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말 한국번역비평학회가 주최한 '세계문학전집 번역의 의의와 전망' 심포지엄에 토론자로 참여했었다. 심포 내용을 소개하는 기사가 올라왔기에 스크랩해놓는다.   

경향신문(10. 12. 20) "세계문학전집 붐 속 새로움·번역 윤리 부족” 

국내 출판계에 세계문학전집 출간 붐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번역비평학회가 ‘세계문학전집 번역의 의의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학회는 18일 숙명여자대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윤지관 전 한국문학번역원장, 세계문학전집시장을 선두하고 있는 민음사 장은수 대표, 을유문화사 세계문학전집 편집위원 신광현씨 등을 초청해 심포지엄을 진행했다.

윤 전 원장은 ‘세계문학 번역과 근대성’이라는 기조 강연을 통해, 근대에 생겨난 세계문학이라는 이념이 탈근대시대인 21세기에 부활하는 현상에 대해 진단하면서 ‘21세기의 세계문학’을 새롭게 정의했다. 그는 “국민·민족국가의 경계를 뛰어넘는 문학, 혹은 하나로 단일화된 세계시장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유통되는 작품을 세계문학이라고 한다면, 그런 유형의 세계문학은 이 지구화의 시대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의 등장으로 실현됐다”고 설명하면서 “<해리포터> 시리즈를 위시해 댄 브라운, 파울로 코엘료, 스티븐 킹,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탈민족적’ 작가들은 지구화된 시대의 세계출판시장을 장악하는 새로운 유형의 지구적 문학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하지만 윤 전 원장은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세계화의 합당한 문학적 성과물이 아니라 오히려 세계문학에 밀어닥친 위기, 문학 자체의 위기를 말해준다”면서 “문학의 상품화가 세계문학의 근거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구화라는 대세 속에서도 ‘민족’ 혹은 ‘민족문학’이라는 요소는 여전히 현실성을 갖고 있다”면서 “자본주의가 각 지역에서 발현시키는 모순의 현장을 포착하고, 그 현실을 토대로 이룩해나가는 문학적 성취를 세계적으로 공유하는 활동이야말로 세계문학”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자기복제식 세계문학 번역 현황에 대한 날선 비판도 나왔다. 문학평론가 조재룡씨는 1950년대 후반부터 90년대까지 출간된 세계문학전집 번역본들을 비교하면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번역본들”이라고 꼬집었다. 조씨는 앙드레 말로의 <인간의 조건> 판본들에 대해 “제1세대 번역가의 번역을 이후 판본들이 거의 베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59년 김붕구 번역으로 출간된 동아출판사 세계문학전집과 조홍식 번역으로 출간된 정음사 세계문학전집의 <인간의 조건>을 이후 을지출판사, 동서문화사, 지성문화사 등에서 “거의 옮겨 적다시피하고 하고 있는 현실”을 구체적 구절까지 사례로 들어가며 비판했다. 조씨는 또 발췌 번역에 대해서도 “사유의 살결들을 잘라버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2000년대 우후죽순처럼 기획되고 있는 세계문학전집 번역은 엄청난 분량, 참여한 출판사 수의 넉넉함에서가 아니라 번역의 윤리를 되새기면서 독자에게 떳떳한 번역을 선보일 때 의미가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번역가 이세욱씨는 ‘새로운 번역’이 유행처럼 번지는 행태에 대해 경계의 목소리를 냈다. 이씨는 “이전 번역의 오류를 바로잡았다고 주장하는 새 번역을 읽다가 이전에 아무도 범하지 않았던 새로운 오류를 봤다”며 “새로운 세대의 감수성에 영합하기 위해 옛것과의 단절을 기도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이영경기자)   

한국일보(10. 12. 20) 세계문학전집 '다양성 함정'에 빠졌나

민음사, 을유문화사, 열린책들, 문학과지성사, 문학동네, 창비, 푸른숲, 시공사, 책세상, 펭귄클래식코리아 등 여러 출판사들이 세계문학전집을 동시다발로 내고 있는 요즘은 정음사, 을유문화사, 신구문화사 등의 세계문학전집이 시장에서 호황을 누렸던 1960~70년대에 비견할 만하다. 이른바 ‘제2의 세계문학전집 붐’으로 불리는 이런 현상에는 문학 고전의 독자 저변을 넓혔다는 긍정적 평가 한편으로, 구미 편중의 작품 목록, 같은 작품의 중복 번역, 수요를 넘어선 전집 난립 등 부정적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국번역비평학회(회장 전성기 고려대 교수)가 지난 18일 숙명여대에서 개최한 심포지엄 ‘세계문학 전집의 번역의 의의와 전망’은 국내 세계문학전집 출간의 의미와 문제점을 다각도로 짚은 자리였다. 윤지관 덕성여대 교수의 기조강연에 이어 제1부에서는 장은수 민음사 대표와 을유문화사 전집 편집위원인 신광현 서울대 교수, 제2부에서는 번역가 이세욱씨와 문학평론가 조영일씨, 조재룡 고려대 교수가 각각 발제했다.

