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무적 홍대리
홍윤표 지음 / 일하는사람들의작은책 / 1998년 12월
평점 :
절판


<천하무적 홍대리>( 홍윤표 / 일하는사람들의 작은책)을 읽다.

"의리!" 하면 생각나는 사람,
마산 MBC 임나혜숙 PD.

내 독서일기 中 <신 천하무적 홍대리>를 보시고는,
홍윤표의 데뷔작인 <천하무적 홍대리>를 한 권 보내 주셨다.

금요일 오후에 우편물을 받으면서 감동했다.
마산 MBC 서류봉투에 휘날리는 글씨로 받는사람 이름이 써 있었다.

"성수선 대리께."

아...... 만성이 될 것 같은 감기로 퇴근시간만을 기다리고 있던 성대리, 그 우편물을 보고 눈물이 핑돌았다.

정말 이런 작은 배려 하나하나가 생활의 활력소가 된다.
나도 이런 작은 기쁨을 선물하는,
일상생활을 신나게 하는 이벤트를 터뜨리는 사람이 되어야 할텐데...
( 근데 요즘 힘들다고 끙끙거리고 있다. 쩝)

금요일에 퇴근하면서 <천하무적 홍대리>를 읽었다.
사람이 별로 없는 좌석버스에서 혼자서 낄낄 거리며 읽었다.

홍윤표의 데뷔작인 <천하무적 홍대리>,
98년 12월에 2년 동안 여기저기에 발표했던 만화들을 모아 펴낸 책,
그 땐 최초의 책이었기에 <천하무적 홍대리- 1권>도 아니고,
그냥 <천하무적 홍대리>였다.
딱 책 한 권을 낼 만큼의 만화를 몽땅 모아서 알토랑 같은 책 한 권이 세상에 나왔다. 그 때의 감격은 어땠을까?

최종규님이 방명록에 이런 글을 남겼었다.

<신 천하무적 홍대리>를 보셨군요.
홍윤표 님 만화를 본 분들이 대체로 말하는 것인데,
<천하무적 홍대리,작은책> 1권이 2권보다 재미있고,
새로 나온 책은 2권보다 재미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림결은 1권보다 2권이 낫고,
2권보다 새로 나온 책이 더 낫습니다.


정말 적.확.한 지적이다.

98년에 나온 <천하무적 홍대리>는 내가 얼마 전 읽은 <신 천하무적 홍대리> 처럼 세련되지는 못하지만, 훨씬 재미있다.
아마츄어 만화가 답게 그림빨 안 받아 주고, 좀 어설프기도 하고 그렇지만 회사생활의 애환이 그 작은 만화 몇 컷에 잘도 들어가 있다.

<천하무적 홍대리>는 IMF가 터진 97~98년, 2년 동안 발표한 만화를 묶어 낸 책이다. 내가 신입사원이었던 그 때.

<천하무적 홍대리>를 읽다 보니, 키득키득 하면서도 웃지 못할 그 당시가 생각났다.

IMF가 펑 터진 97년 늦가을 또는 이른 겨울.
회사에서는 경비를 절감한다고 난리가 아니었다.
그래서 생전 안하던 "이면지 쓰기", "종이컵 안쓰기" 이런걸 했다.

<천하무적 홍대리>를 보니,
"이면지"에 대한 만화가 있었다.

최주임이 내부 보고서를 새 종이에 만들자.
홍대리 : "야, 너 왜 이면지 안 써? "
최주임 : "이면지가 없어서요."
( 복사기로 장면 전환)
홍대리 : " 없으면 만들어서 써야지."
( 전화번호부를 복사하고 있는 홍대리 클로즈업)

우하하하. 그 때가 생각난다.
생전 안 하던 이면지를 쓴다고 난리를 치던 그 때.

04년 늦가을 또는 이른 겨울.
지금 회사에서 이면지 쓰면 겁나게 깨진다.
보안 점검할 때 이면지 쓴 사람 경고도 받았다.

