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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안나 가발다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세계사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소설을 관통하는 정서는 "신파".
줄거리만 보자면 울고 짜는 아침 드라마와 크게 다를게 없다.
한 여자가 인생을 걸고 사랑했던 남편이 떠난다.
왜? 다른 여자가 생겨서.
여자는 두 딸과 함께 홀로 남겨진다.
여자는 슬픔과 분노에 빠진다.
시아버지는 상심한 며느리를 위로하기 위해,
며느리와 손녀들을 시골 별장에 데려다 준다.
그 별장에서 시아버지는 말한다.
" 자기 때문에 남이 불행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괴로움말이다.....남아 있는 사람들은 동정을 받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하지.하지만 떠나는 사람들은 어떠냐?" (p97)
혼자 남겨진 며느리는 "남아 있는 사람".
다른 사랑을 위해 떠난 아들은 "떠나는 사람".
그리고....자신의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아버지는
떠나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어 유령처럼 "남은 사람".
시아버지는 며느리에게 자신의 묻어둔 사랑을 들려준다.
( 이 소설의 배경은 프랑스. 한국의 근엄한 시아버지를 생각하면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뭐....시아버지의 사랑 얘기도 별 다를 것 없는 신파다.
워크홀릭이었던 42세의 남자.
아내와 두 아이, 전형적인 한 가정의 가장.
자신에게는 아무런 열정도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했던 남자가
매력적인 젊은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그 남자는 그 여자(마틸드)를 너무도 사랑했지만,
차마 가정을 버리고 새로운 사랑을 위해 떠나지 못한다.
자신이 비겁했음을 잘 알고 있다.
결국....마틸드는 떠나고 남자는 가정을 지키며 조용하게, 유령처럼 살아간다.
이렇게 별 다른 것 없는 줄거리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읽은 이에게 강한 감정이입을 불러 일으키는 건,
남아 있는 사람, 떠난 사람, 남은 사람을
균형 잡힌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다.
읽는 사람에 따라 감정이입이 되는 소설 속 인물이 다를 것 같다.
난 남아 있는 사람(며느리), 떠난 사람(아들), 남은 사람(시아버지)이 아닌 마틸드(시아버지가 사랑했던 여자)에게 가장 연민이 느껴졌다.
사랑하는 남자가 유부남인 이유로 몰래 만나야 했던 마틸드에겐
해보고 싶은 일들이 너무도 많았다.
어느 날, 마틸드가 호텔방에 하루 종일 혼자 틀혀 박혀 쓴
하고 싶은 일 리스트.
소풍가기,강가에서 낮잠자기,.....................지하철 타기,빨래 널기,..........시장 보러 가기, 슈퍼마켓에 가기,........당신 팬티 사 주기,..............동물원과 벼룩시장에 가기,.....커튼 꿰매기........당신 머리 깍아주기,......세차하기,...........뜨개질 배워서 당신에게 목도리 떠 주기,그랬다가 보기 흉하다고 다시 풀어버리기,주인 없는 고양이와 개를 거두어 먹이기............쓰레기통 비우기..........사진 붙이기.......(p193~196)
아..... 하고 싶은 일들이라는게 얼마나 일상적인 것인지....
결혼한 여자라면 하기 싫어도 할 수 밖에 없는
이런 시시하기 까지한 일들을 갈망했던 마틸드.
이 부분을 읽으면서 현기증 처럼 마음이 어질어질 했다.
이 소설을 덮으며 생각했다.
모두가 자신의 사랑은 특별하다고 말하지만,
어쩌면.....사랑이라는건 다 신파 아닐까?
딴지) 책날개에 있는 저자 소개를 읽다가 웃겨서 쓰러지는지 알았다.
" 작가는 키가 크고 늘씬한 금발 미인이다. 초록빛 눈의 금발 미인이 영화나 노래가 아니라 소설로 이렇게 대중의 인기를 누리는 것은 프랑스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웃겨. 웃겨. 정말 웃겨, 웃겨서 뒤집어 지겠어 .
"프랑스 역사상 처음 있는 일" 어쩌구 오버까지 하며
작가의 외모를 설명하는 발상 자체가 웃긴다.
이제....소설가들도 성형외과를 드나들고, 집중 피부관리를 받아야 하는 시대가 왔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