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대학신문에서 미하일 바흐친에 관한 기사를 옮겨놓는다. 얼마전에 두 권이 선을 보인 바흐친 선집을 계기 삼아서 바흐친의 삶과 한국에서의 바흐친 수용과정에 대해 짚어주고 있다. '바흐찐'과 '바흐친'이란 표기가 기사에서도 혼용되고 있는데, 선집본이 '바흐찐'이란 표기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표기의 통일성을 위해서 제목과 태그는 '바흐친'이라고 해놓는다.  

  

대학신문(11. 03. 27) 미하일 바흐찐, 또는 신화의 귀환

우리나라에 바흐찐의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80년대였다. 바흐찐은 루카치로 대표되던 맑스주의 문예이론의 엘리트주의를 넘어서는 한편으로, 문학과 예술의 민중적 토대에 대한 모색이 활발히 진행되는 가운데 집중적으로 소개됐다. 바흐찐은 문화를 루카치처럼 ‘해방’과 ‘진보’의 위대한 이념이 전개되는 과정이 아니라 ‘대화’와 ‘웃음’을 통해 인간의 상상력이 종합되고 역사 속에 풀려나오는 과정으로 묘사했다. 그가 보기에 문화는 평범한 민중들의 삶 자체가 일으키는 사건이었고 이는 ‘민중문화’를 노래하던 1980년대의 분위기와도 잘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더구나 혁명의 고향인 러시아 출신의 이론가라는 사실은 바흐찐을 ‘신화적’ 위광 속에서 조명하기에 충분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1990년대에 접어들며 한국사회가 본격적인 ‘문화의 시대’에 진입하면서 오히려 그의 이름은 홀연 사라져 버렸다. 그의 책들은 절판도서의 목록에 올라갔고 세간의 관심도 시들해졌다. 효용이 다한걸까? 그리고 2011년, 돌연 그가 되돌아왔다! 이번에는 ‘러시아어 완역본’이란 꼬리표를 달고서. 그저 철지난 이론의 반복일까? 혹은 아직 소진되지 않은 신화의 귀환일까? 그의 이름이 낯선 독자들을 위해 간략한 소개부터 해보자. 



바흐찐, 신화와 삶의 이력
1895년에 태어난 바흐찐이 대학을 졸업할 즈음은 혁명의 격랑이 러시아 전역을 휩쓸던 때였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빈궁하던 시절이었지만 그는 서클을 조직해 강의와 연구, 세미나를 하며 그 시간을 버텨냈다. 『문예학의 형식적 방법』(1928),  『프로이트주의』(1927), 『마르크스주의와 언어철학』(1929) 등은 이 무렵 바흐찐이 서클 친구들의 명의로 출판한 책들인데, 진짜 저자가 누구인지는 여전히 논란중이지만 적어도 바흐찐의 영향아래 쓰여졌을 것이란 사실은 분명하다. 정식으로 그의 이름으로 출판된 저작은 1929년에 나온 『도스토예프스키 창작의 문제들』이었고, ‘대화주의’라는 개념을 낳은 이 책은 후일 그에게 불멸의 명성을 안겨다 준다. 



우연하게도 첫 저작이 나온 직후 바흐찐은 소비에트 당국에 체포돼 카자흐스탄 유형길을 떠나게 된다. 이유는 분명치 않지만 아마도 스탈린의 대숙청 와중에 ‘미심쩍은’ 지식인들에 대한 숙청작업의 일환이었던 듯하다. 다행히 죽음은 면했지만 중앙아시아 황무지로의 유배는 거의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새옹지마랄까, 유형의 댓가로 바흐찐은 잔혹한 시대에서 살아남게 된다. 이 시기 그의 청년시절의 벗들은 대부분 총살되거나 실종됐던 것이다. 유형이 끝난 후엔 지방에서 교사생활을 하며 연구를 이어나갔다. 1930년대의 괴테론(크로노토프론)이나 1940년대의 민중문화론이 이 시절의 성과들이다. 특히 『프랑수아 라블레와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 문화』(1940년대 집필, 1965년 출간)는 시간이 갈수록 경탄을 불러일으키는 대작으로 현대철학과 문화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스탈린 사후, 정식으로 복권된 바흐친은 196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의 바람과 함께 서구사회에서 대단한 환영을 받게 된다. 그의 저술들이 속속 발굴·번역됐고, 1980년대에는 ‘바흐찐 산업’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현대 인문사회과학에서 중요한 흐름을 형성한 것이다. 한국에 그의 이름이 소개됐던 것도 이런 맥락을 통해서였다. 



