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편의 <죄와 벌>이 무대에 오른다. 일단 극단 명품극단의 <더 게임-죄와 벌>이 오늘부터 3월 11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명품극단의 전작 <죄와 벌> 라스콜리니코프와 소냐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번 <죄와 벌>은 라스콜리니코프와 포르피리를 중심으로 재구성했다.

연출가인 김원석은 거미줄에 걸린 벌레와 다를 바 없는 한 인간의 절규를 통해 우리를 옭죄고 있는 법, 도덕, 규칙과 제도라는 억압과 구속을 이야기한다. 대학로에서 뼈가 굵은 남명렬이 뽀르피리 역을, 오경태가 라스꼴리니꼬프 역을 맡았다. 여배우 김호정은 쏘냐로 출연한다.(스포츠경향)

 

그리고 극단 피악도 이달 27일부터 4월 1일까지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죄와 벌>을 선보인다. 나는 보지 못했지만 지난 2010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을 선보여 화제를 모았었다고 한다. 이번에도 전작과 마찬가지로 연기와 춤이 어우러진 씨어터 댄스 스타일의 공연이라고. 

라스꼴리니꼬프 역에는 지적이면서도 강한 연기에너지가 돋보이는 배우 김태훈(현 세종대학교 문화예술콘텐츠대학원장)이 맡았다. 최홍일, 정수영, 문경희 등이 라스꼴리니꼬프의 독백 사이사이 등장하는 주요 배역으로 출연한다. 현대무용 안무가로 잘 알려진 댄스씨어터 까두의 박호빈이 안무를 맡아 새로운 형태의 무대 스타일을 제시한다. 프랑스에서 공연학 박사를 취득하고 유럽에서 공연예술가들과 협력하여 다양하고 실험적인 작업을 추구했던 나진환의 연출이 기대되는 작품이다.(스포츠경향)

 

명품극단의 <더 게임-죄와 벌>과 관련해서는 지난달에 팸플릿 소개글을 부탁받고 쓴 바 있다. 초고를 옮겨놓는다. 

 

가장 러시아적이면서도 가장 유럽적인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1866)은 이후 <카라마조프의 형제들>(1880)에 이르는 위대한 작가적 여정의 첫 번째 이정표이다. 작가는 문제작 <지하로부터의 수기>(1864)를 통해서 당시 러시아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던 공리적 사회주의 이념을 공박하고 진정 '살아있는 삶'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 바 있다. <죄와 벌>은 이러한 관심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동시에 이 작품은 문제적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의 사상과 선택에 대한 ‘연구’이기도 하다.


라스콜리니코프의 사상은 그의 범죄이론에 집약돼 있다. 그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범인(凡人)과 비범인(非凡人)으로 나뉠 수 있고, 비범인은 범인의 한계를 넘어 초법적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역사상의 비범인들, 곧 모든 입법자나 건설자들이 바로 그런 권리를 행사해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인간 ‘분류학’에 한정되지 않는다. 가난 때문에 휴학중인 대학생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정작 더 중요한 것은 과연 자기 자신이 비범인인가 아닌가였다. 러시아어로 '죄'의 어원적인 뜻은 '한 발작 넘어섬'인데, 그는 자기가 비범인들처럼 모든 장애를 딛고 한 발작 넘어설 수 있는가를 시험해보고자 한다. 전당포 노파 알료나에 대한 살인은 그러한 시험의 의미를 지닌다. 과연 그는 자부심대로 자신이 비범인이란 걸 확인할 수 있었을까.


