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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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한강, 『소년이 온다』, 창비, 2014.

: 내게 온 소년을 체감하며, 다시 문학을 생각해 보다.

 

 

<1>

 

얼마 전, <다시, 문학>이라는 네이버카페를 만들었다. 왜, 다시 문학일까-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마땅한 대답을 찾기 어려웠다. 문학평론가인 신형철의 『몰락의 에티카』를 펼쳤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물락의 에티카다. 온 세계가 성공을 말할 때 문학은 몰락을 선택한 자들을 내세워 삶을 바꿔야 한다고 세계는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동호가 생각이 났다.

 

동호는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에 나오는 소년이다. 그는 몰락을 선택했고, 그의 몰락은 다른 몰락들을 유발했다. 동호의 몰락을 추동하는 세계는 어떤 사회인가? 때는 1980년 5월, 장소는 광주였다.

 

 

<2>

 

『소년이 온다』는 동호라는 한 소년을 중심으로 그날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이 공유하는 한 사건과 그 사건의 여파를 다룬다. 중학교 3학년이던 동호는 친구의 죽음을 목격했다. 설마했고, 설마했다. 설마의 마음은 이럴수가의 현실이 훅 치고 들어올 때, 철렁 무너져 내린다. 국군이 쏜 총이 공포가 아니라 실탄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친구 정대는 피를 쏟고 이미 꼬꾸라졌다. 공포에 질린 동호는 턱을 딱딱 떨며 달아났다. 소년은 전과는 다른 존재가 되었다.

 

달아난 동호는 집에 돌아왔다. 변한 소년은 여전한 가족을 만난다.

 

그 오후 집은 고요했다. 엄마는 난리 통에도 대인시장의 피혁 가게에 나가 있었고, 얼마 전 가죽 원단 박스를 나르다 허리를 다친 아버지는 안방에 누워 있었다. 반쯤 잠긴 철제 대문을 힘주어 밀고 마당으로 들어가자, 작은형이 제 방에서 영어 단어를 외우는 소리가 들렸다.

동호냐.

(···)

어딜 쏘댕기다가 오냐. 느이 엄마가 너 들어왔는지 물어볼라고 몇 번 전화했는지 아냐. 데모하는 데는 근처도 가면 안된다이. 간밤에 신역에서 총을 쏴갖고 사람이 죽었다드마는······ 33~34쪽.

 

왜 동호는 그의 가족과는 다른 존재가 되고 만 것일까? 전날 행방불명이 된 정대의 누나(정미) 탓일까? 그녀의 실종이 없었다면, 다 괜찮았을까? 여전히 엄마는 장사를 하고, 형은 영어 공부를 하고, 아버지는 일할 준비를 한다. 동호는 정대를 팽개쳤다는 죄책감을 끌어안고, 정미 누나의 매를 기다린다. 하지만 그를 때려줄 누나도, 친구도 이곳엔 없다.

 

몰랐다. 동호의 가족은 그의 사정을 알 턱이 없었다. 그래서 자신들은 사건의 외부에 있다는 안도가 부서질 줄도 몰랐다. 국군의 총동원이 떨어지던 날 동호는 집에 돌아갈 거라고 말했고, 그들은 믿었다. 하지만 동호는 이미 돌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외부에 있다고 믿은 동호의 가족들은 대번, 중심으로 빨려 들어간다.

 

뭣이 깨지는 소리가 나서 달려가봤더니, 스물일곱살, 서른두살 먹은 다 큰 머시매들이 씨근거림스로 서로 멱살을 쥐고 있어야.

그 쪼그만 것 손 잡아서 끌고 오면 되지, 몇날 며칠 거기 있도록 너는 뭘 하고 있었냐고! 마지막 날엔 왜 어머니만 갔냐고! 말해봤자 안 들을 것 같았다니, 거기 있으면 죽을 걸 알았담서, 다 알고 있었담서 네가 어떻게!

(···)

형이 뭘 안다고······ 서울에 있었음스로······ 형이 뭘 안다고······ 그때 상황을 뭘 안다고오. 183쪽.

 

동호의 부모는 이후 학살의 명령자에 대항하는 삶을 살아가지만, 끝을 보지 못하고, 다만 계속되는 지옥에 머문다. 그렇게, 살아간다. 동호와 같은 존재가 되어서.

 

 

<3>

 

한 처녀가 있다. 출판사에서 일하는 그녀는 작성된 원고를 가지고 종종 검열과에 간다. 그리고 그날은 수배자의 문장을 본 검열관에게 일곱 차례 뺨을 맞았다. 뺨의 굴욕을 잊으려 하는 그녀는 한 소년을 생각한다. 자신의 영혼을 부수게 한 동호를.

 

1980년 5월 은숙은 광주에 있었다. 친구를 찾으러 왔다는 동호가 그녀에게 질문한다. 왜 군인이 죽인 사람들에게 애국가를 불러주고 태극기를 감싸주는 거예요? 은숙은 대답했다.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17쪽)”

 

학살의 시간이 다가올 때 그녀는 진수 오빠의 명을 따라 그곳에서 나온다. 진수 오빠는 부탁한다. 우리는 그저 버티기만 할 거야. 내일 아침, 사람들이 도청 앞에 꽉 메울 만큼 나올 수 있게 해주렴. 어처구니없는 폭력을 목격한 은숙은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죽음을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서둘러 나왔다. 그리고 그 때, 소년을 봤다.

 

아무 집에라도 들어가 숨으세요.

그녀에게 영혼이 있었다면 그때 부서졌다. 땀에 젖은 셔츠에 카빈 소총을 멘 진수 오빠가 여자들에게 인사하기 위해 웃어 보였을 때. 어두운 길을 되밟아 도청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얼어붙은 듯 지켜보았을 때. 아니, 도청을 나오기 전 너를 봤을 때 이미 부서졌다. 하늘색 체육복 위에 교련 점퍼를 걸친, 아직 어린애 같은 좁은 어깨에 총을 메고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너를 발견하고 그녀는 놀라며 불렀다. 동호야, 왜 집에 안 갔어? 89~90쪽.


