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의 하루에서 회사원들이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당근 퇴근시간.
그런데...퇴근시간은 정해져 있지가 않다.
원래 팬티 고무줄 보다 더 잘 늘어나고,
(참....너무 옛날 표현이다. 요즘 팬티는 얼마나 좋은데...절대 안 늘어난다.)
주가보다 더 유동적이고 변화가 심한 것이 회사원들의 퇴근 시간이다.

퇴근시간 다음으로 회사원들이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점심시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만큼
아무리 바빠도 다들 점심은 먹는다.

오늘 점심시간.
7명이서 쌈밥을 먹었다.
귀찮아서 쌈은 하나도 싸 먹지 않고 제육볶음만 먹었다.
(쌈밥을 시킨건 내 의지가 아니었다.)

내가 싫어하는 음식은 먹기가 까다로운 음식이다.
예를 들어 꽃게, 왕새우, 크랩 이런거....
까고 살 빼내고 이런거 너무 귀찮다.

그래도 사회생활을 하는 인간으로서 가끔 그런걸 먹으러 갈 때가 있는데,
자기는 먹지도 않고
남자 앞에서 열심히 꽃게 살을 발라주는 여자들을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
(엄마가 살을 발라서 내 숟가락에 얹어 줄 때는 좋다. ㅋㅋ)

쌈밥을 먹고 나오면서 K과장과 테이크 아웃 커피집에 들어갔다.
빅마마의 흐느끼는 듯한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비도 오는데 꾸물꾸물한 기분에 딱 맞아 떨어지는 노래였다.
잠깐 노래에 빠진 상태로 서 있다가 K과장에게 말했다.

수선 : 이 노래 너무 좋다.
K 과장 : 이 노래 제목이 뭐야?
수선 : 뭐더라....체념도 아니고 break....뭐 그런건가?

우리의 대화를 듣던 커피집 아저씨가 답답한 듯이 말했다.
"여자요, 여자!"

아...노래 제목이 <여자>구나.
"feel" 받은 나는 사무실에 들어와 이어폰을 끼고 빅마마의 <여자>를 들었다.
그 절절한 목소리가 꾸물꾸물한 기분을 마구 휘감으면서 딱 좋았는데,
두번째 듣다가 가사 보기를 했더니 짜증이 났다.

나를 사랑한다면 아무것도 바라지않아
손을 대면 차가운 내가슴 안아주면되

이젠 나는 괜찮아 누구라도 나는 괜찮아
얼음처럼 흘리는 내눈물 가려주면되


뭐냐? 가사가 거지 같다.
힘드니까 아무라도 옆에 있어 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아무라도 좋으니까 사랑을 하겠다는,
이별로 텅 빈 마음을 누군가의 사랑으로 채우겠다는....

아...정말 지겹다.
근데 노래 가사는 또 왜 "여자"인가?

"여자"가 노래 제목에 들어가는 경우,
대부분의 가사가 이런 식이다.
사랑이 전부인 나는 여자이니까.... 뭐 이런....

이런 가사들은
"가구는 여자예요" 라던가
작은 집에는 들어가지도 않을 커다란 냉장고를 껴안으며
"여자라서 행복해요" 라는 거랑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

노래가사를 자유롭게 쓰는 건 좋은데,
광고카피를 자유롭게 쓰는 것도 좋은데,
왜 "여자"라는 하나의 gender를 이렇게 마구잡이로 규정하려 하는지....
또 이런 거 자꾸 듣고 보다 보면,
이런게 여자들의 "속성"인 것으로 머릿 속에 저장된다.

오직 사랑이 전부이고,
당근 일보다 사랑이 먼저이며,
사랑에 목숨 걸고, 사랑 안 하면 못살고,
외롭다고 내 눈물 닦아줄 사람이면 아무나 된다고 울부짖고....

지겹고 짜증나긴 하지만,
창작의 자유가 있으니 마음대로 쓰고 노래하는 건 좋은데,
왜 "여자"라는 gender를 싸 잡아서
"나는 여자이니까..." 하는 노래가 자꾸만 나오는지....

실제로 실연의 상처를 견디지 못해서 아무하고나 결혼하거나(그것도 몇 달만에)
더 이상 주말에 혼자서 밥을 먹기 싫다는 이유로
"결혼 그 까잇거 뭐...대충..." 하며
부모님 권장사양이랑 "대충" 결혼하는 사람들 정말... 많이 봤다.

그런 사람들 있다. 아니 많다.
뭐 통계가 없어서 알 수는 없지만,
내가 본 그런 사람들 중에는 남자가 더 많았다.

어쨌거나...
제발 "사랑이 전부인 여자이니까..."하며
"가구는 여자예요" 하는 식으로
무지막지한 가사나 카피를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노래 어렸을 때부터 듣고 자라면
진짜 사랑 안 하면 죽는지 아는,
허접한 사랑에 목숨거는 여자들이 대량 양산된다.

<여자> → <어떤 여자> 또는 <나 같은 여자>로 제목을 바꾸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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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5-08-25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빅마마의 이번 앨범 가사가 다 그래요. 뭘 갈구하는 노래 가사조차도 아주 연약한 짐승이 되어 바라고 있거나 난 여자니까 사랑만 채워줘 이런 거...
사랑에 목숨걸어보는 것도 좋지만, 사랑을 거저 먹으려는 심뽀는 용서 안됨.

