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에 구입한 책 가운데 하나는 오종우 교수의 <백야에서 삶을 찾다>(예술행동, 2011)이다. 오랜만에 나온 국내 필자의 러시아문학 관련서여서 반가운데, 책에서 다루고 있는 세 작품을 나도 역시 강의한 적이 있고 앞으로도 하게 될 예정인지라 유익한 참고가 될 듯싶다. 소개기사가 뜨기에 옮겨놓는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안나 카레니나>, <닥터 지바고> 세 작품의 이미지는 저자가 참고한 책들이다.     

경향신문(11. 01. 22) ‘무엇으로 사는가’ 매몰된 삶 깨우는 섬광

적어도 겉으로만 보자면, 가히 고전과 교양의 전성기라고 부를 만하다. 각종 고전물과 교양서적들이 서점가의 베스트셀러로 각광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출간된 <백야에서 삶을 찾다>가 특별히 눈에 띈다. 고전이 갖는 현대적 의미를 진지하게 고찰하고 있는 까닭이다. 대학에서 오랫동안 러시아 문학을 강의해온 오종우 성균관대 러시아어문학과 교수(46)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 등 러시아 문학의 걸작 세 편을 통해 현대사회와 현대인의 삶을 비판적으로 성찰한 책을 펴냈다.  

“정보화·세계화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은 너무 많은 정보와 상품에 매몰되다보니, 자신과 시대를 객관화시킬 여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에 매몰돼 살다보면 현실 문제와 함께 몰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현실을 충실히 살아야 하겠지만, 그와 더불어 현실을 벗어난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지금’을 뛰어넘어 더 나은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저자는 방대한 내용과 깊이를 지니고 있는 각 소설의 텍스트를 충실하게 독자에게 소개하고 작가의 삶과 사상에 대해 알기 쉽게 전하면서도, 각 작품이 현대사회에 던지는 질문들에 초점을 맞춘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그는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소설은 욕정과 살인, 증오와 보복으로 가득찬 주인공들의 추악한 모습을 통해 ‘악을 통제하고 행복을 가져다주는 지배자가 올바른 신인가’라고 묻는다. 저자는 현대에 이르러 정치 이데올로기와 경제적 이득, 과학 기술이 제공하는 편리함이 ‘신’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며 “그것들이 삶의 기준이 되고 근거가 되는 순간, 사람들 사이의 경쟁은 극도로 심화돼 사회는 다원성을 잃고 황폐해진다”고 말한다. 저자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고, 인간이 존엄한 근원이 되는 자유의 가치를 강조한다. 



<안나 카레리나>에서는 시대를 초월해 변하지 않는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안나 카레리나는 장교 브론스키와 사랑에 빠지지만 욕망 때문에 파멸에 이르고 만다. 그녀가 파멸에 이른 것은 그 사랑이 부도덕하기 때문이 아니라 욕망의 과잉 때문이었다. 저자는 욕망의 과잉으로 언제나 결핍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대상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욕망에 의해 기형화시키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이는 인류의 역사에도 그대로 적용되는데, “역사는 인간의 세계인식 가운데 한 단면이 지나치게 활성화돼 삶의 형태와 제도를 획일화시키는 경향을 띠고 있으며, 20세기에 그것이 정치 이데올로기였다면 21세기에는 경제적 자본”이라고 말한다. 



<닥터 지바고>에서 저자는 기존에 사회주의에 반대하는 소설로 ‘정치적’으로 읽혀온 작품을 ‘실용’이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본다. 실용의 의미를 도구적 기능이나 돈에 연결시켜 생각하는 협소한 시각에서 벗어나, 사물 자체의 의미와 가치에서 그것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예술이야말로 인류 역사에서 한번도 소멸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진정 실용적인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세상을 창의적으로 해석해서 이해하는 일, 기성의 질서에 단순히 편입되기를 거부하고 주체로서 살아가는 일이 예술의 근본 속성”이라고 말한다. <닥터 지바고>에서 라라와 지바고의 짧지만 강렬하고 순수한 사랑이야말로 예술의 실용성에 맞닿아 있다는 해석인 셈이다.  

<닥터 지바고>를 통해 던지는 ‘실용’에 대한 질문과 대답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물질은 풍부하지만 정신은 갈수록 피폐해지는 현대사회에서 왜 고전과 인문학이 새삼 인기를 끄는지, ‘고전의 상품화’를 넘어서 진정한 삶의 성찰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저자는 러시아의 걸작 세 편에 기대어 거기에 답한다.(이영경기자) 

11. 01. 22.  

P.S. 특이하게도 책의 세 파트는 세 권의 책으로 분할돼 출간되기도 했다. 낱권이 편한 독자는 그렇게 읽어도 좋겠다. 참고로, 저자는 체호프 전공자로 체호프 번역서와 연구서들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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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 2011-01-22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통해 이마미치 도모노부의 <단테 신곡 강의>를 알게 됐고 이번에 또 한권 좋은 강의록을 소개 받네요.
기대됩니다. 또 한번 좋은 소개 고맙습니다^^

로쟈 2011-01-23 13:21   좋아요 0 | URL
저도 <단테 신곡 강의> 덕분에 <신곡>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달 '출판문화'에 실은 칼럼을 옮겨놓는다. '출판문화'는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펴내는 일종의 소식지다. 제안을 받고 격월로 '책읽는 세상'이란 코너를 연재하게 됐다(정확하게는 이 고정코너의 필진 가운데 하나로 참여하게 됐다). 애초엔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건강하게 사는가>(뿌쉬낀하우스, 2010)에 대한 얘기를 꺼내려고 했지만 '독서의 달인' 얘기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출판문화(11년 1월호) [이현우의 책읽는 세상] "무슨 책을 읽어야 할까요?"

