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뒷세우스의 세 번째 모험 이야기는 퀴클롭스들의 섬이다.

 

 

 

 

 

 

 

퀴클롭스는 신화상으로는 우라노스와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외눈박이 거인들'이다. 여기서는 포세이돈의 아들로 그려진다. 

 

 

 

 

 <모험3. 퀴클롭스>

 

   

 

퀴클롭스들은 저마다 각자의 동굴에서 서로 참견하지 않고 따로 살고 있다.  오뒷세우스는 그들 중 폴뤼페모스의 동굴에 들어갔다가 가까스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모험3. 퀴클롭스>

 

 

 

폴뤼페모스는 오뒷세우스라는 자가 자신의 눈을 멀게 할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다. 폴뤼페모스는 운명의 날에 크고 용맹한 영웅이 나타나 자신과 대적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뒷세우스는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스스로를 '아무도 아닌 자 - 우티스 (outis) 라고 말한다.  이름을 밝혔다면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것이다.

 

 

 

 

 

 

 

 

오뒷세우스는 영웅이 아니다.  명예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영웅적 가치가 오뒷세우스의 세계에서는 어리석음에 지나지 않는다. 생존과 귀향을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아닌 자, 가장 비천한 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오뒷세우스를 구한 것은 명성이 아니라 계략이다.

 

 

 

 

<9권 364~367 / 502~505 / 511~518>

 

 

 

하지만 오뒷세우스도 영웅의 잔재를 말끔히 털어 내지는 못한다. 동굴 밖으로 탈출하여 배를 타고 바다로 나온 뒤 그는 자신의 이름을 큰 소리로 자랑한다.

 

"라에르테스의 아들, 도시의 파괴자 오뒷세우스" 라고 외친다.

 

폴뤼페모스는 뒤늦게 오뒷세우스의 이름을 알고 아버지 포세이돈에게 기도한다.

 

"이타케의 집에서 사는 라에르테스의 아들

도시의 파괴자 오뒷세우스가 집에 돌아가지 못하게 해주소서."

(9권 530~531)

 

오뒷세우스가 포세이돈의 분노를 사 10년 만에야 귀향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자 했던 욕망을 끝까지 절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험4. 아이올로스>

 

 

 

바람을 다스리는 아이올로스가 살고 있는 아이올리에 섬은 오뒷세우스 일행에게 한 달간의 휴식을 준다.  아이올로스는 바람자루에 사방으로 울부짖는 바람을 담아 꽁꽁 묶어 가두고,  오뒷세우스의 고향 이타케로 부는 서풍만 남겨서 귀향길을 도와준다.

 

하지만 이타케섬을 눈앞에 두고 바람자루가 풀리고 일행은 다시 먼바다로 내동댕이쳐 진다. 바람자루를 황금과 같은 보물로 오인한 전우들이 오뒷세우스가 잠에 빠진 사이에 자루를 풀어버렸기 때문이다.

 

정보의 독점과 일방적 명령 등 상하 관계에서의 불신이 얼마나 큰 재앙을 초래하는지 돌이켜 볼 수 있는 모험이다.

 

 

 

 

<모험5. 라이스트뤼고네스족>

 

 

 

아이올로스에게 되돌아 갔으나 신의 미움을 받은자라는 이유로 쫓겨나  다섯 번째로 도착한 곳이 라이스트뤼고네스족의 나라이다.

 

퀴클롭스들처럼 사람을 먹는 식인 거인들이 살고 있다. 여기서 오뒷세우스 일행은 배 11척을 잃고 오뒷세우스가 탄 1척만 구사일생한다.

 

처음 트로이아를 떠날 때 오뒷세우스가 이끄는 전우들의 배는 모두 12척이었다. 퀴클롭스들과 거의 비슷한 라이스트뤼고네스족을 추가한 것은 모험 이야기에 적합하도록 배를 1척만 남기기 위해서라는 설명도 있다.

 

 

 

 

 

<모험6. 키르케>

 

 

 

살아남은 한 척의 배가 도달한 곳은  아이아이에 섬이다. 약초를 잘 다루는 여신 키르케가 살고 있다. 키르케는 오뒷세우스가 보낸 정탐조를 약을 탄 음식을 먹여 모두 돼지로 만들었다.

 

이들을 구하러 나선 오뒷세우스에게 신들의 정령 헤르메스가 다가와 키르케를 제압하고 동료들을 구할 방법을 가르쳐 준다. 오뒷세우스는 1년 동안 키르케와 함께 살면서 날마다 잔치를 벌이며 고향을 잊고 있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퀴클롭스들 이후 오뒷세우스가 더욱 신중해지는 모습이다. 퀴클롭스들을 정탐할 때는 오뒷세우스가 맨먼저 나섰다가 폴뤼페모스의 동굴에서 죽음의 위기를 맞는다. 라이스트뤼고네스족의 포구에 들어갔을 때는 전우들을 뽑아 정탐을 보내고 자신이 타고 온 배는 포구의 맨 바깥에 정박한다. 덕분에 그 배만 탈출에 성공한다. 키르케의 섬에서도 전우들을 먼저 보내기로 마음을 먹는다.

 

맨 앞에 나서는 영웅들과는 달리 모험이 거듭될수록 오뒷세우스는 척후병을 먼저 보내고 뒤에 남아 상황을 신중하게 살핀다. 전우들의 희생을 방패삼아 생존하는 전략을 선호하는 것이다.  영웅에 비하면 비겁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알레고리로 읽으면 작은 것을 내주면서 큰 것을 지키는 신중함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모험7. 저승>

 

 

 

키르케는 귀향을 원하는 오뒷세우스에게 먼저 하데스로 가서 유명한 예언가 테이레시아스를 만나 귀향의 성공 여부에 대해 알아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데스에서 오뒷세우스는 테이레시아스뿐 아니라 어머니를 만나고, 자신보다 먼저 죽은 여러 영웅들을 만난다.

 

오이디푸스왕의 어머니이자 아내인 에피카스테(이오카스테),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테세우스 등이 이미 하데스에 있다는 것은 테바이 신화가 트로이아 신화보다 먼저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일리아스』의 영웅 아킬레우스도 만난다. 오뒷세우스는 살아서뿐 아니라 죽어서도 사자들의 강력한 통치자가 된 아킬레우스를 칭송한다.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죽어서 모든 사자들을 다스리는 것보다 살아서 가난한 이의 머슴이라도 되고 싶다고 한다. 

 

 

 

<일리아스>

 

 

 

단명을 받아들이고 희랍의 영웅이 되겠다던 트로이아의 아킬레우스를 기억한다면 목숨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하데스의 아킬레우스는 충격이다.  두 작품이 완성된 시기는 수십 년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호메로스가 한 입으로 이렇게나 다른 두 명의 아킬레우스를 낭송했을까 의심이 들기도 한다.  사실이 어떠하건 두 작품은 아킬레우스를 통해 희랍인의 가치관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영웅들의 모험에 저승이 필수 코스가 되는 것은 오뒷세우스가 처음은 아니다.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문명의 영웅 길가메쉬가 첫 저승 여행자일까?  서양 문학에서는 오뒷세우스 이후 로마의 아이네아스가 저승에서 아버지를 만나 로마의 미래를 예언받는다. 로마제국의 첫 황제 옥타비아누스를 신격화하기 위한 『아이네이스』는 저승에서의 예언이라는 장치를 통해 황제 권력의 탄생을 정당화한다. 그리고 단테의 『신곡』이 있다. 저승 문학의 백미라고 해야 할까.  희랍-로마 신화를 알지 못하면 『신곡』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은 이 작품이 '저승 여행'의 계보를 잇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승은 그 어떤 장치보다 인간의 삶을 되돌아보기 좋은 방법이다. 죽어본 자보다 더 삶에 대해 잘  말할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이다. 자기 서사를 위해서는 자기를 타자화해야 하는 것처럼 삶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죽음을 겪어 보아야 한다. 죽음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죽음이 있으므로 삶은 빛나는 것이 된다.

