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도모하는 방식 가운데
김엄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11월
평점 :
품절


 

 


퍽이나 !

 

                                                                                                    책을 읽다 보면 독서에서 얻을 수 있는 만족감이 그닥 높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예를 들어,  열 권을 읽었다 치면 세 권 정도는 만족스럽지만 나머지는 읽어도 되고 읽지 않아도 되는, 그럭저럭 감흥이 없다.  그렇다고 화를 내며 흥이야항이야 참견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독서란 결국 30% 의 성공을 위해 70% 의 실패를 감당해야 하는 지적 노동인 셈이다. 이 실패에는 내 몫이 50%를 차지한다. 내 무지로 인해 독해가 불가능해서 실패하게 되는 경우다. 아무리 훌륭한 책이라 해도 용량이 딸리면 이해하는 데 실패하니깐 말이다. 다시 말해서 성공 확률 30%는 책 내용과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적당히 어우러질 때 발생하는 효과인 셈이다.

 

내가 독서 행위에서 기대하는 것은 타율 3.00인 타자, 딱 그 정도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10번 나와서 3번만 안타를 생산하면 만족한다.  좋은 선수야, 암...... 그렇고 말고 !   그렇기에 누군가가 좋은 책이라고 추천해서 읽은 책이 나에게는 형편없는 독서 경험이라고 해서 그 책을 추천한 사람을 원망한 적은 없다. 그 역(逆)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 사람이 내가 추천한 책이 재미없다고 해서 나를 원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에 책을 추천한다.  반면, 책을 거의 읽지 않는 사람이 나에게 책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하면 냉정하게 거절한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독서 행위가 70%의 실패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추천해 준 책이 재미없다고 입이 오리처럼 댓 발 나온 경우를 자주 경험했기에. 책을 읽지 않는 사람에게 책을 추천하는 일은 어리석은 짓이다. 김엄지 소설집 << 미래를 도모하는 방식 가운데 >> 는 모 알라디너가 나에게 재미있다고 추천한 책이다. 눈치가 빠른 이라면 이 글 서두를 읽고 미리 지레짐작했겠지만, 이 소설집은 그럭저럭 별다른 감흥 없이 읽었다. 충격 요법으로 사용되는 도발적 문장이 내게는 전혀 전복스럽지 못했고, 깊이가 없으며 상대적으로 가볍다는 느낌을 받았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형편없었다.

단편 < 돼지우리 > 와 < 삼뻑의 즐거움 > 은 말장난에 치중하다 보니 서사의 힘을 상실한 것처럼 보였다. 예를 들면 돼지우리에서의 " 떡 " 은 먹는 떡과 함게 fuck 를 의미하는 오브제인데, 그 이중적 의미가 누구나 뻔히 알 수 있는 의도여서 작가가 미숙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또한 먹는 떡과 하는 떡'이라는 아이디어만 가지고 서사를 꾸미다 보니,  말장난을 위해서 서사를 비틀어 버린 느낌이 든다.  주객이 전도된 느낌. 제사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언어 유희가 문학적 수사가 되기 위해서는 셰익스피어나 나보코브 정도의 내공은 되어야 하는데 치기 어린 작가의 도발은 인상을 찡그릴 정도로 형편없다.  단편 < 기도와 식도 > 라는 제목도 마치 라임을 맞추기 위해 작성한 제목 같다. 이런 식의 기술 방식은 계속 이어진다.

