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보니 좀 무덤덤하다. 요며칠 TV를 켜보질 않아서 대신 '감동'해주는 사람들이(혹은 분위기가) 없어서이기도 하고, 아이가 며칠 폐렴으로 입원해 있어서 집안이 아주 조용한 탓이기도 하다. 그러니 '본격적인' 새해는 '설날' 이후로 미뤄두고, '지난해'도 아니고 '새해'도 아닌 한달을 보내기로 했다. '개와 늑대의 시간'처럼, 이런 시간을 표현해주는 그럴 듯한 말도 있었으면 싶다. 오전에 병원으로 나서기 전에 '1월의 읽을 만한 책'을 급하게 골라본다(간행물윤리위원회의 리스트는 진작 올라와 있다). 왠지 부지런하다는 인상을 줄 듯싶어서...   

1. 문학  

정과리 교수가 추천한 문학분야의 책은 로버트 피어시그의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문학과지성사, 2010)이다.  

"저 옛날 브왈로(Boileau)가 “마침내 말레르브가 왔도다!”라고 감격했듯이, “마침내 이 책이 왔도다!”라고 외치는 순간이 가끔은 있는 법이다.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도 그런 책 중의 하나이다. 출간 즉시(1973) 전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이 소설은, 한국의 식자들에게도 곧바로 알려져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을 날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도 이 책을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에 착수하지 않았다."

라고 소감을 적고 있는데, 다소 과장됐다. <선을 찾는 늑대>(고려원, 1991)라고 출간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419쪽이면 발췌본도 아니었을 듯싶다. 물론 절판된 지 오래된 만큼 이제라도 더 좋은 번역본이 나온 건 반가운 일이다. 순전히 '모터사이클'을 같이 탄다는 이유만으로 <모터사이클 필로소피>(이음, 2010)와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황매, 2004)도 같이 묶어 놓는다. 세 대가 짝을 지어 부르릉거리는 듯하다.      

2. 역사  

김기덕 교수가 추천한 역사분야의 책은 <외국인을 위한 한국사>(휴머니스트, 2010)이다. 책은 영어판과 한국어판 두 권이다. "전국역사교사모임이 장장 6년간의 작업 끝에 한국어판 영어판을 올컬러판으로 동시에 출간하였다. 그동안 전문역사학자들의 한국사 저서를 영역한 책은 있었으나, 본 책은 전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시각자료와 함께 대중적 서술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또다른 기념비적 저술이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되는 책이다.  

3. 철학 

김형철 교수가 고른 책은 서정욱의 <철학, 불평등을 말하다>(함께읽는책, 2010). 대중 철학서 집필에 아주 열심인 저자의 신작이다. 표지를 보면 짐작할 수 있지만, 불평등에 관해서 철학자들이 어떤 말들을 했는지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불평등한 세상에 살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 완전 평등을 꿈꾸는 유토피아 건설에 관심을 표명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사실 완전 평등만이 아니라 완전 자유도 현실에서는 불가능이다. 아니 모든 완전함이 다 현실에서는 불가능이다. 책은 고전 저자의 삶에 대한 간략한 소개에 이어서, 가상적 대화를 이어 나간다. 그리고는 고전의 핵심사상을 전달한다. 재미있는 이야기 전개 방식이다."

 

짐작엔 고등학생부터 읽을 수 있을 듯싶은데, 그보다 더 낮은 연령대라면 <만화 서양 철학사>(자음과모음)도 괜찮겠다. 적어도 '철학'이나 '철학사'란 말과 친숙해질 수는 있을 테니까.    

4. 정치/사회 

강정인 교수의 추천서는 정원오의 <복지국가>(책세상, 2010)다. 정치권에서도 '복지'가 화두로 등장하고 있고 내년 대선에서도 쟁점 가운데 하나가 될 듯싶은데, 무엇이 복지이고 복지국가인지 안내해주는 책이 될 듯싶다('복지국가 시리즈'도 나오고 있군). 간략한 분량의 책이지만, 간단한 소개는 이렇다.

