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북플에 글과 사진을 올려봅니다.

그런데 슬픈 소식들입니다.

《앵무새 죽이기》의 작가 하퍼 리, 《장미의 이름》의 작가 움베르토 에코가

2월 19일에 영원한 잠에 들었습니다. 하퍼 리는 향년 89세, 에코는 향년 84세.

더 이상 에코 옹의 박학다식 글쓰기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픕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오늘 헌책방에서 시간을 보낼 작정이었는데, 아침부터 백령도 소식부터 시작해서 두 작가의 별세 소식까지 듣게 되니 마음이 심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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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2016-02-20 1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직 나이먹었다는 소리할만큼은 아니지만....지인과 유명인의 죽음을 점점 자주 겪네요.

cyrus 2016-02-21 12:54   좋아요 0 | URL
좋은 분들만 너무 빨리 가시는 것 같아서 속상합니다.

yureka01 2016-02-20 1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동시대의 지식인이자 작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많은 것을 주고 가네요.....

cyrus 2016-02-21 12:55   좋아요 0 | URL
네. 독자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선물해주고 떠나셨어요.

박람강기 2016-02-20 1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본 에코의 책은 중세였는데..아쉽고 서글프네요..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서니데이 2016-02-20 1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퍼리와 움베르토에코의 부음을 같은날 전해듣네요.

boooo 2016-02-20 1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라파엘 2016-02-20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clavis 2016-02-20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ㅠㅠ

비로그인 2016-02-20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의 재능과 함께 영원한 안식을...

원더북 2016-02-20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동시대에 같은 공기를 마시는 분들이 될 수 없어서 마음이 아픕니다...

stella.K 2016-02-20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같은 날 두 작가가...

blanca 2016-02-20 14: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몰랐어요... 이렇게 부음들이 들리면 마음이 너무 스산해져요.

yamoo 2016-02-20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에코의 타계가...ㅠㅠ

csp 2016-02-21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거장의 죽음을 한번에 접해 충격이 더 컸습니다. 명복을...

책한엄마 2016-02-22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인 명복을 빕니다.
 
공포특급 1
한국공포문화연구회 / 한뜻 / 1993년 7월
평점 :
품절


 

 

 

 

 

 

내가 2016년 1월 28일에 작성한 글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이날 괴랄한 조합으로 만들어진 단어가 튀어나왔다. 비스트셀러(Beastseller). 한때 전국을 강타했던 괴담 집을 말한다. 약속대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비스트셀러를 오늘 소개해볼까 한다.

 

※ 관련 글 : [‘비스트셀러(Beastseller)’라고 불러다오] 2016년 1월 28일 작성 (북플 이용 시 링크 연결 불가)

 

 

 

 

 

* "그 책을 찾아주세요" Book #25

 

《공포특급 : 93편의 현대판 무서운 이야기 》

한국공포문학연구회, 한뜻출판사 (1993년)

 

 


1990년대를 풍미했다가 돌연 사라진 가수들이 ‘투유 프로젝트-슈가맨’에서 부활하고 있다. 세월 속에 희미해져 간 그들의 노래는 기계음 범벅의 아이돌 가요에 질린 대중의 심금을 휘젓는다. 책의 세계에서도 ‘슈가맨’을 선정한다면 과연 어떤 책이 좋을까. 소개하고 싶은 책이 너무나도 많다. 내가 생각하는 슈가맨, 아니 슈가북은 1990년대 초반 괴담 신드롬을 선풍적으로 불러일으킨 책이다.

 

 

 

 

 

 

남녀노소 공포에 떨게 하였고, 피부에 소름을 돋게 한 최고의 비스트셀러, 《공포특급 : 93편의 현대판 무서운 이야기》를 슈가북으로 소환한다. 이 책은 1993년 7월에 처음 출간되었다. 이 책의 엮은이는 ‘한국공포문학연구회’다. 그런데 이런 명칭을 가진 모임이 실제로 있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다르게 괴담을 하위문화의 창작물로 인정하기 보다는 킬링 타임을 위한 가벼운 이야기로 인식한다. 아무래도 괴담의 위상을 높이려고 이런 명칭을 썼을 거로 추정한다. 무더위를 한 방에 날려 버리기 위한 첫 번째 필수품이 선풍기와 에어컨이라면, 그다음이 바로 무서운 이야기들이다. 여름에 맞춰 등장한 《공포특급》은 전 국민의 무더위를 식혀주기에 충분한 괴담들로 구성되었다.

 

 

 

 

 

책의 목차가 독특하다. 각 장의 제목은 괴담 속 단골 장소다. 유령이 배회하는 아파트, 무서운 학교, 음산한 별장 그리고 지옥의 도시. 책은 겁 없는 독자를 무시무시한 장소로 데려다주는 ‘공포 특급 열차’ 콘셉트로 설정되었다.

 

공포 특급 열차에 탑승한 독자가 가장 먼저 가는 곳은 유령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문 앞이다. 엘리베이터 안에 ‘그 무언가’가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 공포의 엘리베이터 1 (13쪽)

 

고층 아파트에 살고 있는 소녀는 왠지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기가 두려웠다. 혼자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꼭 누군가가 자기를 노려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더구나 학교 보충 수업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밤늦은 시간에는 너무 무서웠다.

 

“엄마, 엘리베이터 안에서 누가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아서 무서워.”
“그럼 엄마가 마중을 나갈까?”

 

보충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소녀는 엄마가 나와 있는 것을 보고 안심이 되었다. 소녀는 엄마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는 스윽 올라가기 시작했다.

 

“엄마, 이제는 하나도 무섭지 않아.”

 

엄마는 소녀를 그윽이 바라보며,

 

“넌 내가 네 엄마로 보이니?”

 

 

 

풍문에 들은 바에 의하면 엘리베이터 괴담을 믿었던 순진한 아이들은 밤늦게 귀가를 할 때 계단을 이용했다고 하더라. 그리고 자기를 위해 마중 나온 어머니가 진짜인지 귀신인지 꼬치꼬치 물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도 있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어느 학교에나 가면 학교와 관련된 무시무시한 전설 하나씩은 있다. 학생들은 이승을 떠나지 못한 귀신이 밤마다 떠돌아다닌다고 믿었다. 이 귀신의 소문이 전교생들에게 알려지면 강심장이 아닌 이상 누구도 야심한 시간에 혼자 공부할 수 없었다. 과거의 학교는 학생들이 공부만 하는 건전한 장소였다. 《공포특급》은 건전한 학교를 무시무시한 공포의 장소로 만들었다. 이를 계기로 학교 괴담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다음 이야기는 90년대 초중반에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절대로 모를 수가 없는 전설 급 학교 괴담이다.

 

 

 


* 2등의 질투 II (63~64쪽, 글 작성자 임의로 편집)

 

M여중에 다니는 미영이와 수연이는 성적이 우수한 자매였다. 하지만 수연이는 항상 1등을 했고, 미영이는 2등이었다. 하지만 둘은 무척 친하게 지냈다. 어느 화장한 일요일. 둘은 학교 도서실에 나와 함께 공부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잠깐 쉬러 도서실 옥상으로 올라갔다. 활발한 성격의 수연이는 옥상 난간에 올라서서 아슬아슬하게 걷는 장난을 쳤다. 그러다 한순간 수연이는 균형을 잃고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수연이는 간신히 난간을 잡고 매달려 있었다. 수연이는 미영이에게 도와달라고 간절하게 말했지만, 미영이가 손 쓸 겨를도 없이 땅바닥으로 추락했다. 수연이는 머리가 땅에 박혀 끔찍한 상태로 죽었다.

