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기사) '거대아' 관련 주요 언론의 필사적 도배, "누가 시키드나?" by 어린양

'거대아' 관련 주요 언론의 필사적 도배, "누가 시키드나?"

인세영 승인 2022.09.04 02:22

 

 

여성이 임신 전에 술 조금 마셨다고 거대아 출산? "지랄을 하세요"

주요 언론이 일사분란하게 동일한 내용의 기사 한꺼번에 쏟아내는 이유는 딱 한가지 "선동과 세뇌"

 

최근 들어 거대아 출산 관련 기사가 도배되어 충격을 주고 있다.

 

거대아는 출생시 몸무게사 4kg 이상 나가는 신생아를 의미한다. 정상아의 평균 체중은 3.4kg이다.

 

올해 들어 연예인을 비롯하여 일반인 사이에서 거대아를 출생한 사례가 종종 기사화 된 적이 있으나, 언론사 30여군데에서 일제히 거대아에 대한 기사가 쏟아져 나온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우선 7월 28일 하룻동안 "임신 전 음주, ‘거대아 출산율’ 크게 증가” 라는 기사가 50건이 올라왔다.

 

2차로 9월 2일 하루동안, "임신 전에 술을 자주 마신 여성은 거대아를 출산할 위험이 높다"는 내용의 기사가 네이버 뉴스 검색에만 30건 이상 올라왔다.

 

주기적으로 '거대아'에 대한 기사를 다량 송출하고 있다. 다분히 인위적이로 전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처음에는 (7월 28일) 질본의 연구결과 발표 보도자료를 다양한 언론사에서 베껴쓰더니, 9월 2일에는 거대아 출산과 여성 음주를 연관지은 기사를 실은 언론사는 모두 주류 언론사들로서 해당 언론사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KBS, MBC, YTN, JTBC, 연합뉴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뉴시스, 경향신문, 세계일보, 뉴스1, 아시아경제, 헬쓰조선, 이데일리, 쿠키뉴스, 한국경제TV, 한국일보, SBS Biz, MBN, 메디컬투데이, 베이비타임즈, YTN사이언스, 뉴스웍스, 의사신문, 한겨레, 디지틀조선 등이다. 국내 모든 주류 언론과 의학 신문이 모두 같은 보도자료를 기사화 했다.

 


 

 

위 언론사의 거대아 관련 기사의 제목과 내용은 모두 동일하다. 누군가가 보도자료를 뿌렸고 언론사는 그대로 그 내용을 인용하거나 복사해서 기사화 했다.

 

내용은 임"신 전 술을 마신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2.3배 이상 거대아 출산 위험이 높다"는 것으로, 거대아 출산의 원인을 필사적으로 '여성의 음주'로 돌리는 모습이 자못 필사적이다.

 

 

선수들이 보면 금새 알아채는 언론플레이, '밑밥 깔기'

 

전문가들은 이러한 내용의 기사가 누군가 보도자료를 뿌린 듯 갑자기 쏟아져 나온것은 매우 이례적으로 보고 있다. 정상적인 뉴스의 유통이 아니란 얘기다.

 

임신 전에 술을 마시는 것과 거대아 출산과 억지로 끼어 맞추는 듯한 기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술을 마시지 않은 여성을 찾기도 힘들 뿐더러, 지금까지는 음주와 거대아 출산의 관계에 대해 전혀 말이 없다가, 갑자기 최근 들어 이런 기사가 나온다는 것은 뭔가 작위적이라는 평가가 나오기 충분하다.

 

'거대아'라는 특수한 주제를 다루는 기사가 이처럼 국내 모든 주류 언론에 뿌려질 수 있다는 것은, 이 기사를 뿌린 세력은 대한민국의 주요 언론을 모조리 움직일 정도의 상당한 영향력을 가졌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주요 언론에 특정 주제의 기사를 일순간에 도배를 함으로써 얻는 효과가 있다. 최근 빈발하는 거대아 출산의 원인을 다른데서 찾지 못하도록 하고, 일반인들은 그저 언론이 말하는 대로 거대아의 출산 원인을 임신전 산모의 음주습관에서 찾을 수 밖에 없도록 하려는 선동이자 세뇌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사를 도배해서 이득을 얻는 세력은 누구일까?



거대아 출산, 혹시 mRNA 백신 부작용 아닌가요?


일각에서는 거대아가 코로나19 백신을 접종받은 이후 급증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mRNA백신 속의 산화그래핀 또는 미세한 합성 물질이 사람의 혈관에 들어가서 기존 DNA에 변형을 가져올 수 있다는 가능성은 이미 해외 전문가들에 의해 빈번하게 언급된 바 있다.


국내 현직 의료인들 역시 백신 속 미확인 괴물질이 들어있다는 주장과 함께 현미경 검경 영상과 사진을 공개한 바 있다.


실제로 백신 접종이 거대아 출산과 연관이 있는지 연구 결과는 나와있지 않지만, 이미 해외에서는 의료진 사이에서 mRNA백신과 거대아 출산에 대한 연관성에 대해 사례를 들며 경고한 바 있다.


