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돈 많은 남자를 좋아해


 


                                                                                                   정치인 혹은 정당에 소속된 사람이라면 <<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라는 책은 필독서'다. 롤스의 << 정의론 >> 따위는 안 읽더라도 이 책은 읽었으리라.

 

프레임 이론의 대가인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가 자신이 지지하는 진보 진영이 번번이 선거에서 지자 솥뚜껑이 열려서 쓴 책이다. " 솥도 니미럴, 멍청한 민주당 새끼들. 솥 까고 앉아 있네. 다 솥 잡고 반성해 ! " 내용은 간단하다. 누군가가 "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라고 외치는 순간, 사람들은 그때부터 코끼리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모두 다 옹박이 되어서 코끼리 생각만 한다는 이론이다. 사람들은 동일한 의미를 뜻하는 말이라도 다르게 받아들인다. 미국 코미디언이 대중을 향해 < 오바마케어 > 와 < 저렴한 건강보험법 >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이냐고 묻자 거의 대부분이 오바마케어는 아주 싫지만 저렴한 건강보험법은 좋다고 대답했다.

 

사실은 " 오바마케어 " 와 " 저렴한 건강보험법 " 은 동일한 법안인 데에도 말이다. 즉, 정치는 말장난'이다. 이 표현은 부정적인 것도 아니고 긍정적인 것도 아니다. < 복지 > 라는 프레임도 마찬가지'다. 복지는 기본적으로 국가가 국민에게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마련한, 이윤을 고려하지 않는 무상 투자이다. 복지의 기본은 무상인 것이다. 바보가 아니라면 다 아는 사실이 아닐까 ? 그런데 보수 진영은 복지 앞에 무상이라는 < 공짜 > 프레임을 작동시켜서 < 무상복지 > 라고 비판한다. 무상 = 복지'인데, 무상복지라는 프레임이 작동하자 복지 정책은 거지에게 흥청망청 퍼주는 정책이 되는 것이다.

 

결을 달리 해서 말하자면,  < 남자는 여자의 외모를 따지고, 여자는 남자의 재력을 따지는 > 프레임은  선남선녀가 만들어낸 전략이 아니다. 프레임은 대중으로부터 나오는 선전 문구가 아니다. 프레임을 선정하고 유포하는 것은 항상 보이지 않는 손이다. 우선 이 프레임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따져야 한다. 이 프레임이 가가호호 전파를 타서 그 설교에 세뇌된다고 가정했을 때,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사람은 돈 많은 남자'다. 돈 많은 남자는 여자들이 남자는 외모보다는 돈이 우선이라고 믿을수록 자신에게 유리해진다. 왜냐하면 그 믿음이 확고할수록 나이 어리고 얼굴 예쁜 여자를 획득할 확률이 그만큼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돈과 권력을 쥔 기득권은 " 남자는 외모보다는 돈 " 이라는 프레임을 퍼트린다. 인간이란 쉽게 속는 종족이어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여성들도 어느새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평범한 남성들이 " 여자는 돈 많은 남자를 좋아해 " 라며 여자를 속물로 규정하며 비난하게 될수록 돈 많은 기득권 세력의 프레임에 말려든다는 주장이다.  그럴수록 여자들은 돈 없는 남자들이 찌질해 보인다. 그것은 일종의 코끼리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 _ 라고 말하는 순간 코끼리를 생각하게 되듯이, 여자는 돈 많은 남자를 좋아하는 속물 _ 이라고 외치는 순간 여자들은 돈 없는 남자보다는 차라리 돈 많은 남자를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흙수저 세대가 금수저 세대와 싸워서 이기기 위해서는 다른 프레임 전략을 짜야 되는 것은 아닐까 ?  적어도 이 프레임은 지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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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6-08-27 1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부장제의 핵심은 내가 평범한 남자가 될 수 있다는 가정을 배제하고, 권력과 재력을 독점한다는 가능성에 도박을 걸며, 그 도박적이 시스템을 옹호하는 것이죠.

`남자는 가부장적이다. 남자는 여자를 지배하려 한다. 현 세상은 남자가 여자를 착취한다`는 비판도, 비판에도 불구하고 남자들로 하여금 가부장적 문화를 강화시키는, 그리고 이런 비판을 가하는 여성들도 이에 기여한다는 해석이 가능하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7 12:24   좋아요 1 | URL
네에, 바로 그 점입니다. 평범한 남자도 평범한 여자도 결국은 돈 많은 남자의 프레임에 말려드는 꼴이죠.

겨울호랑이 2016-08-27 1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름을 불렀을 때 그 이름이 의미가 되었다는 시가 생각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7 12:24   좋아요 1 | URL
ㅎㅎㅎ 그렇습니다. 그런 것 같군요.. ㅎㅎㅎ

stella.K 2016-08-27 1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치를 해 볼 걸 그랬나 봐요.
제 이름이 좀 정치스럽거든요.
근데 사춘기 때부터 정치인 혐오증이 생겨 도무지 이쪽으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제 이름이 몇천만번은 불렸을 텐데
이름과 그 사람이 살아가는 건 역시 좀 다른 것 같아요.ㅋ

오늘 뉴스에 정치인들 재산 내역 공개하던데
이 돈 많은 정치인들 자기네 당으로 끌어 모르려고 얼마나 침을 발랐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더군요.

오늘 글 제목이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를 패러디한 거죠?
도발적이다. 어찌 감당하시려고 했는데 과연......!^---^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7 12:38   좋아요 0 | URL
오 ! 빙고..... 맞습니다. 저 이 영화 좋아합니다.
고전은 다 좋죠...

엇그제였던가. 이비에스에서 다큐 하던데 헐리웃 고전 다큐를 봤는데
아... 좋더군요.. 아주 좋더군요.. 전 클랙식 마니아입니다..

옛날 영화가 질적인 면에서 더 좋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거서 2016-08-27 12:41   좋아요 0 | URL
정치적인 이름 하나 상상해봅니다. 민주. ^^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7 12:43   좋아요 0 | URL
아.. ㅋㅋㅋㅋㅋㅋ 그렇구나...

stella.K 2016-08-27 12:44   좋아요 0 | URL
제가 어제 곰발님 글 댓글에도 썼지만
저도 요즘 고전 영화에 빠져 있습니다.
특히 유럽 영화에. 옛날엔 거들떠도 안 봤는데.ㅎ
아, 정말 철학이 있더군요.

stella.K 2016-08-27 12:46   좋아요 0 | URL
ㅎㅎ 오차서님, 곰발님 땡!
민주! 여자 이름으론 예쁜 이름이죠.
물론 제 이름도 그 음가만으론 예쁜 이름이어요.
한자어의 뜻이 좀 그렇다는 거지...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7 12:50   좋아요 0 | URL
거 봐요. 고전, 저는 4,50년대 헐리우드 고전을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40년대 영화를 구닥다리라고 생각하며 기술적으로 낙후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정말 멍청한 생각이죠.

