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친구 있니?"

며칠 전, 오랜만에 친구 B와 메신저로 서로의 근황을 물었다.
B는 "아침 먹었어?" 같이 가볍게 질문을 던졌다. 탁구공을 넘기듯이 툭.

나 또한 가볍게, 빠르게 키보드를 두들기며 대답했다.

S : 없어, 없으니까 편하고 좋네. 신경 쓰이는 일도 없고.ㅋㅋ
B : 어....그런건 너랑 안 어울리는데....
S : 엉? 무슨 말이야?
B : 너 귀여움 받는 거 좋아하잖아. 칭찬 받는 거 좋아하고.
너 그런 말 하는 거 안 어울려.
S : ...........

그 순간...난 B의 말에 화들짝 놀라 뭐라 대답할지 버벅거렸다.
"그걸 어떻게 알아?" 썼다가... 지웠버렸다.
(참고로 B는 남자고 서로 가끔, 잊을만하면 연락하고 지낸다.)

혼자만 비밀이라고 믿고 있는,
남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비밀 아닌 비밀을 들킨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강한 척, 센 척" 잘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내 연기는 참....서툰가 보다.
차렷 자세로 국어책을 읽는 사건 25시 형사 아저씨처럼.

벌써 몇년 전,
"미스 코리아"를 지상파로 중계할 때였으니까 5~6년 전,
쇼파에 누워 심드렁하게 TV를 보다 경기를 일으킨 적이 있다.

본선에 올라온 15명을 김동건 아나운서가 인터뷰할 때였다.
머리가 텅 비어 보이는,
<넌 내게 반했어>의 "노브레인"이 생각나는,
게다 최지우 스타일의 혀 짧은 소리까지 내는
백치미로 승부하는 후보에게 김동건 아나운서가 물었다.

"배우자로 생각하는 이상형은 어떤 남자죠?"
그녀는 입고리를 치켜 올려 미스 코리아 전용 미소를 과시하며 대답했다. 또박또박.

"저를 강아지처럼 귀여워해 주는 남자요."

난 너무 놀라 쇼파에서 떨어질 뻔 했다.
뜻밖의 기습을 당한 것 같았다.

인정하기 싫지만,
믿고 싶지 않지만,
그녀와 나의 이상형은..... 같았다.
쩍 팔려서 누구한테 얘기한 적 없었을 뿐.

날 귀여워해 주는 남자,
쓸데 없이 생각만 많은 날 리드해줄 수 있는 남자,
뭐 먹고 싶냐고 물어보는 대신 뭐 먹자고 말하는 남자,
어디 가고 싶냐고 물어보는 대신 엑셀을 밟고 있는 남자,
"To be or not to be"를 외치며 처절하게 고민하는 햄릿 보다는
그냥 일단은 들이대고 보는, 무모할 정도로 용감한 돈키호테 같은 남자가 좋다.

그런 남자에게 연애감정이 느껴진다.
커다란 쇼파처럼 느껴지는 남자, 기대고 싶은 남자.

어제 커피를 마시며 나의 지기, 나의 멘토 P언니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가 한 마디 들었다.

"니가 20살이냐?
도대체 결혼할 마음이 있기는 한거니?"

참....30대가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게
쩍 팔리기도 하고, 듣는 사람이 어이 없어 하기도 하지만
난 정말.....고민이 된다. 머리 터지게.

연애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남자,
오랜 시간 동안 단 한 순간도 남자로 느껴본 적 없는 남자랑
연애를 할 수 있을까? 노력하면?
유행가 가사처럼 어느 순간 오랜 친구가 남자로 보일까?

노력하면 웬만한 일은 다 된다.
잘 못하는 건 남들 보다 몇배 더 하면 된다.
그런데....연애 감정도 노력하면 생기는 걸까?

아....너무 어렵다. It's too difficult for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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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11-05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은 제가 아는 분 중 젤 귀여우신데요 뭐. 꼭 애인이어야만 님을 귀여워 죽겠단 표정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을까요

kleinsusun 2006-11-05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아..........감사합니다.^^

2006-11-05 1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kleinsusun 2006-11-05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아....부끄부끄...^^

2006-11-05 1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kleinsusun 2006-11-05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속삭이신님, 인기 짱이신데요!^^ 부러부러!

2006-11-05 1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1-05 1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kleinsusun 2006-11-05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님의 속삭임이 제게 정말 큰 힘이 되요. 감사합니다.^^

2006-11-05 1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6-11-05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맛 저만 빼고 다 속삭였어....!! 수선님의 팬들은 다 소심쟁이!

hnine 2006-11-05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를 귀여워해주는 남자를 만날 확률보다 그 반대의 확률이 훨씬 높더라고 말하면 실망하실까요? 처음엔 설사 남자는 귀여워해주는쪽, 여자는 귀염을 받는 쪽으로 시작했다 하더라도, 결국은 여자가 남자를 더 보살피는 쪽으로 가더라는게 제 결론인데...물론 다 그런건 아니지만요. 여자하기 나름인가...하는 생각도 문득 해봅니다.

moonnight 2006-11-05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을 아는 남자라면 누가 님을 귀여워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 여자인 제가 봐도 느무 깜찍하고 귀여우신데요. >.<

2006-11-05 1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6-11-05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분. 제가 수선님을 좀 많이 좋아하거든요. 그러니까 자꾸 댓글 달지 마세요-.-*

2006-11-05 16: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6-11-05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군님 밀어드리겠습니다.^^

마태우스 2006-11-05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군님, 저와 한번 만나야겠군요. 몸 만들어서 나오십시오^^

마늘빵 2006-11-05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 엇. 정군님 마태님 '현피'하시는거에요? 아 재밌겠다. 저도 관객으로 좀 불러주세요.

kleinsusun 2006-11-06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카리스마 넘치는 님이 넘 멋져요!^^

hnine님, 네....결혼한 친구들을 보면 늠름하던 남친이 돌봐야 할 남편으로 바껴 버린 경우들이 있더군요. 그렇더라도....전 일단은~ 쇼파 같은 남자가 끌려요.ㅋㅋ

달밤님, 지금 생각하면....그 미스코리아 후보...참 멋져요.화끈해! ㅋㅋ
왜 저는....솔직하지 못할까요? 달밤님은 어떤 남자가 좋아요?^^

kleinsusun 2006-11-06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네....우리 자주 talk,talk해요!^^

정군님, 와....정말? ㅋㅋ

속삭이신님, 오늘....어땠어요? 노력하면...될 것 같아요?^^

물만두님, 댓글 달지 않는데 동참하신다는 말은 아니시죠? ㅋㅋ

마태님, 전 송년회 준비를 위해 몸 만들고 있어요.7차 가셔야죠! ㅋㅋ

아프님, "현피"라는 말을 몰라서 네이버 찾아봤어요. 와...새로운 단어를 배웠네요. 감사합니당.^^


잉크냄새 2006-11-06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뭇 남정네들의 댓글이 좌라락~~~

kleinsusun 2006-11-06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랄랄라~ ♬♬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