라스콜리니코프란 이름에서 '라스콜'은 러시아어로 분리/분열을 뜻한다. 살인을 계획하던 단계에서부터 라스콜리니코프는 가족과 친구에게서 자신을 고립시킨다. 이것이 그가 겪는 분리와 소외의 체험이다. 또한 알료나의 이복자매 리자베타에 대한 예기치 않은 추가살인은 라스콜리니코프의 계획과 실행 사이에 괴리를 가져오며 그의 내면에 분열을 초래한다. 예심판사 포르피리의 심문 장면이 보여주는 긴장감은 이러한 내적 분열이 외부로 표출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라스콜리니코프는 과연 무엇이 잘못됐다고 느끼며 어떤 고뇌에 빠지는 것일까. 그가  전당포 노파를 죽인 것이 아니라 결국 자기 자신을 죽였다고 토로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일까.   


고전은 언제나 다시 읽히며 재해석되는 가운데 생명을 유지한다. 19세기 후반 러시아 지식인 청년의 고뇌를 담은 <죄와 벌>이 명품극단의 을 통해서 한 번 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사유를 자극한다. 이 공연을 통해서 우리는 라스콜리니코프와 함께 또 다른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12. 03.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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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도스토예프스키를 떠올리는 사람이라면 문학적 교양을 인정받을 만하다. 이 러시아 문호의 말을 타이틀로 한 책이 출간됐다. 이병훈의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문학동네, 2011). 저자는 '도스또예프스끼'란 표기를 쓰고 있어서 부제는 '도스또예프스끼의 삶과 예술을 찾아서'이다.

 

 

이미 두 권의 예술기행서 <백야의 뻬쩨르부르그에서>(한길사, 2009)와 <모스끄바가 사랑한 예술가들>(한길사, 2007)을 펴낸 저자이기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삶과 행적을 다룬 책의 출간이 놀랍지는 않다. 하지만 반갑다! "웬만한 독서광들도 그의 작품을 끝까지 읽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책장 구석에 무의미한 장식물로 방치되어 있다"는 게 저자의 문제의식이고, 새로운 '안내서'가 그의 처방이다. "이 책은 독자들을 도스또예프스끼의 생애, 작품, 예술세계로 인도하는 안내서이다."

 

작가의 탄생과 유년시절, 시베리아 유형생활과 수년 간의 유럽체류, 그리고 말년의 생활에 이르기까지 인간 도스토예프스키가 거친 행로를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자료들과 함께 일목요연하게 안내해주고 있어서 도스토예프스키 독자들에게 유용한 길잡이가 된다. 예비 대학생들이 이번 겨울에 <죄와 벌>이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손에 들고 싶다면, 나란히 펴보길 권하고 싶다.

 

 

병행독서가 가능한 독자라면 석영중의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예담, 2008)와 E. H. 카의 <도스또예프스끼 평전>(열린책들, 2011), 마르끄 슬로님의 <도스또예프스끼와 여성>(열린책들, 2011)을 같이 손에 들어도 좋겠다. 세상을 구원해줄 아름다움을 발견할는지는 모르겠지만, 장담컨대 도스토예프스키가 방학을 구제해줄 것이다.

 

 

톨스토이 독자에게도 즐거운 소식이 있다. <안나 카레니나>(펭귄클래식코리아, 2011) 새 번역본이 출간됐기 때문이다(모처럼 새로운 표지여서 더 눈에 띈다). 펭귄본이라곤 하지만 중역본이 아니라 러시아어 번역이고, 펭귄본의 해제가 더 들어가 있다.

 

 

<안나 카레니나>는 펭귄클래식으로 나온 첫번째 장편소설이며(그러니까 <전쟁과 평화>나 <부활>을 더 기대해볼 수 있다는 뜻이다), 톨스토이의 중단편은 <크로이체르 소나타>, <이반 일리치의 죽음>, <무도회가 끝난 뒤> 세 권으로 갈무리돼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 두 작가를 읽는 것만으로도 1월은 풍족할 듯싶다. 러시아 모드에 맞게 눈도 펑펑 내린다면 더할 나위 없이...

