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페이는 어찌 보면 좀 지루한 도시다.

야시장이라도 가지 않으면 뭐 그리 신기할 것도 없고,
그냥 무덤덤한 일상이 펼쳐지는 도시니까....
사실....로마나 파리 같은 도시 전체가 거대한 관광지가 아닌 도시들은
우리들의 일상의 터전이다. 서울이 그런 것처럼...

스트레스 받으며 일하고, 퇴근하고 술 한잔 하고, 주말에는 늦잠자고, 데이트하고....
이렇게 되풀이 되는 일상의 터전.
생산하고 소비하고,
태어나고 죽고,
결혼하고 이혼하고,
기쁘고 슬프고 행복하고 분노하고....
이렇게 삶을 붙들어 매는 장소.

Taipei에서 가장 신기했던 건,
바로 횡단보도 신호등이었다.

위 사진을 보면 "30"이라고 써있다.
30초가 남았다는 거다.
이 숫자가 계속 바뀌다.
30,29,28,27,26......5,4,3,2,1,0.
"0"이 되면 빨간불로 바뀐다.

아....정말 "살벌한" 신호등이다.

뭐 우리나라는 더 하지만....
초록색 불로 바뀌자 마자, 금방 깜박 깜박...
도대체 할머니들은 어떻게 건너라는 건지....
왠만한 사람들은 다 뛰어야 한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마다 생각한다.
도대체 기준은 무엇인가?
물론 보행 시간이 더 길면 안 그래도 막히는 차가 더 막힐 수 있다.
하지만,그 짧은 시간에 구부정한 할머니들, 장애인들, 어린이들이
헐떡이지 않고 길을 건널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Taipei의 신호등은 말 그대로 "Digital".
정신 없이 "숫자"가 바뀐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자기가 "몇초" 기록으로 뛰었는지도 알 수 있다.^^

뭐...합리적이기는 하다.
길을 건너기 전에 정확히 몇초 남았는지를 보고
건널것인지 말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으니까...
아니면...5초안에 한번 전력질주를 해보던지...

그래도 그 신호등은 참 "살벌"하게 느껴진다.

가끔 이 "디지털" 세상에서
난 너무 "아날로그적 인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이 숨가뿐 디지털 세상에서
유유히 책장을 넘기고 있는 나는,
잡문을 쓰며 즐거워 하고 있는 나는,
무한 경쟁시대에 늦잠을 자고 있는 나는,
핸드폰에 기능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귀찮아 하는 나는,
너무 아날로그적 인간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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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5-04-10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지털세상에 전혀 적응을 못한다면 문제가 있지만.... 아날로그적인 사람=인간미 넘치는 사람 아닐까요? 난 너무 태평스럽고 당당한데? ^^ 난 여전히 컴퓨터 날라다니면서 1분당 타자수 빠른 사람 보다는 글씨 예쁘게 잘 쓰는 사람이 부러운데...^^

하이드 2005-04-10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광화문에는 숫자는 아니지만 칸이 하나씩 줄어드는 신호등이 있답니다. ^^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타협일까요?
뭐 깜박거릴때, 그거 보구 마구 뛰어가긴 좋긴해요.

로드무비 2005-04-10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100프로 아날로그 인간입니다요.^^

파란여우 2005-04-10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생은 아날로그로 살면 출세는 못해도 마음은 편합디다....^^

바람돌이 2005-04-10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년전에 중국 북경에서 이런 신호등을 봤었는데.... 중국의 무법천지 교통체계에 질려있던 터라 북경에서 이런 신호등을 보고 얼마나 반가웠었는지... 근데요 웃기는건 아무도 이 신호등을 지키지를 않더라고요. 같이 여행간 우리만 서있지 중국사람들은 빨간불일 때도 잘도 건너더군요. 근데 더 웃기는건 열심히 기다린 우리 막상 파란불이 되어서 건너려니 차들이 아무도 서지를 않네요 결국 빨간불일때랑 똑같이 열심히 눈치보면서.... 요즘은 좀 달라졌을까요?
하다보니 디지털이니 아날로그니 하고는 상관이 없는 얘기네요. 저는요 아직까지는 사람의 살내음이 더 좋은 아날로그 인간이랍니다. 아마 죽을때까지 그럴 것 같여요.