 

 

 

 <모험8. 세이렌>

 

 

 

저승에 다녀온 오뒷세우스에게 키르케는 앞으로 겪어야 할 고난에 대해 들려준다.  키르케의 예언대로 오뒷세우스는 남아있는 고난을 차례로 겪게 되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아마도 세이렌일 것이다.

 

 

 

<모험8. 세이렌>

 

 

 

세이렌 자매의 노래는 인간을 미치게 한다. 파멸의 유혹임을 알면서도 그 노래는 미치도록 달콤하여 기둥에 온몸을 묶여서라도 들어야만 한다.

 

 

 

<12권 184~196>

 

 

"칭찬이 자자한 오뒷세우스여, 아카이오이족의 위대한 영광이여!"

 

이름을 버려야만 생존과 귀환이 가능하지만, 오뒷세우스는 명예에 대한 칭송에 눈이 돌아간다.  아무것도 아니어서 살아남은 자, 오뒷세우스도 칭송받는 이름을 몸부림치며 갈망한다.  칭송은 인간의 영원한 유혹이다.

 

 

 

 

 

오바마 케어를 반대한 공화당에 대한 재미있는 패러디이다. 

 

 

 

<모험9. 스퀼라와 카륍디스>

 

 

 

세이렌 자매들 뒤로 카륍디스와 스퀼라가 보인다. 아홉 번째의 무시무시한 시련이 다가온다.

 

 

 

<모험9. 스퀼라와 카륍디스>

 

 

 

"Between Scylla and Charybdis"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한쪽에는 머리가 여섯 달린 괴물이 있고, 한쪽에는 빨려들면 빠져나올 수 없는 소용돌이가 인다. 이탈리아 반도와 시칠리아 섬 사이를 이렇게 부른다고도 한다.  

 

오뒷세우스는 스퀼라에게 전우 여섯 명을 희생시키고 이 바위들 사이를 빠져 나온다.

 

 

 

<모험10. 헬리오스의 섬>

 

 

 

헬리오스의 섬은 평화롭고 풍요롭다. 사투 끝에 기진맥진한 오뒷세우스의 일행에게 헬리오스 섬의 유혹은 강렬하다. 하데스에서 테이레시아스도, 키르케도 그렇게도 강력히 경고했지만, 오뒷세우스는 헬리오스 섬을 그냥 지나갈 수 없다.  시달릴 대로 시달린 전우들은 폭동이라도 일으킬 기세이다. 

 

바람 때문에 한 달간이나 헬리오스 섬에 체류하게 된 오뒷세우스의 전우들은 키르케가 준 식량이 바닥이 나자 오뒷세우스와의 맹세에도 불구하고 결국 태양신 헬리오스의 소떼를 잡아 먹는다.  시름시름 굶어 죽는 것보다 차라리 신의 분노로 단번에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지경에 처했던 것이다.

 

 

 

 

<모험11. 칼륍소>

 

 

 

 

다시 항해에 나선 오뒷세우스의 배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제우스의 천둥과 번개를 맞고 산산이 부서진다.  전우들은 모두 바다로 떨어져 죽었다.

 

혼자 살아난 오뒷세우스는 아흐레 동안 바다 위를 떠밀려 다니다가, 열흘째 되는 날 오귀기에 섬의 칼륍소에게 닿는다.

 

 

 

 

<12권 447~453>

 

 

 

12권의 마지막은 오뒷세우스의 1인칭 회고담이 끝나는 시점이다.  11번째 모험지인 칼륍소의 동굴에 도착한 이 마지막 이야기는 이미 9권 알키노오스의 궁전에서 회고담이 시작될 때 제일 먼저 한 이야기다.  

 

이야기는 이제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왔다. 원은 닫혔다. 그리고 우리는 마지막 모험, 12번째의 모험은 바로 이 파이아케스족의 나라인 것도 알고 있다.

 

 

 

<13권 1~6>

 

 

 

12가지 고난을 모두 겪은 후 오뒷세우스는 마침내 고향 이타케로 귀환하는 데에 성공한다.  『오뒷세이아』의 후반부가 시작되는 13권은 이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타케로의 물리적 귀향에 성공한 오뒷세우스에게는 아직도 기나긴 고난이 남아 있다.  오뒷세우스의 완전한 귀향은 아들과 아내와 아버지로부터 서로가 같은 마음임을 확인받고, 정체성을 인정받은 후에야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오뒷세이아』의 절반을 차지하는 13권에서 24권까지의 이야기는 그 기나긴 여

정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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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에서 12권까지는 『오뒷세이아 』를 읽어 보지 않아도 누구나 한번쯤 들어본 오뒷세우스의 갖가지 모험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전에 1권에서 4권까지의 흐름을 간단히 짚어보고 시작하자.

 

『오뒷세이아』는 '신들의 회의'로 시작되는데, 여기서 오뒷세우스의 귀향이 결정된다. 오뒷세우스는 트로이아 함락 이후 귀향길에 올랐으나 9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고향 이타케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아테나는 이타케에 있는 오뒷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에게, 헤르메스는 오뒷세우스를 7년간이나 붙잡고 있는 요정 칼륍소에게 파견된다.  

 

 

  

 

 

 

이야기는 먼저 텔레마코스를 향한다. 아테나는 아버지 오뒷세우스의 소식을 알아보기 위해 텔레마코스가 이타케를 떠나 퓔로스와 스파르테로 여행하도록 종용한다. 명성을 얻기 위해 고향을 떠나 모험을 겪어야 하는 젊은이의 성장을 그리고 있다. 1권에서 4권까지에 해당하는 서사시의 첫 번째 부분이다.

 

 

 

 

 

 

두 번째 부분인 5권부터 12권까지는 오뒷세우스의 12가지 모험담이 주를 이룬다. '오뒷세이아'를 모험의 대명사로 만든 그 유명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5권 21~35>

 

 

 

5권은 1권의 '신들의 회의' 장면에서 다시 시작한다. 1권 84행과 5권 28행이 겹쳐진다. 이제 요정 칼륍소에게 파견된 헤르메스를 따라가면 오뒷세우스를 만날 수 있다.

 

 

 

 

 

오뒷세우스는 칼륍소의 끈질긴 유혹에도 불구하고 불사의 신이 되기를 거부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애타게 바라고 있다.

 

" (....) 그는 밤에는 속이 빈 동굴에서

마지못해 원치 않는 남자로서 원하는 여자인 그녀 곁에서 잠들곤 했다.