 

12. 01.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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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당일배송으로 주문한 책의 하나는 히로세 다카시의 <제1권력 2>(프로메테우스, 2011)이다. 자본권력을 다룬 전작 <제1권력>(프로메테우스, 2010)을 읽을 터라 어떤 내용인지 살펴보지도 않고 바로 주문을 넣었다. 아침에 리뷰가 뜬 걸 보니 러시아의 지배계급과 권력지도에 관해 다룬 책이다. '러시아 이야기'로 분류해도 될 만하다. 마이리스트로 만들어놓으려고 하다가 자세한 리뷰기사가 있길래 기사를 옮겨놓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현재 러시아 지배층 가운데 로마노프 왕가의 후손들은 아직도 최대 이권 집단이라고 지적"이 요지 가운데 하나일 텐데(일종의 족보결정론?), 푸틴도 거기에 해당하는지 읽어봐야겠다... 

    

세계일보(11. 11. 12) 러시아 지배계급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저항해 온 것은 빈곤을 낳은 하나하나의 문제들이지, 자본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이데올로기가 결코 아니었다. 소련이 소멸되었기 때문에 공산주의 실험은 실패했다지만, 사실상 그들 지도자는 대부분 귀족계급 내지는 자본주의의 화신이나 다름없었다. 이래서야 무슨 실험을 했다고….” 이 책은 이른바 ‘좌파’의 원조격인 소비에트 사회주의의 이면을 고발하면서, 민중운동을 명분으로 내건 사회주의 진보 지식인들의 본모습을 들춰낸다. 저자가 겨냥한 인물들은 1848년 공산당선언에서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고 외친 칼 마르크스, 민중이 지배하는 나라를 만들자며 국가혁명론을 들고 나선 블라디미르 레닌, 소비에트 사회주의를 완성하자고 외친 트로츠키, 스탈린 등이다.

우선 16세기 중반부터 러시아를 통치한 로마노프 왕가의 혈연을 따라간다. 이에 열거한 인물들은 죄다 로마노프 왕가와 직계 혹은 모계로 연결돼 있다. 저자는 이들이 권력서클을 이룬 과정, 인민 대중을 수탈하는 과정, 기득권 보호 행태 등을 고증자료를 토대로 비판한다. 특히 민중 봉기를 부추기는 이데올로기의 허구성과 맹점을 통렬히 고발하고 있다.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으로 유명한 저자는 지난해 ‘제1권력 1’을 펴내 JP모건과 록펠러 등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거대자본가들이 미국을 좌지우지했던 갖가지 행태들을 열거했다. 지난해 이 책은 출간 직후 일본 공산당 이론가들이 공식 항의하고 반박하는 소동을 빚으면서 30만부 이상 팔려나가는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책은 이제껏 전해진 소비에트사회주의 이념에 대한 종래 인식을 뒤집는 내용으로 가득차 있다. 종래 ‘좌·우’이념이라는 이분법적 틀을 깨고 ‘러시아혁명(공산주의혁명)은 대체 무엇이었나’라고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이를테면 소비에트 독재를 연 인물 가운데 한 명인 흐루시초프는 로마노프 가문의 대귀족이었다. 이어 이오시프 스탈린, 몰로토프, 미코얀 등의 크렘린 수뇌부는 거의 로마노프 가문과 유대관계 또는 혈연으로 연결된 사실도 밝혀진다.