좋은 예로 스튜디오 시스템에서는 지금과는 달리
분업화가 되었던 시절입니다. 한가지 일에 4,50년 일한 사람도 있습니다

스튜디오에 소속된 기술자들은 세세한 분업화가 이루어졌죠.
좋은 예로 눈이나 비만 다루는 기술자가 있었습니다.
영화사에서 만드는 영화 중에 비나 눈 오는 장면이 나오면 이 사람이 솜씨를 발휘하죠.
눈의 성격이 제각각 다릅니다. 눈이나 비에도 성격이 있는 거시죠.
이기술자는 성격에 맞는 눈이나 비를 만들어냅니다. 40년 동안 비나 눈오는 장비를 다뤘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없어요. 40년대 스튜디오 영화에서는 100가지 다 다른 눈이 오는데 현대 영화에서 눈은 딱 한가지입니다. 재미가 없죠.

옛날 영화 중에 < 인콜드블러드 > 라는 영화가 있는데 그때 사용된 비오는 장면은 희대의 걸작이었죠.
비의 성격, 모양새, 소리가 정말 기가 막히게 좋았습니다. 콘래드홀이 촬영을 했던가 아마 그랬죠..

stella.K 2016-08-27 13:16   좋아요 0 | URL
저는 날씨 좋은 날 비오는 씬은 좀 안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아니면 해나 좀 지고나서 찍던가.
벌건 대낮에 뭐하자는 건지...

전 또 그런 건 눈여겨 보지 못했네요.
그렇게 성격 다른 눈 비를 어떻게 입혔을까요? 궁금...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7 13:34   좋아요 0 | URL
동영상 링크 걸었습니다. 비가 굉장히 입체적이죠.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습니다. 액션 리액션이 있고, 튕기는 물방울, 흐르는 물방울, 느리게 내리는 물방울..
이런 것들이 사형을 앞둔 남자 얼굴에 비춥니다. 마치 마음 속에서 울고 있는 것처럼...
정말 기막혔던 장면이죠..

현대 영화에서는 이런 기교가 없어요. 그냥 살수차에서 뿌려대서 재미가 업습.

stella.K 2016-08-27 13:51   좋아요 0 | URL
봤어요. 그렇군요..
땡큐, 곰발님!^^

재는재로 2016-08-27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흙수저는흙수저금수저는금수저 신델레라도알고보면 귀족의딸이죠결국계층간의변동이라는게 그만큼어렵다는의미죠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7 13:34   좋아요 0 | URL
아, 정말 그러내요... 신데렐라도 결국은 귀족의 딸이었구나. 몰랐었네요.. 후후..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7 13:34   좋아요 0 | URL
아, 정말 그러내요... 신데렐라도 결국은 귀족의 딸이었구나. 몰랐었네요.. 후후..

지금행복하자 2016-08-27 14: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저는 인터넷상에서 사용되던 흙수저라는 말을 정치권들이 쓰는것을 보고 기가 막혔습니다. 저런식으로 공공연하게 입에 오르면 당연해지는겁니다.. 흙수저들이 흙수저라고 하는것은 자조적이고 후에 그 말을 사용안하면 그만인데 말입니다...
땅땅땅 이제 도장을 찍어버린격이 된것 같아서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7 16:30   좋아요 2 | URL
그렇죠. 정치권에서 흙수저 운운하는 것은 기만이죠.
정치권 나와서 하는 말인데 이번 경찰청장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하는 거 보고
정치의 거의 막장을 보는 것같더군요. 범죄자를 경찰청장에 놀라운 일입니다..

지금행복하자 2016-08-27 17:04   좋아요 0 | URL
으으으.. 더 이상 놀랄일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무엇을 해도 상상 그 이상 입니다. 이제 겁까지 납니다..

yamoo 2016-08-27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프레임`론의 선구자는 아마도 아빈저연구소의 <상자안에 있는 사람, 상자밖에 있는 사람>이 시초였던 게 아닌가 합니다. 레이코프보다 먼저 조직에서의 프레임 이론을 주창했던 책이었으니까요. 물론 프레임이라는 개념은 쓰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금수저 흙수저도 프레임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만...이 대립구도로 이득을 보는 사람은 누구인지...

아, 근데 조윤선만 생각하면 빡치네욤^^;;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7 19:58   좋아요 0 | URL
오, 그렇군요. 새로운 사실입니다. < 상자 안 상자 밖 > 기회되면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박근혜의 장점은 쉬운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프레임이 어려우면 잘 이해를 못하는데
그런 점에서 박근혜의 눌변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이해가 빠름니다.

참 나쁜 사람... 주로 이런 프레임이거들랑요. 박근혜는.. 근데 이게 대중에게는 잘 먹히는 모양입니ㅏㄷ.
트럼프도 그렇잖아요. 고상한 말 쓰지 않고직설적으로 알기 쉽게 말하다 보니 대중적 지지를 얻는 것은 아닐까 싶네요..

samadhi(眞我) 2016-08-27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돈과 외모가 권력인 이상한 세상이지요. 사람들 수준이 갈수록 저급해지는 것이 답답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7 19:59   좋아요 0 | URL
그러니깐 이런 프레임으로 서로 갈라치기 하면 둘 다 손해를 본다니까요... 타인에 대한 따듯한 시선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만화애니비평 2016-08-27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스카짜응 2D가 진리인듯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7 19:59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아긴 아스카가 짜응이긴 하죠..
 

 

 

 

 

 

 

 


 

​                                

 

따  듯  한    타  자  들  :




 



터널은 끝에 가야 환해진다1)

 

 

 


 

 

        
 

                                                                                                       로빈슨 크루소는 28년 동안 무인도에서 살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그가 독수리도 아니면서 독수리인 척 독수공방한 세월은 24년이다. 

그가 섬에 사는 식인종에게 잡혀 먹힐 위기에 빠진 토인을 구한 때가 그 즈음이었다. 그가 섬에서 보낸 마지막 4년은 금요일과 함께 한 세월이었다. 그는 토인에게 " 프라이데이(금요일) " 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금요일에 토인을 구했기 때문이다. 그는 24년 동안 생존과는 아무 쓸모도 없는 날짜 계산이나 하고 있었던 것이다. 원작에서도 프라이데이는 주변부'다. 주인은 로빈슨 크루소이고 노예는 프라이데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선은 디포의 제국주의적 태도에 기인한다. 미셸 투르니에는 이 작품에서 대니얼 디포의 제국주의 혹은 문명의 기만을 읽어낸다.

" 내가 볼 때 1719년에 나온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우선 그 소설에는 방드르디(프라이데이)가 있으나 마나 한 존재로 취급되고 있어요. 그는 단순히 빈 그릇일 뿐이지요. 진리는 오로지 로빈슨의 입에서만 나옵니다. 그가 백인이고 서양인이고 영국인이고 기독교인이기 때문입니다. 디포의 소설에서 발견되는 두 번째 문제점은 모든 것이 회고적인 시각에서 처리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섬에 혼자 던져진 로빈슨이 골똘하게 생각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뿐입니다. 그는 당장 구할 수 있는 것들만을 가지고 과거의 영국을 재현하고자 합니다. 즉 그는 난파한 배의 표류물을 주워 모아 섬 안에 작은 영국 식민지를 또 하나 만들어놓으려는 것입니다."