바흐찐과 한국사회의 두 번째 만남. ‘귀환’의 의미
짐작했겠지만 80년대에 영미권을 통해 소개된 바흐찐은 어느 정도 이론적 기성품의 형태에 가까웠다. 바흐찐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서구에서 생겨난 문제의식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었고 그의 저작들 역시 중역본들이 유일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시절 한국사회와 바흐찐의 만남이 ‘신화’와 뒤이은 ‘망각’으로 기록된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열광이든 망각이든 우리 자신의 체화된 문제의식으로부터 나온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에 출간된 바흐찐 선집 두 권, 『예술과 책임』과 『프로이트주의』는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첫째, 바흐찐 신화가 이미 한물간 지금 그의 저작들이 원어로부터 출간됐다는 사실은, 어쩌면 객관적인 관점에서 그의 사유를 우리 내적 문제들과 부딪히게 하고 새로운 문제의식을 생산하게 만들 기회일지 모른다. 유행하는 이론이 아니라, 빛바랜 신화일지언정 고전으로서 바흐찐을 읽게 된다면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사유의 새로운 단초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이번에 나온 선집은 이른바 바흐찐 사유의 ‘기원’에 해당하는 글들이다. 1920년대 초엽에 집필된 ‘예술과 책임’, ‘행위철학’은 번역의 난해함과 어려움 때문에 지금껏 제대로 읽히지 못했다. 이런 텍스트가 한국어로 초역됨으로써 전공자뿐만 아니라 여타 인문사회과학의 연구자들 또한 바흐찐의 초기 사상에 접근할 통로가 생겨난 것이다. 아직 두 권에 불과하지만 한국어판 선집 간행의 가장 큰 의미는 여기 있다고 생각된다. 

이로써 바흐찐과 우리의 두 번째 만남은 더 이상 ‘신화’라는 후광 속에 있진 않을 듯하다. 신화는 제대로 알지 못할 때나 피어나는 이미지니까. 하지만 신화의 휘장을 걷어냈을 때 비로소 현실을 생산하는 사유의 가능성이 나타난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세계의 만남을 문화라 한다면 바흐찐도 언급했듯, 역사 속의 문화는 신화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나날의 실천 속에서 형성되는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에 다소간의 매혹을 느꼈다면 서둘러 도서관으로가 바흐찐의 글들을 넘겨보길 바란다. 그것이 사유와 실천으로서 문화의 시작인 것이다.(최진석_러시아연구소 연구원)  

11. 04.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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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간의 시차 때문에 모스크바에 와서 가장 피곤이 몰려오는 시간은 밤 9-10시 사이다. 한국시간으론 오전 2-3시로 넘어가는 시간이니 그럴 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잠시 눈을 붙일까 하다가 오늘(어제) 아르바트 거리에 있는 작은 인문서점에서 구한 책 얘기를 조금 부려놓는다. 아래는 아르바트거리의 모습. 지금은 눈이 조금 더 쌓였다. 

작은 서점이긴 해도 문학, 철학, 종교, 역사 쪽 책들과 오래된 문학전집류를 파는 서점이어서 나름대로 챙길 만한 책들이 있었다. 러시아 문학과 문화 관련서를 제외하면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와 에코의 <미네르바의 성냥갑> 등이 더 얹은 책이고, 일차로 계산을 마치고 돌아서려다 직원에게 문의해서 구한 책이 랑시에르와 아감벤의 책 한권씩이다. 그래서 무슨 시리즈는 아니지만 '모스크바의 랑시에르와 아감벤'이란 제목을 붙였다.   

