 것은 물론 '로쟈'가 언급된 때문인데, 처음엔 나에게 집필 의뢰가 들어왔지만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이유로 사양했다. 그리고 애초에 '새로운 글쓰기 장르'로서 블로그 글쓰기에 주목한 이는 문화평론가 이택광 교수이기에 그에게 바톤이 돌아간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한겨레21(11. 01. 07) 먼저 블로그에서 ‘통’하다 

지난 10년간 한국 출판계에서 급부상한 현상 중 주목할 만한 것을 꼽으라면 ‘블로그 글쓰기’일 것이다. 처음에 블로그는 개인의 일상사를 풀어놓는 일기장과 용도가 비슷했지만, 제도언론에 대한 불신과 인터넷 공론문화의 발달이 맞물리면서 ‘1인 매체’로 신속하게 자리잡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흐름에서 중요한 이정표를 제시한 ‘파워블로거’ 중 단연 돋보이는 이가 바로 ‘로쟈’라는 필명으로 활동한 이현우라고 할 수 있다. 이현우가 주도한 것은 ‘블로그형 글쓰기’라는 새로운 장르의 탄생이었다. 이런 글쓰기 유형은 1990년대를 대표한 ‘게시판 글쓰기’와 확연하게 다른 것이었다. ‘밀어올리기’나 ‘도배’ 같은 용어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게시판 글쓰기가 경쟁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다른 사람들에게 밝히고 알리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면, 블로그 글쓰기는 일정한 주제의식을 갖고 특정한 독자 집단을 상정한다는 점에서 다소 개인 주도의 양상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주인장’이 관할하는 공간으로서 블로그는 게시판에 비해 훨씬 사적인 곳으로 받아들여지고, 방문자들도 이 사실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넘어간다는 점에서 게시판과 구분할 수 있는 것이다. 가독성 측면에서 블로그는 스타일의 변화를 필연적으로 수반할 수밖에 없었는데, 대화체나 구술체가 각광받은 것도 손꼽을 만한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글쓰기의 변화는 만화책에서 웹툰으로 변화한 만화 장르의 변화에 비길 만한 일이다. 웹툰의 등장으로 만화는 책이라는 매체로 묶이던 얌전한 방식을 벗어나서 ‘스크롤’이라는 새로운 동적인 의미를 획득할 수 있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블로그나 게시판을 막론하고 인터넷 글쓰기는 내려 읽어가는 방식으로 글읽기가 진행되는 효과를 감안할 수밖에 없다. 블로그는 이런 효과에 더 충실하다는 이점이 있다.  


매체 형식이 곧 글의 내용을 바꾸는 ‘당구공 효과’를 우리는 지난 10년간 출판계에서 목격해왔다. 이 과정은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이 직접적으로 만나고 댓글로 의견을 교환한 뒤에 책으로 묶인다는 점에서 기존 출판과 다른 제작 공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로쟈를 비롯해서 미네르바, 파란여우, 박가분이 모두 블로그나 게시판에 먼저 발표한 글들을 책으로 묶어낸 대표적인 블로거들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작가로서 자신을 정립하는 과정을 겪는다. 과거처럼 직접 출판사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현격하게 줄어든 것이다.

출판사 기획자들도 유명 블로그나 인터넷 게시판을 관찰하다가 좋은 원고나 생각이다 싶으면 출판을 제의하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 일정하게 독자의 검증을 거쳤다는 의식도 크게 작용한다. 그러나 이렇게 블로그에선 괜찮았는데 막상 책으로 묶으니 결과물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경우도 많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어렵다. 블로그 글쓰기와 전통적인 글쓰기가 조화롭게 만나도록 하는 일이 또 다른 출판의 고민거리가 된 것이다.(이택광 문화평론가) 

11. 01.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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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슬로울리 2011-01-05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갑자기 궁금해서 그런건데
로쟈님의 정치적 이상은 '사회주의' 에요?
아, 요즘같이 뒤숭숭한 시대에 이런 질문은 너무 '불온'한가요?ㅋㅋㅋ

로쟈 2011-01-05 23:30   좋아요 0 | URL
'공유주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