 

충격적인 사고 이후, 마음의 안정을 되찾은 미영이는 평소처럼 일요일에 도서실에서 혼자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복도 끝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통통통, 드르륵, 없네.”
“통통통, 드르륵, 여기도 없네.”

 

차츰 소리가 가까워지자 미영이는 교실을 뛰쳐 나와 화장실 끝에 숨어 있었다. 얼마 후, 화장실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통통통, 삐걱, 여기도 없네.”

 

소리는 점점 미영이가 숨은 곳으로 다가왔다. 미영이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어느새 그 소리는 미영이가 숨어 있는 화장실 앞까지 왔다. 미영이는 차마 문을 열어 볼 수가 없어서 문아래 틈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그 순간, 미영이는 너무 놀라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문아래 틈으로 머리를 숙여 내다보는 순간 땅바닥에 거꾸로 머리를 통통 튀기며 웃고 있는 수연이 귀신과 눈이 마주쳤던 것이다. 눈이 마주친 순간 수연이 귀신이 말했다.

 

“응, 너 여기 있었구나.”


 

 

상상해보시라. 눈앞에 귀신이 거꾸로 선 채 머리를 땅에 찧으면서 다가오는 순간을. 이 괴담이 유행했던 시절에 이 귀신을 모르는 학생들이 없을 정도였다.

 

 

 

 

이 괴담이 큰 인기를 끌게 되자 다양한 바리에이션(variations)이 나왔다. 귀신을 친구로 설정하여 성적지상주의의 경쟁 체제를 비판하는 뉘앙스까지 전달하기도 했다. 또한, 화장실 대신에 교탁 밑에 숨다가 귀신에 발각되는 전개의 괴담도 있었다.

 

《공포특급》에는 김새는 허무한 이야기도 몇 편 있었다. 이런 이야기는 일반적인 괴담같이 공포감을 유발하기 위한 목적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무섭게 연출을 해보지만, 마무리는 썰렁한 유머로 끝낸다. 그렇다고 해서 허무개그 식의 괴담이 완전 쓸모없는 것은 아니었다. 괴담을 실감 나게 들려주는 능력이 있는 괴담 이야기꾼들(일본에서는 ‘미스터리 텔러’라는 이름의 전문적인 직업이 있다)은 청자들의 경직된 긴장감을 풀어주려고 이런 이야기 하나쯤 해준다.

 


 

* 엄마는 밤마다 밖으로 나간다 (143쪽)

 

 

 

 

 

 

우리가 어렸을 때 한 번쯤 들어본 괴담들은 십중팔구 《공포특급》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비록 아주 오래전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오던 괴담들을 모아 한 권의 책에 정리한 수준이지만, 《공포특급》 인기는 예상과는 달리 하늘을 치솟았다. 공포 코드에 재미 들린 국민은 좀 더 자극적이고 색다른 괴담을 듣고 싶어 했다. 여기에 맞춰 《공포특급》 시리즈가 연속으로 출간되었고, ‘공포’가 들어간 각종 아류작까지 무수히 나오게 되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임에도 괴담이 국민에게 미친 파급 효과는 정말 대단했다. 1970년대 말부터 80년대 말까지는 <전설의 고향>이 대한민국의 여름을 책임져 준 공포물이었다면, 90년대 초중반은 도시를 배경으로 한 《공포특급》이 대세였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평범하다고 여기던 학교, 아파트 같은 장소를 공포 이야기의 장소로 내세운 방식은 그 당시로선 획기적인 스토리텔링의 전형이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공포특급》이 우리 곁에서 홀연히 사라졌는가. 그 속에 있는 이야기들은 꾸준히 살아남은 반면, 괴담의 진원지라고 할 수 있는 책은 거의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1993년 한뜻출판사에서 나온 《공포특급》이야말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최고의 괴담 집이다. 그러나 큰 인기를 받았던 원조는 ‘미투(me too) 제품’의 함정에 피할 수 없었다. 적지 않은 수의 아류작들에 점차 밀려나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잊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괴담 이야기꾼들은 ‘내가 누군가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 혹은 ‘실제로 누군가가 겪은 이야기’라는 형식으로 괴담을 들려주기 시작한다. 그러면 청자는 괴담의 진원지가 어딘지 모르는 상태에서 괴담을 이해하고 기억한다. 영상 기술이 나날이 발전되어 갈수록 공포영화 또는 공포 동영상의 수준이 한층 더 높아졌다. 당연히 문자 형태의 괴담 집은 시각적인 공포 효과를 주는 영상 기기의 수준을 따라올 수 없었다. 90년대 후반부터 괴담 집은 점점 퇴행의 길을 걷게 되었고, 어린이 독자들을 위한 유치한 공포물로 전락했다.

 

《공포특급》은 우리에게 많은 양의 괴담들을 남겨주고, 레테의 강물 속에 산화되어 사라졌다. 이 땅에 괴담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에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그나마 소수의 독자만이 얼마 안 남은 추억의 파편들을 모아 기록으로 남겨 이 책의 존재를 알리고 있을 뿐이다. 《공포특급》이 90년대 대중문화에 끼친 영향을 진지하게 고찰해본 서평이 단 한 편도 없다. 괴담을 아이들이 즐기는 유치한 창작물이라는 편협된 인식이 남아 있어서 그런 것일까. 비록 책 보는 안목이 부족하지만, 우리가 잊고 있었던 《공포특급》의 가치를 확인해보고 다시금 상기하기 위해서 첫 서평을 남겨본다. 출간된 지 무려 22년이나 지난 책의 서평을 남기는 기분이 특별하다. 책의 별점에 대해서 이견이 있을 거로 본다. 이 책의 장점과 가치를 아는 대로 최대한 알리려는 마음을 알아주고 너그러이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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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2-19 20: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들었던 무서운 이야기네요.
잘 읽었습니다.
cyrus님 ,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cyrus 2016-02-20 09:49   좋아요 2 | URL
지금은 이런 이야기들은 시시하게 느껴져요.

주말 잘 보내세요. ^^

오거서 2016-02-19 20: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글 내용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남들이 시도하지 않는 서평을 남기려는 노력에 먼저 박수를 보냅니다! 열정 없이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구요! 수고하셨습니다.

cyrus 2016-02-20 09:52   좋아요 2 | URL
글의 내용을 칭찬하는 것보다 이런 말씀이 더 고맙게 느껴집니다. ^^

clavis 2016-02-19 21: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흑흑 밤에 이 글을 읽어버렸으니 이 무서움을 어떡하지요ㅠㅠ

cyrus 2016-02-20 09:53   좋아요 2 | URL
괴담도 유행을 심하게 타는 편이라서 90년대 괴담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없을 겁니다.. ^^;;

akardo 2016-02-19 22: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여름 가까워질 무렵이면 학교 쉬는 시간에 애들이 모여 무서운 이야기를 하곤 했었죠,ㅎ 밤에 무서울 걸 알면서도 호기심 때문에 안 들을 수 없었는데......무서운 이야기는 은근히 중독성이 강한 것 같아요.

cyrus 2016-02-20 09:55   좋아요 2 | URL
맞아요. 저도 그런 추억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괴담을 선호하는 이유를 잘 설명해주셨습니다. ^^

transient-guest 2016-02-20 11: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국민학교 때 들었던 12가지 비밀이 떠오릅니다 ㅋㅋ 아직도 무서워요
 

 

 

 

 

어느 날, 나는 숲을 헤매게 되었다.
밤이 되어 배도 고파졌다.
그런 가운데, 한 식당을 찾아냈다.
이상한 이름의 식당이다.
나는 인기 메뉴인 ‘나폴리탄’을 주문한다.
몇 분 후, 나폴리탄이 온다. 나는 먹는다.
어쩐지 이상하다. 짜다. 이상하게 짜다. 머리가 아프다.
나는 불평을 늘어놓았다.

