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보고 생각했었다.
정말 저런 일이 가능할까?
나흘 동안 만난 사람을 평생 못 잊고 사랑한다는게 가능할까?
소설이 아닌,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그런 사랑이 가능할까?
전인권의 불후의 명곡 <돌고 돌고 돌고>에 이런 리얼한 가사가 있다.
"운명처럼 만났다가 헤어지고 소문되고".
아...정말 마음을 두드리는 수준을 넘어 때리는 가사다.
한 친구가 결혼하기 전에 친구들에게 밥을 사며 이런 말을 했었다.
"오빠는 나를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아."
그 말을 듣고 그 친구를 얼마나 부러워 했던지...
한편으론 이런 생각을 했다.
어떻게 저렇게 자신있게 말을 하지?
한 인간이 자신을 위해 태어났다고.....
얼마 전 그 친구가 이혼을 했다는 말을 들었다.
"오빠는 나를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아"라는 말이 떠올라 씁쓸했다.
그 오빠라는 사람이 헤어지자고 했단다.
몇년 전, 한 친구의 남자친구를 <사랑의 스튜디오>에서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친구가 그 남자한테 헤어지자고 했더니
그 남자가 한 겨울에 웃통을 벗고 그 친구의 집 앞에 꿇어 앉아 기다리는 쌩쇼를 벌렸었다.
그 온갖 난리를 쳤던 남자가 그 친구랑 헤어진지 한두달 되지도 않아서
<사랑의 스튜디오> 락카페에서 광란의 춤을 추고 있었다.
이런 세상에 도대체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같은 사랑이 있는걸까?
달랑 나흘 만나고 평생을 잊지 못하는?
오직 그 한 사람을 사랑하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봤을 때는,
요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거룩하기까지 한 사랑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요즘 이런 생각이 든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사랑은 비겁하다고....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로버트랑 프란체스카는
그들의 삶을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로 그 아릿아릿한 사랑을 남겨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로버트랑 프란체스카랑 둘이 훌쩍 떠나서 같이 살았다면,
그렇게 한평생 서로를 사랑할 수 있었을까?
일상을 같이 하면서 서서히 변해가지 않았을까?
내가 이 남자 때문에 애들을 버렸단 말인가....하며 아이오와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아이오와에서는 몰랐는데 이 여자 너무 촌스럽네....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들이 그렇게 사랑할 수 있었던 건,
평생동안 그 두 사람이 함께 보낸 나흘을 끊임 없이 미화하며
보석처럼 간직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 두 사람의 사랑은 고단한 일상을 견딜 수 있는 힘이 아니었을까?
마치 지갑 속의, 서랍 속의 부적처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어찌 보면 위험한 일이다.
좋은 것만 기억하고,
애틋함에 목숨 걸고,
일상이 고단할 때 일상과 맞서지 않고 멀리 있는 사람을 떠올리며 힘을 내고...
만약 금도끼 은도끼처럼 산신령님이 나타나
단 나흘을 만나고 평생 애틋한 사랑을 할래?
매일 으르렁 거리며 싸우더라도 같이 살래?
물으신다면 난 대답하겠다.
"네... 매일 으르렁 거리겠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체험적인 일이 아닐까?
상대방이 콧구멍을 어떻게 후비는지,
화장실에 가면 평균 몇 분을 있는지,
재치기 할 때는 어떤 표정을 짓는지,
발톱을 어떤 자세로 앉아 깍는지,
운전하다가 옆에 차가 끼어 들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나흘 동안 번개 같은 사랑을 하고,
그 찌릿찌릿한 사랑을 평생 기억하고(이 기억이 미화되어 왜곡되었을 가능성도 크다)
평생의 사랑으로 간직한다는 건.... 뭔가 비겁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실체적인 사랑이라기 보다는 일상을 버티는 힘이 아니었을까?
두루마리 휴지를 말아 쥐고 변기 옆에 앉아
오르페오랑 얘기를 하는 파니핑크의 사랑이
훨씬 더 사랑이라는 실체에 가까운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