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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시대 - 뉴스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
알랭 드 보통 지음, 최민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평점 :
뉴스와 시댁
보도 사진'을 꼼꼼하게 살피면 신문 기사를 읽지 않아도 그 신문사가 지향하는 목소리를 대충 읽을 수 있다. 동일한 보도 내용을 다룬다고 해도 박근혜 정권에 우호적인 신문사는 " 쁘리티 " 한 박근혜 사진을 뽑아 대문에 걸고, 박근혜 정권에 비판적인 신문사는 " 찌뿌둥 " 한 박근혜 사진을 뽑아 건다. 박근혜 대신 노무현'이라는 단어를 대입해도 된다 신문사가 이따위 꼼수'를 쓰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 이미지 > 는 < 텍스트 > 보다 강하다. 권투'에서 < 잽 jab > 은 상대 선수를 K.O 시키기 위해 던지는 주먹'이 아니다. 어퍼컷이라면 모를까, 가볍게 툭툭 던지는 주먹(잽)에 나자빠지는 선수는 없다. 하지만 우습게 보다가는 큰코다친다는 법. 가볍게 툭툭 던지는 주먹에 자주 맞다 보면 결국에는 쓰러지고 만다.
< 이미지 > 는 < 잽 > 과 유사한 효과가 있다. 찌뿌둥한 사진에 자주 노출되다 보면 결국에는 해맑게 웃어도 찌뿌둥하게 웃는 것처럼 보인다. 이미지뿐만 아니라 단어를 선택하는 과정'도 언론사 입맛'에 맞는 쪽으로 흐른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분쟁'이 좋은 예이다. 한국 언론은 < 교전 > 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 학살 > 이다. 툭 까놓고 말해서 : 뉴스는 사실 그대로를 전달한다기보다는 왜곡 과정을 거친 결과물'이다. 뉴스는 공정한 사실 보도를 전하는 게 아니라 가재미 눈깔'처럼 한쪽으로 쏠린 편향을 내보내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뉴스를 보는 눈이 아니라 뉴스를 읽고 해석하는 능력에 있다. 새로운 사실은 아니다.
여기까지는 글 깨나 쓴다는 양반들이 내놓는 해석이니 말이다. 신간 << 뉴스의 시대 >> 도 이 비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저자 알랭 드 보통이 보기에 현대인은 뉴스에 중독된 상태'다. 현대인은 아침, 점심, 저녁으로 토끼 귀와 매 눈 그리고 하이에나 발이 되어서 뉴스를 쫓는다. 뉴스 수용자는 그저 " 넋이 나간 채 " 뉴스를 볼 뿐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뉴스도 상품이다. 그렇기에 소비자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한 별별 수작을 다 부린다. 두려움과 공포만큼 최소 투자로 최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없다. 공포 분위기를 강조할수록 중요한 사건이 된다. 그래서 뉴스는 별것 아닌 것에 대해서도 호들갑을 떨면서 지나친 확대 해석을 내린다. 광고 효과를 얻고자 하는 전략이다.
뉴스는 에이즈나 사스 따위를 중세 시대 페스트'와 동급으로 다루었지만 사스로 인해 죽은 사망자보다 감기로 인해 죽은 사망자가 더 많다는 사실은 편집 과정에서 삭제된다. 왜냐하면 그 사실이 알려지면 공포는 제거되고 시시한 것만 남기 때문이다. " 후까시 " 가 제거된 뉴스는 사정 후 쪼그라든 뭣 같은, 거품 빠진 미지근한 맥주'와 같다. 누가 시시한 상품에 눈길을 주겠는가 ! 공포'는 섹스와 함께 가장 잘 팔리는 현대 상품이다. 뉴스는 그 점을 노린다. 알랭 드 보통도 그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스 비극에서 코러스 그리스 비극에 등장하는 합창대. 극 속에 수시로 개입하여 내용을 설명하거나 등장인물과 대화하는 등 작품의 중요 요소로 활약했다 는 수시로 사건에 개입하여 감정의 방향을 조정하고 등장인물의 행동에 풍부한 맥락을 부여했다. 코로스는 주인공이 어떤 죄를 저질렀건 간에 그에 대해 엄숙한 존경을 담아 표현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런 섬세함 덕에 << 오이디푸스 왕 >> 공연을 보며 불운한 중심인물들을 패배자나 정신병자로 치부하는 관객은 매우 드물었다.
- 221쪽
오늘날, 뉴스가 " 오이디푸스 " 와 유사한 사건을 보도한다면 어떻게 될까 ? 모든 사연은 생략된 채 자극적인 몇몇 사실만 나열되어 그를 악마로 만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내용이 잔인할수록 시선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건을 다룰 때, 뉴스가 유병언에게 접근하는 방식'도 이와 같다. 유병언을 " 악마 " 로 만들면 만들수록 시청률은 높아지고 그만큼 돈이 되는 장사가 된다. 정작 잔인한 사이코패스는 사건 당사자가 아니라 언론이다. 뉴스에는 자비가 없다 !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얄밉다고 했던가. 뉴스를 생산하는 업자'와 시댁 식구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자기 허물은 못 보면서 지적질은 졸라 한다는 점이다.
내 눈에는 << 뉴스의 시대 >> 라는 제목이 계속 << 뉴스와 시댁 >> 으로 읽힌다. 내가 까막눈이어서 그런가 ?! 알랭 드 보통은 뉴스의 홍수 속에서 알짜배기'를 고르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해법은 가르쳐주지 않는다. 각자 알아서 찾으라는 말투'다. 그런데 이 심드렁한 말투에 딱히 비판을 할 생각은 없다. 혼자서 찾아야 할 일이니까 ! 가을 장마' 가 끝나면 곧 추석' 이다. 그 생각만으로도 벌써부터 앓아눕는 이 있으리라. 시댁 식구가 감 놔라, 대추 놔라 ! 라고 잔소리하는 환청이 벌써부터 들린다. 그럴 때마다 주부들은 쏘아붙이고 싶다. " 너나 잘하세요 ! " 가끔 뉴스를 파는 업자들이 도덕군자처럼 범죄자를 훈계하는 꼴을 보면 가관이다. 며느리 마음을 알 것도 같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