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 강남에 있는 한 삼겹살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9시 뉴스를 하고 있었다.
고기 굽는 소리 지글지글,
이미 취한 옆테이블 사람들이 내는 괴성,
손님 나간 테이블을 치우는 소리....
9시 뉴스.
비디오는 보이지만, 오디오는 하나도 들을 수가 없었다.
TV가 내 앞쪽에 있어서 그냥 설렁설렁 눈길이 갈 때 마다 보고 있는데, 서점이 나왔다.
대학 교수들 인터뷰 할 때 그 뒤에 배경 화면으로 보이는 책장만 봐도 가슴이 뛰는 수선. TV를 뚫어져라 쳐다 봤다.
갑자기 아는 사람이 나왔다.
자막이 튀어 올랐다.
" 출판 평론가 김영수"
몇년 전 보다 많이 늙었다.
세월을 피해가는 사람은 없나 보다.
이 사람 어떻게 아냐구?
그 사람한테 "출판강좌"를 들었다.
한겨레 아카데미에서 "출판강좌"를 들었고,
(일주일에 한번씩 3개월 짜리 강의였는데, 반도 출석하지 못했다),
01년에 미지로 아카데미에서 "출판실무(?)"(강좌 제목이 정확하게 생각나지 않음)을 들었다.
미지로 아카데미에서는 일주일에 한번씩 6개월 짜리 강좌였다.
수업료가 자그만치 "60만원".
난 거액의 수업료 때문에 다닐까 말까 무지하게 망설였으나,
일단 시작하고 보자는 무대뽀 정신을 발휘하여 카드를 긁었다.
어렴풋한 기억으로 6개월 할부를 했던 것 같다.
첫 수업 시간....
난 적쟎게 당황했다.
왜냐?
대학생 한 명과 아줌마 한 명, 그리고 나.
이렇게 세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현직 출판사 직원이었다.
"단월드" 계열의 출판사 "한문화" 직원들은 4~5명이 단체 수강을 하고 있었고, "식물추장" 이사님도 계셨고, 출판사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다 출판사를 경영하거나 다니는 사람들이었다.
출판사 직원들은 회사에서 교육비를 내주고 있었다.
물론 할인된 가격으로....
정가 "60만원"을 내고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만고의 진리를 이마에 붙이고 앉아 있는 사람은 대학생 한 명과 아줌마 한 명, 그리고 나.
이렇게 세명 뿐인 것 같았다.
수업이 끝나고는 매번 사람들과 술자리를 가졌다.특이한 사람들도 많았고, 상당히 재미있었다. 그 때 수업을 같이 들은 많은 사람들 중,그 아줌마가 생각난다. 지금쯤 그 아줌마는 뭘하고 있을까?
그 아줌마의 얼굴은 생각나지 않는다.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다면 알아보지 못할 꺼다.
그 아줌마는 전업주부였다. 10년차 정도?
전업주부의 생활에 권태를 느낀다고,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아줌마는 책을 참 좋아해서,
낮에는 항상 책을 읽는다고 말했다.
그 아줌마가 젤로 좋아하는 저자는 "법정스님".
법정스님의 글들을 읽으며 마음을 달랜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도 법정스님의 책들 처럼 마음에 위안이 되는 책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출판강좌"에서 배우는 주된 내용은
어떻게 시장을 읽고, 잠재독자들이 원하는 책을 기획하고, 어떻게 마케팅을 하고, 결국 어떻게 돈을 버냐....하는 거다.
뭐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아침형 인간>이 뜨면, 재빨리 <저녁형 인간>을 만들어야 하고,
항상 출판계의 트렌드를 읽으면서, 어떤 책이 뜰 것인지를 예측해야 하고, 발 빠르게 먼저 터뜨려야 하고.....
그런데....
그 아줌마는 그런 수업내용을 아주 싫어했다.
처세술 책들을 기절할 만큼 싫어했다.
수강생들을 몇팀으로 나눠서 발표도 하고,
팀별 토의도 하고 했는데 그 아줌마는 항상 법정스님류의 에세이들만 고집했다.
그 아줌마는 아주 고집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나름대로 "시장조사" 이런 것도 해오고
내년이 월드컵이니까 축구 관련 이런 책이 나와야 한다,
요즘 이민을 많이 가니까 이민 관련 어떤 책이 나와야 한다 등등
시황을 중심으로 이런 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발표를 했는데,
그 아줌마는 그런 걸 아주 한심하게 생각했다.
책은 무조건 법정스님의 책 처럼 읽는 사람을 겸허하게 만드는,
그런 깊이가 있는 책이어야 한다.
그게 그 아줌마의 지론이었다.
한번은 선생님이 그 아줌마에게 말했다.
"출판기획자는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만드는게 아니라,
독자가 읽고 싶은 책을 만드는 거예요."
그 때 그 아줌마가 어떤 반응을 보였더라?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금요일 저녁 강남의 한 삼겹살 집에서 본 9시 뉴스에서
우연히 출판 평론가 김영수를 보고,
(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 아줌마를 기억했다.
지금쯤 그 아줌마는 뭘하고 있을까?
법정스님의 책을 읽고 있을까?
혹 출판사를 하나 만들었을까?
<좋은 생각>이나 <샘터>에 가끔 원고를 보내고 있을까?
애들 교육에 바빠져서 정신이 없을까?
궁금하다.
지금쯤 그 아줌마는 뭘하고 있을까?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행복하시기를.....
일요일에 출근해서 잡문만 쓰고 있는 수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