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빼로 데이.
시내는 온통 100년 넘게 썩지도 않을 요란한 포장지에 울긋불긋한 리본을 묶은
빼빼로를 팔고, 사고, 선물한다고 북새통이었겠지.

"빼빼로 데이"의 상업성에 저항(?)하기 위해,
포장지 사용을 줄이자는 환경운동을 지지하기 위해,
난 하루 종일....집에 있었다.
자고 자고....또 잤다.

하루 종일 몸이 욱신거렸다.
이럴 때 일수록 운동을 더해야 하나?
언뜻 그럴 것 같았지만 몸을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서서히 몸이 단단해 지고 슬슬 근육이 생기는 걸 뿌듯해 하며
욕심을 부려 근육운동 기구들과 바벨,아령의 무게를 늘렸다.

화요일부터 몸이 아팠다.
온몸이 욱신거리는 근육통이 느껴졌지만
기분 좋게 단단해져 가는 팔 근육을 만져 보며,
윤곽이 뚜렷해져 가는 쇄골을 만져 보며,
통증을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까잇~거!

그러다 오늘 아침......뻗어 버렸다.

난 항상 뭔가에 미쳐 있다.
얼마나 갈지 모르지만 지금은 웨이트 트레이닝에,
일에, 남자에, 소설에, 주식에, 여행에, 외국어에, 차에, 명상에, 와인에, 음악에....

"웬 운동을 그렇게 무식하게 하니? 제발 좀 살살해라."
아침에 못 일어나서 끙끙거리는,
겨우겨우 침대에서 빠져 나오는 날 보며 걱정스런 표정으로 엄마가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뭔가에 미쳐 있는 내 모습을 지겨울 만큼 봐온 울 엄마는
지치지도 않고 또 새로운 뭔가에 빠져 있는 딸내미의 모습에
정나미가 떨어질 만도 한데,
항상, 한결 같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말씀하신다.
"제발 좀 살살해라."

난 참....집중을 잘한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읽을 때나 딴 생각을 할 땐
주위에서 나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래서 툭하면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혼났다.
"너 내가 부르는 거 못 들었어? 몇 번을 불렀는데?"

연애를 할 땐,
친구들 모임에도 나가지 않고
연락도 뜸하게 잠수해 버려
배 터질 만큼 욕을 먹곤 했다.
어떻게 시간을 분배해야 할지 몰랐다.
오직 관심이 한 곳에 있기에.

몇 년 전엔 "속도"에 미쳐서
중고 아반떼를 하나 사서 투박한 핸들을 모모 핸들로 바꾸고,
레이싱용 어깨 벨트를 하고 주말마다 미친 듯이 밟았다.

또 몇 년 전엔 "태국"에 미쳐서
어떻게 하면 태국에 살 수 있을까... 고민했다.
잘 팔지도 않는 태국어 회화 테이프를 사서 태국어를 배웠고,
일본계 태국회사랑 면접을 하러 방콕까지 날라 갔다.

에너지가 한 번 폭발하고 나면....한동안 슬럼프를 겪는다. 조울증처럼.

"inventory building"이라는 말이 있다.
재고 축적, 재고가 쌓인다는 말이다.
"LCD TV panel inventory building" 이런 신문기사 제목처럼.
LCD TV 판매가 예상을 밑돌아 panel 재고가 쌓이고 있다....이럴 때 쓰는 표현이다.

판매가 부진해서 재고가 쌓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일정한 재고를 확보하지 못하면 판매를 하지 못한다.

세일 기간에 백화점에 가면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죄송합니다. 손님, 찾으시는 상품 재고가 없습니다."

왜 뜬금 없이 재고 얘기를 하느냐?
에너지도 재고와 비슷한 것 같아서.

열정적인 사람들은 에너지를 확~당겨 쓴다.
에너지가 소모되면 다시 에너지가 충전될 때 까지,
그러니까 최소 재고가 확보될 때 까지,
기다려야 한다.
한 번씩 축 쳐져서, 빈둥빈둥하며
깜빡거리는 빨간 불이 느긋한 연두색으로 바뀌기를 기다려야 한다.

이렇게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이해하긴 하지만,
한 번씩 슬럼프에 빠질 때면 정말....두렵다.
조바심이 나고 입이 바짝 탄다.
오늘처럼 편하게 푹~쉬면 되는데,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못하다.

어차피 늦게 출발 했으면
지하철에서 30초에 한 번씩 시계를 보며 발을 동동 구르건,
한 20분 푹~자면서 가건 늦는 건 똑 같은데,
안타깝게도 난 전자에 속한다.
발을 동동 구르며 초조하게 시계를 본다.

하루 푹~쉬었더니 몸의 욱신거림이 뻐근함과 나른함으로 바뀌고 있다.
이렇게 몇주 남지 않은 06년의 끝에서 몇 번째 토요일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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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6-11-12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혹시 내 도플갱어? 으하하하핫... ㅋ

글샘 2006-11-12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그런 사람 많이 있습니다. 저도 동동 편입니다. ㅎㅎㅎ
쿨쿨 자려고 할 필요 있겠습니까? 동동 구르는 게 '나'인걸요.

