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길 지하철.
아무 생각 없이 벽에 붙어 있는 TV를 보다가
우체국 예금보험 CF를 보고 잠이 확 깼다.

눈에 확 들어오는 한줄 짜리 카피.
" 낭만은 짧고 생활은 깁니다."

어제 본 영화 <오만과 편견>이 생각났다.
다섯명의 자매들과 그들의 엄마는
돈 많은 남자와의 결혼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 낭만은 짧고 생활은 깁니다."

이 말은 19세기 초 영국에서나, 21세기 초 한국에서나,
200년 전에도, 200년 후에도,
어제나, 내일이나, 모레나
언제나....진실이다.

어제 영화를 보다 샬롯의 대사를 듣고 가슴이 아팠다.
" 내게 사랑은 과욕이야."

못생기고 나이 많은,게다가 집까지 가난한 샬롯.
그저 "안정된 생활"을 위해 비굴하고 약아 빠진 남자의 청혼을 받아 들인다.

결혼을 반대하는 친구 엘리자베스에게 샬롯은 말한다.
" 난 27살이야. 돈도 없고, 미래도 없어.
난 부모님에게 짐이라고..."

돈도 없고, 미래도 없다.
그래서 결혼을 한다.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랑...

사랑이 없어도 먹고 살 수 있지만,
먹고 살 수 없으면 사랑은.... 과욕이다.
아...이 냉혹한 현실.

2년 전인가?
뮤지컬 [Beauty and the Beast]를 보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내게도....야수처럼 저렇게 멋진 서재를 선물해 주는 남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저렇게 멋진 서재를 선물해 주면 야수라도 좋겠다...
야수라도 좋으니 저렇게 멋진 서재에서 책이나 읽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 때... 많이 지쳤었나 보다.
뮤지컬을 보면서 이런 생각에 빠져 있었던 걸 보면...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당시에 야수를 만나지 못했다.
그 대신...돈을 모아서 작업실 겸 서재를 하나 만들어야 겠다는
건설적(?)인 생각을 했다.

그 후로도 힘들 때면,
힘들어서 "내가 무슨 용가리 통뼌지 아냐?" 이런 말이 튀어 나올 때면,
야수의 출현을 기다리기도 했다.

그리고 또 다시...작업실 겸 서재를 만들겠다는 건설적(?)인 구상을 하고....

결혼한 친구들은,
다 커서 뛰어 다니는 애들이 둘씩이나 되는 친구들은,
우리 엄마보다 잔소리랑 충고를 더 많이 하는 친구들은 이렇게 말한다.

" 너 결혼하면 왜 싸우는지 아냐? 돈 때문에 싸워."

이런 말 들으면 참.... 씁쓸하다.

" 낭만은 짧고 생활은 깁니다."
그래서....우체국 예금보험에서는 예금도 들고 보험도 들라고 한다.

" 낭만은 짧고 생활은 깁니다."
그래서....<오만과 편견> 같은 200년 전 소설이 아직도 드라마가 되고 영화가 된다.
달라진 것 없는 현실.

" 낭만은 짧고 생활은 깁니다."
카피 하나 참 잘 만들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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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28 1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인 2006-03-28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맞아요. 가장 심금을 울리는 카피죠.

마태우스 2006-03-28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광고 카피와 영화 한편을 연결시켜 주옥같은 페이퍼를 완성시키셨군요. 님은 정말 작가의 기질이 있으세요. 님의 출판기념회, 기다릴께요.

드팀전 2006-03-28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활을 미학적으로 만들어봐요ㅎㅎ

코마개 2006-03-28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부가 싸우는 이유 1. 돈 2. 시집의 간섭 3. 자식교육
정작 두 사람 일로는 싸울게 없죠.

마늘빵 2006-03-28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돈이 정말 문제군요. 저도 어제 오만과 편견 봤어욤.

moonnight 2006-03-28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흠흠. 저역시 길고 길 생활이 두려워서 결혼을 못하는 건지도 ^^;;; 수선님 베스트셀러 작가 되심 작업실 겸 서재 담박에 생기겠지용. 어여 책을 내셔요. ^^

2006-03-28 1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혜덕화 2006-03-28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의 부모님에게 낭만이 아닌 생활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어여쁜 수선님이 있을까요? 결혼은 생활이기도 하지만, 출산은 우주적인 기쁨을 경험 할 수 있는, 여자만이 가진 특권이기도 하답니다. 결혼의 냉혹함이 결혼의 좋은 점을 가리듯이 아이 키우기도 그 힘든 과정때문에 아이들이 주는 기쁨은 묻혀버리죠. 어떤 면이든, 낭만도 생활도 있기 나름, 직장 생활도 그렇지 않나요? 햇살이 깊으면 그늘도 깊죠.
결혼의 햇살을 보세요. 자꾸만 그늘만 보면, 결혼하기 점점 더 어렵답니다.




mannerist 2006-03-28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청년처럼 "낭만회사원의 해떨어진후"를 손잡고 외쳐 BoA요~
씨익 앤드 화알짝 ^_^o-

세벌식자판 2006-03-28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체국 보험이라고 다 좋은게 아니니 꼼꼼히 비교해 보세요.
예금 또한 마찬가지... (^^;)

kleinsusun 2006-03-29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어쩜 그리...님이 쓰시는 글은 댓글 하나까지 다 예술이예요.
어찌 그리 마음에 와닿는 표현을 쏙쏙 쓰실 수 있는지...
<오만과 편견> 재미있어요. 보세용!^^

조선인님도 이 카피 아시는군요.약간은....섬뜩한 카피.ㅎㅎ

마태님, 오......늦더라도 기다려주세요.ㅎㅎㅎ VIP로 모실께용.^^

드팀전님, 생활을 미학적으로? 음.... know how를 쫌 지도편달 해주세욤.^^

강쥐님, 정말로.....돈이 1번이예요? 친구들 말이 정녕.....사실인가요? ㅠㅠ

아프락사스님, 님도 보셨군요. 재미있었죠?^^

moonnight님, 네...정말 서재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아....아름다운 서재는 저의 꿈이예요.
꿈은...이루어진다! 홧팅!^^

속삭이신님, 고민은...."요즘"이 아니라 "항상" 많았어요.ㅎㅎ

혜덕화, "우주적인 기쁨". 아....넘 멋진 말이예요.
"우주적 기쁨". 언젠가 저도 그런 우주적 기쁨과 특권을 가질꺼예요.^^
좋은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햇살을 보도록 노력할께요.

강철 체력 매너야, 너의 부지런함에 존경을 표한다.진짜!!!
오늘도 도시락 싸갔어???

세벌식 자판님,음하하하하. You w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