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달 '출판문화'에 실은 칼럼을 옮겨놓는다. '출판문화'는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펴내는 일종의 소식지다. 제안을 받고 격월로 '책읽는 세상'이란 코너를 연재하게 됐다(정확하게는 이 고정코너의 필진 가운데 하나로 참여하게 됐다). 애초엔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건강하게 사는가>(뿌쉬낀하우스, 2010)에 대한 얘기를 꺼내려고 했지만 '독서의 달인' 얘기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출판문화(11년 1월호) [이현우의 책읽는 세상] "무슨 책을 읽어야 할까요?"
“무슨 책을 읽어야 할까요?”란 질문을 종종 받는다. ‘인터넷 서평꾼’ 노릇을 해오면서 갖게 된 이미지 중 하나가 ‘독서의 달인’ 비슷한 것이기 때문이다. 두툼한 서평집도 내고 블로그에 ‘서재의 달인’ 엠블럼을 훈장처럼 달고 있으니 ‘독서의 달인’이라는 인상을 줄 법도 하다. 실상은 책상 가득 쌓여 있는 책을 다 읽지 못해 비명을 지르는 일이 다반사라는 ‘달인의 일상’도 감안해주기만 한다면, 내친김에 ‘독서의 달인’ 노릇도 마다하진 않을 생각이다. ‘달인’이란 말이 어떤 일을 반복적으로 오래해온 탓에 뭔가 노하우를 갖게 된 이를 가리킨다면, 대학생이 된 이후로만 쳐도 나의 독서경력이 20년은 훌쩍 넘어간다. 돌이켜보면 그 20년 넘게 물리지도 않고 책을 사고, 책을 읽고, 책에 대해 썼다. 비록 그 일이 ‘직업’은 아니더라도 ‘인생의 일’은 되는 것처럼.
그러니 ‘독서의 달인’이라고 치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슨 책을 읽어야 할까요?”란 물음에 대한 답이 저절로 나오지는 않는다. 필독 목록이 무슨 국숫발처럼 뽑혀져 나오는 일은 없다는 말이다. 대답이 없는 건 아니다. “좋은 책을 읽어야죠”라는 명백하게 옳지만 심심한 대답. 하지만 ‘좋은 책’이란 말 역시 ‘좋은 삶’과 마찬가지로 딱히 구체적인 건 아니다. ‘평판’이란 게 척도가 될 수는 있지만 언제나 ‘나만의 좋은 책’이라는 게 있는 법이니까. ‘좋은’이라는 게 어떤 효과를 지칭한다면, ‘내 몸에 좋은 음식’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에게 좋은 책’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인이 좋아하는 것은 아니듯이 내가 좋아하는 책이라고 해서 만인의 필독서가 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니 이런 사정을 무시하고, “이건 꼭 읽어야 한다!”고 강권하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읽을 만한 책’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 편이지만, 그런 경우에도 독서 목록은 그저 참고사항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는 이유다. 덧붙여, 독서목록보다는 독서력, 책을 읽을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믿는 이유다. 비유컨대, “무슨 책을 읽어야 할까요?”란 질문은 “어떤 자전거를 타야 할까요?”라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전거를 탈 줄 알고, 타는 걸 즐길 줄 안다면 ‘아무거나’ 골라잡아 타면 된다. 왜 아니겠는가. 고장 난 자전거만 아니라면 말이다.