“무슨 책을 읽어야 할까요?”란 질문을 종종 받는다. ‘인터넷 서평꾼’ 노릇을 해오면서 갖게 된 이미지 중 하나가 ‘독서의 달인’ 비슷한 것이기 때문이다. 두툼한 서평집도 내고 블로그에 ‘서재의 달인’ 엠블럼을 훈장처럼 달고 있으니 ‘독서의 달인’이라는 인상을 줄 법도 하다. 실상은 책상 가득 쌓여 있는 책을 다 읽지 못해 비명을 지르는 일이 다반사라는 ‘달인의 일상’도 감안해주기만 한다면, 내친김에 ‘독서의 달인’ 노릇도 마다하진 않을 생각이다. ‘달인’이란 말이 어떤 일을 반복적으로 오래해온 탓에 뭔가 노하우를 갖게 된 이를 가리킨다면, 대학생이 된 이후로만 쳐도 나의 독서경력이 20년은 훌쩍 넘어간다. 돌이켜보면 그 20년 넘게 물리지도 않고 책을 사고, 책을 읽고, 책에 대해 썼다. 비록 그 일이 ‘직업’은 아니더라도 ‘인생의 일’은 되는 것처럼.  

그러니 ‘독서의 달인’이라고 치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슨 책을 읽어야 할까요?”란 물음에 대한 답이 저절로 나오지는 않는다. 필독 목록이 무슨 국숫발처럼 뽑혀져 나오는 일은 없다는 말이다. 대답이 없는 건 아니다. “좋은 책을 읽어야죠”라는 명백하게 옳지만 심심한 대답. 하지만 ‘좋은 책’이란 말 역시 ‘좋은 삶’과 마찬가지로 딱히 구체적인 건 아니다. ‘평판’이란 게 척도가 될 수는 있지만 언제나 ‘나만의 좋은 책’이라는 게 있는 법이니까. ‘좋은’이라는 게 어떤 효과를 지칭한다면, ‘내 몸에 좋은 음식’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에게 좋은 책’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인이 좋아하는 것은 아니듯이 내가 좋아하는 책이라고 해서 만인의 필독서가 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니 이런 사정을 무시하고, “이건 꼭 읽어야 한다!”고 강권하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읽을 만한 책’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 편이지만, 그런 경우에도 독서 목록은 그저 참고사항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는 이유다. 덧붙여, 독서목록보다는 독서력, 책을 읽을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믿는 이유다. 비유컨대, “무슨 책을 읽어야 할까요?”란 질문은 “어떤 자전거를 타야 할까요?”라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전거를 탈 줄 알고, 타는 걸 즐길 줄 안다면 ‘아무거나’ 골라잡아 타면 된다. 왜 아니겠는가. 고장 난 자전거만 아니라면 말이다.   

자전거 타기에 비유했지만, 독서도 몸이 하는 일이기에 ‘책읽는 몸’ ‘책읽는 뇌’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혹 조금만 책을 읽어도 좀이 쑤신다거나 몸이 뒤틀리시는가? 글자들이 머릿속에서 제멋대로 재조합되면서 마치 ‘외국어’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들게끔 하는가? 이유야 물론 몸과 뇌가 독서에 적응하지 못한 탓이다. 내지는 독서가 몸과 뇌에 각인되지 못한 탓이다. 그게 진단이라면 처방은 물론 그렇게 익숙해지고 각인될 만큼 책과 가까이하는 것이겠다. 여기서 ‘가까이하다’라는 말은 복합적인 의미를 갖는다. 눈으로 직접 읽는 것만 뜻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내가 염두에 두는 것은 그냥 손에 들고 다니거나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것까지 포함한다. 즉 읽지 않아도 된다! 사실 자전거를 배울 때도 타게 되기 이전에 우리가 하는 일은 그걸 끌고 다니는 것이었다. 그렇게 어떤 대상과 자신을 가깝게 하는 것, 그것이 어떤 ‘교제’에서건 제일 처음 하는 일이고 또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니 그냥 주변에 책들이 놓여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게 중요하다. 그러다 너무 어지럽다 싶으면 4단이나 5단짜리 책장 하나 정도 구입해서 진열해놓는 것도 좋겠다. 그게 두 번째 단계라고 할까.  

책을 읽지도 않으면서 책장에 잔뜩 꽂아놓기만 한다고 눈을 흘기실 분도 계시겠지만, 책은 원래 다용도라서 ‘관상용’으로도 충분히 제값을 한다. 적어도 제목들은 눈에 익게 되니까 어디 가서 한마디 거들 수도 있다. 아무튼 남들 보기에 좀 번듯한 책장 하나를 다 채워 놓을 정도가 되면 소장도서가 얼추 200권 가량은 된다. 그때까지도 책을 한권도 읽지 않고 끼고만 다녔다고 해도 칭찬해줄 만한 일이다. 나는 그런 상황을 좀더 음미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가령 가끔씩 여유 시간을 내서 책장 배열을 바꿔놓는 일에 ‘취미’를 붙이셔도 좋겠다는 것이다. 책을 크기나 색깔별로 배열해도 좋고, 주제별로 배열해도 좋으며, 저자명이나 도서명 가나다순으로 재배열해도 좋고, 아예 기분 내키는 대로 무작위로(이 경우에는 눈을 감고 작업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다시 꽂아 넣어도 좋겠다. 그렇게 손때를 묻혀가며 좀 친숙해지다보면 자연스레 책장을 펼치는 일도 벌어질 것이다. 오, 너무 놀라거나 당황하지 마시길! 이건 마치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이들이 철이 들어 서로를 이성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면서 스쳐지나가기만 했던 직원끼리 어느 순간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하게 된 장면에 비견할 수 있을까? 아무려나 그게 시작이다. 그렇게 한권의 책이 특별한 인연으로 다가온다면, 당신의 독서경력도 새롭게 시작될 것이다. 혹 이렇게 묻지 않을까? “왜 이제야 나타난 거야?”  