랑시에르와 아감벤은 국내에 나란히 소개됐기 때문에 나로선 같이 떠올리게 되는 면이 있는데(두 사람의 저작을 묶어서 서평을 쓴 적도 있다) 러시아어본도 나란히 구하게 됐다. 그래봐야 러시아어로는 몇 권 번역돼 있지 않다. 랑시에르의 책으론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와 <감성의 분할>이 번역돼 있는 걸 알고 있어서 찾아달라고 했는데(<미학의 무의식>은 2004년에 구입했었다), <감성의 분할>만 꺼내다 주었다. 그것도 어디냐고 냉큼 들고 와서 이제서야 펴보니 <감성의 분할> 외에도 <미학 안의 불편함>과 아직 번역되지 않은 <이미지의 운명>까지 합본된 책이다(264쪽밖에 안됨에도!). 무슨 '횡재'한 기분이다. 아래 왼쪽이 러시아어판 <감성의 분할>이고 오른쪽은 <이미지의 운명>의 영어판 <이미지의 미래>.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는 한번 더 찾아보고 못 구하면 인터넷서점으로 주문할 참이다. 러시아어 아감벤은 랑시에르에 비하면 아직 빈곤한 편이다. 잡지들에는 그의 글이 다수 번역돼 있지만 단행본은 <도래할 공동체>(2008) 달랑 한 권이다. <호모 사케르> 연작이 아직 소개되지 않은 게 좀 의아한 수준. 아래가 <도래할 공동체>의 러시아어본과 영어본의 표지다.  

Грядущее сообщество 

랑시에르나 아감벤의 책 모두 1000부를 찍었으니 전혀 대중적이라고 볼 수 없다. 어지간한 서점에선 구경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그에 비하면, 한국에서 랑시에르나 아감벤 '붐'은 비록 한정된 독자층 사이에서 많이 입에 올려지는 정도라고 해도 상당히 예외적이란 느낌이다. 지난 2004년의 기억이지만, 인문학 전공의 이탈리아 유학생에게 아감벤을 아느냐고 물었다가, 누군지 모른다고 해서 내심 신기해 했던 일이 모두 그런 '착시'에서 비롯됐을 것이다(움베르토 에코는 잘 안다고 했다). 그러니 이런 책을 만나면 반가워하는 '외국인'이 러시아 서점 직원에게도 특이하게 보일 법하다. 나는 아주 조용히 서점에서 빠져나왔다... 

11. 0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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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2-14 0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잠 못 들고 가끔 페이퍼를 끼적여 올리곤 하는 시간에 로쟈님의 글이 올라오니 외려 제가 이곳에서 시차를 느끼는 것만 같네요 ㅋㅋ
어제 올려주신 '모스크바' 서점도 그렇지만 건물들이 새로 지어진 것처럼 깔끔하군요. 돌아오실 때 책만 한 보따리 되는 것 아닌가요?ㅎㅎ^^

로쟈 2011-02-14 15:33   좋아요 0 | URL
눈덮힌 거리는 훨씬 더 깔끔합니다.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쉽싸리 2011-02-14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같은 책을 영어,러시아어,한국어로 읽으면 기분이 어떨까요?
저로서는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기분이고 앞으로도 그럴까 같아 궁금하네요.^^

로쟈 2011-02-14 15:34   좋아요 0 | URL
음, 그게 같은 곡에 대한 각기 다른 연주를 듣는 느낌이에요. 한국어 번역본들간의 차이보다 조금 더 큰 차이로, 아, 같은 곡을 다른 악기로 연주한다고 하면 비슷할 거 같네요...

philocinema 2011-02-14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시아에서 건강 잘 챙기셔요! 공부는 '몸'으로 하는 거니까요!

