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국 인문학 지각변동>(그린비, 2011)에서 중국 현대사 연구자인 백영서 교수와의 인터뷰를 읽다가 '동아시아'론에 대한 책 몇 권을 구하러 서점에 다녀왔다. 가야트리 스피박의 <다른 여러 아시아>(울력, 2011)가 이번주에 나온 것도 겸사겸사 발품을 팔게 된 계기다. 

  

학술서 범주에 드는 동아시아 담론에 대한 책은 대부분 동네서점에선 구할 수가 없었고(교보 분점이라고 해도) 대신에 경향신문 기획연재를 묶은 <동아시아의 오늘과 내일>(논형, 2009)과 함께 몇몇 관련서를 손에 드는 정도에서 타협을 보았다. 가령 미조구치 유조의 <중국의 충격>(소명출판, 2009)과 함께 구입한 <중국 근현대사를 새로 쓰는 관념사란 무엇인가>(푸른역사, 2010) 등이 그 '관련서'이다(<관념사란 무엇인가>는 좀 고가여서 일단은 2권만 손에 넣었다).  

  

'관념사'란 표현을 썼지만, 요즘 많이 출간되고 있는 '개념사' 쪽 책이다(짐작엔 '개념사'를 중국어로는 '관념사'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책의 개요는 아래 소개기사를 참고할 수 있다. 내용을 더 잘 전달해주는 것은 '중국 현대 정치용어의 형성'이라는 원저의 부제다.

중국 관념사 연구의 선구적 업적으로 꼽히는 진관타오(金觀濤) 대만 국립정치대 강좌교수와 류칭펑(劉靑峰) 홍콩 중문대 당대중국문화연구센터 명예연구원 부부의 <관념사란 무엇인가>(2008)가 우리말로 옮겨졌다(전2권ㆍ푸른역사 발행). 양일모 한림과학원 부원장, 송인재 한림과학원 HK연구교수 등 5명이 번역했다.

진관타오 교수 등은 '권리' '개인' '공화' '과학' '천하' '만국' 등 현재 중국에서 사용되는 주요 관념어 92개를 선정해 이 단어들이 어떻게 출현했고 어떤 의미로 변천했으며 그 변화의 맥락은 무엇인지를 통계작업을 통해 분석했다. 저자 부부가 1830년부터 1930년까지 100년 동안 중국에서 간행된 주요 신문 잡지 교과서 번역서 등 1억2,000만자 분량의 자료를 데이터베이스화, 이를 10년 동안 분석한 작업의 결과물이다.

저자들에 따르면 특정한 관념어의 출현과 의미 변화는 당대의 사회변화와 함께 나아간다. 예를 들어 '과학(科學)'은 서양과학이 중국에 처음 알려졌을 때 'science'의 의미가 아니었다. 당시에는 '격치(格致)'라는 단어가 쓰였다. 과학이 격치를 압도하게 된 것은 1900년 전후다. 중국에서 과학은 전통적으로 '과목을 나누어 관리를 선발한다'는 뜻의 과거제 관련 용어였지만, 1905년 과거제의 폐지와 함께 이 단어가 격치의 대체어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주요 관념어들의 역사적 변화를 고찰한 끝에 저자들은 중국 근현대사의 전개를 '선택적 흡수-학습-창조적 재구성'의 3단계로 보자고 제안한다. 이는 근대 이후 중국사를 '서양으로부터의 기물(器物) 학습단계(양무운동)-제도 학습단계(무술변법~입헌공화)-가치 학습단계(신문화운동)'로 해석하던 통설을 깨뜨리는 것. 저자들은 중국의 근현대사를 유교적 경세치용의 틀에서 현대화를 시행한 근대(pre-modern), 서양의 현대적 제도를 학습해 민족국가를 건립하는 현대(modern), 학습의 실패와 관념의 재구성을 시도한 당대(contemporary)로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한국일보)

  