거대아에 관련된 기사가 올해 들어 갑자기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점, 뭔가에 쫓기듯 주류 언론들이 일제히 거대아와 산모의 음주를 연관지으려 한다는 점은 국민들의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mRNA백신 부작용 또는 코로나(롱코비드) 부작용에서 찾지 못하도록 언론 조작을 통해 미리 국민들의 눈을 가리려 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의료계에서는 "거대아 출산 원인을 섣부르게 확정할 것이 아니라, 우선 현재 거대아 출산 현황이 어떤지, 몇명이나 출생했는지, 생존률이 얼마인지, 전세계적인 추세는 어떠한지, 혹시 유전자 변형이나 그밖의 특이점은 없는지, 그리고 출산 이후 아이와 산모의 건강 상태와 자라면서 특이한 사항은 없는지 꾸준히 모니터링을 해야 할 것" 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재 이영미 산부인과 전문의를 비롯한 수천명의 국민이 집단소송을 내서 mRNA백신에 대한 사용금지 가처분 소송이 진행되고 있으며, 조만간 법정에서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현미경 검경이 진행될 예정이다. 국내 현직 의사들로 구성된 코로나 백신 진실 규명을 원하는 의사회를 비롯한 수많은 전문가들은, 임상시험을 충분히 거치지 않았던 코로나 백신 접종을 처음부터 반대해 온 바 있다.


소위 말하는 좌파 언론사, 우파 언론사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주류 언론에서 거대아와 관련된 기사를 일시에 쏟아냈다는 점은 전문가가 볼 때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한다.


국민을 현혹하고 선동하는 언론 카르텔의 뒷배가 누구인지, 그 마각이 조만간 대중 앞에 폭로되기를 원하는 깨어있는 국민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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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22-09-08 16: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하라님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세요^^

이하라 2022-09-08 16:2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고양이라디오님께서도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세요.^^

커피소년 2022-09-08 17: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백신이 모든 문제죠.

이하라 2022-09-08 21:13   좋아요 2 | URL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논리야님 즐거운 추석 연휴 되세요.^^

커피소년 2022-09-09 19: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하라님도 즐거운 추석 연휴 되세요^^

꼬마요정 2022-09-09 21: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하라님~ 추석 연휴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세요^^

이하라 2022-09-09 23:09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꼬마요정님께서도 즐겁고 행복한 추석연휴 되세요.^^

얄라알라 2022-09-09 22: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하라님^^ 연휴 행복한 시간 보내시어요. 저의 서재에도 따뜻한 인사 남겨주시어 감사드립니다

이하라 2022-09-09 23:1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얄라님께서도 행복하고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세요.^^

2022-09-12 1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하라 2022-09-12 13:04   좋아요 0 | URL
백신에 대해서는 전 세계적으로 부정적인 정보들이 범람하고 있는 추세라
더더욱 백신에 대한 신뢰가 생길 수 없는 상황 같아요.
유투브에서도 정식 루트인 해외기사들만으로 영상을 만들어도 노딱이 붙으며
제재를 받게 된다고 하더군요. 이런 시기에 믿을 수 있는 건 자기자신의 판단뿐 인 것 같습니다.
이웃님들과 인연이 닿는 모든 분들께 절대 백신은 맞아선 안된다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하나님께서도 추석연휴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남은 연휴 행복하세요.^^
 




https://rumble.com/embed/vs7ue2/?pub=4


코로나백신 접종 초기에 백신접종을 하고 

그후 임신을 하고 출산한 아기들이 태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기들이 이전까지의 아기들과는 다른 발육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고 합니다.

 

태어난지 하루만에 고개를 가누고 몇 주사이에 돌아눕고 두달만에 걷기 시작한다는군요. 

위의 영상 초반은 의사 개인의 현 상태에 대한 해석이 담겨있지만 

그 이후 부터는 해당 아기들의 발육을 보여주는 영상입니다.

 

다른 코멘트를 하지 않겠습니다. 

그저 현시대를 보여주는 영상이기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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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소년 2022-09-04 1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재앙

이하라 2022-09-04 12:11   좋아요 1 | URL
정말 문제인 것 같습니다
 
네빌링 - 잠재의식을 변화시키는 테크닉, 네빌고다드 강의 해설서
리그파 지음 / 서른세개의계단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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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빌 고다드가 내게는 생소한 사람이었다. 그저 마음의 힘을 논하는 저작 중 흡인력 있고 가독성이 뛰어난 책을 찾다가 네빌 고다드를 알게 됐다. 그의 강의를 해설했다는 본서를 큰 기대 안하고 선택했는데 지금은 여러모로 잘한 선택이었다는 감상이 든다.

 

네빌 고다드는 1920년대에 미국으로 이주해 압둘라라는 선지식을 만나 마음의 힘을 전하는 이가 된 사람이다. 나는 마음의 힘이라고 말하지만 일반적으로 씨크릿 같은 가르침의 원조랄 수 있는 이런 가르침들은 알려지던 당시부터 형이상학이라고 불리거나 신사상으로 칭해지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쓰기 5년 전 신사상을 알게 되고 네빌 고다드의 저작들을 알리고자 서른세개의 계단 출판사를 만들기도 한 인물이다. 다수의 신사상 관련 저작들을 번역하기도 했다.