미셸 트루니에의 <<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 에서는 로빈슨에게 문명을 배우는 프라이데이가 아니라 방드르니(프랑스어로 금요일이란 뜻이다)에게서 로빈슨은 야생을 배운다. 그는 원주민인 방드르디에게 삶의 지혜를 배운다. 중요한 것은 " 타자 " 다. 독거남인 로빈슨 앞에 프라이데이 혹은 방드르디가 나타났다는 것은 곧 " 타자의 개입 " 을 의미한다. 금요일은 증인이다. 로빈슨이라는 백인 남성이 실존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할 유일한 증인인 것이다. 그렇기에 금요일은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 절대적인 존재'다. 금요일의 가치는 영화 << 캐스트 어웨이 >> 에서 발견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 프라이데이와 방드르디를 연기하는 배우는 놀랍게도 배구공 윌슨'이다. 주인공은 배구공을 의인화해서 윌슨이라는 이름을 부여한다. 그에게 그는 무인도에서 살아가는 데 아무 쓸모도 없는 공이지만, 역설적으로 총이나 칼 같은 도구보다 중요한 존재다. 터놓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망망대해에서 윌슨을 떠나보내야 했던 주인공이 목놓아 울 때, 나는 대니얼 디포가 하찮게 여겼던 프라이데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영화 << 다이하드 >> 도 곰곰 생각하면 << 로빈슨 크루소 >> 의 변형이다. 나카토미 빌딩은 섬이고 악당들은 식인종'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프라이데이, 방드르디, 윌슨을 연기하는 대역은 누구일까 ? 흑인 경찰이다. 존 맥클레인 형사가 " 다이하드 " 하지만 " 다이하지 " 않은 데에는 위로와 공감 그리고 수다라는 힘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화력은 무전기'다. 주파수의 힘이라고나 할까 ? 입말이 길었다. 영화 << 터널, 2016 >> 를 보는 내내 떠오른 단상은 타자의 힘'이었다. 이 영화가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세월호에 대한 기시감이 아니었다. 터널에 갇힌 미나( 남지현 분)를 정수(하정우)에게 민폐를 끼치는 캐릭터라고 관객들이 인식할 때였다. 그녀는 정말 민폐녀'였을까 ?

그렇지 않을 것이다. 영화 << 캐스트 어웨이 >> 에서 바람 빠진 배구공은 짐승을 사냥하거나 생활에 필요한 생필품은 아니지만 주인공에게는 가장 필요한 존재였듯이, 또한 영화 << 다이 하드 >> 에서 무전기는 악당과 싸울 때 아무 쓸모없는 물건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었듯이, 터널 안에 갇힌 정우'에게는 따듯한 타자'가 중요한 것이다. 미나 때문에 물과 배터리 그리고 케이크의 양이 줄어들지만, 함께 있다는 것은 그에게 큰 위로가 된다. 그에게 그녀는 민폐가 아니라 큰 힘으로 작동한다. 탱이라는 개도 마찬가지'다. 탱이는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계속 상기시키는 따듯한 타자'다.

경제적 효율성이란 잣대로 보자면 프라이데이, 배구공, 무전기, 미나, 미나의 반려견 탱이는 하찮은 존재이지만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존재이다. 그것들은 경제학 범위에서 벗어난 상징적 가치'다. 이 영화는 여러모로 영리한 작품이다. 미나를 민폐녀라고 생각했던 관객은 미나의 사정'을 통해서 그녀를 이해하게 된다. 관객은 비로소 깨닫게 된다. 관객이 미나를 민폐녀라고 인식한 부분과 경제적 효율성을 이유로 터널 제 2공사 작업 재개에 찬성하는 여론이 68%라는 부분이 서로 같은 인식 (죽어가는 자에게 물을 주는 행위와 죽은 지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 공사를 중단해서 시민의 불편을 초래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다는 논리) 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사실을 말이다. 재난 영화에서 " 재난 " 이라는 괴물을 만드는 주범은 항상 " 경제적 효율성 " 이다.

박정희가 독재는 했어도 경제를 살린 것은 높이 평가해야 된다는 말도 경제적 효율성이 낳은 착시이고, 시체 하나 건지자고 사람이 죽어나가게 생겼다고 말하는 것도 경제적 효율성이 낳은 악마성이며, 광화문 천막을 보며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도 천막 농성이냐며 쉰소리를 하는 것도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드라이하며 쿨한 표현 속에 숨겨진 악마성의 발현이다. 이 영화는 계속 관객에게 그 질문을 던진다. 감독은 사람 목숨과 경제적 효율성의 교환 가능성을 묻는다, 가능한가 ?  뼈아픈 질문이다. 터널은 끝에 가야 환해진다. 영화는 정우의 생환으로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그리 행복한 결말로 보이지는 않는다. 또 다른 터널이 붕괴될 것이다. 그럴 때마다 아나운서는 앞으로도 영원히 반복될 것 같은 멘트로 재난의 시작을 알린다.  

" 대한민국의 안전이 또 한 번 무너졌습니다 ! "







​                                       


1)  죽음은 작은 터널 같은 것 / 가는 길은 나중에 환해진다 ( 최승자, 물 위에 씌어진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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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8-26 1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전에 터널 공사에 지지대 볼트 빼멋었다는 기사 봤습니다....(경제적 효율도 좋습니다만, 설계상에 들어 있는 볼트 빼먹는 짓은 좀 말았으면 ㅠㅠ한개 6만원짜리...3500개를 빼먹었다고 하더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6 10:13   좋아요 1 | URL
영화에서도 볼트 빼먹고 설계도대로 설계하지 않았다는 장면이 나옵니다..

samadhi(眞我) 2016-08-26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작이 우리 선배가 하는 출판사에서 나온거라 들었어요. 예전에 선배가 페이스북에 이 책 얘기를 올려놨을 때 무관심하다가 영화가 나온다니 이제야 궁금해지네요^^;
그 선배가 보내준 몇몇 책들이 정말정말 별로였거든요. 저더러 한번 고쳐보라고 보냈던 것들인데...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6 10:43   좋아요 0 | URL
오, 그렇군요. 소설 원작은 굉장히 비극적이라고 하더군요..
얼핏 들었는데 진짜 비극으로 끝나더군요. 개인적으로 원작의 결말이 더 마음에 들지만..

samadhi(眞我) 2016-08-26 10:46   좋아요 0 | URL
저도 아직 안 읽어봐서... 곧 사야겠어요. 반디앤루니스는 생일쿠폰도 주던데 알라딘은 그런 것 따위 없고... 해서 반디앤루니스에서 사야겠어요 ㅋㄷ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6 11:13   좋아요 0 | URL
잠깐 소재원 어디서 많이 들었다 했는데 아이유 제제논란 때 불매운동 어쩌구저쩌구 했던 작가죠 ?
그때 골때리는 사람이네, 했는데.... 그 사람이 이 소설 원작이네요. 몰랐네요.. ㅎㅎ.

samadhi(眞我) 2016-08-26 11:44   좋아요 0 | URL
그런 사실은 몰랐네요. 저는 우리 선배를 응원하는 거라 ㅋㅋㅋ

stella.K 2016-08-26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영화였군요.
매스컴에선 하도 하정우만 띄워서 뭐 무슨 재난 오락 영화? 이런 인식이 많은 것 같아요.
하정우의 필모를 보면 나름 진지한 연기를 해왔 는데 왜 웃긴 사람으로만 인식시키는지...
실재의 하정우와 연기하는 하정우는 좀 분리시킬 필요가 있는데...