병원에 숨은 은숙은 군홧발 소리와 장갑차 소리, 총성과 포격의 소리를 들었다. 동호를 기억하며 밤을 보낸 그녀는 다음날 아침, 거리를 나왔다. 거리는 진수 오빠의 기대와는 달리 거대한 장갑차가 지배하고 있었고, 군인들은 사람들에게 무작위로 총구를 겨누었다. 은숙은 부딪힌 군인에게 자신은 무관하다는 어필을 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다락에 숨겼고, 자신들은 학살에 무심하다는 것을 군인에게 누누이 어필했다. 곧 관공서와 학교가 문을 열었고 셔터를 내렸던 상점들도 영업을 시작했다. 그녀는, 도청의 민원실에 전화를 건다. “분수대에서 물이 나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발 물을 잠가주세요.” 직원은 대답한다. “다 잊고 이젠 공부를 해요.” 군인들이 주검의 다리를 질질 끌어, 주검들의 등과 뒤통수가 함부로 바닥에 쓸리고 튀어올르는 것을 그녀는 보았다. 잊히지 않았다. 잊을 수 없었다.

 

검열에 걸린 작품을 연극으로 상영을 했다. 은숙은 궁금하다. 도대체 어떻게 대사를 처리할까? 배우들은 격정적으로 침묵한다. 그들의 입술은 요동치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침묵 속에서 그녀는 듣는다. 동호를 기억한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은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다 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꽂은 양초 불꽃들이. 102~103쪽.

 

 

<3>

 

죽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에는 진수도 있었다. 진수와 한조가 되어 고문을 받던 남자는 말한다. 초연한 확신은 없었다고. 날이 밝을 때까지만. 수십만의 시민이 분수대 앞으로 모일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했었다고.

 

알고 있었다.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하지만 우리도 그 못지않은 강함이 있었다. 무서운 두 글자. 양심.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기억하는 건 다음 날 아침 헌혈하려는 사람들이 끝없이 줄을 서 있던 병원들의 입구, 피 묻은 흰 가운에 들것을 들고 폐허 같은 거리를 빠르게 걷던 의사와 간호사들, 내가 탄 트럭 위로 김에 싼 주먹밥과 물과 딸기를 올려주던 여자들, 함께 목청껏 부르던 애국가와 아리랑뿐입니다. 모든 사람이 기적처럼 자신의 껍데기 밖으로 걸어나와 연한 맨살을 맞댄 것 같던 그 순간들 사이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이, 부서져 피 흘렸던 그 심장이 다시 온전해져 맥박 치는 걸 느꼈습니다. 나를 사로잡은 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선생은 압니까,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114~116쪽.

 

하지만 그는 곧 자책한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총을 메고 창 아래 웅크려앉아 배가 고프다고 말하던 아이들, 소회의실에 남은 카스텔라와 환타를 얼른 가져와 먹어도 되느냐고 묻던 아이들이, 죽음에 대해서 뭘 알고 그런 선택을 했겠습니까?(116쪽)”

 

죽지 못했던 사람들은 어딘가로 끌려갔고, 죽은 사람들이 차라리 부러워질 만큼의 고통을 부여받는다. 그러한 고문의 반복은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들어 간다. 물리적 가격을 참는 것보다 힘들었던 것은 동지들 간의 이간이었다. 이들은 쥐꼬리만한 밥을 지정된 동료와 나눠먹는 일을 계속해야 했고, 결국 균열이 발생한다.

 

을 만큼 참았어. 그렇게 네가 다 처먹으면 난 어쩌란 말이야. 으르렁거리는 그들 사이로 몸을 밀어넣으며 한 남자애가 더듬더듬 말했습니다. 그, 그러지 마요. 좀처럼 입을 떼지 않는, 늘 주눅 든 듯 조용한 아이였기에 나는 놀랐습니다.

우, 우리는······ 주, 죽을 가, 각오를 했었잖아요.

김진수의 공허한 눈이 내 눈과 마주친 것은 그때였습니다.

순간 깨달았습니다. 그들이 원한 게 무엇이었는지. 우리를 굶기고 고문하면서 그들이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너희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른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었는지, 우리가 깨닫게 해주겠다.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몸, 상처가 문드러지는 몸, 굶주린 짐승 같은 몸뚱어리들이 너희들이라는 걸, 우리가 증명해주겠다.(···)

그 남자애의 이름은 영재였습니다. 118~119쪽.

 

진수에게 영재는 죽은 동호의 분신 같은 존재였다. 동호는 진수의 말을 따라 군인들에 의해 시민군이 제압되었을 때 항복을 한다. 그리고

 

저 새끼들 봐라, 김진수의 등을 밟고 있던 장교가 여전히 흥분한 채 소리쳤습니다. 씨팔 빨갱이들, 항복이다 이거냐? 목숨은 아깝다 이거냐?(···) 망설이지 않고 학생들에게 총을 갈겼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사진에서 이 아이들이 나란히 누워있는 건, 이렇게 가지런히 옮겨놓은 게 아닙니다. 한줄로 아이들이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가 시킨 대로 두 팔을 들고, 줄을 맞춰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133쪽.

 

진수를 비롯한 형들의 생각과는 달리 군인들은 망설임 없이 아이들을 죽였다. 차라리 형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면, 아이들은 살 수 있었을까. 오랜 고문 끝에 살아남은 자들은 풀려났다. 진수는 영재가 죽지 않았기에 죽지 않았다. 영재는 이후 여섯 차례 손목을 그었지만 죽지 못했다. 죽지 못한 영재는 정신착락에 의해 누군가를 도리어 죽인다. 그리고 영영 정신병원에 갇히고 만다. 진수는 말한다. “우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단 걸 보여준 거지. 진짜 유리로 만들어진 인간이었단 걸 증명한 거야.”(130쪽) 그리고 자살한다. 그의 곁엔 죽은 동호의 시체를 담은 사진이 있었다.

