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쟈와 함께 '폭력이란 무엇인가' 읽기

엊그제 모스크바에 도착해서 아르바트거리에 여장을 풀고 이틀째 '출장일'을 보내고 있다. 6시간의 시차는 일상의 리듬을 약간 이상하게 바꾸어놓았는데, 어제오늘 나는 모스크바 시간으로 새벽 4시에 일어나는 '어얼리 버드' 노릇을 하고 있지만, 한국시간으론 아침 10시에 일어나는 것이니 한껏 늑장을 부리는 것이기도 하다(그래서 일찍 일어나는 것인지 늦게 일어나는 것인지 헷갈린다).  

Жижек в Кембридже: «Изнасиловали? Давайте обсудим» 

밀린 원고들을 다 싸들고 온 탓에 주로 숙소에 머물러 있다가 어제오늘 낮시간에 내가 한 일이라곤 두 곳의 서점에 들른 것 정도다. 어제는 루뱐카역의 비블리오-글로부스에 들렀고, 오늘은 아르바트의 돔-끄니기에 들렀다. 6년 전엔 비블리오-글로부스가 더 낫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더 흡족한 쪽은 돔-끄니기이다. 이유야 별것 아니다. 지젝의 <폭력에 대하여>(2010)를 우연히 발견했기 때문이다. <폭력이란 무엇인가>(난장이, 2011) 말이다. 아래가 러시아어본이다.  

 

나는 몰랐던 사실인데, 작년에 유로파란 출판사에서 두 명의 역자가 공역해 펴냈다. 분량은 184쪽. 나로선 한국어본 공역에 참여한데다 이달말부터 한겨레문화센터에서의 강의도 있기 때문에 책의 의미가 각별하다.  

러시아 책값도 그간에 더 올라서 이젠 한국 책들과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데, <폭력에 대하여>도 250루블(1만원)을 주고 샀다(다른 서점의 정가를 보니 189루블 정도에도 구입할 수 있었다. 여전히 책값은 서점마다 천차만별이다). 

<폭력에 대하여>와 함께 돔-끄니기가 점수를 딴 건 조르주 바타이유 때문인데, <저주의 몫>이란 제목으로 <종교의 이론>(우리말 번역은 <어떻게 인간적 상황에서 벗어날 것인가>), <에로티즘>이 합본된 책이다. 책값은 685루블(27,500원 가량). 세권 값이라고 생각하면 나름 괜찮은 편이다. 6년전엔 바타유의 소설집을 구했었는데, 이 이론서는 2006년에 나왔다.   

그밖에도 책은 여러 권 샀지만(전공서와 영화책을 빼면 슬로터다이크의 <냉소적 이성 비판>, 푸코의 <임상의학의 탄생>, 라캉의 <세미나2> 등이 오늘 구한 책이다) 이 두 권 때문에 어제의 실망을 좀 만회했다... 

오랜만에 모스크바에 왔지만, 짧은 체류에다가 매인 일들이 많아서 예전처럼 '모스크바 통신'을 올리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폭력에 대하여>를 모스크바에서 만난 반가움 때문에 소감을 간단히 적었다. 어쩐지 이런 멘트로 마무리해야 할 듯싶다. "이상 모스크바에서 로쟈였습니다." 

11. 02. 11.  

P.S. 러시아에는 어떤 책들이 나와 있나, 혹 궁금해하실 분이 있을 듯해서 약간 덧붙이자면, 돔-끄니기를 두 시간쯤 둘러보고 받은 인상에 불과하지만, 일단 융의 책들이 많아졌다. 프로이트와 함께 심리학 서가를 꽤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푸코의 두툼한 강의록들이 연이어 출간되고 있다(왼쪽 이미지가 <주체의 해석학>이다). 프랑스 철학자들 가운데에서는 단연 푸코가 가장 높은 지명도를 갖는 듯싶다. 그리고 헌팅턴이나 후쿠야마 등 미국 학자/논객의 책이 다수 눈에 띄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은 거의 대부분 번역돼 있는 듯 싶지만, 정점은 지난 듯하고 <1Q84>도 아직 소개되지 않은 상태다(대신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이 여럿 번역돼 있어서 이채로웠다. 러시아에서도 붐은 타는 듯하다). 러시아문학 작품과 연구서는 생각만큼 늘지 않았고 눈에 띄는 책도 별로 없었다. 러시아 학자의 책으론 바흐친 전집의 4-1, 4-2권이 출간됐는데 모두 그의 <라블레>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로트만과 우스펜스키의 서신 교환집(오른쪽 이미지)이 개인적으론 눈길을 끌었다. 다른 서점도 좀더 다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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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2 02: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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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2 0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12 1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12 15: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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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내 2011-02-12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러시아 가 계신가 보군요..^^

로쟈 2011-02-12 15:37   좋아요 0 | URL
흠, 대외비인데요.^^

푸른바다 2011-02-12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러시아에서도 책을 사시는군요.^^ 바타이유, 바타유의 혼용은 어떤 의도가 있으신 건가요?