제가 요즘 옛날 고전 영화에 꽂혀서 개봉 영화 잘 안 보는데
하룻밤 사이에 공기가 많이 달라졌어요. 이제 슬슬 영화관 나들이도 해야겠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7 12:41   좋아요 0 | URL
아. 여기에도 댓글이 달렸네요. 미안합니다.
댓글에 답글 안 달면 저는 미안하더라고요..
고의는 아니니 그려려니 하십시오.



영진공 가면 고전 영화 많이 상영합니다.
무료이니 맘껏 감상하셔도 됩니다..

yamoo 2016-08-27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루니에의 해석이 신선하네요..ㅎ
곰발 님의 <캐스트 어웨이> 해석도 재밌구요!
아무리 생각해도, 곰발 님은 영화 평론 마을에서 활동하셔야 할 듯...사람들이 이동진 이동진 하는데, 그걸 이해할 수 없어 하는 1인..전 박평식과 더불어 곰발 님 영화평이 짱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에^^

근데, 곰발 님 기고하는 곳이 영화 잡지 일거라는 추정을 해봅니다요~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8 11:14   좋아요 0 | URL
거봉 박평식과 저를 동급으로 취급해 주시다니 감개무량합니다.
저도 이동진에 대해서는 공감이 잘 안 갑니다. 영상을 지나치게 활자화해서
해석한다고나 할까요. 후후..
 
[블루레이]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멜라니 로랑 외 출연 / 유니버설픽쳐스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우  리  말   나  들  이 :

 

 

점령어 울렁증



 

 
 

                                               

 

 

                                                                                               외국어(공부)를 제일 못하는 나라는 어디일까,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 아닐까 ?  미국인은 굳이 외국어를 배워야 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세계 어느 곳을 가나 영어는 통하니까. 오히려 외국인들이 영어를 하지 못해 안달이다. 역설적이지만 외국어를 잘하는 미국인은 드물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연출한 << 바스터즈,2009 >> 라는 영화에서 이중첩자로 나오는 독일인 브리지트 본 하머스마크( 다이안 크루거 분 )는 작전을 함께 수행해야 할 미군 중위인 엘도 레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 당신네 미국인은 영어 말고 할 줄 아는 말이 없군요 ? "  외국어를 하나도 모르는 브래드 피트를 비아냥거리는 말이다. 심지어 그는 모국어인 영어도 엉터리다. 그는 영어 억양이 이상할 뿐만 아니라 구사하는 영어 문장도 형편없다. 재미있는 사실은 당신네 미국인은 영어 말고는 할 줄 아는 말이 하나도 없군요 _ 라는 말을 영어로 한다는 점이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미국인은 영어 말고 할 줄 아는 말이 없어도 불편한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외국어 하나 정도는 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불만마저도 영어로 해야 되는 사실, 그것이 바로 알파벳의 힘이다. 이 영화는 살점이 튀기고 피가 난자한 폭력 영화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언어가 갖는 권위에 대한 영화'다. 그 유명한 술집 장면을 떠올려 보자. 아치 히콕스 ( 마이클 파스빈더 분 )  일당이 이중첩자인 하머스마크와 접선을 하기 위해 독일군으로 위장을 한 채 지하 술집에 모이는데 공교롭게도 그 자리에서 진짜 독일 군인과 만난다. 마이클 파스빈더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시바, 니미 조또 ! 아니면 아, 재수 옴 붙었네. 둘 다 영어로 번역하자면 오 마이 갓'이다.

영어 말고는 할 줄 아는 말이 없는 미국인(파스빈더는 영국인으로 나오는데 그는 극중에서 전직 영화평론가다.)은 모국어를 숨기고 독일어로 독일 병사와 < 우리말 나들이 대결 > 을 펼친다. 아, 하세요. 아 !   오, 하세요. 오 !   여기서 발생되는 입말의 설전이 장관이다. 아치 히콕스는 최대한 영국식 억양을 숨기고 독일어에 가까운 원어민 발음에 신경을 쓰지만 뭔가 낌새를 차린 독일 군인은 의심을 거두지 않는다. 로버트 할리가 그 아무리 능청스럽게 부산 사투리로 한 뚝배기 하실래예 _ 라고 구수하게 내뱉는다고 해도 어색한 것과 어색한 것이니깐 말이다. 긴장, 긴장, 긴장의 연속. 간장을 녹이는 타란티노의 솜씨가 가히 끝장.

언어가 서로 달라서 오는 긴장감을 탁월하게 묘사한 영화는 존 스터지스 감독이 1963년에 연출한 << 대탈주, 1963 >> 다. 가장 유명한 장면은 게슈타포가 독일인으로 위장한 탈주범을 심문하는 과정일 것이다. 아, 하세요. 아 !     오, 하세요. 오 !   독일어로 우리말나들이 심사에 통과하자 긴장했던 열국 출신 탈주범은 안도의 한숨을 쉰다. 모든 심문 절차가 끝난 것이다. 게슈타포가 웃으면서 영어로 작별 인사를 한다.  " 굿럭 ! "  그러자 방심한 영국 병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영어로 대답한다. " 탱큐 ! "   그는 < 당케 > 라고 말해야 할 자리에 < 탱큐 > 라고 말하는 바람에 잡힌다.

<< 바스터즈 >> 에서도 이와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아치 히콕스 일행은 독일 군인의 구두 심사인 우리말 나들이를 무사히 통과하지만 비언어적 의사소통 행위 가운데 하나인 손짓에서 그만 발각되고 만다. 파스빈더는 손가락으로 셋을 뜻하는 손짓이 독일식과 영국식이 다르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그 바람에 신분이 탄로가 나고 만다. 아따, 그 손가락은 독일식이 아니여. 이런 언어적 차이는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영화평론가들이 하나같이 이 점을 지적하지 않았다는 점은 미스테리'다. 이 영화의 시작도 모국어가 서로 다른, 그래서 의사소통에 따른 불이익을 다룬 장면으로 시작한다. 

프랑스를 점령한 독일.  프랑스 내에 유태인을 착출하는 임무를 가진 유태인 사냥꾼인 한스 란다 대령( 크리스토프 발츠 분 )은 어느 프랑스 농가를 수색하게 된다. 독일인인 그는 프랑스어로 프랑스 농부에게 집안을 수색하겠다며 말을 걸지만 프랑스어라는 외국어의 한계를 느끼고 영어로 대화를 시작한다. 하지만 이것은 트릭이었다. 그는 독일어는 물론이고 프랑스어, 영어, 이탈리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영어로 프랑스 농부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테니 유대인이 숨은 곳을 말하라고 협박한다.  숨어 있던 유태인은 영어를 몰랐기에 농부의 배신 또한 알지 못한다.