점장 : 죄송합니다. 손님, 다시 만들겠습니다. 돈은 받지 않아도 좋습니다.

 

몇 분 후, 나폴리탄이 다시 나온다. 나는 먹는다. 이번에는 멀쩡하다.
나는 식당을 나온다.


잠시 후, 나는 눈치 채고 말았다……
여기는 어떤 레스토랑……
인기 메뉴는…… 나폴리탄……

 

 


이것은 한때 일본의 인터넷에서 유행했던 괴담이다. 괴담의 내용이 아리송하다. 이 글을 다시 읽어보자. 괴담의 주인공은 식당에 ‘나폴리탄’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음식을 주문한다. 그는 음식을 먹다가 두통에 시달린다.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점장에게 불평한다. 점장은 새로 만든 나폴리탄을 대접한다. 다행히 주인공은 방금 전과 다르게 음식을 잘 먹었다. 음식을 다 먹고 식당을 나온 주인공은 갑자기 무언가를 알아차렸다. 그런데 허무하게도 괴담은 주인공이 눈치를 챈 ‘그것’이 뭔지 알려주지 않고 끝을 맺는다.

 

 

 

 

 

 

나폴리탄이 뭐죠? 스파게티인가요?

 

 

 

이 괴담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궁금증을 마구 쏟아낸다. 나폴리탄이 어떻게 생긴 음식일까? 주인공이 왜 음식을 먹다가 두통을 겪은 것일까? 그리고 주인공이 눈치를 챈 것이 무엇일까? 사람들은 괴담에 숨겨진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이 괴담이 인터넷상에서 널리 알려지자 괴담을 자유롭게 해석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하지만 괴담의 수수께끼를 명쾌하게 푸는 사람이 없다. 이 괴담을 해석하는 일 자체가 무의미하다. 그래도 괴담에 흥미를 붙인 사람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괴담의 비밀을 파헤친다. 이러한 과정에 괴담 원본을 참고해서 만든 새로운 버전의 괴담이 새롭게 탄생되기도 한다.

 

이처럼 정체를 알 수 없는 대상 혹은 인물을 주요 소재로 삼는 괴담 형식을 나폴리탄(Napolitan, ナポルリタン) 괴담이라고 한다. 나폴리탄 괴담이 생소한 사람은 한 번쯤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원래 괴담은 무서워야 재미있잖아요. 그런데 나폴리탄인지 나폴레옹인지 뭔가 하는 이 괴담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서워해야 하는 거죠? 별로 무섭지 않은데요. 제가 봐도 이야기가 싱겁고 허접한데 일본 사람들은 왜 이런 걸 좋아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돼요.」

 

 

끄덕끄덕.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폴리탄 괴담을 하나의 수수께끼로 받아들이면 재미없다는 식의 반응이 나온다. 왜냐하면 나폴리탄 괴담과 우리가 평소에 아는 괴담의 형식을 같이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섭게 들었던 괴담은 레퍼토리가 딱 정해져 있다. 기승전결이 확실하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 일반적인 괴담 형식 1 : <전설의 고향> 괴담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죽어간다. 건강하던 사람들이 연달아 죽게 되자 마을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더욱이 그들이 죽어가는 이유가 밝혀지지 않게 되자, 생존한 마을 사람들은 오랫동안 방치된 공동묘지의 영혼이 내린 저주 때문에 흉흉한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호기심 많은 주인공은 마을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알기 위해 인적 드문 공동묘지로 향한다. 그곳에서 주인공은 심령 현상을 겪는다. 엄청난 공포감의 압박 속에서도 주인공은 마을의 저주를 풀어줄 귀신을 만난다. 처음에 심령 현상에 벌벌 떨던 주인공은 귀신의 고민을 귀담아 들어주는 대인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귀신은 주인공 앞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의 불만을 모조리 털어놓는다. 이것이 바로 ‘고스트 힐링 캠프’다. 묵었던 감정들을 다 풀어낸 귀신은 저주를 없애기로 한다. 마을은 예전처럼 평화를 되찾았다. 지금도 그 마을에 가면 귀신이 떠도는 공동묘지가 있다고 한다. 끝」

 

 

* 일반적인 괴담 형식 2 : 엘리베이터 괴담
「고층 아파트에 살고 있는 소녀는 왠지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기가 두려웠다. 혼자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꼭 누군가가 자기를 노려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더구나 학교 보충 수업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밤늦은 시간에는 너무 무서웠다.

 

“엄마, 엘리베이터 안에서 누가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아서 무서워.”
“그럼 엄마가 마중을 나갈까?”

 

보충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소녀는 엄마가 나와 있는 것을 보고 안심이 되었다. 소녀는 엄마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는 스윽 올라가기 시작했다.

 

“엄마, 이제는 하나도 무섭지 않아.”

 

엄마는 소녀를 그윽이 바라보며,

 

“넌 내가 네 엄마로 보이니?”」

 

 

 

괴담 형식 1은 옛날 할머니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무서운 이야기, <전설의 고향> 에 나올 법한 형식이다. 이런 이야기에는 늘 귀신이 등장한다. 귀신은 아이들을 겁주는 게 특효약이다. 괴담 형식 2는 90년대에 유행했던 엘리베이터 괴담이다. 이거 모르는 사람 있으려나? 아무튼 여기서도 귀신이 등장한다. 이 두 개의 괴담의 ‘뽀인트’는 뭐라 할 것도 없이 귀신이다. 괴담 문화가 발달된 일본에는 괴담이나 도시전설을 아주 맛깔나게 들려주는 사람을 ‘미스터리 텔러(Mystery teller)’라고 말한다. 미스터리 텔러는 괴담에서 제일 무섭게 느껴지는 뽀인트를 안다. 그걸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채 이야기를 전달하면 청자들은 지루해한다. 유능한 미스터리 텔러는 청자들이 무서운 이야기에 몰입하게 한다.

 

이제 일반 괴담과 나폴리탄 괴담의 차이가 느껴지는가. 나폴리탄 괴담은 이야기의 진실이 숨겨진 복선조차 없다. 이야기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맥거핀(MacGuffin)이다. 맥거핀은 청자들의 호기심을 유발할 뿐, 별 의미가 없는 내용이다. 그래서 나폴리탄 괴담이 아무 의미 없는 싱거운 이야기처럼 보이게 된다. 그러나 나폴리탄 괴담의 장점은 이야기의 소재를 미지의 대상으로 설정함으로써 신비스럽고 불가사의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있다.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이 더 무섭게 느껴진다. 이렇듯 이야기에 밝혀지지 않는 미지의 소재도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러한 매력에 흠뻑 취한 나폴리탄 괴담 마니아들은 괴담에 채워지지 못한 미지의 요소들에 대해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오늘 뜬금없이 나폴리탄 괴담을 소개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공포문학의 특징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나폴리탄 괴담의 사례를 가져와 봤다. 나폴리탄 괴담 또한 인터넷상에서 통하는 하위문화로 알려졌지만, 사실 오래전부터 나폴리탄 괴담은 하나의 문학적 장치(Plot)로 사용되어 왔다. 