여기까지가 ‘독서인 되기’의 과정이라고 한다면, ‘독서의 달인’은 한 가지를 더 얹는다. 책을 탐하고 책과 연애하면서 독서인으로의 변신이 이루어진다면, 내 생각에 달인은 책장과 연애하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한권의 책이 아니라 집합적 단수로서의 책을 흠모하는 사람. 책장 하나가 아니라 책장으로 둘러쳐진 벽면 전체를 응시하는 사람. 그래서 가끔씩은 책이 한권도 없는 방으로 탈출을 꿈꾸기도 하는 사람. 그게 달인이다. 단순히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란 건 독서의 달인에 대한 정의로는 너무 무미건조하다. ‘책과 많은 연애를 하는 사람’ 정도로 다시 정의하는 건 어떨까. 그런 연애를 통해서 가끔 혹은 자주 새로운 책을 낳기도 하는 사람!   

작년 말에 톨스토이의 말년을 다룬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이 개봉됐는데, 이 영화는 톨스토이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는 영화이기도 했다. 자신의 재산과 저작권을 사회에 환원하는 문제로 아내와 자주 갈들을 빚던 이 대문호는 알려진 대로 1910년 가을 야스나야 폴랴나의 영지를 떠나 기차를 타고 구도의 길을 가던 중 시골 간이역장 집에서 숨을 거두었다. 가장 위대한 소설가 중 한 사람으로 추앙받기도 하지만, 만년의 톨스토이는 ‘톨스토이즘’이라고도 불리는 사상의 주창자이자 설교가였고 도덕주의자였다. 그는 ‘나쁜 삶’과 ‘좋은 삶’을 엄격하게 분리했는데, 그런 도덕관에 대한 해설을 <안나 카레니나>에 대한 독해와 함께 제시하고 있는 석영중의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는 아예 1,2부의 제목을 각각 ‘나쁜 삶’과 ‘좋은 삶’이라고 붙여놓았다.   

톨스토이는 어떤 삶을 ‘좋은 삶’이라고 생각했을까? 요점만 말하면 ‘채소만 먹자’와 ‘시골에서 살자’가 핵심적인 제안이다. 그는 육식으로 인한 과도한 영양 섭취와 육체노동의 경시가 결국엔 정욕의 과잉을 낳고 도덕적인 문란으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때문에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는 게 좋고, 술과 담배는 당연히 끊어야 한다. 그리고 도시는 환락과 타락의 공간이기에 멀리 할수록 좋다. 대귀족이자 지주이면서도 농민의 삶을 모방하고자 했던 그는 욕구의 제한과 욕망의 억제가 좋은 삶, 도덕적인 삶에 필수적인 전제라고 보았다. <안나 카레니나>에서 작가의 분신 격인 인물 레빈이 친구 스티바와 함께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은 양배추 수프와 죽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딱 톨스토이의 취향을 말해준다(양배추 수프와 죽은 러시아 농민들이 즐겨먹는 음식이다). 그렇게 톨스토이가 권장하는 ‘좋은 삶’의 노하우는 <사람은 무엇으로 건강하게 사는가>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읽을 수 있다. 톨스토이의 에세이 세 편을 묶은 이 책을 통해서 술과 담배, 그리고 채식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톨스토이식 ‘좋은 삶’의 각론이라 할 만하다.  

해도 바뀐 김에 톨스토이가 권유하는 ‘좋은 삶’에 대해 묵상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어 그의 책 얘기를 꺼냈지만, 사실 내 눈길은 아직도 다른 쪽을 향한다.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의 첫머리에 적힌 대로, “대학 도서관에 가면 러시아에서 출간된 톨스토이 전집이 있다. 무려 90권짜리 전집이다.” 나는 그 90권짜리 전집이 한 모스크바 서점의 서가 꼭대기에 좍 꽂혀 있던 것을 기억한다. 문학작품뿐만 아니라 일기와 편지 등도 망라한 말 그대로의 ‘전집’이다. 마치 82살의 생애 전체를 책으로 압축해놓은 듯한 광경이 인상적이었다. ‘독서의 달인’의 관심은 ‘무슨 책’보다는 역시나 ‘책’ 자체를 향한다. 내게 경이로운 것은 채식과 절식을 주장한 톨스토이가 아니라 90권의 책을 쓴 톨스토이다. 전공자들도 다 읽지 못하는 그 책들을 그는 혼자의 힘으로 쓴 것이니 단연 ‘거인’이라 할 만하다. ‘독서의 달인’도 이럴 때는 그냥 입을 다문다.  

11. 01. 22.  