이미 개념사에 관해서는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주관으로 '한국 개념사 총서'가 나오고 있고 주창자의 이름을 딴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푸른역사)도 시리즈로 출간되고 있다. <관념사란 무엇인가>는 그 연장선상에서 '중국식 개념사'를 보여주는 듯싶다(한국어판 서문을 보니 비슷한 연구작업이 거의 같은 시기에 기획됐고, 이 책의 번역은 한림과학원의 '동아시아 기본 개념의 상호소통'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개념사에 대한 입문서로는 최근에 나온 나인호 교수의 <개념사란 무엇인가>(역사비평사, 2011)를 참고할 수 있겠고, 멜빈 릭터의 <정치.사회적 개념의 역사>(소화, 2010)도 유용한 소개서이다. 국내외 학자들의 글을 모은 <개념사의 지평과 전망>(소화, 2009)까지가 개념사에 대한 '개론'이라고 할 수 있을까. <관념사란 무엇인가>를 자세히 읽고 있는 중앙일보의 기사는 개념사와 관념사의 차이도 지적하고 있어서 참고할 만하다.   

관념이란 마르크스가 주장했듯이 토대에 의해 결정되는 상부구조가 아니다. 책의 주장에 따르면 키워드와 문장을 통해 드러나는 사상이다. 이 관념의 다발이 모여서 형성한 것이 이데올로기다. 이 관념을 형성하는 것을 키워드로 본다. 저자는 현대중국 이데올로기 형성의 주역이라 생각되는 주요 관념과 92개의 키워드를 추출해 분석대상으로 삼았다. 주요 관념이란 진리·권리·개인·사회·민주·세계·경제·과학·혁명 등이다. 이 관념들을 구성하는 키워드들의 시기별 사용빈도를 통계처리했다. 저자가 10년에 걸쳐 구축한 중국 근현대사상사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했다고 한다.

일례로 권리와 개인이란 관념의 사용추이를 보면, 근대 서양에서 권리의 주체는 주로 개인인데 1900년 이전 중국에서 권리의 주체는 국가였다. 권리의 주체로 개인이 본격 등장한 시기는 1900년 이후다. 이 시기에 전통 중국엔 없던 관념인 개인도 대두된다. 이것이 책에서 말하는 전근대와 근대를 나누는 하나의 기준이 된다. 이어 개인의 권리가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고 집단이 강조되는 경향이 강해지는데 사회주의가 이를 주도했다고 본다. 저자들은 이같은 통계의 결과를 전통적 관념과 서양 근대적 관념이 언어에 남긴 흔적으로 파악한다. 이 흔적을 쫓다보면 중국 혁명이란 오로지 서양 근대 사회주의 이념의 이식이 아니라 중국 전통 유교의 중국적 재현이란 생각마저 하게 된다.

이들은 중국근현대사의 새로운 시대 구분을 제안했다. 우선 두 저자는 중국 근현대사를 서양 근대 관념의 수용사로 파악한다. 중국 근현대사를 3단계로 나눴다. 서양 근대 관념을 ‘선택적으로 흡수하는 단계’-‘학습하는 단계’-‘소화·종합·재구성하여 중국 특유의 현대 관념을 형성하는 단계’이다. 이 시기를 각각 ‘전근대’(1830∼1895), ‘근대’(1895∼1915), ‘현대’(1915∼현재)로 명명했다(중국식 표현으로는 근대-현대-당대로 우리와 다름. 책은 중국식 표기를 따름). 1919년을 근대의 기점, 1949년을 현대의 기점으로 보는 기존 통념과는 다른 주장이다. 중국사 학계에 새로운 화두를 던진 셈이다. 이를 통해 저자는 서구적 근대를 중국이 제대로 배워야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런데 서구중심주의 해체를 화두로 삼는 탈근대가 논의되는 이 시대에, 서구 근대적 기획의 완성을 중국사의 과제로 설정하는 건 뭔가 이상하다. 이책을 번역한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은 얼마 전 독일 개념사의 기념비적 저작도 번역한 바 있다. 라인하르트 코젤렉이 주도한 『개념사 사전』(전5권, 2010)이다. 개념사와 관념사는 역사학의 전문 용어다. 개념사는 관념사와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문제의식을 갖는다. 코젤렉의 개념사는 근대의 병리적 현상을 해명하려 한다. 반면 『관념사란 무엇인가』는 서구 근대의 기획을 중국에 실현시키려 한다. 개념사가 반계몽주의적 성향을 갖고 있는 데 반해, 관념사는 근대적 계몽을 기획하는 것이다.(중앙일보)