자전거 타기에 비유했지만, 독서도 몸이 하는 일이기에 ‘책읽는 몸’ ‘책읽는 뇌’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혹 조금만 책을 읽어도 좀이 쑤신다거나 몸이 뒤틀리시는가? 글자들이 머릿속에서 제멋대로 재조합되면서 마치 ‘외국어’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들게끔 하는가? 이유야 물론 몸과 뇌가 독서에 적응하지 못한 탓이다. 내지는 독서가 몸과 뇌에 각인되지 못한 탓이다. 그게 진단이라면 처방은 물론 그렇게 익숙해지고 각인될 만큼 책과 가까이하는 것이겠다. 여기서 ‘가까이하다’라는 말은 복합적인 의미를 갖는다. 눈으로 직접 읽는 것만 뜻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내가 염두에 두는 것은 그냥 손에 들고 다니거나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것까지 포함한다. 즉 읽지 않아도 된다! 사실 자전거를 배울 때도 타게 되기 이전에 우리가 하는 일은 그걸 끌고 다니는 것이었다. 그렇게 어떤 대상과 자신을 가깝게 하는 것, 그것이 어떤 ‘교제’에서건 제일 처음 하는 일이고 또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니 그냥 주변에 책들이 놓여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게 중요하다. 그러다 너무 어지럽다 싶으면 4단이나 5단짜리 책장 하나 정도 구입해서 진열해놓는 것도 좋겠다. 그게 두 번째 단계라고 할까.
책을 읽지도 않으면서 책장에 잔뜩 꽂아놓기만 한다고 눈을 흘기실 분도 계시겠지만, 책은 원래 다용도라서 ‘관상용’으로도 충분히 제값을 한다. 적어도 제목들은 눈에 익게 되니까 어디 가서 한마디 거들 수도 있다. 아무튼 남들 보기에 좀 번듯한 책장 하나를 다 채워 놓을 정도가 되면 소장도서가 얼추 200권 가량은 된다. 그때까지도 책을 한권도 읽지 않고 끼고만 다녔다고 해도 칭찬해줄 만한 일이다. 나는 그런 상황을 좀더 음미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가령 가끔씩 여유 시간을 내서 책장 배열을 바꿔놓는 일에 ‘취미’를 붙이셔도 좋겠다는 것이다. 책을 크기나 색깔별로 배열해도 좋고, 주제별로 배열해도 좋으며, 저자명이나 도서명 가나다순으로 재배열해도 좋고, 아예 기분 내키는 대로 무작위로(이 경우에는 눈을 감고 작업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다시 꽂아 넣어도 좋겠다. 그렇게 손때를 묻혀가며 좀 친숙해지다보면 자연스레 책장을 펼치는 일도 벌어질 것이다. 오, 너무 놀라거나 당황하지 마시길! 이건 마치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이들이 철이 들어 서로를 이성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면서 스쳐지나가기만 했던 직원끼리 어느 순간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하게 된 장면에 비견할 수 있을까? 아무려나 그게 시작이다. 그렇게 한권의 책이 특별한 인연으로 다가온다면, 당신의 독서경력도 새롭게 시작될 것이다. 혹 이렇게 묻지 않을까? “왜 이제야 나타난 거야?”
여기까지가 ‘독서인 되기’의 과정이라고 한다면, ‘독서의 달인’은 한 가지를 더 얹는다. 책을 탐하고 책과 연애하면서 독서인으로의 변신이 이루어진다면, 내 생각에 달인은 책장과 연애하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한권의 책이 아니라 집합적 단수로서의 책을 흠모하는 사람. 책장 하나가 아니라 책장으로 둘러쳐진 벽면 전체를 응시하는 사람. 그래서 가끔씩은 책이 한권도 없는 방으로 탈출을 꿈꾸기도 하는 사람. 그게 달인이다. 단순히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란 건 독서의 달인에 대한 정의로는 너무 무미건조하다. ‘책과 많은 연애를 하는 사람’ 정도로 다시 정의하는 건 어떨까. 그런 연애를 통해서 가끔 혹은 자주 새로운 책을 낳기도 하는 사람!