 

일반적인 신사상들의 가르침처럼 네빌 고다드의 가르침은 명료하게 명쾌하다. 상상의 법칙 곧 믿음의 법칙은 진짜라고 받아들이면 진짜 그렇게 된다로 명료히 정의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몇 가지 원칙들을 제시하지만 잠재의식의 힘을 논하는 대목도 최면 저작들이나 여타 마음의 힘을 논하는 저작들과 일관되고 있다. 역노력의 법칙은 최면이나 심리서들에서 말하는 부메랑 효과와 같다. 잠재의식에 요구하는 바가 잠재의식이 상기하는 바와 다를 때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책에서는 역설적인 결과를 초래하지 않기 위해 결핍을 인식하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발전의 효시는 결핍을 인식하고 나서야 시작된다. 저자도 네빌 고다드의 강의를 전하며 자기관찰을 하라고 했는데 자기관찰을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최초로 주목하게 되는 건 만족보다는 불만족인 경우가 많다. 결국에는 결핍을 인식하면서야 무엇을 바꾸고 싶은지를 깨닫게 된다. 다만 잠재의식에 씨앗을 심을 때는 결핍보다는 완성된 미래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게 당연할 것이다. 성적이 오르고 싶다는 건 자기 성적에서 불만족을 느끼고 있다는 것인데 불만족 즉 결핍에 주목하면 부정적 영향을 더 받는 것도 사실이다. 성적이 오른 상황을 상상하고 실감할 때 성과가 있다는 건 신사상에서 주지시키는 바다. 그리고 상상의 힘에 의지하는 만큼 실제의 행위도 뒤따라야 한다는 건 상식적인 이야기 같다.

 

존 키호 씨의 [마인드 파워]나 샥티 거웨인 씨의 [그렇다고 생각하면 진짜 그렇게 된다], 바딤 젤란드 씨의 [리얼리티 트랜서핑] 등을 읽으면서 이들 가르침의 원류는 무얼까 의문이었는데 네빌 고다드 씨와 같은 초기 신사상가들의 가르침을 이제야 접하게 되었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드 씨가 무의식의 존재를 처음 이야기하면서 그로부터 이전까지 전해오던 마음의 힘에 관한 가르침들이 좀 더 체계화되어 전해진 게 아닌가 싶다. 이와 같은 가르침은 지적인 접근이 아니라 일상에서 함께 할 때 그 진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로서도 독서의 감상은 지적으로 얻는 것보다 일상에서 가져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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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9-08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하라님, 오늘부터 추석연휴 시작입니다.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이하라 2022-09-08 21:1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즐거운 한가위 연휴 되세요.
 
세금의 흑역사 - 두 경제학자의 눈으로 본 농담 같은 세금 이야기
마이클 킨.조엘 슬렘로드 지음, 홍석윤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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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과 관련한 책은 때론 시큰둥한 정도의 흥미만을 불러오지만 어느 순간은 깊은 관심이 일기도 한다. 어느 연예인이 탈세를 했다던가 성실납세자로 상을 받았다던가 하는 기사도 예전에는 흔했었다. 통장 잔고가 얼마라 납부할 돈이 없다는 돌아가신 어느 전 대통령의 기사나 이재용 부회장의 세금 납부액이 얼마라던가 하는 기사도 돈 문제에 별 관심이 없는 시민들까지 세금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는 기사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세금과 관련한 뉴스를 성인 누구나가 몇 가지 그 이상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세금 문제는 큰 화두는 아니라고 도외시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세금은 그 제도가 등장한 이후 납세자인 어느 시대의 백성이나 현재의 시민 누구나 체감 가능한 적지 않은 문제였을 것이다. 세금을 출혈이라고 생각할 일부 시민들과 세금을 국력이라고 생각할 정부 사이의 괴리가 깊은 곡절들을 낳았을 것이고 말이다. AI와 로봇의 대대적인 도입이 이루어질 시기가 머지않아, 앞으로는 세금이 생존의 가장 직접적인 수단이 될지도 모른다. 그 시대를 앞두고 부자증세와 부자감세의 갈등이 시작된다면 소수의 풍요냐 다수의 생존이냐가 시대적 화두가 될 것이다. 살아가야 할 생존자들에게 어떠한 미래가 펼쳐질 것이냐도 어떻게 과세되고 재정이 어떻게 쓰일 것이냐에 달린 문제가 될 테니까 말이다. 이런 시대이기에 더더욱 세금 문제에 관심이 갔고 본서에 끌리게 되었다.

 

저자들은 IMF 공공재정국 부국장인 마이클 킨 씨, 미시간대 경제학과와 로스 경영대학원의 교수인 조엘 슬렘로드 씨로 재정과 경제문제에 있어 상당히 미더울 인물들이 서술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본서의 내용을 보며 과세만이 아니라 재분배에 관해서도 깊이 다룰 거라 짐작하고 읽었는데 그 부분에 있어서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본서는 원제가 [Rebellion, Rascals, and Revenue : Tax Follies and Wisdom through the Ages]로 제목 자체가 [세금의 흑역사]라는 한국어 제목 보다 서술적이라 의미가 역동적이면서도 포괄적으로 다가온다. (물론 한국어 제목이 직관적이기는 하다)

 

세금으로 인한 반란과 악당도 물론 등장하는 장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본서에서 주목되던 것은 세금이 유형의 변화와 무형의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는 점이었다. 러시아와 인도의 콧수염세는 아마도 당시 귀족들의 외모에 변화를 가져왔을 것이다. 하지만 과세에 대해 불만은 있지만 자신의 재정 상태에 대한 평가나 자존감에 영향을 받고 싶지 않았을 귀족들은 세금을 납부하고 콧수염을 유지했을 것이다. 더욱이 러시아 정부는 이들의 자존심을 추켜세우면서도 세금납부를 독려하려 세금납부를 증거하는 일종의 감사 뱃지를 증정하기도 했다고 한다. 넛지가 어느 날 돌연히 나타난 학설이 아니라 이미 역사적으로 실천해오던 국가들도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머리카락 길이와 가발 또 모자에까지 세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모자를 모자라 부르지 않으며 탈세하려 했지만, 이 모자라고 불리지 않는 신형 머리덮개에도 곧 세금이 부과됐다.