해서 '동아시아 담론'에 대한 관심이 관념사(개념사)로 뻗어나가게 된 셈인데, 아무려나 동아시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역내 교역의 확대나 선린외교 관계의 구축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기본 개념의 상호소통이란 점을 생각해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선 '동아시아 인문학 지각변동'도 요청되는 게 아닌가 싶다... 

11. 02.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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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세운닥나무 2011-02-02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주관심사에 관한 여러 정보를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스피박의 책은 꼭 봐야겠네요.
여러모로 고맙습니다.
건강과 행운을 빌어 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로쟈 2011-02-02 17:59   좋아요 0 | URL
개념사 쪽은 저도 관심분야인데, '관념사'라고 돼 있어서 그냥 지나쳤던 책입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시길.^^

2011-02-02 2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02 2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rror 2011-02-02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념사는 영미권을 중심으로 오래전부터 연구되어온 분야입니다. 100여년전에 창간된 Journal of History of ideas란 저널이 대표적인 연구매체입니다. 독일에서도 몇년전부터 이 저널을 모델로 해서 Zeitschrift für Ideengeschichte란 저널이 창간되었죠.

로쟈 2011-02-02 23:11   좋아요 0 | URL
History of ideas란 표현을 쓰긴 하지만 계보는 좀 달라 보입니다. 저자들도 관념사의 원조로 러브조이를 언급하고는 있지만 실제로 수행한 건 키워드들의 '어휘통계학'이어서요. 역사의미론의 한 분야로 다룬다는 점에서 코젤렉의 개념사에 이어지는 걸로 보입니다. 역자도 그렇게 풀어주네요...
 

아침 식사로 커피와 함께 엊저녁에 사온 떡을 먹다 보니 주목하지 않고 흘려보냈던 책이 생각난다. 어제 펴본 <反자본 발전사전>(아카이브, 2010)의 뒷표지에도 소개돼 있어서 떠올리게 된 게리 폴 나브한의 <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아카이브, 2010)이다. 저자보다도 유명한 이는 책의 주인공인 러시아의 식량학자 니콜라이 바빌로프(1887-1943). "20세기 과학계의 거인이자 진정한 세계주의자"(조효제)란 평가를 받는 학자다.   

  

식물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게리 폴 나브한이 쓴 <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는 바빌로프가 20세기 초 인류의 미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세계 5대륙을 누비며 식량의 씨앗을 찾아나선, 눈물겨운 일대기다. 그것도 도서관을 뒤져 찾아낸 자료나 관련 인물의 증언만을 바탕으로 구성한 단순 전기가 아니라 바빌로프가 탐사했던 지역을 거의 그대로 답사하면서 생동감 있게 엮은 노작이다. 바빌로프의 전기와 지은이의 여행기를 혼합한 독특한 형식이다.  

현대 작물 육종을 창시한 바빌로프는 오늘날 세계 식물유전학자들의 영원한 영웅으로 숭모되고 있다. 그렇지만 그의 삶은 스탈린의 정치적 희생양 찾기와 동료 과학자의 질시에 맞서다 천수를 누리지 못한 채 억울한 죽음으로 마감해야 했다. 지은이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바빌로프의 또 다른 영웅적인 모습, 환경과 사회정의를 위해 애쓴 운동가의 면모를 새롭게 보여준다.  