문서는 무조건 폐기 처분해야 한다.
분쇄기에 드르드르 갈아서....
쓸데 없이 몇푼 아낀다고 이면지 쓰고 있으면 경고 받는다.

또 하나 마음에 와닿았던 만화.

홍대리팀에 있던 한 차장이 다른 팀으로 옮겼다가, 결국 그만 두게 되었다. (IMF 때 수 많은 사람들이 명퇴를 했다.)
환송회 자리.

그만두는 차장 : "부장님은 제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아시죠?"
부장(미안한 표정으로) : "그럼, 알다 마다..."
홍대리(핏대를 세우며) : "그러니까 왜 그렇게 열심히 하셨냐구요?
저 처럼 대충대충 다녀야 억울하지가 않죠!"

마산에서 우편으로 보내 주신 <천하무적 홍대리>.
재미있게 읽었다.

<시마과장> 후속으로 <시마부장>이 나오듯이,
<천하무적 홍과장>이 나오려면,
아무래도 만화가 홍윤표는 다시 월급쟁이가 되어야 겠다.

<천하무적 홍대리>의 성공 이유는
잘 그린 만화가 아니라 직장인 홍윤표의 스트레스였다.

<천하무적 홍과장> 또는 <홍차장>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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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4-11-29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부지런히 사십니다. 일하시랴 글쓰시랴. 전 요즘 글을 쓰기는 커녕 남의 글 읽기도 바쁜데 말입니다. 몸컨디션은 씩씩하게 복구되셨는지요? 천하무적 성대리님! *^^*

kleinsusun 2004-11-30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하하하, 전 천하무적이 아니라 어리버리 성대린데....ㅋㅋ

네, 감기 탈출했어요. 야클님 댓글을 보면 기분이 좋아져요. 오늘도 좋은 하루!
 

얼마 전, <신 천하무적 홍대리>를 읽고 삶의 아이러니를 느꼈다.

홍대리는 더 좋은 만화를 그리기 위해,
회사를 접고 프랑스로 갔다.
그 곳에서 만화를 배우고 그린다.

그러니까 홍대리는 이제 없다.
그 대신 프랑스에는 만화가 홍윤표가 존재한다.

더 좋은 만화를 그리기 위해,
자유롭게 창작에만 전념하기 위해,
회사를 접고 저 멀리 프랑스까지 갔는데....

독자들은 <신 천하장사 홍대리>가 예전의 1편, 2편보다
현장감도 없어지고, 재미가 없다고 말한다.
뭐.... 그림은 예전보다 좋아졌단다.

홍대리가 회사 생활이라는 스트레스 속에서 만화를 그렸을 때는
재미가 있었다.
홍대리가 회사를 떠나 만화가가 되자, 만화의 재미가 반감되었다.

왜?
만화가 홍윤표는 더 이상 홍대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회사 생활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간다.
기업들은 직급을 파괴하고,
호칭을 없애고(과장, 부장 이런 호칭 없이 OOO님이라고 부르는 회사가 늘어나고 있다),
모든 결재는 전자결재로 하고,
사직서 조차 인사시스템에 입력하고, 전자결재를 받아야 한다.
옛날처럼 양복 주머니에 사표를 넣어서 다니다가,
더러운 일이 있으면 확 던져버리는 그런 낭만(?) 은 없다.

그러니 만화가 홍윤표가 어떻게 홍대리의 생생한 스트레스를 전달할 수 있겠는가?
옛날 기억을 되살려서?
No. 옛날 기억은 왜곡된다. 미화되기도 하고, 감상에 젖기도 하고....

상식적으로 아무 것도 안하고 만화만 배우고 그리면
훨씬 많이 그리고 훨씬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홍대리 얘기가 아닌 프랑스 견문록 이런걸 그리면 모르겠지만,
홍대리 얘기를 계속 그리기에는 소재의 빈곤에 시달린다.
그러면 홍윤표는 홍대리를 그리기 위해서 다시 회사로 돌아가야 하나?
아이러니다.아이러니.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내가 입사를 하는 대신 대학원을 선택했다면
지금의 내 모습은 어떨까?