 

 

 

 

 

 

 

 

 

 

 

 

 

 

 

 

 

 

 

 

 

 

 

 

 

 

 

 

 

 

 

 

 

 

 

 

 

 

 

 


 


나폴리탄 괴담의 효과를 이용한 작품으로 공포문학의 초석을 다진 대표적인 작가가 바로 러브크래프트다. 더 이상 말이 필요한가. 그의 명성을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스티븐 킹을 있게 한 조상님 되시겠다. 공포문학의 아버지가 에드거 앨런 포라면 어머니는 러브크래프트다. (러브크래프트는 유년 시절에 여장을 하고 다녔다고 한다)

 

러브크래프트는 뚜렷한 실체의 영혼을 다루기보다는 미지의 대상에서 비롯되는 원초적 공포를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대체로 음울한 분위기의 장소 속에서 혼자 헤매면서 알 수 없는 공포감에 사로잡힌다. 주인공들의 심장을 조여 오는 미지의 대상이 어떤 건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는다. 러브크래프트는 자신이 만든 미지의 창조물 정체를 독자의 상상력에 맡긴다. 그래서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즉 나폴리탄 괴담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은 작품의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어떤 독자는 이야기를 모호하게 만든 러프크래프트를 마치 어설픈 작가로 취급하기도 한다. 그런 내용의 서평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러브크래프트 작품의 매력을 몰라도 너무 몰라서 이런 반응이 나온다. 나폴리탄 괴담에도 일반 괴담과 다른 특별한 묘미가 있다. 나폴리탄 괴담을 어설픈 창작물이 아닌 독창적인 이야기로 보는 시선이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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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6-02-19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괴담 형식 1은 주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귀신의 모습에서 공포를 유발했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 <전설의 고향>에서 `내 다리 내놔~~` 이런 내용의 이야기에 정말 무서웠거든요. 불 끄고 누웠을 때, 장롱 위에서 귀신이 나올까봐 머리 끝까지 이불 뒤집어쓰고 잤던 기억이 있습니다.
진짜 무서운 괴담은 괴담 2 인 것 같아요. 사람들을 섬찟하게 하는 마지막 포인트에 옹기종기 모인 친구들이 비명을 지르곤 했죠.
나폴리탄 괴담은 처음 들어봅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스파게티 이름이군요. 작가와 청자의 합작으로 완성되는 괴담인 것 같은데, 괴담이 되는 코드가 잘 이해되지는 않네요. 도무지 마지막 부분의 어느 포인트에서 섬찟해야 하는 건지ㅎㅎ^^; 김제동의 <톡투유>에서 주제가 나오기 전에 이루어지는,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도 생각나구요.
어쨌든 cyrus님 덕분에 바닥을 깔고 있던 제 지식이 나날이 업그레이드 되고 있습니다. 감사드려요~~^^

cyrus 2016-02-19 14:46   좋아요 1 | URL
‘내 다리 내 놔’ 전설이 정말 유명한데, 잊고 있었습니다. 괴담 2가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을 법한 느낌이 들어서 무섭게 느껴지죠.

인터넷에서 나폴리탄 괴담을 검색해보면 정말 많은 괴담들이 나옵니다. 대체로 짧아요. 그래서 어떤 것은 정말 임팩트가 강하게 남아 있어서 널리 회자되는 것도 있지만, 일반인들의 창작이라서 그런지 어설픈 것도 있습니다. ^^

stella.K 2016-02-19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딴 얘기긴한데,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란 영화를 얼마전 두번째로 보았지.
여성 영화로는 델마와 루이즈와 쌍벽을 이루는 영환데,
어쨌든 그 음식이 어떤지 궁금해. 바삭거리는 소리가 나거든.
토마토를 아무리 기름에 지져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소리가 나느냔 말야?
니가 스파게티를 얘기하니까...후후.
그런데 괴담 2는 어느 정도 예견이 되는... 그래서 별로 웃기진 않았다.
저 책 읽어보고 싶긴하다.^^

마녀고양이 2016-02-19 13:09   좋아요 0 | URL
전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책의 레시피 때문에,
다섯 번 정도 읽은 것 같아요. 책에서는 더 바삭거리는 느낌이어서 도리어 영화가 그냥 그랬어요. 심지어, 토마토 튀김을 집에서 실제로 해보기도 했다니까요.
근데 망쳤어요. ㅋㅋ

stella.K 2016-02-19 14:04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러니까요. 그 바삭거리는 식감이 어떻게 가능하냐구요?
영화에서도 보면 나중엔 그걸 싸 가지고 양로원까지 가지고 오는데
죽 되는 게 맞는 건데 아삭거리면서 먹기까지 하잖아요.
근데 책으로도 나와 있군요.

cyrus 2016-02-19 14:50   좋아요 0 | URL
엘리베이터 괴담은 여러 가지 버전이 있는데 제가 소개한 것은 고전이죠.

토마토를 튀기지 않는 이상, 바삭거리는 식감의 음식으로 만들기 어려워요. ^^;;
 

 

 

 

펭귄은 바다표범을 무서워한다. 바닷물 속에서 먹잇감을 찾다가 그만 자신이 바다표범의 먹잇감이 된다. 펭귄들이 살아남으려면 바다표범이 살지 않는 안전한 바다를 찾아야 한다. 이럴 때 ‘퍼스트 펭귄(first penguin)’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는 겁이 많은 펭귄들을 대신하여 바닷속으로 뛰어든다. 그의 용기 있는 행동을 본 펭귄들은 퍼스트 펭귄을 따라서 바다로 들어간다. 바다를 헤엄치며 이동해야 할 때도 퍼스트 펭귄이 가장 먼저 앞장선다. 펭귄 무리는 그의 행동을 믿고 의지한다. 

 

그러나 퍼스트 펭귄이 바다표범에 잡혀 죽는 불상사가 생겼다. 살아남은 펭귄 무리는 퍼스트 펭귄이 끔찍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그저 지켜봐야 했다. 또다시 다른 육지로 이동해야 할 시기가 찾아왔다. 펭귄들은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 여기 한곳에 오래 있으면 북극곰에게 발각될 수 있다. 이번에도 퍼스트 펭귄이 나서야 할 때다. 그런데 펭귄들은 서로 눈치만 볼 뿐,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퍼스트 펭귄이 되면 집단을 위해 자기희생을 감수하는 막중한 책임감이 따른다. 그걸 잘 알기에 아무나 퍼스트 펭귄이 나오기만 기다린다. 그러자 한 펭귄이 침묵을 깨고 바닷속으로 뛰어든다. 그는 계속 기다리기만 하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자신이 퍼스트 펭귄이 되기로 했다. 새로운 퍼스트 펭귄은 물속 주위를 확인하고 바다표범이 없다는 사실을 육지의 펭귄들에게 알렸다.

 

“얘들아, 지금은 안전하니까 얼른 물속으로 내려와!”

 

그러나 육지의 펭귄들은 우두커니 서서 퍼스트 펭귄을 쳐다봤다. 이들은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왜 그래? 안 갈 거야?” 퍼스트 펭귄이 재촉하자 펭귄 무리 중 하나가 이렇게 말했다.