흐루시초프는 100% 프롤레타리아 출신임을 간판으로 내걸고 소비에트운동에 앞장선 인물. 러시아 정부 공식 문헌에도 도네츠크 탄광에서 일한 노동자로 분명히 명기되어 있다. 그는 1917년 러시아 10월혁명을 피해 프랑스로 망명한 러시아 왕가의 일원이었으나,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완수하는 주역으로 면모를 탈색한다. 이렇듯 노동자와 농민이 지배한다는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한 구소련의 최고 권력 집단 ‘볼셰비키 정부’를 구성한 인물들은 대부분 귀족 집안의 후손이거나 그 후광을 업고 있었다. 이런 게 사실이라면 사회주의 이념을 추종하고 있는 국내 진보 사상가들의 이념적 혼돈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지금도 사회주의 운동가들이 혁명의 아버지를 떠받들고 있는 블라디미르 레닌의 선조는 로마노프 왕가를 추종한 귀족이었다. 레닌의 외조부는 1847년 카잔의 영주였으며 가장 유복한 계급이었다. 소련이 붕괴되고 자유 기운이 한창 무르익을 때 반체제 인사로 이름을 알린 사하로프. 그는 수소폭탄이라는 인류 최대의 흉기를 스탈린에게 만들어 바친 인물로 묘사된다. 서방에서는 그를 반체제 양심인사의 상징으로 치켜세우곤 했다. 하지만 지금 러시아에서 사하로프를 떠받들거나 존경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보리스 옐친의 금고지기 출신으로, 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명문구단 첼시의 구단주이자 석유재벌인 아브라모비치 역시 귀족집단 ‘울리가르히’ 중 한 명이다.

저자는 이런 인물들이 움직이는 러시아가 향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도 분명히 적시한다. 양심적 지식인들의 각성을 촉구한 것이다. 그러면서 민중운동 내지 사회주의를 명분으로 한 특권층의 행태를 고발한다. 그는 현재 러시아 지배층 가운데 로마노프 왕가의 후손들은 아직도 최대 이권 집단이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로마노프 왕가가 지배한 제정 러시아에서 공산주의로 바뀌고, 현대에 와서 다시 제정 러시아로 돌아가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지배계급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면서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낭만적 성향의 일부 사회주의자들은 맹종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국내 사회 운동가들 가운데서도 이런 표리부동의 인물들을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공산주의 이념을 내걸고 소비에트 사회주의를 실험했던 장본인들은 실상 당대의 자본가 내지 귀족 계급 출신이었다. 저자는 로마노프 왕가로 대표되는 러시아 지배계층의 본모습을 고발하면서 현대 사회주의 운동가들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정승욱 선임기자)  

11.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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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비출판사 블로그에서 <애도와 우울증>(그린비, 2011) 저자 인터뷰 기사를 옮겨놓는다(http://greenbee.co.kr/blog/1536). 추석 연휴 전주에 동영상 인터뷰를 가졌는데, 내용이 정리돼 올라왔다. 책소개를 겸하고 있으므로 러시아문학에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길. 

  

1. 러시아 문학을 읽고 즐기는 입장에서 본다면, 푸슈킨과 레르몬토프의 매력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레르몬토프에게 '고독의 시인'이라는 별칭을 붙였는데, 그는 뭔가 좀 순정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레르몬토프에게는 어떤 본질적인 고독, 외로움이 있다는 생각을 해요. 물론 사회적인 배경도 이유가 있겠지만 레르몬토프의 불행한 가족사에서 기인하는 부분도 있겠지요. 제가 강의시간에 간혹 우스갯소리로 레르몬토프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레르몬토프는 1814년에 태어나서 1841년에 죽는데, 러시아에서는 작가들의 100주년, 200주년에는 성대한 기념을 합니다. 그런데 레르몬토프 탄생 100주년인 1914년에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지요. 서거 100주년인 1941년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요. 저는 그래서 레르몬토프의 탄생 200주년인 2014년은 조금 주의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러시아에 또 무슨 변고가 있지 않을까.(웃음) 레르몬토프는 유언도 「나 홀로 길을 나선다」이런 제목의 시였죠. 이렇게 생전에 고독한 작가였고, 사후에도 고독한 작가에요.
 