영화 Sliding Doors 처럼 말이다.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공부도 쉬운 일이 아니니까, 스트레스를 받겠지.
박사과정 하는 친구들 보니까,
교수들의 만행이 팀장들의 만행 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더만...

만약 내가 지금도 공부를 하고 있다면,
번듯한 명함 있고, 월급 꼬박꼬박 받는 나 같은 애를 부러워 할지도 모르겠다.

아멜리 노통의 <두려움과 떨림>을 읽고, 커다란 위안을 받았다.
일본 회사에서의 그 피 말리는 경험이 없었다면,
<두려움과 떨림> 같은 역작은 결코 쓸 수 없었을 테니까....

스트레스도 힘이 된다.
좀 부풀려서 말하면 스트레스가 창작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무엇인가를 풀어 내고 싶으므로....
계속 담아 두었다가는 터져 버리니까....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 나는 조직생활에 적합한 인간이 못돼."
난 이 말을 하는 사람들이 사치스럽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조직생활에 적합한 인간이 어디에 있을까?
모두 편하고 싶어한다.
모두 자신의 개성을 존중 받고, 자신의 취향에 맞게 삶을 꾸려가고 싶어한다.
조직 생활에 적합한 인간이 따로 있을까?
그런 유형의 인간들은 태어날 때부터 아부도 잘하고,
싫은 소리와 각종 통제를 참아내는 피학적 취향을 갖고 태어 났을까?

스트레스도 힘이 된다.
내가 소설이나 드라마를 쓴다면,
3각 관계, 4각 관계로 허구한 날 꼬이고 꼬이는 연애만 하다가
갑자기 여자 주인공이 인도나 아프리카로 떠나 버리거나,
갑자기 결핵에 걸려 죽어 버리는 그런 현실에서 유리된 인물은 등장하지 않을 꺼다.
소설의 여자 주인공이 항상 출판사 직원이거나 방송 작가, 잡지사 기자로 제한되지도 않을 꺼다.
최소한 내가 회사생활을 묘사하면,
끔찍할 정도로 "리얼" 할 꺼다.

스트레스도 힘이 된다.
스트레스 속에서 황량한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끊임 없이 외부적인 자극을 찾는다.
굶은 듯이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미술관에 가고....
아침 마다 종합비타민을 한 알 씩 먹듯이,
메마른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감성적인 것들을 본드 마시듯이 코를 킁킁거리며 들이 킨다.

스트레스는 나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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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4-11-27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트레스가 나의 힘이라고 외치기까지 그 전에 겪었을 고통을 반추하렵니다... 수고많으십니다, 수선님!!!

kleinsusun 2004-11-27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스트레스를 에너지로! 아자!

로드무비 2004-11-27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끔찍하게 리얼한 글 써서 보여주세요.

저 그거 아주 좋아하거든요.^^

mannerist 2004-11-28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학교 때 황제의 꿈을 비롯해서 '어둠의 세계의 이문열'이라 불리우던 이원호씨 소설을 친구들과 함께 돌려 있었답니다. 뭐 색기발랄한 청소년들의 므흣-_-한 표현에 대한 관심도 컸지만, 그 살벌한 회사 생활과 암투 이야기에 간혹 소름이 끼쳤더랬죠. 무역회사 생활을 오래 하던 양반이라 그런 글이 나왔겠죠. 좋은 소설. 이라곤 할 수 없지만 '리얼하게 느껴'지고 '재미'는 있는 책. 언젠가 나오겠죠? S대리님 눈으로 본 이 살벌한 세상에 대한 이야기가. 지금 군데군데 덧정 뚝뚝 묻어나오는 문체보다는, 훨씬 하드보일드할 것 같지만요. 여하튼, 화이팅입니다~! ^_^o-

kleinsusun 2004-11-28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드보일드.... ㅋㅋ

응원해 줘서 고마워요. 홧팅!