 

게다가 벽난로의 개수에 따라 과세하는 유럽의 방식은 일반 가정에서 벽난로를 하나둘씩 없애도록 만들었다. 또 창문의 개수에 따라 과세하기까지 하자 창문의 숫자를 줄이거나 모서리에 창문을 두어 두 공간에 한 번에 빛이 들어오게 하는 건축양식이 생기기도 했다. 이 법에 대해서 찰스 디킨스는 빛과 공기에 대한 세금이라며 비아냥거렸다고 한다. 또 벽돌의 크기에 따라 과세 규모를 달리하자 기본 벽돌 크기의 절반에 해당하는 벽돌들이 양산되어 기존의 벽돌과 절반짜리 벽돌을 섞어서 건설한 건축물들이 현재까지도 유럽에 많이 남아있다고 한다. 정부의 과세에 대한 욕심이랄까 수단이랄까가 시대를 두고 다양하게 시도되어 왔는데 영국에서는 선박의 좌우 폭에 대한 차등 과세를 시작하자 영국의 선박들은 세금납부를 피하려 좌우 폭은 줄이고 배의 깊이를 확장한 구조의 배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세금 때문에 선회하기도 어려운, 항해에 불리한 배들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세금이라는 것이 인간의 외모와 패션을 바꾸고 건축양식을 바꾸고 선박의 구조까지 변화시켰다. 이런 세금의 힘은 그 저항의 역사를 불러오기도 했는데 주류에 과도하게 과세하자 밀수업자들이 생겨났다고 한다. 이 밀수업자들이 자신들 시찰하는 세무원들을 잡아 목매달고 사체를 훼손하거나 산채로 생매장한 기록도 있다. 유럽에서는 차(tea)에 대한 과세가 높아지자 (저자들은 갱으로 묘사했지만) 명백히 정부와 결탁한 해적들이 차를 수입하는 배들을 시찰하려는 정부 소속 세관 선박들을 공격하기가 일쑤였다. 그러한 해적들의 숫자가 무려 5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유럽의 재정 관리자들이 차에 대한 관세를 절반으로 줄이자 대거 정상 납부를 하기 시작해 세금 납부액이 금세 과세를 줄인 액수를 충당하고도 남았다고 한다.

 

인도에서는 하층민 여성이 가슴을 가리면 유방세라고 해서 세금을 거뒀다고 하는데 한 하층민 여성은 유방세를 거두려고 온 세무 공무원에게 저항하며 자신의 가슴을 잘라 그에게 던지고 그날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화장되는 불길 속에 뛰어들어 함께 세상을 떠났다. 영국의 왕에게 과도한 세금 때문에 시민운동을 일으킨 시민들이 왕의 연설에 감흥을 느껴 반란을 거두고 얼마지 않아 왕의 명령으로 모두 처형된 사건도 있었다. 세금에 대한 저항의 역사나 탈세하려는 다양한 수단들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무형의 변화라고 한다면 현대의 다국적 기업들이 보이는 탈세 양상이다. 여러 자회사들과 페이퍼 컴퍼니를 활용하여 복잡한 구조의 계약 관계를 조성해 과세가 어렵도록 만드는 것이다.

 

과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세금을 적게 납부하려는 움직임은 있어 왔고 그로 인해 일부 지역들에서는 경제에 악영향을 주는 상황까지도 생겨났다. 아프리카에서 호화 요트에 중과세를 하자 부자들의 요트 매매가 줄었고 그로 인해 요트 관련 직종 종사자들이 대거 실업자가 되고 요트 산업이 망한 사례도 있다. 과세에 민감하고 세금 납부가 많은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는 건 현대의 스포츠(축구) 스타들의 특징 중 하나라고 한다. 일부는 세금이 싼 나라에 거주하고 일부는 타국에 귀화하기도 한다. 축구 스타만이 아니라 프랑스 스타 중 한 명(제라르 드 빠르디유)도 세금 문제 때문에 러시아로 귀화한 건 대부분의 대중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세금을 해당 지역과 지역민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사용하는 대목도 짧게 스쳐 지나가긴 하지만 본서에서는 세금의 분배 문제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재정의 충당에 주로 할애된 장들이 많고 형평성 사안은 다루지만, 공평에서 평등으로 나아가는 관점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해 탄소세나 탄소가격을 논하기는 하지만 현재의 ESG나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보다 넓고 깊게 보고 진행하는 이해의 문제이기에, 결국 실리를 떠난 문제일 수 없다. 그렇기에 대중의 지지와 관심이 동반된 기후변화 문제도 결국 실리적 측면에서 호도되고 악용되고 있음에도 그에 대해서는 전하지 않고 있다. [지구온난화가 아니라 지역온난화이며 기후변화는 지구의 주기 변화에 따른 것이라 주장하는 지구과학자들, 환경 관련 과학자들이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미국에만 3000명 하고도 몇 백명이 넘는 지구과학자들이 종말론적 환경주의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기후변화를 이용해 기존의 산업체계 전반을 뒤엎고 새로운 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의도가 아니라면 해당분야의 절반에 가까운 과학자들이 반발하는 과학적 가설만으로 경제와 경영 정책을 시행할 수는 없는 것이다.] 세계경제포럼의 계획으로는 향후 탄소발자국 추적이라는 시스템을 적용해 전 세계 시민들의 일상을 추적할 계획이라고 한다. 기후변화가 핫이슈가 되어 이젠 큰 저항 없이 대중의 일상 전반을 감시할 체계를 마련해 놓은 것이다.