푸슈킨은 굉장히 간명하고 간결합니다. 그래서 푸슈킨에게는 '간결성의 미학'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푸슈킨은 작품을 읽으면 읽을수록 복잡해요. 뭔가 많은 것을 말하고 숨겨놓은 작가이기 때문에 연구자들에게는 굉장히 매력이 있습니다. 연구거리가 많기 때문이죠. 그래서 연구서나 연구논문이 많이 나오는 편입니다. 그런데 국내 독자들이 번역으로 그의 작품을 읽을 때에는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에 비해 조금 심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푸슈킨은 주 장르가 시, 운문, 서정시 이런 종류였고, 드라마도 조금 있지만 독자들이 접근하기에는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 국내독자들에게는 푸슈킨의 문학이 원래 가지고 있는 크기만큼 잘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아요.  

2. 푸슈킨과 레르몬토프에 관심을 갖고 연구대상으로 삼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국내에는 덜 알려진 편이지만, 푸슈킨은 러시아문학에서 압도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 문학 전공자들에게는 지명도가 떨어지는 편이 아닙니다. 레르몬토프 역시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시인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을 다루는 것은 특이한 편은 아니지요. 다만, 두 사람을 비교하는 것은 조금 드문 편입니다. 서구에서는 두 사람에 대한 비교 연구가 조금 있지만, 국내에서는 많지 않습니다. 제가 석사논문으로 두 시인이 쓴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의 주인공 오네긴과 『우리 시대의 영웅』의 주인공 페초린을 비교하는 논문을 썼어요. 그래서 박사논문은 자연스럽게 그 연장선이 되었던 것도 있습니다. 했던 주제를 다시 하는 것이 편하기도 했고, 책 머리에도 썼지만 이 논문을 쓸 때 개인적인 특수한 사정도 있었죠. 이런 이유들 때문에 이 주제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3. 책 제목이기도 한 '애도와 우울증'은 프로이트가 제시한 정신분석학 개념으로 알고 있습니다. '애도'와 '우울증'이 어떻게 다르고, 문학작품에서 어떤 차이를 불러오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프로이트 전집 번역본에는 '슬픔과 우울증'이라고 되어 있어요. 그런데 저는 '슬픔'이 너무 광범위하고 막연하기 때문에, '애도'라고 한정해서 이야기하는 게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애도'는 죽은 자에 대한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좀더 일반화시켜서 무언가를 상실했을 때의 정서적 반응을 애도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프로이트는 상실에 대한 두가지 태도가 있다고 보았는데, 그것이 애도적인 반응과 우울증적인 반응이에요. 애도적인 반응은 어떤 대상이 상실되었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어떤 과정이 필요한데 그 과정이 '슬픔'인거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눈물이 마르듯 슬픔도 영원하지는 않지요. 슬픔이 추슬러지는 과정을 '애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우울증은 그런 현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부인하는 태도에요. 그리고 상실의 원인을 자기 자신한테 귀속시키지요. 이런 과정이 우울증으로 나타나는데, 이런 우울증에는 개인차가 있는지 아니면 케이스 각각에 해당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프로이트는 이러한 두 가지 타입이 있다고 얘기했지요.

낭만주의 시인들에게는 보통 어떤 이상, 현실 너머 세계에 대한 동경이 기본 정조입니다. 그래서 현실에 부재하는 '이상화되지 않은 현실'에 대한 정념이 중요하게 다뤄지지요. 때문에 낭만주의 시인들에게는 이러한 '상실'에 대처하는 두 가지 태도가 지배적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푸슈킨과 레르몬토프에게는 과연 어떻게 나타날까 이런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논문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 대략 구도가 맞춰질 것 같다는 감은 조금 있었어요. 실제로 논문을 쓰는 과정은 작품 속에서 제 생각을 확인해가는 과정이었는데 의외로 잘 맞아떨어졌지요. 원래는 두 시인의 작품 전반에까지 애도적 반응과 우울증적 반응을 적용하려고 했는데 기한과 분량의 제약 때문에 나중을 기약하며 마무리를 했습니다.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두 시인의 작품 일반까지 확장해서 쓰고 싶다는 생각도 갖고 있습니다.  