드팀전 2005-04-11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들 아날로그파군요.ㅆㅆ 왠지 디지털 하면 기계적이고 냉정한것 같구.아날로그하면 인간적인 이미지를 주어서 그런가요. 몇분처럼 진짜 아날로그적 삶을 추구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실제는 아날로그에 대한 낭만(복고주의)의 이미지를 쫓는거 아닐까요? 전 초딩때부터 문과적 인간이라 스스로 결정해서 현세대의 기술문명발전에 늘 뒤늦지만 또 문과적인 상상력으로 디지털/아날로그형인간의 구분에서 실제는 그렇지 않으며 심정적으로 아날로그에 동조하는 건 왜일까 생각해봅니다.디지털은 비인간화 아날로그는 인간화 형태로 구획지어질 경우...다음 이런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실까 궁금하군요. 혹시 유비쿼터스라고 들어들 보셨겟지요.유비쿼터스의 라틴어뜻은 "(신은)어디에나 존재한다" 라는 거라더군요.좀 쉽게 말하자면 디지털,컴퓨팅환경이 자연스런 일상속에 스며들어 사용자가 그 환경에 있으면서도 알지 못하는 상황을 만드는 거라는 건데.(매트릭스같지요.) 극단적인 그런상황까진 아니어도 말이죠.우리는 지금 생활에서도 디지털환경 속에서 허우적대면서도 본인은 아니라고 믿고있죠.알라딘,댓글,인터넷...인간적 사이트라 생각하는 이 서재도 디지털 환경속에 있습니다.출퇴근할때 교통카드쓰시나요? 핸드폰은요?
전 디지털/아날로그의 이분법적 구분과 아날로그=인간주의(물론 기술적으로 보면 그렇긴하지만)라는 신화아닌 신화에 비판적 물음을 하고 싶습니다.

icaru 2005-04-11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광지 도시가 아닌 이상...일상의 터전 같은 도시...타이페이고만요~ ^^ 서울처럼요..졸업하자마자...상하이에서 자리잡아 살고 있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 하는 말이... 그냥 서울 같다고... 그냥, 서울.. 일상의 터전과 같은 도시라 그런가...어델가더라도...그 곳에서...먹고 일하고 그렇게 살기 시작하면....다 비슷해지는 것인가...아무튼요~

색다른 글....잘 읽고 갑니다...... ^^*

kleinsusun 2005-04-12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 전 아직도 "깍뚜기" 글씨를 쓴답니다. 사람들이 어린이 글씨인지 알아요.^^
미스하이드님, 저희집 앞에도 칸이 하나씩 줄어드는 신호등이 있답니다.할머니들은 만땅일 때 부터 건너도 다 건너기 힘든...
로드무비님, 요즘은 "디지털 파마"도 있더군요. 로드무비님은 못하시겠어요.ㅋㅋ
파란여우님, 백조생활 준비 잘 하고 계신가요? 좋은 책 많이 읽으시길...
바람돌이님, 북경에도 이런 신호등이 있군요? 아....저는 이번에 첨 봤는데....
신호등은 숨 넘어가게 움직이는데 아무도 지키는 사람이 없다니....우하하하.
복순이 언니님, 상하이에서 자리 잡고 살면 정말 서울 같을 것 같아요.
일상의 터전이 되면.... 생계의 터전이 되면.... 처음엔 이리저리 두리번 거리다가도 그냥 앞만 보고 총총거리며 걷게 된다면....

kleinsusun 2005-04-12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팀전님, 네....맞아요.우리는 Digital Device들 없이 못 살만큼 휘둘려 살고 있어요.
매트릭스처럼 그 안에 있죠.
제가 말하는 아날로그적인 인간이란 말이죠.....감성적, 인간적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보다는, 디지털처럼 "clear"하지 못하다는 그런 말이예요.
또 디지털 세상의 변해가는 속도에 헉헉된다는 그런 말도 되구요.

근데...드팀전님, 전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누군가 "디지털이란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2005-04-12 15: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코마개 2005-04-12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국 신호등도 저렇죠..그러나 아무도 신호등을 보고 건너지 않는다는...처음 하루는 신호등이 저렇구나 했는데 그 이후로는 신호등이 있는지 여부도 기억이 안납니다. 천안문 광장의 그 큰 도로도 마구 건너는 담대함이 생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