 

아마도 향후로는 세계 각국에서 디지털화폐를 일상화하고 이것이 신용거래 전체에 활용되며 디지털화폐의 통합까지 올 수 있을 것이다. 탈세는 꿈도 못 꾸고 체납도 불가능한 세상이 온다. 세입이 어찌 될지 고려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세금을 어떻게 다시 재분배해야 할지가 앞으로의 과제가 아닌가 싶다. 경제 구조상에서의 최상위층과 금융 거부들에게는 그레이트 리셋이 새로운 부의 개척시대를 예고하는 것이겠으나 다수의 대중에게는 자연스럽게 털리고 마는 시대가 될 것이다. 생존이 화두인 것은 그래서이다.

 

본서를 처음 받아들고는 생각보다 더 분량이 상당하다는 걸 알았다. 무려 568쪽에 이르는데도 주석과 참고문헌 등은 QR코드로 참고하도록 되어 있어서였다. 오롯이 서술만으로 550~540쪽을 채우고 있는 책이다. 본서는 상당히 재미진 책이기는 하지만 해당 내용들이 시대 흐름을 따라 서술 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역사 읽는 재미는 상당하지 않다. 주제 의식을 가지고 독서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책의 목차를 보며 나름의 독해주제를 가지시는 것도 좋을 것이다. 본인의 경우에는 형평성과 분배 그리고 특이한 역사적 내용에 치중해 읽었지만, 다시 읽는다면 세금과 관련한 정부와 대중의 알력 관계, 세금이 바꾼 문화, 형평성을 추구한 정부의 방법, 기업과 민간이 세금을 탈루하거나 하기 위해 한 선택들에 집중해 읽어보고 싶다.

 

알고 보면 우리의 피부와 바로 닿아있는 세금. 그 세금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들을 각 주제에 따라 전해 듣는 나름의 맛이 있는 저작이다. 관심이 있으신 분들께는 따로 권해드릴 필요도 없겠지만 그래도 한마디 얹자면 독서 후에 후회할 책은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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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최면세뇌술 - 마음을 바꾸는 가장 쉬운 방법
박한진.손인균 지음 / 성숙한삶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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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며 1980년대~1990년대에 출간된 최면 서적들에서의 내용이 줴다 구버전이 되어버린 걸 알았다. 이젠 최면에 대한 학자들과 치료가들의 시각이 "최면은 일상 속 의식에 자연스레 개입하는 것이다" 란 식으로 바뀐 것을 알 수 있었다.


맨 위 부터 읽어 보면 "최면을 통한 의식의 통제로 기억이 없이 행동하게 하는 것과 자신은 하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행동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 이야기 하고 있다. 아마도 이건 비판적 사고라고 말한, 검열을 거치는 체계를 무력화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야 한국에서 쓰이는 최면 암시라는 말이 일본을 통해서 최면이 들어오며 통용되던 용어이고 서양에서는 최면 제안이라고 하는 줄 알게 되었다. 암시는 어두운 지시를 말하는 것이니 "피최면자가 자신도 모르게 최면자의 의도 하에 놓일 수 있다" 는 의미 전달일 것이다. 또 제안이란 표현은 "인간은 의지가 있기에 자기의지에 반하는 지시나 명령에 맹목적으로 따르는 경우는 없다. 그저 인간의 의지를 향해 하나의 제안을 할 뿐이다" 라는 관점이 담긴 용어인듯하다.


그러나 본서에서 비판적 사고를 우회하는 최면 제안을 통해서, 받아들일만한 사고를 구축하면(선택된 사고를 확립하면), 의지(의도)를 조작해 살인도 할 수 있다고 도입부분의 부록란에서 이미 저자가 언급했었다. 자신이나 타인의 취향과 도덕성을 최면 제안으로 왜곡(우회)하여 의지(의도)를 조작할 수 있다고 저자 역시 인정한 것이지 않은가? 그런데 "그것은 왜곡(비판적 사고를 우회)하여 의도를 조작했기에 그런 것이지, 결국은 최면 제안은 하나의 제안일뿐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는 것이다" 라는 식의 사실호도는 어떤 의도가 있어서일까? 이건 최면의 위험성을 사람들에게 간과하도록 하기 위한 하나의 밈MEEM이 아닐까? "최면은 위험하지 않고 인간의 의지는 강력하다. 최면도 그저 하나의 제안일뿐, 결국 너희 스스로의 의지와 판단으로 저항할 수 있으니 최면이 악용되는 것에 우려할 필요는 없다" 는 대중적 기만을 펼치기 위한 것일듯 싶다.


