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식사로 커피와 함께 엊저녁에 사온 떡을 먹다 보니 주목하지 않고 흘려보냈던 책이 생각난다. 어제 펴본 <反자본 발전사전>(아카이브, 2010)의 뒷표지에도 소개돼 있어서 떠올리게 된 게리 폴 나브한의 <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아카이브, 2010)이다. 저자보다도 유명한 이는 책의 주인공인 러시아의 식량학자 니콜라이 바빌로프(1887-1943). "20세기 과학계의 거인이자 진정한 세계주의자"(조효제)란 평가를 받는 학자다.   

  

식물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게리 폴 나브한이 쓴 <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는 바빌로프가 20세기 초 인류의 미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세계 5대륙을 누비며 식량의 씨앗을 찾아나선, 눈물겨운 일대기다. 그것도 도서관을 뒤져 찾아낸 자료나 관련 인물의 증언만을 바탕으로 구성한 단순 전기가 아니라 바빌로프가 탐사했던 지역을 거의 그대로 답사하면서 생동감 있게 엮은 노작이다. 바빌로프의 전기와 지은이의 여행기를 혼합한 독특한 형식이다.  

현대 작물 육종을 창시한 바빌로프는 오늘날 세계 식물유전학자들의 영원한 영웅으로 숭모되고 있다. 그렇지만 그의 삶은 스탈린의 정치적 희생양 찾기와 동료 과학자의 질시에 맞서다 천수를 누리지 못한 채 억울한 죽음으로 마감해야 했다. 지은이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바빌로프의 또 다른 영웅적인 모습, 환경과 사회정의를 위해 애쓴 운동가의 면모를 새롭게 보여준다.  



바빌로프는 전 세계 작물종자를 수집한 유일한 과학자이자 인류의 새로운 농법을 찾아 115차례의 원정을 감행한 탐험가나 다름없다. 바빌로프의 여정은 중앙아시아의 파미르고원에서부터 아프리카, 북아메리카, 아마존 열대우림에 이르기까지 형언하기 힘들 만큼 험난했다. 바빌로프의 가장 큰 학문적 공헌은 과학 사상 처음으로 발견한 ‘다양성 중심지’ 이론이다. 문화다양성과 작물다양성 사이의 상관관계를 처음으로 깨달은 과학자이기도 하다. 인류의 식량안보를 지키는 과업에서 농업생물다양성이 주춧돌에 해당한다고 처음 주장한 이도 바빌로프다. 그는 이런 신념 때문에 목숨까지 잃어야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작물 육종을 위해 바빌로프가 처음 고안하고 설립한 종자은행이 지구적 대재앙에 대비해 2008년 2월에 이르러 노르웨이 북극 지역에 생긴 사실이다. 여기엔 무려 200만종의 씨앗이 냉동 저장돼 있다.(경향신문)

 

개인적으론 스탈린시대의 악명 높은 생물학자 리센코(1898-1976)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는데, 바빌로프란 짝을 알지 못했다. 바빌로프를 쫓아낸 인물이 바로 리센코였던 것이다. 학문과 권력이란 주제와 관련해서 '리센코와 바빌로프'도 연구해볼 만한 테마다. 암튼 그런 부가적인 관심까지 갖게 되는데, 일단은 <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먼저 일독해봐야겠다. 잘 차려진 음식들을 대할 때마다 상기할 만한 제목이기도 하고...

11. 0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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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30 2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31 1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Kitty 2011-01-31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재미있겠어요. 원서 표지 예쁘네요~ (알록달록을 좋아해서;)
먹는걸 다룬 책이라니 바로 구입해야 할 듯 합니다 ^^;;;

로쟈 2011-02-01 13:41   좋아요 0 | URL
요리책은 바로바로 구입하시겠네요.^^

雨香 2011-02-01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서 소개해주신 <씨앗의 자연사>와 엮어서 읽어봐야 겠네요.

로쟈 2011-02-01 17:23   좋아요 0 | URL
네, 그것도 괜찮은 선택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