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특급 1
한국공포문화연구회 / 한뜻 / 1993년 7월
평점 :
품절


 

 

 

 

 

 

내가 2016년 1월 28일에 작성한 글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이날 괴랄한 조합으로 만들어진 단어가 튀어나왔다. 비스트셀러(Beastseller). 한때 전국을 강타했던 괴담 집을 말한다. 약속대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비스트셀러를 오늘 소개해볼까 한다.

 

※ 관련 글 : [‘비스트셀러(Beastseller)’라고 불러다오] 2016년 1월 28일 작성 (북플 이용 시 링크 연결 불가)

 

 

 

 

 

* "그 책을 찾아주세요" Book #25

 

《공포특급 : 93편의 현대판 무서운 이야기 》

한국공포문학연구회, 한뜻출판사 (1993년)

 

 


1990년대를 풍미했다가 돌연 사라진 가수들이 ‘투유 프로젝트-슈가맨’에서 부활하고 있다. 세월 속에 희미해져 간 그들의 노래는 기계음 범벅의 아이돌 가요에 질린 대중의 심금을 휘젓는다. 책의 세계에서도 ‘슈가맨’을 선정한다면 과연 어떤 책이 좋을까. 소개하고 싶은 책이 너무나도 많다. 내가 생각하는 슈가맨, 아니 슈가북은 1990년대 초반 괴담 신드롬을 선풍적으로 불러일으킨 책이다.

 

 

 

 

 

 

남녀노소 공포에 떨게 하였고, 피부에 소름을 돋게 한 최고의 비스트셀러, 《공포특급 : 93편의 현대판 무서운 이야기》를 슈가북으로 소환한다. 이 책은 1993년 7월에 처음 출간되었다. 이 책의 엮은이는 ‘한국공포문학연구회’다. 그런데 이런 명칭을 가진 모임이 실제로 있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다르게 괴담을 하위문화의 창작물로 인정하기 보다는 킬링 타임을 위한 가벼운 이야기로 인식한다. 아무래도 괴담의 위상을 높이려고 이런 명칭을 썼을 거로 추정한다. 무더위를 한 방에 날려 버리기 위한 첫 번째 필수품이 선풍기와 에어컨이라면, 그다음이 바로 무서운 이야기들이다. 여름에 맞춰 등장한 《공포특급》은 전 국민의 무더위를 식혀주기에 충분한 괴담들로 구성되었다.

 

 

 

 

 

책의 목차가 독특하다. 각 장의 제목은 괴담 속 단골 장소다. 유령이 배회하는 아파트, 무서운 학교, 음산한 별장 그리고 지옥의 도시. 책은 겁 없는 독자를 무시무시한 장소로 데려다주는 ‘공포 특급 열차’ 콘셉트로 설정되었다.

 

공포 특급 열차에 탑승한 독자가 가장 먼저 가는 곳은 유령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문 앞이다. 엘리베이터 안에 ‘그 무언가’가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 공포의 엘리베이터 1 (13쪽)

 

고층 아파트에 살고 있는 소녀는 왠지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기가 두려웠다. 혼자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꼭 누군가가 자기를 노려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더구나 학교 보충 수업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밤늦은 시간에는 너무 무서웠다.

 

“엄마, 엘리베이터 안에서 누가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아서 무서워.”
“그럼 엄마가 마중을 나갈까?”

 

보충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소녀는 엄마가 나와 있는 것을 보고 안심이 되었다. 소녀는 엄마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는 스윽 올라가기 시작했다.

 

“엄마, 이제는 하나도 무섭지 않아.”

 

엄마는 소녀를 그윽이 바라보며,

 

“넌 내가 네 엄마로 보이니?”

 

 

 

풍문에 들은 바에 의하면 엘리베이터 괴담을 믿었던 순진한 아이들은 밤늦게 귀가를 할 때 계단을 이용했다고 하더라. 그리고 자기를 위해 마중 나온 어머니가 진짜인지 귀신인지 꼬치꼬치 물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도 있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어느 학교에나 가면 학교와 관련된 무시무시한 전설 하나씩은 있다. 학생들은 이승을 떠나지 못한 귀신이 밤마다 떠돌아다닌다고 믿었다. 이 귀신의 소문이 전교생들에게 알려지면 강심장이 아닌 이상 누구도 야심한 시간에 혼자 공부할 수 없었다. 과거의 학교는 학생들이 공부만 하는 건전한 장소였다. 《공포특급》은 건전한 학교를 무시무시한 공포의 장소로 만들었다. 이를 계기로 학교 괴담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다음 이야기는 90년대 초중반에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절대로 모를 수가 없는 전설 급 학교 괴담이다.