로쟈 2011-02-12 15:37   좋아요 0 | URL
쓰다 보니 혼용이 되네요. 책이 두 종류로 나와 있어서요. 저는 어느쪽이건 통일해주면 좋겠다는 입장입니다. 러시에서도 물론 책은 사지만, 어지간하면 2만원 안팎이라 '재미'는 없습니다.^^;

2011-02-12 15: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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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2 15: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Kitty 2011-02-12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모스크바 가셨군요! 치안은 괜찮은거죠?
작년에 모스크바 가려다가 무서워서 ㅠㅠ 행선지를 바꿨거든요.
언젠가 꼭 가보고 싶네요. 건강하게 일정 마치고 돌아오세요~

로쟈 2011-02-13 14:19   좋아요 0 | URL
좀 위험한 곳이긴 하죠. 느닷없이 테러나 폭력 사건이 터지니까요. 사람들 표정도 무뚝뚝한 편이고요. 그래도 고풍의 외관은 화려하고 아름답습니다. 처음 온 친구들이 그렇게 말해주네요.^^

hikrad 2011-02-13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시아의 서점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네요.
<임상의학의 탄생> 러시아어본 사진도 보고 싶구요^^

로쟈 2011-02-13 14:17   좋아요 0 | URL
러시아 서점이라고 특별하진 않습니다. 푸코의 책은 많이 나와 있는데, 2-3만원씩 해서 사들고 갈 엄두가 안 나네요. 여기도 인터넷서점이 더 저렴할 때가 있구요. <임상의학의 탄생>은 작년에 나왔는데, 252쪽의 슬림한 책입니다. 기회가 되면 사진도 올려놓을게요.^^

람혼 2011-02-13 0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러시아의 로쟈님! ^^ '모스크바 통신'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어놓으셨지만, 왠지 예전의 그 '모스크바 통신' 글들이 그리워지기도 하는군요. 당연히 쓰면서 예상하셨겠지만, 저로서는 바타이유의 러시아어 판본들에 가장 먼저 관심이 갑니다. 좋은 시간 보내고 돌아오시길!

로쟈 2011-02-13 14:14   좋아요 0 | URL
그땐 인터넷 사용이 불편해서 '길게' 쓸 수밖에 없었으니 지금하곤 사정이 좀 다르죠. 실시간을 인터넷을 하다 보니, 러시아 같지가 않아요.^^;

유형원 2011-08-30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로쟈님~ 지금 모스크바에서 어학연수중인데 비블리오 글로부스에 О НАСИЛИИ있어요 ^^

유형원 2011-08-30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참, 그리고 1Q84는 6월인가 7월에 발간되어서 곳곳에서 쌓아놓고 파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
 

독서대학 르네21이 3주년을 맞는다. 청소년 독서 지원사업을 더 확대한다는 소식이다. 르네21의 신학기 인문강좌도 소개할 겸 관련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서울신문(11. 02. 11) “책 통해 빈곤 청소년에 희망 쏠 것” 

