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상반기에 "커피 믹스"에 중독된 적이 있었다. 한참 출장도 많고 힘들 때였다. 항상 졸렸고 피곤했다. 아침에 출근하면 컴퓨터를 부팅하듯이 습관적,기계적,자동적으로 유서 깊은 정통 커피믹스동서 "Maxim 모카 골드"를 종이컵에 털어 넣고 눈을 반쯤 감은 채로 생수통으로 이동, 뜨거운 물을 종이컵의 반 정도까지만 따르고 "달달하게" 한 잔을 마시면 그 때서야 잠이 깨며 정신이 들었다. 커피믹스를 각성제 삼아 잠을 깨고 오전 근무를 버티면 오후 2시쯤 다시 잠이 쏟아졌고 규칙적으로 약을 복용하듯이 커피믹스 한잔을 더 마셨다. 여기서 끝나면 좋았을 텐데 5시쯤 또 한잔을 마셨다. 이렇게 3~4개월이 지났을 때, 난 아기 곰처럼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커피믹스의 열량은 정말....살인적인 거였다. 하루에 커피믹스 3개씩 마셨으니..... 커피믹스 속에 들어 있는 그 엄청난 양의 백설탕과 프림은 지구를 반바퀴 뛴다 해도 소모하기 힘든 열량이었다. 그 폐해를 알면서도, 그것도 똑똑히, 잘 알면서도, 커피믹스가 주는 강력한 각성작용 때문인지 쉽게 커피믹스를 끊을 수가 없었다.(이상하게 진한 espresso를 마셔도 안 깨는 잠이 달달한 커피믹스를 마시면 확~깨면서 일할 기분이 들곤 했다.뽀빠이가 시금치를 먹는 것처럼.) 그러던 어느 날, 거울에 비친 코카콜라 CF의 북극곰 같은 내 모습을 보고는 과감하게 커피믹스를 끊었다. 회의할 때 팀원 전체가 다 마셔도 마시지 않았다. 커피믹스를 마시고 잠을 깨느니 차라리 근무시간에 졸고 말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했다. 그렇게 해서 난 커피믹스 중독에서 벗어났다. 이제 사무실 도처에 누~런 커피믹스가 쌓여 있어도 눈길도 가지 않는다. 그런데...어제 처음 마신 스타벅스의 "시그니처 핫 초콜릿"이 날 강력하게 압박하고 있다. 토요일에 만난 한 잡지사 기자에게 스타벅스 "시그니처 핫 초콜릿"이 "너무" 맛있다는 찬사를 들었다.그런데 정작 그 기자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왜 "시그니처 핫 초콜릿"을 마시지 않느냐는 질문에 "너무" 맛있지만 엄청난 열량 때문에 망설여 진다고 했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서도 기자는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한참 프로모션 중인 시그니처 핫 초콜릿 사진을 잠시 쳐다 봤다. 도대체 어떤 맛일까? 궁금했던 난 어제 스타벅스에 갔을 때 시그니처 핫 초콜릿을 마셨다. 그런데 정말.... 맛있었다. 정말 진한... 풍부한 dark chocolate의 맛과 향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초콜릿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환장할 수 밖에 없는 그런..... 그 맛을 잊지 못하고, 피곤하다는 핑계를 이유 삼아 오늘 아침 출근길에 스타벅스에 들른 난 시그니처 핫 초콜릿을 주문했다. 그것도 tall size로! 사무실에 들어와서 책상에 앉아 핫 초콜릿을 마시며 생각했다.맛있다. (그럴 땐 행복하다!) 그런데.....중독되면 어쩌지? 이 엄청난 열량을 어떻게 감당하지? 커피믹스는 "꽁짜"지만, 한잔에 4천5백원이나 하는 "시그니처 핫 초콜릿"은?뭔가에 중독되는 건 싶다. 하지만 벗어나는 건 어렵다. 중독된 그 무언가로부터 얻은 기쁨에 맞먹는 고통을 겪고 나서야 탈출할 수 있다. 그래서...중독을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시그니처 핫 초콜릿을 마시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 어느 흐린 가을날의 소소하고 시시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