그러나 낮이면 그는 바닷가 바위들 위에 앉아

눈물과 신음과 슬픔으로 자신의 마음을 괴롭히며

추수할 수 없는 바다를 눈물에 젖어 바라보았다." (5권 154~158)

 

 

 

<5권 203~213>

 

 

불사의 여신 칼륍소가 아니라 필멸의 여인 페넬로페를 찾아가는 오뒷세우스의 귀향길에는 아직도 많은 고난이 예정되어 있지만,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오뒷세우스는 귀향을 고집한다.

 

 

 

 

 

 

한결같은 신의 영생보다 고난을 겪는 인간의 삶을 선택한 것이다.  영웅 종족의 시대가 끝나고 철의 인간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변화되어 가는 가치관을 보여준다.

 

 

 

 

 

 

칼륍소의 도움을 받아 뗏목을 만든 오뒷세우스는 다시 귀향길에 오른다. 그러나 끝나지 않는 포세이돈의 분노로 뗏목은 산산이 부서지고 오뒷세우스는 파도에 떠밀리다 가까스로 해안가에 던져진다.  

 

 

 

 

 

그곳은 파이아케스족의 나라였다. 아테나 여신의 도움으로 나우시카 공주를 만나고 알키노오스 왕의 궁전에 탄원자로 들어간다.

 

 

 

 

 

알키노오스의 궁전에서는 이방인을 환대하는 관습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먼저 배불리 먹고 마시게 한 후 누구인지를 확인하고, 후한 선물을 마련하여 보내는데, 나그네가 원하는 경우 호송까지 책임진다.

 

오뒷세우스는 알키노오스의 물음에 답하여 정체를 밝히고, 트로이아 전쟁 이후 만 9년이 넘는 고난에 찬 귀향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9권부터 12권까지는 오뒷세우스가 직접 들려주는 모험담이다. 서양 문학 최초의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서술이다.

 

 

 

 

 

요정 칼륍소의 동굴에서 7년간 잡혀있다가 알키노오스의 궁전에 표류하여 왔으니, 오뒷세우스가 귀향길에 오른지는 이미 만 9년이 지나있다. 정확히는 만 10년이 되기 40일 정도 남은 시점에서 칼륍소를 떠나왔다.

 

따라서 지난 9년간에 대한 오뒷세우스의 회고는 서양 문학 최초의 플래시백 구성이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처음 『오뒷세우스』를 읽으면 매우 복잡해 보인다.  시점을 정확히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1인칭 서술은 '자기 서사' 이다.  자기가 겪은 일을  담담히 말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타인처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행위의 서술 뿐만이 아니라 반성이 이루어 진다.  자기 객관화를 통한 자기 반성이 자기 서사이다. 

 

'남의 눈에 티끌은 보기 쉬워도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한다.' 자기가 자기에 딱 들러붙어 거리 두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약 3,000년 전의 오뒷세우스의 자기 서술은 구성상의 놀라움을 넘어서는 자기 반성의 놀라움이다.

 

 

 

 

 

 

 

강의를 들으며 더듬 더듬 그려본 지도이다.  『오뒷세이아』에 나오는 지역이나 도시는 가상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지중해를 중심으로 상상의 지도를 그렸나 보다. 조금씩 다르기는 한데, 플라톤 아카데미 강대진 교수의 강의를 기준으로 그려본 것이다.

 

트로이아를 떠나 파이아케스족의 나라에 도착하기까지,  열 두번의 모험을 번호를 붙여 표시했다.  칼륍소가 11번째, 파이아케스족이 12번째이다.

 

12번째 모험지인 파이아케스족의 나라에 있는 알키노오스의 궁전에서 오뒷세우스는 자신이 겪었던 모험 이야기를 1인칭 서술자 시점에서 들려준다.  9년 전 트로이아를 출발하여 첫 번째 도착한 이스마로스로 시간은 거슬러 올라간다.  

 

 

 

 

 

 

오뒷세우스가 겪는 위험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노골적인 폭력, 성적인 유혹, 무책임의 유혹.  물론 그 외에도 있다.  각각의 모험은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의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으니, 도식적으로 분류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모험들에는 기괴한 괴물이나 기이한 습속이 많이 등장하는데, 글자 그대로가 아니라 알레고리로 읽는 것이 필요하다.

 

알레고리란,

"어떤 한 주제 A를 말하기 위하여 다른 주제 B를 사용하여 그 유사성을 적절히 암시하면서 주제를 나타내는 수사법. 은유법과 유사한 표현 기교라고 할 수 있는데 은유법이 하나의 단어나 하나의 문장과 같은 작은 단위에서 구사되는 표현 기교인 반면, 알레고리는 이야기 전체가 하나의 총체적인 은유법으로 관철되어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고 정의되어 있다.

 

 

 

 

강의에서는 다소 쉽게 설명한다.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이다. 1830년의 프랑스 7월 혁명을 그린 것인데, 가슴을 드러낸 여자는 구체적 인물이 아니라 여신으로 형상화된 추상적 개념으로서의 '자유' 참고로 르네상스 이후 그림에서 가슴을 드러낸 여자는 여신이거나 여신급이라고 한다.

 

오뒷세이아알레고리 기법으로 읽는다면, 칼륍소나 세이렌, 폴뤼페모스 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모험1 이스마로스>

 

 

첫 번째 모험지가 이스마로스다.  당시 흔히 있었던 경제적 활동으로서의 해적질이다. 재물과 여자를 약탈하여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다.   

 

이스마로스에서 고향 이타케로 돌아가려면 희랍 반도의 맨 끝에 있는 말레아 곶을 돌아야 하는데 여기를 지나다 파도와 조류에 밀려 퀴테라섬에서 표류한다. 본격적인 고난이 시작된다.

 

 

 

 

<모험 2. 로토파고이족>  

 

 

 

9일 동안 표류한 끝에 도착한 곳이 로토파고이족이 사는 나라다. 그들이 준 로토스를 먹은 전우들은 귀향을 잊어버리고 로토스를 먹으며 그대로 머물고 싶어 했다.  모든 의무와 책임과 목표에서 벗어나 망각과 도취 속에 살고 싶은 유혹의 알레고리로 읽을 수 있다.  가끔씩은 누구나 로토스를 먹고 싶어하지 않을까?

 

희랍인들에게 '9'는 우리의 '아홉수'와 같은 의미로 쓰였다고 한다. 유독 9일 동안이 여러번 나오는데, 9일을 넘기고 10일 째 도착하는 곳은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이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모험 이야기가 시작된다.  

 

 

 

 

3 번째 모험은 다음 글에서 ... 

 

 

 

* 그림 사진들은 플라톤 아카데미 강대진 교수의 강의에서 복사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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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뒷세이아』 에는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다.  EBS 특별기획 <통찰>의 이태수 교수의 <오디세이아>에는 "생존과 귀환을 위해서 필요한 인내와 지혜"가,  플라톤 아카데미의 강대진 교수의 <오디세이아>에는 "고난의 운명을 사랑하라"와 "오뒷세우스의 귀환 - 온전히 자기 자신일 수 있는 곳을 향하여" 가, 강유원의 <문학고전강의>에는 "자기만의 것을 찾기 위한 겪음"이라는 문구가 이 고전을 정의하고 있다.

 

 

 

 

 

복잡해 보이는데 간단히 그려보면 'pathei mathos' 이다. 고난을 통하여 지혜를 얻는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 인간의 정체성이 획득된다는 것이다.  고대 희랍인들의 이 유명한 격언이 트로이아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실 위에 판타지적 모험을 더하여 흥미 진진하게 펼쳐진 것이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이다.