한국사회에서도 IMF 금융위기 이후 사회적 양극화, 고용 불안정, 가족해체 등을 배경으로 ‘복지/복지국가’ 담론이 전면에 부상했다. 노숙인과 부랑인 등 우리 사회의 소외계층과 빈곤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해 온 저자는 이 책에서 복지국가의 정의와 기원, 발전단계, 제도와 유형, 위기와 전망까지의 총체적 역사를 특정 이념이나 정치적 입장에서 한발 물러난 객관적 입장에서, 평이한 문체로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의 기본적 전제는 ‘복지는 국가의 일방적 시혜가 아니라 국가에 대한 국민의 권리’이며, ‘정치적 민주주의는 민주국가에서 달성되지만,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는 복지국가에서 완성된다’는 것이다.



5. 경제/경영 

박원암 교수의 추천작은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부키, 2010). 이건 '뒷북'이라고 할 만한데(나도 작년에 이미 '이달의 읽을 만한 책'으로 올려놓은 바 있다), 추천자 스스로도 그런 소감을 적었다.  

평소 현 자본주의 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해 온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장하준 교수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현 자본주의 시스템의 문제점을 또다시 조목조목 지적하는 저서를 출간하였다. 이 저서는 올해 8월 영국에서 영문으로 출간되었으며, 우리말 번역본이 10월 말에 출간되었다. 이 책은 잘 알려진 그의 책 <나쁜 사마리아인들>처럼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으나 지금에야 좋은 책으로 추천하고 있으니 만시지탄의 마음을 누를 길 없다. 

아마도 다른 책을 추천하기 어려웠나 보다. 그래도 최근에 나온 책으론 하일브로너의 <자본주의>(미지북스, 2010)와 볼프강 작스 등의 <반자본 발전사전>(아카이브, 2010)은 같이 읽어볼 만하지 않을까. '자본주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로 삼아도 좋겠다.   



자본주의와 '돈'은 또 긴밀하게 연결된 주제인데, 화폐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을 담은 이마무라 히토시의 <화폐인문학>(자음과모음, 2010)도 나로선 이달에 읽고픈 책이다. 이마무라는 믿을 만한 저자이기도 하고. 교과서 성격의 책으론 <화폐의 종말>(이른아침, 2010)도 있다. <달러>(이른아침, 2009)은 갖고 있는 책이니(아, 나도 '달러'를 갖고 있구나!) 이 참에 좀 들여다볼 수도 있겠다. 적다보니 이른 아침부터 '돈 생각' '돈 타령'이군...    

6. 과학 

장경애 동아사이언스 기획실장이 추천한 책은 에드워드 윌슨의 <바이오필리아>(사이언스북스, 2010)이다. 이미 소개한 적이 있는 책인데, 추천의 변은 이렇다.  

<개미>,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로 유명한 사회생물학자인 에드워드 윌슨이 20년도 훨씬 전에 쓴 이 책을 생물다양성의 해인 올해에 읽어보길 추천한다. 우리의 생명 사랑이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본능적인 성향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 가다보면 자연스럽게 주변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자연 그 자체에 애정어린 눈길이 머물기 때문이다.

올해는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 개정 번역판도 출간될 예정이어서 기대가 된다. <생명의 미래>(사이언스북스, 2005)나 <생명의 다양성>(까치, 1995)도 같이 읽어볼 만한 책인데, <생명의 다양성>은 아쉽게도 품절된 책이다. 다시 출간되면 좋겠다. 



7. 예술 

이주은 교수가 추천한 예술분야의 책은 시오노 나나미가 아들과 나눈 영화 얘기 <로마에서 말하다>(한길사, 2010)이다. 모자간의 대화록인데, 추천자는 이렇게 적었다.  

어머니인 시오노 나나미는 역사를 비롯하여 다방면에서 광범한 지식을 가진 글쟁이이고, 아들인 안토니오 시모네는 영화에 대한 애착과 예리한 관점, 그리고 실무경험까지 두루 갖춘 전문인이다. 두 사람의 시각이 합쳐져서 영화라는 주제는 배우, 감독, 국가적 특성, B급 영화 및 옛 영화 다시보기에 이르기까지 조목조목 아주 입체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나나미의 애독자라면 그녀의 개인적인 취향도 슬그머니 들여다 볼 수 있어 금상첨화이다.