인문학 책 읽기가 유행이다. 대학생들도 읽고 회사 사장님들도 읽고 직장인들도 읽고 노숙자들도 읽는다. 하지만 무엇을 읽어야 할지, 책과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를 혼자서 깨우치기란 여전히 쉽지 않다. 특히 입시에 치이는 청소년, 그중에서도 저소득층 청소년이라면 인문학에 대한 접근 자체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인문 강좌 사업과 풀뿌리 독서 모임 활성화를 표방하며 2008년 3월 문을 연 ‘독서대학 르네21’은 올해부터 빈곤 청소년 도서 지원 등 그룹 독서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대한성공회 신부인 김한승 르네21 운영위원장은 9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지난해까지 시범적으로 ‘희망의 인문학’ 사업을 운영해본 결과, 그룹 독서를 통해 성찰과 소통을 경험하게 된 학생들의 자아 존중감이 향상되는 성과를 이뤘다.”면서 “또한 책을 무상으로 지원해 ‘나만의 책’을 갖도록 하는 것이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경험과는 또 다른 의미가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올해부터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을 받아 7개 기관 50여명의 학생들에게 모두 37권의 책을 무상 지원할 예정”이라면서 “단지 지식을 늘리는 독서가 아니라 책을 통해 자신과 타인의 삶을 사랑하고 존중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출 청소년 재활 쉼터, 지역 아동센터, 마을 도서관 등 빈곤 청소년을 보호하고 있는 다양한 시설에 우선 지원되며, 점차 규모를 늘리는 한편 연령대를 낮춰 저소득 가정의 아동, 영유아로 넓혀갈 예정이다.

문제는 르네21이 대한성공회와 한국출판인회의가 공동 운영하는 비영리 시민 문화교육 기관이라는 점이다. 3년 동안 수요인문강좌, 금요대중강좌 등 80개의 강좌를 통해 2000여명의 수강생을 배출했지만 연 3억원이 넘는 예산의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금액이 적자로 돌아온다.

김 운영위원장은 “사업이 확대되어 가는 상황에 맞게 맞춤형 후원을 조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후원 방법 등은 르네21 홈페이지(www.renai21.net)를 통해 문의할 수 있다.(박록삼기자) 

11. 02. 10.  

P.S. 르네21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는 매주 수요일 저녁에 열리는 '인문교양교실'도 있는데, 2011년 1학기에는 인상파 회화(이택광), 러시아 문학(이현우), 그리스 비극(김기영)을 주제로 한 강의가 16주간 진행된다(http://www.renai21.net/lecture/item.php?it_id=1294633166). 내가 맡은 러시아 문학쪽은 5주간 다섯 명 작가의 대표작을 감상하는 내용이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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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0 14: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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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0 16: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erenow 2011-02-10 15:16   좋아요 0 | URL
여기 교양강좌를 들어본 적이 있는데, 이만큼 적자인줄은 몰랐네요.
이번엔 로쟈님도 강사로 나오시는군요. ^ㅅ^
덕분에 더 많은 분들에게 르네21이 알려지게 되면 좀 나아지겠죠? (그랬으면...)


로쟈 2011-02-10 16:13   좋아요 0 | URL
네, 그렇게 적자라면 오래 운영하긴 어려운 게 아닐까도 싶고요.^^;
 

기획회의(289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창비담론총서의 하나로 나온 <세계문학론>(2010)을 거리로 삼았는데, 내가 쓴 글도 포함돼 있어서 서평을 쓴다는 게 좀 어색하긴 하지만, 개인적으론 다른 글들을 읽고 세계문학론의 쟁점이 무엇인지 정리해보고 싶었다. 물론 이런 정리야 관점에 따라 다르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기획회의(11. 02. 05)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둘러싼 쟁점들

“거대담론과 구체적인 실천과제 논의를 아우르면서 비판적이고도 균형잡힌 담론을 개척하는 데 일조하고자 한다”는 취지로 출간되고 있는 창비담론총서가 ‘이중과제론’과 ‘87년체제론’ ‘신자유주의 대안론’에 이어서 화두로 삼은 것은 ‘세계문학론’이다. 이는 세계문학전집 출간 열풍을 떠올리기 쉽지만, 세계문학론 혹은 ‘세계문학이라는 문제’는 세계의 고전들을 한데 모아놓자는 세계문학전집과는 출처가 다르고 지향이 또한 다르다. 어떻게 다른가? ‘지구화시대의 민족과 문학’이란 글을 통해 문제의 지형과 윤곽을 잡아주고 있는 백낙청 교수에 따르면, 애초에 지구화가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확장을 개시한 16세기부터 시작됐다고 하면 국민문학들의 탄생 자체가 지구화시대의 결과 중 하나이다. 더불어 지구화의 진전은 자연스레 세계문학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더욱 강하게 유인한다. 그런 가운데 세계문학에 대한 구상과 기획이 두 사람의 독일인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점은 흥미롭다. 바로 괴테와 맑스다.  