마냐 2004-11-30 0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만만치않은 스트레스를 쓰레기 취급하고 있던 저로서는 한 방 먹었슴다. ㅋㅋ

kleinsusun 2004-11-30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스로에게 힘을 주기 위해서 한 말이죠.ㅋㅋ

근데 아멜리 노통의 <두려움과 떨림>을 보고는, 정말 큰 위안을 받았어요.

언젠가 그런 글을 쓸 수 있길 바라면서.....
 
바닥이 나를 받아주네 창비시선 162
양애경 지음 / 창비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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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시집을 산게 몇년만인가?

2년 전? 3년 전?
내가 마지막으로 샀던 시집은 정호승의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였다. 내가 읽으려고 산게 아니고 울 이모 선물하려고....

난 시를 좋아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책 넘기는 재미가 없어서?

내가 시를 좋아하지 않았던건,
나의 취향에 맞는 좋은 시집을 발견하지 못했기 떄문이 아닐까?

양애경의 시집을 몇년 전에 만났더라면,
내 책장에 시집이 몇십권은 있을 것 같다.

난 양애경이라는 시인을 알지 못했다.
얼마 전 <조울증에 기대어>라는 시를 우연히 읽기 전까지...

<조울증에 기대어>에 반한 나는,
당장 양애경 시집을 주문했다.

양애경 시집에서 내가 제일 먼저 읽은건 "후기"였다.
1997년 5월에 쓴 글.
양애경의 후기를 읽으면서 어질어질했다.
혼란스럽기 조차 했다.
이거 내가 쓴 글 아닐까?
그만큼 절절히 공감했다.

아직도 그렇다.날마다 무언가와 싸우느라고 지쳐 있는 느낌인데 무엇과 싸웠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길이 없다는 느낌이 든다. (후기 첫 머리)

그렇다.어디서 그렇게 에너지를 흘리고 다니는지, 집에만 오면 뻗어버릴 만큼 피곤하다. 무언가와 싸우느라고 지친 느낌. 무너지지 않으려고 버틴 느낌. 아멜리 노통의 <적의 화장법> 처럼 계속 싸우면서도 그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르겠다.

눈 앞에서 문이 쾅 닫히는 느낌을 오래도록 받아왔다.아직까지도 '여자는 안된다'는 말을 들어야 한다.나 자신도 하마터면 믿을 뻔했다.제일 힘들었을 때,방에 와 불도 켜지 않고 쓰러졌다.바닥에 매달릴 수 있다는 것만이 위안이었다.(후기 중에서)

2004년, IT 강국 21세기의 한국.
아직도 '여자는 안된다'는 말을 들어야 한다.

작년 봄, 내가 몇달간 백조생활을 할 때,
내 이력서가 돌아다녔는지 헤드헌터들한테 전화가 많이 왔었다.
내가 전화를 받으면, 잠시의 침묵 후....

"여자분이셨어요? 전 이력서 보고 남자분인지 알았는데...."
( 해외영업팀에 여자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 저....죄송한데요, 그쪽 회사에서 남자를 원해서요.
담에 다른 포지션 있으면 연락드릴께요."

기가 막히다.
마음대로 전화하고, 마음대로 끊고...

헤드헌터들은 대부분 여자다.
그들은 남자를 뽑아달라는 업체의 사장이나 인사 담당자에게 왜 이렇게 말하지 못할까?
" 저희 회사 DB에 이 포지션에 제격인 여자들이 많거든요.
처음 부터 남자로 제한하시지 말고, 한 번 만나 보시지 않으시겠어요?"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손님은 왕이다.

나는 쉽게 상처받는다.하지만 인간에게는 육체의 치유력 못지 않게 신비스러운 정신의 치유력도 있는 것 같다.이제 좀 가벼워지고 싶다. (후기 끝머리)

제발....좀 가벼워 지고 싶다.
꼭 종아리에 커다란 모래주머니를 달고 마라톤을 뛰고 있는 것 같다. 가벼워 지고 싶다.