바빌로프는 전 세계 작물종자를 수집한 유일한 과학자이자 인류의 새로운 농법을 찾아 115차례의 원정을 감행한 탐험가나 다름없다. 바빌로프의 여정은 중앙아시아의 파미르고원에서부터 아프리카, 북아메리카, 아마존 열대우림에 이르기까지 형언하기 힘들 만큼 험난했다. 바빌로프의 가장 큰 학문적 공헌은 과학 사상 처음으로 발견한 ‘다양성 중심지’ 이론이다. 문화다양성과 작물다양성 사이의 상관관계를 처음으로 깨달은 과학자이기도 하다. 인류의 식량안보를 지키는 과업에서 농업생물다양성이 주춧돌에 해당한다고 처음 주장한 이도 바빌로프다. 그는 이런 신념 때문에 목숨까지 잃어야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작물 육종을 위해 바빌로프가 처음 고안하고 설립한 종자은행이 지구적 대재앙에 대비해 2008년 2월에 이르러 노르웨이 북극 지역에 생긴 사실이다. 여기엔 무려 200만종의 씨앗이 냉동 저장돼 있다.(경향신문)

 

개인적으론 스탈린시대의 악명 높은 생물학자 리센코(1898-1976)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는데, 바빌로프란 짝을 알지 못했다. 바빌로프를 쫓아낸 인물이 바로 리센코였던 것이다. 학문과 권력이란 주제와 관련해서 '리센코와 바빌로프'도 연구해볼 만한 테마다. 암튼 그런 부가적인 관심까지 갖게 되는데, 일단은 <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먼저 일독해봐야겠다. 잘 차려진 음식들을 대할 때마다 상기할 만한 제목이기도 하고...

11. 0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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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30 2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31 1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Kitty 2011-01-31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재미있겠어요. 원서 표지 예쁘네요~ (알록달록을 좋아해서;)
먹는걸 다룬 책이라니 바로 구입해야 할 듯 합니다 ^^;;;

로쟈 2011-02-01 13:41   좋아요 0 | URL
요리책은 바로바로 구입하시겠네요.^^

雨香 2011-02-01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서 소개해주신 <씨앗의 자연사>와 엮어서 읽어봐야 겠네요.

로쟈 2011-02-01 17:23   좋아요 0 | URL
네, 그것도 괜찮은 선택인데요...
 

내주에 설 연휴가 있어서인지 마음이 조금 들뜬 주말이다. 어차피 '방학중'이라 연휴가 특별한 의미를 갖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독서계획까지 세우려는 걸 보면 좀 미련한 것 아닌가란 생각도 들지만, '기분'에 따라 몇 권 골라놓는다. 강준만의 <미국사 산책>(인물과사상, 2010)이나 <함께 읽는 동아시아 근현대사>(창비, 2011) 등 '장거리' 독서거리도 있지만, 일단은 만만하거나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들만 고르기로 한다. 두꺼운 책으론 레베카 코스타의 <지금, 경계선에서>(쌤앤파커스, 2011)와 마이클 에이더스의 <기계, 인간의 척도가 되다>(산처럼, 2011), 그리고 <인터뷰: 한국 인문학 지각변동>(그린비, 2011), 중간급으론 나인호의 <개념사란 무엇인가>(역사비평사, 2011)와 이성민의 <사랑과 연합>(도서출판b, 2010), 얇은 책으론 바디우의 <사랑예찬>(길, 2010)과 라쿠-라바르트/장-뤽 낭시의 <문자라는 증서>(문학과지성사, 2011) 등이다. 거기에 소설을 덧붙이자면, 리브카 갈첸의 <대기 불안정과 그 밖의 슬픈 기상현상들>(민음사, 2011)과 다시 나온 사드(싸드)의 <미덕의 불운>(열린책들, 2011), 그리고 러시아 작가 사샤 소콜로프의 <바보들을 위한 학교>(문학동네, 2010). 연휴를 맞아 자신이 불운하거나 바보 같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위한 리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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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경계선에서- 오래된 믿음에 대한 낯선 통찰
레베카 코스타 지음, 장세현 옮김 / 쌤앤파커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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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1-29 18:13   좋아요 0 | URL
"연휴를 맞아 자신이 불운하거나 바보 같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위한 리스트이다..."
저 말씀이신가요? ㅋㅋ
개인적으로는 라쿠-라바르트/장-뤽 낭시의 <문자라는 증서>(문학과지성사, 2011)와 리브카 갈첸의 <대기 불안정과 그 밖의 슬픈 기상현상들>(민음사, 2011)이 욕심나네요^^
고맙습니다^^