 

 

 


* 2등의 질투 II (63~64쪽, 글 작성자 임의로 편집)

 

M여중에 다니는 미영이와 수연이는 성적이 우수한 자매였다. 하지만 수연이는 항상 1등을 했고, 미영이는 2등이었다. 하지만 둘은 무척 친하게 지냈다. 어느 화장한 일요일. 둘은 학교 도서실에 나와 함께 공부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잠깐 쉬러 도서실 옥상으로 올라갔다. 활발한 성격의 수연이는 옥상 난간에 올라서서 아슬아슬하게 걷는 장난을 쳤다. 그러다 한순간 수연이는 균형을 잃고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수연이는 간신히 난간을 잡고 매달려 있었다. 수연이는 미영이에게 도와달라고 간절하게 말했지만, 미영이가 손 쓸 겨를도 없이 땅바닥으로 추락했다. 수연이는 머리가 땅에 박혀 끔찍한 상태로 죽었다.

 

충격적인 사고 이후, 마음의 안정을 되찾은 미영이는 평소처럼 일요일에 도서실에서 혼자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복도 끝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통통통, 드르륵, 없네.”
“통통통, 드르륵, 여기도 없네.”

 

차츰 소리가 가까워지자 미영이는 교실을 뛰쳐 나와 화장실 끝에 숨어 있었다. 얼마 후, 화장실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통통통, 삐걱, 여기도 없네.”

 

소리는 점점 미영이가 숨은 곳으로 다가왔다. 미영이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어느새 그 소리는 미영이가 숨어 있는 화장실 앞까지 왔다. 미영이는 차마 문을 열어 볼 수가 없어서 문아래 틈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그 순간, 미영이는 너무 놀라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문아래 틈으로 머리를 숙여 내다보는 순간 땅바닥에 거꾸로 머리를 통통 튀기며 웃고 있는 수연이 귀신과 눈이 마주쳤던 것이다. 눈이 마주친 순간 수연이 귀신이 말했다.

 

“응, 너 여기 있었구나.”


 

 

상상해보시라. 눈앞에 귀신이 거꾸로 선 채 머리를 땅에 찧으면서 다가오는 순간을. 이 괴담이 유행했던 시절에 이 귀신을 모르는 학생들이 없을 정도였다.

 

 

 

 

이 괴담이 큰 인기를 끌게 되자 다양한 바리에이션(variations)이 나왔다. 귀신을 친구로 설정하여 성적지상주의의 경쟁 체제를 비판하는 뉘앙스까지 전달하기도 했다. 또한, 화장실 대신에 교탁 밑에 숨다가 귀신에 발각되는 전개의 괴담도 있었다.

 

《공포특급》에는 김새는 허무한 이야기도 몇 편 있었다. 이런 이야기는 일반적인 괴담같이 공포감을 유발하기 위한 목적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무섭게 연출을 해보지만, 마무리는 썰렁한 유머로 끝낸다. 그렇다고 해서 허무개그 식의 괴담이 완전 쓸모없는 것은 아니었다. 괴담을 실감 나게 들려주는 능력이 있는 괴담 이야기꾼들(일본에서는 ‘미스터리 텔러’라는 이름의 전문적인 직업이 있다)은 청자들의 경직된 긴장감을 풀어주려고 이런 이야기 하나쯤 해준다.

 


 

* 엄마는 밤마다 밖으로 나간다 (143쪽)

 

 

 

 

 

 

