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분석이 필요한 사람이 있고 필요 없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필요 없는 사람, 축하드리고 계속 그렇게 지내실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하지만 내가 알고 싶고 좋아하는 “(12) 정신분석은 결딴난 마음을 위한 학문이다.”
속수무책의 상황에서 독서로 도망친 나 따위가 학문에 대해 언급할 자격이 있겠는가마는… 만약 나 같은 사람에게도 학문이라는 것이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 학문은 망가진 몸/마음에서 출발해야 하는 게 (당연히 정상화와는 상관이 없다) 맞다. 그게 마땅히 옳아야 해서 옳게 느껴져서가 아니라, 이미 잘 사는 사람을 위한 더 잘 사는 방법을 알려주는 건 세상에 많은 것 같고… 잘 살 기력조차 없는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거기엔 없다 여겼기 때문에.
정신과 의사를 찾아온 사람들. 그 사람들이 하는 말, 그녀들이 호소하는 고통을 ‘광기, 헛소리, 뭣도 모르는 말, 꾀병’으로 취급했다면 정신분석은 탄생조차 하지 않았을 이론이다.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에겐 들리지 않을 학문, 자신이 부적절하다 생각하지 않는 성공한 정신은 닿기 어려운 이론. 혹 지식으로 안다 하더라도 내 삶에 적용시키기는 부담스러울 인식. (남에게 라벨링 하려고 써먹겠지.)
말을 잃어 온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했는지. 그것을 들으려고 한 사람들의 이론까지도 ‘헛소리’로 치부하는 잘난 자의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이젠 내 알 바 아니지만, 내겐 ‘헛소리’가 필요하고 나도 모르겠는 내 말을 귀담아들어보고 싶어라 하는 의도를 가진 존재가 필요했었다. 아마도 프로이트, 라캉을 들어볼 기회조차 없는 사람들은 절로 교회(운이 좋은 경우의 예시다. 결딴난 마음은 포식자들에게 잡아먹히기 제일 쉽다. 세상은 참 악하고, 인생이 고인 까닭)로, 그 밖의 다른 곳으로 갈 테지만. 나는 다행스럽게도 책을 만나서 거기에 드글바글대는 고통에도 관심 있는 어떤 사람들을 알아보게 되었다. 예술가, 작가, 학자…
프로이트와 라캉은 처음부터 철학자는 아니었다. 그들은 (지나치게 지적 욕망을 많이 지닌) 의사였다. 그게 왜 궁금하냐는 질문에 대답하고 싶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그건 당연해요. 무슨 말인지 모를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이 학문의 시작점이었을 테니까. 알고 싶어졌다면. 알아가면 된다. 에고를 내려놓고.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아가는 것의 시작. 우치다는 그런 종류의 말을 했었다. 당신의 모름은 모르고자 모르고자 모르고자 모르고자 한 노력의 결과라고.
정신분석은 결딴난 마음을 위한 학문이다. (중략) 실패한 후 비로소 우리의 삶이 시작된다는 설명은 정신분석의 낯선 주장들 중 하나일 뿐이다. 이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또 다른 주장은 우리의 삶이 실패에서 비롯한다는 것이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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