" 그를 절이고 있는 것이 소금인지 세금인지 " 라는 문장에서는 그녀의 고약한 랩퍼 본능을 엿보게 된다. 시바, 퍽이나 문학적이다. 이게 뭥미 ?!  < 삼뻑의 즐거움 > 에서 뻑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 뻑 " 은 그 < 뻑 > 이면서 또한 의성어로써의 < 퍽 ! > 이며 또한 성적 코드로써의 < fuck > 이다. 상징의 활용 범위가 이토록 뻔하고 노골적이며 지엽적이어서야 좋은 소설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_ 라는 의문이 들었다. 나머지 단편들도 에누리가 없어서 파나 마나 한 파나마 모자 장수의 셈법 모르는 장사 수완처럼 이 소설도 나에게는 하나 마나 한 책 읽기'였다.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실험성과 무의미성은 내가 보기에는 장소팔-고춘자 커플의 허무한 밤무대 만담 개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흥미롭게 생각되는 부분은 해설이다. 대부분은 청탁을 받고 쓴 해설이니 선택권은 없었을 것이다. 백지은의 해설을 잠시 읽어보았다. 그가 " 나는 이 소설(삼뻑의 즐거움)이 << 운수좋은날 >> 의 21세기 버전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 라는 부분에서 나는 책을 덮었다. 이리저리 굴려도 답이 없는,  궁하면 이런 무리수가 나온다. 아무렴, 아무려나. 퍽이나...... 눙물이 앞을 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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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 책을 누가 추천했는지, 지금은 잊어버렸다. 누구였더라 ?! ㅎㅎ 생각해 보니 그가 추천한 << 홀 >> 은 재미있게 읽었으니 확률이 무려 50%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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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8-23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도 어쩌면 취향이고 나아가 운명은 아닐까 싶습니다. 모든 책이 다 맞을리도 없으니까요... 부단히 발굴하며 찾는 것도 책이더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3 16:17   좋아요 1 | URL
그럼요. 책은 각자 취향이 다르기에 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좋게 읽었다고 당신도 반드시 좋게 읽어야 같은 이너써클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죠. 3할을 기록하는 타자가 반드시 안타를 치는 것은 아니잖아요.

수다맨 2016-08-23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젊은 작가의 첫 소설집이야 내공과 통찰의 부족이라 여기고 아직은 너그럽게 보아줄 여지는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해설자(평론가)만큼은 매운 시선과 엄정한 필력으로 해설을 썼어야하지 않나 싶어요. 저도 `삼뻑의 즐거움`이라는 소설을 대강이나마 읽어본 적이 있는데, 그 작품을 현진건의 명편인 `운수 좋은 날`과 견주는 것은 오버라고 봅니다. 해설자가 시선과 필력의 예리함도 없다면, 최소한 과포장만큼은 하지 말아야죠. 다들 신형철의 하위 호환 버전도 아니고.....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3 16:44   좋아요 0 | URL
신형철의 하위 호환 버전 - 에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딱히 쓸 말은 없는데 지면은 채워야 할 것 같고..
뭐를 쓸까 고민하다가 자꾸 마감은 다가오고...
결국 무리수를..

yamoo 2016-08-23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발 님, 평론계에 데뷔하십쇼! 주례사 비평이 판을 치는 곳에서, 이런 작은 서평을 전방위적으로 날리면, 숨어 있는 평론가들이 힘을 보태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더~

저두 소설 뒤편에 있는 평론가들이 해당 작품을 이렇게 가감없이 엄정한 잣대로 평가하면 좀 좋을까요. 그냥 주레사 비평이나 남발하고...누가 봐도 아닌데 말이죠. 기본 서사의 힘이 없는 소설은 끝내는 작가 미천이 들어나더라구요. 몰루면 공부라도 해야 하는데, 잿밥에 눈이 멀어가지고, 거 머시냐...컨셉 위주로 나가면 첨엔 신진 작가라 봐 주지만 끝내 독자로부터 외면당하게 됩니다. 그냥 문단에서 자기 식구 감싸기로 계속 좋다 좋다 하면 한국 문학은 정말 독자들이 다 떠나버리고 말 것입니다.

며칠전 장강명의 호모도미난스를 읽다가 걍 덮었습니다. 기시 유스케의 <신세계에서>와 다카노 카즈아키의 <제노사이드>가 바로 떠올라서. 이건 뭐...이런 아류작을 새로운 시도 어쩌구로 포장하는지....제가 읽은 장강명의 첫 소설이었는데, 이 작가는 대성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어쨌거나, 알라딘 마을에서라도 이런 리뷰를 많이 봤으면 합니다! 아, 근디....이건 리뷰를 빙자한 평론이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3 20:23   좋아요 0 | URL
언어유희, 저도 꽤나 싸지르는 방식인데 이런 것을 문학이라는 지면에서 지켜보는 것은 그닥 유쾌하지 않죠. 서사에 필요한 언어 유희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지만 오직 언어 유희를 위해서 서사 자체를 뒤틀면 답이 없는 거죠. 이런 유희는 나보코브 같은 대가가 << 롤리타 >> 나 << 절망 >> 에서 기막히게 사용해야 빛이 나는 것이지 개나소나 언어유희 남발하면 그건 그냥 랩퍼의 랩 가사에 지나지 않죠. 라임 맞추기 게임 보자고 소설 읽는 것은 아니니 말입니다. 이따위 언어유희를 도발적이라느니 실험적이라고 추켜세우면 답이 없습니다. 소금인지 세금인지 ??! 이게 무슨...... 말장난인지..... 차라리 내가 즐겨 사용하는 파나마나한 파나마 모자 장수가 더 근사한 언어유희라고 생각합니다..