로쟈 2011-01-29 22:24   좋아요 0 | URL
사실 연휴에 책 몇 권 읽을 시간이 난다면 아주 불운하진 않은 거지요.^^; 연휴를 앞두고 눈에 띄는 책이 많이 나왔는데, 온라인 서점 배송은 모두 연휴 이후에나 가능해서 직접 발품을 팔고 있습니다...

2011-01-30 0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30 1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oftcell 2011-01-31 13:09   좋아요 0 | URL
연휴의 독서가 구성원간의 갈등을 통해 가정 불화로 거듭나는 일은 피할 수 있길 기원합니다. ㅋㅋㅋ

로쟈 2011-02-01 13:47   좋아요 0 | URL
다같이 읽으면 될 터인데요.^^;
 

신간 리뷰들을 보다가 발견한 '이주의 소설'은 리브카 갈첸의 <대기 불안정과 그 밖의 슬픈 기상현상들>(민음사, 2011)이다. 놀랍지 않은가, 이런 제목의 소설이라니! 원제는 그보다는 약간 덜 놀라운데, 그냥 '대기 불안정(Atmospheric Disturbances)'이다(나는 거기에 덧붙여 'and other...'란 식으로 이어지는 줄 알았다. 확인해보니 전체 제목은 정말로 'Atmospheric Disturbances and Other Sad Meteorological Phenomena'이다!). 아무려나 작가의 데뷔작이라니 한번 더 놀랍고, '모던 클래식'의 평판을 얻고 있다는 점도 역시 놀랍다. 독서욕을 강력하게 부추기는 소설이다.  

한국일보(11. 01. 29) 아내의 존재를 부정한 남편… 그녀 찾아 떠난 여정의 끝은 

"아내와 똑 같이 생긴 여자가 내 아파트로 들어왔다." 자연스럽게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오는 '아내와 똑같이 생긴 여자'는 진짜 아내일까, 가짜일까. 미국 작가 리브카 갈첸(35)의 <대기 불안정과 그 밖의 슬픈 기상현상들>이란 심상찮은 제목의 소설은 이 미스터리에서 출발한다.

50대 정신분석의사 레오가 젊은 부인 레마를 가짜라고 믿고 진짜 부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1인칭 시점으로 그리고 있는 소설은 자못 기괴하면서 서늘하다. 레오는 정신분석학적, 물리학적, 기상학적 증거를 찾으며 부인이 가짜라고 확신하고, 이는 자신이 치료했던 환자 하비의 실종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비는 왕립기상학회의 비밀요원으로 기상을 통제하는 기술을 갖고 있다고 믿는 분열형 성격장애자로 책 제목처럼 기상학을 인간 심리의 메타포로 변주시키는 매개물이다.

레오는 부인의 고향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찾아가 장모를 만나선 레마 남편의 친구로 행세하며 자신이 몰랐던 레마의 과거를 만난다. '가짜 아내'가 레오를 찾아오지만 레오는 이를 피해 다시 남아메리카대륙 남쪽 끝 파타고니아로 떠난다.

소설은 레마의 실체에 대한 미스터리로 시작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레오의 눈을 통한 레마의 정보가 믿을 만하냐는 묘한 긴장감이 일어난다. 레오는"내게는 입원 경력이 없었고 정신 질환과 관련한 병력, 사회력, 가족력도 없었다"며 눙치지만, 차츰 레오의 일그러진 내면 세계가 드러나는 것이다. 레마를 찾아가는 여정은 결국 레오의 숨겨진 마음 속 비밀을 푸는 과정에 다름없다.

