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에 구입한 책 가운데 하나는 오종우 교수의 <백야에서 삶을 찾다>(예술행동, 2011)이다. 오랜만에 나온 국내 필자의 러시아문학 관련서여서 반가운데, 책에서 다루고 있는 세 작품을 나도 역시 강의한 적이 있고 앞으로도 하게 될 예정인지라 유익한 참고가 될 듯싶다. 소개기사가 뜨기에 옮겨놓는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안나 카레니나>, <닥터 지바고> 세 작품의 이미지는 저자가 참고한 책들이다.     

경향신문(11. 01. 22) ‘무엇으로 사는가’ 매몰된 삶 깨우는 섬광

적어도 겉으로만 보자면, 가히 고전과 교양의 전성기라고 부를 만하다. 각종 고전물과 교양서적들이 서점가의 베스트셀러로 각광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출간된 <백야에서 삶을 찾다>가 특별히 눈에 띈다. 고전이 갖는 현대적 의미를 진지하게 고찰하고 있는 까닭이다. 대학에서 오랫동안 러시아 문학을 강의해온 오종우 성균관대 러시아어문학과 교수(46)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 등 러시아 문학의 걸작 세 편을 통해 현대사회와 현대인의 삶을 비판적으로 성찰한 책을 펴냈다.  

“정보화·세계화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은 너무 많은 정보와 상품에 매몰되다보니, 자신과 시대를 객관화시킬 여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에 매몰돼 살다보면 현실 문제와 함께 몰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현실을 충실히 살아야 하겠지만, 그와 더불어 현실을 벗어난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지금’을 뛰어넘어 더 나은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저자는 방대한 내용과 깊이를 지니고 있는 각 소설의 텍스트를 충실하게 독자에게 소개하고 작가의 삶과 사상에 대해 알기 쉽게 전하면서도, 각 작품이 현대사회에 던지는 질문들에 초점을 맞춘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그는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소설은 욕정과 살인, 증오와 보복으로 가득찬 주인공들의 추악한 모습을 통해 ‘악을 통제하고 행복을 가져다주는 지배자가 올바른 신인가’라고 묻는다. 저자는 현대에 이르러 정치 이데올로기와 경제적 이득, 과학 기술이 제공하는 편리함이 ‘신’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며 “그것들이 삶의 기준이 되고 근거가 되는 순간, 사람들 사이의 경쟁은 극도로 심화돼 사회는 다원성을 잃고 황폐해진다”고 말한다. 저자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고, 인간이 존엄한 근원이 되는 자유의 가치를 강조한다. 



<안나 카레리나>에서는 시대를 초월해 변하지 않는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안나 카레리나는 장교 브론스키와 사랑에 빠지지만 욕망 때문에 파멸에 이르고 만다. 그녀가 파멸에 이른 것은 그 사랑이 부도덕하기 때문이 아니라 욕망의 과잉 때문이었다. 저자는 욕망의 과잉으로 언제나 결핍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대상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욕망에 의해 기형화시키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이는 인류의 역사에도 그대로 적용되는데, “역사는 인간의 세계인식 가운데 한 단면이 지나치게 활성화돼 삶의 형태와 제도를 획일화시키는 경향을 띠고 있으며, 20세기에 그것이 정치 이데올로기였다면 21세기에는 경제적 자본”이라고 말한다. 



<닥터 지바고>에서 저자는 기존에 사회주의에 반대하는 소설로 ‘정치적’으로 읽혀온 작품을 ‘실용’이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본다. 실용의 의미를 도구적 기능이나 돈에 연결시켜 생각하는 협소한 시각에서 벗어나, 사물 자체의 의미와 가치에서 그것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예술이야말로 인류 역사에서 한번도 소멸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진정 실용적인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세상을 창의적으로 해석해서 이해하는 일, 기성의 질서에 단순히 편입되기를 거부하고 주체로서 살아가는 일이 예술의 근본 속성”이라고 말한다. <닥터 지바고>에서 라라와 지바고의 짧지만 강렬하고 순수한 사랑이야말로 예술의 실용성에 맞닿아 있다는 해석인 셈이다.  

<닥터 지바고>를 통해 던지는 ‘실용’에 대한 질문과 대답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물질은 풍부하지만 정신은 갈수록 피폐해지는 현대사회에서 왜 고전과 인문학이 새삼 인기를 끄는지, ‘고전의 상품화’를 넘어서 진정한 삶의 성찰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저자는 러시아의 걸작 세 편에 기대어 거기에 답한다.(이영경기자) 

11. 01. 22.  

P.S. 특이하게도 책의 세 파트는 세 권의 책으로 분할돼 출간되기도 했다. 낱권이 편한 독자는 그렇게 읽어도 좋겠다. 참고로, 저자는 체호프 전공자로 체호프 번역서와 연구서들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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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 2011-01-22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통해 이마미치 도모노부의 <단테 신곡 강의>를 알게 됐고 이번에 또 한권 좋은 강의록을 소개 받네요.
기대됩니다. 또 한번 좋은 소개 고맙습니다^^

로쟈 2011-01-23 13:21   좋아요 0 | URL
저도 <단테 신곡 강의> 덕분에 <신곡>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