영화책을 고른다면 고다르 인터뷰집 <고다르 X 고다르>(이모션북스, 2010)이 떠오른다. 아직 구하진 않았지만 탐을 내고 있는 책. 그러고 보면 이 영화사적 인물에 대한 변변한 책이 국내에 소개돼 있지 않다는 것도 미스터리한 일이다. 실상 국내 개봉된 그의 영화가 많지 않아서일까?..  

8. 교양

탁석산 철학자의 추천 교양서는 찰스 밴 도렌의 <지식의 역사>(갈라파고스, 2010). 지극히 당연한 추천으로 보인다. 사유는 이렇다. 

때때로 사람들에게 무식하다는 인상을 주는 경우가 있을 겁니다. 남들이 아는 만큼은 알고 있어야 하는 분위기인데 자신만 모르고 있다면 교양이 없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렇다고 교양이 하루 아침에 쌓이지도 않기에 뾰족한 해결책이 없어 보입니다. 이 책은 이런 고민을 어느 정도 해소해줄 수 있어 보입니다. 우선은 읽기 쉽고 편합니다. 고대부터 현대는 물론 미래에 대한 지식까지 다루고 있는데 애를 쓰고 읽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잘 읽힌다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꽤 깊은 내용도 나옵니다. 게다가 분야도 교양이라는 말에 어울리게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해 알려줍니다.

지난번에도 적었지만 같이 견줘볼 만한 책은 피터 왓슨의 <생각의 역사>(들녘, 2009)이다. <지식의 역사>가 헤비급이라면 <생각의 역사>는 무제한급. 읽다 보면 무슨 생각들이 그리 많았던 것인지 경탄하게 된다...  

9. 실용

손수호 논설위원이 꼽은 실용서는 이시형 박사의 <위로>(생각속의집, 2010)이다. 따로 소개가 필요없는 저자인데 부쩍 나오는 책이 많아졌다. '쏟아낸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추천자의 소개는 이렇다.  

이시형 박사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신간 서적을 쏟아낸다. 지난 7월 <세로토닌하라 : 뇌과학으로 풀어보는 인간>을 펴내더니 11월에 다시 <위로>를 출간했다. 4개월만에 두 권의 책을 내는 경이로운 에너지가 놀랍다. 최근 저자의 관심사인 세로토닌의 심리를 스스로 임상실험하고 있는 것일까. 신간 <위로> 역시 세로토닌 포엠(serotonin poem)과 세로토닌 마인드(serotonin mind)를 활용했다. 좋은 시가 전해주는 좋은 마음의 상태를 제시한다는 전제 하에 모두 49편의 시가 등장한다. 5개의 카테고리 가운데 ‘일상 속에서’가 13편으로 가장 많고, ‘연애와 결혼’ ‘가족의 울타리’ ‘직장 생활’ ‘대인 관계’ 등 나머지 주제에서 각 9편을 모았다. 그러니까 49개의 상황을 설정한 뒤 49편의 시를 들려주며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는 형식이다.

 

10. 라캉 

내 맘대로 고르는 주제는 '라캉'으로 정했다. 브루스 핑크의 <라캉의 주체>(도서출판b, 2010)이 출간된 김에 쌓여 있는 책 몇 권을 읽어보자는 계산에서인데, 준비용으로 <라깡 정신분석 테크닉>(하나의학사, 2010)의 원서를 최근에 구했다. 너무 어렵지 않느냐고? 사실 브루스 핑크의 책 같은 경우는 '대중을 위한 책'으로 분류된다. 역자도 이렇게 적었다.  

"이 책이 독자 대중을 위한 책이라고 할 때, 오늘날 독자 대중들의 독서 능력이 점점 더 저하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소문과 의혹이 있다. 그것이 사실이기를 바라지는 않는다는 조건을 달면서 나는 좀더 나은 독자가 되기 위한 독자 대중의 분발을 청한다."

그러니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분발심'을 좀 발휘해볼 필요가 있다. 그래도 버거운 분들은 '시늉'이라도 해보시길. 그래서 내가 지난해 '올해의 책' 중 하나로 꼽기도 한 다리언 리더의 <모나리자 훔치기>(새물결, 2010) 같은 책이 얼마나 흥미진진한지 공감할 수 있었으면 싶다...  