작가가 모티브를 얻은 것은 카그라스(Capgras) 증후군이다. 자신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이나 동물, 사물이 똑같이 생긴 다른 것으로 바뀌었다고 믿는 망상이다. 소설은 젊고 매력적이며 수많은 추종자를 거느린 부인을 끊임없이 의식하며 병들어 간 50대 남성의 고독과 불안 등 불안정한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사회적으로 안정된 듯 보였던 중년의 남성이 느닷없는 폭풍우에 불안정해진 대기처럼 무의식적인 광기에 흔들리고 부유한다.

이를 미친 사람의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 없는 것이, 가까운 이가 문득 낯선 타인으로 느껴지는 경험은 누구나가 한번쯤 겪는 일이기 때문이다. 목적지를 잃고 사랑이라는 감정만이 둥둥 떠다니는 현대 사회의 불안정한 인간관계에 대한 쓰린 이야기로 읽을 수 있는 셈이다. 작가는 도플러 효과나 기상학 이론을 활용해 이런 심리를 풀어내는데, 소설에 등장하는 기상학자 츠비 갈첸은 작가의 실제 아버지다. 



책은 2008년 미국에서 출간된 작가의 첫 소설이다. 포스트모던 소설의 계보를 잇는다는 평가를 받으며 리브카 갈첸은 한 편의 소설로 주목 받는 신인 대열에 합류했다. 옵서버지는 미국 포스트모던 소설의 대부인 토머스 핀천의 후계자라고 평했다. 민음사 모던클래식 시리즈의 40번째 책으로 나왔다. 

11. 01. 29.  

P.S. 옮긴이의 말을 보니 저자는 다니엘 파울 슈레버 박사의 회고록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자음과모음, 2010)에서 작품의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기사에서도 언급되지만 기상학자 츠비 갈첸이 그녀의 아버지이고, 그의 여러 논문 또한 이 작품에 중요한 모티브가 되고 있다고.  

  

갈첸 가의 가족사진이다. 엄마의 무릎 위에 앉은 아이가 작가가 된 리브카 갈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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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이건 저자와 제목, 그리고 부제만 보면 대략 '견적'을 낼 수 있다고 나름대로 자부하지만 때론 종잡을 수 없는 책들과 마주치기도 한다. 지난주에 구입한 레베카 코스타의 <지금, 경계선에서>(쌤앤파커스, 2011)가 그런 경우다. '토머스 프리드먼, 제레드 다이아몬드, 말콤 글래드웰의 전통'을 잇는 저자라고 소개되지만, 제레드 다이아몬드와 말콤 글래드웰이 대체 어떤 계보로 연결되는 건지 알지 못하는 나로선 그들의 '전통'이 막연하다. 게다가 레베카 코스타란 이름이 떠올려주는 것 역시 전무하다. '지금, 경계선에서'란 제목은 또 어떤가. '오래된 믿음에 대한 낯선 통찰'이란 부제도 불친절하긴 마찬가지다. 내가 유일하게 기댄 건 에드워드 윌슨의 추천사였다. "레베카 코스타는 이 책에서 우리 인류가 처한 위태로운 상황에 관해 전적으로 공감 가는 견해를 제시한다."는 게 추천사의 첫 문장이다. 아무튼 그래서 어떤 책인가 궁금하던 차였는데, 주말 북리뷰들에서 제법 크게 다뤄졌다. 

    

경향신문(11. 01. 29) ‘슈퍼밈’을 넘어… ‘통찰’의 세계로

고도로 문명이 발전했던 마야제국(BC 2600~AD 900)이 왜 붕괴했을까. 학자들은 가뭄, 식량 부족, 바이러스 확산, 인구 증가, 전쟁 등을 원인으로 꼽아왔다. 그런데 저자는 “모든 것이 맞지만, 그것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고 말한다. 선행하는 어떤 원인이 있었기에 마야인들은 기후변화나 바이러스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멸망을 자초할 정도의 전쟁을 벌였다는 것이다.