장강명의 한계도 분명하죠. 어제의 일을 오늘의 소설로 쓴다는 것은 장점이지만 그게 단점이 되기도 하죠. 장강명 식 빠른 가독력인 좋은 문장에서나오는 게 아니라 문장의 힘이 딸리기 때문에 가독력이 있는 문장이라 생각합니다..

푸른희망 2016-08-23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저와 다른 취향의 책들을 여기 서재님들의 리뷰로 읽습니다.
차마 내가 읽기 버겁거나 취향이 다른 책을 누군가의 시선으로 몰래 보는 게 아직은 더 좋아요. 제가 자주 가는 서재는 나랑 취향이 비슷하다기보단 정말 첨보는 책의 리뷰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3 20:47   좋아요 0 | URL
오, 그것 발랄하고 기발한 방식 같습니다. 저도 그런 방식으로 여러 서재를 염탐해야 겠습니다.
저는 이상하게 열 하나짜리 서평이 좋더라고요.. 비록 내가 별 5개 준 것을 누가 1개 줬다고 해도
천편일률적인 별 5 서평보다는 나와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는 별1 서평이 재미있더군요..

기억의집 2016-08-23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한 유머의 피이퍼에 웃겨서 눙물이 앞을 가립니다~ 떡과 fuck을 어떻게 언어적 유희로 가지고 놀았을까? 궁금은 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4 09:24   좋아요 0 | URL
한번 읽어보세요. 제가 소설은 좀 클래식하게 읽는 편이라 거부감이 들었을 뿐,
발랄하고 통통 튀는 실험적 소설을 원한다면 좋게 읽을 수도 있습니다..

heter 2016-08-24 0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고한 김현 선생의 책에는 신랄한 비평들이 많이 실려 있어 좋았던 기억이 있네요. 친했던 고 이청준 선생에게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었던 것도 기억나요.

최근의 평론들이 많이 무뎌지고, 비판의 기운이 사그라든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제가 좋아하는 평론가들이 몇 있어요. 좋아하는 평론가들이 갖고 있는 어떤 시선들을 제가 좋아하기도 하고요. 이 시대에 걸맞는 요소를 지녔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김엄지의 소설은, 등단작을 일부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호불호가 많이 갈리겠다 싶더군요. 그 이후로 다른 작품은 읽어본 적이 없어요.

최근,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꽤 많은 경로를 통해 알려지고 있더라구요. (OtvN에서 하는 책 프로그램, kbs1에서 하는 책 프로그램,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기반에 둔 홍보, 팟캐스트 방송) 한 3-4년 전만 하더라도 책이 이제 막 나오더라도 많은 이들이 알기 어려웠던 것 같은데, 최근엔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좋은 점도 있는 것 같은데, 나쁜 점도 있는 듯해요.

예를 들면, 딱히 그렇게 대단한, 깊이 있는 작품이 아닌데도,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그 작가의 작품 자체가 다소 고평가 되는 현상 같은 건 굉장히 나쁜 점 같더라구요.

김엄지 소설의 해설을 다 읽어봐야 알겠지만, 어떤 맥락에서 21세기판 운수 좋은 날이라고 쓴 건지. 인용된 것만 보면 이해가 가지 않네요. 위의, 수다맨님 말씀처럼 너무한 과포장 같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4 09:23   좋아요 0 | URL
이 리뷰에 대한 오해가 있을 듯도 합니다. 이 기준은 제 취향의 문제이지 작품의 질은 아닌 것 같습니디ㅏ.
실천주의 문학을 주장하는 사람이 보기에는 순수문학을 주장하는 문학을 별로 이듯이
저 또한 이 작품은 취향을 타는, 호불호가 분명한 작품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스타일에 높은 점수를 주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죠...



김현 같은 경우는 워낙 이청준을 칭찬하다 보니, 저도 행복한 책읽기에서 이청준을 비판적으로 다루는 점에서 약간 놀랐습니다. 사실 이건 일기는 아니었죠. 그는 이 일기를 자기가 죽고 나면 책으로 나올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사적인 부분은 모두 도려냈다고 하더군요... 하여튼 이 소설은 내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이쪽 취향을 타는 분은 재미있게 읽으실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