아뇨 내가 부러운 건 그들이 남자라는 사실인 거죠
세계의 주인이죠 여자들과 아이들의 주인이구요
고등학교밖에 못 나왔든 소위 MIT 박사이든 간에
그들은 '다른 건 다 훌륭하지만 여라자 안되겠군요'라는 말을 들을 필요는 없거든요.
그들이 그걸 알고나 있는지 알고 싶었어요.

- 시 <일하는 여자 중에서>

"다른 건 다 훌륭하지만 여자라 안되겠군요"
들어 본 사람만이 안다.
어떤 회사에서는 쓰레기 분류를 하듯이 여자 이력서는 쏙쏙 골라내기도 한다. 생선뼈 발라 내듯이...

그렇군 나는 여자였군
생리 심한 날 하얀 변기 한쪽에
무겁게 내려앉는 피를 보며
그래 나는 여자였지
소용돌이치는 물이 검붉은 거품을 일으키며
그것들을 쫓아내는 것을 보며
여전히 뚝뚝 피 흘리는
나는 좀 억울해진다.

- 시 <여자> 전문

시가 너무 강렬해서, 너무 솔직해서
기절할 것 같다.
진한 향수 한 병을 도서관 같은 밀폐된 공간에서 다 쏟은 기분이다.

양애경, 산문집을 하나 썼으면 좋겠다.
바닥에 매달려 위안을 받았던 시인의 얘기를 들어보고 싶다.

덧붙이는 말)
양애경의 훌륭한 시들과 후기 사이에 <사랑,그 부재의 공간에서 꿈꾸기>라는 해설이 있다. 제일 긴 시의 10배도 더 되는 긴 글이다. 그런데 이런걸 왜 쓸까? 시도 해설이 필요한가? 그것도 본질을 놓친 해설이?

즉,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내용으로부터 사회적 비판과 성찰에 이르기까지 그 촉수는 폭넓은 자장을 드리우고 있다.거기에는 페미니즘적인 관심이 있는가 하면 존재론적 에로티시즘이 포착되고 가족에 대한 애증이 피력되고 있는가 하면 문명비판적 요소도 동시에 포섭되고 있다.

우하하하하.
앞으로 웃고 싶으면 개그 콘서트 대신 이런 해설을 하나씩 읽어야 겠다.

페미니즘적인 관심?
페미니즘이란 어려운 말 쓸 것도 없다.
시인 양애경은 여자로서의 정체성과 삶의 무게, 좌절을 강렬하고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은 긴장감 있는 시로 표출했다.

그리고...
"페미니스트로서의 세상 보기" 이런 확실한 표현도 아니고,
"페미니즘적인 관심" 은 뭔지....

"존재론적 에로티시즘"이 뭔지도 궁금하다.

양애경의 시집에서 옥의 티는 바로 이 해설이다.
궁금하다.
양애경이 이 해설을 자신의 시집에 싣는걸 동의했는지,
아니면 창작과비평사에서 임의로 결정한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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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11-27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읽고 조금 의외였어요.

수선님께 막연히 느꼈던 이미지가 흔들렸달까.

이 시집 제목이 좋아 읽고 싶었는데 어쩌다보니 못 읽었어요.

댓글 남긴 줄 알았더니 착각이었나?^^

kleinsusun 2004-11-28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이 제게 막연히 느꼈던 이미지가 어떤걸까?궁금하네요.

제 자신 또한 제 정체성 확립이 깔끔하게 되지 않아서...

양애경 시집은 권하고 싶네요. 술을 많이 마시고 들어온 토요일 밤에...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
서갑숙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1999년 10월
평점 :
절판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서갑숙/중앙M&B)를 읽다.

이 책은 절판되었다.

이 책이 나온건 99년인데,
그 때 이 책으로 떠들썩했던 기억이 난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그렇게 언론에서 난리를 치는지
한 번 읽어보고 싶었는데,얼마 전 헌책방에서 발견했다.

이 책을 읽고 난.....절망했다.