우리가 어렸을 때 한 번쯤 들어본 괴담들은 십중팔구 《공포특급》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비록 아주 오래전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오던 괴담들을 모아 한 권의 책에 정리한 수준이지만, 《공포특급》 인기는 예상과는 달리 하늘을 치솟았다. 공포 코드에 재미 들린 국민은 좀 더 자극적이고 색다른 괴담을 듣고 싶어 했다. 여기에 맞춰 《공포특급》 시리즈가 연속으로 출간되었고, ‘공포’가 들어간 각종 아류작까지 무수히 나오게 되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임에도 괴담이 국민에게 미친 파급 효과는 정말 대단했다. 1970년대 말부터 80년대 말까지는 <전설의 고향>이 대한민국의 여름을 책임져 준 공포물이었다면, 90년대 초중반은 도시를 배경으로 한 《공포특급》이 대세였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평범하다고 여기던 학교, 아파트 같은 장소를 공포 이야기의 장소로 내세운 방식은 그 당시로선 획기적인 스토리텔링의 전형이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공포특급》이 우리 곁에서 홀연히 사라졌는가. 그 속에 있는 이야기들은 꾸준히 살아남은 반면, 괴담의 진원지라고 할 수 있는 책은 거의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1993년 한뜻출판사에서 나온 《공포특급》이야말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최고의 괴담 집이다. 그러나 큰 인기를 받았던 원조는 ‘미투(me too) 제품’의 함정에 피할 수 없었다. 적지 않은 수의 아류작들에 점차 밀려나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잊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괴담 이야기꾼들은 ‘내가 누군가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 혹은 ‘실제로 누군가가 겪은 이야기’라는 형식으로 괴담을 들려주기 시작한다. 그러면 청자는 괴담의 진원지가 어딘지 모르는 상태에서 괴담을 이해하고 기억한다. 영상 기술이 나날이 발전되어 갈수록 공포영화 또는 공포 동영상의 수준이 한층 더 높아졌다. 당연히 문자 형태의 괴담 집은 시각적인 공포 효과를 주는 영상 기기의 수준을 따라올 수 없었다. 90년대 후반부터 괴담 집은 점점 퇴행의 길을 걷게 되었고, 어린이 독자들을 위한 유치한 공포물로 전락했다.

 

《공포특급》은 우리에게 많은 양의 괴담들을 남겨주고, 레테의 강물 속에 산화되어 사라졌다. 이 땅에 괴담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에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그나마 소수의 독자만이 얼마 안 남은 추억의 파편들을 모아 기록으로 남겨 이 책의 존재를 알리고 있을 뿐이다. 《공포특급》이 90년대 대중문화에 끼친 영향을 진지하게 고찰해본 서평이 단 한 편도 없다. 괴담을 아이들이 즐기는 유치한 창작물이라는 편협된 인식이 남아 있어서 그런 것일까. 비록 책 보는 안목이 부족하지만, 우리가 잊고 있었던 《공포특급》의 가치를 확인해보고 다시금 상기하기 위해서 첫 서평을 남겨본다. 출간된 지 무려 22년이나 지난 책의 서평을 남기는 기분이 특별하다. 책의 별점에 대해서 이견이 있을 거로 본다. 이 책의 장점과 가치를 아는 대로 최대한 알리려는 마음을 알아주고 너그러이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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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2-19 20: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들었던 무서운 이야기네요.
잘 읽었습니다.
cyrus님 ,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cyrus 2016-02-20 09:49   좋아요 2 | URL
지금은 이런 이야기들은 시시하게 느껴져요.

주말 잘 보내세요. ^^

오거서 2016-02-19 20: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글 내용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남들이 시도하지 않는 서평을 남기려는 노력에 먼저 박수를 보냅니다! 열정 없이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구요! 수고하셨습니다.

cyrus 2016-02-20 09:52   좋아요 2 | URL
글의 내용을 칭찬하는 것보다 이런 말씀이 더 고맙게 느껴집니다. ^^

clavis 2016-02-19 21: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흑흑 밤에 이 글을 읽어버렸으니 이 무서움을 어떡하지요ㅠㅠ

cyrus 2016-02-20 09:53   좋아요 2 | URL
괴담도 유행을 심하게 타는 편이라서 90년대 괴담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없을 겁니다.. ^^;;

akardo 2016-02-19 22: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여름 가까워질 무렵이면 학교 쉬는 시간에 애들이 모여 무서운 이야기를 하곤 했었죠,ㅎ 밤에 무서울 걸 알면서도 호기심 때문에 안 들을 수 없었는데......무서운 이야기는 은근히 중독성이 강한 것 같아요.

cyrus 2016-02-20 09:55   좋아요 2 | URL
맞아요. 저도 그런 추억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괴담을 선호하는 이유를 잘 설명해주셨습니다. ^^

transient-guest 2016-02-20 11: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국민학교 때 들었던 12가지 비밀이 떠오릅니다 ㅋㅋ 아직도 무서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