이처럼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불이익은 브레드 피트가 어설픈 이태리어로 독일군을 속이는 장면에서도 재현된다. 내가 씨네21 소속 영화평론가여서 20자평을 써야 한다면 이렇게 쓸 것이다. " 전쟁을 대비해 외국어 하나 정도는 배우자 ! " 라거나 " 외국어 못하면 피똥 싼다 ! " 정도가 되지 않을까.  내가 만약에 외국어 학원 원장이라면 예비 수강생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에서 이 영화를 틀어주면서 외국어의 중요성을 강조할 것이다. 보셨죠, 글로벌한 시대에 외국어 모르면 좆돼는 겁니다. 제국과 식민지의 관계에서 제국의 언어는 항상 식민지의 언어보다 우위를 점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미국의 식민지다.

영어는 한국어보다 우위에 있다. 한국말을 잘하는 사람보다는 영어로 쏼라쏼라 하는 사람이 더 지식인답고 교양 있어 보이니깐 말이다. 하여튼 영화 << 바스터즈 >> 는 서로 다른 언어가 대응했을 때 오는 의사 전달의 실패를 다룬다. 그리고 또 하나, 점령군의 언어가 권력의 우위를 점한다. 마이클 파스빈더와 브래드 피트는 독일어 때문에 쩔쩔맨다. 그렇다면 박근혜가 사용하는 언어는 한국인이 사용하는 언어와 다르다는 점에서 그녀가 사용하는 언어는 점령군의 언어'다. 그녀의 말은 항상 우위를 점한다. 그 점은 그녀가 대한민국을 자신이 점령한 식민지로 인식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지금 우리가 모시고 있는 분은 제국의 공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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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6-08-24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가 이렇게도 해석되는 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4 09:39   좋아요 1 | URL
네에, 저는 두 언어의 대립으로 이 영화를 해석했습니다. 이 영화 보고 외국어 학원 하나 끊을 생각입니다. 에스파냐어가 땡기더군요...

겨울호랑이 2016-08-24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 군대병과 배치받을 때 생각이 나네요.. 특전사 2순위가 외국어 전공 학과였어요.. 이유를 알고 보니 낙하산타고 멀리 날아가면 외국으로 갈 수도 있기 때문이라던가.. 그랬던 기억이 나네요 ㅋ 곰곰생각하는발님 좋은 하루 되세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4 10:01   좋아요 1 | URL
ㅎㅎ 썰렁한 농담이군요... 전 짜꾸 겨호 님을 여성으로 이해해서 순간 여군 나왔나 했습니다..ㅎㅎㅎ
오늘도 날이 살인 날씨네요. 아침부터 이런 날씨라니...

겨울호랑이 2016-08-24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덥네요. 그래도 내일 비가 오면 더위도 가겠지요. 곰곰생각하는발님, 건강한 하루 보내세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4 10:29   좋아요 1 | URL
네에, 겨울호랑이 님도 하루 빠리 겨울이 와 본격적인 활동을 하시기 바랍니다..

peepingtom 2016-08-24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깜놀했네요. 이 영화를 외국어영역으로 이해하시다니 ^^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4 10:30   좋아요 0 | URL
타란타노 보면 천재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튼 이 양반은 저수지의 개들에서부터 시작해서
언어 유희의 끝장을 보여주는 감독입니다. 한동안 타란티노 영화에 실망했는데
이 영화가 다시 나를 애정으로 이끄네요..

고양이라디오 2016-08-24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는 해석 잘 읽었습니다ㅎㅎ 참고로 저는 제국어에 점령당하지 않았습니다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4 13:47   좋아요 0 | URL
다행입니다. 제국어에 점령당하는 순간 혀가 꼬이게 됩니다..
 
미래를 도모하는 방식 가운데
김엄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11월
평점 :
품절


 

 


퍽이나 !

 

                                                                                                    책을 읽다 보면 독서에서 얻을 수 있는 만족감이 그닥 높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예를 들어,  열 권을 읽었다 치면 세 권 정도는 만족스럽지만 나머지는 읽어도 되고 읽지 않아도 되는, 그럭저럭 감흥이 없다.  그렇다고 화를 내며 흥이야항이야 참견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독서란 결국 30% 의 성공을 위해 70% 의 실패를 감당해야 하는 지적 노동인 셈이다. 이 실패에는 내 몫이 50%를 차지한다. 내 무지로 인해 독해가 불가능해서 실패하게 되는 경우다. 아무리 훌륭한 책이라 해도 용량이 딸리면 이해하는 데 실패하니깐 말이다. 다시 말해서 성공 확률 30%는 책 내용과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적당히 어우러질 때 발생하는 효과인 셈이다.

 

내가 독서 행위에서 기대하는 것은 타율 3.00인 타자, 딱 그 정도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10번 나와서 3번만 안타를 생산하면 만족한다.  좋은 선수야, 암...... 그렇고 말고 !   그렇기에 누군가가 좋은 책이라고 추천해서 읽은 책이 나에게는 형편없는 독서 경험이라고 해서 그 책을 추천한 사람을 원망한 적은 없다. 그 역(逆)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 사람이 내가 추천한 책이 재미없다고 해서 나를 원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에 책을 추천한다.  반면, 책을 거의 읽지 않는 사람이 나에게 책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하면 냉정하게 거절한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독서 행위가 70%의 실패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추천해 준 책이 재미없다고 입이 오리처럼 댓 발 나온 경우를 자주 경험했기에. 책을 읽지 않는 사람에게 책을 추천하는 일은 어리석은 짓이다. 김엄지 소설집 << 미래를 도모하는 방식 가운데 >> 는 모 알라디너가 나에게 재미있다고 추천한 책이다. 눈치가 빠른 이라면 이 글 서두를 읽고 미리 지레짐작했겠지만, 이 소설집은 그럭저럭 별다른 감흥 없이 읽었다. 충격 요법으로 사용되는 도발적 문장이 내게는 전혀 전복스럽지 못했고, 깊이가 없으며 상대적으로 가볍다는 느낌을 받았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형편없었다.

단편 < 돼지우리 > 와 < 삼뻑의 즐거움 > 은 말장난에 치중하다 보니 서사의 힘을 상실한 것처럼 보였다. 예를 들면 돼지우리에서의 " 떡 " 은 먹는 떡과 함게 fuck 를 의미하는 오브제인데, 그 이중적 의미가 누구나 뻔히 알 수 있는 의도여서 작가가 미숙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또한 먹는 떡과 하는 떡'이라는 아이디어만 가지고 서사를 꾸미다 보니,  말장난을 위해서 서사를 비틀어 버린 느낌이 든다.  주객이 전도된 느낌. 제사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언어 유희가 문학적 수사가 되기 위해서는 셰익스피어나 나보코브 정도의 내공은 되어야 하는데 치기 어린 작가의 도발은 인상을 찡그릴 정도로 형편없다.  단편 < 기도와 식도 > 라는 제목도 마치 라임을 맞추기 위해 작성한 제목 같다. 이런 식의 기술 방식은 계속 이어진다.