 

“네가 안전하다고 말해도 물속에 들어가기가 무서워.”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개마고원, 2013)와 《공부 중독》(위고, 2015)은 삶의 변화를 두려워하는 집단적 공포에 지배당한 우리 사회에 경각심을 주는 책이다. 오찬호, 엄기호, 하지현. 이 세 사람은 성과에 집착하도록 유도하는 현 교육 체제의 문제점을 공유한다. 그리고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의지를 갖춘 ‘퍼스트 펭귄’들이다.

 

오찬호는 지금의 20대들에게 자기계발의 환상적 주문에서 빠져나오라고 당부한다. 자기계발 시대 속에 살아가는 20대들은 ‘뜨거운 열정’을 보여주려고 애쓴다. 젊은이들은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만 있다면 ‘열정 페이’를 해서라도 자신의 열정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기업이 원하는 ‘뜨거운 열정’이 구체적이지 않은데도 의심할 겨를 없이 자신들의 하나뿐인 청춘을 끊임없이 담금질한다. 너나 할 것 없이 전국의 젊은이들이 ‘열정’을 보여주려고 난린데, 취업이 무난하게 될 리 없다. 취업이 안 된 친구들은 점점 입이 바짝 타기 시작한다. 이제 서른이 코앞인데 변변한 직장을 갖지 못하면 왠지 사회에서 뒤처지는 기분이 든다. 수차례 낙방하면 깊은 좌절감에 빠진다. 주변 어른들은 그들에게 위로 같지 않은 위로를 한다.

 

“젊은이, 좌절하지 말고 더 노오오오력해보시게나.”

 

젊은이들은 자신이 무능력해서 연거푸 실패의 쓴잔을 들이켜 마신다고 생각한다. ‘취업 준비 중’인 젊은이들은 비좁은 고시원 방에 갇힌 채 두꺼운 자격증 문제집을 끼적거린다. 그들의 방문 앞에 ‘지금도 노력 중’이라는 푯말이 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20대들은 이렇게 침잠한 잉여 상태로 청춘의 끝자락을 보낸다.

 

 

 

 

 

‘지금도 노력 중’ 상태로 맞춰 살아가는 20대들은 엄청난 양의 공부에 중독되어 있다. 어른들은 공부가 재미없어도 미래를 위해서라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명문대에 입학해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고, 죽을 때까지 넉넉하게 돈을 만지면서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누구나 다 공부하는 시대가 된 지금, ‘공부 성공론’의 신화가 산산이 부서졌다.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는 어른들, 그리고 그 밑에 자란 아이들은 공부가 자신들의 성공을 보장해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착각한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은 자신의 초라한 성적에 실망한다. 어른들이나 학교 또한 마찬가지. 성적을 기준으로 학생들의 능력을 평가한다. 공부에 소질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학생들은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찾으려고 고민한다. 그런 와중에 선택하는 것이 바로 자기계발이다. 학교 성적이 형편없어도 학교 밖에서 하는 자기계발을 잘하면 중졸이든 고졸이든 사회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을 거로 기대한다. 20대들은 자기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선택지가 무수히 많다. 그런데도 먼 곳에 있는 선택지를 보지 못한다. 그들의 눈에 보이는 선택지는 공부와 자기계발이다. 이 둘 중 하나만 잘하면 성공하는 인생이 보장된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주체적으로 살아가야 할 결정적인 시기가 찾아오면 부모들은 벌써 자식의 미래를 걱정한다. 그리고 자식이 공부하라고 주문한다. 성공을 위한 왕도(王道)가 공부임을 철석같이 믿는 어른들은 아이들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면서 끼여든다. 자식의 성공을 바라는 욕망이 지나칠수록 아이들은 머리만 좋을 뿐, 사회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하지현은 과열된 교육열로 너무 뜨거워진 우리 사회에 투덜대려고 대담을 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이러한 문제점의 심각성을 파악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그러면 다수의 사람을 한쪽 길에만 움직이게 하는 ‘공부’ 드라이브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다고 확신한다. 하지현뿐만 아니라 오찬호, 엄기호도 공부 에너지만 내는 ‘Made in Korea’ 교육 드라이브에 브레이크를 걸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그걸 지켜보는 독자들도 자신들과 함께 브레이크를 걸자고 제안한다. 설마, 자신들과 문제점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줄줄이 나오기만 기다려보자는 건 아니겠지. 사실은 이미 몇 년 전부터 대한민국 교육의 문제점을 깨달은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공부’ 드라이브를 멈추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대한민국 사회는 너무나 오랫동안 공부에 중독되었다. ‘공부가 전부’라는 인식을 쉽게 버리지 못했을뿐더러 그 문제점을 알면서도 개선의 시작을 어디부터 잡아야할지 함께 공유해본 기회가 적었다. 그러니까 문제점은 누구나 다 알면서도 변화할 의지를 제대로 표출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오찬호, 하지현, 엄기호 같은 퍼스트 펭귄들이 계속 등장하여 사회에 태클을 여러 차례 걸어봤다. 그러나 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하여 겁이 많은 펭귄들처럼 그냥 그들의 행동을 바라만 봤다. “아, 맞아! 그들이 지적하는 말은 맞아, 그런데 지금까지 해온 걸 막상 포기하자니 두려워.” 기존 사회 체제에 익숙해진 기성세대들은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고통을 꾹 참고 지내왔다. 오로지 경제적으로 성공한 삶을 누리려고 말이다. 지금의 20대들은 어른들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당연히 그들의 말에 경청하고 따르면서 자랐으니까. 그렇게 공부에 중독된 아이들은 이러지도 저러지 못하는 구경꾼, 잉여가 된다. 앞으로 이런 교육 문제를 논하기 전에 우리는 각자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알아야 한다. 우리 자신에게 한 번 물어보자. 과연 나는 사회를 개선할 마음이 있는 퍼스트 펭귄인가, 아니면 문제점이 뭔지 알면서도 고치려는 일에 자신 없어하는 겁 많은 펭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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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6-02-17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전하게 위대해지는 길은 없다!˝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용감하게 처음 바다에 뛰어드는 퍼스트 펭귄

다만, 퍼스트펭귄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cyrus 2016-02-18 14:05   좋아요 0 | URL
집단 속에 퍼스트펭귄 역할을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로 정해서 분담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니데이 2016-02-17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cyrus 2016-02-18 14:06   좋아요 0 | URL
좋은 하루 보내세요. ^^

나비종 2016-02-17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기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거라고 하더군요.
아직까지 저는 겁 많은 펭귄인 것 같습니다ㅡㅡ;

cyrus 2016-02-18 14:13   좋아요 1 | URL
저도 그렇습니다. <공부 중독>의 엄기호 씨의 지적에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미디어가 많아질수록 시민들은 어떠한 사회 문제 앞에서 의견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사회 문제를 구경하면서 말할 뿐이지, 참여자의 자세라고 보기 어렵죠. 그냥 사회 문제를 품평하는 언어만 남을 뿐이다. 사람들은 사회 문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면 마치 참여자의 입장이라고 착각하는 거죠. 오래된 문제점을 개선하려면 판을 갈아 엎어야 합니다.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할 수 있어도 막상 실현되기 시작하면 불안해요. 기존 체제에 너무 익숙해졌으니까요.

프레이야 2016-02-17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험하게 살아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cyrus 2016-02-18 14:17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이 하신 말이 오늘 처음 본거라서 무슨 뜻인지 알아보려고 검색해봤습니다. 니체가 한 말이었군요.