4. 푸슈킨과 레르몬토프를 각각 애도적 유형과 우울증적 유형으로 분류하고 이들을 러시아 근대문학의 정념론적 기원으로 평가하셨는데, 두 시인이 어떻게 다른 '두 기원'이 될 수 있었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러시아에서는 푸슈킨과 레르몬토프를 모두 낭만주의 시대를 살았지만 리얼리스트가 되는 것으로 평가를 해요. (소비에트 문학비평의 영향으로) 낭만주의와 사실주의(리얼리즘)에는 우열관계가 있기 때문에 사실주의 이전 단계로서의 미숙한 단계를 낭만주의로 보는 것이죠. 낭만주의자가 성숙하면 다 리얼리스트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죠. 두 작가의 작품에 그런 면이 없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리얼리스트가 되는 방향으로 이해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레르몬토프가 대표하는 낭만주의 사조의 독자성을 조금 더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사실 푸슈킨은 문학정신적으로는 낭만주의를 넘어선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푸슈킨은 낭만주의 시대를 살았고, 당시에는 '리얼리즘'이라는 말이 러시아에 없었기 때문에 그는 '진정한 낭만주의'라는 말을 써요. 반면 레르몬토프는 자신의 낭만주의를 '진정한 낭만주의'라고 생각하죠. 레르몬토프가 푸슈킨의 낭만주의를 '성숙'이라고 포장되지만 '변절'이라고 생각하는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푸슈킨 식의 낭만주의와 레르몬토프 식의 낭만주의는 서로 다른 태도를 갖고 있습니다. 

레르몬토프의 주제인 '영원한 사랑'을 예로 들면, 푸슈킨은 영원한 사랑은 믿지 않아요. 푸슈킨은 사랑이 변하고 성숙해가는 것으로 생각하지요. 레르몬토프와 푸슈킨은 같은 낭만주의 시인으로 묶이지만, 각기 다른 태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을 비교해서 보여주는 것이 낭만주의에 대한 이해나 두 시인에 대한 이해와 평가에도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5. 러시아 문학 작품을 정신분석학으로 읽어 내는 시도가 많은지 궁금합니다.

낭만주의 3대 작가 중에 니콜라이 고골이 있는데, 고골은 일찍부터 정신분석적 접근대상이었어요. 그의 작품을 읽어보면 작가를 카우치(안락의자)에 좀 눕혀 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러시아에서는 그러한 정신분석학적 접근법 자체를 좀 싫어하는 편이에요. 정신분석학적 작가 심리학 등에 거부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접근법으로는 연구를 잘 하지 않고, 권장하지도 않아요.

대신 영어권에서는 이러한 방식의 연구가 조금 있어요. 푸슈킨의 창작심리에 대한 연구가 약간 있고, (참고문헌에도 소개했지만) 몇 명의 연구자들은 정신분석학적 접근으로 러시아문학을 연구해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러시아에 있을 때, 정신분석학적으로 러시아 문학을 연구한 라페리에르(Rancour-Laferriere)라는 사람의 작품이 번역되어 출판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러시아 신문에서 그 책에 대한 조롱기 어린 서평이 실린 것을 봤지요. "우리의 푸슈킨, 우리의 톨스토이가 정신병자란 말이야?" 이런 식의 반응이랄까요, 러시아에서는 이런 반응이 일반적인 것 같습니다.

6. 이 책에서 주목하고 있는 '텍스트의 무의식'은 무엇인가요?

책에서 '텍스트적 무의식'이나 '텍스트의 무의식'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국내에서 통용되는 표현 같지는 않아요. 저도 이론적인 뒷받침을 갖고 썼던 개념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작가적 무의식'이라는 말은 쓰지요. 그런데 저는 작가의 텍스트에서 작가가 의도하고 전달하려고 했던 것 이면에서 말해지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작가의 무의식이 텍스트로 전이되었다고 할까요,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메시지 이면에 숨겨진 메시지나 코드가 있다는 것이죠. 이 숨겨진 코드(메시지)는 의도적으로 작가가 숨긴 것이라기보다는 작가조차도 속이는 것을 뜻합니다.

