퍽이나 !
책을 읽다 보면 독서에서 얻을 수 있는 만족감이 그닥 높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예를 들어, 열 권을 읽었다 치면 세 권 정도는 만족스럽지만 나머지는 읽어도 되고 읽지 않아도 되는, 그럭저럭 감흥이 없다. 그렇다고 화를 내며 흥이야항이야 참견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독서란 결국 30% 의 성공을 위해 70% 의 실패를 감당해야 하는 지적 노동인 셈이다. 이 실패에는 내 몫이 50%를 차지한다. 내 무지로 인해 독해가 불가능해서 실패하게 되는 경우다. 아무리 훌륭한 책이라 해도 용량이 딸리면 이해하는 데 실패하니깐 말이다. 다시 말해서 성공 확률 30%는 책 내용과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적당히 어우러질 때 발생하는 효과인 셈이다.
내가 독서 행위에서 기대하는 것은 타율 3.00인 타자, 딱 그 정도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10번 나와서 3번만 안타를 생산하면 만족한다. 좋은 선수야, 암...... 그렇고 말고 ! 그렇기에 누군가가 좋은 책이라고 추천해서 읽은 책이 나에게는 형편없는 독서 경험이라고 해서 그 책을 추천한 사람을 원망한 적은 없다. 그 역(逆)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 사람이 내가 추천한 책이 재미없다고 해서 나를 원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에 책을 추천한다. 반면, 책을 거의 읽지 않는 사람이 나에게 책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하면 냉정하게 거절한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독서 행위가 70%의 실패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추천해 준 책이 재미없다고 입이 오리처럼 댓 발 나온 경우를 자주 경험했기에. 책을 읽지 않는 사람에게 책을 추천하는 일은 어리석은 짓이다. 김엄지 소설집 << 미래를 도모하는 방식 가운데 >> 는 모 알라디너가 나에게 재미있다고 추천한 책이다. 눈치가 빠른 이라면 이 글 서두를 읽고 미리 지레짐작했겠지만, 이 소설집은 그럭저럭 별다른 감흥 없이 읽었다. 충격 요법으로 사용되는 도발적 문장이 내게는 전혀 전복스럽지 못했고, 깊이가 없으며 상대적으로 가볍다는 느낌을 받았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형편없었다.
단편 < 돼지우리 > 와 < 삼뻑의 즐거움 > 은 말장난에 치중하다 보니 서사의 힘을 상실한 것처럼 보였다. 예를 들면 돼지우리에서의 " 떡 " 은 먹는 떡과 함게 fuck 를 의미하는 오브제인데, 그 이중적 의미가 누구나 뻔히 알 수 있는 의도여서 작가가 미숙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또한 먹는 떡과 하는 떡'이라는 아이디어만 가지고 서사를 꾸미다 보니, 말장난을 위해서 서사를 비틀어 버린 느낌이 든다. 주객이 전도된 느낌. 제사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언어 유희가 문학적 수사가 되기 위해서는 셰익스피어나 나보코브 정도의 내공은 되어야 하는데 치기 어린 작가의 도발은 인상을 찡그릴 정도로 형편없다. 단편 < 기도와 식도 > 라는 제목도 마치 라임을 맞추기 위해 작성한 제목 같다. 이런 식의 기술 방식은 계속 이어진다.
" 그를 절이고 있는 것이 소금인지 세금인지 " 라는 문장에서는 그녀의 고약한 랩퍼 본능을 엿보게 된다. 시바, 퍽이나 문학적이다. 이게 뭥미 ?! < 삼뻑의 즐거움 > 에서 뻑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 뻑 " 은 그 < 뻑 > 이면서 또한 의성어로써의 < 퍽 ! > 이며 또한 성적 코드로써의 < fuck > 이다. 상징의 활용 범위가 이토록 뻔하고 노골적이며 지엽적이어서야 좋은 소설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_ 라는 의문이 들었다. 나머지 단편들도 에누리가 없어서 파나 마나 한 파나마 모자 장수의 셈법 모르는 장사 수완처럼 이 소설도 나에게는 하나 마나 한 책 읽기'였다.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실험성과 무의미성은 내가 보기에는 장소팔-고춘자 커플의 허무한 밤무대 만담 개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흥미롭게 생각되는 부분은 해설이다. 대부분은 청탁을 받고 쓴 해설이니 선택권은 없었을 것이다. 백지은의 해설을 잠시 읽어보았다. 그가 " 나는 이 소설(삼뻑의 즐거움)이 << 운수좋은날 >> 의 21세기 버전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 라는 부분에서 나는 책을 덮었다. 이리저리 굴려도 답이 없는, 궁하면 이런 무리수가 나온다. 아무렴, 아무려나. 퍽이나...... 눙물이 앞을 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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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 책을 누가 추천했는지, 지금은 잊어버렸다. 누구였더라 ?! ㅎㅎ 생각해 보니 그가 추천한 << 홀 >> 은 재미있게 읽었으니 확률이 무려 50%나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