괴테는 1827년 에커만과의 대화에서 “이제 민족문학은 별로 의미가 없는 용어이다. 세계문학의 시대가 임박했고, 모든 이가 그것을 앞당기도록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강조점은 두 가지다. “이제는 세계문학의 시대”라는 선언적 메시지가 하나라면,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서 그것을 앞당겨야 한다”는 당위적 주장이 다른 하나다(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일종의 ‘운동’이다). 거기에 더 얹어서 맑스는 <공산당선언>의 유명한 구절에서 “일국적 편향성과 편협성은 점점 더 불가능해지며, 수많은 국민문학․지역문학들로부터 하나의 세계문학이 형성된다.”고 예언했다. 물론 다분히 선언적, 예언적 성격을 띤 발언들이어서 세계문학의 구체적인 모습이 어떠하며 우리가 지향해야 할 세계문학이란 무엇인지 명확하게 그려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것을 구체화하는 일은 과제로 남겨진 듯한 인상이다. 아무려나 이 두 사람의 발상을 한데 묶어서 백낙청은 ‘괴테․맑스적 기획’이라고 부른다(‘민족문학과 세계문학’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실제적인 비평 활동을 고려하면 ‘괴테․맑스․백낙청적 기획’이라고 부르는 게 더 온당하지 않을까란 생각도 든다). 그리고 ‘지구화시대 문학의 쟁점들’이란 부제를 살리자면, 지구화의 도전에 맞서 세계문학의 이념을 어떻게 되새겨볼 것인가, 이 ‘괴테․맑스적 기획’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 것인가가 <세계문학론>의 전체적인 관심사이다.   

책은 서장과 3부로 나누어진 11편의 글, 그리고 ‘세계문학의 이념은 살아 있다’는 제목의 대담으로 구성돼 있다. ‘지금 우리에게 세계문학은 무엇인가’를 제목으로 한 서장에서 엮은이의 한 사람인 김영희 교수는 “한편에서는 유럽중심의 기존 정전에 대한 비판과 세계문학 지형도의 새로운 구축을 향한 시도들이 진행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전지구적으로 팽창하는 세계적 상품으로서의 작품들이 이 지형도 자체를 허물고 있는 이같은 복합적인 국면이 ‘지금’의 세계문학이 처한 상황”이라고 정리해준다. 이 두 가지 경향의 배경은 물론 지구화 혹은 세계화이다. 그리고 세계문학론과 관련하여 ‘지금’의 문제적인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유통되는 세계적 베스트셀러의 등장이다. “많은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힌다는 것이 세계문학의 일차적 요건 내지 필수요건인가, 지금 당장 세계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각 민족/국민문학에서 탁월한 성취를 이룬 작품들의 경우는 또 어떻게 봐야 하는가 하는 물음들이 따라나오는 것”은 이러한 현상과 새롭게 마주하게 됐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론 그 물음들을 세계문학에 관한 두 가지 쟁점으로 읽어도 좋겠다 싶다.  

먼저, “많은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힌다는 것”과 세계문학의 관계. 그런 표현이 염두에 둘 만한 작가로 몇 사람의 이름을 떠올려볼 수 있지만, 아무래도 가장 문제적인 작가는 단연 무라카미 하루키이다. 실상 ‘하루키를 어떻게 볼 것인가’가 세계문학론의 향방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 가운데 하나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때문에 2007년에 이루어진 대담 꼭지에서도 하루키 문학이 도마에 올랐는데, 세계적인 지명도와 국내외를 막론한 인기에도 불구하고 일본 내에서도 부정적인 평가가 많다는 전제하에 윤지관 교수는 “하루키도 그렇고 무라카미 류도 그렇고, 표피성이 강해서, 가령 괴테나 맑스적인 의미에서 세계문학, 세계화에 대항하는 몇 안되는 거점으로서의 세계문학, 그런 저항 가운데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과 사회체제를 움직이는 근본원리에 대한 해석, 이런 거에는 미달”이라고 평가한다.   