이런 책 한 권을 가지고 "사회적 성윤리","도덕 의식" 어쩌고 하며 난리를 친 언론과 꼴통들에 대한, 이 사회의 갑갑함에 대한 절망.

제목을 이 따위로 짓고,
바탕화면으로 희미한 누드사진 까지 곁들여 가며
돈벌기에 혈안이 된 대형 출판사에 대한 분노.


서갑숙은 이 책의 최고의 수혜자이자 피해자다.
출판사의 선정적 마케팅 덕분에 책은 날개 돗힌듯이 팔렸고
그 덕에 인세를 많이 받았을 테고, 빚도 다 갚을 수 있었을 테니까...
이 책은 베스트셀러였고, "돈"이라는 제한된 관점에서 볼 때 서갑숙은 수혜자다.

하지만,
자신이 세상을 향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는 편집자를 만나,
몸에 맞는 옷을 입은 책이 나왔나 하는 관점에서 보면
서갑숙은 피해자다.

서갑숙은 철저하게 오해 받았고,
서갑숙의 글은 평가절하 받았다.

아....정말이지 답답하다.
자랑스런 나의 조국 대한민국에 아니 에르노가 살았다면,
<단순한 열정> 같은 책을 냈다면,
아니 에르노는 교수 사회에서 파면 당했을 거다.
남자인 마광수한테도 그 난리를 쳤는데,
여자 교수가 자신의 불륜과 애정행각을 고백하면 오죽 난리가 날까?

파울로 코엘료의 <11분>은 출판인회의선정 이달의 책이 되었고,
서갑숙의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는
"윤리"라는 칼로 난도질을 당했다.

그런데.....
두 책에 나타난 성행위 묘사, 그 수위는 거의 동일하다.

유명한 외국 소설가에게는 관대하고,
애가 둘이나 있는 여자가 이런 책을 쓰면,그것도 Non Fiction으로,
"도대체 애들이 창피해서 어떻게 학교를 다니냐?"
"이혼한 남편은 얼마나 망신일까?" 하며 난리를 친다.

이 책의 제목은 도대체 누가 지은걸까? 출판사에서?
이 책의 제목은 책의 내용과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다.
제목이 눈에 띄기는 하지만(그래서 책 많이 팔았겠지만)
책의 내용과 반대 방향을 향햐고 있다.

"나는 어쩌면 그렇게도 섹스에 대해 무지했던 것일까? 그저 상대방이 이끄는 대로 섬세한 교감 없이 치러 내는 섹스,소극적인 섹스만 나누다 보니 진정한 육체적 사랑이 왔을 때 적응을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p169)

" 이렇게 힘 자랑을 하며 여성을 정복해 보겠다는 욕망으로 덤벼드는 것은 곤란하다.여성에게 통증만 선사할 뿐이다."(p202)

즉, 서갑숙은 남성 위주로 행해지는 일방적인 섹스를 혐오한다.
이 책의 주제는 " 여자에게도 섹스는 즐거운 것이다."는 거다.


서갑숙은 10년 동안 결혼생활을 하면서도 진정한 오르가즘을 느끼지 못했노라고 고백하고 있다. 시어머니를 중심으로 대가족이 함께 모여사는 집에서 '번개섹스'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제대로 소리 한번 질러본 적이 없다고....

그러던 서갑숙이 이혼을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세포 하나하나가 다 희열에 젖는 섹스를 한다고,
다른 사람들도 그런 느낌을 가질 수 있다고,
그건 포기할 수 없는 너무도 큰 즐거움이라고,
어떻게 해야 다른 여자들도 서갑숙처럼 상상하지 못했던 즐거움을 만날 수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그런데....제목은?
포르노그라피에서 여자한테 인격이 있나?
포르노그라피에서 여자의 몸을 존중하며,
천천히, 그리고 한 없이 부드럽게 애무를 하는 남자가 있나?

서갑숙은 글을 통해
"정신과 육체가 하나되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책의 얼굴인 제목은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라고 하고 있으니....


