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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하녀 -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
고병권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목사님 ! 그때 왜 그랬어요, 네 ?
영화 << 달콤한 인생 >> 에서 이병헌이 보스에게 묻는다. " 그때 왜 그랬어요 ? 말해봐요, 네에 ? "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중고교 학창시절을 통틀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일은 " 선생이 학생을 무시무시하게 폭행한 사건 " 이었다. 가해자는 미션스쿨'에서 성경 과목을 가르치는 교목(목사)이었고 피해자는 내 친구'였다. 전라도 허벌나게 먼 곳에서 상경한 녀석이었는데 가정 형편이 어려웠는지 3년 내내 신문을 돌렸던 친구'였다. 친구는 목사가 휘두른 주먹에 정신없이 맞아서 눈이 떠지지 않을 정도'였다. 수업 시간에 친구가 목사에게 던진 질문이 발단이었다. " 예수님은 헐벗고 굶주린 이웃을 걱정하시며 스스로 헐벗고 굶주리셨는데, 예수님의 삶을 따른다는 목사님들은 왜 하나같이 뚱뚱한가요 ? "
우리는 엉뚱한 질문에 까르르 웃었다. 당시 얼굴에 기름이 번지르르르르르르했던 교목은 친구를 교단으로 불러냈다. 그의 눈동자에서 살쾡이 같은 표독스러운 눈빛이 감지되었다. " 좆됐구나, 시바 ! " 나는 웃음을 삼키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교목은 김득구가 되어서 주먹을 마구 휘둘렀다. 흥분한 교목이 말했다. " 내, 내내내내내내가 예수님 하면 예, 예예예예수님인 거야. 알아, 이 씹떼끼야 ! 무, 물물물론 기도하고 회계하며 고된 삶을 살아야 하는 게 목회자의 고난 ! 고행 ! 고독한 운명이지만, 이... 씹떼끼 ! 목사가 개개개개게을러서 뚱뚱한 게 아니야 ! 내, 내내내가 말하지만 기도하지 않은 자에겐 내일의 태양은 떠오르지 않아 !!!!!!!!!!!!!!!!!!!!!!!!!!!!!!!!!!!! " 뭐, 대충 이런 상황극'이었다.
그날 성경 수업에서 그가 가르친 것은 <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 가 아니라 < 네 이웃을 샌드백처럼 쳐라 > 였다. 방과 후, 친구는 아픈 몸을 이끌고 신문을 돌려야 했다. 내가 누군가 ! 아픈 친구를 돕는다는 목적으로 친구 일을 도왔다(그가 쪽지에 적어준 주소를 바탕으로 신문을 50부 정도 돌렸다). 왜냐하면 그날이 바로 신문보급소 월급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친구가 고맙다며 짜장면'을 사줬다. 맛, 있었다 ! 헤헤. ( 지금도 나는 그 친구가 땀 흘린 대가로 사준 그 짜장면 맛을 잊지 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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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신앙이 깊은 신학생'이었다. 성격도 밝고 명랑했으며 순수한 영혼을 가진 베르테르였으며 부모가 상당한 부자'였다. 고르고 하얀 치아는 그가 부잣집 외아들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그는 동성에게는 좋은 친구였고, 이성에게는 좋은 교회 오빠였다. 결혼 정보업체 < 듀오 > 에 의하면 그는 신랑감으로써 90점이었다( 반면 나는 마이너스 1000점이었다). 그는 어느 모로 보나 모난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특별하다면 특별하다고 할까 ? 그 친구는 " 고기 " 를 과도하게 좋아했다. 점심 시간에 삼겹살을 구워먹는 건 일상에 가까웠다. 심지어 아침에도 고기를 구워먹는다고 했다. 나는 그런 그가 매우 이상했다. 과도한 육식 애호 식성 때문이 아니다. 그가 기독교인이면서 동시에 육식-제일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신앙심 깊은 기독교인이면서 동시에 고기를 과도하게 좋아하는 식성은 마치 진중권과 변희재를 하나로 묶은 짝패만큼 이상한 조합이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너는 천국에 가기 위해 기독교인이 되었지 ? - 응 ! 