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정의인가>(마티, 2011)에 대한 비교적 자세한 리뷰기사가 올라왔기에 옮겨놓는다. 알라딘에선 비교적 반응이 좋은 편인데, 그래도 <정의란 무엇인가>에는 견줄 바가 아니다. 여전히 베스트셀러 수위권을 달리며 조만간 80만부를 돌파할 거라는 예상이니까. 그 정도면 거의 국민 '교과서' 수준이지 싶다...
서울신문(11. 01. 19) 한국사회 ‘정의란… ’ 샌델 교수에게 말하다
지난해 출판계 최대 화두는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의 돌풍이었다. 1쇄 1000부만 나가도 많이 나간다는 인문출판 현실에서 70만부 넘게 팔렸으니 경악할 법도 하다. 여기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다. 한편으로는 정의에 대한 타는 목마름이 있었다는 얘기여서 반갑다. 다른 한편으로는 정의에 대한 국내의 수많은 고민들은 외면당하기 일쑤인데 물 건너 유명대학 교수의 논의에 열광하는 기현상에 대한 냉소도 나온다.
‘무엇이 정의인가-한국사회, 정의란 무엇인가에 답하다’(마티 펴냄)는 ‘정의란’가 불러일으킨 이런 돌풍에 대한 한국인들의 대답이다. 문화평론가인 이택광 경희대 교수와 장정일 소설가를 비롯해 정의론과 법철학 분야를 공부해온 이양수, 김도균, 최원 등 젊은 법철학자와 정치학자, 필명 ‘로쟈’로 유명한 서평블로거 이현우 등 10명의 필자가 참가했다.
먼저 이택광 교수의 결론은 “누구도 이 정의 없는 현실에 대한 책임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지금 여기서 ‘정의란’이라는 책을 읽는다.”는 것이다. ‘정의란’을 읽는 것은 부(不)정의한 세상에 홀로 탈색된 채 서 있고자 하는 욕망이 낳은 일종의 알리바이, 즉 부재증명이라는 것이다.
단적으로 “막걸리보안법 시대도 아닌데 이명박 정권이나 삼성그룹에 대해 정의롭지 못하다고 말하려면, 상당한 오해와 불편을 감수해야만 한다.”는 얘기다.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은 알지만 앞장서서 외칠 자신이 없는 사람들이 책으로 대리만족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 어린 시선이다.
장정일은 더 신랄하다. 그는 “창의적 논문과 정리성 논문이 있다면 샌델의 책은 정리성 논문에 가깝다.”고 정의한 뒤 “도덕에 대한 고민을 잠재적·정치적 가능성에 연결짓지 못하고 너무 일찍 법을 불러낸다.”고 비판한다. 샌델은 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 그 근거로 공동체 도덕에 기반을 둔 법을 내세운다. 이런 까닭에 한국의 맥락에서 샌델은 법 질서 확립이라는 명분으로 남용될 위험이 있다. “법치를 통한 정의사회-공정사회도 좋다-구현은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가 아니던가.”라고 장정일은 반문한다.
비판론자 못지않게 중립적 태도를 취하는 이들의 주장에도 귀 기울일 만하다. 이들은 대체로 샌델이 ‘정의란’를 통해 결론적으로 도출해 내는 공동체주의와 그 이후 샌델의 주장을 미국식 애국주의와 접합한 공동체주의 운동으로 세심하게 구분하는 쪽에 서 있다.
자유주의에 대한 샌델의 공격을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대립으로 파악하기보다 자유주의의 부족한 점을 공동체주의가 보완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한 예다. 또 이들은 샌델이 끊임없이 제시하는 사고실험을 그 자체로 비윤리적인 것으로 거부하기보다 철학적인 판단을 압축해서 보여 주는 도구로서 받아들인다.
서평블로거 이현우는 이런 입장에서 ‘정의란’의 돌풍이 불러올 긍정적인 측면에 주목하자고 제안한다. ‘삼성 비자금’ 사건에 대한 재판 결과를 언급하면서 “지금 필요한 것은 샌델 열풍이 아니라 깨어 있는 시민의 반부패 혁명”이라는 김용철(‘삼성을 생각한다’의 저자) 변호사의 주장에 대해 이현우는 되묻는다. “시민들의 의식을 어떻게 깨울 수 있을까.”
이현우는 “내기를 건다면 나는 아직도 우리에겐 더 많은 도덕적 사고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쪽에 걸고 싶다. 70만 독자로도 깨어 있는 시민이 부족하다면 필요한 것은 700만의 독자이고 시민”이라고 단언한다. 이제 막 도덕적 사고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결과를 조금 더 두고 보자는 얘기다.
김도균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아예 다른 차원을 지적한다. 정치학자 샌델이 정치적 공공선에 대해 언급하는 데 치중하다 보니 사회경제적 차원의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정치적인 부분에서는 자유주의 철학을 비판하면서도 사회경제적인 분야에 대해서는 별 언급이 없는 것은 자유주의 원리를 적극 수용하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추측해 본다.”면서 “교육, 의료, 주거, 보육, 노후, 기초소득 보장 같은 복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론은 이권우 출판평론가의 언급에서 찾을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책 읽기의 사회학을 검증하는 현장에 서 있다. 책 읽는 한국 사회가 과연 현실을 바꿀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정의란’ 열풍이 또 한번 휩쓸고 지나간 ‘선진’ 미국의 유행에 그치고 말지 아닐지는 우리 자신에게 달렸다는 의미다.(조태성기자)
11. 01. 19.