 

 

 

 

 

 

 

오뒷세우스는 마지막 영웅 세대이다. 트로이아 전쟁 이후 청동기 미케네 문명을 찬란하게 장식했던 영웅들은 인간 세상에서 사라진다.  

 

 

 

 

서사시는 본질적으로 '영웅' 서사시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이스』와 『오뒷세이아』 이후 서사시 장르가 쇠퇴한 것은 영웅이 더 이상 인간적 가치의 표본이 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사실 호메로스는 영웅에 대한 마지막 찬가로서의 『일리아스』와  반영웅적 인간의 탄생을 알리는 『오뒷세이아』라는 두 작품을 통해 스스로 한 시대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오뒷세우스는 영웅으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영웅적 존재가 아니다. 영웅은 목숨을 버리고 명예를 얻어서 불멸의 신에 가까워 지려 하지만, 오뒷세우스의 모험은 신과 멀어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의 길을 보여준다.

 

 

 

 

 

신과 멀어진 인간, 영웅적 가치를 버린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오뒷세우스는 새로운 시대에 인간 존재란 무엇이고, 인간적 가치란 무엇인가에 대한 탐색을 시작해야만 한다. 

 

고대 희랍인들이 찾아낸 하나의 답이 '고난을 통하여 지혜를 얻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우리가 추정할 수 있는 것은 이 기나긴 오뒷세우스의 여정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오뒷세우스는 불멸의 신이나 신과 같은 영웅보다 모험을 통해 인내와 지혜를 배우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획득해 나가는 인간적 삶이 더 가치있다고 선언한다.

 

 

 

 

 

 

 

『오뒷세이아』도 『일리아스』와 마찬가지로 총 24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크게 두 부분 혹은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두 부분으로 나눌 때는 절반으로 잘라 앞 12권은 오뒷세우스의 귀향 이전, 뒤 12권은 귀향 이후의 이야기이다.

 

 

 

 

 

세 부분으로 나눌 때는 1:2:3으로 배분되는데, 첫 4권은 텔레마코스의 이야기, 중간 8권은 오뒷세우스가 들려 주는 귀향길의 환상적인 모험 이야기, 마지막 12권은 오뒷세우스가 이타케로 돌아와서 자신의 지위를 되찾고 정체성을 인정받는 이야기이다.

 

 

 

  <8대 고전 읽기. 오디세이아. 강대진. 플라톤 아카데미>

 

 

중간 오뒷세우스의 모험 이야기는 플래시백 기법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지금도 문학이나 드라마, 영화 등 온갖 매체에서 즐겨 사용하는 회상 장면이 약 3,000년 전에 발명된 구성 기법이다. 

 

『오뒷세이아』에서 가장 재미있고 가장 풍부하고 다양한 해석이 있는 이 모험 이야기가 분량으로는 1/3밖에 차지하지 않는 것이 낯설기도 하다.  완역본을 읽지 않은 사람들은 이 부분이 『오뒷세이아』의 전체라고 생각하기 쉬울테니 말이다.

 

 

 

 

 <오뒷세이아>

 

 

『오뒷세이아』도 시인이 무사 여신에게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부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일리아스』와는 다르게 누구의 이야기인지 그 이름이 없다. 그냥 '그 사람의 이야기' (a man) 이다. 

 

 

 <일리아스>

 

 

신이 정한 운명에 따라 명예에 살고 명예에 죽는 아킬레우스와는 달리  스스로 겪은 고난과 스스로 깨달은 지혜로 만든 이름이 오뒷세우스이다. 처음에 그는 한 남자에 지나지 않았다.

 

 

 

 

 

오뒷세우스는 트로이아 목마를 고안한 최고의 지략가이다. 그러나 트로이아성을 함락한 이후에도 9년 이상 바다 위를 떠돌아 다니고 있다.  포세이돈의 분노를 사 쉽게 귀향하지 못한다.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55XX51600077

 

 

 

오뒷세우스가 모험을 겪은 곳은 실제하는 곳은 아니다. 후대에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지도를 그려 놓았는데,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지중해 전역을 누비고 다닌 것만은 비슷하게 그렸다. 기원전 8세기 이후 희랍 폴리스들은 역사적으로 지중해 전역에 식민지를 건설하였다. 이를 반영한 상상 지도일 것이다.  

 

 

  <오뒷세이아>

 

 

시인의 간청에 따라 무사 여신이 그 남자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뒷세우스는 현재 시점에 요정 칼륍소에게 붙들여 있다. 귀향에 나선지 9년이나 지나버렸다.

 

 

  <오뒷세이아>

 

 

 

신들은 포세이돈이 먼곳에 간 틈을 타서 오뒷세우스의 귀향을 결정한다. 『오뒷세이아』는 신들의 회의로 시작하는 셈이다.  아테나와 헤르메스가 각각 이타케 섬의 텔레마코스와 오귀기에 섬의 요정 칼륍소에게 파견된다. 

 

 

 

 <8대 고전 읽기. 오디세이아. 강대진. 플라톤 아카데미>

 

 

 

이야기는 먼저 이타케로 파견된 아테나가 오뒷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를 북돋우어 오뒷세우스의 귀환을 알아보기 위해 필로스와 스파르테로 모험을 떠나는 것을 보여준다. 

 

1권에서 4권까지가  젊은이의 성장을 주제로 하는 텔레마코스의 모험담이다. 구혼자들에 둘러싸여 괴롭힘을 당하는 어머니 페넬로페를 보면서도 무기력한 어린 아이에 불과했던 텔레마코스가 이 여정을 통해 청년으로 성장한다.

 

텔레마코스의 성장은 오뒷세우스의 청년 시절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해석되고, 아버지 오뒷세우스의 아들로 인정받기 위해서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로 해석되기도 한다. 또 오뒷세우스의 귀환을 미리 보여주는 배치로 보기도 한다.

 

무엇이 되었든 어린 아이는 집을 떠나 고난을 겪어야만 어른이 될 수 있고, 귀환에 성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아야만 한다.

 

 

 

 <8대 고전 읽기. 오디세이아. 강대진. 플라톤 아카데미>

 

 

 

이야기는 흥미롭게도 텔레마코스의 귀환을 보여주지 않은 채, 칼륍소에게 7년간이나 붙잡혀 있는 오뒷세우스에게로 갑자기 시선을 돌려 버린다. 

 

4권은 이타케 섬으로 귀환하는 텔레마코스를 죽이기 위해 구혼자 무리들이 매복하여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끝난다. 텔레마코스의 운명은 15권에나 가서야 알게 될 것이다. 이렇게 1권에서 4권까지에 걸친 초반부의  젊은이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는 끝났다.

 

 

<8대 고전 읽기. 오디세이아. 강대진. 플라톤 아카데미>

 

 

 

중반부의 시작인 5권은 칼륍소에게 파견된 헤르메스가 신들의 결정을 통보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칼륍소는 어쩔 수 없이 오뒷세우스를 떠나보내고, 오뒷세우스는 파이아케스족의 나라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머물며 지난 9년간 겪은 모험에 대해 알키노오스 왕에게 이야기 한다. 5권부터 12권까지의 중반부 '뱃사람의 모험' 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것이다.   다양한 알레고리를 품고 있는 이 모험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하나씩 정리할 예정이다.