 

아직은 살아남은 남자가 말한다. “내 이력을 듣고 자신의 이력을 고백하더군요. 가능한 한 과격하게 진압하라는 명령이 있었다고 그가 말했습니다. 특별히 잔인하게 행동한 군인들에게는 상부에서 몇십만원씩 포상금이 내려왔다고 했습니다. 동료 중 하나가 그에게 말했다고 했습니다. 뭐가 문제냐? 맷값을 주면서 사람을 패라는데, 안 팰 이유가 없지 않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내가 날마다 만나는 모든 이들이 인간이란 것을.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선생도 인간입니다. 그리고 나 역시 인간입니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134~135쪽.

 

 

<5>

 

여기에 빨갱이년이어야만 했던 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여공으로 일을 하다 친해진 언니를 만나 ‘우리는 고귀해’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 말 때문에 몰락한다. 그 언니에게 고귀함을 깨닫게 해준 사람은 전태일일 것이다. 언니는 말한다. “이 법 때문에 죽은 사람이 있어.”(155쪽) 어용노조를 큰 표 차로 꺾고 뽑힌 노조 간부들을 구사대와 경찰들이 끌고 가려 한다. 이를 막기 위해 수백 명의 여공들이 사람의 벽을 만든다. 중무장한 경찰들에 의해 부서지던 벽을 막기 위해 그녀들은 옷을 벗었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실행자들은 그녀들을 끌고 다녔고, 그녀는 형사의 발길질에 장파열을 당한다. 그리고 입원해 있는 동안 해고 통보를 받는다. 퇴원한 뒤 언니들은 복직투쟁을 했지만, 그녀는 고향으로 내려가 몸을 추스르고 다른 방직공장에 취업을 한다. 하지만 이미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려 졌던 그녀는 곧 해고된다.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친척의 주선으로 광주 충장로의 양잠점에 미싱사 시다로 취직한다. 그렇게 그녀는, 선주는 광주에 왔다.

 

애석하게도 선주는 살아남았다. 그래서 그녀는 ‘사년 동안 지방 도시의 양장점에서 숨어지내며 간첩 지령을 받아왔다는 각본의 주인공이 되기까지’ 그들의 테이블 위에서 끊임없이 다리를 벌려야 했다. 삼십 센티 나무 자를, 소총 개머리판을 견디지 못했던 자궁은 끊임없이 하혈했고, 쇼크가 일어날 때마다 그들은 선주를 통합병원에 데려가 수협을 받게 했다. 결국 그녀는 이년 동안 계속된 하혈 때문에 혈전이 나팔관을 막아 영구히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선주는 너무나 치욕스러웠고, 외로웠고, 절망했고, 괴로워, 죽고 싶었다. 하지만 그 때 그녀는 동호를 만나게 된다.

 

마침내 완전히 혼자가 됐을 때 사진을 펼쳤어.

너는 도청 안마당에 모로 누워 있었어. 총격의 반동으로 팔다리가 엇갈려 길게 뻗어가 있었어. 얼굴과 가슴은 하늘을, 두 다리는 벌어진 채 땅을 향하고 있었어. 옆구리가 뒤틀린 그 자세가 마지막 순간의 고통을 증거하고 있었어.

숨을 쉴 수 없었어.

어떤 소리도 낼 수 없었어.

그러니까 그 여름에 넌 죽어 있었어. 내 몸이 끝없이 피를 쏟아 낼 때, 네 몸은 땅속에서 맹렬하게 썩어가고 있었어.

그 순간 네가 날 살렸어. 삽시간에 내 피를 끓게 해 펄펄 되살게 했어.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의 힘, 분노의 힘으로. 172~173

 

 

<6>

 

한강의 『소년이 온다』에서 흥미롭게 포착할 수 있는 지점 중 하나는 ‘우리편’이라는 이름의 폭력이다. 소설의 4장인 ‘쇠와 피’는 김지수와 같이 고문을 당했던 파트너가 화자로 등장한다. 그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데 청자(수신자)는 선생으로 지칭된다. 아마도 ‘광주항쟁/학살’을 연구하는 교수로 보인다. 그는 그 날의 사건과 이후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이지만, 결국 곤혹한 질문을 받는 사람이기도 하다. 화자는 자신이 겪은 폭력이 특수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더욱 힘들어 한다. 부마항쟁의 공수부대원들의 폭력, 베트남에서 우리군이 행했던 학살, 제주도에서, 관동과 난징에서, 보스니아에서, 모든 신대륙에서 지속적으로 행해졌던 잔혹극들. 화자는 자기도 그런 인간이라는 자각이, 바로 자신들을 위해 연구를 한다는 선생 역시, 인간이라는 바로 그 자각이 그를 끝없이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우리편’이라는 폭력이 더욱 극단적으로 제시되는 장은 선주의 사연인 5장 ‘밤의 눈동자’이다. 선주는 우리는 귀중하다라는 깨달음을 갖게 해준 성희 언니에게 고발에의 강요를 받는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니, 라고 묻던 성희 언니의 침착한 목소리를 당신은 기억한다. 무슨 권리로 내 이야길 사람들에게 하는 거야,라고 당신이 이를 악물며 물었을 때였다. 이어 대답하던 성희 언니의 차분한 얼굴을 당신은 지난 십년 동안 용서하지 않았다. 나라면 너처럼 숨지 않았을 거야, 그녀는 또박또박 말했다. 162쪽.