북다이제스터 2016-02-17 21: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퍼스트는 기성 세대가 되어야 하는데, 겁 많은 펭귄이 되어 버렸죠. 그중 대표는 이 책에서 소극적 대책을 제시하는 저자 오찬호와 젊은 세대에게 모든걸 떠 넘기려는 장하성 교수라고 생각됩니다.
분석이 잘 되었지만, 젊은 세대가 분명 비분강개할 책입니다. 억울합니다.

cyrus 2016-02-18 14:24   좋아요 1 | URL
<공부 중독>의 평점을 저는 별 세 개를 줬습니다. 솔직히 별 네 개, 다섯 개 평점 수준은 아니었어요. 하지현 씨 같은 경우도 소극적인 대책을 제시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엄기호 씨가 조금이라고 태클을 걸지 못한 점이 아쉬웠어요. 두 사람이 서로 치고받고 의견 차가 나는 대담이 재미있는데, <공부 중독>은 그런 재미가 없었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2-17 21: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에세이`라면 재미있는 책이라 생각하지만 사회학 서적이라면 단점이 많은 책이라 생각됩니다. 이 책은 작은 채집군(자신의 행동 반경인 대학 속 자신이가르치는 강의 속 학생들)을 가지고 20대 젊은이 전체를 분석한다는 측면에서 치명적 오류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제가 이 책이 단순한 에세이라면 인정하지만 사회학이라고 했을 때는그리 좋은 책은 아니라고 말하는 이유인데요. 뭐.. 그렇습니다. 횡성수설하네요.. ㅎㅎㅎㅎ

cyrus 2016-02-18 14:27   좋아요 0 | URL
횡설수설이라뇨? 맞는 말씀하셨는데요. ㅎㅎㅎ

곰발님이 지적한 점에 저도 공감합니다. 그리고 자기계발서를 비판하는 내용은 독창적이지 않았습니다. 이미 그 전에 그런 주장을 한 책이 있었고, 오찬호 씨는 그 책의 내용을 참고했더군요.

만병통치약 2016-02-17 2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과거에는 첫번째 펭귄이 뛰어들면 나머지들도 같이 뛰어들어서 집단이 도하에 성공했고, 첫번째 펭귄은 죽어서 영웅이 되거나 살아서 영웅이 되었죠(국회의원도 되고요) 하지만 요즘은 뛰어드는 펭귄만 뛰어들고 나머지는 구경만 하는 것 같습니다. 영화 아일랜드처럼 추첨에 뽑힐 날만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자신만 어떻게 살아 나갈 궁리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어느 책을 읽으니 펭귄들이 자발적으로 뛰어 들기도 하지만 밀기도 한다는데요? ㅋㅋ)

cyrus 2016-02-18 14:34   좋아요 0 | URL
펭귄들이 자기가 나서기 싫어서 만만한 놈을 골라서 미는 거 아닐까요? ㅎㅎㅎ

위에 나와같다님 댓글을 보면서 방금 그 생각을 했었습니다. 퍼스트 펭귄이 무조건 한 사람이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어요. 이러니까 이 한 사람만 너무 억울해요. 호기롭게 퍼스트 펭귄이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는데, 실패를 해보십시오. 비난에 대한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런 상황을 잘 알기에 눈치를 살살 보면서 슬그머니 빠지는 거죠.

고양이라디오 2016-02-17 2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조금 다르게 비유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과연 오찬호교수가 퍼스트 펭귄일까요? 그는 이미 다른 안전한 육지로 건너간 펭귄은 아닐까요? 그곳(다른 육지)에서 바다에 뛰어들지 못하는 소극적인 펭귄들에게 바다로 뛰어들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육지보다 바다가 안전하다는 보장도 없는데 말입니다. 자기계발과 공부(육지)를 포기하고 바다로 뛰어들면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지 의문입니다. 소극적인 펭귄들에게는 바다에서 바다표범을 몰아내주거나 그들이 살고있는 육지를 더 넓혀주는 일이 더 절실하지 않을까요? 현실을 바꾸지하고 펭귄들에게 먼저 변하라고 하는 것은 잡아먹힐지도 모르는 펭귄들에게는 전혀 와닿지 않을 것 같습니다.

cyrus 2016-02-18 14:44   좋아요 1 | URL
남극의 상황을 비유해서 말하자면 고양이라디오님의 말씀은 얼음으로 된 육지(교육제도)를 사라지지 않도록 하자는 뜻이겠죠? 그러면 펭귄들이 육지를 떠날 일이 없으니까요. 어제 작성한 글 후반부에도 언급했듯이 <공부 중독>의 하지현 씨의 해결책에 실망했습니다. <공부 중독> 3부 제목이 ‘중독에서 해독으로’입니다. 저는 이들의 해결책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어도 뭔가는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확인해봤습니다. 그런데 허무하게도 교육 제도의 문제점을 깨달은 사람들이 많아지길 좋겠다는 식으로 말하더군요. 정신 차린 사람들이 더욱 많아져야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다고 낙관적으로 봤습니다. 결국 고양이라디오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하지현 씨의 발언은 공부에 중독된 시민들이 얼른 정신 차리고 변화하라고 요구하는 의미가 됩니다. 그래서 변화를 주저하는 시민들(펭귄들)은 사태를 심각하다는 걸 알면서도 이를 개선하려는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사실에 변화를 주저하는 것 같습니다. 고양이라디오님의 의견에 동의하는 입장에서 제 생각을 다시 정리해봤는데, 제가 라디오님의 의견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해가 안 되거나 잘못된 점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고양이라디오 2016-02-18 15:05   좋아요 1 | URL
제 이상한 비유를 알아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현 교육제도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 교육제도의 문제점을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저는 당장에 달리는 마차에서 뛰어내리라고 강요하는 것은 조금 현실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현교육제도는 입시와 취업위주로 되어있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많은 사람들이 전공을 살리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입장에서는 학업성적과 연봉과의 상관관계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 한국사회의 현실입니다. 여유가 있어야 다른 곳에도 눈을 돌릴 수 있는데 그 `여유`가 우리사회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안전장치, 기회의 부족, 심각한 임금과 고용불평등을 해결하지 않고 마냥 자기계발과 공부를 포기하라고 하는 것은 말그대로 생계를 포기하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겉으로 드러난 증상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병의 근원과 본질을 치료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비유하자면 우리사회는 감기에 걸려있습니다. 기침, 콧물, 두통, 발열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데 기침을 못하게 막는다고 콧물을 못 흘리게 막는다고 감기가 낫지는 않습니다. 면역력을 키워주고 바이러스를 잡아줘야 감기가 낫는 것입니다. 공부중독은 증상입니다. 그 원인을 찾아서 치료하면 공부중독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입니다.

cyrus 2016-02-18 15:13   좋아요 1 | URL
이상한 비유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비유를 들면서 의견을 밝히는 댓글 내용이 좋았습니다. 학업이 성적 그 다음에 취직에 직결되기 때문에 시민들 입장에서는 이걸 한꺼번에 포기하고 바꾸자는 지식인들의 조언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상황입니다.

yamoo 2016-02-20 22:15   좋아요 2 | URL
고양이라디오님..

저는 당장에 달리는 마차에서 뛰어내리라고 강요하는 것은 조금 현실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현교육제도는 입시와 취업위주로 되어있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많은 사람들이 전공을 살리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입장에서는 학업성적과 연봉과의 상관관계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 한국사회의 현실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체제를 인정하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고양이라디오 님이 말씀하시고 계신 논점의 핵심은 오찬호 교수를 비판하고 있는 바로 그 지점입니다.