P.S. 올해엔 방송대학TV의 책소개수다 프로그램 '책을 삼킨 TV'의 패널로도 출연하게 됐다(블로그는 http://blog.naver.com/booksintv?Redirect=Log&logNo=120122385674). 두번째 시즌을 맞는다는 프로그램인데 사회는 딴지일보 총수인 김어준 씨이다('총수'이지만 계열사는 아직 없다고 그는 여러 번 말했다). 격주로 출연할 예정인데, 가끔씩 '내가 읽은 책'이 아니라 '내가 삼킨 책' 얘기도 늘어놓게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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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숭고한 독서의 '어려운 즐거움'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1-05-19 21:22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펴내는소식지 <출판문화>(546호)에 실은 '이현우의 책읽는 세상' 꼭지를 옮겨놓는다. 격월로 연재하는데, 이달에 화제로 삼은 건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란 물음이고 <해럴드 블룸의 독서기술>(을유문화사, 2011)을 길잡이로 삼았다.프롤로그('왜 읽는가?')와 1부의 1장까지 따라가본 게 됐다. 출판문화(11년 5월호) 홀로 행하는 독서의 즐거움“무슨 책을 읽어야 할까요?”란 질문에 대해 ‘책읽는 세상’에서
 
 
Mephistopheles 2011-01-22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왜 로쟈님과 코미디언 김병만씨가 자꾸 오버랩 되는 걸까요.

로쟈 2011-01-23 13:21   좋아요 0 | URL
'달인'이 고유명사로군요.^^

philocinema 2011-01-22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인'이기에...

로쟈 2011-01-23 13:22   좋아요 0 | URL
^^

2011-01-22 1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23 1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꾸때리다 2011-01-22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너 이름을 <이현우의 책 읽은 다음 날>로 지으면 어떤가요?

로쟈 2011-01-23 13:23   좋아요 0 | URL
단독 코너가 아니어서요...

singing 2011-01-22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읽는 몸'은 그럭저럭 억지를 부리면 될 것 같은데 '책읽는 뇌'는 아닌 것 같아 요즘 분투중입니다 --;;
어려운 책을 집어들었나 싶은 것이... 읽힌? 것인들 감동을 전하는 것도, 끄덕끄덕하며 읽고는 말로 옮기는 것도 쉽지 않으니 말입니다 ㅠㅠ...
그래도!! 책과 연애 중! 입니다 ^^

로쟈 2011-01-23 13:24   좋아요 0 | URL
지라르는 아니신 거죠?^^

그레이스 2021-01-22 0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장으로 둘러쳐진 벽을 응시하는 1인 입니다.
‘책먹기‘가 생각나네요^^

로쟈 2021-01-22 16:26   좋아요 0 | URL
^^
 

'원고 감옥'에 있다 보면 가끔 '먼 나라'의 책들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최근에 '마지막 왕국' 시리즈의 나머지 책들이 출간된 프랑스 작가 파스칼 키냐르가 그런 '먼 나라'의 작가다. 이 참에 그의 책들을 다 모아놓고 읽고픈 생각마저 든다. 그의 문학세계를 소개한 기사가 있어서 옮겨놓고 리스트도 만들어놓는다.  

  

주간한국(11. 01. 19) 시간과 언어에 대한 독창적 사유

알듯 모를 듯 모호한 말이지만, 매혹적인 말들이 있다. 파스칼 키냐르의 문장이 대개 그러하다. 세상의 모든 아침, 은밀한 생,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 이제는 고유명사처럼 읽히는 이 말들은 그의 책 제목들이다.

파스칼 키냐르. 1948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소설가이자 음악가, 시나리오작가, 번역가, 철학자다. 몇 년 전부터 화두가 된 '통섭'에 가장 어울리는 저자로 꼽힐 듯하다. 음악가 집안 출신의 아버지, 언어학자 집안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식탁에서 오가는 여러 언어(프랑스어, 독일어, 영어, 라틴어, 그리스어)를 습득했고, 여러 악기(피아노, 오르간,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를 익히며 자랐다.  

에마뉘엘 레비나스, 폴 리쾨르 등과 함께 철학공부를 했고, 스물한 살에 첫 작품 <말 더듬는 존재>를 썼다. 육순을 넘긴 지금까지 그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숨 쉬듯' 글을 쓰고 있다. 음악(장편<세상의 모든 아침>), 회화(장편 <로마의 테라스>), 언어(장편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 등 다양한 코드를 통해 시간과 언어에 대한 독창적 사유를 펼친다.

그의 작품은 일반 독자보다 프로 작가들 사이에서 더 많이 회자된다. 아득하면서도 황홀하게 말하는 파스칼 특유의 화법은 글로 밥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 매혹적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을 터다.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처럼, 키냐르의 작품 역시 소설과 에세이, 시와 산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탈장르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그는 전통적인 장르를 파괴하고 라틴어를 비롯해 9개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독창적인 담론을 펼친다. 그러니 그의 소설(소설이라고 하지만 에세이에 가까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기승전결의 서사구조나 인물이 아니라 언어 그 자체다.

대표작 <은밀한 생>은 어떤가. 화자와 M, 네미 샤틀레가 등장하는 이 소설은 90년대의 이탈리아와 중국, 프랑스와 튀니지, 벨기에 등을 배경으로 한다. 그러나 화자의 기억과 몽상 속에서 소설의 공간은 역사와 신화, 일상을 넘나들며 동서고금의 구석구석으로 확대된다. 기실 줄거리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한 이 작품은 32장의 정교한 구성을 통해 사유와 삶, 허구와 지식을 하나의 몸 안에 뒤섞는다. 제목처럼 텍스트 자체가 하나의 '은밀한 생'인 것. <은밀한 생>을 비롯해 그의 책은 어느 부분부터 읽어도 무방하다.