 

성희 언니는 국가 폭력의 희생자가 당당히 나서서 이를 고발하고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선주의 소극적 행동을 비난한다. 성희 언니는 오랜 노동 운동을 한 인물로 그녀 역시 국가 폭력에 지속적으로 희생된 사람이다. 하지만 성희 언니가 받은 폭력은 선주와 같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희와 선주는 같지가 않다. 우리는 같은 희생을 당했고, 같은 대상과 싸운다고 쉽게 생각하지만, 그것이 착각일 수 있다는 생각은 좀처럼 하질 못한다. 성희는 자신을 피해자라는 위치에, 투쟁자라는 위치에 잘 자리 잡는다. 반면 선주는 피해자이지만, 동시에 살아남았다는 자책의 자리에 자꾸만 경도된다. 성희는 그런 선주를 이해하지 못하고, 책망한다. 그럴수록 선주는 몰려간다. 선주는 생각한다. “그 여름으로부터 이십여년이 흘렀다. 씨를 말려야 할 빨갱이 연놈들. 그들이 욕설을 뱉으며 당신의 몸에 물을 끼얹던 순간을 등지고 여기까지 왔다. 그 여름 이전으로 돌아갈 길은 끊어졌다. 학살 이전, 고문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은 없다.”(174쪽)

 

 

<7>

 

『소년이 온다』는 광주항쟁이라는 사건, 그 자체만을 숭상하지 않는다. 우리가 광주에 이르기까지에 대하여, 그리고 세계 곳곳의 광주들을 상기시킨다.

 

당신은 하루에 열다섯시간 일했고 한달에 이틀 쉬었다. 봉급은 남자 공원의 절반이었다. 잔업수당은 없었다. 하루 두알씩 타이밍을 먹어도 잠이 쏟아졌다. 선 채로 잠들면 작업반장이 욕을 하거나 뺨을 쳤다. 오후부터 묵직하게 붓던 종아리와 발등. 물품을 빼돌릴지 모른다는 이유로 퇴근하는 여공들을 몸 수색하던 경비들. 브래지어 언저리를 더듬을 때 느려지던 그들의 손. 치욕. 기침. 잦은 코피. 두통. 가래를 뱉으면 뭉쳐져나오던 거무스레한 실밥 덩어리들.

우리는 고귀해.

성희 언니는 자주 그렇게 말했다.(···) 한자 공부를 할 거란 성희 언니의 말에 당신은 별다른 두려움 없이 그 모임에 들어갔었다. 실제로 언니들은 모이자마자 한자부터 공부했다. 1800자는 알아야해, 신문은 읽을 수 있어야지. 각자 펜글씨 공책에 서른자씩 쓰고 암기하는 일이 끝나면 성희 언니의 어색한 노동법 강의가 시작되었다.(···) 헌법에 따르면, 우리는 모든 사람들과 똑같이 고귀해. 그리고 노동법에 따르면 우리에겐 정당한 권리가 있어. 그녀의 목소리는 초등학교 여선생님처럼 상냥하고 낭랑했다. 이 법을 위해 죽은 사람이 있어. 154~155쪽.

 

1979년 가을 부마항쟁을 진압할 때 청와대 경호실장 차지철은 박정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캄보디아에서는 이백만명도 더 죽였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위가 확대되었을 당시, 군은 거리에서 비무장 시민들을 향해 화염방사기를 발사했다. 인도적 이유로 국제법상 금지되어 있던 납탄을 병사들에게 지급했다. 박정희의 양아들이라고 불릴 만큼 각별한 신임을 받았던 전두환은, 만에 하나 도청이 함락되지 않을 경우 전투기를 보내 도시를 폭격하는 수순을 검토하고 있었다. 집단발포 직전인 5월 21일 오전, 군용 헬기를 타고 와 그 도시의 땅을 밟는 그의 영상을 보았다. 젊은 장군의 태연한 얼굴. 206쪽.

 

소설은 광주가 숭상의 대상이 아니며, 일회적인 사건이 아님을 자각시킨다. 숭상된 광주는 신비화되고 현실의 얼굴들은 도리어 망각된다. 사건들은 잊히지 않는 한 연대된다. 광주에서, 부산과 마산에서, 전국, 세계 방방 곳곳에서. 소설이 이렇게 광주들을 자각시킬 때,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매끈하게 환원되던 사건들은 개별적인 위치를 회복한다.

 

한편으로 본 소설은 학살의 행위자들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인간 폭력의 보편성을 상기시키며 인간에의 회의를 갖게 하기도 하지만, 군인들이 취한 두 양상을 모두 서술한다.

 

특별하게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다.

처음 자료를 접하며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연행할 목적도 아니면서 반복적으로 저질러진 살상들이었다. 죄의식도 망설임도 없는 한낮의 폭력. 그렇게 잔인성을 발휘하도록 격려하고 명령했던 지휘관들. 206쪽.

특별히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던 것처럼, 특별히 소극적인 군인들이 있었다.

피 흘리는 사람을 업어다 병원 앞에 내려놓고 황급히 달아난 공수부대원이 있었다. 집단발포 명령이 떨어졌을 때, 사람을 맞히지 않기 위해 총신을 올려 쏜 병사들이 있었다. 도청 앞의 시신들 앞에서 대열을 정비해 군가를 합창할 때,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 외신 카메라에 포착된 병사가 있었다. 212쪽.

 

소설은 명백하게 잘못했던 사람들과 명백한 피해자들을 무대에 올렸다. 그리고 동시에, 그 사이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을 등장시켰다. 자신은 그 사건과 무관할 거라고 여겼던 사람들, 무심했던 이웃들, 같은 쪽이라 여기는 동료들, 착각하는 사람들, 지구 반대편에서 똑같은 일들을 반복하고 있는 인간들 등.