작년 말에 톨스토이의 말년을 다룬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이 개봉됐는데, 이 영화는 톨스토이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는 영화이기도 했다. 자신의 재산과 저작권을 사회에 환원하는 문제로 아내와 자주 갈들을 빚던 이 대문호는 알려진 대로 1910년 가을 야스나야 폴랴나의 영지를 떠나 기차를 타고 구도의 길을 가던 중 시골 간이역장 집에서 숨을 거두었다. 가장 위대한 소설가 중 한 사람으로 추앙받기도 하지만, 만년의 톨스토이는 ‘톨스토이즘’이라고도 불리는 사상의 주창자이자 설교가였고 도덕주의자였다. 그는 ‘나쁜 삶’과 ‘좋은 삶’을 엄격하게 분리했는데, 그런 도덕관에 대한 해설을 <안나 카레니나>에 대한 독해와 함께 제시하고 있는 석영중의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는 아예 1,2부의 제목을 각각 ‘나쁜 삶’과 ‘좋은 삶’이라고 붙여놓았다.
톨스토이는 어떤 삶을 ‘좋은 삶’이라고 생각했을까? 요점만 말하면 ‘채소만 먹자’와 ‘시골에서 살자’가 핵심적인 제안이다. 그는 육식으로 인한 과도한 영양 섭취와 육체노동의 경시가 결국엔 정욕의 과잉을 낳고 도덕적인 문란으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때문에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는 게 좋고, 술과 담배는 당연히 끊어야 한다. 그리고 도시는 환락과 타락의 공간이기에 멀리 할수록 좋다. 대귀족이자 지주이면서도 농민의 삶을 모방하고자 했던 그는 욕구의 제한과 욕망의 억제가 좋은 삶, 도덕적인 삶에 필수적인 전제라고 보았다. <안나 카레니나>에서 작가의 분신 격인 인물 레빈이 친구 스티바와 함께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은 양배추 수프와 죽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딱 톨스토이의 취향을 말해준다(양배추 수프와 죽은 러시아 농민들이 즐겨먹는 음식이다). 그렇게 톨스토이가 권장하는 ‘좋은 삶’의 노하우는 <사람은 무엇으로 건강하게 사는가>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읽을 수 있다. 톨스토이의 에세이 세 편을 묶은 이 책을 통해서 술과 담배, 그리고 채식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톨스토이식 ‘좋은 삶’의 각론이라 할 만하다.
해도 바뀐 김에 톨스토이가 권유하는 ‘좋은 삶’에 대해 묵상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어 그의 책 얘기를 꺼냈지만, 사실 내 눈길은 아직도 다른 쪽을 향한다.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의 첫머리에 적힌 대로, “대학 도서관에 가면 러시아에서 출간된 톨스토이 전집이 있다. 무려 90권짜리 전집이다.” 나는 그 90권짜리 전집이 한 모스크바 서점의 서가 꼭대기에 좍 꽂혀 있던 것을 기억한다. 문학작품뿐만 아니라 일기와 편지 등도 망라한 말 그대로의 ‘전집’이다. 마치 82살의 생애 전체를 책으로 압축해놓은 듯한 광경이 인상적이었다. ‘독서의 달인’의 관심은 ‘무슨 책’보다는 역시나 ‘책’ 자체를 향한다. 내게 경이로운 것은 채식과 절식을 주장한 톨스토이가 아니라 90권의 책을 쓴 톨스토이다. 전공자들도 다 읽지 못하는 그 책들을 그는 혼자의 힘으로 쓴 것이니 단연 ‘거인’이라 할 만하다. ‘독서의 달인’도 이럴 때는 그냥 입을 다문다.
11. 01. 22.
P.S. 올해엔 방송대학TV의 책소개수다 프로그램 '책을 삼킨 TV'의 패널로도 출연하게 됐다(블로그는 http://blog.naver.com/booksintv?Redirect=Log&logNo=120122385674). 두번째 시즌을 맞는다는 프로그램인데 사회는 딴지일보 총수인 김어준 씨이다('총수'이지만 계열사는 아직 없다고 그는 여러 번 말했다). 격주로 출연할 예정인데, 가끔씩 '내가 읽은 책'이 아니라 '내가 삼킨 책' 얘기도 늘어놓게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