꿈의 경우를 예로 들면, 자신의 꿈이라고 자신이 다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 꿈을 해석해 줄 수 있는 타자가 필요한 것처럼, 저는 작품에서도 그러한 무의식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연구자가 밝힐 수 있다고 봅니다. 작가의 텍스트에 대해 작가가 어떤 억압된 무의식을 갖고 있는지 드러내는 것, 이러한 역할은 텍스트 읽기와는 조금 맥락이 다르기 때문에 '텍스트의 무의식 읽기'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7. 무의식으로 작품을 읽어 내는 작업을 또 하게 된다면, 시도해보고 싶은 작가가 있으신지요? 앞으로 선생님의 활동에 어떤 계획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다 관심이 있어요. (웃음) 작가론이나 작품론, 특히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작가비교론도 써보고 싶어요. 조지 스타이너(Geroge Steiner) 이후에는 그러한 시도가 별로 없는데, 이러한 부분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요즘은 『러시아 문학 강의』라는 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는 독자들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저는 많은 독자들이 관심을 갖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러시아 문학의 유산이기는 하지만 우리에게는 세계문학의 유산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러시아 문학을 같이 공유하고 음미하는 그런 공동체가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드라마 까페나 드라마 폐인까페 같은 것도 있잖아요. 그러한 까페들처럼 러시아 문학 공동체, 러시아 문학 애호가 공동체 같은 것도 가능할 텐데, 저는 그 공동체에 일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11. 0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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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7 07: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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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7 08: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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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디아 2011-09-27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와 '영미 명작 좋은 번역을 찾아서' 같은 책들이 더 빨리 많이 나와주지 않은 것이 아쉬운 독자입니다. "많은 독자들이 러시아 문학에 관심을 갖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로쟈님께서 러시아 명작 좋은 번역을 추천해주시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공개적으로 하시면 곤란해지실까요? 그래도... 저와 같은 생각의 독자들이 많을 것 같아서 댓글을 남깁니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에프스키 작품 만이라도 골라주시면 (이미 해놓으셨는데 저만 못찾는 것이라면 이 무지를 용서하시고 깨우쳐주시면) 무척 감사하겠습니다.

로쟈 2011-09-28 08:09   좋아요 0 | URL
음, 그게 전문가가 다수 참여하거나 상당 규모의 사업단이 꾸려져 벌인 일입니다.^^; 그런데 러시아문학의 경우엔 사실 선택지가 별로 없기도 합니다. 유일 번역본이 다수라서요...

2011-09-27 1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7 2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영남자파 2011-09-28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립중앙도서관의 로쟈님 박논은 꽤 여러명이 읽었는지 꽤 꼬질하더란 소식 알려드립니다. 책도 꼭 사서 다담달에 싸인 받고 싶네요. ^^'
러시아문학강의 얼른 탈고하시길,,,많은 기대됩니다. 공동체도요^^

로쟈 2011-09-29 22:12   좋아요 0 | URL
의외인데요.^^; 러시아문학강의는 겨울이 오기 전에 내려고 합니다...
 

이미 공지한 내용이지만 이달에는 매주 금요일 저녁 19:00-21:00노원평생학습관에서 '가을, 러시아문학의 거장과 만나다'란 강좌를 진행한다. 어제가 첫시간이었고 푸슈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을 다루었다. 강의실을 가득 채울 만큼 많은 분들이 오셔서 주의깊게 들어주신 데 감사드린다. 강의의 교재로 다루는 작품 번역본에 대한 문의가 있어서 여기에도 목록을 올려놓도록 한다. 아래가 강의일정과 작품이다.    

1. 9월 2일_ 푸슈킨의 <예브게니 오네긴>  

2. 9월 9일_ 고골의 <코, 외투, 광인일기, 감찰관> 

 

3. 9월 16일_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  

4. 9월 23일_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5. 9월 30일_ 톨스토이의 <부활>  

 

11. 09. 03.  