로쟈 2011-02-14 15:35   좋아요 0 | URL
네, 예전보다 훨씬 편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일거리만 없다면 좋을 텐데요.^^;

펠릭스 2011-02-14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가셨군요. 엉뚱하지만,,, 어젠 영화 한 편을 봤는데요.
'The Concert',,,요.

로쟈 2011-02-15 00:59   좋아요 0 | URL
오긴 했지만 벌써 갈날이 며칠 안 남았습니다...

반딧불이 2011-02-15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시아에 계시는군요. 늘 고골의 네프스키 거리만을 상상하다가 아르바트 거리를 보니 잠이 확 달아나는 기분이네요.

로쟈 2011-02-16 01:02   좋아요 0 | URL
네프스키는 '대로'라서 비교가 안되죠.^^ 아르바트는 그에 비하면 아담하고 편안한 거리입니다. 1킬로쯤 되려나요. 전철역 한 구간 거리인데, 어슬렁거리기도 좋습니다(기념품가게가 많구요). 겨울엔 물론 사정이 좀 다르지만...
 

한국시간으론 자정이 다 돼 가지만 모스크바는 아직 저녁을 먹기에도 이른 시간이다. 오늘도 낮에 3시간 동안 서점 순례를 했는데, 2004년에 가장 자주 들르던 서점 '모스크바'에 다시 가니 감회가 새로웠다. 하지만 책은 모스크바예술극장 골목에 있는 교재서점(주로 교재들을 판매하는 서점이다)에서 주로 구입했다. 들고 간 돈이 모자라서 모스크바서점엔 한번 더 가볼 참이다. 아래가 모스크바서점이다.

Названы лучшие книжные магазины Москвы  

내가 주로 구하는 책은 러시아문학 작품, 러시아문학 연구서 등 전공관련서와 이론서/철학서의 러시아어 번역서들이다. 연구서와 번역서는 사실 대형서점에 가도 '재미'를 못 보는 수가 많다. 제대로 다 갖춰놓는 서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재서점에서 뜻밖에도 들뢰즈/가타의 <천개의 고원> 러시아어판을 발견했다. 작년에 출간된 책이다. 들뢰즈의 책은 대부분이 이미 출간돼 있고, 가타리와의 공저도 <천개의 고원>만 빼고는 대부분 러시아어판이 있는 걸로 안다. 왜 출간이 안 되는지 의아하게 생각하던 차였는데, 예기치않은 장소에 꽂혀 있었다. 가격은 25000원 가량. 아래가 실물이다.   

 

참고로 <안티오이디푸스>의 러시아어판은 2008년에 나왔다. 그리고 <의미의 논리>의 새 번역판도 올해 출간됐다. 우리말로도 <안티오이디푸스>(<앙띠오이디푸스>)의 새 번역판이 올해 나온다고 하므로 '자본주의와 분열증'은 아주 오랜만에 완독을 시도해볼 수 있겠다. <의미의 논리>까지 보태서.   

 

들뢰즈 외에 후설과 하이데거의 책들이 새로운 장정으로 다시 나왔고, 롤랑 바르트와 레비-스트로스의 책도 '아카데미 프로젝트' 시리즈로 다시 나왔다(바르트의 <S/Z>은 오늘 구입했다). 라캉의 세미나도 두어 권 (재)출간됐고(<에크리>는 아직도 러시아어판이 없다). 이채로운 건 테리 이글턴의 <문학이론입문> 러시아어판. 하드카버의 무거운 장정으로 출간돼 있었다('입문서'와는 어울리지 않는!).  