 

 

 

 <8대 고전 읽기. 오디세이아. 강대진. 플라톤 아카데미>

 

 

 

종반부 '귀향' 은 서사시 전체의 1/2을 차지할 만큼 분량이 많다. 단 몇 일 간에 벌어지는 간단한 이야기가 이렇게 긴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진정한 귀향' 즉 '정체성의 인정'이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

 

여기에는 끊임없이 경고되던 아가멤논의 죽음과 같은 두려움이 있다. 20년 만에 돌아온 오뒷세우스는 과연 이타케의 진정한 왕으로, 자랑스러운 아버지로, 사랑하는 남편으로, 믿음직한 아들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어떤 과정을 거쳐 서로는 서로를 인식하고, 인정하고, 한 마음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인간의 정체성은 그 모든 과정들의 결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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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대 고전 읽기.  오디세이아. 강대진. 플라톤 아카데미>

 

 

『오뒷세이아』 는 총 24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떤 학생이 "선생님, 도서관에는 한 권밖에 없던데요." 하더라는 강대진 교수의 농담이 우습다기 보다는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고전은 책 이름만 유명하지, 책 자체는 본 적도 없기 십상이다.  책을 넘겨 보지 않고서야 책 한 권 안에 24권이 다 들어 있는 줄 알 리가 없다.

 

 

 

<오뒷세이아, 해설 p626>

 

 

 

『일리아스』이든  『오뒷세이아』이든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소재가 아니라 플롯이 중요하다. 이야기 자체는 오랫동안 구전되어 오던 것들이다. 호메로스의 탁월함은 이 이야기를 다루는 솜씨 즉 구성에 있다.

 

 

<인문고전 강의. 강유원>

 

 

 

서사시 고유의 형식은 "in medias res" 이다.  시간의 순서나 사건의 흐름를 차근히 밟아 나가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사건의 한가운데로 직진한다. 

 

 

 

 <8대 고전 읽기.  오디세이아. 강대진. 플라톤 아카데미>

 

 

 『일리아스』는 다짜고짜 '아킬레우스가 열받았어! '로 시작하고,  『오뒷세이아』는 칼륍소에게 붙잡혀 있는 오뒷세우스를 귀향시키기 위한 신들의 회의로 시작한다. 트로이아 전쟁의 원인이나 희랍 연합군에 대한 설명도 없고, 오뒷세우스가 트로이를 떠나 귀향길에 오르는 모습도 묘사하지 않는다. 

 

 

 

<8대 고전 읽기.  오디세이아. 강대진. 플라톤 아카데미>

 

 

 

시작하자마자 아킬레우스는 9년이나 트로이아에서 전쟁 중이고, 오뒷세우스는 귀향길에 오른지 9년이나 지나 있다. 하지만 곧바로 치고 들어간  핵심 안에 트로이아 전쟁의 전모가 담겨있고, 오뒷세우스의 고난의 여정이 모두 담겨 있다. 핵심을 통해 전체를 보여주는 탁월함이 호메로스의 솜씨이며, 호메로스 이후 모든 고전의 전범이다.

 

 

 

 

 

 

숲 출판사, 천병희 번역의 『오뒷세이아』 에는 <호메로스의 작품과 세계>라는 해설이 실려 있다. 『일리아스』에도 동일한 해설이 실려 있는데, 우리 독서팀은 먼저 이 해설을 읽고 본문을 읽기로 하였다.  여기서는 주로  『오뒷세이아』에 관하여 중요한 것들만 정리해 두겠다.

 

 

 

 

 

 

소위 트로이아 서사시권과 테바이 서사시권이 있다.  현존하는 서사시들이 주로 이 두 신화를 소재로 하기 때문이다. 트로이아 서사시권은 8편이 있는데, 이것들을 이으면 하나의 통일된 이야기 즉 트로이아 전쟁과 그 뒷이야기가 완성된다. 『일리아스』는 트로이아 서사시권의 두 번째 작품이고, 『오뒷세이아』는 일곱 번째 작품이다.

 

 

 

 

 

 

현재 남아 있는 온전한 형태의 서사시는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밖에 없다.  기원전 4세기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 이 두 작품은 양적으로든 질적으로든 가장 뛰어난 서사시이다.  통일성과 총체성을 획득하여 탁월한 체계를 이루고 있다.

 

 

 

 

 

 

서사시의 운율을 헥사메터라고 하는데,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일리아스』에는 아킬레우스가 직접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있다. 『오뒷세이아』 에는 전문적으로 노래하는 직업 가인이 등장한다. 그런데 직업 가인은 언제부턴가 음송자에 의해 대치된다.

 

 

 

 

 

 

직업 가인은 손에 악기를 듣고 '노래' 하였다. 반면 음송자는 손에 지팡이를 들고 '낭송' 한다.  

 

 

 

 

<호메로스의 대관식. 1827. 장 도미니크 앵그르>

 

 

 

노래가 낭송으로 바뀌면서  "노래에 적합한 간단한 운율은 서사시에 적합한 복잡하고 긴 헥사메터가 되고, 짤막한 영웅 찬가는 대하처럼 도도히 흐르는 영웅 서사시로 변모" 했다.

 

 

 

 

 <8대 고전 읽기.  오디세이아. 강대진. 플라톤 아카데미>

 

 

 

장단단 (혹은 장장단)의 운율이 6번 반복되면 1행이 된다.  『일리아스』는 15,000행 정도,  『오뒷세이아』는 12,000행 정도의 방대한 서사시이다.

 

 

 

 

  <EBS 특별 기획 통찰. 고전 인간을 말하다. 오디세이아>

 

 

 

『일리아스』가 역사적 사실에 얼마만큼 근거한 작품인가에 대한 관심은 적지 않다. 기원전 13세기경 트로이아의 멸망은 발굴된 유적과 서사시 내용이 일치하기 때문에 사실로 추정된다.

 

 

 

 

 

『일리아스』는 "트로이아 전쟁이라는 핵심적 사건에 문학적 허구와 시대와 장소를 달리하는 여러 전설들이 상당수 첨가" 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에 반해  『오뒷세이아』는 역사적 사실의 여부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민족의 영웅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젊은이의 성장, 뱃사람의 모험, 귀향 등이 주제이기 때문이다. 이 주제를 통해  『오뒷세이아』는 인간의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일리아스』는 전형적인 영웅 서사시이지만,  『오뒷세이아』는 영웅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서사시이다.  명예로운 이름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영웅과는 달리 오뒷세우스는 자신의 이름을 감추고서라도 살아남아 귀향하기를 갈망한다.

 

 

 

  <8대 고전 읽기.  오디세이아. 강대진. 플라톤 아카데미>

 

 

 

외눈박이 거인인 폴뤼페모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오뒷세우스는 자신의 이름을 outis 라고 말한다. 이름을 걸고 당당하게 거인을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nobody로 속여서, 스스로의 이름을 버려서,  살아남는 것이다.  거친 세상을 오로지 인간의 힘으로 헤쳐가야 하는 시대에는 명예보다 사고의 유연함과 기민한 판단력이 이상적 가치로 부상하기 시작한다.