 

 

<8>

 

몇 년 전 독서모임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광주에 간 적이 있다. 그곳에 간 이유는 단 하나. 5.18광주항쟁을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아니다.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익히기 위해서였다. 나는 1984년생으로 기억할 5.18이 없었다. 1980년에 나는 여기에 없었다.


같이 여행을 간 한 선배는 90학번으로 광주가 학생운동의 주요한 동력이 되던 시절을 보내왔다. 그는 원래 운동권이 아니었다가, 같은과 선배가 투신 하는 것을 보고 학생운동에 동참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 선배는 졸업 후 오랜 시간 환경단체에서 시민활동가 일을 했다. 광주를 여행하면서 선배는 광주항쟁의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받았던 충격과 울분. 그리고 학생운동의 궤적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국립5.18민주묘지를 돌면서는 구체적으로 기억나는 인물들에 대한 얘기들도 들려줬다. 그리고 이후, 


나는 다 잊고 말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나는 고3이었다. 야자를 땡땡이치고 광장으로 나가 낯선 사람들과 어울려 대한민국을 외쳤다. 국가대표 선수들은 말도 안 되는 승리를 연달아 일궈냈고, 그럴수록 다음날 학교에서 나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허벅지는 아팠지만, 우리는 모두 덜 아팠다.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 날들을 잊을 수 없다. 그 시절의 시공간은 나의 어딘가에 스며들었고, 나는 문득문득 그 때의 감격을 감각한다. 하지만 5.18은 나에게 그런 감각을 주지 않는다. 그것은 나를 기억하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그것을 익혀야 하고, 익혀야 했다.


그런 내게,

소년이 왔다. 익혔던 교육들은 갔지만, 한 소년은 왔다. 그래서 문득, 문학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형철은 ‘문학은 온 세계가 성공을 말할 때 몰락을 선택한 자들을 내세워 삶을, 세계가 변해야함을 말하는 매체’라 했다. 『소년이 온다』는 몰락한 동호와 그들의 사연을 내세워 말한다. 광주에서 있었던 일과 그 사건의 여파를. 그러는 사이, 내게도 한 소년이 와 앉았다. 이렇게 나에게 온 소년이, 당신에게도 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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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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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광주에서 있었던 일은, 지금 우리에게 무엇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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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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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한강, 『소년이 온다』, 창비, 2014.

나에게 온 소년이, 당신에게도 가길.

 

 

<1>

 

몇 년 전 독서모임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광주에 간 적이 있다. 그곳에 간 이유는 단 하나. 5.18광주항쟁을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아니다.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익히기 위해서다. 나는 1984년생. 기억할 5.18이 없다. 1980년에 나는 없었다.

 

같이 여행을 간 한 선배는 89학번으로 광주가 학생운동의 주요한 동력이 되던 때를 거쳤다. 그는 원래 운동권이 아니었다가, 같은과 선배가 투신 하는 것을 보고 학생운동에 동참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 선배는 졸업 후 오랜 시간 환경단체에서 활동가 일을 했다.

 

광주를 여행하면서 선배는 광주항쟁의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받았던 충격과 울분. 그리고 학생운동의 궤적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국립5.18민주묘지를 돌면서는 구체적으로 기억나는 인물들에 대한 얘기들도 들려줬다. 그리고 이후, 나는 다 잊고 말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나는 고3이었다. 야자를 땡땡이치고 광장으로 나가 낯선 사람들과 어울려 대한민국을 외쳤다. 한국은 말도 안 되는 승리를 연달아 일궈냈고, 그럴수록 다음날 학교에서 나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허벅지는 아팠지만, 우리는 모두 덜 아팠다.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 날들을 잊을 수 없다. 그 시절의 시공간은 나의 어딘가에 스며들었고, 나는 문득문득 그 때의 감격을 감각한다. 하지만 5.18은 나에게 그런 감각을 주지 않는다. 그것은 나를 기억하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그것을 익혀야 하고, 익혀야 한다.

 

그런 내게, ‘소년이 온다’


 

<2>

 

『소년이 온다』는 한강 작가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이다. 그녀는 본 소설에서 ‘그날 광주에서 있었던 일이 무엇이었고, 그것이 우리에게 무엇이 되었는지를 묻는다.’ 소설은 동호라는 한 소년을 중심으로 그날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이 공유하는 한 사건과 그 사건의 여파를 다룬다.

 

5.18 당시 중학교 3학년에 불과하던 소년 동호는 왜 끝끝내 죽음의 자리를 피하지 않았을까.

 

처음 누나들을 만났을 때 네가 한 말 중 사실이 아닌 게 있었다.

역전에서 총을 맞은 두 남자의 시신이 리어카에 실려 시위대의 맨 앞에서 행진했던 날, 중절모를 쓴 노인부터 열두어살의 아이들, 색색의 양산을 쓴 여자들까지 인산인해를 이뤘던 저 광장에서, 마지막으로 정대를 본 건 동네 사람이 아니라 바로 너였다. 모습만 본 게 아니라, 옆구리에 총을 맞는 것까지 봤다. 아니, 정대와 너는 처음부터 손을 맞잡고 선두로, 선두의 열기 쪽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귀를 찢는 총소리에 모두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공포다! 괜찮다! 누군가 외치는 소리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앞 대열로 돌아가려는 아수라장 속에서 정대의 손을 놓쳤다. 다시 총소리가 귀를 찢었을 때, 모로 넘어진 정대를 뒤로 하고 너는 달렸다.(···)

시상에, 옥상이여.

(···)

옆 빌딩 옥상에서 다시 총성이 울렸다. 비트적비트적 일어나려던 남자의 등이 튀어올랐다. 배에서부터 번진 피가 삽시간에 상반신을 감쌌다. 옆에 선 아저씨들의 얼굴을 너는 올려다봤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머리가 벗어진 아저씨가 입을 막으며 소리 없이 떨었다.