너는 고기를 좋아해. 아니, 사랑해. 지금 이 순간에도 고기 생각하면 침이 고일 거야, 맞지 ? - 응 ! 그렇다면 너는 천국에 입주하면 안 돼 ? - 읭 ??!! 내가 내세운 논리는 간단했다. " 천국에는 고기가 없다 ! " 천국에서 소를 키울 수는 있다. 하지만 소를 죽일 수는 없다. 천사가 식욕을 채우기 위해 소를 죽인다 ?! 천국 시민인 천사가 하얀 날개를 펄럭이며 쇠망치를 들어 소 머리를 내려친다 ? 맙소사, 그런 일은 천국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만약 당신이 천국에서 살고 싶다면 반드시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는 소리이다. 내가 말했다. " 천국이냐 고기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라 ! " 그는 내 말을 듣고 나서 곰곰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환하게 웃었다. " 조까 !! " 천국에 입주하면 안 되는 사람은 비단 육식-제일주의자뿐만이 아니다. 철학자도 천국에 가면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고병권은 << 철학자와 하녀 >>라는 에세이'에서 " 철학은 지옥에서 하는 것이다 " 라고 단언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깨달음은 천국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천국에는 우리 자신에 대한 극복의 가능성도 필요성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국에는 철학이 없고 신은 철학자가 아니다. 철학은 지옥에서 도망치지 않고 또 거기서 낙담하지 않고, 지옥을 생존조건으로 삶아 거기서도 좋은 삶을 꾸리려는 자의 것이다 ( 20쪽 )
천국은 풍요로운 곳이다( " 다만... 고기만 없을 뿐이다, 시바 ! " ). 하지만 지옥은 철학을 배울 수 있는 좋은 배움터'다. 어마어마한 억만장자였던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을 위해서는 풍요를 버려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에 상속을 포기했던 인물이다. 그는 < 배부른 돼지가 되느냐 > 아니면 <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느냐 > 에서 소크라테스를 선택했다. 이 책은 철학에 대해 말하지만 전혀 어렵지 않다. 쉬운 표현으로 어렵지 않게 말한다. 그는 니체의 << 이 사람을 보라 >> 에 나오는 문장을 소개하며 이 책에서 하고 싶었던 말을 요약한다. " 이 사소한 사항들은 이제껏 중요하다고 받아들여졌던 것보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중요합니다. 여기서 바로 다시 배우는 일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 104쪽 ) "
그 옛날, 내 친구는 교목에게 왜 그토록 맞았을까 ? 성난 들짐승의 발톱처럼 사나워진 교목은 왜 이성을 잃고 폭력을 휘둘렀을까 ? " 목사님 ! 말해봐요, 그때 왜 그랬어요 ? " 내가 그 사건을 통해 배운 것은 " 사람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에게는 관대하지만 진실을 말할 때는 불같이 화를 낸다 " 는 점이었다. 인간은 진실'보다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진실은 쓰고 거짓말은 달콤하다. 우리가 철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이다. 철학은 거짓말을 싫어하고 참말을 좋아하게 만드는, 인간 교정 프로그램이다. 칸트가 떠올린 계몽된 사람이란 " 박식한 사람이 아니라 용감한 사람이다. '감히' 따져 묻고 '감히' 알려고 하는 의지와 용기를 가진 사람 "이다. 그래서 그는 " < 감히 알려고 하라 > 를 계몽의 구호로 삼았다. ( 80쪽 ) "
지금 생각해 보면 : 인간 샌드백이 되어 죽도록 맞았던 내 친구는 칸트가 말한 계몽된 사람'이었다. 그는 공부는 못했지만 용감했다. '감히' 따져 묻고, '감히' 알려고 했다. 반면 미션스쿨 젊은 교목은 양아치에 가까웠다. 목사가 불같이 화를 냈던 이유는 명확하다. 내 친구의 말이 진실이었기 때문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