작가는 2000년부터 '마지막 왕국' 시리즈를 집필하고 있는데, 2002년 출간한 1권 <떠도는 그림자들>로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이 책에서 그는 탈장르적 글쓰기를 통해 독자와 저자의 구분을 없을 없애려는 열망을 보여준다. 바로 이 점이 공쿠르 위원들이 그에게 지지를 보내는 이유(탈장르적 글쓰기)이자 그의 수상을 반대한 이유(공쿠르 심사 대상인 '소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프랑스 최고의 작가라는 데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지난 주 그의 책 <옛날에 대하여>와 <심연들>이 번역, 출간됐다. '마지막 왕국'시리즈의 2,3권에 해당하는 책들이다. <옛날에 대하여>는 그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시간에 대한 사유'를 드러내는 작품이다. 여기서 작가는 과거-현재-미래로 나뉜 통상적 시간 개념을 '옛날'과 '옛날 이후인 과거' 등 2개의 개념으로 나누어 사고한다.

<심연들>은 세상의 모든 심연들, 즉 한번 빠지면 나오기 힘든 세계들을 담은 책이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심해, 바닥 없는 우물, <팡세>의 파스칼이 죽을 뻔했다 살아난 뇌이이 다리에서 본 생사의 갈림길, 드물게 찾아오는 무아지경의 순간, 독서…. 책은 이런 파편적 사유로 점철된다. '사랑한다, 즉 책을 펼쳐놓고 읽다.'(<은밀한 생> 중에서)는 작가의 말처럼, 서늘하면서 아름다운 그의 글은 넘치는 애정으로 두고두고 곱씹어 읽을 때 제대로 음미할 수 있다.(이윤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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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생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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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그림자들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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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대하여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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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들
파스칼 키냐르 지음, 류재화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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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0 18: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20 18: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이 2011-01-20 22:05   좋아요 0 | URL
반가운 소식에 두권의 책을 바로 손에 넣으며 로쟈님도 반가워할거라 생각했습니다..^

로쟈 2011-01-20 22:10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오늘 손에 넣었습니다.^^

귀족온달 2011-02-05 03:09   좋아요 0 | URL
꼭 읽고 싶었던 작가...감사합니다^^

로쟈 2011-02-06 12:14   좋아요 0 | URL
^^
 

지젝의 <폭력이란 무엇인가>(난장이, 2011)에 대한 서평기사 두 편을 옮겨놓는다. 책에 관심은 있지만 얼핏 읽을 엄두가 안 나시는 분들에겐 참고가 될 만하다.   

주간한국(11. 01. 19)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에 관심을

MTV철학자, 현존하는 가장 위험한 철학자. 지젝에 붙은 이 수식어들은 현재 그의 위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1989년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을 통해 영어권 지식사회에 등장한 이후 60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서를 줄기차게 써왔고 지금도 한 해 2,3권씩의 책을 쓴다. 그 입담의 원천은 가장 난해한 사상가, 헤겔과 라캉이다. 그는 헤겔을 통해 라캉의 사유를 읽고, 다시 라캉 언어로 헤겔의 사상을 설명한다. 여기에 마르크스와 대중문화가 이론적 틀로 더해진다. 팝음악, 할리우드 영화, 오페라는 그가 자주 인용하는 사례들이다. '마돈나가 싱글 앨범 내듯' 정력적으로 책을 내는데다, 대중문화를 통한 설명 덕분에 지젝은 2000년대 가장 대중적인 사상가 중 하나가 됐다. 



신간 <폭력이란 무엇인가>는 지젝의 이론적 사유를 바탕으로 폭력에 대한 다양한 성찰을 펼쳐놓은 책이다. 저자는 폭력의 개념을 몇 가지로 나눈다. 우선 주관적 폭력, 객관적 폭력이다. 가해의 의미로 쓰이는 일반적 폭력을 '주관적 폭력'이라 칭하고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폭력을 '객관적 폭력'이라 칭한다. 객관적 폭력은 다시 언어를 통해 구현되는 '상징적 폭력'과 경제정치 체계를 통해 만들어지는 '구조적 폭력'으로 나뉜다.

그의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폭력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눈에 보이는 '주관적 폭력'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객관적 폭력' 즉 '상징적 폭력'과 '구조적 폭력'에 두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폭력의 상투적 이미지에 한걸음 물러날 때만, 인간은 폭력에 대해 본격적으로 사유, 성찰할 수 있다는 것.

책은 총 6가지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1장에서는 주관적 폭력과 객관적 폭력의 차이를 설명한다. 2장에서는 폭력의 궁극적 원인이 공포에 있다고, 이웃에 대한 두려움에 있다고 설명한다. 그 공포가 언어 자체에 내재된 폭력의 기초를 이룬다. 3장에서는 테러리즘이 가진 원한이란 감정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 정의에 대해 짚고 넘어간다. 원한은 목표를 성취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목표를 이루는 데 장애물이 될 법한 것들을 어떻게 하면 제거할 수 있는지에 더 큰 관심을 쏟아붓는 도착이다. 4장에서는 관용적 이성의 이율배반에 대해, 5장에서는 사회 지배 이데올로기서의 관용의 한계에 대해 설명한다. 6장에서는 발터 벤야민의 신적 폭력 개념이 가진 해방적 면모를 설명한다.