P.S. 파이앤셜뉴스의 '화제의 책' 코너도 옮겨놓는다. <무엇이 정의인가>의 내용을 잘 간추려주고 있다.
파이낸셜뉴스(11. 01. 20) 마이클 샌델의 ‘정의론’ 신드롬을 어떻게 볼 것인가
세간의 화제가 된다는 것은, 곧 기자 회견을 앞두고 있다는 뜻이다. 쏟아지는 질문공세, 눈부신 플래시 세례. 세계 정상급 연기로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건 김연아도, 1996년 은퇴를 앞두고 있던 서태지도, 아들의 병역비리가 드러난 정치인도 다 알고 있었다. 자신이 밟아야 할 다음 순서가 바로 ‘기자회견’이라는 점 말이다. 그들 앞에는 너무도 많은 질문이 놓여 있었다.
70만 독자들의 선택. 무한도전 멤버 중 MBC 서점을 가장 방문하지 않는다는 하하도 귀동냥으로 알고 있는 ‘정의란 무엇인가’. 일명 ‘저스티스’로 회자되고 있는 이 책 역시 우리 사회의 화제가 되었다. 슈퍼스타K 최종무대가 방송된 바 있는 한 대학의 무대는 이 책의 저자, 마이클 샌델을 만나기 위한 이들로 북적거리기도 했다. 무려 4000여 석의 강연장을 연예인이 아니라 바로 ‘철학자’가 채웠다는 사실은 이 책이 단순히 ‘베스트 셀러’ 이상의 의미로 한국사회에 상륙했음을 직감하게 한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 만한 베스트 셀러를 부러 거창하게 소개하는 것은, 이 책도 드디어 다음 순서를 밟을 때가 됐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바로 기자회견. 그 동안 우리는 책 한 권을 앞에 두고 얼마나 많은 수다를 떨었던가. 이 책이 잘 팔리는 이유에서부터, ‘그래서 정의가 도대체 뭐라는 거야?’라는 푸념까지. 우리의 그 모든 궁금증을 반영한 첫 번째 공식질문이 바로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의미심장하게도, 마이클 샌델의 질문을 그대로 뒤집은 책 ‘무엇이 정의인가?’이다.
이 같은 제목은 ‘정의란 무엇인가’의 열풍에 편승하고자 하는 ‘안일하고도 소박한 상업적 바람’의 연장선에 이 책이 놓여 있다고 오해할 여지도 준다. 동시에 베스트 셀러를 마냥 삐딱하게 보려는 것은 아닌지 염려할 만한 소지도 낳는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얘기하건데 그런 오해와 염려에 대해선 안심해도 좋다. 이 책은 11명의 공저자들이 다양한 방향에서 ‘마이클 샌델의 정의론’을 분석하고 이를 소비하는 한국사회를 독해한다. 샌델에 대해 우호적인 논자들도 있고 비판적인 논자들도 있다.
소설가 장정일은 “정작 읽게 된 이 책의 수준이 고작 맥도날드 매장에서 고등학생들이 햄버거를 먹으며 할 수 있는 잡담에 불과하다”고 다소 감정적으로 말하면서도 샌델의 정의가 일종의 ‘신학’으로 변질될 수 있는 지점을 선명하게 짚어낸다. 꽤 알려진 인터넷 서평꾼 ‘로쟈’는 샌델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정의’ 열풍이 한국사회를 ‘살아있는 정의의 사회’로 만들어 갈 시민들의 도덕적 사고 훈련에 도움이 된다고 옹호한다. 한편 현재 샌델의 책을 번역하고 있는 철학자 이양수는 ‘정의론’을 둘러싼 다양한 입장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샌델이 무엇을 비판하고 있고 어떤 비판을 받고 있는지를 잘 정리해 준다. ‘샌델이란 무엇인가’라는 소제목을 붙여도 좋을만한 글이다. 그리고 정치철학자 최원은 샌델이 중요한 참고점으로 삼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을 소개하며 샌델이 아리스토텔레스를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공박한다.
이들 모두가 탄탄한 논리로 뒷받침되고 압축적으로 배경 지식들을 소개함으로써 우리는 정의에 대한 더욱 진지한 고민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샌델에 대한 찬성과 반대를 넘어서 ‘정의에 대한 더 깊은 고민’이 이 책의 기획 의도이기도 하다. 샌델에 대한 치밀한 분석 끝에 나온 “무엇이 정의인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마냥 “샌델”이라고 답할 수는 없게 된다. 이 책은 이렇게 샌델이 촉발시킨 ‘정의’라는 화두를 더 의미 있게 증폭한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은 다음엔 꼭 이 책을 읽어야 합니다”라고 공식 선언해도, 분명 흠이 되지 않을 것이다.(김성광 예스24 도서1팀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