 

 

 

 

 

 

영웅의 시대가 끝나고 이상적 인간에 대한 가치관이 변모하면서 문학 장르도 변천을 겪는다. 서사시는 본질적으로 '영웅' 서사시이기 때문이다.  일상의 지혜와 교훈을 위해서 등장하는 것이 교훈시와 서정시이다. 특히 서정시는 개인의 내면을 노래함으로써 서사시적 문체와는 완전히 결별한다. 

 

 

 

 <일리아스 해설>

 

 

 

서사시에서는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지 않는다. 행위는 내면을 나타내고, 내면은 곧 행위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것은 죽고 나서이다.  죽음과 동시에 분리된 영혼은 하데스로 내려가고, 육체는 매장되어 소멸된다.

 

서정시 이후가 되어서야 서양인들은 외면과 내면이 분리된, 갈등과 분열을 겪게 되는 것이다. 헴릿처럼 말이다.  갈등이 없다는 의미에서 호메로스적 인간은 단순하고 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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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고전 읽기 모임, 두 번째 책은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이다.  김헌의 <한눈에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강의를 통해 신들의 계보에 조금은 익숙해 졌다.  마지막 준비로 시대적 배경과 호메로스의 전작 『일리아스』를 간단히 정리하고 『오뒷세이아』 읽기를 시작하려 한다.  

 

 

 

 

 

 

 

 

서양 문명은 지중해에서 발달했다.  지중해에서도 에게해의 크레타섬에서 서양의 첫 문명이 탄생한 것은 동방의 선행한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을 제일 가까이에서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크레타 (미노스/미노아) 문명의 흔적은 크노소스 궁전 유적과 벽화, 신화 등으로 남아 있다.

 

 

<미노타우로스를 죽이는 테세우스 (BCE. 6C).  항아리 그림>

 

 

지중해 문명은 기원전 1400년 이후 미케네 문명으로 중심지가 이동한다. 크레타 문명은 희랍 본토에서 내려온 미케네인에 의해 멸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의 역사, 윌리엄 맥닐>

 

 

 

기원전 1500년을 전후로 유라시아 전대륙에 걸쳐 청동 전차 군단을 거느린 유목민의 대대적인 침략이 있었다. 튼튼히 뿌리 내린 서아시아와 이집트 문명은 멸망을 면하고 회복했지만, 지중해와 인도 그리고 중국은 최초의 문명이 몰락하고 새로운 문명이 시작되었다.  미케네 문명도 이때 탄생한다.

 

 

 

 <고난의 운명을 사랑하라, 오디세이아. 플라톤 아카데. 강대진 https://youtu.be/jTvwnGE-anY>

 

 

 

 

기원전 1200년을 전후하여 유목민들의 대대적인 침략이 또 한번 일어난다. 이 침략으로 청동기 시대는 끝나고 철기 시대가 도래한다. 지중해도 청동기 시대가 막을 내리고 약 400년의 암흑기가 찾아온다. 

 

 

 

 

 

 

기원전 8세기 에게해 주변의 소아시아를 비롯한 발칸 반도에는 놀랍도록 완숙한 문화가 피어난다. 고대 희랍의 이른바 폴리스 시대이다.  암전 이후의 화려한 무대처럼, 갑자기 등장한 찬란한 문화는 서양 문화의 뿌리가 되어 지금까지도 서양 정신을 지배하고 있다.

 

 

 

 

 

미케네 문명의 몰락 이후 고대 희랍의 폴리스 시대가 시작되기 전까지를 암흑기라 부르는 이유는 문자가 없어서 기록된 역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크레타와 미케네 문명의 시기에는 선문자 B라는 음절 문자가 있었던 반면, 문자 없는 암흑기를 거쳐 고대 희랍 시대는 페니키아 문자에서 유래한 음소 문자가 만들어졌다.

 

 

 

 

 

<차이나는 클라스. 강대진. 희랍 비극>

 

 

여기서 잠깐, 그리스를 희랍으로 번역하는 학자들이 많다.  Greece는 로마인들이 발칸 반도의 서남쪽 희랍인들을 라틴어로 Graecia라고 부르던 것에서 유래한 영어식 명칭이다. 희랍인들은 스스로를 Hellas (물론 이것이 희랍문자는 아니지만;;)라고 부른다.  헬레네스들(헬라스 사람들)이 헬라스라고 하는데 남들이 굳이 그리스라고 불러야 할 이유는 없을 듯하다. 헬라스를 음차한 것이 희랍이니 특히 원전 번역에서는 책에 나오지도 않는 그리스보다는 음차하여 희랍으로 번역하는 것이 당연한다.

 

 

 

 <김헌의 한눈에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EBS 지식의 기쁨>

 

 

 

 

헬라스는 헬렌의 후손이란 뜻으로 희랍의 홍수 신화와 관련이 있다. 제우스의 분노로 인간을 절멸시킬 대홍수가 발생하는데, 프로메테우스가 아들 데우칼리온 부부에게 미리 대비하라고 말해준다.  대홍수에서 살아 남은 데우칼리온 부부의 아들이 헬렌이고, 희랍인들은 자신들을 헬렌의 후손이라고 생각한다. 헬라스, 헬레네스, 헬레니즘은 모두 헬렌에 그 어원이 있다.

 

 

 

 

 

 

희랍의 폴리스 시대는 기원전 8세기에 시작되어 기원전 4세기 알렉산드로스에 의해 멸망했다. 전성기는 페르시아 전쟁에 승리한 이후부터 펠로폰네소스 전쟁 시기까지인 기원전 5세기 이다.

 

알렉산드로스 제국 이후에는 로마가 패권을 차지했다가, 중세가 되어서야 서유럽이 서구의 중심지로 부상한다. 서양의 역사를 보면 동양 문명의 빛이 가장 일찍 도달한 발칸 반도에서 이탈리아 반도, 유럽 서북부로 중심지가 이동하고 있다.

 

 

 

 

 

고대 희랍의 전성기에 지중해와 흑해에 걸쳐 수백 개의 폴리스가 세워졌다.  

 

 

 

 

 

고대 희랍 문명의 중심지는 아테나이다. 아테나이는 민주정의 발달과 더불어 문화도 만개했다. 

 

 

 

 

 

 

 

 

서사시는 기원전 8세기 호메로스와 함께 완결되었고, 이후 서정시를 거쳐, 기원전 5세기에는 비극의 시대가 구가되었다. 

 

 

 <김헌의 그리스 비극. 2016. 오마이스쿨>

 

 

 

서사시와 서정시는 궁전이나 귀족들 사이에서 음송된 반면, 비극과 희극은 시민들이 원형 공연장에서 다 같이 관람하였다. 

 

 

 

  <김헌의 그리스 비극. 2016. 오마이스쿨>

 

 

 

장르의 변천은 특정 시기 역사적 상황과 그 성과를 반영하고 있다.  특히 비극 공연은 아테나이 민주정의 성과일 뿐 아니라 민주정체를 위한 시민의 덕성을 함양하는 교육이었다.

 

 

 

 

 

 

 

서사시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오뒷세이아』가 대표작이고, 희랍 비극은 3명의 비극 작가에 의해 완성되는데, 그 중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이 단연 최고의 작품으로 꼽힌다.  희랍 내전인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희랍 세계는 전체적으로 몰락하는데, 희랍의 쇠퇴와 함께 전성기를 맞는 것이 희랍 철학이다.