Козел отпущенияНасилие и священное. Издание 2 

르네 지라르의 <희생양>(왼쪽)도 러시아어판이 눈에 띄었다. 작년에 나온 것인데, 너무 비싸서 일단은 다시 꽂아두었다. 좀더 저렴한 곳에서 구입하려고 한다.지라르의 책은 <폭력과 성스러움>(오른쪽)도 작년에 다시 나왔다. 다시 확인해보니 대개의 책은 품절되지만 않았다면 러시아 인터넷서점에서 더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 등은 아직 러시아어로 번역되지 않은 듯 보인다(그의 도스토예프스키론은 <르네 지라르 혹은 폭력의 구조>(나남)에 번역돼 있다). 음, 이런 데 관심을 가진 특이한 한국인이 모스크바의 서점들을 배회하고 있다...  

11. 02. 12.  

P.S. 러시아에 왔으니 러시아 철학서 얘기도 예의상 한마디 해야겠다. 2004년과 비교해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로스펜출판사에서 펴내고 있는 '20세기 후반 러시아 철학' 시리즈이다(리스트는 http://www.ozon.ru/context/detail/id/4184947/ 참조). 저작선이 아니라 저자론 모음집이다. 오늘은(쓰다보니 어제가 됐다) 모스크바서점에서 <바흐친>만 구입했는데, 나로선 생소한 철학자도 많이 포함돼 있다. 일단 이름이라도 아는 철학자들의 책은 구해놓으려고 하지만, 당장 <로트만>도 몇 군데 대형서점에선 눈에 띄지 않는다(내주엔 전문서점을 둘러봐야겠다). 한편, 러시아 학자들이 쓴 '20세기 사상가' 시리즈도 예전엔 못 보던 것이다(리스트는 http://www.interpres.ru/catalog/prod_list.php?kod_zhanr=5&kod_seriya=521&page=1 참조). 아래가 <질 들뢰즈>의 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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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2-13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택광 씨의 <세계를 뒤흔든 미래주의 선언> 후반부 내용에
펠릭스 가타리와 질 들뢰즈에 대한 언급이 잠깐 있어서
이들 두 사람의 사상에 대해서 급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는데
<안티 오이디푸스>의 새 번역판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네요.
이 책이 출간되면 <천 개의 고원>이랑 함께 질러야겠습니다.

로쟈 2011-02-13 14:13   좋아요 0 | URL
들뢰즈/가타리의 두툼한 평전도 올해 나올 거 같습니다. <안티오이디푸스>가 다시 나오면 '다시 읽기' 붐이 좀 생길거 같기도 합니다...

2011-02-13 1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13 14: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귀족온달 2011-02-13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들뢰즈를 러시아어로 읽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상상해봅니다....수유/너머 에서 번역했던 자료로도 몽롱했거든요...

로쟈 2011-02-14 03:22   좋아요 0 | URL
한국어 번역으로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영어본도 구하고 러시아어본도 구하는 것이죠.^^;
 

아침 식사로 커피와 함께 엊저녁에 사온 떡을 먹다 보니 주목하지 않고 흘려보냈던 책이 생각난다. 어제 펴본 <反자본 발전사전>(아카이브, 2010)의 뒷표지에도 소개돼 있어서 떠올리게 된 게리 폴 나브한의 <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아카이브, 2010)이다. 저자보다도 유명한 이는 책의 주인공인 러시아의 식량학자 니콜라이 바빌로프(1887-1943). "20세기 과학계의 거인이자 진정한 세계주의자"(조효제)란 평가를 받는 학자다.   

  

식물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게리 폴 나브한이 쓴 <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는 바빌로프가 20세기 초 인류의 미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세계 5대륙을 누비며 식량의 씨앗을 찾아나선, 눈물겨운 일대기다. 그것도 도서관을 뒤져 찾아낸 자료나 관련 인물의 증언만을 바탕으로 구성한 단순 전기가 아니라 바빌로프가 탐사했던 지역을 거의 그대로 답사하면서 생동감 있게 엮은 노작이다. 바빌로프의 전기와 지은이의 여행기를 혼합한 독특한 형식이다.  