마태우스 2006-11-12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가에 미치는 사람, 정말 멋진 사람 아닌가요? 그게 뭐든지 관계없이요.

LAYLA 2006-11-12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국은 어떻게 끝났나요? 궁금해요!

바람돌이 2006-11-12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 저는 그냥 느긋하게 푹자는 쪽... 그니까 뭔가에 잘 미치지도 못해요. 그냥 이것 저것 건드려보고 적당히 하다 마는 주의죠. 이거 타고난 성격이라 잘 안고쳐져요. 아마 님도 그렇겟죠. 근데 서로의 입장에서 보면 상대편이 부러워보일때가 많죠.저도 아주 열정적으로 뭔가를 하는 사람을 보면 참 부럽거든요. 근데 사람이 사는 방식은 다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어느쪽이나... 하긴 이것도 만사가 느긋한 제 생각이겠죠. ^^

마늘빵 2006-11-12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그런 모습이 매력적인데.

2006-11-12 1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INY 2006-11-12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분좋게 단단해지는 팔근육~~!
저도 얼마전 앉아서 팔운동이라도 하시죠, 팔뚝살이 늘어져요라는 말을 듣고 1kg짜리 아령을 구입했는데, 이게 참...
저도 예전엔 집중을 참 잘했는데, 점점 집중하기도 힘들고, 또 한번 집중하면 그걸 유지하는 기간이 짧아지는 거 같아요. 정말 나이가 들었나봐요ㅠ.ㅠ

kleinsusun 2006-11-12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두야, 너도....그러니? 요즘엔 뭐에 미쳐있어? ^^

반달님, 반달님도 지하철 안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스타일이시군요,웬지 위안이..^^
전 한숨 푹~자는 느긋한 사람들이 부러워요. ㅋㅋ

마태님, 마태님도 미쳐 있잖아요. 테니스에, 술에, 집필활동에, 알라딘에. 미녀에...아닌가요? ㅋㅋ 항상 에너지 넘치는 멋진 마태님!^^

blowup 2006-11-12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바심은 내면서도 끝까지 못 가는 사람도 있다구요.(여기요.)
원래 배터리는 완전히 방전시키고 충전시키는 게 좋다잖아요.
어정쩡하게 충전시키면, 제대로 충전이 안 된다네요.
비슷하겠죠.
쇄골이 드러나는, 기분 좋은 욱신욱신.

moonnight 2006-11-12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의 그런 에너지가 부럽답니다. ^^ 요즘은 뭘해도 심드렁. 의욕을 느끼지 못하는 거 같아서요. -_-; 운동은 중간중간 하루씩 쉬어주는 게 근육만드는 데 도움된다고 하던데요. 너무 무리하지 마셔요. 주말에 푹 쉬시고 의욕충만한 한 주 여시길 바래요. ^^

2006-11-12 1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kleinsusun 2006-11-12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LAYLA님, 태국 그 회사는.... 연봉 협상을 하다가 제가...꼬리를 내렸어요.ㅠㅠ
그 회사는 연봉을 "Baht"로 주겠다고 했는데, 그게 외국인인 제 입장에서는 굉장히 불안한거였거든요. 자세한 얘기는....기회가 있으면 LAYLA님께 살짝꿍 얘기할께요.^^

바람돌이님, 느긋한 님이....부러부러!^^
전 맨날 뭐가 그렇게 급한지 몰라요. 맨날 헉헉! 많은 지도편달을 부탁드려요!^^

아프님, 감사합니다.^^

kleinsusun 2006-11-12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여주신님, 마음을 톡톡 두드리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BRINY님, 1kg 아령은 약간 가벼운데....ㅋㅋ
팔 운동을 한번에 10분씩, 하루에 2~3번만 해줘도 팔에 훨씬 탄력이 생길 것 같아요.
전 요즘에 웨이트 트레이닝에 미쳐서...싫어하는 우유랑...단백질 보충제까지 먹고 있어요.ㅋㅋ 언제까지 할지는....몰라요. 또 어디로 토낄지!^^


kleinsusun 2006-11-12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u님, 맞아요! 핸폰 밧데리는 완전히 방전된 다음에 충전하는 게 좋다면서요?
아...커다란 격려가 되는걸요!^^ 이번 겨울 열심히 운동해서 설레이는 마음으로 여름을 기다리고 싶어요.헤헤~ 행복한 일요일 오후 보내세요!^^

달밤님, 아닌 것 같은데...~ 뭘해도 심드렁하면 일하기도 바쁜데, 부산 영화제, 일본 여행, 야간 강의....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달밤님이야 말로 제가 보기엔 "생산적인" 에너자이전데...^^ 진~한 커피를 한잔 마시고 싶네요. 아...달밤님이랑 같이 마시면 좋겠당!^^

비로그인 2006-11-13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 보이세요. 한가지에 미쳐있는 순간,그 순간이라도 중력이 느껴지지 않는 건 얼마나 좋은가요.

kleinsusun 2006-11-13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Jude님, Good morning!^^ Jude님 이미지 사진을 볼 때 마다 커피가 땡겨요.ㅋㅋ
네...요즘은 weight training에 미쳐 있어요.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지만요. Jude님은 요새 어떤 일에 빠져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