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
서갑숙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1999년 10월
평점 :
절판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서갑숙/중앙M&B)를 읽다.

이 책은 절판되었다.

이 책이 나온건 99년인데,
그 때 이 책으로 떠들썩했던 기억이 난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그렇게 언론에서 난리를 치는지
한 번 읽어보고 싶었는데,얼마 전 헌책방에서 발견했다.

이 책을 읽고 난.....절망했다.

이런 책 한 권을 가지고 "사회적 성윤리","도덕 의식" 어쩌고 하며 난리를 친 언론과 꼴통들에 대한, 이 사회의 갑갑함에 대한 절망.

제목을 이 따위로 짓고,
바탕화면으로 희미한 누드사진 까지 곁들여 가며
돈벌기에 혈안이 된 대형 출판사에 대한 분노.


서갑숙은 이 책의 최고의 수혜자이자 피해자다.
출판사의 선정적 마케팅 덕분에 책은 날개 돗힌듯이 팔렸고
그 덕에 인세를 많이 받았을 테고, 빚도 다 갚을 수 있었을 테니까...
이 책은 베스트셀러였고, "돈"이라는 제한된 관점에서 볼 때 서갑숙은 수혜자다.

하지만,
자신이 세상을 향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는 편집자를 만나,
몸에 맞는 옷을 입은 책이 나왔나 하는 관점에서 보면
서갑숙은 피해자다.

서갑숙은 철저하게 오해 받았고,
서갑숙의 글은 평가절하 받았다.

아....정말이지 답답하다.
자랑스런 나의 조국 대한민국에 아니 에르노가 살았다면,
<단순한 열정> 같은 책을 냈다면,
아니 에르노는 교수 사회에서 파면 당했을 거다.
남자인 마광수한테도 그 난리를 쳤는데,
여자 교수가 자신의 불륜과 애정행각을 고백하면 오죽 난리가 날까?

파울로 코엘료의 <11분>은 출판인회의선정 이달의 책이 되었고,
서갑숙의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는
"윤리"라는 칼로 난도질을 당했다.

그런데.....
두 책에 나타난 성행위 묘사, 그 수위는 거의 동일하다.

유명한 외국 소설가에게는 관대하고,
애가 둘이나 있는 여자가 이런 책을 쓰면,그것도 Non Fiction으로,
"도대체 애들이 창피해서 어떻게 학교를 다니냐?"
"이혼한 남편은 얼마나 망신일까?" 하며 난리를 친다.

이 책의 제목은 도대체 누가 지은걸까? 출판사에서?
이 책의 제목은 책의 내용과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다.
제목이 눈에 띄기는 하지만(그래서 책 많이 팔았겠지만)
책의 내용과 반대 방향을 향햐고 있다.

"나는 어쩌면 그렇게도 섹스에 대해 무지했던 것일까? 그저 상대방이 이끄는 대로 섬세한 교감 없이 치러 내는 섹스,소극적인 섹스만 나누다 보니 진정한 육체적 사랑이 왔을 때 적응을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p169)

" 이렇게 힘 자랑을 하며 여성을 정복해 보겠다는 욕망으로 덤벼드는 것은 곤란하다.여성에게 통증만 선사할 뿐이다."(p202)

즉, 서갑숙은 남성 위주로 행해지는 일방적인 섹스를 혐오한다.
이 책의 주제는 " 여자에게도 섹스는 즐거운 것이다."는 거다.


서갑숙은 10년 동안 결혼생활을 하면서도 진정한 오르가즘을 느끼지 못했노라고 고백하고 있다. 시어머니를 중심으로 대가족이 함께 모여사는 집에서 '번개섹스'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제대로 소리 한번 질러본 적이 없다고....

그러던 서갑숙이 이혼을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세포 하나하나가 다 희열에 젖는 섹스를 한다고,
다른 사람들도 그런 느낌을 가질 수 있다고,
그건 포기할 수 없는 너무도 큰 즐거움이라고,
어떻게 해야 다른 여자들도 서갑숙처럼 상상하지 못했던 즐거움을 만날 수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그런데....제목은?
포르노그라피에서 여자한테 인격이 있나?
포르노그라피에서 여자의 몸을 존중하며,
천천히, 그리고 한 없이 부드럽게 애무를 하는 남자가 있나?

서갑숙은 글을 통해
"정신과 육체가 하나되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책의 얼굴인 제목은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라고 하고 있으니....


이런 적절하지 못한 제목과 선정적인 마케팅이 낳은 최대 비극은,
이 책을 읽어야 할 사람들이 이 책을 외면하게 되었다는 거다.
내가 99년에 이 책에 대한 거부감을 느낀 것 처럼....

자신의 몸을 더 이해하고, 공부하고, 사랑하라고 말하는 서갑숙의
목소리. 많은 여자들이 들어야 한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갖고 있던 성과 사랑에 대한 왜곡된 가치관들은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이왕이면 내가 겪은 시행 착오를 낱낱이 드러내서,다른 사람들이 똑같은 일을 겪지 않도록 하는 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p273)

이 책의 앞표지에는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라는 커다란 제목이,
뒷표지에는 실크로드에서 찍은 누드사진이 있다.

제목과 표지만 책의 내용에 어울리게 바꿨어도,
서갑숙의 글은 전혀 다른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아쉽다.

수선이의 도서관

www.kleinsu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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