이를테면 사람들이 집단자살을 한 과거 이단종파들이 각국 마다 적지 않았다. 또 한번 1000년의 끝을 앞두고 무언가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인간심리의 연약함이 사이비교주에 대한 믿음을 불러일으키고 그 사이비교주에 대한 무한신뢰가 결국 교주의 말과 행동에 따라 대량학살과도 다를 바 없는 집단자살을 불러오기까지 한 것이다. 최면은 그저 제안일 뿐이라기엔 과거 팔극권 서적에서 보았던 이서문 권사의 일화가 떠오른다. 제자 한명과 타지역으로 떠나신 권사를 어느 부호가 알아보고서 절대극강 권사로 알려진 이서문 권사에 대한 호의를 보이며 자신의 집으로 초대를 했다고 한다. 그의 집에서 환대를 받은 이서문 권사께서 그에게 호의에 대한 답례로 팔극권을 가르쳐 주셨다고 한다. 헌데 "이렇게 출수하라" 며 그의 몸에 권을 타격하는 자세를 취하자 그 부호가 그 자리에서 죽었다고 한다. 호의를 보이고 대접한 부호를 타격해 죽였을리도 없고 만일 실제 이서문 권사께서 타격하여 죽은 것이라면 아마도 생사장을 쓰고 대결한 결투가 아니었기에 분명 이서문 권사께서 법적 판결을 받고 수감된 고사가 기록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런 기록이 없다는 것은 사망한 이가 타격을 받아 죽은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 그 부호는 도대체 왜 죽은 것일까? 그저 추측일지라도 해보자면 그 시대 이서문 권사가 절대강자임은 전중국에 다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런 이름난 영웅들을 우상시 하는 중국문화에서 그 부호는 이서문 권사에 대한 존경과 동경이 하나의 최면 작용을 하여 이서문 권사가 자신을 타격하는 동작을 취하기만 했는데도 놀라서 죽은게 아닌가 싶다. 


다른 예로는 과거 사형수에게 사형집행 방식이 손목의 동맥을 잘라 출혈과다로 죽게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며 의자에 묶고 눈을 가린 채 손목에 작은 생채기 정도를 내고는 손목 위에 링거를 설치해서 거기서 조금씩 손목으로 물이 흐르게 했다고 한다. 사형수는 몇십분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고 한다. 링거에서 떨어져 흐르는 물을 자신의 피라고 생각하고는 출혈이 멈추지 않는다는 상상만으로 죽고만 것이다. 이 두 경우는 모두 실화이고 인간심리가 그저 믿기만 하면 죽음 마저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번에는 실화는 아니지만 누구라도 수긍할 법한 그럴싸한 예를 하나 만들어 보자. 밤 늦게 시골집에 홀로 있는 심장질환을 앓는 노인이 있다고 하자. 이 노인이 하얀 잠옷 원피스를 입은 동네 광녀 하나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치자. 밤이라 누군지 못알아 보고 놀라 겁을 먹고 있는데 이 정신 이상한 여자가 입가엔 빨간 립스틱이 눈가엔 눈화장이 번진 채 다가온다면 노인은 더 놀라지 않겠나? 그 때 그 여자가 "죽어버려!" 라고 소리쳤고 이 노인이 심장 마비로 죽었다면 이 심장마비의 원인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저 심장이 약해서? 물론 그렇기도 하겠지만 심장이 약한 것도 하나의 조건일테고 그 노인이 그 정신이상한 여인을 귀신으로 보았다는 것과 그 귀신이 자신에게 죽어버리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는 것, 그리고 귀신의 말에는 힘이 있을 것이라는 밈MEME까지 모든 오해가 심장질환에 더해져 일어난 현상일 것이다. 


이러한 예들은 최면 제안이 비판적 사고의 검열 과정을 피하기 위한 딱히 치밀한 체계나 구성 없이도 개인이나 집단에게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신념(MEME)에 따라 별다른 저항없이 강력히 작용하여 신속한 결론에 이르게 한다는 증거일 수 있다. 팔극권 이서문 권사의 일화에서는 이서문 권사에 대한 존경과 동경이 최면 제안(타격하는 시늉)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였던 것이고, 출혈과다 사형집행 설정으로 사형수가 사망한 경우는 눈을 가리고 손목의 작은 생채기를 내고 물을 손목으로 떨어뜨리는 설정을 통해 자신의 손목에서 피가 빠져나가고 있다는 착각과 두려움을 불러일으켜 사망에 이르렀다. 단지 동맥을 끊어 출혈과다로 사망하도록 사형집행방식이 결정되었다는 최면 제안이 인지판단오류를 가져오고 위에서 언급한 설정이 극도의 정서 동요를 불러왔다는 것만으로 사망한 것이란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심장마비 사례는 비판적 사고의 우회를 거칠 수 없을 직설적이기만 한 "죽어버려!" 라는 말이 최면 제안 효과를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그 광녀의 차림을 보고 심장병이 있던 노인이 귀신으로 착각을 했다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심장병이 일차조건이라면 귀신으로 오해해 공포를 느낀 것은 충분조건이 되었다 해야 할 것이다.


기존의 신념이나 의도적 비의도적 환경 왜곡(설정, 착각)만으로 별다른 최면 제안의 구조화없이도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도입부의 주제로 돌아가 보자. 저자는 '기억없이' 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우리가 흔히 일상에서 "지각없는 사람" 등의 표현으로 쓰는 "지각" 을 적용해 보자면 "최면으로 과연 지각없이 자신의 의사와는 달리, 의도와는 다른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게 가능한 것일까?"


