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애경 시집 <바닥이 나를 받아주네>에서
"바로 이거야!"하는 시를 발견했다.
<계백의 아내>라는 짧지 않은 시.

"가족 동반 자살"
이런 제목의 기사를 사회면에서 자주 본다.
그런데....
사실 기사를 읽어보면 "동반 자살"이 아니다.
부모가 어린 아이들을 죽이고 자살을 한 경우다.
이 험한 세상에서, 부모가 없으면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갈까?
그것도 부모가 남겨 놓은 빚더미 속에서....
오죽 걱정이 되었으면 그런 생각을 했을까...극한 상황에 처한 부모의 심정이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생명 존속을 부모가 판단할 수 있을까?
그것도 일종의 폭력이 아닐까?
아이들은 그래도 살고 싶어하지 않을까?
아무리 힘든 삶이라도 행복한 순간이 아예 없는 인생은 없을텐데...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양애경의 <계백의 아내>라는 시를 읽고,
'바로 이거다!' 생각했다.
이에 <계백의 아내> 전문을 소개합니다.

계백의 아내

서기 660년,백제의 장수 계백은 황산벌 전투를 앞두고 "한 나라의 인력으로 唐,羅의 대병을 당하니, 나라의 존망을 알 수 없다.
내 처자가 잡혀 노비가 될지도 모르니,살아서 욕을 보는 것 보다 죽는게 낫다."하고 처자를 다 죽이고 황산들에 나와 세 곳에 진병을 베풀었다.네 차례의 격전 끝에 힘이 다하여 죽었다.
- 김부식의 <삼국사기>에서

당신과
당신의 아내인 저와
당신의 아이들
우리들이 얼굴을 마주보는 것도 오늘뿐
내일이란 없겠지요
적군이란 피의 값으로
여자와 살육과 재물을
원하는 것이라죠 그래서 당신은
당신 숨 끊기시고 난 이후의
우리의 운명을 걱정하신 건가요?
제 옷깃 안에
오도도 떨고 있는 아이들을 보세요
어쩌다 사람 손아귀에 든 작은 새처럼 쿵쿵 울리는
그 아이들의 심장 뛰는 소리를 느끼시지요

당신은 검을 빼어 드시는군요
목이 떨어진 후 얼마까지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걸까요
아니면 눈이 금방 흐려질까요?
여보 아이들의 눈을 가려주세요
아니면 제 치마끈을 떼어 드릴테니
그것으로 목을 얽으시면 어떻겠어요?
칼날에 동강 나는 것은 너무나 무서워요
패장의 가솔은 노비가 된다지만
노비로라도 살아가다보면
자식,자식,그 자식의 자식 때라도
다시 사람답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여보 죽는 게 꼭 용기 있는 걸까요?
나라 위해 죽는다지만
그 나랏님은 나라를 위해 무엇을 했나요
당신이 병사들과 진흙 속에서 피 흘리고 있을 적에
아첨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쾌락에 빠져 있지 않았나요
당신을 핍박하시지 않았나요
여보 그러니 여보

우리 죽지 말고 살도록 해요
그게 안된다면 여보
저와 아이들이라도 살려주세요 여보 살려주세
.........!

잘려나간 제 목에 붙은 눈이
잘려나간 아이들의 목에 붙은 눈과
마주쳐요 아이들의 눈은 휘둥그레졌어요 믿어지지 않
......아......

1950년대의 서울, 식솔 벌어먹이기가 벅찼던 가장이 방에서 목을 맸다.아이들 엄마는 그 비겁한 가장의 시체를 두들겨팼다.1990년대의 서울,가출한 아내에 대해 분노한 가장은 아이를 데리고 다리에 나가 강물에 떼밀었다.다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죽지 않겠다고 빌던 아이는,경찰이 아버지를 끌고 가자, 아버지가 빨리 집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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