근본 원인은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에서 찾을 수 있다. 문명이 발전하면서 사회의 복잡성이 커지는 데 비해 인간의 뇌는 그것을 감당할 만큼 빠르게 진화하지 못해 간극이 생긴다. 저자는 이를 ‘인식한계점’이라고 부른다. 역사를 살펴보면 문명 붕괴의 직접적 원인이 되는 사건들이 발생하기 이전부터 진보를 둔화시키는 어떤 장애에 봉착한다. 장애는 두 단계로 나타난다. 먼저 정체에 빠지고, 이어 믿음이 지식을 대체한다. 다시 마야의 가뭄을 살펴보면 마야인은 강우량이 적은 해에 재배할 작물의 종류를 정하고 공공용수 사용량을 규제하는 등 물 보존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러나 강우량이 계속 감소하는데도 보존 외에 근본적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 이어 두번째 단계로 진입하면서 어린아이를 죽여 제물로 바치는 의식을 해결책으로 삼았다.

그렇다면 이런 붕괴 과정은 과연 고대문명에만 해당되는 것일까. 현대사회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현재 지구는 천연자원 고갈, 기후변화, 빈부격차, 환경파괴 등 여러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런데도 이것이 장기적으로 진행되는 나머지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데다 설사 해결방법을 발견하고도 효율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 즉 인식한계점에 이른 것이다.

저자는 현대문명의 전진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밈(meme)이란 개념으로 정리한다.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정의한 밈은 사람들에게 널리 받아들여진 정보, 생각, 느낌, 행동, 상식, 전통, 학설, 편견 등을 뜻한다. ‘가위를 들고 뛰지 말라’, ‘식사한 지 1시간이 지난 뒤 수영하라’ 등이 밈의 사례다. 밈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지기도 하고, 동시대에 유행성 바이러스처럼 퍼지기도 한다.

문명 정체의 조짐이 나타나는 우리 시대의 ‘슈퍼밈’은 불합리한 반대, 책임의 개인화, 거짓 상관관계, 사일로(분리용기)식 사고, 극단의 경제학 등 다섯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불합리한 반대는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다. 이라크전을 반대하는 미국 시위대에게 어떤 철수계획을 선호하는지 물어보면 십중팔구는 “그런 건 모른다”는 반응을 보인다. 탄소배출 문제에 대해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휘발유값을 올리거나 소형차를 사도록 강제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도 여기에 속한다. 저자는 “무조건 싫다고만 하는 태도는 무엇인가에 조정당할 가능성을 높인다”고 말한다.

책임의 개인화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에서 모두 나타난다. 알카에다 요원의 여객기 폭파 시도, 자동차 산업의 붕괴, 복잡한 파생상품으로 인한 금융위기 등은 시스템의 문제임에도 불구, 그것을 고치기보다 여론에 편승해 몇몇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으로 끝난다. 비만, 우울, 중독 등의 문제를 개인의 무절제나 의지박약으로 돌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거짓 상관관계란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를 동등하게 여기는 것이다. 정확한 원인과 결과를 밝히는 대신 추측, 의견, 학설 등을 진실로 받아들인다. 지구 온난화가 심해지는 시기에 권총 소지자가 늘면 지구 온난화가 권총 소지를 불러온다는 식이다. 포도주와 심장병, 백신과 자폐증,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세계적 불황, 교사 봉급과 공교육 등 일견 상관있어 보이는 문제도 뚜렷한 인과관계를 찾기 어렵다.

사일로식 사고의 사례는 미 우주항공국(나사)이 개발한 태양에너지 집광판이다. 접시안테나 같은 간단한 장치로 얼마든지 전기를 공급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 이는 10년이 넘도록 에너지부에서 퇴짜를 맞았다. 나사의 업무는 우주개발이라는 이유에서다. 에너지부는 이미 청정기술 벤처자본가들과 함께 태양열 발전보다 못한 대체에너지 개발에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극단의 경제학은 모든 일에 ‘경제’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다. 저자는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재정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마리화나 유통을 합법화하고 이에 과세하는 방안을 검토했던 일화를 든다. 이 아이디어는 결국 폐기됐는데, 그 이유는 주민의 건강이나 사회적 폐해가 아니라 합법화하면 마리화나 가격이 폭락해 증세 효과가 없다는 것이었다.