 

P.S. 한편 9월 19일부터는 매주 월요일 저녁 19:00-21:00강서도서관에서 '러시아문학으로의 여정'이라는 타이틀의 강좌를 진행한다. 커리큘럼은 노원평생학습관 강좌와 동일하며 다만 마지막 6회에 체호프의 <귀여운 여인>(생각의나무)이 추가됐다. 단편 '귀여운 여인' 외 세 편의 희곡이 같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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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3 1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04 0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kimbechu 2011-09-04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원에서 선생님 강의를 듣는 청강생입니다. 지난 시간 재미있게 잘 들었습니다. 감사드려요. 부탁이 있어서요. '오네긴'이 운문소설이라, 번역을 하면 그 맛을 모르고 내용 중심으로만 읽게 된다 하셨잖아요. 저도 그래서 아쉬웠거든요. 그래서인데요, 선생님께서 다음 시간에 러시아어로 '오네긴'첫문장이나 가장 유명한 문장 하나만 러시아어로 직접 소리내어 읽어주시면 그 문장의 운율, 리듬 등만이라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 다음 고골 시작하기 전에 살짝만 읽어주시면 안 될까요? 부탁드려요.

로쟈 2011-09-04 17:29   좋아요 0 | URL
ㅎ관심이 많으시네요.^^ 요즘은 오디오북으로도 다 들을수 있습니다. 처음 제사부터 1부는 http://rutube.ru/tracks/1970870.html?v=15b71df29ea8a7740c72b4bce546b9b3 에서 한번 들어보시길...

kimbechu 2011-09-04 23:23   좋아요 0 | URL
감솨. 근데 한참을 들어도 설명 없이는 이해불능이겠습니다요. 무슨 규칙같은 걸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 너무 쉽게 착각했나봅니다.

로쟈 2011-09-05 08:23   좋아요 0 | URL
ㅎ러시아어 자체가 리드미컬해서 운문과 산문의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밋밋한 한국어보단 훨씬 더 규칙적인 리듬감을 갖고 있습니다.^^

마일즈 2011-09-05 0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노원에서 강의들었는데요, 저는 세세한 내용보다 러시아문학을 접할 때 느끼는 낯설음에 관심이 많습니다. 실제로 주인공들의 말이나 러시아 독자들에게 향한 듯한 말들로 미루어 보면 자기들끼리 뭔가 감정의 교류를 하고 있는 거 같은데, 그런 교류가 이해가 안된달까요, 이해는 안가지만 그 정서가 꽤 흥미로와 보여서요. 저번 작품에 타치야나 꿈에 등장하는 곰이 하는 역할도 개인을 넘어 폭넓게 해석하면 그런 면이 좀 있지 않을까 싶구요...
예, 이것들은 강의 들으면서 든 생각들 적어본거 구요, 실제로 뵈니 사진보다 훨씬 좋아 보이시던데요. 고거 하나로도 즐거웠습니다 ㅎㅎ

로쟈 2011-09-05 08:21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 '교류'는 러시아문학의 일반적 특징이 아니라 푸슈킨의 문학의 특징입니다. 그리고 곰은 민속에도 많이 등장하는, 러시아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동물이기도 하지요.^^

2011-09-07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평생교육관에서 정기적인 강의는 없으신지요? 강의를 더 듣고픈데 강의중이신 대학이나 대학원에 입학하기는 좀 나이가 ,,,,, 해서요

로쟈 2011-09-07 17:11   좋아요 0 | URL
도서관 강의를 부정기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도 강의를 하고 있는데, 그곳은 유료강좌입니다...

리테라텍 2011-09-09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강서도서관에서 선생님 강의를 들을 수 있어서 정말 기쁩니다! 벌써부터 마음이 두근두근 설렙니다 =)

로쟈 2011-09-10 10:38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