바뀌려면 김예슬 같은 학생이 대학생, 고등학생, 중학생 할 것 없이 계속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바뀔 낌새라도 있지요. 헌데 그런 시도를 한 김예슬 양은 운이 좋아 시민단체에서 근무하지 백수로 낙인찍힐 위험이 매우 높았습니다. 우리사회에서 내부고발자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알면 이런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뀌는 게 없는 거죠. 체제를 인정하고 있는데 어떻게 변화가 일어나겠습니까? 말씀하신 `원인을 찾아 치료하는`게 어떻게 가능한지요. 체제를 인정하는 순간..저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래서 비슷한 양상의 비판서만 줄창 나오는 거 같습니다.

고양이라디오 2016-02-20 23:06   좋아요 1 | URL
야무님 의견에 저도 동의합니다. 위험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좋겠죠. 하지만 제 의견은 체제를 인정하고 옹호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현 체제에서는 그 체제에서 벗어나는 선택을 하는 것이 개개인에게 위험부담이 큰 것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개개인에게 그런 선택을 강요할 수는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원인을 찾아서 치료한다.` 는 것은 현 체제를 개선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말입니다. 제가 염두에 두고 있는 해결책은 북유럽국가들의 복지모델입니다. 우리나라의 불평등지수는 OECD국가 중 4위라고 합니다. 임금과 고용불평등이 심하기때문에 다들 대기업취업이나 공무원같은 안정적인 직장을 선호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고 현 체제의 문제점이 아닐까요? 이런 문제점을 그대로 둔 채 개개인에게 다른 선택을 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그 개개인이 이런 현실을 인식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고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yamoo 2016-02-18 01: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근데 중요한 건 저런 문제 진단 뿐이라는 거...교육 실상은 전혀 바뀌지 않는데, 이런 책에서 계속 말해 봤자, 대안 없는 비판만 있는 듯해서 좀 거시기 합니다. 교육 관료와 정치인을 바꿔야 하는데, 정작 소리를 내야하는 주체는 그냥 아무 생각없이 체제를 따르고만 있습니다. 김예슬 같은 학생이 고교에서 무더기로 나와야 정치적 쟁점이 되는데, 학자들이 맨날 대안없는 비판만하면 어쩌라는 건지...계속 계란으로 바위를 쳐도 교육 시스템 자체가 바뀔 생각을 않는데....퍼스트 퓅귄을 떠나 이런 비판이 대안 없는 메아리 같아 식상합니다. 김예슬 선언이 훨씬 강도가 높았다고 생각됩니다만...개인적으로 퍼스트 펭귄은 김예슬 같습니다만..

cyrus 2016-02-18 14:52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매년 이런 책을 내는 지식인들의 목소리를 커져만 가는데, 정작 이걸 들어야 할 사람은 안 듣게 되니 거시기하죠. 그래서 살기 위해서 사회 체제에 적응하는 시민들만 어중간한 위치에 있죠. 지식인들은 “시민들아, 정신 차리자!”라고 외치는데, 정부는 “시민들아, 우리가 교육제도를 다시 손 봤으니 이번에 믿어 달라”고 말하고 있으니 답답하죠. 그래도 시민들이 제도에 불만족스러우면 지식인들은 마치 시민들의 불만사항을 대변하듯이 투덜거리죠. 정부랑 말이 안 통하니까 시민들을 향해 간접적으로 비판을 하죠.

김예슬 씨는 요즘 뭐하는지 궁금하네요. 그녀의 주체적인 행동은 정말 대단했죠. 제가 잠시 김예슬 씨를 잊고 있었어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준 퍼스트 펭귄으로 비유하면 김예슬 씨가 어울립니다.

고양이라디오 2016-02-20 23:05   좋아요 0 | URL
야무님이 이 글에서 말씀하신데로 교육시스템의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김예슬같은 학생이 몇몇 나와도 단발성으로 끝나고 말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학생들이 단체로 합의해서 무더기로 현 교육체제를 거부하는 일이 벌어질리도 없을 것 같고요.

마녀고양이 2016-02-19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부분은 제 직업으로 인해 굉장히 고민하는 문제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공부를 하지 않으면 어떤 길로 갈 수 있나에 대해 아직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어요.
거기다 사회가 워낙 취업이 어렵고, 양극화가 심하니 불안할 수 밖에 없구요. ㅠㅠ

우리 기성 세대는 사이러스님같은 20대에게 미안해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만난지 오래 되어서, 아직 20대가 맞나요?)

cyrus 2016-02-19 14:53   좋아요 0 | URL
거짓말 안 하고 올해가 마지막 20대입니다. ㅎㅎㅎㅎ

정작 교육 사업으로 수익만 챙기는 사람들이 반성해야 하는데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공부해야하는 평범한 시민들만 반성하는 상황은 잘못됐다고 봐요. 위에 북다이제스터님과 고양이라디오님이 댓글로 이 점에 대해서 말씀하셨어요.
 

 

 

 

우리가 《마더 구스》라는 동요집의 존재를 몰라서 그렇지, 알게 모르게 《마더 구스》의 동요 한두 개를 들어보면서 자랐다. 우리가 잘 아는 <열 꼬마 인디언 소년들(Ten Little Indian Boys)>이 《마더 구스》 동요 원본이 변형되어 전해진 노래다.

 

 

One little, two little, three little Indians. Four little, five little, six little Indians. Seven liitle, eight little, nine little Indians. Ten little Indian boys.

 

Ten little, nine little, eight little Indians. Seven little, six little, five little Indians. Four little, three little, two little Indians. One little Indian boy.

 

 

한 꼬마, 두 꼬마, 세 꼬마 인디언들. 네 꼬마, 다섯 꼬마, 여섯 꼬마 인디언들. 일곱 꼬마, 여덟 꼬마, 아홉 꼬마 인디언들. 열 꼬마 인디언 소년들.

 

열 꼬마, 아홉 꼬마, 여덟 꼬마 인디언들. 일곱 꼬마, 여섯 꼬마, 다섯 꼬마 인디언들. 네 꼬마, 세 꼬마, 두 꼬마 인디언들. 한 꼬마 인디언 소년.

 

 

 

<열 꼬마 인디언 소년들>은 미국의 전래 동요다. 당연히 영국 동요의 노랫말에 미국 원주민을 가리키는 ‘인디언’이 없다. <열 꼬마 인디언 소년들>의 원본은 <열 명의 흑인 소년들(Ten little nigger boys)>이다. ‘nigger’를 ‘흑인’으로 순화 적으로 표현했는데, 원래는 ‘깜둥이’를 뜻한다. 과거에는 흑인을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했으나, 지금은 흑인을 비하하는 단어가 되었다. 그래서 ‘nigger’ 대신에 ‘Indian’으로 바꾼 버전이 나오게 된 것이다. 공식 석상에 실수로 ‘nigger’가 들어있는 발언을 하면 한순간에 인종차별주의자로 낙인찍혀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미국 최대 프로레슬링 단체 WWE의 전설인 헐크 호건은 ‘nigger’를 입에 올리는 바람에 WWE에서의 모든 업적이 말소되었다.

 

《마더 구스》에 있는 <열 명의 흑인 소년들>의 전체 노랫말이다. 출처는 팬더북 출판사의 《마더 구즈의 노래》다. 이 책에서는 ‘열 명의 검둥이 아이들’이라고 소개했다. 이 책이 나온 시절에는 ‘nigger’를 둘러싼 논란의 불이 점화되기 전이었다. 현재 ‘nigger’의  뜻을 생각해서 ‘검둥이 아이들’을 ‘흑인 소년들’로 고쳐 썼다.