" 그를 절이고 있는 것이 소금인지 세금인지 " 라는 문장에서는 그녀의 고약한 랩퍼 본능을 엿보게 된다. 시바, 퍽이나 문학적이다. 이게 뭥미 ?!  < 삼뻑의 즐거움 > 에서 뻑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 뻑 " 은 그 < 뻑 > 이면서 또한 의성어로써의 < 퍽 ! > 이며 또한 성적 코드로써의 < fuck > 이다. 상징의 활용 범위가 이토록 뻔하고 노골적이며 지엽적이어서야 좋은 소설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_ 라는 의문이 들었다. 나머지 단편들도 에누리가 없어서 파나 마나 한 파나마 모자 장수의 셈법 모르는 장사 수완처럼 이 소설도 나에게는 하나 마나 한 책 읽기'였다.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실험성과 무의미성은 내가 보기에는 장소팔-고춘자 커플의 허무한 밤무대 만담 개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흥미롭게 생각되는 부분은 해설이다. 대부분은 청탁을 받고 쓴 해설이니 선택권은 없었을 것이다. 백지은의 해설을 잠시 읽어보았다. 그가 " 나는 이 소설(삼뻑의 즐거움)이 << 운수좋은날 >> 의 21세기 버전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 라는 부분에서 나는 책을 덮었다. 이리저리 굴려도 답이 없는,  궁하면 이런 무리수가 나온다. 아무렴, 아무려나. 퍽이나...... 눙물이 앞을 가린다. 


 

.

 

 

 

 

 

p.s  이 책을 누가 추천했는지, 지금은 잊어버렸다. 누구였더라 ?! ㅎㅎ 생각해 보니 그가 추천한 << 홀 >> 은 재미있게 읽었으니 확률이 무려 50%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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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8-23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도 어쩌면 취향이고 나아가 운명은 아닐까 싶습니다. 모든 책이 다 맞을리도 없으니까요... 부단히 발굴하며 찾는 것도 책이더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3 16:17   좋아요 1 | URL
그럼요. 책은 각자 취향이 다르기에 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좋게 읽었다고 당신도 반드시 좋게 읽어야 같은 이너써클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죠. 3할을 기록하는 타자가 반드시 안타를 치는 것은 아니잖아요.

수다맨 2016-08-23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젊은 작가의 첫 소설집이야 내공과 통찰의 부족이라 여기고 아직은 너그럽게 보아줄 여지는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해설자(평론가)만큼은 매운 시선과 엄정한 필력으로 해설을 썼어야하지 않나 싶어요. 저도 `삼뻑의 즐거움`이라는 소설을 대강이나마 읽어본 적이 있는데, 그 작품을 현진건의 명편인 `운수 좋은 날`과 견주는 것은 오버라고 봅니다. 해설자가 시선과 필력의 예리함도 없다면, 최소한 과포장만큼은 하지 말아야죠. 다들 신형철의 하위 호환 버전도 아니고.....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3 16:44   좋아요 0 | URL
신형철의 하위 호환 버전 - 에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딱히 쓸 말은 없는데 지면은 채워야 할 것 같고..
뭐를 쓸까 고민하다가 자꾸 마감은 다가오고...
결국 무리수를..

yamoo 2016-08-23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발 님, 평론계에 데뷔하십쇼! 주례사 비평이 판을 치는 곳에서, 이런 작은 서평을 전방위적으로 날리면, 숨어 있는 평론가들이 힘을 보태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더~

저두 소설 뒤편에 있는 평론가들이 해당 작품을 이렇게 가감없이 엄정한 잣대로 평가하면 좀 좋을까요. 그냥 주레사 비평이나 남발하고...누가 봐도 아닌데 말이죠. 기본 서사의 힘이 없는 소설은 끝내는 작가 미천이 들어나더라구요. 몰루면 공부라도 해야 하는데, 잿밥에 눈이 멀어가지고, 거 머시냐...컨셉 위주로 나가면 첨엔 신진 작가라 봐 주지만 끝내 독자로부터 외면당하게 됩니다. 그냥 문단에서 자기 식구 감싸기로 계속 좋다 좋다 하면 한국 문학은 정말 독자들이 다 떠나버리고 말 것입니다.

며칠전 장강명의 호모도미난스를 읽다가 걍 덮었습니다. 기시 유스케의 <신세계에서>와 다카노 카즈아키의 <제노사이드>가 바로 떠올라서. 이건 뭐...이런 아류작을 새로운 시도 어쩌구로 포장하는지....제가 읽은 장강명의 첫 소설이었는데, 이 작가는 대성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어쨌거나, 알라딘 마을에서라도 이런 리뷰를 많이 봤으면 합니다! 아, 근디....이건 리뷰를 빙자한 평론이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3 20:23   좋아요 0 | URL
언어유희, 저도 꽤나 싸지르는 방식인데 이런 것을 문학이라는 지면에서 지켜보는 것은 그닥 유쾌하지 않죠. 서사에 필요한 언어 유희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지만 오직 언어 유희를 위해서 서사 자체를 뒤틀면 답이 없는 거죠. 이런 유희는 나보코브 같은 대가가 << 롤리타 >> 나 << 절망 >> 에서 기막히게 사용해야 빛이 나는 것이지 개나소나 언어유희 남발하면 그건 그냥 랩퍼의 랩 가사에 지나지 않죠. 라임 맞추기 게임 보자고 소설 읽는 것은 아니니 말입니다. 이따위 언어유희를 도발적이라느니 실험적이라고 추켜세우면 답이 없습니다. 소금인지 세금인지 ??! 이게 무슨...... 말장난인지..... 차라리 내가 즐겨 사용하는 파나마나한 파나마 모자 장수가 더 근사한 언어유희라고 생각합니다..

장강명의 한계도 분명하죠. 어제의 일을 오늘의 소설로 쓴다는 것은 장점이지만 그게 단점이 되기도 하죠. 장강명 식 빠른 가독력인 좋은 문장에서나오는 게 아니라 문장의 힘이 딸리기 때문에 가독력이 있는 문장이라 생각합니다..

푸른희망 2016-08-23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저와 다른 취향의 책들을 여기 서재님들의 리뷰로 읽습니다.
차마 내가 읽기 버겁거나 취향이 다른 책을 누군가의 시선으로 몰래 보는 게 아직은 더 좋아요. 제가 자주 가는 서재는 나랑 취향이 비슷하다기보단 정말 첨보는 책의 리뷰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3 20:47   좋아요 0 | URL
오, 그것 발랄하고 기발한 방식 같습니다. 저도 그런 방식으로 여러 서재를 염탐해야 겠습니다.
저는 이상하게 열 하나짜리 서평이 좋더라고요.. 비록 내가 별 5개 준 것을 누가 1개 줬다고 해도
천편일률적인 별 5 서평보다는 나와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는 별1 서평이 재미있더군요..

기억의집 2016-08-23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한 유머의 피이퍼에 웃겨서 눙물이 앞을 가립니다~ 떡과 fuck을 어떻게 언어적 유희로 가지고 놀았을까? 궁금은 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4 09:24   좋아요 0 | URL
한번 읽어보세요. 제가 소설은 좀 클래식하게 읽는 편이라 거부감이 들었을 뿐,
발랄하고 통통 튀는 실험적 소설을 원한다면 좋게 읽을 수도 있습니다..

heter 2016-08-24 0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고한 김현 선생의 책에는 신랄한 비평들이 많이 실려 있어 좋았던 기억이 있네요. 친했던 고 이청준 선생에게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었던 것도 기억나요.