나로서는 "반드시 그렇게 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고 생각한다. 정규 최면 교육과정을 거친 사람들에게 최면학회에선 아마도 "최면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런 생각은 착오이며 미신일뿐이다. 최면은 인간이 인간의 의지와는 다른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주술 같은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의 의사를 통해서야 실현되는 것이다" 라고 가르칠듯 싶다. 


이 시대는 "인간의 의지는 강력하다. 인간의 의지로는 못할 것이 없다. 정신력만 강하다면 자신의 의지로 극복 못할 것이 없다" 는 인간의 자기만족적 관점을 명분삼아 자기확신과 함께 "삶을 살아가면서 하는 자신의 모든 태도와 판단과 행위에 있어서 자신만이 스스로의 의식과 의사와 행동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모든 것은 자신만의 책임이다" 라는 오류에 가까울 논리를 대중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그렇게 세상을 살아가며 모든 대상과 자기자신에 대해 분석과 판단과 행위를 함에 있어... 다시 말해 개인 스스로의 의식과 의사와 행동에서 자기통제력만이 절대적으로 강력히 작용하는 것일까? 


이 시대에는 인간의 자기만족과 매체들의 대중적 심리조작 유도가 더해져 그런 관점과 논리를 대중화 하고 있다. "모든 것은 그저 제안이며 판단은 각각의 개인이 하는 것이다. 그러니 모든 책임은 해당 개인에게 있다" 이런 논리와 관점은 대중을 통제하면서도 책임은 회피하기 위해 만든 또 다른 최면 제안이지 않은가? 그러면서도 오히려 심리학이론을 마케팅과 대중심리통제에 적용해 대중을 기만하고 이용해 쳐먹는 얍삽한 시대이다.


이 시대는 자기 확신은 강화하여 자기만족감은 충족시키지만 오히려 서로에게 서로가 행할 수 있는 의사결정 유도 또 특정집단이 개인이나 대중에게 의도를 지닌채 의사결정에 개입할 수 있음을... 바로 그 원리의 대중심리통제를 이용해 간과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개인과 집단의 분석과 판단과 행동에 타자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이 하나의 학문으로까지 완성되어 있는데도 대중들은 자신과 집단이 통제 받을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경각심을 전혀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위의 마지막 포토의 내용에선 이미 저자가 처음 최면에 대해 정의한 "최면은 자기 의사에 반하는 행동을 지각없이 맹목적으로 따르도록 유도하는 것이 아니며 그렇게 할 수도 없다"는 내용을 저자 스스로 반박하고 있지 않나? "최면 제안을 따르면 현실세계에 대한 반응성이나 현실성이 떨어지고 최면가가 체험하도록 한 가상의 세계에 대한 반응성과 현실성이 높아진다" 고 말이다. 한마디로 "실제 사실 보다 오히려 최면으로 유도하는 가상의 것들을 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는 말이다.


실제 사례 하나를 들자면 타인(여기서는 절친)에 대한 신뢰가 이차적인 인지판단오류를 띠게 되는 경우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여자문제에 있어 그리고 항상 판단에 있어 신뢰감을 주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오래 전 사진 두장을 보여주며 이런 여자랑 사귀다가 이런 여자랑 결혼하고 싶다고 했던 적이 있다. 아직 어린시절이라 결혼을 생각할 나이가 아니었고 그 이후에도 그 친구는 늘 다른 여성과만 사귀었었지 결혼하겠다던 여성과 사귄적이 없었기에 지나가는 말이었나 보다 했었다. 그러다 두번째 사진 속 여자와 교제하게 되었다. 친구는 이 두번째 사진 속 여성에 대해 순진하고 자기관리 잘하고 단정하다고 칭찬만 했었다. 이런 말들이 그 친구에 대한 신뢰도로 인해 뇌리 깊숙히 새겨져서는 이 여성과 교제하고 얼마 안되어 바지 속으로 손이 들어오는데도 불구하고 "아! 얘는 너무 순진해서 남자 몸이 궁금해서 이러는 거야" 라는 말도 안되는 해석을 하고 있었다. 이런 것도 일종의 확증편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친구에 대한 믿음과 친구가 여성을 보는 관점에 대한 신뢰가 어우러져 친구가 그녀에 대해 내린 단정이 최면 제안이 되어 나 자신의 지각을 상실한 채 이성적 판단을 하지 못하는 상황을 불러온 것이다. 세상에(적어도 대한민국 내에서라도) 만난지 며칠만에 남자 바지 속으로 손을 넣는 순진한 여자는 없을테니 말이다. 


이것은 사람을 긍정적으로 단정지은 확증편향이었지만 이와는 반대로 부정적 확증편향이 있을 수 있다. 외모와 말투만 보고 어린소년과 손을 잡고 가는 아저씨를 보고 아동성애가 있는 게이인가로 오해 할 수도 있다. 그 이후 뭘해도 나쁘게 해석했는데 알고 보면 정신지체아동을 돌봐 주고 있었던 것을 오해한 상황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처음 손을 잡고 가는 것을 본 직후 누군가가 오해의 소지가 될 언급을 거듭 한다면 이런 경우 좀처럼 그 오해는 풀릴 수 없을 것이다. 풀리기 보다 오해가 더더욱 커져가고 골이 깊어져 갈 수 있다. 여기까지는 개인에게 최면이 악용될 수 있는 경우였고, 이제 사회불안 가중 차원에서 보자.