슈퍼밈은 복잡한 사회에서 나타나는 전형적 현상이다. 정확한 판단을 위해 너무 많은 지식이 필요하고, 시스템이 복잡해 고치는 게 어려우니까 개인을 희생양으로 삼는다. 거짓 원인을 믿는 것은 혼란 상태에서 안정을 찾으려는 동물적 반응이다. 돈이란 잣대 역시 그것이 확실하다는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 저자는 이런 ‘믿음’을 무조건 폄훼하지는 않는다. 보행자 신호가 켜지면 차가 멈춘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교통체계가 유지되듯이 믿음이 지식과 질서를 낳는다. 문제는 균형인데, 시계추가 지식보다 믿음으로 너무 기울어졌다.  

 

<지금, 경계에서>의 원제는 <파수꾼의 딸랑이(Watchman’s Rattle)>이다. 한밤중에 깨어있는 파수꾼이 다가오는 위험을 감지하고 사람들에게 알리는 딸랑이 소리처럼 현대문명의 위기를 경고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저자는 문명 붕괴의 징후를 제시하는 것과 함께, 희망과 대안을 보여준다. 가장 위로가 되는 것은 마야인과 달리 우리가 문제를 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부터 패턴을 발견했다. 또 붕괴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기 때문에 다양한 해결책을 시도해볼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에게는 통찰력이 있다는 점이다.

통찰은 ‘유레카’(알았다)라는 외침,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는 힘이다. 소방관 왜그 닷지가 자신에게 달려드는 불을 피하기 위해 자기 주변에 작은불을 놓아 위험을 피한 것, 미국 FBI가 전설적인 사기범 프랭크 애버그네일을 감옥에서 썩히는 대신 사기범을 잡는 요원으로 활용한 것 등이다. 특히 모범적 사례는 무하마드 유누스의 그라민 은행이다. 빈민대출이라는 새로운 방식에 대한 반대, 개인화된 가난의 책임, 가난한 사람은 대출을 안 갚는다는 거짓 상관관계, 금융기관과 지역사회라는 사일로, 사람보다 수익을 우선하는 금융관행 등 다섯 가지 슈퍼밈을 보기좋게 뛰어넘었다.

이 책은 다양한 실례를 인용하면서 현대문명의 위기를 설득력 있게 경고한다. 통찰력을 높이기 위해 두뇌훈련, 운동, 휴식, 식사와 수면을 권유하는 대목에서는 자기계발서의 한 대목을 추려놓은 듯한 느낌도 준다. 저자는 캘리포니아대를 졸업한 뒤 실리콘밸리를 거쳐 애플컴퓨터, 휴렛패커드, 스리엠, GE 등과 함께 일했으며 인간진화, 글로벌시장, 신기술 등 최신 조류를 연구하는 사회생물학자다. 리처드 도킨스와 에드먼드 윌슨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2010년작.(한윤정기자) 

11. 0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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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cinema 2011-01-30 16:01   좋아요 0 | URL
근 6년을 드나들면서도 'thanks to'라는 것을 몰랐답니다.
오늘 처음 'thanks to'를 해봅니다.
로쟈님을 통해 소개 받아 산 책도 많았었는데,
그동안 적립되지 못한 마일리지가 많이 아쉽네요.
오늘부터라도 열심히 'thanks to'해 보려고 합니다.

로쟈 2011-02-01 14:44   좋아요 0 | URL
사실은 저도 이용해본 적이 없는 기능입니다.^^;

雨香 2011-02-01 16:37   좋아요 0 | URL
다양한 실례를 적용했다는 점에서 토머스 프리드먼, 제러드 다이아몬드, 말콤 글래드웰을 엮은 듯 한데 세 저자가 어떻게 엮일 수 있는지는 저도 의문입니다.

로쟈 2011-02-01 17:24   좋아요 0 | URL
말콤 글래드웰도 '문명'론을 얘기하는지 안 읽어봐서 잘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