이러한 평가의 빌미가 된 작품은 2007년 당시 화제작이었던 <해변의 카프카>이다. 하지만 최근에 더 강하게 휘몰아친 <1Q84> 열풍도 하루키와 세계문학의 관계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바꿔놓을 것 같지는 않다.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둘러싼 쟁점들’이란 글에서 윤지관 교수가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의 장에 진입하고자 해도 일본의 경우를 모델로 삼아서 추종하는 식이 되어서는 곤란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런 맥락에서다. 하루키처럼 ‘국제적으로 통하는 작가’가 차후에 한국에서도 배출될 수 있지만, 그렇더라도 그것이 국내문학의 평가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관점이다. ‘세계문학의 지평에서 생각하는 한국문학의 보편성’이란 글에서 정홍수 문학평론가가 “보편적인 문제를 다루어야 하고, 번역에 견딜 수 있는 작품을 써야 한다”는 작가 김영하의 주장에 유보적 태도를 비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세계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각 민족/국민문학에서 탁월한 성취를 이룬 작품들”이 ‘세계문학’으로 새롭게 자리매김되고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할까. 하지만 이 또한 문제가 없지 않다. 대담에서 윤지관 교수가 지적한 대로 한국문학처럼 소수언어로 씌어진 문학은 “번역이 안되어 있으면 세계문학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번역이 “세계화가 초래할 수 있는 획일화된 문화, 획일화된 언어에 맞서는 필수적인 매개이자 힘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경우 번역은 세계문학이 가져야 할 선택적 요건이 아니라 필수조건이지 않을까. 물론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둘러싼 쟁점들’에서 온당하게 지적되듯이 한국문학도 번역만 되면 세계문학을 ‘변혁’할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무엇을 어떻게’ 번역하느냐는 고민은 필수불가결하다. 하지만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의 새로운 구성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란 문제는 번역의 문제와 분리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세계문학론은 자격 미달인 문학과 아직 ‘존재하지 않는’ 문학 사이에 걸쳐 있는 듯싶다.  

11. 02.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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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0 09: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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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0 12: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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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0 11: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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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0 12: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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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0 12: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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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러시아의 대표적 인문학자 미하일 바흐친의 전집이 출간되는데, 첫 두 권으로 <프로이트주의>와 <예술과 책임>이 선보였다. '바흐친 붐'이 다시 일어나긴 어렵겠지만, 그의 저작을 한국어로도 차근차근 음미할 수 있는 여건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그런 기대감으로 일단은 리스트를 만들어놓는다(품절된 책을 제외했다). 애연가 바흐친에 관한 유명한 일화도 덧붙여놓는다(국내 개봉된 영화 <스모크>에서는 이 일화의 주인공을 확인하기 어렵다. 기억에 '바흐친'이란 이름이 엉뚱하게 표기됐었다).   

한겨레(11. 01. 20) [조한욱의 서양사람(史覽)] 연기가 되어

<스모크>라는 영화가 있다. 폴 오스터의 단편소설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소재로 1995년에 개봉된 이 영화는 브루클린에 있는 한 담배 가게 단골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베를린 영화제의 은곰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이 영화에서 하비 카이텔이 연기한 담배 가게 주인은 담배 때문에 사라져버린 한 저작에 대해 말한다. 



작가는 러시아의 문학비평가이자 언어철학자 미하일 바흐친이다. 오늘날 인문사회과학의 많은 분야에서 ‘대화적 상상력’, ‘크로노토프’, ‘폴리포니’, ‘카니발레스크’ 등등 그가 고안한 개념적 도구를 사용하여 연구의 틀을 정하는 것을 보면 그는 창의력이 풍부한 인물이었음이 확실하다.

스탈린 치하 예술가와 지식인들에 대한 숙청이 기승을 부리던 당시 그는 시베리아 유형을 선고받았으나, 악화된 건강 때문에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는 소청이 받아들여져 카자흐스탄에서 6년을 보냈다. 이 기간에 그는 18세기 독일의 ‘성장소설’에 관한 저작을 완성했다. 출판사에 보낸 원고가 받아들여져 출판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독일군 침공의 혼란 속에 원고가 분실되었다.

애연가였던 바흐친은 독일군 침공의 암울하던 시절 담배를 말아 피우기 위해 자신이 갖고 있던 원고를 사용했다. 한 저작이 직유법으로 ‘연기처럼 사라진’ 것도 은유법으로 ‘연기가 된’ 것도 아니라, 직설법으로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것일지라도 이미 완결된 생각에 대해 보이는 바흐친의 태도를 드러낸다고 말하기도 한다.