최근의 평론들이 많이 무뎌지고, 비판의 기운이 사그라든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제가 좋아하는 평론가들이 몇 있어요. 좋아하는 평론가들이 갖고 있는 어떤 시선들을 제가 좋아하기도 하고요. 이 시대에 걸맞는 요소를 지녔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김엄지의 소설은, 등단작을 일부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호불호가 많이 갈리겠다 싶더군요. 그 이후로 다른 작품은 읽어본 적이 없어요.

최근,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꽤 많은 경로를 통해 알려지고 있더라구요. (OtvN에서 하는 책 프로그램, kbs1에서 하는 책 프로그램,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기반에 둔 홍보, 팟캐스트 방송) 한 3-4년 전만 하더라도 책이 이제 막 나오더라도 많은 이들이 알기 어려웠던 것 같은데, 최근엔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좋은 점도 있는 것 같은데, 나쁜 점도 있는 듯해요.

예를 들면, 딱히 그렇게 대단한, 깊이 있는 작품이 아닌데도,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그 작가의 작품 자체가 다소 고평가 되는 현상 같은 건 굉장히 나쁜 점 같더라구요.

김엄지 소설의 해설을 다 읽어봐야 알겠지만, 어떤 맥락에서 21세기판 운수 좋은 날이라고 쓴 건지. 인용된 것만 보면 이해가 가지 않네요. 위의, 수다맨님 말씀처럼 너무한 과포장 같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4 09:23   좋아요 0 | URL
이 리뷰에 대한 오해가 있을 듯도 합니다. 이 기준은 제 취향의 문제이지 작품의 질은 아닌 것 같습니디ㅏ.
실천주의 문학을 주장하는 사람이 보기에는 순수문학을 주장하는 문학을 별로 이듯이
저 또한 이 작품은 취향을 타는, 호불호가 분명한 작품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스타일에 높은 점수를 주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죠...



김현 같은 경우는 워낙 이청준을 칭찬하다 보니, 저도 행복한 책읽기에서 이청준을 비판적으로 다루는 점에서 약간 놀랐습니다. 사실 이건 일기는 아니었죠. 그는 이 일기를 자기가 죽고 나면 책으로 나올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사적인 부분은 모두 도려냈다고 하더군요... 하여튼 이 소설은 내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이쪽 취향을 타는 분은 재미있게 읽으실 듯..
 

 

                           

맛있으면 그만이다 :




 



그가 청와대에서

과시적 소비와 만났을 때





 

                                                                                                     양에 방점을 찍으면 질이 떨어지고 질에 방점을 찍으면 양이 적기 마련인데,  모 이웃은 질 좋은 정보를 다량으로 생산한다. 그는 질 좋은 문화라면 일단 덥썩 물고 보는 베쓰 같다. 본받을 만한 욕심이다.

그는    << 지첵의 기묘한 이데올로기 강의 >> 를 언급하면서 지첵이 영화 << 타이타닉 >> 에 붙인 코멘트를 소개한다.  케이트 윈슬렛은 상류층 여자로 정신적으로 고민과 혼동 속에 있고, 그녀의 자아는 파편화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기능은 그녀의 자아 재구성을 돕는 것입니다. 그녀의 자아 이미지를 말 그대로, 그가 종이에 그립니다. 이건 가장 인기 있던 옛 제국주의자 신화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상류층 사람들이 활력을 잃어버렸을 때, 그들은 하류층과 접촉할 필요가 있다고 여깁니다. 기본적으로 기들에게서 삶의 에너지를 빠는 흡혈귀 식으로 무자비하게 착취하여 활기를 되찾아, 그들의 고립된 상류층 생활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

그러니까  3등실로 대표되는 하류층(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은 1등실로 대표되는 상류층(케이트 윈슬렛)의 권태와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지첵이 " 가장 인기 있던 옛 제국주의자 신화 가운데 하나 " 라고 지적한 하류층과의 접촉 행위'는 게리 마샬 감독이 연출한 << 귀여운 여인 >> 에서도 재현된다. 그들은 성별이 바뀌었을 뿐 작동하는 이데올로기는 동일하다. 남자 케이트 윈슬렛인 리처드 기어는 상류층 남자로 정신적으로 고민과 혼동 속에 있고, 그를 돕는 것은 여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인 줄리아 로버츠'다. 그녀는 상류층 사람들이 활력을 잃어버렸을 때 소비되는 박카스요,  비타500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 러브 트러블 > 을 다루는 영화가 아니라 < 계급 트러블 > 을 다루는 영화'다. 영화평론가 조너선 로젠봄도 이 영화를 " 과시적인 소비와 마주쳤을 때 어떻게 '똑바로' 행동할 것인지에 대한 불안함을 보여주는 "  영화라고 지적한다.

 

 

영화의 진짜 초점은 섹스도, 돈도 아니라 사실은 비비안이 거리에서 일하다가 에드워드의 호텔에 들어갔을 때 느끼는 경외심과 계급적 불안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 관객도 공유하게 되는 감정인데 우리는 그녀가 호텔 로비에 들어설 때 " 와우 " 하고 놀라게 되고 에드워드의 펜트하우스의 스위트 룸에 가면 더 이상 말을 못할 정도가 된다. 샴페인을 딸기와 함께 먹고, 로데오 드라이브의 가게 간판과 윈도의 디스플레이, 고급 레스토랑, 거기다 개인 비행기로 샌프란시스코로 오페라를 보러가는 것 등은 너무도 대단한 체험이어서 우리는 혹시 이러한 성스러운 특권에 대해 뭔가 " 잘못 행동하는 것 " 은 아닐까 하고 불안해 할 정도이다. 실제로 이러한 경우에 비비안이 잘못 행동하는 것이 영화에서 웃음을 끌어내고 있다. 딸기를 먹지도 않고 샴페인을 한 번에 들이켜 버린 것, 로데오 드라이브의 고급 부티크에서 망신을 당하지만 다시 그것을 복수하는 것, 고급식당에서 포크 사용법을 몰라 사고를 일이킨 것, 오페라를 보고 나서 " 너무 재미있어서 오줌을 지릴 정도였다 " 고 한 것 등

 

- 에센셜 시네마 430 , < 육욕과 돈 > 프리티 우먼 中

 

 

 

 

 

 

 

백만장자인 리처드 기어는 가난한 여자를 데리고 상류층에서만 누릴 수 있는 문화를 선보이는데 그는 가난한 여자가 과시적 소비와 마주쳤을 때 보이는 빈티나는 실수를 보며 즐긴다. 그는 그녀에게 상류층이 지켜야 할 양식을 가르쳐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즐기는 것이다.