 

11. 01. 01.  

P.S. '1월의 읽을 만한 고전'은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으로 정했다. 이번주에 <주석 달린 허클베리 핀>(현대문학, 2010)이 출간된 게 계기인데, 그렇잖아도 트웨인의 작품들이 쏟아지고 있는 형편이다. <아서 왕 궁전의 코네티컷 양키>(시공사, 2010)나 <왕자와 거지>(민음사, 2010) 등도 '세계문학전집'에 새로 편입됐다.  

 

<헉핀>의 경우엔 열린책들, 펭귄클래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 모두 포함돼 있어서 비교하며 읽을 수도 있다. 개인적으론 멜빌이나 호손의 작품을 강의할 일이 있어서 아주 오랫동안 읽지 않았던 트웨인의 작품에도 다시금 관심이 생겼다. 정확한 근거를 대긴 어렵지만, 트웨인은 러시아작가 고골과 비교해보고픈 생각이 들도록 하는데, 트웨인의 '뗏목'과 고골의 '트로이카'가 서로 대응하는 게 아닌가란 느낌 때문이다. 언젠가 이 주제에 대해서는 좀 그럴 듯한 글을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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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1-01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첫날이라고 별다를 게 없기는 저도 마찬가지인데, 따님이 입원했다니 새해 인사를 드리기가 더 머쓱해지는군요. 예전에 조카녁석이 폐렴으로 며칠 입원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른들의 걱정과 달리 무사히 퇴원해서 다시 건강하게 잘 지내더군요. 따님도 곧 씩씩한 모습으로 잘 지내리라 믿습니다... 다만 새해 첫날을 병원에서 맞았으니 따님에게 2011년은 두고두고 잊지 못하는 해가 되겠네요.

'지난해'도 아니고 '새해'도 아닌 한 달이라고 하시니 <모나리자>가 걸렸던 저 텅 빈 자리와 어울려 보이네요. '빈달' 동안 그럼 <모나리자 훔치기>를 읽으며 보내야겠군요. 아무튼 하루빨리 댁이 활기를 찾기를 바라며 새해 인사는 그때까지 잠깐 미루겠습니다...


로쟈 2011-01-01 15:49   좋아요 0 | URL
중간에 약간 고생했지만 오늘 퇴원했습니다. 덕분에 부랴부랴 집안 청소하고 있습니다.^^; 후와님도 새해 건강하시고, 건필하시길.^^

anathema 2011-01-01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의 역사 1의 번역에 문제가 있다고 하더군요.

로쟈 2011-01-02 11:01   좋아요 0 | URL
1000쪽이 넘는 책에 흠이 없다면 이상하겠죠. 결정적인 흠인지는 적시해주시면 읽어보겠습니다...

2011-01-01 1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02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twoshot 2011-01-01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올해도 건강하시고 새해 복많이 받으시길...
그러고보면 매번 새해 인사만 드리는 것 같네요.^^
지난해도 로쟈님 덕분에 풍요로운 한해였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로쟈 2011-01-02 11:0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일년에 한번 뵙네요.^^

카스피 2011-01-02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첫날부터 좋은 책을 소개해 주시네요.로쟈님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로쟈 2011-01-02 11:03   좋아요 0 | URL
네, 카스피님도 복 많이 받으시길...

poptrash 2011-01-03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엔 새책들을 보면 마음이 설레는 게 아니라 도리어 무거워지니 어쩐 일일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로쟈 2011-01-04 19:56   좋아요 0 | URL
요즘에 부쩍 새책이 나오는 건 아닌데요.^^

네모선장 2011-01-04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 한 해도 이곳에서 좋은 정보들 많이 받아갔습니다.
건강 유념하세요.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의 이곳에서 알고 배우고 갑니다.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근데 생각의 역사 번역에 오류가 많은가요? 소장하여 읽고 싶은데요...

로쟈 2011-01-04 19:56   좋아요 0 | URL
번역 오류에 대해선 누가 지적한 내용이 없어서 아직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