'이 책에서는 폭력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대신 폭력으로 향하는 여섯 가지의 우회로를 일별해보고자 한다. 폭력의 문제를 삐딱하게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폭력을 직접적으로 건드리게 되면 폭력은 반드시 신비화된다.' (26페이지)

이 책은 지젝 특유의 '변증법적 화술'로 폭력에 대한 성찰을 논하고 있지만, 지젝의 어느 저작보다 명쾌하게 읽힌다. 만평과 영화 등 친근한 소재를 통한 설명과 명쾌해진 번역 덕분이다. 인터넷 서평꾼으로 유명한 로쟈, 이현우 씨의 번역으로 출간됐다.(이윤주기자) 

국제신문(11. 01. 15) 폭력의 실상, 한발 물러서면 제대로 보인다

'괴물 철학자' '현존하는 가장 위험한 철학자'라는 악명(또는 명성)에 걸맞게 슬라보예 지젝(62)의 글은 종횡무진과 성역 침범을 서슴지 않는다. 이번에 번역돼 나온 폭력이란 무엇인가(원제 Violence)도 마찬가지다. 칸트, 니체, 알랭 바디우 같은 서양의 어려운 철학자부터 2005년 파리 이민자 폭동, 같은 해 뉴올리언즈의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와 잇따른 폭력 사태에 대한 호도 등 현실의 사건을 치밀하게 엮어나간다.

지젝이 '폭력이란 무엇인가'에서 먼저 말하는 것은 일단 한 걸음 물러나서 폭력을 보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폭력을 이렇게 분류한다. 먼저 주관적(subjective) 폭력. 테러, 범죄에 대한 전쟁, 폭동, 국제 분쟁처럼 명확히 식별 가능한 행위자가 저지르는 폭력이다. 두번째가 상징적(symbolic) 폭력이다. 인간 사회의 언어 자체에 들어있는 훨씬 근본적인 폭력을 일컫는다. 세번째는 구조적(systemic)폭력이다. 묘하게도 '우리의 경제체계와 정치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 나타나는 파국적인 결과'에 해당한다.

두번째와 세번째 폭력은 객관적(objective) 폭력으로 묶을 수 있다. 지젝은 한 걸음 물러나서 보아야 이 같은 폭력의 구조를 식별할 수 있다고 본다. 책 속에 있는 예시를 통해 접근해보자. 자애롭고 선하면서도 부유한 귀족이 있었다. 그런데 그 나라에서 귀족의 횡포가 심해져 억압받던 이들이 혁명을 일으켰다. 혁명은 폭력을 동반한다. 이 귀족도 결국 다른 나라로 추방된다. 자애롭고 선한 귀족은 혼란스럽다. "나는 젊잖은 내 삶을 유지했을 뿐인데, 뭐가 잘못된 거지?"

지젝은 '그의 태도는 자신이 누리던 안락한 생활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구조적 폭력이 지속돼야만 했다는 점에 대해 그가 놀랄 만큼 무감각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고 썼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폭력에만 매달려 폭력에 대해 사유하는 경향이 강한데, 그런 상황에 갇혀서는 "모든 폭력에 대한 반대"를 외치는 것은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객관적 폭력을 은폐하기 십상이란 것이 그의 관점이다.

지젝은 책의 전반부에서 영화, 문학, 사건 등을 실례로 들면서 이 같은 주장을 논증해간다. 모두를 품에 안는 척하면서도 결국 그 품안에 안기지 않는 사람은 배제해버리는 기독교의 구조. 이와 유사한 이슬람교. 엄청난 기부를 통해 세계의 위기를 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세계의 위기 자체를 생산하고 있는 세계의 거대 기업과 자선가. 지젝은 때로 깜짝 놀랄 만큼 예리한 시선으로 폭력의 문제에 대한 지평을 넓힌다.

그는 눈에 보이는 주관적 폭력과 싸운다고 무작정 참여와 실천에 뛰어들기 보다 한발짝 물러나 사유할 것을 권한다. 지젝이 책에서 내놓는 대안과 권유는 때로 불온하고 위험해보이거나 잘 이해가 안 가기도 한다. 그의 제안에 굳이 동의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 독자에게 이 책은 세상을 휘감고 있는 폭력에 대해 무척 폭넓고 새로운 관점에서 깊이 사유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 매력이다. 유명한 서평 전문 블로그인 '로쟈의 저공비행'을 운영하는 이현우 씨를 비롯해 김희진 정일권 씨가 함께 한 번역도 생생하고 명쾌해서 좋다.(조봉권기자) 

11. 01. 19.  

P.S. 그래도 <폭력이란 무엇인가>를 혼자 읽기가 버거우신 분이라면 관련강좌의 도움을 얻으셔도 좋겠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신촌)에서 2월28일부터 4월 4일까지 6주 동안 매주 월요일 저녁(19:30-21:30)에 '로쟈의 인문학 여행 : 슬라보예 지젝, 폭력이란 무엇인가' 강좌를 진행한다(http://www.hanter21.co.kr/jsp/huser2/educulture/educulture_view.jsp?category=academyGate7&tolclass=&searchword=&subj=F90934&gryear=2011&subjseq=0001&p_selmenu=01). 일정은 <폭력이란 무엇인가>의 여섯 장을 일주일에 한 장씩 자세히 읽는 것이다.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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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모스크바의 지젝과 바타유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1-02-11 23:49 
    엊그제 모스크바에 도착해서 아르바트거리에 여장을 풀고 이틀째 '출장일'을 보내고 있다. 6시간의 시차는 일상의 리듬을 약간 이상하게 바꾸어놓았는데, 어제오늘 나는 모스크바 시간으로 새벽 4시에 일어나는 '어얼리 버드' 노릇을 하고 있지만, 한국시간으론 아침10시에 일어나는것이니 한껏 늑장을 부리는 것이기도 하다(그래서 일찍 일어나는 것인지 늦게 일어나는 것인지 헷갈린다).밀린 원고들을 다 싸들고 온 탓에 주로 숙소에 머물러 있다가 어제오늘 낮시간에 내가
 
 
2011-05-11 16: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11 2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엇이 정의인가>(마티, 2011)에 대한 비교적 자세한 리뷰기사가 올라왔기에 옮겨놓는다. 알라딘에선 비교적 반응이 좋은 편인데, 그래도 <정의란 무엇인가>에는 견줄 바가 아니다. 여전히 베스트셀러 수위권을 달리며 조만간 80만부를 돌파할 거라는 예상이니까. 그 정도면 거의 국민 '교과서' 수준이지 싶다...  