현대 작물 육종을 창시한 바빌로프는 오늘날 세계 식물유전학자들의 영원한 영웅으로 숭모되고 있다. 그렇지만 그의 삶은 스탈린의 정치적 희생양 찾기와 동료 과학자의 질시에 맞서다 천수를 누리지 못한 채 억울한 죽음으로 마감해야 했다. 지은이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바빌로프의 또 다른 영웅적인 모습, 환경과 사회정의를 위해 애쓴 운동가의 면모를 새롭게 보여준다.  



바빌로프는 전 세계 작물종자를 수집한 유일한 과학자이자 인류의 새로운 농법을 찾아 115차례의 원정을 감행한 탐험가나 다름없다. 바빌로프의 여정은 중앙아시아의 파미르고원에서부터 아프리카, 북아메리카, 아마존 열대우림에 이르기까지 형언하기 힘들 만큼 험난했다. 바빌로프의 가장 큰 학문적 공헌은 과학 사상 처음으로 발견한 ‘다양성 중심지’ 이론이다. 문화다양성과 작물다양성 사이의 상관관계를 처음으로 깨달은 과학자이기도 하다. 인류의 식량안보를 지키는 과업에서 농업생물다양성이 주춧돌에 해당한다고 처음 주장한 이도 바빌로프다. 그는 이런 신념 때문에 목숨까지 잃어야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작물 육종을 위해 바빌로프가 처음 고안하고 설립한 종자은행이 지구적 대재앙에 대비해 2008년 2월에 이르러 노르웨이 북극 지역에 생긴 사실이다. 여기엔 무려 200만종의 씨앗이 냉동 저장돼 있다.(경향신문)

 

개인적으론 스탈린시대의 악명 높은 생물학자 리센코(1898-1976)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는데, 바빌로프란 짝을 알지 못했다. 바빌로프를 쫓아낸 인물이 바로 리센코였던 것이다. 학문과 권력이란 주제와 관련해서 '리센코와 바빌로프'도 연구해볼 만한 테마다. 암튼 그런 부가적인 관심까지 갖게 되는데, 일단은 <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먼저 일독해봐야겠다. 잘 차려진 음식들을 대할 때마다 상기할 만한 제목이기도 하고...

11. 0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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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30 2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31 1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Kitty 2011-01-31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재미있겠어요. 원서 표지 예쁘네요~ (알록달록을 좋아해서;)
먹는걸 다룬 책이라니 바로 구입해야 할 듯 합니다 ^^;;;

로쟈 2011-02-01 13:41   좋아요 0 | URL
요리책은 바로바로 구입하시겠네요.^^

雨香 2011-02-01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서 소개해주신 <씨앗의 자연사>와 엮어서 읽어봐야 겠네요.

로쟈 2011-02-01 17:23   좋아요 0 | URL
네, 그것도 괜찮은 선택인데요...
 

주중에 구입한 책 가운데 하나는 오종우 교수의 <백야에서 삶을 찾다>(예술행동, 2011)이다. 오랜만에 나온 국내 필자의 러시아문학 관련서여서 반가운데, 책에서 다루고 있는 세 작품을 나도 역시 강의한 적이 있고 앞으로도 하게 될 예정인지라 유익한 참고가 될 듯싶다. 소개기사가 뜨기에 옮겨놓는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안나 카레니나>, <닥터 지바고> 세 작품의 이미지는 저자가 참고한 책들이다.     

경향신문(11. 01. 22) ‘무엇으로 사는가’ 매몰된 삶 깨우는 섬광

적어도 겉으로만 보자면, 가히 고전과 교양의 전성기라고 부를 만하다. 각종 고전물과 교양서적들이 서점가의 베스트셀러로 각광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출간된 <백야에서 삶을 찾다>가 특별히 눈에 띈다. 고전이 갖는 현대적 의미를 진지하게 고찰하고 있는 까닭이다. 대학에서 오랫동안 러시아 문학을 강의해온 오종우 성균관대 러시아어문학과 교수(46)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 등 러시아 문학의 걸작 세 편을 통해 현대사회와 현대인의 삶을 비판적으로 성찰한 책을 펴냈다.  