이런 적절하지 못한 제목과 선정적인 마케팅이 낳은 최대 비극은,
이 책을 읽어야 할 사람들이 이 책을 외면하게 되었다는 거다.
내가 99년에 이 책에 대한 거부감을 느낀 것 처럼....

자신의 몸을 더 이해하고, 공부하고, 사랑하라고 말하는 서갑숙의
목소리. 많은 여자들이 들어야 한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갖고 있던 성과 사랑에 대한 왜곡된 가치관들은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이왕이면 내가 겪은 시행 착오를 낱낱이 드러내서,다른 사람들이 똑같은 일을 겪지 않도록 하는 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p273)

이 책의 앞표지에는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라는 커다란 제목이,
뒷표지에는 실크로드에서 찍은 누드사진이 있다.

제목과 표지만 책의 내용에 어울리게 바꿨어도,
서갑숙의 글은 전혀 다른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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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추워서 결혼할 뻔했다>
이런 책이 있다.

제목이 맘에 들어서 살까 했는데,
서점에 가서 보니 영 맘에 들지 않았다.

어떤 책이냐구?

알파벳 A부터 Y까지 첫 글자에서 연상되는 단어를 가려 뽑아 소제목으로 삼고, 그에 적합한 인용글들을 배치했다. 부재(Absence), 충고(Advice), 아름다움(Beauty), 연인들(Lovers), 실연 이후의 사랑(On the Rebound)...우디 알렌, 존 레논, 체스터튼 등 유명인사들이 털어놓는 사랑에 관한 짧은 담론 모음.
- 인터넷 서점 <알라딘> 책 소개.

난 이런 책이 싫다.
유명한 사람들이 한 말들을 주어와서 뛰엄 뛰엄 만든 책.
왠지 멍청해 보인다.

그런데...
제목 하나는 정말 마음에 든다.

왜 이 책 얘기를 하냐구?

감기로 하루 종일 고생하다 일찍 퇴근,
집에 와서 저녁을 먹었다.
아빠가 TV를 켜고 채널을 이리 저리 돌리시다가
영화 <약속>에 고정, 아무 생각 없이 같이 <약속>을 봤다.

벌써 몇년 된 영화다.
98년인가? 그 때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

난 의도적으로 울라고 만든 아주아주 인위적인 설정의 영화,
<약속>,<편지>,<집으로>,<가족> 이런 류의 영화 디따 싫어한다.
보면 막 화난다.

<약속>.
아주 자극적인 대사들로,
"이래도 안 울어?" 하는 감독의 장치들로 가득하다.

특히 박신양이 자수하러 가기 전,
교회에서 결혼하는 장면.
전도연이 "여보!" 할 때, 압권이었다.
감독의 야심찬 표정이 보인다.
" 아무리 독한 여자라도 이 장면에서는 울 수 밖에 없을껄?"

내 마음에 와닿은건 주인공들의 최루성 대사나 중요 줄거리가 아니었다. 전도연을 좋아하는 선배의사의 대사 한 마디였다.

전도연을 찾아 와서
자기 미국에 PhD하러 간다고 함께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그 때 전도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후 그 선배가 다시 한번 전도연을 찾아와 말한다.
(비행기 표를 손에 지어 주며) "기다릴께".

아..... 누군가 나한테도 비행기표를 지어 주며 말했으면 좋겠다."같이 가자!"

그럼 난 막 달려갈 것이다.
빨리 집에 가서 짐 싸려구....ㅋㅋ

난 항상 탈출을 꿈꾸었다.

99년에 유학을 가려고 했다.
TOEFL 2번, GMAT는 5번이나 봤다.
GMAT 점수가 생각처럼 나오지 않아서 때려쳤다.
유학 준비를 한답시고 몇 달 놀다가(박정 어학원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다) 다시 취직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 GMAT를 번번히 망친게 참 잘된 일이다.
왜냐구?
그 때 내가 하고 싶었던건 공부가 아니었으니까....
내가 원했던건 "탈출"이었다.