(···) 옆 골목에서 청년들 셋이 달려나갔다. 쓰러진 사람들의 겨드랑이에 손을 끼워 막 일으키려 했을 때, 광장 중앙의 군인들 쪽에서 연발 총성이 터졌다. 맥없이 청년들이 쓰러졌다.(···)

정적 속에 십여분의 시간이 흘렀을 때, 군인들의 대열에서 2인 1조로 이십여명이 걸어나왔다. 앞쪽에 쓰러진 사람들을 신속하게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때를 기다린 듯, 옆 골목과 맞은편 골목에서도 여남은명이 달려나가 뒤쪽에 쓰러진 사람들을 들쳐업었다. 이번엔 옥상에서 총을 쏘지 않았다. 하지만 너는 정대를 향해 그들처럼 달려가지 않았다. 네 곁에 있던 아저씨들은 숨이 끊어진 일행을 업고 서둘러 골목 사이로 사라졌다. 갑자기 혼자 남은 너는 겁에 질려, 저격수의 눈에 띄지 않을 곳이 어디일까만을 생각하며 벽에 바싹 몸을 붙인 채 광장을 등지고 빠르게 걸었다. 31~33(강조는 인용자, 이하동문)

 

그래서 동호는 끝까지 남았다. 정대가 그냥 학살의 희생자로만 남기를 원치 않았기에. 충분히 겁을 먹었기에. 정대의 누나 역시 행방불명이었기에. 아니, 그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기에.

 

사건 이후 동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사정을 쫓으며 소설은 계속된다. 그들의 사연은, 참혹하다. 그 참혹함을 양분으로 삼고, 우리는 여기에 서있다. 대한민국, 만세다.

 

 

<3>

 

소설은 광주라는 사건, 그 자체만을 숭상하진 않는다. 우리가 광주에 이르기까지에 대하여, 그리고 세계 곳곳의 광주들을 상기시킨다.

 

당신은 하루에 열다섯시간 일했고 한달에 이틀 쉬었다. 봉급은 남자 공원의 절반이었다. 잔업수당은 없었다. 하루 두알씩 타이밍을 먹어도 잠이 쏟아졌다. 선 채로 잠들면 작업반장이 욕을 하거나 뺨을 쳤다. 오후부터 묵직하게 붓던 종아리와 발등. 물품을 빼돌릴지 모른다는 이유로 퇴근하는 여공들을 몸 수색하던 경비들. 브래지어 언저리를 더듬을 때 느려지던 그들의 손. 치욕. 기침. 잦은 코피. 두통. 가래를 뱉으면 뭉쳐져나오던 거무스레한 실밥 덩어리들.

우리는 고귀해.

성희 언니는 자주 그렇게 말했다.(···) 한자 공부를 할 거란 성희 언니의 말에 당신은 별다른 두려움 없이 그 모임에 들어갔었다. 실제로 언니들은 모이자마자 한자부터 공부했다. 1800자는 알아야해, 신문은 읽을 수 있어야지. 각자 펜글씨 공책에 서른자씩 쓰고 암기하는 일이 끝나면 성희 언니의 어색한 노동법 강의가 시작되었다.(···) 헌법에 따르면, 우리는 모든 사람들과 똑같이 고귀해. 그리고 노동법에 따르면 우리에겐 정당한 권리가 있어. 그녀의 목소리는 초등학교 여선생님처럼 상냥하고 낭랑했다. 이 법을 위해 죽은 사람이 있어. 154~155

그곳에서 당신은 이름 대신 빨갱이년으로 불렸다. 과거 여공이었고 노조 활동을 했기 때문이었다. 사년 동안 지방 도시의 양장점에서 숨어지내며 간첩 지령을 받아왔다는 각본을 완성하기 위해 그들은 날마다 당신을 조사실 탁자에 눕혔다. 더러운 빨갱이년.(···) 일상적인 그 환한 조명 아래, 당신이 하혈 끝에 의식을 잃을 때까지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170

 

특별하게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다.

처음 자료를 접하며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연행할 목적도 아니면서 반복적으로 저질러진 살상들이었다. 죄의식도 망설임도 없는 한낮의 폭력. 그렇게 잔인성을 발휘하도록 격려하고 명령했던 지휘관들.

1979년 가을 부마항쟁을 진압할 때 청와대 경호실장 차지철은 박정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캄보디아에서는 이백만명도 더 죽였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위가 확대되었을 당시, 군은 거리에서 비무장 시민들을 향해 화염방사기를 발사했다. 인도적 이유로 국제법상 금지되어 있던 납탄을 병사들에게 지급했다. 박정희의 양아들이라고 불릴 만큼 각별한 신임을 받았던 전두환은, 만에 하나 도청이 함락되지 않을 경우 전투기를 보내 도시를 폭격하는 수순을 검토하고 있었다. 집단발포 직전인 5월 21일 오전, 군용 헬기를 타고 와 그 도시의 땅을 밟는 그의 영상을 보았다. 젊은 장군의 태연한 얼굴. 206

특별히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던 것처럼, 특별히 소극적인 군인들이 있었다.

피 흘리는 사람을 업어다 병원 앞에 내려놓고 황급히 달아난 공수부대원이 있었다. 집단발포 명령이 떨어졌을 때, 사람을 맞히지 않기 위해 총신을 올려 쏜 병사들이 있었다. 도청 앞의 시신들 앞에서 대열을 정비해 군가를 합창할 때,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 외신 카메라에 포착된 병사가 있었다. 212

 

 

<4>


익혔던 교육들은 가고, 한 소년이 온다. 나에게 온 소년이, 당신에게도 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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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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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한병철, 『투명사회』

: 투명성의 함정. 부정성이 필요한 이유. “왜 무한한 소통의 자유가 새로운 형태의 직접 민주주의와 연대로 이어지지 못하는가?”