 

 

 

 

 

 

 

희랍의 서사시와 비극은 기원전 8세기 이후에 발전하였으나, 이 작품들이 다루는 소재는 대부분 오랫동안 전승되어 오던 신화들이다. 특히 미케네 문명기의 헤라클레스 신화, 테바이 전쟁,  트로이 전쟁에 관한 신화들이 이야기의 원천이다.

 

 

 

 <일리아스 해설. 천병희 역>

 

 

서양 최초의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미케네 문명이 파괴된 이후 이른바 암흑기 동안 여러 형태로 구전되어 오던 이야기들이 폴리스 시대에 와서 호메로스에 의해 완벽한 구성을 가진 문학 작품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호메로스 시기에는 음송되던 서사시들이 정확히 언제 기록되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호메로스는 실존 여부에 관해 여러 논란이 있지만, 기원전 8세기에 이오니아 지방 출신인 것으로 추정된다.

 

 

 

 

 

호메로스가 서양 정신의  출발점이라는 데에 이의가 있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동양 문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주장도 있다. 호메로스가 서양 최초의 서사시 작가일지는 모르지만 인류 최초의 서사시는 수메르인의 것이라는 말이다.

 

 

 

 <길가메쉬 서사시. 김산해>

 

 

 

반인 반신의 인간, 영웅의 성장담, 필멸의 신과 불멸의 인간, 죽음에 대한 고뇌와 수용, 공동체를 구하는 명예 등의 주제 뿐만 아니라, 구성에 있어서도 집을 떠나 온갖 고난을 겪고 지혜로움을 얻어 귀향하는 원환적 구조도 상당히 유사한 것이 사실이다.

 

 

 

 

 

『세계의 역사』에서 윌리엄 맥닐은 문명의 발생과 전파, 상호 영향이라는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했다. 여기에서 문명의 선후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문명의 중심지는 변화하고 서로가 서로의 영향을 받는다.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문명이 서양 문명을 비롯한 각종 문명에 영향을 미쳤다고 해서, 메소포타미아가 우등하다는 것도 길가메쉬가 최고라는 것도 아니다. 애초에 우열로 문명을 가리는 것부터가 미개하다.

 

 

 

 

 

 

『일리아스』를 읽지 않았다고 『오뒷세이아』를 못 읽는 것은 아니다.  고전기 희랍 문학을 전공한 강대진은 여러 강의에서  『오뒷세이아』를 먼저 읽으라고 권하기도 한다. 『일리아스』 읽기가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트로이아 전쟁을 다루는 호메로스의 두 서사시 중  『일리아스』가 전쟁 자체를 다루고, 『오뒷세이아』가 전쟁 이후의 귀향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순서대로 읽는 것이 더 좋기는 하다. 

 

그렇다고 두 서사시가 트로이아 전쟁 전체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서사시권' 이라는 용어가 있다는데, 트로이아 전쟁을 다루는 서사시 총 8편을 가리키는 용어로,  호메로스의  두 작품만 온전히 전하고 나머지는 단편적으로만 남아있다.  서사시권을 트로이아권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테바이 신화를 다루는 테바이권과 구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https://ko.wikipedia.org/wiki/%EC%84%9C%EC%82%AC%EC%8B%9C%EA%B6%8C

 

 

 

 

 

서사시권들은 미케네 시대의 영웅들의 이야기인데, 『일리아스』 는 트로이아 전쟁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했던 아킬레우스를 주인공으로 한다.  신화에 따르면 영웅 종족은 테바이 전쟁과 트로이아 전쟁을 끝으로 인간 세상에서 사라졌다.

 

 

 <한눈에 보는 그리스 로마신화. 김헌. 지식의 기쁨>

 

 

 

트로이아 전쟁은 아킬레우스의 어머니 테티스 여신과 아버지 펠레우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이 결혼식장에 던지고 가버린  '황금 사과'가 최초의 원인이 된다.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라고 씌어진 황금 사과를 차지하려고 여신들 사이에 불화가 발생하고, 골치가 아파진 제우스가 이 문제를 트로이아의 왕자 파리스에게 맡기는 바람에 졸지에 신들의 싸움에 인간 세상이 끌려 들어간 사건이다.

 

 

 

 

아프로디테에게 황금 사과를 건넨 대가로 파리스는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유혹하여 트로이아로 달아나는데 성공하고, 격분한 헬레네의 남편 메넬라오스가 희랍 동맹군을 형성하여 10만의 희랍군이 트로이아 원정에 나선 것이 이른바 트로이아 전쟁이다.

 

 

 <일리아스>

 

 <일리아스>

 

 

 

황금사과가 던져진 결혼식에서 탄생한 영웅이 아킬레우스이니, 호메로스가 이 전쟁을 노래하며 아킬레우스의 분노에 초점을 맞춘 것은 지극히 당연하면서도 절묘하다. 아킬레우스는 이 전쟁의 원인이자 해결책이다.

 

 

 

 <일리아스>

 

 

 

하지만 실제로 전쟁은 영웅들의 능력보다는 신들의 뜻에 의해 좌우된다. 희랍인들에게 신이란 어떤 의미인지, 신이 인간의 내면을 외형화한 것인지 등에 대한 논의를 생각지 않고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그렇다는 것이다.  호메로스를 읽기 전에 희랍 신화를 개략적으로나마 정리한 것은 이 때문이다.  나름대로 보람이 있다. ^^;;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는 트로이아 전쟁의 아주 일부만을 다루고 있다. 전쟁의 원인이 된 황금사과와 파리스의 심판도, 헬레네와의 도주도, 전쟁을 끝낸 트로이아의 목마도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는 주인공 아킬레우스의 탄생과 종말도 보여주지 않는다.

 

 

 

 <일리아스>

 

 

그럼에도 『일리아스』는 트로이아 전쟁 전체뿐 아니라 인간의 삶과 우주의 원리까지 담아낸 총체성과 보편성을 획득한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따라가다 보면 지난 9년간의 트로이아 전쟁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고,  전쟁 중간 중간에 묘사된 인간의 모습 특히 죽어가는 자의 가족과 일상에 대한 감성적이고 세부적인 묘사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보편성에 대한 사유와 반성을 촉구하게 된다.

 

불멸의 신과 필멸의 인간이라는 대립 구도는 고대 희랍인들이 생각했던 우주의 원리에 대한 사유이자,  인간 존재의 한계 속에 참다운 인간은 어떤 삶을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뇌 어린 질문이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운명을 수용하는 아킬레우스의 명예로운 행위는 불멸의 신이 아닌 필멸의 인간만이 추구할 수 있는 인간적인 가치이다.  짐승과 같은 욕망으로 날뛰던 아킬레우스가 친구의 죽음을 겪으며 진정으로 명예로운 영웅의 길을 선택하는 것도, 복수의 일념으로 적장 헥토를 죽이고 그 시신을 끌고 다니며 분을 삭이지 못하던 아킬레우스가 헥토르의 아버지 프리아모스를 만나며 모든 아버지의 슬픔을 이해하고 시신을 넘겨주는 것도, 모두 인간이기에 가능한 변화하는 모습이다. 이미 완벽한 신은 무엇으로 변화하지도 않고, 성장하지도 않고, 끝나지 않는 영겁의 시간을 소비하며 살아갈 뿐이다. 죽음은 인간에게 내려진 형벌이지만 또한 축복이기도 하다.