특히 2부에서는 현행 세계문학전집 출간 양상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조영일씨는 “세계문학전집이 화제가 되고 출판사들이 앞다퉈 전집을 내기 시작한 것은 2005년 초로, 전년도 말에 민음사가 전집 100권 묶음을 홈쇼핑에서 판매해 성공을 거둔 무렵”이라며 “현재의 세계문학전집 붐은 출판사들의 기획력보다는 유통구조의 변화에 의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씨는 “전집은 마땅히 편집위원들이 서로 합의한 원칙과 철학에 따라 작품 목록부터 확정, 공개하고 그에 따라 출간해야 하는 폐쇄적 출판물”이라며 “지금의 세계문학전집은 한국문학이 지닌 비평적 역량의 총집결이라기보다는, 편집위원을 맡은 언어권별 대학교수들의 분업과 출판사의 상업주의로 인해 작품 목록이 중구난방”이라고 혹평했다.

이세욱씨는 전집들이 같은 작품을 출간하면서 발생하는 재번역을 문제 삼았다. 이씨는 “출판사들이 물량과 구색을 갖추기 위해 재번역에 번역자들을 총동원하고 있다”면서 “재번역된 작품을 보면 번역자의 새로운 해석을 찾아볼 수 없는, 재번역과 개칠(改漆ㆍ덧칠)을 혼동하는 번역이 눈에 띈다”고 일갈했다. 그는 “널리 읽히던 번역이 신역(新譯)에 정본의 자리를 내주는 것이 세계 번역사에서 흔한 일이기는 해도, 우리의 ‘번역 갈아치우기’는 속도와 규모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라며 “‘새로운 세대의 감수성에 호소하는 번역’을 명분으로 앞선 세대의 번역을 싸잡아 매도하는 것은 낭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토론자로 나선 프랑스어권 번역가 정혜용씨도 “문학 번역 평가 프로젝트에 참여해 시대별 번역작을 살펴본 결과 선배 세대의 번역에는 언어 오류는 많아도 그걸 상쇄할 만한 문체의 힘이 느껴지는데 근래의 번역들은 문장이 밋밋하고 맛이 없다”며 “이는 (번역자보다는) 편집자의 역할이 더 커진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재룡 교수는 현재의 세계문학전집 붐의 시초라 할 수 있는 민음사 전집이 발행된 1998년 이전 국내 세계문학전집들의 ‘베끼기 번역’을 구체적 사례를 들어 지적하면서 “지금의 세계문학전집 번역은 시장 논리에 충실하면서 얻어낸 독자들의 환대가 아니라, 독자에게 기존 번역본과 확연히 차별된 결과물을 보여주려는 윤리적 자세를 통해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이훈성기자) 

10.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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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구화시대 문학의 쟁점들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12-28 23:30 
    다수의 세계문학전집이 백가쟁명에 접어든 시점에 걸맞게 세계문학론을 전체적으로 조감한 책이 출간됐다. 창비담론총서의 네번째 책으로 나온 <세계문학론>(창비, 2010)이 그것이다. 부제는 '지구화시대 문학의 쟁점들'. 개인적으론 <창작과비평>(2007년 겨울호)에 실었던 글도 재수록돼 반갑다. 소개기사를 옮겨놓는다. 참고로, <안과 밖>(2010년 하반기)도 세계문학론을 특집으로 다루고 있다. &
  2. The Ultimate Reader’s Edition
    from tran/ SLATE 2011-03-10 10:22 
    출판사와 독자 모두를 위한 고전 문학 기획안 | 로쟈 선생의 이 글을 읽고 알게 됐는데, 현재 10여개 이상의 출판사에서 세계문학전집을 내놓고 있다고 한다. 이미 번역본이 나와있는 책들은 새로이 번역되어 나오는 모양인데, 여기에 문제가 좀 있는 것 같다. 다음은 이세욱 선생이 한 말이다. 출판사들이 물량과 구색을 갖추기 위해 재번역에 번역자들을 총동원하고 있다… 재번역된 작품을 보면 번역자의 새로운 해석을 찾아볼 수 없는, 재번역과 개칠...
 
 
cyrus 2010-12-23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부터 안 읽어봤던 세계문학전집들을 읽고 있는데, 그동안 무척 궁금했었던
번역의 의미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해갈되었네요. 하필 어제 읽은
세계문학전집에 대해서 언급한 장정일 씨의 독서일기에서는
전공자가 아닌 문외한 번역가들이 세계문학전집 역자에 버젓이 등장하는 것을
비판했는데, 로쟈님의 글을 비추어보면 양을 늘리기 위한 출판사의 상업주의 전략 때문에
재번역을 하는 과정에서 작품 전공에 문외한 번역가들이 동원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로쟈 2010-12-24 13:45   좋아요 0 | URL
조영일 씨 발표문은 다음카페 비평고원에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문학론에 대해서는 창비담론총서로 최근에 나온 <세계문학론>도 참고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