 

 

<1>

 

한병철의 『피로사회』를 인상적으로 읽었기에, 『투명사회』도 큰 고민 없이 빼 들었습니다. 『피로사회』가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모되는 상황과 그로 인한 개인과 사회의 변화를 비판적으로 다루었다면, 『투명사회』는 오늘날 훌륭한 방향으로 평가되는 투명성의 증대가 갖고 있는 문제를 고민하게 합니다. 한병철은 “투명성을 부패와 정보의 자유라는 관점에서만 보는 사람은 그 영향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14)”고 지적하며 포문을 엽니다.

 

우리는 투명성의 증대를 권력과 부패에 대한 바람직한 감시의 상승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한병철은 투명성이 “타자와 이질적인 것을 제거함으로써 시스템을 안정시키고 가속화(15)”한다고 주장합니다.

 

투명성은 순응에 대한 강압을 낳고 이로써 지배 시스템을 안정시키는 데 기여한다.

투명성은 신자유주의의 요구다. 투명성은 폭력적인 방식으로 모든 것을 밖으로 표출시킨다. 그리하여 모든 것은 정보로 전환된다. 6(강조는 인용자, 이하동문)

 

한병철은 만약 정치의 모든 것이 즉각 공개된다면, 정치는 불가피하게 호흡이 짧아지고 즉흥적 성격을 띠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정치는 잡담처럼 얄팍해진다. 전면적인 투명성은 정치적 커뮤니케이션에 일정한 시간의 굴레를 씌우는데, 그 속에서 천천히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래지향적 비전은 점점 더 희소해진다(5~6).” 이렇게 되면 진정한 의미에서 기존의 시스템과 대결하는 대안적 정치 운동은 불가능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견해입니다.

 

투명성 속에는 기존의 정치경제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의문시하는 부정성이 들어 있지 않다.(···) 완벽하게 투명한 것은 오직 탈정치화된 공간뿐이다. 지향점 없는 정치는 국민투표로 전락한다. 25~26

 

‘지향점 없음’은 투명사회가 모든 것을 계산 가능한 단순한 정보로 만드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진리의 생성이나 서사 구성 같은 기획은 배타적이거나 선별적이라는 측면에서 부정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계산 가능한 정보로 환원할 수도 없지요. 한병철은 투명사회가 되어가는 지금 오히려 이러한 부정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물들은 어둠이 아니라 과도한 빛 속에서 존재의 힘을 잃고, 사유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익사됩니다.

 

투명사회는 정보사회다. 정보는 어떤 부정성도 알지 못한다는 점에서 투명성의 현상이다. 정보는 긍정화되고 조작 가능하게 만들어진 언어다.(···)

투명사회에는 진리가 없을 뿐만 아니라 가상도 없다.(···) 완전히 투명한 것은 공허뿐이다. 이 공허를 제거하기 위해 대량의 정보가 유통된다.(···) 더 많은 정보와 커뮤니케이션만으로 세계를 밝힐 수는 없다.(···) 더 많은 정보가 방출될수록 세계를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진다. 83~86

 

이러한 투명사회는 모든 것을 계산 가능한 정보로 환원시키고, 그럼으로써 세계를 “경제적 파놉티콘”으로 만듭니다. 투명에의 강요는 “이익을 최대화”하고자 하는 자본주의적 욕망의 발로입니다. 투명한 정보의 제공은 “생산관계의 최적화”에 봉사하게 됩니다(101).

 

우리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혁명으로 새로운 형태의 직접 민주주의와 연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목격하고 있는 것은 쓰레기가 되어가는 정보의 홍수와 만연한 악플들의 향연입니다.

 

신자유주의적 경제주체들은 행동을 함께할 수 있는 ‘우리’를 형성하지 못한다. 사회가 점차 원자화되고 자기중심주의가 강화되어감에 따라 행동을 함께할 수 있는 여지는 급격히 축소되며, 이로써 자본주의 질서를 정말로 위협할 수 있는 반대 세력의 형성도 어려워진다. 공동체는 단독자에 밀려난다. 다중이 아니라 고독이 오늘의 사회 상황을 특징짓는다. 사회의 전 영역에서 함께하는 태도, 공동체적인 정신이 무너져가고 있다. 연대 의식의 희귀해진다.(···) 공동체적 정신의 침식으로 인해 공동의 행위가 이루어질 가능성은 날이 갈수록 희박해진다. 134

 

“손 없이 손가락질만 하는 미래의 인간,” 즉 호모 디기탈리스는 행동하지 않는다. “손의 위축증”으로 인해 인간은 행동 능력을 상실한다.(···) 행동은 기존의 지배적인 힘에 새로운 것, 다른 것을 맞세우는 일이다. 행동에는 부정이 내포되어 있다. 행동은 적극적인 무언가를 추구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다른 무언가에 대한 반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의 긍정사회는 모든 저항적 형식을 회피하며, 이로써 행동을 소멸시킨다. 이 사회 속에는 그저 동일한 것의 다양한 상태들만 있을 뿐이다. 160~161

 

투명사회의 명령은 시스템의 안전에 기여하는 것임에도 우리는 그것을 해방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사태는 더욱 악화됩니다. 투명성 확대의 진정한 효과를 자각하지 못하고, 착각함으로써 오히려 자발적으로 전체주의적 통제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무제한의 자유와 무제한의 커뮤니케이션은 전면적 통제와 감시로 돌변한다. 소셜미디어 또한 점점 더 사회적인 삶을 감시하고 착취하는 디지털 파놉티콘에 가까워진다.(···) 디지털 파놉티콘의 주민들은 서로 열심히 소통하며 그 과정에서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노출한다. 이로써 그들은 디지털 파놉티콘의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7

 