최면을 통해 "'너는 선택 받은 인간이다. 하나님께서는 너를 높히 쓰려고 네게 고난과 시련을 주시며 이 모든 것은 네가 겪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끝내 예언과 이적을 성취하게 하는 것이다' 라는 최면 제안을 지속적으로 말과 그러한 정서적 동요를 불러오는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거듭한다" 면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예언의 완성이라 믿으며 비판적 사고(검열 작용)와 지각을 상실한 채 행하게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이와 유사한 각도의 최면 제안이 종교적 신념이나 투철한 사상적 신념과 더해지면 몇백명이 집단자살을 하기도 하고 불특정 다수에 대한 테러와 학살이 가능할 수도 있는 것이다. 히틀러를 통해 세뇌된 인간들이 선동되어 홀로코스트를 자행하면서도 일말의 동요도 하지 않던 것도 군중심리와 최면 암시가 더해질 때의 폐해를 보여주는 것이다. 심규선씨의 《너의 존재 위에》 란 노래 마따나 누구든 "나의 존재 위에 나의 의지를 넘어서는 이를 두어선 안될 일이다" 그런 존재에게 언제든 통제권을 넘겨주고 압도 당하는데 자유의지를 사용해서는 안되는 일이라는 말이다.


최면은 고도로 집중한 상태이며 의식과 의지가 명료한 상태라 저자는 말했다. 이 『요가수트라』의 "요가는 의식을 통제하는 것이다" 라는 구절을 떠올리게 하는 문장도 간과한 것이 있다. 요가에서도 "요가수행 과정에서 '아나하타차크라' 였던가(?)가 각성되면 '상상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며 각별한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는 것이다. 인간의 믿음은 세상을 바꾸기도 파괴하기도 하지만 자기자신에게 있어서는 그 보다 더 신속하고 총체적인 파괴력을 행사할 수 있다. 게다가 "비판적 사고를 우회(왜곡) 해서 없던 신념과 신앙 마저 심어줄 수 있다" 는 사실을 납득할 수 있다면 "개인뿐만이 아니라 집단의 의지(자기통제권)도 얼마든지 누군가의 마음대로 제어될 수 있다" 는 것도 수긍해야 할 일이다. 
 
 

 

 
특히나 인간의 안정과 안전을 추구하고 행복을 바라는 바람에다 사람들 내면의 원형상까지 이용한 최면 제안들은 꼭 말이 아니라 사회환경 변화와 영화와 드라마 등 매체를 통해서 얼마든지 악용될 수 있다. 그런 식으로 형성된 신념(프로그래밍된 MEME)이랄까 행동을 유도하는 강제유입 자원들은 현실과 정보를 해석하는 하나의 필터가 된다. 그리고 그러한 필터링을 거치면 결국 누군가가 의도한 바대로의 행동(결과)을 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의도와 목적을 띠고 언제든 지속적으로 개인과 대중에게 악용될 수 있다. 1930년대 부터 미국은 대중심리통제부서를 두었었다. 독일에서는 2차세계대전 당시 괴벨스라는 대중심리통제의 귀재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후 서양에서는 근래까지도 공식적으로 LSD라는 향정신성 의약품까지 동원해 사람의 심리를 통제하는 연구에 투자를 적지않게 해 왔다. 이제는 미국과 영국을 시작으로 대중심리통제부서를 신설해 행동경제학자들에게 지휘권을 주어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중심리통제의 필요성과 그 파급력을 충분히 실감하고 검증해 본 서양세력이 끝내 국민들의 저항도 받지 않을 학문적 근거를 바탕으로 합법적 조직으로서의 대중심리통제기구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향후엔 유럽과 북미를 너머 세계 각국 정부에서 너나할 것없이 대대적으로 대중심리통제부서를 신설하여 운영할 것이다. 세계 각국 정부가 대중의 의사결정에 개입하여 판단을 유도하는 것을 연구하는 행동경제학을 동원해 합법적인 대중심리통제를 하면서 저항도 받지 않을 것이다. 
 

 

 
환경과 정서를 유도하며 최면 제안과도 같을 신념이랄까가 자신의 해석인양 솟아나오도록 치밀하게 유도해 가면 사람은 최면을 당했는지도 모른 채 타인과 타집단에 대한 공격성향을 띠게 된다. 또 정의라는 얼토당토 않은 역설적 주장을 내세우며 불특정 다수에 대한 테러도 서슴치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우리는 일상과 일상 속 매체들에서 의도를 지닌 최면 제안들이 거듭되고 있지는 않은지 늘 숙고하며 살아가야 할 일이다.


※ "최면은 인지능력이 흐려지는 상태가 아니며 오히려 내적인 현상에 대해 명료하고 강력하게 인지할 수 있는 상태다." "최면은 고도의 집중 상태다. 의식와 의지가 명료한 상태다. 의식의 초점이 내부로 향하며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반응이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보다 더 높은 상태" 라는 맨 위에서 두번째 세번째 포토를 보자. 최면과 명상의 차이를 찾을 수 없는 문장이다. 과거 부터 "명상은 최면과 다르다" 는 주장이 늘 있어 왔다. 


하지만 명상, 기도, 최면을 볼 때 어느 노선까지는 동행을 하고 있다가 세갈래 갈림길에 서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그 갈래 길에서 깨달음이나 사마디를 추구하면 명상이고, 하나님을 향하면 기도이고, 제안(의도)을 통한 결과 도출을 향해 가면 최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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