 

 


Ten little nigger boys went out to dine
One choked his little self, and then there were nine.

 

Nine little nigger boys sat up very late
One overslept himself, and then there were eight.

 

Eight little nigger boys traveling in Deven
One said he'd stay there, and then there were seven.

 

Seven little nigger boys chopping up sticks
One copped himself in helf, and then there were six.

 

Six little nigger boys playing with a hive,
A bumble-bee stung one, and then there were five.

 

Five little nigger boys going for law
One got in chancery, and then there were four.

 

Four little nigger boys going out to see
A red herring swallowed one, and then there were three.

 

Three little nigger boys walking in Zoo
A big bear hugged one, and then there were two.

 

Two little nigger boys sitting in the sun
One got frizzled up, and then there were one.

 

One little nigger boy living all aline.
He got married, and then there were none.

 


열 명의 흑인 소년들이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한 소년의 숨이 막혔습니다. 그래서 아홉 명이 되었습니다.

 

아홉 명의 흑인 소년들은 밤늦도록 잠을 자지 않았습니다.
한 소년이 늦잠을 잤습니다. 그래서 여덟 명이 되었습니다.

 

여덟 명의 흑인 소년들이 함께 데번(영국 남서부의 주)을 여행하다가
한 소년이 거기 남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일곱 명이 되었습니다.

 

일곱 명의 흑인 소년들이 나무하러 가서,
한 소년이 자신의 배를 갈랐습니다. 그래서 여섯 명이 되었습니다.

 

여섯 명의 흑인 소년들이 벌집을 쑤시며 장난치다가,
한 소년이 말벌에 쏘였습니다. 그래서 다섯 명이 되었습니다.

 

다섯 명의 흑인 소년들이 소송을 일으켰습니다.
한 소년이 재판소에 갔습니다. 그래서 네 명이 되었습니다.

 

네 명의 흑인 소년들이 바다로 나갔습니다.
빨간 청어가 한 소년을 삼켰습니다. 그래서 세 명이 되었습니다.

 

세 명의 흑인 소년들이 동물원에 갔습니다.
큰 곰이 한 소년을 끌어안았습니다. 그래서 두 명이 되었습니다.

 

두 명의 흑인 소년들이 양지쪽에 앉아 있었습니다.
한 소년이 햇볕에 그을려 타 죽었습니다. 그래서 한 명이 되었습니다.

 

한 명의 흑인 소년은 혼자 쓸쓸히 떠났습니다.
그 소년은 결혼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아무도 없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무조건 죽고 만다. 이 무시무시한 교훈을 들려주는 동요는 <이승탈출 넘버원>의 황당한 사망 플러그를 떠올리게 한다.

 

점심 식사를 하다가 호흡 곤란으로 죽음, 늦잠을 자다가 과로로 죽음, 사무라이 할복으로 죽음, 말벌에 쏘여 죽음, 청어에게 먹혀서 죽음(?), 곰에게 잡혀 죽음, 햇볕을 쬐다가 죽음.

 

별 의미는 없지만, 열 명의 흑인 소년 중에 살아남은 소년을 분류하자면 이렇다. 늦잠을 잔 소년, 데번에 혼자 남은 소년, 재판소에 간 소년, 그리고 마지막에 결혼을 한 소년.

 

 

나무위키에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로 검색하면 <열 명의 흑인 소년들>의 원문과 해석을 확인할 수 있다. ‘going for law’를 법률 공부, ‘got in chancery’를 대법원으로 들어가는 의미로 번역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 내용들을 연결하면 흑인 소년이 법률을 공부해서 대법원에 일한다는 의미가 된다. 살아남은 소년 중에 크게 성공한 사례가 될 수 있겠다. ‘chancery’의 영국 뜻과 미국 뜻이 서로 다르다. 미국식으로 하면 대법원이 되고, 영국식은 공문서 보관청이다. 그리고 ‘One got frizzled up’을 ‘한 명이 햇볕에 타다’로 해석했다.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노랫말의 의미가 달라진다. 그렇지만 해석의 차이를 이유로 진지하게 말싸움할 필요가 없다. 애초에 마더 구스의 동요는 압운(rhyme) 맞추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노랫말이 어떤지가 중요하지 않다. 노랫말을 해석할 자유는 있지만, 거기에 너무 깊게 파고들면 동요를 즐기는 재미가 반감된다.

 

표현 수위 높은 노랫말의 동요가 아이들에게 나쁜 생각을 심어준다고 걱정하는 어른들이 있다. 노랫말의 잔혹한 부분만 강조해서 ‘잔혹 동요’라는 오명을 받기도 한다. 아이들이 이런 동요를 부른다고 해서 깨끗한 마음이 손쉽게 더럽히지 않는다. 폭력, 살인하는 정서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일부 아이들은 어른들의 사회를 너무 일찍 맛본 탓에 영악해지고, 비도덕적인 행동을 한다. 어른들의 눈과 입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모른다. 그저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따라한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넌 성공할 거야, 넌 어른이 돼서 성공해야 돼!’ 이렇게 아이들의 삶을 개입하는 어른들. 어른들 눈치에 기눌린 아이들은 불만을 드러내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 그렇다 보니 발칙한 생각들이 아이들의 입속에 맺혀 언어에 스며든다. 이게 순전히 아이의 잘못일까. 우리 어른들의 잘못이 제일 크다. 이렇게 만든 원인을 묻지도 않고, 아이를 성격 이상자로 규정해버린다. 누가 누굴 탓하는가. 아이들의 고통을 외면한 채 자신들의 욕망 덩어리를 억지로 떠먹인 사람이 누군데.

 

 

 

 

 

 


※ <열 명의 흑인 소년들>를 논하는 데 있어서 ‘이 사람’을 절대로 빼놓을 수 없다. 추리소설의 여왕 아가사 크리스티다. 그의 대표작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원제는 ‘Ten little niggers’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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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2-17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은 작품이 꽤 많은 걸로 압니다.

cyrus 2016-02-17 18:52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읽고 싶은데 너무 많아서 다 읽는 데 상당히 오래 걸릴 겁니다. 그래도 이 전집을 다 읽으신 분이 여기 알라딘에 있습니다. ^^

나비종 2016-02-17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화 뿐 아니라 동요의 유래도 알고 음미해보니 신기하네요^^
`nigger`에 얽힌 이야기를 보며, 언어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근로자`와 `노동자`란 말이 관점의 차이를 말해주듯이, 언어에 따라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경우도 많네요. `말이란 아 해 다르고 어 해 다르다` 는 속담도 생각나구요.
아이들의 생각 형성에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는 말에 동감합니다^^

아! 잠깐 눈에 띄길래. .^^; <이승탈출 넘버원> 아래로 언급하신 죽음들이요, 늦잠을 자다가 과로로 죽은 인간은 없는 것 같습니다만ㅋㅋ
(그냥 세어보다 발견하였습니다. 죽은 인간 7, 살아남은 인간 4 이면 열꼬마인디언이 안된다며ㅎㅎ)

cyrus 2016-02-18 14:58   좋아요 1 | URL
동화, 동요의 유래를 조사해보면 재미있는 내용이 많습니다. ‘Nigger’ 때문에 미국의 국민 작가 마크 트웨인의 작품들도 흑인 차별 인식이 남아 있다고 해서 비판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어요.

<위기탈출 넘버원>을 보면 정말 황당한 죽음 사례가 많이 나와요. 그래서 별명이 ‘이승탈출 넘버원’이에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