야클 2005-08-25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왕새우 껍질 잘 깝니다. 거의 선수죠.(해마다 겨울에 대하 수백 마리는 먹슴다. ^^) 이담에 기회되면 새우속살만 발라드리죠. 푸할할~~~ ^^

코마개 2005-08-25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하가 사는 곳이 귀하를 말해 줍니다' 이것도 엽기 카피중 하나죠. 이거 듣고 머리를 한대 '띵'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죠.
'여자라면 꿈꾸세요'- 젠장, 난 여자인데 그런 꿈 안 꾼다.
'여자 아파트' - 이건 뭔지. 어떤게 여자 아파트인지.
이래놓으니 여자가 무슨 소비의 화신쯤 되어 보이는 군요...
더불어 갑각류를 먹을땐 체면을 버리고 도구도 버리고 두 손을 이용하여 마구 게걸스럽게 먹어야 제맛입니다. 태국서 그렇게 먹고 있는데 문득 돌아보니 종업원들이 나를 구경하고 있더라는..

kleinsusun 2005-08-25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맞아요 맞아. 딱 좋은 표현이네..."연약한 짐승". 무슨 노래가사가 다 상처입어서 혼자 못움직이는 짐승처럼 다 그렇다니깐요. 꼭 무슨 "살려줘요!" 같아요.ㅋㅋ

야클님, 저랑 데이트를....새우가 먹고 싶어요.ㅋㅋ

강쥐님, "귀하가 사는 곳이 귀하를 말해 줍니다" 첨 봤을 때 정말 기절하는지 알았어요. 광고심의위원회 이런데서는 체모가 보이니 안보이니 이런 것만 하지 말고,
이런 말세 같은 카피나 한번 연구하면 좋을 것을...

marine 2005-08-25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노래 무지하게 짜증났어요 "사랑이 전부인, 나는 여자이니까" 여자를 나 같은 여자,로 바꾸라는 말에 절대 공감!! 그런데 빅마마는 생긴 건 대단히 주체적으로 보이던데 가사는 왜 다 그 모양이래요?

kleinsusun 2005-08-25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맞아.....생긴건 대단히 주체적이며, 다이어트 시장의 대상으로 하락한 여자의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자신감까지 있는 것 같은데.....가사는 왜 그 모양일까나...

오렌지향 2005-08-25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멜로디만 듣고 가사는 귀에 안들어오던데.
근데 사랑에 푹 빠져 버리면 연약한 짐승이 되든 뭐가 되든 그럭게 수동적으로 변해버리는 것이 아닌가요?
"사랑이 전부인 나는 여자이니까"는 쫌 아니네요. 지적 잘하셨어요!

줄리 2005-08-25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예리하시네요. 거슬리긴 해도 그냥 넘어가기 쉬운데(아 저말입니다.) 그걸 이렇게 콕 찝어서 바른말 잘하시는 수선님 정말 멋져요!!

바람돌이 2005-08-25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의 글을 보면 언제나 통쾌해요. 사소한 것에서 어떻게 저런 심오하고 멋진 생각을 이끌어낼까싶은....
근데 저도 귀찮아서 뭐 까서 먹어야 되는거 안좋아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게 다 맛있잖아요? 그래서 남자가 내 옆에 앉아서 일일이 발라주는게 최고예요. 근데 왜 여자가 그러고 있으면 신경질나고 화나는데 남자가 그러고 있으면 그 남자 괜찮아보일까요? 이것도 남녀차별인가? ^^

moonnight 2005-08-26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귀찮게 공들여서 먹어야 하는 음식 싫어한답니다. ^^; <여자>의 가사가 그랬군요. 노래 좋네. 하면서도 가사는 신경써서 안 들었나봐요. 갑자기 어떤 선배생각이 나요. 넌 결혼 안 하냐 하길래 생각없어요 하니까 결혼하고 싶지 않은 여자는 세상에 없다 -_-라고 하던 선배;; 세상이 바뀌는 듯도 한데 어떤 고정관념들은 그렇질 못하네요.

kleinsusun 2005-08-26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렌지향님, 그죠? 가사가 귀에 안들어오죠?
가사보기 안했으면 저도 몰랐을꺼예요.
근데....사랑에 빠지면 더 명랑하고 상대방을 위해 뭔가 해주고 싶은 그런 사람으로 바뀌지 않나요? 제 연애경험으로는...ㅋㅋ

줄리님, "멋져요!!" 그러시니깐 칭찬 받은 어린애처럼 으쓱으쓱해용.ㅋㅋ

바람돌이님, 그죠? 옆 테이블에 앉은 여자가 자기는 안 먹고 그러고 있으면 짜증나는데, 막상 제 옆에 앉은 남자가 헌신적으로 살을 발라주면 얌얌 맛있게 먹죠.ㅋㅋ
아무래도 이번 대하시즌에는 야클님이랑 데이트를....푸하하.

moonnight님, 아.... moonnight님도 귀찮은 음식 싫어하시구나.
moonnight님의 페이퍼에서 떡볶이, 라면 같은 소박한 음식을 좋아하시는 걸 알고 있었어요.점심은 드셨어요? 저는 갈비탕 먹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