  

서울신문(11. 01. 19) 한국사회 ‘정의란… ’ 샌델 교수에게 말하다

지난해 출판계 최대 화두는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의 돌풍이었다. 1쇄 1000부만 나가도 많이 나간다는 인문출판 현실에서 70만부 넘게 팔렸으니 경악할 법도 하다. 여기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다. 한편으로는 정의에 대한 타는 목마름이 있었다는 얘기여서 반갑다. 다른 한편으로는 정의에 대한 국내의 수많은 고민들은 외면당하기 일쑤인데 물 건너 유명대학 교수의 논의에 열광하는 기현상에 대한 냉소도 나온다. 



‘무엇이 정의인가-한국사회, 정의란 무엇인가에 답하다’(마티 펴냄)는 ‘정의란’가 불러일으킨 이런 돌풍에 대한 한국인들의 대답이다. 문화평론가인 이택광 경희대 교수와 장정일 소설가를 비롯해 정의론과 법철학 분야를 공부해온 이양수, 김도균, 최원 등 젊은 법철학자와 정치학자, 필명 ‘로쟈’로 유명한 서평블로거 이현우 등 10명의 필자가 참가했다.

먼저 이택광 교수의 결론은 “누구도 이 정의 없는 현실에 대한 책임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지금 여기서 ‘정의란’이라는 책을 읽는다.”는 것이다. ‘정의란’을 읽는 것은 부(不)정의한 세상에 홀로 탈색된 채 서 있고자 하는 욕망이 낳은 일종의 알리바이, 즉 부재증명이라는 것이다.

단적으로 “막걸리보안법 시대도 아닌데 이명박 정권이나 삼성그룹에 대해 정의롭지 못하다고 말하려면, 상당한 오해와 불편을 감수해야만 한다.”는 얘기다.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은 알지만 앞장서서 외칠 자신이 없는 사람들이 책으로 대리만족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 어린 시선이다.

장정일은 더 신랄하다. 그는 “창의적 논문과 정리성 논문이 있다면 샌델의 책은 정리성 논문에 가깝다.”고 정의한 뒤 “도덕에 대한 고민을 잠재적·정치적 가능성에 연결짓지 못하고 너무 일찍 법을 불러낸다.”고 비판한다. 샌델은 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 그 근거로 공동체 도덕에 기반을 둔 법을 내세운다. 이런 까닭에 한국의 맥락에서 샌델은 법 질서 확립이라는 명분으로 남용될 위험이 있다. “법치를 통한 정의사회-공정사회도 좋다-구현은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가 아니던가.”라고 장정일은 반문한다.

비판론자 못지않게 중립적 태도를 취하는 이들의 주장에도 귀 기울일 만하다. 이들은 대체로 샌델이 ‘정의란’를 통해 결론적으로 도출해 내는 공동체주의와 그 이후 샌델의 주장을 미국식 애국주의와 접합한 공동체주의 운동으로 세심하게 구분하는 쪽에 서 있다.

자유주의에 대한 샌델의 공격을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대립으로 파악하기보다 자유주의의 부족한 점을 공동체주의가 보완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한 예다. 또 이들은 샌델이 끊임없이 제시하는 사고실험을 그 자체로 비윤리적인 것으로 거부하기보다 철학적인 판단을 압축해서 보여 주는 도구로서 받아들인다.

서평블로거 이현우는 이런 입장에서 ‘정의란’의 돌풍이 불러올 긍정적인 측면에 주목하자고 제안한다. ‘삼성 비자금’ 사건에 대한 재판 결과를 언급하면서 “지금 필요한 것은 샌델 열풍이 아니라 깨어 있는 시민의 반부패 혁명”이라는 김용철(‘삼성을 생각한다’의 저자) 변호사의 주장에 대해 이현우는 되묻는다. “시민들의 의식을 어떻게 깨울 수 있을까.”

이현우는 “내기를 건다면 나는 아직도 우리에겐 더 많은 도덕적 사고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쪽에 걸고 싶다. 70만 독자로도 깨어 있는 시민이 부족하다면 필요한 것은 700만의 독자이고 시민”이라고 단언한다. 이제 막 도덕적 사고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결과를 조금 더 두고 보자는 얘기다.

김도균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아예 다른 차원을 지적한다. 정치학자 샌델이 정치적 공공선에 대해 언급하는 데 치중하다 보니 사회경제적 차원의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정치적인 부분에서는 자유주의 철학을 비판하면서도 사회경제적인 분야에 대해서는 별 언급이 없는 것은 자유주의 원리를 적극 수용하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추측해 본다.”면서 “교육, 의료, 주거, 보육, 노후, 기초소득 보장 같은 복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론은 이권우 출판평론가의 언급에서 찾을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책 읽기의 사회학을 검증하는 현장에 서 있다. 책 읽는 한국 사회가 과연 현실을 바꿀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정의란’ 열풍이 또 한번 휩쓸고 지나간 ‘선진’ 미국의 유행에 그치고 말지 아닐지는 우리 자신에게 달렸다는 의미다.(조태성기자) 

11. 01. 19.   