한비야 같은 잘난 여자 처럼
그냥 배낭 하나 매고 떠날 용기가 없어서
"안전 장치"로 생각한게 유학이었을 뿐이니까....

그것도 MBA.
그냥 주위에서 다들 난리를 치기에
대학 졸업하고 대기업 다니다가 MBA 가는게 무슨 순서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정신으로 유학을 갔다면
그건 심각한 외화 낭비였고,
울 아빠가 피땀 흘려 벌고 울 엄마가 피땀 흘려 아낀 재산을 축내는 파렴치한 행동이었으며,
청춘의 낭비였을 꺼다.

유학 준비 뿐이랴?
난 항상 "탈출"을 꿈꿨다.

태국에서 일하려고 인터뷰하러 방콕까지 가기도 했고,
BK 21 지원으로 학비가 들지 않는다는 대학원 시험을 보기도 했고,
(취열한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합격했다.하지만...안 갔다)
북경어언대학 어학과정에 등록을 하기도 했다.
북경어언대학 캠퍼스 사진을 바탕화면으로 깔아 두고,
개강일을 기다리다 결국.....가지 않았다.

한 마디로 별 일을 다했다.
탈출하려고....

유학 준비, 해외 취업, 대학원, 어학 연수....
이 모든 것을 다 합한 것 보다 더 엄청난 발상을 하기도 했다.

그건 바로.....
"결혼".

회사 다니기가 너무 싫고 힘들어서,
차라리 결혼을 해 버릴까....이런 생각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아찔하다.탈출을 하려고 무덤을 파다니...

그 때의 내 심정은
"너무 힘들어서 결혼할 뻔했다."

이제 알겠지?
<너무 추워서 결혼할 뻔했다>라는 대수롭지 않은 책제목을 왜 그렇게 맘에 들어 했는지....

난 알고 있다.
필요한건 "견고한 자아"라는 걸....
내가 약하면 이 세상 어디를 가도 다 똑 같으리라는 것을...
내 힘으로, 내 두 다리로 우뚝 서야 한다는 걸....

하지만 가끔 힘들 때면,
이런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한다.

어떤 멋진 남자가 불쑥 나타나,
비행기 표를 지어주며 "같이 가자!" 말하는 장면을...

Be str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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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4-11-22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 서재로 넘어오는 그 ?은 순간에 축하 메시지를 뭐라 적을까 고민했더랬습니다. ㅋㅋ 제목 정말 멋지네요~ 너무 힘들어서 결혼해도 좋은데. 결혼은 해봐야 알아요. 진짜...누가 옆에서 아무리 달콤쌉싸름한 말을 해줘도 모르는 게 결혼인 것 같아요. 걍 눈 딱 감고 해버리시는건... 안될라나요? ㅎㅎ

갈대 2004-11-22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 남자인 저로서는 힘들 때는 오히려 결혼 생각이 안 날 것 같습니다. 남자는 문제가 생기면 혼자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책 내용은 별로인 것 같습니다만 제목 하나 만큼은 땡기네요^^

kleinsusun 2004-11-23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겁이 많아서 눈 딱 감고는 못하겠어요.ㅋㅋ

우울할 때 쇼핑하면 이상한 옷을 사게 되쟎아요. 원색에 형광색에 그런거....

한 번 입고 후회하는 옷.

그럴까봐 겁이 나요. 결혼은 평화로울 때 할려고....ㅋㅋ

비로그인 2004-11-23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화로울 때 하든 추울 때 하든 후회하기는 마찬가지일 것 같은 데... ^^;

초치는 말로 첫인사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kleinsusun 2004-11-23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초 안쳤어요.반갑습니당.

nada 2006-06-03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탈출할 '기회'가 많았는데 왜 안 하셨을까... (전 기회가 없어서라고 박박 우기며 사는 중..ㅋ) 아마 뭔가 2% 이건 아니다 싶으셨겠죠. Be strong! 평생의 과제예요. - -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