벤담의 파놉티콘에 갇힌 수감자들이 감독관의 지속적인 현존을 의식한다면, 디지털 파놉티콘의 주민들은 자유롭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다.(···) 디지털 파놉티콘의 특수성은 무엇보다도 그 속의 주민들 스스로가 자기를 전시하고 노출함으로써 파놉티콘의 건설과 유지에 능동적으로 기여한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그들은 스스로를 파놉티콘적 시장에 전시한다.(···) 노출증과 관음증이 디지털 파놉티콘인 인터넷을 살찌운다. 주체가 외적인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가발전적인 욕구에 의해서 스스로를 노출할 때, 그러니까 자신의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을 잃게 될까 하는 두려움이 그것을 버젓이 드러내놓고자 하는 욕망에 밀려날 때, 통제사회는 완성된다. 95~96

 

그래서 한병철은 “새로운 계몽은 바로 인간의 삶과 사회생활에서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영역이 투명성의 강제로 인해 마구 파괴되고 있음을 인식하는 데 있다(19).”라고 말합니다. 그는 무비판적으로 투명성의 확장을 예찬할 것이 아니라, 그것의 진정한 효과를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또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혁명의 현실을 냉정하게 평가할 것도 요청합니다. 한병철은 이럴 때 일수록 ‘거리두기’와 ‘부정성’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세계를 변화시킬 진정한 행동은 그 속에서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지요.

 

 

<2>

 

2011년부터 웹진 운동을 했습니다. ‘만인을 위한 장’이었고 특정 분야나 매체로부터 자유로운 열린 공간을 지향했습니다. 이름하여 ‘잡글웹진(http://cafe.daum.net/essaywebzine)’. 처음에는 자발적인 네티즌들의 참여가 있었고 대안적 운동의 그림을 구상할 여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분위기는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웹진의 이름(잡글)에서 드러나듯이 처음부터 뚜렷한 방향을 만들지 않았고, 사실상 ‘무(無)키워드’로 기획한 까닭에 응집력이 형성되기 어려웠습니다. ‘아무나’와 ‘무엇이든’이 21세기 해방의 키(key)라고 생각했지만, 한병철이 적절히 지적했듯이 그것은 공허한 투명의 위험이기도 했던 것이죠.

 

웹진을 개설한지 5년차인 지금은 오프모임으로 진행되고 있는 독서모임과 영화모임의 데이터베이스 창고로 전락했습니다. 오프모임은 웹진의 세부 프로그램 중의 하나였는데, 현재는 웹진을 유지하는 유일한 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웹상에서만 활동하시는 분이 간혹 있기는 하지만, 운동의 에너지는 전혀 못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요.

 

인터넷의 디지털 주민은 집결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하나의 우리를 생성해낼 수 있는 집회의 내면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집결하지 않는 특별한 양상의 군집, 내면이 없는 무리, 영혼과 정신이 없는 무리다. 그들은 무엇보다 고립된 채 혼자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히키코모리다. 라디오와 같은 전자 매체가 사람들을 집결시킨다면, 디지털 매체는 사람들을 따로 떼어놓는다. 131

 

한병철의 디지털 세계에 대한 평가가 지나치게 박하다는 인상을 지을 수 없지만, 귀담아 들을 지점은 있는 것 같습니다. 『투명사회』에서도 언급됐듯이 많은 포스트모던 이후의 이론가들이 디지털 주민에 의한 새로운 민주주의의 탄생을 기대하고 있는데, 그것을 엄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잡글웹진’의 경우에도 크게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고요.

 

오프모임에 비해 온라인 상의 만남은 확실히 더 투명한 성격을 가집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응집력은 떨어지지요. 직접 대면한 사람과의 이별에 비해 온라인 상의 로그인과 로그오프는 너무나 손쉽지요. 모든 현실적인 관계는 필연적으로 일정부분 폭력적일 수밖에 없지만, 그것의 상호 용인 속에서 존경과 신뢰가 싹틉니다. 반만 디지털 주민의 사회는 “동일한 것의 다양한 상태들”로 머물러 있고, “디지털 이웃 사촌의 공간은 참여자에게 마음에 드는 세계의 단면만을 제공하며, 그럼으로써 공론장, 공적 영역, 비판적 의식을 해체하고 세계를 사적인 장소로 만들어버(74)”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저는 한병철의 디지털 세계와 주민에 대한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디지털 사회가 등장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운동들도 있었고, 모든 디지털 주민이 히키코모리도 아닙니다. 디지털 사회와 투명성의 확장을 비판적으로 살피면서도 그것의 이점을 인정하고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한병철은 악플의 물결을 보면서 상호 존경이 없는 오늘날의 현실을 개탄하는데, 매체 간의 상호 존경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디지털 사회와 현실 사회, 디지털 주민과 현실 주민 사이의 상호 보완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지요.

 

과거 우리는 오랜 기간 동안 종교나 국가 같은 거대 이데올로기에 의해 개인이 폭력적으로 제약되던 시기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후 개인의 단독성을 확보하는 운동이 진행되어 왔고 성취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유를 획득한 개인은 불안한 파편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는 자본주의는 파편화된 개인을 잡아먹습니다. 지금 우리의 고민은 단독자로 서는 개인을 인정하면서도 가능한 연대는 어떤 것인가입니다. 디지털 혁명에 의해 그러한 연대가 가능할 것이라 여겨왔지만, 그것이 녹록치 않음이 확인되는 지금, 새로운 통찰과 노력이 필요한 듯 보입니다. 그 고민은 ‘잡글웹진’의 미래와도 연관 되겠죠. 폭력적이기에 꺼려만 졌던 진리에의 고민과 직접적 대면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국면을 모색해야 되는 시기가 왔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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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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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성의 함정. 부정성이 필요한 이유: 왜 무한한 소통의 자유가 새로운 형태의 직접 민주주의와 연대로 이어지지 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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