사실 그 원고는 살아남았다. 그 상황을 안타까워하던 주변인들의 끈덕진 설득으로 바흐친은 쥐떼가 득실거리는 나무궤짝 속에서 미출간의 원고를 찾아냈던 것이다.(조한욱_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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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책임
미하일 바흐찐 지음, 최건영 옮김 / 뿔(웅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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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8 22: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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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8 22: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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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바라크의 퇴진을 요구하는 이집트의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무바라크 일가가 권력을 남용해 축적한 부를 폭로하는 기사가 나와 흥미를 끈다. 700억 달러면 이건희 삼성회장의 10배 규모다. 부패한 권력의 최후를 곧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기사에서 언급된 <최후의 파라오: 오바마 시대의 무바라크와 불확실한 이집트 미래>도 관심도서로 올려놓는다. '세계의 책'이다.   

경향신문(11. 02. 07) 가디언, "무바라크 일가 재산 700억 달러 달할수도"

반정부 시위대의 거센 사임 요구에 직면한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 일가의 재산이 700억 달러(한화 78조1900억원 상당)에 이를 수 있다고 영국 가디언이 4일 보도했다. 가디언은 중동 전문가들의 분석을 인용해 무바라크 일가가 영국과 스위스 은행의 비밀 계좌 예금, 런던·뉴욕·로스앤젤레스의 부동산, 홍해 해안의 고가 지역 등에 투자해 거대한 부를 쌓았다며 이같이 전했다.

무바라크는 30년간 대통령으로 재임하고 군 고위 관리로 일하면서 수억 파운드의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투자 협상에 관여했고 이 과정에서 얻은 수입 중 상당 부분을 외국으로 보내거나 은행 비밀 계좌에 입금했으며 고급 주택, 호텔에 투자했다고 가디언은 설명했다. 아랍계 신문 알 카바르도 무바라크 대통령이 뉴욕 맨해튼과 베벌리 힐스 로데오거리의 부동산도 소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무바라크 대통령의 아들 가말과 알라 역시 억만장자로 알려졌다. 런던 벨그라비아에 있는 가말의 호화 저택은 서구의 전형적인 ‘기념비적 자산’에 대한 무바라크 일가의 탐욕을 보여주고 있다. 프린스턴 대학 정치학과의 아마네이 자말 교수는 "400억~700억 달러에 달하는 무바라크 일가의 재산은 다른 걸프국가 지도자들의 재산에 필적한다"고 말했다. 자말 교수는 ABC 뉴스에서 "(무바라크 대통령이) 군과 정부에서 일하면서 얻은 사업 기회를 통해 개인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면서 "중동의 다른 독재자들 사례처럼 이 과정에서 많은 부패가 있었다"고 밝혔다. 알 카바르는 무바라크 대통령이 자신의 재산 중 상당 부분을 스위스의 UBS 은행과 스코틀랜드 은행, 로이드뱅킹그룹 등을 통해 외국에서 보유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무마라크 일가의 부가 정확하게 어디서 창출되고 최종 목적지가 어느 곳인지에 대해서는 일부만 알려졌다. 더럼 대학의 중동정치학과 크리스토퍼 데이비드슨 교수는 "무바라크 대통령의 부인과 두 아들도 무바라크 대통령이 군대 등 기업부패를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자리에 있을 때부터 외국 투자자들과의 협력 사업을 통해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데이비드슨 교수는 대부분의 걸프 국가들은 새 기업을 설립할 때 외국 투자자들에게 자국 내 파트너에게 51%의 지분을 주도록 요구하고 있다며 이집트는 이 수치가 20%에 가깝지만, 여전히 정치인이나 군부의 가까운 협력자들에게 거대한 이윤을 지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후의 파라오:오바마 시대의 무바라크와 불확실한 이집트 미래’의 저자 알라딘 엘라아사르는 무바라크 일가가 이집트에도 주택을 소유하고 있고 이중 일부는 전직 대통령과 군주들로부터 물려받았다고 말했다. 무라바크 대통령 일가는 샤름-엘 셰이크 휴양지 근처에 갖고 있는 호텔들과 땅을 통해서도 부를 쌓아왔다. 

11. 02. 06.  

P.S. 영미쪽에선 '무바라크 이후'로 전략적 관심을 옮겨갈 모양이다. 무바라크 시대를 정리하고 그 이후를 엿보는 책들도 근간으로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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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2-07 21:09   좋아요 0 | URL
흠 부패한 권력은 결국 부패한 부를 낳는군요.이집트의 경우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데 무바라크 대통령 일가의 재산이 700억불이상일수도 있다니 국민들이 분노할만 하군요.

로쟈 2011-02-08 22:13   좋아요 0 | URL
미국의 행보가 관심거리인데, 중국과 러시아는 무바라크 편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