P.S. 파이앤셜뉴스의 '화제의 책' 코너도 옮겨놓는다. <무엇이 정의인가>의 내용을 잘 간추려주고 있다.

파이낸셜뉴스(11. 01. 20) 마이클 샌델의 ‘정의론’ 신드롬을 어떻게 볼 것인가

세간의 화제가 된다는 것은, 곧 기자 회견을 앞두고 있다는 뜻이다. 쏟아지는 질문공세, 눈부신 플래시 세례. 세계 정상급 연기로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건 김연아도, 1996년 은퇴를 앞두고 있던 서태지도, 아들의 병역비리가 드러난 정치인도 다 알고 있었다. 자신이 밟아야 할 다음 순서가 바로 ‘기자회견’이라는 점 말이다. 그들 앞에는 너무도 많은 질문이 놓여 있었다.

70만 독자들의 선택. 무한도전 멤버 중 MBC 서점을 가장 방문하지 않는다는 하하도 귀동냥으로 알고 있는 ‘정의란 무엇인가’. 일명 ‘저스티스’로 회자되고 있는 이 책 역시 우리 사회의 화제가 되었다. 슈퍼스타K 최종무대가 방송된 바 있는 한 대학의 무대는 이 책의 저자, 마이클 샌델을 만나기 위한 이들로 북적거리기도 했다. 무려 4000여 석의 강연장을 연예인이 아니라 바로 ‘철학자’가 채웠다는 사실은 이 책이 단순히 ‘베스트 셀러’ 이상의 의미로 한국사회에 상륙했음을 직감하게 한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 만한 베스트 셀러를 부러 거창하게 소개하는 것은, 이 책도 드디어 다음 순서를 밟을 때가 됐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바로 기자회견. 그 동안 우리는 책 한 권을 앞에 두고 얼마나 많은 수다를 떨었던가. 이 책이 잘 팔리는 이유에서부터, ‘그래서 정의가 도대체 뭐라는 거야?’라는 푸념까지. 우리의 그 모든 궁금증을 반영한 첫 번째 공식질문이 바로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의미심장하게도, 마이클 샌델의 질문을 그대로 뒤집은 책 ‘무엇이 정의인가?’이다.

이 같은 제목은 ‘정의란 무엇인가’의 열풍에 편승하고자 하는 ‘안일하고도 소박한 상업적 바람’의 연장선에 이 책이 놓여 있다고 오해할 여지도 준다. 동시에 베스트 셀러를 마냥 삐딱하게 보려는 것은 아닌지 염려할 만한 소지도 낳는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얘기하건데 그런 오해와 염려에 대해선 안심해도 좋다. 이 책은 11명의 공저자들이 다양한 방향에서 ‘마이클 샌델의 정의론’을 분석하고 이를 소비하는 한국사회를 독해한다. 샌델에 대해 우호적인 논자들도 있고 비판적인 논자들도 있다.

소설가 장정일은 “정작 읽게 된 이 책의 수준이 고작 맥도날드 매장에서 고등학생들이 햄버거를 먹으며 할 수 있는 잡담에 불과하다”고 다소 감정적으로 말하면서도 샌델의 정의가 일종의 ‘신학’으로 변질될 수 있는 지점을 선명하게 짚어낸다. 꽤 알려진 인터넷 서평꾼 ‘로쟈’는 샌델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정의’ 열풍이 한국사회를 ‘살아있는 정의의 사회’로 만들어 갈 시민들의 도덕적 사고 훈련에 도움이 된다고 옹호한다. 한편 현재 샌델의 책을 번역하고 있는 철학자 이양수는 ‘정의론’을 둘러싼 다양한 입장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샌델이 무엇을 비판하고 있고 어떤 비판을 받고 있는지를 잘 정리해 준다. ‘샌델이란 무엇인가’라는 소제목을 붙여도 좋을만한 글이다. 그리고 정치철학자 최원은 샌델이 중요한 참고점으로 삼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을 소개하며 샌델이 아리스토텔레스를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공박한다.

이들 모두가 탄탄한 논리로 뒷받침되고 압축적으로 배경 지식들을 소개함으로써 우리는 정의에 대한 더욱 진지한 고민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샌델에 대한 찬성과 반대를 넘어서 ‘정의에 대한 더 깊은 고민’이 이 책의 기획 의도이기도 하다. 샌델에 대한 치밀한 분석 끝에 나온 “무엇이 정의인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마냥 “샌델”이라고 답할 수는 없게 된다. 이 책은 이렇게 샌델이 촉발시킨 ‘정의’라는 화두를 더 의미 있게 증폭한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은 다음엔 꼭 이 책을 읽어야 합니다”라고 공식 선언해도, 분명 흠이 되지 않을 것이다.(김성광 예스24 도서1팀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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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1-19 12:08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을 뒤늦게 사 볼 생각이긴 한데
이런 류의 책이 몇 권은 더 나오지 않을까 해요.
단지 미이클샌델이 이 분야에서 포문을 연 것일뿐
그것이 과연 이 사회를 얼마나 바꿔놓을 수 있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로쟈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이승만 때부터 한 번도 정의로운 사회에서 살아보지 못한
한국인들 아닙니까?ㅋ

돈케빈 2011-01-19 19:16   좋아요 0 | URL
비트겐슈타인 열풍이나 샹탈 무페 열풍은 기대해 볼 수 없을까요?
'하바드' 세 글자의 힘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자꾸때리다 2011-01-19 20:57   좋아요 0 | URL
그런 열풍은 프랑스에서나...ㅡㅡ;;

philocinema 2011-01-19 21:37   좋아요 0 | URL
한국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