“정보화·세계화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은 너무 많은 정보와 상품에 매몰되다보니, 자신과 시대를 객관화시킬 여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에 매몰돼 살다보면 현실 문제와 함께 몰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현실을 충실히 살아야 하겠지만, 그와 더불어 현실을 벗어난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지금’을 뛰어넘어 더 나은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저자는 방대한 내용과 깊이를 지니고 있는 각 소설의 텍스트를 충실하게 독자에게 소개하고 작가의 삶과 사상에 대해 알기 쉽게 전하면서도, 각 작품이 현대사회에 던지는 질문들에 초점을 맞춘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그는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소설은 욕정과 살인, 증오와 보복으로 가득찬 주인공들의 추악한 모습을 통해 ‘악을 통제하고 행복을 가져다주는 지배자가 올바른 신인가’라고 묻는다. 저자는 현대에 이르러 정치 이데올로기와 경제적 이득, 과학 기술이 제공하는 편리함이 ‘신’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며 “그것들이 삶의 기준이 되고 근거가 되는 순간, 사람들 사이의 경쟁은 극도로 심화돼 사회는 다원성을 잃고 황폐해진다”고 말한다. 저자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고, 인간이 존엄한 근원이 되는 자유의 가치를 강조한다. 



<안나 카레리나>에서는 시대를 초월해 변하지 않는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안나 카레리나는 장교 브론스키와 사랑에 빠지지만 욕망 때문에 파멸에 이르고 만다. 그녀가 파멸에 이른 것은 그 사랑이 부도덕하기 때문이 아니라 욕망의 과잉 때문이었다. 저자는 욕망의 과잉으로 언제나 결핍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대상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욕망에 의해 기형화시키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이는 인류의 역사에도 그대로 적용되는데, “역사는 인간의 세계인식 가운데 한 단면이 지나치게 활성화돼 삶의 형태와 제도를 획일화시키는 경향을 띠고 있으며, 20세기에 그것이 정치 이데올로기였다면 21세기에는 경제적 자본”이라고 말한다. 



<닥터 지바고>에서 저자는 기존에 사회주의에 반대하는 소설로 ‘정치적’으로 읽혀온 작품을 ‘실용’이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본다. 실용의 의미를 도구적 기능이나 돈에 연결시켜 생각하는 협소한 시각에서 벗어나, 사물 자체의 의미와 가치에서 그것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예술이야말로 인류 역사에서 한번도 소멸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진정 실용적인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세상을 창의적으로 해석해서 이해하는 일, 기성의 질서에 단순히 편입되기를 거부하고 주체로서 살아가는 일이 예술의 근본 속성”이라고 말한다. <닥터 지바고>에서 라라와 지바고의 짧지만 강렬하고 순수한 사랑이야말로 예술의 실용성에 맞닿아 있다는 해석인 셈이다.  

<닥터 지바고>를 통해 던지는 ‘실용’에 대한 질문과 대답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물질은 풍부하지만 정신은 갈수록 피폐해지는 현대사회에서 왜 고전과 인문학이 새삼 인기를 끄는지, ‘고전의 상품화’를 넘어서 진정한 삶의 성찰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저자는 러시아의 걸작 세 편에 기대어 거기에 답한다.(이영경기자) 

11. 01. 22.  

P.S. 특이하게도 책의 세 파트는 세 권의 책으로 분할돼 출간되기도 했다. 낱권이 편한 독자는 그렇게 읽어도 좋겠다. 참고로, 저자는 체호프 전공자로 체호프 번역서와 연구서들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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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 2011-01-22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통해 이마미치 도모노부의 <단테 신곡 강의>를 알게 됐고 이번에 또 한권 좋은 강의록을 소개 받네요.
기대됩니다. 또 한번 좋은 소개 고맙습니다^^

로쟈 2011-01-23 13:21   좋아요 0 | URL
저도 <단테 신곡 강의> 덕분에 <신곡>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