 

 

 

 <향연>

 

 

 

플라톤의 『향연』에도 지혜를 추구하는 중간자로서의 에로스를 찬양하고 있다.  인간은 중간자이다.  짐승과 신의 중간자로서 한계를 넘어 신의 경지에 도달하려는 욕망, 그 에로스가 인간을 변화와 성장으로 이끄는 동력, 인간적 가치이다.  인간과 신의 경계가 뚜렷한 고대 희랍의 사유에서 이 에로스적 열망과 궁극적 좌절이 비극을 만들어 낸다.

 

 

 

<일리아스>

 

아킬레우스는 '명예의 선물'인 볼이 예쁜 브리세이스를 빼앗아 간 아가멤논에 분노하여 전쟁에 나가지 않을 것을 선언하고, 어머니 테티스 여신에게 청하여 자신이 참전하지 않는 한 희랍군이 패배하도록 제우스를 설득하게 만든다.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희랍군의 수많은 영웅들을 개떼의 먹이가 되도록 한다.

 

 

 

 

 

제우스의 뜻에 따라 전쟁은 혼전의 양상을 거듭하다가 아킬레우스가 가장 사랑하는 파트로클로스가 트로이아의 영웅 헥토르에 의해 죽음을 당한다.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는 희랍군에 대한 분노 때문에 자신의 가장 소중한 존재를  잃고 나자 아킬래우스의 분노는 적장 헥토르를 향한다.

 

 

 

 <일리아스>

 

 

헥토르를 죽이고 희랍군을 파멸에서 구해내는 것은 아킬레우스의 목숨을 대가로 하는 것이다.  신들이 정해놓은 운명에 의하면 아킬레우스가 헥토를 죽이면, 그 다음 죽음의 차례는 아킬레우스 그 자신이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분노로 파괴된 공동체를 자신의 죽음으로 구해내고 신들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긴 수명 보다 높은 명성을 선택한 것이다. 

 

아킬레우스가 트로이아 전쟁 최고의 영웅인 것은 고대 희랍인들이 생각했던 최고의 인간은 겪음(고난)을 통하여 지혜로워진 성숙한 인간이며, 그 지혜의 핵심은 '자신을 희생하여 위기에 처한 공동체를 구하고 영원히 이름을 남기는 것' 이다.  아테나이 민주정이 시민의 덕성으로 훈련시키려 했던 것이 이러한 가치가 아닐까?

 

 

 

 

 

 

 

『일리아스』는 내용이나 주제뿐 아니라 그 구조에 있어서도 완벽한 문학 작품의 전형으로 평가받는다.  Ring Composition, 원환 구조를 갖고 있다. 

 

강대진에 따르면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첫 번째는 전투 준비, 두 번째는 나흘 간에 걸친 전투, 세 번째는 전투 정리이다.

 

첫 번째 전투 준비와 세 번째 전투 정리 부분은 각각 세 권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세권들은 수미상관의 구조를 하고 있다.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하는 1권은 마지막 24권에서 모든 분노가 해소되어 헥토르의 시신을 아버지 프리아모스에게 돌려주는 것으로 끝난다.

 

뿐만 아니라 역병과 아킬레우스의 분노의 원인이 되었던 크뤼세이스와 트로이 전쟁을 실질적으로 끝내는 헥토르의 시신이 대구를 이룬다.  1권에서는 희랍군의 총사령관 아가멤논에게 노예로 잡혀온 딸 크뤼세이스를 찾으로 아폴론 신전의 사제인 머리 하얀 노인이 헤아릴 수 없는 선물을 가지고 찾아 오는데 반해,  24권에서는 머리 하얀 노인인 트로이아의 왕 프리아모스가 아들 헥토르의 시신을 찾으러 헤아릴 수 없는 선물을 가지고 아킬레우스를 찾아온다.

 

아가멤논은 크뤼세이스를 돌려주기를 거절하고 이때문에 희랍군에는 역병이 돌고 그 과정에서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폭발한다. 희랍군에게 파멸을 안겨주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아킬레우스는 프리아모스에게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줌으로써 분노를 완전히 극복하고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회복하며 진정으로 명예로운 영웅으로 거듭나다.

 

2권과 23권은 현재 영화에 빗대면 opening credit과 ending credit에 해당하는 것으로 2권 함선들의 목록은 트로이아 전쟁을 위해 희랍에서 출발한 영웅들과 함선의 수를, 23권은 헥토르를 죽이고 난 후 파트로클로스의 장례 경기에 참여한 영웅들을 열거함으로써, 이 전쟁에 참여한 희랍군의 면모를 일일히 소개하고 있다.  우리에겐 길고 지루한 이름의 나열에 지나지 않지만, 고대 희랍인들에게는 자신들의 폴리스와 지역, 집안이 소개되고 있기 때문에 매우 가슴 두근거리며 귀를 세웠으리라 짐작된다.  영화에 우리 아버지나 우리 마을이 나온다고 생각해 보라.

 

3권과 22권은 이 전쟁의 원인과 결말을 각각 상징하는 결투가 배치되어 있다. 3권의 파리스와 메넬라오스의 결투는 헬레네의 현 남편과 전 남편의 대결로 이 전쟁의 원인을 보여주고 있다.  22권은 양 진영의 최고의 영웅들의 결투로 아킬레우스가 헥토르를 죽임으로써 희랍군의 최종 승리를 암시하고 있다.

 

4권부터 21권까지는 나흘간의 전투 장면인데, 이 전투를 통해 지난 9년간의 트로이아 전쟁의 경과를 보여줄 뿐 아니라, 인간 삶의 총체적 모습과  인간과 신으로 구성된 우주의 원리에 대한 통찰까지 담아내고 있다. 

 

나흘 간의 전쟁의 양상도 균형있게 묘사하고 있다. 첫째 날은 지난 9년 간의 전투를 집약해서 보여주고, 둘째 날부터 세째 날은  현재 시점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투를 묘사한다.

 

둘째 날은 트로이아의 우세, 셋 째날은 각축전으로 쌍방이 3번씩 밀고 밀린다. 넷째 날은 희랍군의 우세로 끝나면서 희랍군의 최종적 승리를 보여준다.

 

 

 

 

『일리아스』에 관한 책과 강의 영상이 참 많다. 고전의 대중화가 이루어지는 것도 같고, 공부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아 든든하다.  그만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파고들면 들수록 발견할 것들이 많은 텍스트라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지금의 내 수준에 맞게 읽으며 조금씩 조금씩 독해의 수준을 향상시켜 나가려고 한다.  이미 있는 것들에 보탤 것도 없는 글을 계속해서 쓰는 이유는 단 하나 내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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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0-09-06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겁나 알찬 페이퍼군요.... 이런 게 그냥 ‘준비‘라니....
좋아요 30개 누르고 싶습니다만 30번 누르면 0개라서;

말리 2020-09-06 20:23   좋아요 0 | URL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 정식으로 공부한 적 없이 끙끙거리며 고전을 읽으려니 이것 저것 찾을 때마다 새롭게 아는 것이 생기고, 이전에 잘못 안 것도 발견하니 또 부끄러워지고 그렇습니다. 이해하고 읽으주시기 바랍니다. ^^;;

막시무스 2020-09-06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스 신화와 신들의 계보 페이퍼를 넘어서는 역작입니다! 감사히 잘 읽었어요!ㅎ

말리 2020-09-06 20:27   좋아요 0 | URL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저도 좋은 글 읽으며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