 

 

 

재벌2세와 가난한 여자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도 맥락은 동일하다. 권태와 우울에 빠진 재벌2세는 활력을 되찾기 위해 하층민 여자를 만난다. 하층민이 즐겨 먹는 곱창이 역겹기는 하지만 활력을 얻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과정이다.  곱창은 상류층과 하류층을 엮는 밴드'다. 똥물이 흐르던 곱창을 먹는 재벌. 비로소 여자는 남자에게 마음의 문을 연다. 상류층 남자가 하층민이 즐겨 먹는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은 상층민과 하층민의 상징적 同化를 의미하니까. 아닌 게 아니라, 유력 대선 후보들이 선거 유세를 나설 때마다 시장을 찾아 하층민이 즐겨 먹는 음식을 먹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케이트 윈슬렛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통해 활력을 얻고, 리처드 기어가 창녀인 줄리아 로버츠를 통해 활력을 얻듯, 정치인은 서민 음식 코스프레를 통해 활력을 얻고자 한다. 정치가'는 위기에 빠질수록 하층민과 접촉하며 위기를 극복하려 애를 쓴다. 박근혜가 이정현을 초대해서 송로 버섯 요리를 비롯한 귀한 진미 요리를 내놓았을 때, 나는 문득 초대받은 이정현을 보면서 << 귀여운 여인 >> 에서 과시적 소비와 마주친,  상류층의 문화적 기호와 그 기호를 우아하게 소비해야 하는 양식을 몰라 쩔쩔매는 줄리아 로버츠를 떠올렸다. 스스로를 촌놈이자 머슴이라고 말하는 이정현은 남자 줄리아 로버츠다. 

국회 사무직 말단으로 시작했다는 이정현은 여러모로 보나 상류층 이미지는 아니다. 그런 그가 공주의 초대를 받고 청와대에 입성했을 때 에드워드(리처드 기어 분)의 호텔에 들어섰을 때 감탄사를 내뱉았던 줄리아 로버츠를 연상하게 된다.  송로 버섯을 처음 먹어본 그는 혹시 실수를 하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그 실수를 흐뭇한 표정으로 보고 있는 공주의 얼굴이 오버랩된다. 이상한 일이다. 공주의 인자한 얼굴을 상상할수록 자꾸 캄캄해진다.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그녀의 인자한 얼굴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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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22 0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22 1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transient-guest 2016-08-22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카롭게 짧은 글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2 10:4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인자한 공주 얼굴을 상상하려고 뇌를 사용했는데 뇌는
인자한 얼굴을 제공하지 않네요. 결론은 공주에게 인자한 얼굴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2016-08-22 1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22 1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다맨 2016-08-22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이 `과시적 소비`라는 말을 ˝유한계급론˝에서 처음 썼던 걸로 압니다. 부자들의 소비 행위란 합리적이고 실용적이기보다도 그저 배부른 `후카시`에 지나지 않는다고 베블런은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여하간 왕자(재벌)와 여인(평민)의 랑데부(?)가 현실에서는 성별만 바꿔서 재현된 셈이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2 12:10   좋아요 0 | URL
예 맞습니다. 과시적 소비가 유한계급론에서 언급되었습니다. 고전치고는 의외로 재미있는 책이죠. 하여튼 청와대 만찬은 왕비와 머슴의 조우였죠. 그래도 부처님오신날, 동자승 초청해서 고래밥과 오랜지 주스로 때운 이명박보다는 낫네요.. 없이 산 놈과 넘치게 산 사람의 차이라고나 할까..

yamoo 2016-08-22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썅~ 심히 분탕질이 나는 글이네욤^^;; 읽을수록 질투가 나서뤼...(이런 글을 알라딘에 쓰는 건 반칙입니다!ㅎ)

이런 글을 알라딘에 아낌없이 투척하시는 곰발 님에게 아낌 없는 박수를!

마지막에 무지막지한 장외 홈런을 날리시네욤^^ 저도 티비와 사진에서 그네의 그런 인자한 얼굴은 첨 봤습니다. 곰발 님 글을 읽으니 저 표정이 어디서부터 비롯되는지 알긋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2 12:56   좋아요 0 | URL
ㅎㅎ. 왜 그러심미 ? 추천수 많다고 욕 먹는 1인입니다..
공주는 사람들이 자기 앞에서 쩔쩔매는 것을 즐길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친절하게 가르쳐주죠.

포크는검지와 약지 사이에 힘을 주시고 저처럼 이렇게 썰어보세요.

네에 잘 하시네요. 아, 하세요.. 네네 잘하십니다..


이런 멘트들. 친절한 거 같지만 사실은 없는 것의 허둥지둥을 재미있어 한다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점심 시간이 아, 다 끝나 가네요..

samadhi(眞我) 2016-08-22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자기들이 언제나 ˝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서민 코스프레가 참 역겨워요. 지들도 살자고 그런 것이랍니까?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2 16:58   좋아요 0 | URL
옛날 나경원 시장에서 개불 먹던 생각 나네요.. 진짜 웃겼는데..
통째로 먹다가 토할 뻔하셨던... 경원 님... ㅎㅎ

samadhi(眞我) 2016-08-22 16:59   좋아요 0 | URL
곰발님 대문 사진 마음에 들어요. 어디 도사님같아요. ㅋㄷ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2 17:26   좋아요 0 | URL
저 그림 제가 그린 자화상입니다..

samadhi(眞我) 2016-08-22 17:27   좋아요 0 | URL
오호~ 역시 핏줄은 못 속이는 거예요? 아버지 예술성을 물려받았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2 17:31   좋아요 0 | URL
예술성은 무슨... 그냥 낙서입니다..

samadhi(眞我) 2016-08-22 17:32   좋아요 0 | URL
곰발님이랑 똑같아요. ㅎ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2 17:37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비슷하게 그리는 재주는 있나 봐요..

stella.K 2016-08-22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울엄니한테 그네님 송로버섯 얘기 해드렸더니
믿어야할지 말아야할지 떨떠름한 표정을 짓더라구요.
그러더니 마짐못해 한마디 하시더군요.
거 김영삼이는 칼국수 많이 먹었다고 하던데...

영조 대왕도 나라가 어려울 때 반찬 가짓수 줄이고 탕평채란 음식 만들었다는데...
우리 그네님은 뼛속까지 공주라 그게 좀 어려운가 봅니다.
그런데 전 이정현이 더 궁금하긴 하네요.
이 사람 송로버섯 먹고 어떤 마음이었을지....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2 16:57   좋아요 0 | URL
사실 저는 송로가 송이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송로라는 버섯을 아예 모르고 있었습니다. ㅎㅎ
송로가 비싼 건지도 박근혜를 통해 안 게 전부입니다..
송로 버슷 상품 이름 지을 때


송로 박근혜

이런 상품 하나 나올 지도..

시이소오 2016-08-22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정현은 프리티 맨이었네요. 그런데 둘 다 아름답다기 보다는 구토를 유발할 만큼 추악하네요. 역시 영화와 현실은 다르네요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2 16:55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프리티맨 이라 하셔서 뭐지_ 했다가 프리티우먼의 미러링이군요..
뭐, 공주님 취향이 독특할 수는 있죠..

고양이라디오 2016-08-24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녀의 인자한 얼굴이 떠오르지 않네요. 잘 읽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4 13:4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가물가물... 진짜 인자한 얼굴 한 번 보고 싶네요..

clavis 2016-08-27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문가,곰발님..송로 박공주님께 헌정하소서!!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7 14:46   좋아요 0 | URL
이 글 헌정하면 저 국정원 끌려갑니다.. 후덜덜..

clavis 2016-08-27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흑 그럼 안되죠~~~~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7 16:27   좋아요 0 | URL
클래비스 님 흙수저는 아니시군요. 흑흑, 하고 우니..

clavis 2016-08-27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흙흙흙..잘못 울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7 20:00   좋아요 0 | URL
ㅎㅎㅎ 흙흙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